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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변태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4년 3월
평점 :
역시 이외수다. 쉽고, 재미있었고, 또 빨리 읽혔다. 마치 이외수의 <환상 소설집>이라고 불러도 될 이야기들이었다. 낚시터, 사법고시, 노인, 파로호, 대지주, 속물 근성, 된장녀와 같은 한국적인 소재들을 사회적인 이슈와 함께 잘 섞어서 재미난 이야기들을 창조(?)해냈다. 또 카프카의 <변신>과 동서양의 다양한 <환상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 같은데, 이를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잘 풀어낸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을 잘 풍자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물론, 여기서 마음에 들었다는 말은 이 현실이 좋다는 게 아니라, 너무 솔직하게 표현해서 좋았다는 말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지만, 비정상의 일상화가 만연한 지금의 작태속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많은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첫번째 단편 <소나무에는 왜 소가 열리지 않을까>에서는 사법고시 패스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부모님 세대의 헌신적인 희생과 함께 그 법이 곧 도(道)임을 깨닫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법조인들과 예비 법조인에게 던지는 저자의 바램이리라.
이어서 소개되는 <청맹과니의 섬>과 <대지주>에서는 속물 근성에 물든 여성들(좋게 표현하면 당당하고)과 남성다움을 잃어버린(좋게 표현하자면 순정파인) 남성들을 소재로 하여, 남녀간의 세태와 스스로 체험한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해우석>은 마치 어른을 위한 <파랑새>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짧았지만 뭔가 인상적인 교훈을 주고 있었다.
<완전변태>는 이 책에서 긴 편에 속하는 단편 소설인데, 대마초 사건과 작가로서의 삶, 그리고 카프카의 <변신>을 잘 버무려서 이야기를 구성해 나간다. <파로호>라는 소설에서는 - 일부 - 그릇된 언론사와 기자들을 비판하면서도, 6.25전쟁의 기억이 스며든 파로호를 대비시키면서 묘한 이념적 중첩을 표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사람들의 무관심을 풍자한 <새순>과 예술계의 추악한 이면을 풍자하는 <유배자> 역시 재미있었던 이야기였다.
나는 그중에서도 <명장>이라는 단편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먼저, 마음에 새겨둘만한 좋은 문장들이 많았다. 서평의 아래에 몇가지를 소개해 두었는데, 다른 분들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두번째는 장인 정신의 이면에 숨은 허영심. 우리가 전문적임을, 그리고 장인정신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권력과 위치를 공공히하기 위한 거짓은 아니었는지를 반문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위한 학문이 아닌 자신의 명예와 탐미주의만을 목표로 하는 학문은 - 정말로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한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랜만에 읽은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ㅇ 예수님의 자리에도 돈이 양반다리를 틀고 앉아 있었고, 부처님의 자리에도 돈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ㅇ 그러나 자신의 시간이나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하는 죄수는 드물다. 모두가 타살이지 자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전가할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ㅇ 노인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들은 개체마다 각기 다른 빛깔들을 내포하고 있는데 비록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조건 속에서 동일한 형태로 태어난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동일한 빛깔만은 소유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ㅇ 실력 없는 도공은 명품만 골라서 깨뜨린다는 옛말이 있지. 동곡이 명장이라는 소문 듣고 왔다가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는 사실만 깨닫고 가네. 어찌 그리도 신묘하단 말인가. 명품은 모조리 장도리로 박살 내버리고 자신을 그대로 빼닮은 아집 한 덩어리만 덩그러니 남겨놓는구만.
ㅇ 요즘 어떤 신문은 사람들한테 "이따위 찌라시가 신문이면 우리 집 화장실에 걸려 있는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더구만.
ㅇ 진실성을 내포한 예술작품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설명함으로써 이해되는 형이하학적 대상이 아니라 감상함으로써 깨달아지는 형이상학적 대상이었다.
ㅇ 종교, 교육, 예술. 이 세가지는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드는 방부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종교는 아프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일보다 교세를 확장하는 일에 더 여념이 없고, 교육은 홍익인간을 만드는 일보다 사회적 소모품을 만드는 일에 더 주력하고 있다. 예술도 다르지 않다. 정신의 뿌리도 영혼의 뿌리도 간 곳이 없는 국적불명의 쓰레기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런데 어떤 부정부패나 대형사고에도 시민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불감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