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신론 - 한글판
이기백 지음 / 일조각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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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큰 마음 먹고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신론]을 사서 읽었습니다. 이런저런 역사 관련 책들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한국사 통사를 읽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전체적인 맥을 잡아보려는 생각에 두툼한 책을 골라서 읽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우는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고교 수준의 국사 지식만 가지고 있다면, 뼈대는 같은데 살점이 조금 더 많은 정도의 책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요컨대, 국사 교과서가 그만큼 잘 쓰여진 것이라고 봐야겠죠?

 

한편으로, 일제시대 이후의 서술이 좀 빈약한 편입니다. 특히 5.16 쿠데타 이후로는 간단간단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언급하는 수준이라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기백 교수가 이병도 교수의 제자였다고 하죠. 이병도 교수는 식민사학의 거두라고 하는데, 그 글을 읽어보진 않아서 제가 평가하긴 어렵구요. 이기백 교수는 확고하게 식민사학을 배격하는 입장을 가지고 계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이병도 교수의 '진단학회' 이야기가 잠깐 언급되고 있습니다. 

 

원래 이 책 이후에 강만길 교수의 [고쳐 쓴 한국 근대사], [고쳐 쓴 한국 현대사]를 읽을 생각이었는데, 그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일제시대 이후에 대한 언급은 많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사건 중심으로 인물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정치사 중심으로 서술해나가되, 사회적 분위기나 문화/예술 부분에 대한 언급도 충실한 편입니다. 경제사에 대한 부분은 조금 미흡한 부분이 있는데, 따로 읽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의 종장에, 한반도 사회의 지배세력에 대한 고찰, 지배세력과 민중과의 관계에 대한 간단한 글이 있습니다. 동학'운동'과 독립협회, 그리고 3.1운동과 4월혁명을 같은 선상에 두고, 민중이 민주하여야 한다는 견해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자유와 평등에 입각한 사회정의가 보장되는 민주국가의 건설로 나아가야한다는 저자의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논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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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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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 1학년 때, 한창 미술에 관련된 책들을 읽던 그 때, 진중권 씨의 책 [서양미술사 1]을 샀더랬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책을 읽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네요. 

 

 

이 책을 쓴 진중권 교수는 미학자이지만, 실제로는 미학자로서의 존재감보다는 사회평론가로서의 존재감이 더 커 보인다는 생각을 가지게하는 인물입니다. 정치, 사회적으로 미묘하게 갈리는 부분에서 진보적인 방향에 서서 파쇼적인 주장과 행동에 대해서 분연히 발언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엄혹했던 이명박 정부의 시절동안, 100이 아니면 0이라는 그 강력했던 입장을 조금은 완화시켜나가기도 했지만, 여하튼 아직도 '싸움닭'이라는 이미지가 굉장히 강하게 남아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학자로서, 진중권 씨의 책은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서는 원칙의 편에 서서 촌철살인하는 언어를 마구 쏘아대지만, 미학자로서 작품과 작품 외적인 평론에 있어서는 절제된 언어와 표현을 통해 정확하게 이야기하려는 바를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 책 [서양미술사 1]은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로부터 19세기 신고전주의까지의 유파를 정리한 책으로써, 세간의 진중권 씨에 대한 평가를 잘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책의 독특한 부분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미술부터 중세 시대를 거쳐서, 르네상스의 고전주의와 바로크/로코코 시대를 거쳐서 신고전주의까지, 유명한 평론가의 평론을 배경으로 하여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는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평론가란, 제 생각에는, 자신이 가진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설득력있게 다가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평론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그림이나 책, 작품을 보던지간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사유하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범한 독자로서 머물수 밖에 없는 까닭은, 우리는 그러한 우리의 사유를 다른 사람에게 공명하게 할 능력이, 혹은 통찰이, 또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능력 또는 통찰, 혹은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런 이를 평론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학자로서, 저자는 자신의 평론가적 통찰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앞서서 평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이들의 통찰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주는 것 정도로 만족하고 있는 모습을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저자가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진중권 씨 자신의 목소리로 고대 그리스부터 신고전주의까지를 훑어 내려갔어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저같은 미술의 문외한은 누가 이야기를 하더라도 수용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리하지 않고, 자신보다 (어찌보면) 더 권위있는, 먼저 통찰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가함으로써, 문외한들이 조금은 더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쳐다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고전주의니, 바로코/로코코니, 신고전주의니, 모던이니 하는 다양한 미술 유파들에 대한 생각은, 이미 당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능력있는 평론가들에 의해서 샅샅이 살펴진 바 있습니다. 저자가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런 먼저 지나간 이들의 목소리를 빌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텐데, 차라리 먼저 통찰한 글들을 베이스삼아 자신의 생각을 양념처럼 뿌려둔 글들이 저같은 이들이 차후에 다른 견해와도 조금은 쉽게 비교/대조해 볼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책은 조금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역원근법에 관련된 이야기는 도무지 어려워서 두어번 다시 읽은 듯 하고, 이해해내었지만, 며칠 지나니 '무슨 이야기였던가'라는 상실감이 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도화를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조금은 친절하게, 고전주의와 바로크/로코코, 신고전주의 등을 잘 비교해 줌으로써, 낭만주의가 등장하는 시점부터 복잡다단하게 등장하는 유파를 조금은 잘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가지게 해 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조금 재미없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많은 조형물들은 작품 수가 작아 그 이야기가 뻔한 구석이 있고, 중세시대에는 형이상학적이라 피상 이상으로 들어서기를 망설이게 합니다. 원래 그 시대들이 그랬나봅니다. 조금 더 다이나믹한 시대에 관한 책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하네요. 그래서 결국 [서양미술사 2]도 사고야 말았습니다. 신고전주의의 이후부터 다룬다는, 2008년 초판과는 표지가 달라진 - 구성은 그대로겠죠? - 두 번째 권도 기대를 가지고 읽어볼 요량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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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영도 단편선 : 에소릴의 드래곤, 샹파이의 광부들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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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는, 어느 때까지는 '이영도'라는 키워드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가장 많았더랬습니다. 자칭, 타칭, 이영도 씨의 팬인지라, 관련 포스팅이 많았던 탓이 크겠지요. 벌써 4년하고도 7개월이 지났지만, '드래곤 라자 10주년 기념판' 출간 때 대충 추려보니 A4로 120여장 분량이 되는 글들을 이래저래 썼더랬습니다. 잡담부터 비평글까지... 정말 많은 글을 썼고, 또 그만큼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한 분이 바로 이영도 씨이죠. 

 

다만, 안타까운 것은, 지난 2005년에 [피를 마시는 새]의 출간이 이루어진 후에는, 중간에 [드래곤 라자] 10주년을 기념하면서 썼던 [그림자 자국] 말고는 후속작이 나오지 않는다는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독자들은 이런저런 추측을 앞세우고 있는데, 그렇게 나오는 이야기로는, 하이텔이 없어진 후에 연재 장소를 물색하는 것이 길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런 표면적인 핑계를 앞서 두고는 계속 연재를 구상하는데 작품의 전개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어쨌든, 작가 자신이 이야기하는 바는 아무 것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작품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을 듯 싶기도 합니다. 

 

한편, 독자로서는, 혹여 이제는 이야깃거리가 다 떨어지지 않았나, 라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입니다. 독자이니, 작가가 작품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런저런 쓸데없는 곳까지 그 염려가 더해지는 법이며, 그러다보니 이제 작품으로 더이상 만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라는 우려에까지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영도 씨는, [드래곤 라자]-[퓨처 워커]-[그림자 자국]과 [눈물을 마시는 새]-[피를 마시는 새]로 이어지는 두 곳의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오버 더 호라이즌]-[오버 더 네뷸러]-[오버 더 미스트]로 이어지는 정말 매력적인 세계도 하나 가지고 있으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세계인 일곱 선장과 일곱 하이마스터들의 세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깃감이 떨어져서 이야기를 쓰지 못할 일은 없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카쉬냅 백작 더스번 경 칼파랑(과 사란디테)의 이야기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밑으로는 당연히 이야기의 내용이 있으므로, 혹여라도 아직 이야기를 읽지 않았는데, 그 이야기의 추이 혹은 결말을 알기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이 밑으로 스크롤바를 내리시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단... [에소릴의 드래곤]은 딱히 무슨 반전이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런 판단은 독자 개개인에 따라 다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꾸벅)

 

 

 

 

 

 

 

 

이 이야기는 에소릴의 드래곤인 란세델리암이 나리메 공주를 납치하면서 시작됩니다.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왕의 기수이자 왕국의 기사인 카쉬냅 백작 더스번 경이 곡괭이 한 자루 비켜들고는 말 한 마리 거느리지 않고 홀홀단신 공주의 구출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 더스번 경은 오만가지 추문(!)을 안고 사는 천하의 무뢰배입니다. 팔비노 교의 성녀를 겁탈했으며, 평민에게는 귀족이라는 이유로, 귀족에게는 귀족 알기를 우습게 안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며, 반란을 처리한 후에 그 수급을 나리메 공주에게 덩그러니 보내버리는, 그러나 싸움은 또 그렇게 잘 할 수 없어서 연전연승 이기지 못하는 적이 없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리메 공주는, 란세델리암에게, '나는 더스번 경의 트로피가 되고 싶지 않다'고 강변하면서, 놓아달라고 애걸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실은 사란디테와 조빈의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보름달을 보면 (여자) 늑대 인간으로 변하는 사란디테와 (남자) 사슴 인간으로 변하는 조빈. 그리고, 그 둘은 필연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조빈은 그 사랑이 변할까봐, 그 사랑이 거짓일까봐 겁을 내며 사란디테를 떠나려 하고, 사란디테는 그 사랑에 빠져 그의 상대가 누구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사랑 자체에 몰입하고 목매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결국, 더스번 경과 사란디테는 란세델리암에게 잡혀 있는 나리메 공주와 조빈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의기투합 - 응? - 해서 함께 에소릴에 잠입하고, 그 무시무시한 소문과는 다르게, 더스번 경과 사란디테는 드래곤 몰래 공주와 조빈이 잡힌 공간까지 가서 그 둘을 구출해내기 직전에 이르릅니다. 

 

나리메 공주가 더스번 경을 오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만 않았다면, 조빈이 사랑에 비겁하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네 사람은 몰래 에소릴을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조빈은 사랑에 비겁하다 못해, 사람에게도 비겁합니다. 란세델리암의 설득에 실패하고 결국 잡아먹힐 지경이 되자, '몰래 다녀간 사람이 있다'라고 드래곤에게 꼰지릅니다. 명목은, 나리메 공주를 잡아먹으려는 드래곤의 시선을 뺏아보려는 처량한 시도이지만... 결국은 사랑도 배신하고 사람도 배신하는 그런 짐승같은 행동입니다. 나리메 공주는

 

'너는 후식이야.'

 

라고 그런 비겁함에 일갈합니다.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조건을 따지고 형편을 재며 상황을 살피는 그런 것과는 정 반대의 그런 것입니다. 사랑은 조건도, 형편도, 상황도, 그 어떤 것이라고 극복할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연인에 대한 사랑이 그런 것이며, 자녀에 대한 사랑이 그런 것입니다. 사랑에는 경중이 없습니다. 나의 사랑의 양은, 실은 조건과 형편과 상황에 따라 그 모양이 조금씩 달라 보일 수는 있지만, 그 양은 변함 없습니다. 덜 사랑하는가 더 사랑하는가는 없습니다. 사랑하는가, 아닌가만 있을 뿐이죠. 조빈은 사란디테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조빈은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않았기에, 사란디테는 조빈과 함께 보낸 나날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조빈을 구하기 위해 그 험한 에소릴까지, 그 극악무도한 더스번 경과 함께 잠입하게 되지만, 실은 사란디테도 조빈에게 속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조빈은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사람을 배신합니다. 사랑할 수 없다고 버리는 것은 짐승이나 할 짓입니다. 우리 사람은, 비록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버리지는 않습니다. 혹시라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인 것이죠. 금수만도 못하다, 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입니다. 작가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하지만, 혹여라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면, 존중하기라도 하라는 것이죠. 나리메 공주는 그랬고, 조빈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더스번 경은 사란디테의 맹목적인 사랑 - 대상과 공명하지 않고 사랑 자체에만 몰입해 있는 - 의 원인이, 사란디테가 스스로를 응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조언합니다. 실은, 사란디테도 조빈과 같은 부류였다는 것이죠. 사랑을 배신하는 것과, 사랑을 맹신하는 것은, 결국 사랑의 상대편에 대해서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이야기라고 봐야겠죠. 결국 사란디테는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길 바라게 됩니다. 그래서 에소릴의 드래곤에게 승리한 댓가로, 사란디테는 월장석을 선택하게 됩니다. 사랑의 또다른 주체인 상대편을 쳐다보려면, 사랑의 주체인 나를 먼저 똑바로 쳐다볼 수 있어야겠죠. 그 모습이 아무리 형편없고 똑바로 응시하기에는 너무 힘든 모습일지라도 말입니다. 

 

우리의 사랑에는 월장석이 필요합니다. 나의 또다른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쳐다볼 수 있어야 하는 그런 매개물 말이죠. 누구나에게 그런 월장석 같은 것이 한 번 쯤은 있을 것입니다. 그 때를 놓치지 말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아마 사란디테처럼 더스번 경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얻게 될 것입니다. 

 

더스번 경은 나리메 공주를, 사란디테는 월장석을 전리품으로 챙겼다면, 나리메 공주는 왜 조빈을 전리품으로 챙겼으며, 그런 조빈을 방치한 채로 그 곳을 떠나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더스번 경의 트로피 양보욕을 충족시켜 주면서도, 자신은 그런 '짐승'과 함께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라고 하면 작가의 생각을 맞게 읽은 것일까요? 하하.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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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1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 / 북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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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잡은 까닭은, 학급 어린이들에게, 선생님이 읽은 책을 몇 권 학급문고로 가져다 두기 위해, 먼저 읽을 목적에서였습니다. 


특히, 제가 맡은 6학년 아이들은 이미 5학년 때 역사 부분 수업을 다 마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역사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확연하게 적습니다. 저는 학급에서 역사 논술 테마를 가지고 창의적 체험활동도 운영하고 있고, 여러 계기 교육 -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든지 현충일, 혹은 6.25사변일 등의 - 을 통해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역사 관련 지식이나 이해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마침 오늘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인권 관련 계기교육을 하다가 전쟁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역사가 - 혹은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이, 또는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실은 모든 사람들 - 가 공명하여 진보의 미래를 계획하고 전망하는 것이라고, E.A. 카는 말한 바 있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아직 제가 알고 있는 역사 관점이 일천한지라 시야가 좁기는 하지만, E.A.카의 이러한 견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의미한 역사 관점이라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진보의 노정을 걷기 위해서, 역사를 더 깊이 알아야 하는 것은, 어찌보면 의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 [역사 e]는 아마도 [지식채널 e]처럼 EBS에서 방영한 것을 모아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책입니다. 구성은 [지식채널 e]와 비슷하여, 화면과 함께 간단하게 정제된 메시지가 소개되고, 그에 대한 배경이 자세하게 풀이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은, 역사에 대해서 약간의 관심이 있어, 몇 권의 역사책을 읽어 온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것들입니다. 딱히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있다거나, 혹은 무언가 모르고 있던 것들이 새롭게 밝혀진다거나 하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한 약간의 상식만 있어도 익히 알고 있었을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이시영 부통령 가계의 독립운동사에 대해서 새롭게 알 수 있었고, 북관대첩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고 알게 되었으며, 4.19와 5.18 때 역사적 현장에서 역사와 함께 하였던 두 소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외에는 다들 어디에선가 읽어서, 혹은 들어서 알고 있던 것들이 일반적이므로, 딱히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한 편으로는, 조금 감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제된 메시지보다, 그의 해제가 더 감정적으로 짜여져 있어서, 사실 이상을 전하려는 제작진의 의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은 견해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의지 자체에 대한 부담 혹은 제 성격 상 그런 강렬한 의지에 대한 이유없는 거부감 탓이니, 다른 분들에게는 그런 어려움이 없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읽기에는... 실은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공재 윤두서 선생의 이야기나, 또는 일본 제국주의의 비인륜적 행위를 규탄하는 수요집회 이야기 같은 것은 아이들이 어려워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면서도 역사적 개인의 삶에 독자 자신을 투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 때문에 과연 이런 부분을 6학년 아이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약간의 우려가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급문고로 사용하기로 생각한 이유는, 어쨌든 알아야하는 이야기들로 구성된 알찬 책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개인으로 살기 위하여, 과거의 사실과 공명하는 일은, 어찌보면 열 세 살, 지금부터 해나갈 수 있도록 저희 어른들이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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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 일상생활의구조 -하 까치글방 98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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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날 학파의 거두라고 할 수 있는 페르낭 브로델의 역작입니다. 두 권으로 분책된 900여쪽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이제 3분의 1이 끝난 이 책. 그러나 이 책이 목적하는 바는, 위인 중심의 임팩트 있는 역사 서술의 방향에서 벗어나, 역사를 살아내었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 사람들의 생활을 규정하는 사회 구조를 살펴봄으로써, 역사 사건(과 그 위에 존재하는 인간 개개인)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의 양상을 하나하나 살펴보자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일상생활의 구조>인 것도 바로 그런 의미로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 읽고 있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도 개인에 초점을 맞춘 역사의 유의미성 이상으로 집단에 초점을 맞춘 역사의 유의미성을 강변하고 있는 챕터가 있었습니다. (2장, 사회와 개인) 많은 역사책들이 사건과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실은 인물과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극히 재미없고 지루한 이야기가 이 책과 이 전의 책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자꾸 놓치게 됩니다. 정말 재미가 없거든요. 자본주의를 알기 위해, 자본주의가 태동한 서구 및 그의 영향을 받은 전세계의 일상생활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자본주의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저자의 시도. 그 시도가 어떻게 열매맺는지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정말... 내용은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15세기의 대도시 규모라고 해봐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시의 한 구 안에 속한 한 동의 부분 정도가 모여사는 정도였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생산을 위해 이용했던 에너지라는 것이 17세기까지는 물레방아와 말의 힘 이상을 넘어설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어음의 역사는 12세기부터 시작되었지만, 실제로 화폐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나머지 책을 마저 읽은 후에, 이 책과 앞의 책을 다시 한 번 읽을 생각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실감나게 일상생활 속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통찰할 수 있게 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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