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후정치사 - 일본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전개 커리큘럼 현대사 2
이시카와 마쓰미 지음, 박정진 옮김 / 후마니타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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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기택 氏가 쓴 [한국 야당사]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제가 책을 샀던게 고 2땐가 그랬으니... 그 때만해도 이기택 氏가 나름대로 3김을 이을 차세대 주자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때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92년 대선 끝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은퇴 선언 이후에 이기택 氏는 민주당 당수가 되었고 명실상부한 포스트 김대중으로써의 면모를 다져나갈 찰나였지만... DJ의 정계복귀 선언으로 KT는 주저앉고 맙니다. 포스트 DJ였는데... DJ가 돌아왔으니.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꼬마 민주당도 만들고 하면서 와신상담하다가 결국 신한국당(맞을겁니다. 97년 쯤이었을테니...)으로 흘러들어갔고, 거기서도 존재감 없이 지내다가 결국 2000년도에 민국당 창당과 총선 대패로 인해 이제 흘러간 정치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름대로 5선 국회의원에 국회부의장 출신이지만, 노정객의 위치도 차지하지 못한 이기택 氏... 그가 쓴 [한국 야당사]는 정치에 일천한 제게는 꽤나 쏠쏠한 재미를 주는 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헌국회 이후의 한국 야당의 다양한 이야기들과 관련자료들이 꽤나 많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야당'을 대상으로 쓴 글이라서, 이념이나 정책적인 통일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5공 때까지의 이야기들이라서 요즘 읽기는 시의적절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권 교체가 거의 전무했던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 최초의 민주적 정권교체는 1997년에야 가능했죠 - 야당의 역사를 조명해보는 일은 나름대로 가치있는 시도였고, 이기택 氏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딱히 흠잡을 것도 주목할 것도 없지만 풍부한 야당 관련 자료들을 한데 묶어놓은 노고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현듯 이기택 氏의 책 [한국야당사]가 생각난 이유는, 요 며칠동안 이시카와 미스미 氏의 [일본 전후 정치사]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2004년 타계한 저자는 정치부기자로 근 40여년을 지내온 저널리스트였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기를 정치판과 정치인 사이에서 지낸 저자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저널리스트의 시각이 아니라 연대기 작가의 시각으로 풀어냅니다. 네. 책은 정말 '사실적'입니다.

각 사건에 대한 자신의 평가는 극히 배제된 채, 저자는 중요한 사건들을 중목차로 하여 간단하게 사건의 전후관계 및 일련의 추이를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건이 진행되는 가운데와 사건의 전후를 둘러보면서 관련된 당사자가 속한 집단 및 대응되는 집단들의 반응 및 주변 집단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언뜻언뜻 자신의 견해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평가는 앞에서 쓴 것처럼 짧고 간단하게만 언급합니다.

결국 개개인의 의견보다는 정당 및 제정당의 파벌들의 반응들이 주관적 서술의 대부분인 것으로 미루어, 이 책은 일본 전후 정치사라기 보다는 일본 전후 정당사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아이러니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재 정당 구조에 대한 생각과 전망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일단 이 책에서는 1955년 이후 1993년 호소가와 내각이 들어설 때까지 물경 40여년을 집권해 온 자민당 일당체제가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서, 혁신계열 - 사회당 - 의 전략 부재 및 안이한 목표 설정과 대응방식의 문제에 대해서 얼마 안되는 저자의 평가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당의 섣부른 선거 목표 - 과반수 의석 확보 - 및 목표 달성 실패 이후의 무의미한 '선거 패배' 선언에 대해서, 혁신 계열의 무개념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즉, 선거 지형 상 과반 의석을 달성하기 요원한 상황에서도 일단 목표는 과반 의석으로 설정해두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비록 상당한 부분의 성과 - 의석 증가 또는 절대득표수 증가 - 를 거두더라고 무의미하게 '선거 패배'를 선언하고 서기장과 위원장이 동반 퇴진해버리는 상황에 대해서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저자는 그렇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혁신계열이 인물난을 겪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마치 2004년에 창당했던 우리나라의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반년의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주 당의장을 갈아치웠던 열우당의 모습은, 바로 일본 사회당이 걸었던 것과 같은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당과 열린우리당의 유사한 패턴을, 저는 혁신 계열 - 진보 계열 - 의 선명투쟁으로 연결해보고 싶습니다.

(소위) 보수세력이라고 하는 집단이 결여한 것중에 하나가 바로 선명투쟁입니다. 절대로 더 깨끗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보세력에게 선명성은 필수적입니다. 이것은 '분배'를 이야기하는 집단의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가급적 고루고루 나누어야 할 책임을 가진 집단이 투명하지 않다면 분배의 의의는 급감할 것입니다. 그래서 진보세력은 '더 깨끗한, 조금 더 깨끗한, 완전히 깨끗한'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 묻으면 버리는거죠.

저는 선명투쟁이 잘못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더 깨끗해야 합니다. 완전히 깨끗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명성을 정치 영역에서 구현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정치력도 갖추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에도 이르게 됩니다. 예전에 김근태 전 의원의 양심선언이 생각납니다. 정치자금 받았다고 깨끗하게 밝혔지만... 그래서 김 전 의원이 얻은게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정치력이란 자신의 더러움을 감추는 것에 대한게 아니라, 깨끗하게하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부분에서 그렇게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어떤 분들은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저는 깨끗한 분들이 자신의 때묻은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자중하려는 마음 때문에 보여주는 서투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이, 열여덟 찍지마!' 라고 남사스럽게 소리지르고도 뻔뻔하게 사과 한 번 하고 제자리 지키는 이들이나, 과감하게 여기자 한 번 @#$%& 해주고도 뻔뻔하게 의원직 유지해주는 이들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다만 진보세력이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좀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이 좀 많이 곁길로 샜는데, 이 책을 통해서 자민당 1당 체제 - 55년 체제 - 에 대한 모습들이 현재의 우리나라 정당구조와 상당부분 연계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가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자민당-사회당의 (1993년 이전 양당 구도 하에서의) 정치지형은 2004년의 한나라당-열린우리당의 정치지형과 유사하며, 2000년대 이후의 일본의 자민당-민주당 구조는 현재 한나라당 내부의 친이-친박 계열의 대립구도와 유사합니다. 또한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구 소련 이후의 정치권의 보수화 경향과, 이념이 아닌 정책의 차이 때문에 일본 정당이 분화하는 모습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즉, [일본 전후 정치사]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현재 정당 구조와 정치지형을 대입해 볼 만 하다는 점에서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책을 읽기에 갑갑한 부분도 있습니다. 다양한 정치인들이 등장하는데, 비슷비슷해보이는 이름들을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자민당/사회당의 파벌의 이합집산 및 파벌의 변화양상은 독서의 속도를 더디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당사를 통해 우리나라 정당의 추이를 비교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유추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안타까운 부분은, 점차로 진보세력의 영역이 축소된다는 점입니다. '분배'의 키워드를 가진 진보세력이 점차 (소위) 보수세력에게 밀리는 양상은 안타깝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보수세력의 가진 키워드는 무엇입니까. [일본 전후 정치사]를 읽고 난 직후의 생각이라 생각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소위) 보수세력의 키워드는 '반분배'라고 생각합니다. 즉, 분배의 반대항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세력이라는 말이죠. 어떤 주의나 이념이 아니라, 그냥 분배의 가치가 싫은 이들이 모인 집단이 보수세력이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진보-보수세력이 테제-안티테제라면, 왜 진테제 - 合 - 은 없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보수세력의 안티는 테제가 빠진 안티이기 때문입니다. 즉, 분배라고 하는 뚜렷한 가치관에 대한 반대항으로써의 보수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고유한 테제가 없습니다. (소위) 보수세력의 '반분배'는 주의나 이즘이 아니라, 바로 욕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합리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저열한 욕구에 기반하는 것이란 말이죠.

그래서 (소위) 보수세력 안에는 '분배'에 대한 안티테제를 가지고 기능하는 오리지널 보수가 있는 반면에, 보수의 가면을 쓴 이들도 함께 공존하는 것이죠. 그리고 가면 쓴 이들이 더 많기 때문에 지금 여러가지 (해결되지 않는) 갈등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분배'의 키워드보다 '반분배'의 키워드에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자면, 역시 소유욕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도 언젠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댄 분들이, 현재의 분배를 두려워 하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배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공평하게 재분배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100을 가진 이들이 50을 내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6을 가진 이들이 0.1을 더 내고, 10을 가진 이들이 0.5를 더 내자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종부세죠. 그래서 그걸 모아서 0.01도 못가진 이들에게 다만 0.005라도 보태주자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분배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보수가 아닙니다. 다만 '반분배'에 기댄 가짜 보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은 전체적으로 보수-혁신의 대립구도 하에서 일본의 정치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글 자체도 쉽고 간결하게 쓰여진 편이라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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