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를 열면 고양이가 죽는지 죽지 않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지만, 그건 앎이 삶에 체화되는 방식은 아니다. 우리는 알아차린 채 다음 앎을 위해 나아가고자 하지만, 그렇게 숨가쁘게 흘러가는 앎은 결코 삶에 가 닿을 수 없다. 관용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것과, 관용의 삶을 사는 것, 관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삶이 더 중요할 것인데, 우리는 앎의 창고를 게걸스레 채우는데 삶을 소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앎이 필요한 것은, 삶을 위해서가 아닌가? 그래서 삶과 유리된 앎을 지적 ‘허영’이라고 폄훼하는지도 모르겠다. 철학은 그런 것인가보다. 급한 호기심으로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고 마는 것이 아닌, 궁금함에 천천히 사유함으로써 다가서는 것.

우리는 종종 궁금해하는 것과 호기심을 같은 것으로 여긴다. 물론 두 가지 다 무관심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 방식은 서로 다르다. 궁금해하는 것은 호기심과 달리 본인과 매우 밀접하게 엮여 있다. 우리는 냉철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냉철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냉철하게 궁금해할 순 없다. 호기심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늘 눈앞에 나타나는 다른 반짝이는 대상을 쫓아가겠다며 위협한다. 궁금해하는 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 마음은 오래도록 머문다. 호기심이 한 손에 음료를 들고 안락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발을 올려둔 것이 바로 궁금해하는 마음이다. 궁금해하는 마음은 절대로 반짝이는 대상을 쫓지 않는다. 절대로 고양이를 죽이지 않는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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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지능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특정 작업만 모델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업이 일어나는 세계를 모델링해야 한다. 즉, 환경을 감지하고 그에 따라 적절히 행동을 변경하고 조정하면서 동작해야한다.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어야만 지능을 가진 기계라 부를 수 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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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놀은 생존 자체가 최우선의 목적이 되고 있는 이 험악한 북부 땅에서 꿈을 이루려고 모여드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이 아무리 반나절 동안의 전격적인 발굴이라하더라도 이곳에 모여들기 위해 사람들이 소비해야 되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또한 그들이 포기하거나 잠시 방기해 두었어야할 일들 또한 작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수 있는 롭스 같은 자가 예외적인 경우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하루를 버티는 것이 힘든 시기일 것이다. 오레놀은 그런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지 잠시 고민했다.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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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도로당은 사람임을 판단하기 위해, 품성도 지성도 감성도 고려하지 않는다. 오로지 통행료를 지불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사람임을 판단한다. 물신주의라고?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품성과 지성과 감성을 제멋대로 평가하여 저지를 수 있는 판단의 삿됨을 막는 것이다. 사람은, 그저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 그들이 어떤 품성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지성 넘치며 감성으로 가득찼는지는 중요치 않은 것이다. 우리가 그런 것들로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본연을 잃고 그저 도구로써 사람을 바라보게 될 뿐이다.

그래서 유료도로당은 길을 걷는 목적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값에 맞는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면,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그렇기에 신을 잃은 불쌍한 이들도 동편 한 닢에 그들의 노정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사모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은 유료 도로당의 사람을 보는 관점이었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모든 요소가 무시되고 있었다. 여행자의 품성과 지성과 감성 따위는 유료 도로당에게 조금도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로지 여행자가 통행료를 지불하느냐 지불하지 않느냐의 이분법만이 존재했다. 사람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일 수 있는 그 장면에서, 그러나 사모는 동시에 정반대의 의미도 발견했다. 여행자의 외모와 종족과 고향같은, 어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본질적으로 사람다움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들 또한 유료 도로당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보좌관은 말했다. ‘저 두억시니들은 통행료 안 냈다.‘
사모는 그 말을 뒤집어 보았다. ‘통행료를 내면 저들은 여행자다. - P114

"여행자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그럼 우리 유료 도로당은 무엇인지 말해 주겠소?"
"우리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를 위해?"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보좌관은 천천히 케이건에게 고개를 돌렸다.
"케이건 드라카. 저 두억시니들은 목적없이 쏟아져 아무렇게나흐르는 흙탕물이 아니오. 당신들을 쫓는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소.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목적을 찾아 길을 걷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위해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오. 그 목적이 무엇이든 상관없소. 우리는 그들의 목적이나 꿈을 평가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 의지를 통행료로 확인하오.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우리가 준비한 길을 걸을 수 없소. 그들은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거요. 이건 말이오, 케이건, 완전히 저 두억시니들과 우리의 문제요. 저 두억시니들이 당신들을 쫓는다고해서 마치 크게 배려해 준다는 듯이 그냥 통과시키느니 말라느니 말할 권리가 당신네들에겐 없소. 그것은 참견이오. 그것도 오만한."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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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오해하지만 소망은 사라지기는 할지언정 절대로 충족되지는 않는다. 불이 언제나 더 많은 땔감을 소망하지만 땔감을 공급한다고 해서 불이 충족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땔감이 공급되면 불은 더욱 커진다. 소망 또한 마찬가지다.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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