경제 119 -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유종일 교수의 정책 대안
유종일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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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유종일 교수는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소장 경제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한국경제 새판짜기]라고 하는 책의 인터뷰이 interviewee 로 참여하기도 했던 학자이고, [시사인] 같은 시사주간지에도 종종 불려나왔던(!) 이력이 있는 분입니다. 

특히, 저자는 이번 책을 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 - 대통령 당선 다음 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유종일 교수에게 '정치는 내가 할테니, 정책은  유교수가 하시오'라고 말하셨지만, 결국 경제관료와 대기업의 입장에 서셨다는 - 를 밝히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경제적 스탠스가 제 것과는 다른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종일 교수가 밝힌 일화 부분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책 제목인 [경제 119]는 두 가지의 함의를 담고 있는 제목입니다. 

우선 우리나라 경제가 응급실로 향해야 할 만큼의 중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119에 전화해야 한다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빨강색으로 책 제목을 달고, 빨강색 폰트를 잔뜩 달아둔 책 표지는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함의는, 헌법 제 119조, 특히 2항에 관련된 '경제 민주화' 항목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1987년의 대통령 직선제 쟁취 투쟁의 결과물로 나온 것입니다. 정치학자들은 '87년 체제'라고 일컫는 이 9차 개정 헌법은, 5년 단임제의 대통령 직선제 통치 체제를 규정하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총 다섯 명의 대통령을 선출한 헌법입니다. 작금에 이르러, 5년 단임제라고 하는 통치 체제에 대한 문제점이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는 바, 특히 박정희 독재 체제 및, 군부 독재 질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단임제 체제가, 4년 임기의 국회의원 선거 및 지방자치제 선거 시기와 묘하게 틀어지면서, 5년 임기의 대통령제를 약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이 다양한 채널에서 표현되고 있고, 이런 문제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참여정부 말기에 '원포인트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으로 하고 국회의원 선거와 같은 년도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헌법 개정에 대한 주장이 더더욱 고조되고 있는 바, 특히 5년 단임제가 가진 더 큰 의미의 문제 - 대중과의 불통 및 그것의 원인이 되는 강력한 대통령 권한이 야기하는 문제 - 로 인해 '2013년 체제'로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의견 및 그를 위한 개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논의도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4년 중임으로의 개헌이 또다른 독재 정치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자칫하면 8년간 상대방에게 정권을 맡기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제 정당간의 개헌 합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아울러, 경제학자 중 일군은 또다른 이유에서 개헌을 반대하는데, 그것은 바로 헌법 제 119조가 헌법 조문에서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소위 '경제 민주화 조항'이라고 하는 헌법 제119조 특히 2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19조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법조문에서 '할 수 있다'는 아주 오묘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하는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반면,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하지 않아도 좋다로도 해석이 가능한 것이죠. 작위와 부작위의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어구이기 때문에, '한다'로 끝이 나는 경우와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 조항은, 지금까지 하는 쪽으로는 해석된 바가 별로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럼에도, 시장자유주의자들은 이 조항을 꼭 없애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이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이 조항에 근거한 다양한 경제법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정부가 등장하거나, 정당이 제1당이 된다거나 하는 경우를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이 조항은 그냥 읽어도 (시장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무시무시합니다. 혹여 여러가지 불법이나 탈법을 사용하여 부당한 부를 축적한 이들이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부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분들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내용이기도 합니다. 

유종일 교수는, 이러한 헌법 제119조를 근간으로 하여, 나름대로 진보적이며 실제적인 경제 정책을 내어놓고 싶어한 듯 하고, 특히 민주당의 - 현재는 통합민주당 - '헌법 제 119조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여러 경제 전문가들과 함께 구상한 진보적 정책들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헌법 제119조가 언급하는 '경제민주화'라는 단어에 대한 저자의 정의와 함께, 그에 따른 12가지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정책 대안들이 구호나 선언에서 머물지 않도록 독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러나, 분량이 상당히 작습니다. 8,000원의 책값과 123쪽의 분량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책입니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의 스테팔 에셀이 쓴 '분노하라' 처럼 소책자를 지향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용은 팜플릿 같은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목차는 명료하나, 그 내용은 세세하지 않습니다. 가령, 저자는 경제민주화의 정책 대안 중에 '중소기업 보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은, 현실의 경제 이슈에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원청과 하도급 업체의 힘의 불균형에 대한 약간의 진보적 견해를 피력할 수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정도의 간결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학문적인 고찰은 없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에 어느 정도의 진보적인 관점이 없는 독자라면, 현상과 그에 대한 대안만 있을 뿐, 현상에 대한 분석은 없는 이 책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와 같이 경제를 상식 수준에서만 알고 있는 이가, 특히 진보적인 관점에서 경제 지식을 넓히고 싶을 때, 팜플릿처럼 간단하게 열어보고 조금 더 깊이 있는 경제 지식을 추구할 수 있는 길잡이 노릇을 해 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책에서 주목하게 되었던 부분은,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정규직 대비 110%의 임금을 지급한다'라는 부분 같은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정책이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언급되었다는 기시감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비정규직이 지니고 있는 고용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동일노동가치 동일임금을 관철하는 것에 더 나아가, 비정규직 고용 불안에 대한 고용안정수당 명목으로 임금의 10%를 더 지급해야 한다는 것은, 사용자 측에서는 펄쩍 뛰고 나가 자빠질 주장이지만, 반드시 사회적으로 한 번은 공론화할만한 가치가 있는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보적 경제 이론 및 정책이 가지는 어려움이라면, 제 얇은 지식으로는, 동구권 공산주의의 몰락이 가장 뼈아프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분배를 중시할 수 밖에 없는 진보적 경제 이론 및 정책은, 그것을 '명목'으로 걸고는 서구의 자본주의 경제 질서와 대립해왔던 동구권의 실패가, 분배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나쁜 선례처럼 되어버린 것이 어려움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이 분배를 명목으로 하여 자본주의 경제 질서보다 더 큰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였으며, 그것을 민주적으로 해결할만한 정치 체제도, 역량도, 의지도 없었다는 것을 볼 때, 그 귀결이 몰락임은 자명하고 또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분배가 몰락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마타도어임이 또한 당연합니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및 정책이 야기한 양극화의 문제는 어찌보면 이 또한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는 가운데, 동구권 공산주의와 분배 시스템은 분리하여 고찰되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하여 유종일 교수가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적인 세 축으로 공정경쟁, 참여경쟁, 분배정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는 결국 경제 주체들 또한 민주적 절차에 의한 참여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경제 문제의 해결이 어떤 특정한 누군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주체들이 민주적인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절차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 민주화를 통해, 저자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하의 양극화를 제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며, 이것을 위해 무엇보다도 경제 주체의 한 축인 시민이 민주적 절차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당히 얇은 책이기에,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고, 또한 특별히 기억에 남을만한 저자의 언급이 있었던 것도 아닐 뿐더러, 책값도 분량대비 그다지 저렴하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시사인북]에서 나온 - [시사인]의 자매회사죠 - 책이기에, 또한 진보적 경제 정책에 대한 소장 학자의 대안을 공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 책의 독서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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