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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어른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ㅣ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평점 :
1. 몇일 전 일이 생각난다. 새벽부터 눈이 내려 도로에 하얗게 눈길이 생겨버린 아침이었다. 출근할 때도 눈은 그치지 않았다. 계속 눈발이
심해지더니, 얼마 있지 않아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버렸다. 그러다가 점심이 지나서는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하늘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조용하게 내리는 눈과 어둡고 누런 하늘이라.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런 날은 처음 보는 듯 했다. 마치 호러 무비의 예고편처럼
어둡고 싸늘하기만 했다. 불쾌하기까지한 하늘을 뒤로한 채 다시 사무실에 앉아 일을 계속했다. 오후쯤 되에서 잠시 하늘을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다시 맑은 하늘로 돌아와 있었다. 계속 내리던 눈이 하늘의 어둠마저 같이 쓸어버렸는지는 몰라도 더 환해졌고 깔끔해진채로 말이다. 혹시나 해서
누런 눈이 쌓였는지 보려고 창밖을 보니 길가는 하얀 모습 그대로였다. 그럼 아까 본 하늘은 뭐였지.. 이래 저래 신비로운 하루이자 하늘이었다.
2. 한가로운 일상과 평범한 하루가 모여 빛나는 누군가의 인생이 된다는 건 갑작스레 변하는 날씨 만큼이나 신비로운 일이다. 조용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던 나날들이 모여 삶을 완성해 나가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때론 긁히고 일그러질 때도 있고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아 비틀거릴
때도 있지만, 자기만의 삶의 문장을 가슴에 품고 나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멋져 보인다. 때로는 바보같이 돌을 던진 사람이 누구인지 찾으려고
애쓰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정신줄을 놓는 경우도 있다. 정말 바보같이 말이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때로는 자조감에 빠질 때도 있겠지만,
그것을 헤쳐 나가는 사람만이 앞에서 말한 반짝임을 손에 쥘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젖어들고 잊어버리지 않고 말이다.
3. 에쿠니 가오리는 말한다. 현실 따위는 정말이지 금방 뒤집힌다고.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위태롭지만 미묘하게 평형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이다. 나는 이 말만큼 우리의 삶을 잘 나타내는 문장도 없는 것 같다. 매일
반복되면서도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인생. 좋았다가도 나빠져 버리는 올해와 내년. 미꾸라지 한마리 때문에 흙탕물이 되었다가도 어느새 맑아진
일상들과 말 한마디로 변하는 나와 주변의 관계들까지. 삼겹살과 돼지국밥을 즐겨먹다가, 순대국과 돼지곱창을 더 좋아하게 된 것도 변화라면
변화일까? 이 사이에 어떤 미묘한 감정의 차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변화를 전후로 무언가 경계가 나누어진다는 건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4. 삶의 찰나를 잡아낸다는 건 짜릿하면서도 애틋한 감정을 들게 하는 일이다. <우는 어른>을 읽으면서 그런 순간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기억하면서 빠져 있지 않는다는게 얼마나 어렵고도 대단한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문득 든
생각인데 글을 쓴다는 건 바로 이런 추억의 상자를 하나씩 만들어두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새로운 하루와 또 다른 사람들과의 추억을 채우기에도
벅찬 머리와 가슴에 쉴틈을 주고 차곡 차곡 정리하는 작업 말이다. 그런게 글쓰기라면 평생 해도, 그냥 일상이라 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생각나는 문구들]
나는 하루하루를 한결같이 즐겁게 살고 싶다.
곰돌이 푸처럼. 푸는 멋지다. 맛있는 꿀과 친구와의 교류, 그는 그
조촐한 즐거움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곰돌이 푸> 이야기는 소소하지만 행복한 것으로
가득하다.
한 여름의 그 도시. 넘치는 햇살, 풍요로운 숲. 공기 입자
하나하나가 놀라우리만큼 생기발랄하다.
큰길에서는 믹서에 간 과일을 그대로 얼린 듯한 아이스캔디를 판다.
수박 캔디에는 갈린 씨까지 들어 있다.
한 겨울 그 도시의 메마른 공기, 갈 길을 서두르는 행복한
걸음걸음.
무수한 빛, 코트, 선물 꾸러미, 크리스마스 캐럴. 따스하고 넉넉한
밤.
사랑이라는 말이 미심쩍지 않은 점이 한겨울 그 도시의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가족도 친구도 있는데, 그런 가운데 고독을 좋아하는 것은
사치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버드나무는 천연덕스럽게 바람을 통과시킨다. 상큼하고 자유로운
느낌이다.
인생에는 특별한 순간이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런
순간을 당시에는 모른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슬픈 것이다. 가령 유명한 호텔의 바와
레스토랑에서, 카페에서, 거실에서, 침실에서 있었던
수많은 특별한 순간이 이 소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일종의
애정 속에 그려져 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빛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준 사람의 열정과
마음을 받아서, 그 반영으로 빛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