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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ㅣ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들어가기 전에, [모모]를 처음 접할 때, 작가 이름이 미카엘 엔데로 번역되었었죠. 이제는 올바른 발음인 미하엘 엔데라고 불리우고 있지만, 저는 아직도 미카엘 엔데가 더 익숙하군요. 각인인가보죠.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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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환상
도대체 [모모]에 설정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버럭!)
늘 강렬한 시작을 꿈꾸는 저의, 두 번째 서평입니다. 갑자기, 불현듯, [모모]에는 설정이 없다는, 아니,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그 <설정>이라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지의 군주]와 같은 치밀하고 세부적인 설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검도 마법도 없는, 단지 현실과 대비된 몽환적인 환상이 있을 뿐입니다.
설정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는 이들에게, 미하엘 - 미카엘이 더 익숙한데 말이죠 - 엔데는 훌륭한 현대 환상 소설의 전범이 됩니다. 단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익숙함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소위 순수 소설의 방식인 듯 하지만, 회색 신사들과 호라 박사의 보이지 않는 대립의 비현실은 우리에게 환상의 또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들어가면서
간단한 일화 하나.
이 책을 모 인터넷서점에서 36.5% 할인가격으로 주문했습니다. 5천 7백원. 그리고, 그 인터넷서점 자체 포인트와 OK 캐시백 포인트 적립금을 사용했습니다. 마이너스 5천 2백원.
책값이 5백원 들었습니다. (파안대소)
그리고 손에 집어든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 용이더군요. (긁적a) 과연 이 글을 초/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까?
주제 : 시간을 아끼는 것이, 진실로 시간을 아끼는 것인가?
진실과 사실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갭이 있다더군요. 진실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 주관성으로 승부하는 것이고, 사실은 의미 없는 모양 그대로의 객관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죠.
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사실> 어마어마한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효율적인 시간의 관리를 위해서 우리는 필요없는 부분의 시간을 지우고 더 발전적이고 능률적인 곳에 시간을 써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 이치에 맞고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가령, 제가 홈페이지와 웹진에 쏟는 하루 약 두 시간 여의 시간을 법학전공책을 보면서 보낸다면, 아마도 저는 회사에서 사랑받고 혹시 고시를 패스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그것이 행복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고려하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과연 나를 얼마나 풍요롭고 안락하게 할 수 있는가...
이 글 [모모]에서는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들이 나옵니다. 회색 신사들은, <계약>을 통해서 사람들의 시간을 양도 - 실은 강탈 - 받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시간의 꽃이 회색신사들의 냉동고 속에 보관되면서 회색 신사들에게 생명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양도는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회색 신사들에게 저축하겠다는 의사의 표시가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을 <속입니다>. 효율적인 시간이 그들을 행복하게 할 것으로. 자투리 시간을 없애고 생산적인 활동에 매진하면, 그들은 부유하게 되고 결국은 행복해질 것이라는...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그 사실을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효율성과 생산성은 끝도 없는 효율과 생산을 부릅니다. 사람들은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 목적지에 도달해야 비로소 웃으면서 뒤돌아볼 수 있는데, 그래야 행복한데, 목적지가 보이지 않기에 사람들은 목적지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서 끊임없이 달려가야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비효율적이고 낭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잠깐 서서 뒤를 돌아다보라, 고. 그 순간, 우리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폐인... 밤새 동기들과 놀고 물마시고 - 개인적으로 술을 못하는지라... 혼자 물을 술마시듯; - 새벽녘에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난 참 폐인처럼 사는구나라는 <사실>의 인식과,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진실>의 느낌이고, 그것이 바로 [모모]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행복이 아닐까요?
형식 - 몽환적 환상
[모모]는 우리가 자주 봐오던 형식적인 설정이 없습니다. 검과 마법도 없습니다. 톨킨의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실은, 우리나라에서 이런 <미하엘 엔데> 류의 글을 찾아보기는 힘겹습니다. 고작해야 김하인 씨의 [즈무와 12세계] 정도의 글 - 그나마도 4권에서 멈춰섰죠...
그것을 <몽환적 환상> 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모모]의 이야기는 기실, 우리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백 년이 지난 뒤에도, [모모]의 이야기는 공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것인 듯하나, 누구에게나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마치 꿈과 같은 것이 아닐지요. 우리의 이야기인 듯하나, 실은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닌. 우리의 것이라고 믿어지나,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this) 세계로부터 탈주하여, 새로운 이(異)세계를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혹여 사람에 따라서는 틀린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 그것이 몽환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기어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나 다름없이 여겨지는 생경한 것, [모모]는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그 지향점이 우리 눈 앞에 선하기에 이 꿈은 우리에게 아름다울 수 있고, 우리의 목적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환상 소설의 환상은, 바로 그렇게 현실을 비추고 또 드러냅니다. 이영도 씨가 자신의 책에서 썼듯이, 꿈이란 밤의 것이면서도 낮을 지향하는 것일테니까요.
인물 - 모모, 그리고 카시오페이아
물론 많은 자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모의 한결같은 귀기울임, 그리고 카시오페이아의 <30분 선견지명>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내다보면, 모모가 가진 성정을 언뜻 보이는 이를 봅니다. 타인이 자신의 입으로 모든 것을 다 토설할 때까지 기다리는, 우리는 그런 자를 지혜로운 자라고 합니다. 인간은 지극히 관계 지향적으로, 그것이 어디에서 가장 잘 드러나냐하면, 바로 <수다>라는 것에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물론 과묵한 사람도 있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수다가 존재할 때, 수다(數多)한 인간들의 수다는 당연한 것이겠지요.
수다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확연하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도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듣기보다는 말하려고 하고, 읽기보다는 쓰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혜롭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타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보이기를 기다릴 줄 아는 것, 그리고 사람은 자신을 <다>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기다리는 장사는 백 번 남는 장사가 됩니다. (후훗;)
모모는, 더욱더 지혜롭게도, 그것을 이용하지 않고 타인을 위한 것으로 돌려줍니다. 그래서 모모의 주변은 아름답지요.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걸음걸이를 본다면, 우리는 하나 더 배울 수 있습니다. 30분만 내다볼 줄 안다 할지라도, 사람은 자신의 걸음을 확고하게 디딜 수 있습니다. 회색 신사들의 행동을 <30분 먼저> 보기에, 거북이는 느릿느릿 걸어도 뚜벅뚜벅 걸어갈 줄 아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10년, 100년 밖을 내다보려고 안달합니까? 그렇게 먼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30분, 금새 내게로 달려오는 그 시간을 내다볼지라도 자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넘어서는 것은 과시요 과신일 뿐이죠.
게다가 뒷걸음질 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그 역설이라니! 우리는 때때로 물러서는 것이 앞을 향하는 수단이 됨을 거북이의 느릿한 그 걸음을 통해서 배우고 익힐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문학은 무엇인가?
감히, 가르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글을 통해서 배울 수 없다면 글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자기 연민과 방관자의 삶일 뿐일겝니다.
작가는 글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는 글을 읽음으로써 스스로를 가르치며, 작가에게 가르침을 되돌릴 수 있을겝니다. 그것이 문학이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모모]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메마르고 성급함에 대해서, 뚜벅뚜벅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이들이, 실은 가장 행복한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1부 모모와 친구들
제1장 어느 커다란 도시와 작은 소녀
제2장 뛰어난 재능과 아주 평범한 싸움
제3장 폭풍 놀이와 진짜 소나기
제4장 말 없는 노인과 말을 잘 하는 청년
제5장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와 한 사람만을 위한 이야기
2부 회색 신사들
제6장 똑 떨어지는 엉터리 계산
제7장 모모는 친구들을 찾아가고, 한 명의 적이 모모를 찾아온다
제8장 많은 꿈과 몇 가지 의혹
제9장 열리지 않은 좋은 모임과 열린 나쁜 모임
제10장 맹렬한 추격과 느긋한 도주
제11장 악당들의 모략
제12장 모모, 시간의 근원지에 가다
3부 시간의 꽃
제13장 그곳에서의 하루, 이곳에서의 한 해
제14장 너무 많은 음식과 너무 짧은 대답
제15장 기기를 다시 찾았다 잃다
제16장 풍요 속의 궁핍
제17장 크나큰 두려움과 더 큰 용기
제18장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면?
제19장 포위된 이들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제20장 뒤를 쫓던 자들을 뒤쫓기
제21장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끝
작가의 짧은 뒷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