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조건
도리스 컨스 굿윈 지음, 이수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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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집중해서 - 그러나 자그마치 한 달 여의 시간을... - 읽을 수 있었던 책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해서 많은 단편적인 지식들을 가지고 있지만, 현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가 이 책을 취임 전에 읽었다는 외신기사를 보고, '링컨'이라는 인물에 조금 더 다가서보자는 생각에서 책을 읽어볼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절반 정도는 지난 한 달 여간, 책의 나머지 절반 정도는 이번 주 화요일 저녁과, 어제 저녁에 읽었네요. 아무래도 링컨이라는 인물이 드러내는 진정한 가치는 '남북전쟁'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남북전쟁 시대를 그린 중간 이후 부분이 조금 더 집중력있게 읽힌 것은 사실입니다.


이 책은 링컨의 평전은 아닙니다. 물론 링컨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지만, 책의 원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1860년 미국 대통령선거 공화당 후보 경선에 참가하였던 라이벌들에게서 책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독특한 구성이지만, 책의 서두에는 링컨과 슈어드, 헤이스와 베이츠의 입장에서 1860의 공화당 후보 경선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네 명의 인물의 과거사로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배경과 성장과정 및 정치적 성향과 민감한 이슈에 대한 견해를 차근차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굳이 책의 저자가 이런 구성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이 책을 통해 남북전쟁 당시의 정치적 상황 및 남부와 북부의 대립점을 명확하게 하면서, 특히 노예해방 편에 섰던 네 명의 공화당 인물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약간씩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 네 사람이 어떻게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조율하면서 남북전쟁에 북부의 승리를 가지고 왔는지를 잘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노예해방의 견해를 가졌지만, 가장 급진적이었던 헤이스부터 가장 보수적이었던 베이츠까지 조금씩 다른 스펙트럼을 어떻게 조율하고 양보해나가는지에 대한 일련의 과정들이 잘 드러납니다.

그러나, 결국 책이 페이지를 더해갈수록, 저자는 팀의 리더인 링컨의 진가를 드러내게 됩니다. 이러한 링컨의 진가는 제임스 러셀 로웰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엔 국민을 억압하게 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론에 대한 깊은 이해는 가장 큰 정치적 능력이다. (중략) 링컨은 여론과 완벽하게 교감했으며, 적절한 시기를 찾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p635)  
   

링컨은 전쟁의 어려운 국면에서, 신중하게 시기를 조율하고 자신의 내각을 조율하다가,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시의적절한 결정을 내렸음을 이 책의 모든 부분을 통해 우리는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런 링컨의 탁월한 결정력은 링컨이 여론의 흐름과 시대의 흐름이 가장 적절하게 교차하는 점에서 늘 정확한 결정을 했다는 것으로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링컨의 능력은, 그의 내면에 깊이 자리잡은 헌법의 이상에 대한 신뢰와 끊임없는 신중함, 그리고 그의 정직하고 온화하며 유쾌한 성품 때문임을 책에서는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만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론이 잘못된 방향을 택하고 있다면 신중하게 여론의 흐름이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정직하게 헌법의 이상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면서 온화한 마음가짐으로 기다리는 것이 바로 링컨이 재임기간동안 보여주었던 모습입니다.


책의 마지막에 링컨의 죽음에 대한 언급, 그리고 링컨과 함께 팀을 이루었던 내각 및 주변인물들에 대한 에필로그는 짧지만 강렬합니다. 특히 전쟁장관 스탠턴이, 앤드류 존슨 - 링컨의 부통령이었다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 과 대립했다는 짧은 언급 뒤에서, 헌법의 정신 아래에서 남부를 포용하려던 링컨의 정신을 제대로 수호하지 못한 존슨 대통령에 대한 격렬한 안타까움이 보이는 듯하여 가슴 아팠습니다. 그리고 충성스러웠던 스탠턴이 자신에게 주어졌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급사한 부분까지. 또한 링컨의 저격이 이루어지던 그 시간에 암살 기도 속에서 큰 부상을 입었던 슈어드가, 대통령의 죽음을 -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가운데 - 눈치채고 그의 부재를 담담하게 슬퍼하던 장면도.

아, 그리고 시어도어 루즈벨트 시대의 국무장관이었던 존 헤이가, 링컨의 1기 재임기간 동안의 그의 비서였다는 것도 몰랐었네요. (흐음)


이 책을 읽으면서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단지 단호한 결정력이 아니라, 단호한 결정력 이전에 신중하게 여론의 흐름을 찾고, 헌법의 대의와 이상에 따라, 정직하고 신실하게 자신과 자신의 팀을 다루는 것임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말 책은 아니라는 생각을 강하게 해보았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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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
김상복 지음, 장차현실 그림 / 21세기북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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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어제(3/10)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내일(3/12)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보고서는 집 옆 구립도서관에 가서 오늘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책의 주문을 취소했습니다. 

이 책은 [도덕과수업Ⅰ]의 첫 과제로 제시받은 것입니다. 이 책에 대해 선생님께 대략의 코멘트를 받은 후에 했던 생각이, 이 책을 사 두었다가 우리 아기들이 큰 다음에 읽히면 좋겠다, 라는 것이었던터라 책을 구매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은 두 딸들이 커서 읽을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오히려, 딸들에게는 읽히고 싶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저는 올해 환갑을 맞이하시는 부모님이 계시긴 합니다. 독자(讀者)를 책의 화자 격인 귀여운 중1, 중3 학생들과 같은 위치에 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이제 부모님과는 시쳇말로 '함께 늙어가는 처지'인지라, 그리고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든 장남의 처지에 부모님께 살가운 말로 위로하는 역할보다는 든든한 바위 같은 위치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라, 독자는 귀엽고 깜찍한 중1과 중3 학생들의 상대역으로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두 딸이,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이런 모습으로 커 나가게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중고등학생 뿐만 아니라, 저와 함께 수업을 듣는 앳된 동기들도, 자신들을 향한 칭찬과 격려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저는 시대의 경향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처와 아픔도 쿨하게 넘길 수 있는 인간상을 원하고 있는 이 시대는, 따라서 개인을 더욱더 이질화시키고 파편화시키는 시대입니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쉽사리 털어놓을 곳 없이, 내상(內傷)을 스스로 어루만져야 하는, 공동체성은 점차로 희미해져가고 개인의 존재감은 공동체의 보호를 받을 여지도 없이 내팽겨쳐져있는 이 시대이기에, 우리는 따뜻한 말, 진심이 담긴 한 마디를 하지도, 받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입에 발린 격려나 칭찬이 아닌, 따뜻함이 담긴 - 무뚝뚝하게 던져질지라도 - 말 한 마디 던지기 버거워하는 현재의 제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엊그제 정기보험에 가입하는데, 보험설계사가 '가족에게 남기는 말'을 적으라고 하길래, '소영아, 사랑해!' - 제 와이프 이름이 '소영'입니다 - 를 적고는 와이프 보지 못하게 재빨리 접어서 보험설계사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이제는 조금 제 감정을 표현해보아야겠습니다. 와이프에게도, 아직은 말이 통하지 않는 다섯 살, 두 살짜리 제 두 딸아기들에게도. 그래서 제 두 딸이, 혹여 중학교에 진학해서 도덕 선생님에게 '칭찬일기'의 숙제를 받았을 때, '선생님, 아빠 엄마에게 따뜻한 감정을 건네는 것은 당연한거 아닌가요?'라고 의아해 할 수 있도록 저도 따뜻한 진심을 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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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지음 / 책벌레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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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저는 미네르바라는 분의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파일은 가지고 있지만... 하도 여러 글들에서 그 분의 글에 대한 분석들을 보다보니까, 대충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막상 읽어보려고 마음을 먹게 되지는 않네요.

그래도 미네르바 님이 추천하셨다는 책들은 메모해두었습니다. 그 중에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한 번 다 읽었습니다.

일단, 요즘 제가 (정치)경제학 쪽의 책을 이런 저런 것들 읽어가다보니까, 책 자체가 아주 새롭게 읽혀지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정 가운데 흑사병 같은 경제 외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과,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는 인클로저 운동 등의 작용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책에서도 다루고 있는 바입니다. 거기에 뜨거운 불길을 끼얹은 것이 산업혁명이며, 그 전초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상업혁명이기도 합니다.


뭐 그럭저럭 요약하는 것은 별다른 독후감상문이 되지 못할 터이니.

일단 책을 읽은 후의 감상은, 1930년대 한창 대공황의 파고를 건너넘던 시기의 미국 사회를 시간적 배경으로 쓰여진 책 치고는, 지금 읽어도 심정적으로 시차를 느끼기 어렵다는 점에서의 충격입니다. 책 p190 에 이런 문구가 있네요.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정말이지 출생의 특권은 폐지됐지만 사업의 특권이 그것을 대신했다.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귀족과 교회 세력이 그 자리를 내어준 이후에, 부르주아 세력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을 저자는 위와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신분의 특권은 없어진 대신, 그 특권은 돈을 가진 이들에게로 옮겨갔죠. 이것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부(富)가 부(富)를 불러온다는 사실은 프랑스 대혁명의 시기인 근 220여년 전에도, 뉴딜 시기인 80여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몇천억씩 해먹어도 휠체어 끌고 유유히 법정에서 무죄 판결 받고 유유히 사라지는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유명한 탈옥수 모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죠.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 책은 급격하게 자본주의로 대체되는 사회가, 실은 봉건주의의 어두움보다 더 큰 어두움과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네. 보통 이런 부류의 책들은 선동적입니다. 왜냐하면 주류의 이야기만을 다루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선동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언외언을 짚어보면 선동적임에 분명하지만, 그런 느낌만이 전부가 아닌 까닭은, 저자가 진중한 자세로 담담한 어조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역사적인 경제현상을 분석적으로 기술하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글이 주는 선동적인 느낌은, 어떻게 보면 저자의 의도라기 보다는, 그냥 현실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가능성이 더 크겠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알고 있는 이야기가 꽤나 있음에도 이 책을 읽으면 분명히 자본주의의 주인인 자본가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저자는 자본가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제시하고 있으며, 설득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심정적으로 무산자에 가까와서 그런지, 아니면 저자의 언외언 때문인지, 그런 설득에 설득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감정적으로 흘렀는데... 이 책은 대공황을 극복하는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던 시기 - 독일 등은 파시즘의 방식으로, 미국 등은 대규모 토목공사 등으로 - 의 여러 움직임들을 편들지 않고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당시로서는 최신의 경제학자 이론을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그 속에서 저자의 언외언을 읽어내실 수도 있습니다만, 저자는 정말 담담하고 진중하게 모두의 입장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특히, 케인즈나 하이예크 같은 이들의 이름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독서 중에 맛볼 수 있는 기쁜 손님 같습니다.

결국, 세계대공황이 80년 만에 다시 이 땅을 찾은 작금의 현실에서 지금 이 책을 읽어보는 분이 계시다면, 80년의 시간적 격차 따위는 무시무시한 대공황이라는 공통점 앞에서 촌음의 시각임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80년의 격차는 격차일 뿐입니다. 케인즈 이론에 기반한 복지국가이론이라든지,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등의 경제 상황이 책에서 언급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최신 현상들을 머릿속에서 지운다면 정말 지금의 현실을 이야기한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가와 화폐가치 변동에 대하여는, 올해 MB정부에서 어설프게 주장했던 환율주권론이 (지금 이 상황에서) 얼마나 서민들의 삶에 치명적인 원인이 되었는지를, 상업혁명 당시의 화폐발행 상황에 비추어 볼 수 있으실 것입니다.

소위 '낙수 효과'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하루에 열 몇 시간 씩 - 저도 (소위) 대기업을 다니면서 8시 출근에 8시 퇴근을 밥먹듯이 해도 고작 받은 임금은 하루 9시간 분 뿐이었음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자그마치 화이트 칼라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열 몇 시간 노동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일하면서 제대로 된 임금도 받지 못했던 - 저는 그래도 나름 넉넉하게 받았습니다만... - 사람들이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물어보고 싶네요. 책의 p230에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산업혁명 시대에 소위 가난한 사람들의 벗이라고 일컬어지던 영국 국교회의 부주교 페일리라는 이의 말이라고 합니다.)

"오로지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개선만이 바람직한 변화다. (중략) 그리고 산업이 성공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이룩된다. (중략) 공공질서와 평온 속에서는 (중략) 이것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 밖의 상황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중략) 부자들의 지위나 재산을 탐하는 것, 그것들을 폭력이나 공공연한 소동과 혼란을 통해 탈취하고 싶어할 정도로 탐하는 것은 사악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이것은 영국의 노동자 계급이 혁명을 꿈꾸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을 영국의 노동자들도 받을까봐 지레 겁먹은 부주교의 언급이었다고 하죠. 그러나, 저 말 속에서 우리는 (소위) 가진 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요즘 우리나라에서 상위 2%를 옹호하는 의미의 대표격인 '낙수 효과'를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임금 상승은 대개 탄압에 부딪히는 의식적인 대중 행동으로'만 '획득'(p 132) 가능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코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얻은 이윤 -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면 잉여노동시간으로 낳은 잉여 가치 - 은 결코 노동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저자는 C(총자본)=c(불변자본)+v(가변자본) 의 공식으로 알기 쉽게 독자를 '납득'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R&D, 시설 증설 등으로 끊임없이 증가하는 불변자본의 양을 줄이기 위해서 자본가들은 (그나마 줄이기 쉬운) 또 다른 불변자본인 임금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끊임없이 개발하겠죠. 작금의 비정규직 문제가 독서 중에 오버랩되었습니다.


네. 이 책은 진중하고 상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담하게 현상을 분석하지만, 읽고 나면 '납득'되어 버립니다.

서가에 한 권 정도 가지고 있다면 두고두고 읽어볼만한 책이고, 글의 말미 부분은 1930년대의 대공황 당시의 여러 이론들을 잘 요약하고 있으며, 이 공황의 끝은 전쟁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예측도 (명확하게는 아니지만)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 현상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기본 용어나 개념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친절한 책이기도 합니다.

짧게 쓰지 않을까 했는데 글이 두서없고 공격적이며, 길어졌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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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후정치사 - 일본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전개 커리큘럼 현대사 2
이시카와 마쓰미 지음, 박정진 옮김 / 후마니타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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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기택 氏가 쓴 [한국 야당사]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제가 책을 샀던게 고 2땐가 그랬으니... 그 때만해도 이기택 氏가 나름대로 3김을 이을 차세대 주자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때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92년 대선 끝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은퇴 선언 이후에 이기택 氏는 민주당 당수가 되었고 명실상부한 포스트 김대중으로써의 면모를 다져나갈 찰나였지만... DJ의 정계복귀 선언으로 KT는 주저앉고 맙니다. 포스트 DJ였는데... DJ가 돌아왔으니.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꼬마 민주당도 만들고 하면서 와신상담하다가 결국 신한국당(맞을겁니다. 97년 쯤이었을테니...)으로 흘러들어갔고, 거기서도 존재감 없이 지내다가 결국 2000년도에 민국당 창당과 총선 대패로 인해 이제 흘러간 정치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름대로 5선 국회의원에 국회부의장 출신이지만, 노정객의 위치도 차지하지 못한 이기택 氏... 그가 쓴 [한국 야당사]는 정치에 일천한 제게는 꽤나 쏠쏠한 재미를 주는 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헌국회 이후의 한국 야당의 다양한 이야기들과 관련자료들이 꽤나 많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야당'을 대상으로 쓴 글이라서, 이념이나 정책적인 통일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5공 때까지의 이야기들이라서 요즘 읽기는 시의적절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권 교체가 거의 전무했던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 최초의 민주적 정권교체는 1997년에야 가능했죠 - 야당의 역사를 조명해보는 일은 나름대로 가치있는 시도였고, 이기택 氏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딱히 흠잡을 것도 주목할 것도 없지만 풍부한 야당 관련 자료들을 한데 묶어놓은 노고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현듯 이기택 氏의 책 [한국야당사]가 생각난 이유는, 요 며칠동안 이시카와 미스미 氏의 [일본 전후 정치사]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2004년 타계한 저자는 정치부기자로 근 40여년을 지내온 저널리스트였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기를 정치판과 정치인 사이에서 지낸 저자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저널리스트의 시각이 아니라 연대기 작가의 시각으로 풀어냅니다. 네. 책은 정말 '사실적'입니다.

각 사건에 대한 자신의 평가는 극히 배제된 채, 저자는 중요한 사건들을 중목차로 하여 간단하게 사건의 전후관계 및 일련의 추이를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건이 진행되는 가운데와 사건의 전후를 둘러보면서 관련된 당사자가 속한 집단 및 대응되는 집단들의 반응 및 주변 집단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언뜻언뜻 자신의 견해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평가는 앞에서 쓴 것처럼 짧고 간단하게만 언급합니다.

결국 개개인의 의견보다는 정당 및 제정당의 파벌들의 반응들이 주관적 서술의 대부분인 것으로 미루어, 이 책은 일본 전후 정치사라기 보다는 일본 전후 정당사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아이러니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재 정당 구조에 대한 생각과 전망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일단 이 책에서는 1955년 이후 1993년 호소가와 내각이 들어설 때까지 물경 40여년을 집권해 온 자민당 일당체제가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서, 혁신계열 - 사회당 - 의 전략 부재 및 안이한 목표 설정과 대응방식의 문제에 대해서 얼마 안되는 저자의 평가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당의 섣부른 선거 목표 - 과반수 의석 확보 - 및 목표 달성 실패 이후의 무의미한 '선거 패배' 선언에 대해서, 혁신 계열의 무개념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즉, 선거 지형 상 과반 의석을 달성하기 요원한 상황에서도 일단 목표는 과반 의석으로 설정해두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비록 상당한 부분의 성과 - 의석 증가 또는 절대득표수 증가 - 를 거두더라고 무의미하게 '선거 패배'를 선언하고 서기장과 위원장이 동반 퇴진해버리는 상황에 대해서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저자는 그렇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혁신계열이 인물난을 겪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마치 2004년에 창당했던 우리나라의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반년의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주 당의장을 갈아치웠던 열우당의 모습은, 바로 일본 사회당이 걸었던 것과 같은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당과 열린우리당의 유사한 패턴을, 저는 혁신 계열 - 진보 계열 - 의 선명투쟁으로 연결해보고 싶습니다.

(소위) 보수세력이라고 하는 집단이 결여한 것중에 하나가 바로 선명투쟁입니다. 절대로 더 깨끗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보세력에게 선명성은 필수적입니다. 이것은 '분배'를 이야기하는 집단의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가급적 고루고루 나누어야 할 책임을 가진 집단이 투명하지 않다면 분배의 의의는 급감할 것입니다. 그래서 진보세력은 '더 깨끗한, 조금 더 깨끗한, 완전히 깨끗한'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 묻으면 버리는거죠.

저는 선명투쟁이 잘못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더 깨끗해야 합니다. 완전히 깨끗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명성을 정치 영역에서 구현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정치력도 갖추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에도 이르게 됩니다. 예전에 김근태 전 의원의 양심선언이 생각납니다. 정치자금 받았다고 깨끗하게 밝혔지만... 그래서 김 전 의원이 얻은게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정치력이란 자신의 더러움을 감추는 것에 대한게 아니라, 깨끗하게하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부분에서 그렇게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어떤 분들은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저는 깨끗한 분들이 자신의 때묻은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자중하려는 마음 때문에 보여주는 서투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이, 열여덟 찍지마!' 라고 남사스럽게 소리지르고도 뻔뻔하게 사과 한 번 하고 제자리 지키는 이들이나, 과감하게 여기자 한 번 @#$%& 해주고도 뻔뻔하게 의원직 유지해주는 이들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다만 진보세력이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좀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이 좀 많이 곁길로 샜는데, 이 책을 통해서 자민당 1당 체제 - 55년 체제 - 에 대한 모습들이 현재의 우리나라 정당구조와 상당부분 연계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가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자민당-사회당의 (1993년 이전 양당 구도 하에서의) 정치지형은 2004년의 한나라당-열린우리당의 정치지형과 유사하며, 2000년대 이후의 일본의 자민당-민주당 구조는 현재 한나라당 내부의 친이-친박 계열의 대립구도와 유사합니다. 또한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구 소련 이후의 정치권의 보수화 경향과, 이념이 아닌 정책의 차이 때문에 일본 정당이 분화하는 모습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즉, [일본 전후 정치사]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현재 정당 구조와 정치지형을 대입해 볼 만 하다는 점에서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책을 읽기에 갑갑한 부분도 있습니다. 다양한 정치인들이 등장하는데, 비슷비슷해보이는 이름들을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자민당/사회당의 파벌의 이합집산 및 파벌의 변화양상은 독서의 속도를 더디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당사를 통해 우리나라 정당의 추이를 비교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유추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안타까운 부분은, 점차로 진보세력의 영역이 축소된다는 점입니다. '분배'의 키워드를 가진 진보세력이 점차 (소위) 보수세력에게 밀리는 양상은 안타깝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보수세력의 가진 키워드는 무엇입니까. [일본 전후 정치사]를 읽고 난 직후의 생각이라 생각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소위) 보수세력의 키워드는 '반분배'라고 생각합니다. 즉, 분배의 반대항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세력이라는 말이죠. 어떤 주의나 이념이 아니라, 그냥 분배의 가치가 싫은 이들이 모인 집단이 보수세력이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진보-보수세력이 테제-안티테제라면, 왜 진테제 - 合 - 은 없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보수세력의 안티는 테제가 빠진 안티이기 때문입니다. 즉, 분배라고 하는 뚜렷한 가치관에 대한 반대항으로써의 보수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고유한 테제가 없습니다. (소위) 보수세력의 '반분배'는 주의나 이즘이 아니라, 바로 욕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합리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저열한 욕구에 기반하는 것이란 말이죠.

그래서 (소위) 보수세력 안에는 '분배'에 대한 안티테제를 가지고 기능하는 오리지널 보수가 있는 반면에, 보수의 가면을 쓴 이들도 함께 공존하는 것이죠. 그리고 가면 쓴 이들이 더 많기 때문에 지금 여러가지 (해결되지 않는) 갈등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분배'의 키워드보다 '반분배'의 키워드에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자면, 역시 소유욕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도 언젠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댄 분들이, 현재의 분배를 두려워 하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배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공평하게 재분배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100을 가진 이들이 50을 내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6을 가진 이들이 0.1을 더 내고, 10을 가진 이들이 0.5를 더 내자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종부세죠. 그래서 그걸 모아서 0.01도 못가진 이들에게 다만 0.005라도 보태주자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분배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보수가 아닙니다. 다만 '반분배'에 기댄 가짜 보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은 전체적으로 보수-혁신의 대립구도 하에서 일본의 정치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글 자체도 쉽고 간결하게 쓰여진 편이라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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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들어가기 전에, [모모]를 처음 접할 때, 작가 이름이 미카엘 엔데로 번역되었었죠. 이제는 올바른 발음인 미하엘 엔데라고 불리우고 있지만, 저는 아직도 미카엘 엔데가 더 익숙하군요. 각인인가보죠.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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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환상

도대체 [모모]에 설정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버럭!)

늘 강렬한 시작을 꿈꾸는 저의, 두 번째 서평입니다. 갑자기, 불현듯, [모모]에는 설정이 없다는, 아니,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그 <설정>이라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지의 군주]와 같은 치밀하고 세부적인 설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검도 마법도 없는, 단지 현실과 대비된 몽환적인 환상이 있을 뿐입니다.

설정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는 이들에게, 미하엘 - 미카엘이 더 익숙한데 말이죠 - 엔데는 훌륭한 현대 환상 소설의 전범이 됩니다. 단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익숙함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소위 순수 소설의 방식인 듯 하지만, 회색 신사들과 호라 박사의 보이지 않는 대립의 비현실은 우리에게 환상의 또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들어가면서

간단한 일화 하나.

이 책을 모 인터넷서점에서 36.5% 할인가격으로 주문했습니다. 5천 7백원. 그리고, 그 인터넷서점 자체 포인트와 OK 캐시백 포인트 적립금을 사용했습니다. 마이너스 5천 2백원.

책값이 5백원 들었습니다. (파안대소)

그리고 손에 집어든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 용이더군요. (긁적a) 과연 이 글을 초/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까?


주제 : 시간을 아끼는 것이, 진실로 시간을 아끼는 것인가?

진실과 사실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갭이 있다더군요. 진실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 주관성으로 승부하는 것이고, 사실은 의미 없는 모양 그대로의 객관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죠.

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사실> 어마어마한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효율적인 시간의 관리를 위해서 우리는 필요없는 부분의 시간을 지우고 더 발전적이고 능률적인 곳에 시간을 써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 이치에 맞고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가령, 제가 홈페이지와 웹진에 쏟는 하루 약 두 시간 여의 시간을 법학전공책을 보면서 보낸다면, 아마도 저는 회사에서 사랑받고 혹시 고시를 패스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그것이 행복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고려하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과연 나를 얼마나 풍요롭고 안락하게 할 수 있는가...

이 글 [모모]에서는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들이 나옵니다. 회색 신사들은, <계약>을 통해서 사람들의 시간을 양도 - 실은 강탈 - 받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시간의 꽃이 회색신사들의 냉동고 속에 보관되면서 회색 신사들에게 생명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양도는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회색 신사들에게 저축하겠다는 의사의 표시가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을 <속입니다>. 효율적인 시간이 그들을 행복하게 할 것으로. 자투리 시간을 없애고 생산적인 활동에 매진하면, 그들은 부유하게 되고 결국은 행복해질 것이라는...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그 사실을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효율성과 생산성은 끝도 없는 효율과 생산을 부릅니다. 사람들은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 목적지에 도달해야 비로소 웃으면서 뒤돌아볼 수 있는데, 그래야 행복한데, 목적지가 보이지 않기에 사람들은 목적지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서 끊임없이 달려가야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비효율적이고 낭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잠깐 서서 뒤를 돌아다보라, 고. 그 순간, 우리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폐인... 밤새 동기들과 놀고 물마시고 - 개인적으로 술을 못하는지라... 혼자 물을 술마시듯; - 새벽녘에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난 참 폐인처럼 사는구나라는 <사실>의 인식과,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진실>의 느낌이고, 그것이 바로 [모모]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행복이 아닐까요?


형식 - 몽환적 환상

[모모]는 우리가 자주 봐오던 형식적인 설정이 없습니다. 검과 마법도 없습니다. 톨킨의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실은, 우리나라에서 이런 <미하엘 엔데> 류의 글을 찾아보기는 힘겹습니다. 고작해야 김하인 씨의 [즈무와 12세계] 정도의 글 - 그나마도 4권에서 멈춰섰죠...

그것을 <몽환적 환상> 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모모]의 이야기는 기실, 우리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백 년이 지난 뒤에도, [모모]의 이야기는 공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것인 듯하나, 누구에게나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마치 꿈과 같은 것이 아닐지요. 우리의 이야기인 듯하나, 실은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닌. 우리의 것이라고 믿어지나,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this) 세계로부터 탈주하여, 새로운 이(異)세계를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혹여 사람에 따라서는 틀린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 그것이 몽환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기어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나 다름없이 여겨지는 생경한 것, [모모]는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그 지향점이 우리 눈 앞에 선하기에 이 꿈은 우리에게 아름다울 수 있고, 우리의 목적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환상 소설의 환상은, 바로 그렇게 현실을 비추고 또 드러냅니다. 이영도 씨가 자신의 책에서 썼듯이, 꿈이란 밤의 것이면서도 낮을 지향하는 것일테니까요.


인물 - 모모, 그리고 카시오페이아

물론 많은 자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모의 한결같은 귀기울임, 그리고 카시오페이아의 <30분 선견지명>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내다보면, 모모가 가진 성정을 언뜻 보이는 이를 봅니다. 타인이 자신의 입으로 모든 것을 다 토설할 때까지 기다리는, 우리는 그런 자를 지혜로운 자라고 합니다. 인간은 지극히 관계 지향적으로, 그것이 어디에서 가장 잘 드러나냐하면, 바로 <수다>라는 것에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물론 과묵한 사람도 있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수다가 존재할 때, 수다(數多)한 인간들의 수다는 당연한 것이겠지요.

수다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확연하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도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듣기보다는 말하려고 하고, 읽기보다는 쓰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혜롭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타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보이기를 기다릴 줄 아는 것, 그리고 사람은 자신을 <다>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기다리는 장사는 백 번 남는 장사가 됩니다. (후훗;)

모모는, 더욱더 지혜롭게도, 그것을 이용하지 않고 타인을 위한 것으로 돌려줍니다. 그래서 모모의 주변은 아름답지요.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걸음걸이를 본다면, 우리는 하나 더 배울 수 있습니다. 30분만 내다볼 줄 안다 할지라도, 사람은 자신의 걸음을 확고하게 디딜 수 있습니다. 회색 신사들의 행동을 <30분 먼저> 보기에, 거북이는 느릿느릿 걸어도 뚜벅뚜벅 걸어갈 줄 아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10년, 100년 밖을 내다보려고 안달합니까? 그렇게 먼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30분, 금새 내게로 달려오는 그 시간을 내다볼지라도 자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넘어서는 것은 과시요 과신일 뿐이죠.

게다가 뒷걸음질 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그 역설이라니! 우리는 때때로 물러서는 것이 앞을 향하는 수단이 됨을 거북이의 느릿한 그 걸음을 통해서 배우고 익힐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문학은 무엇인가?

감히, 가르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글을 통해서 배울 수 없다면 글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자기 연민과 방관자의 삶일 뿐일겝니다.

작가는 글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는 글을 읽음으로써 스스로를 가르치며, 작가에게 가르침을 되돌릴 수 있을겝니다. 그것이 문학이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모모]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메마르고 성급함에 대해서, 뚜벅뚜벅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이들이, 실은 가장 행복한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1부 모모와 친구들
제1장 어느 커다란 도시와 작은 소녀
제2장 뛰어난 재능과 아주 평범한 싸움
제3장 폭풍 놀이와 진짜 소나기
제4장 말 없는 노인과 말을 잘 하는 청년
제5장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와 한 사람만을 위한 이야기

2부 회색 신사들
제6장 똑 떨어지는 엉터리 계산
제7장 모모는 친구들을 찾아가고, 한 명의 적이 모모를 찾아온다
제8장 많은 꿈과 몇 가지 의혹
제9장 열리지 않은 좋은 모임과 열린 나쁜 모임
제10장 맹렬한 추격과 느긋한 도주
제11장 악당들의 모략
제12장 모모, 시간의 근원지에 가다

3부 시간의 꽃
제13장 그곳에서의 하루, 이곳에서의 한 해
제14장 너무 많은 음식과 너무 짧은 대답
제15장 기기를 다시 찾았다 잃다
제16장 풍요 속의 궁핍
제17장 크나큰 두려움과 더 큰 용기
제18장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면?
제19장 포위된 이들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제20장 뒤를 쫓던 자들을 뒤쫓기
제21장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끝

작가의 짧은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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