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문장론 -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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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작가들은 자신만의 문장론과 독서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조지 오웰의 경우 <나는 왜 쓰는가>라는 책에서 글과 정치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밝히고 있고,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이라는 책에서는 지나친 다독의 해로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 파리 리뷰 인터뷰를 편집하여 출간한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는 작가들의 인생관과 작품 의식,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생각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는 움베르트 에코, 하루키, 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작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책에 대한 깊은 사유를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무엇보다도 수십년간 글을 써오면서 터득한 그들만의 독서법과 문장론은 다른 어떤 조언들보다 더 살아있고 깊이있는 것임에는 틀림 없다.

 

이번에 읽은 책은 헤르만 헤세가 쓴 글들을 모은 <헤세의 문장론>이라는 책이다. 글쓰기와 작가로서의 삶, 그리고 독서에 대한 헤세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인데, 내가 알고 있던 헤세의 이미지와는 다른 깊은 강단을 느낄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또한 책을 편역한 역자의 머리말 또한 인상깊었다. 헤세의 글속에 스며들어 있는 깊은 성찰의 의미를 알기쉽게, 또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먼저, 인상깊었던 머리말의 문구들을 몇가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ㅇ 나는 모든 글 중에서 자신의 피로 쓴 글을 가장 많이 사랑한다.

ㅇ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거저 얻지 않고 자신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ㅇ 책은 삶으로 이끌어가고 삶에 도움이 되고 유익할 때에만 하나의 가치를 지닌다. 약간의 힘, 되젊어지는 예감, 새로이 원기가 솟는 느낌이 생기지 않으면 책을 읽는 시간은 모두 낭비되는 셈이다.

ㅇ 아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보다는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ㅇ 예술작품에서 진리, 성실성, 우아함, 깔끔함이 중요하다. 자잘한 것을 우아하고 극도로 깔끔하며 세심하게 묘사할 줄 아는 것, 엄격한 훈련과 성실성으로 우아한 숙련된 기예와 유희정신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헤세는 독자들에게 책에 관한 많은 조언을 들려준다. 먼저, 기본적인 책 정리. 먼지가 없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습기가 차지 않도록 잘 정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책장을 정리할 때는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주제별로 정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 또, 책을 살 땐 가급적 실로 꿰메어진 형태의 도서를 선택하라는 조언도 재미있었다.

 

이어서 번역과 책을 선물하는 것에 대한 의미, 그리고 피서지에서의 읽을거리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우리들이 흔히 책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고민들을 하나 둘씩 다 들어주고, 또 해결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 부분이었다.

 

또 잠자리에 어울릴만한 책에 대한 언급이나, 가장 좋아하는 책을 고르라고 했을 때의 막막함에 대한 부분도 재미있었는데, 이는 다른데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이야기인데다가 나역시 공감하는 부분이였기 때문이다. 책이란 인간의 삶과 뗄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이처럼 삶에 얽힌 책에 관한 조언들은 너무나도 유익했다.

 

마지막으로 낭만주의와 철학에 대한 논의, 표현주의와 같은 문학적 사조, 한 시대를 - 진정으로 - 살아갔던 지식인으로서의 시선, 그리고 인생과 타인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은 읽고, 느낄수 있었지만 진정으로 공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허나 이 책을 통해 헤세에 대해, 그리고 책읽기라는 평범하면서도 깊이를 가진 일상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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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사는 집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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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집과 갖고 싶을 만큼 예쁜 디자인의 제품들을 소개하는 책은 언제나 봐도 즐겁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마치 좋은 일만 생길 것 같고 또 행복해질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물론 이렇게 멋진 집과 제품들의 모습은 전문적인 포토그래퍼에 의한 촬영과 포토샵 기술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것들이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가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가질 수 없는, 일상에서 자유자재로 소비하기 힘든 것들이기기 그럴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일상과 가족들의 삶과 함께 보내는 공간이기에 더 소중하고 특별하게 여겨짐은 당연하다.

 

*

 

이번에 읽은 책은 일본의 건축가이자 작가인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지은 <건축가가 사는 집>이라는 책이다. 일본의 건축 관련 잡지에 약 4년간 연재된 글들을 모아서 출간한 것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소개된 집들은 모두 건축가 자신이 건축주가 되어 지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본인이 살 집을 본인이 직접 지었으니 분명 잘 만들었을 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건축주"의 입김을 받지 않고, 건축가의 의지가 반영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 다른 집들과는 다른 건축가만의 철학과 인생관이 담긴 특별한 집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아마도 저자는 호기심을 느꼈을 듯 싶다. 건축가들은 과연 어떤 공간에서 살기를  원했을까? 그리고 그들이 배치한 도면과 동선은 어떠할까? 마지막으로 그들은 지금 그 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건축가가 사는 집>은 이 같은 독자들의 궁금중을 도면과 사진, 그리고 멋진 글과 함께 친절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책에 소개된 모든 집들이 아름다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요소들을 꼽아보라면 모두 건물들이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전망을 갖추고 있다는 점. 넓은 집은 넓은 집대로, 좁은 집은 좁은 집대로의 멋진 경관을 감춰두고 있었다. 가령, 정원이 딸린 넓은 집은 거실의 창을 크게 만들거나, 시선의 위치에 맞게 정원수와 창을 배치함으로써, 집안에서도 멋진 경치를 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또, 그 지역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거실과 창, 보이드를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었고. 넓은 집의 중앙에 실내 정원이나 중정을 배치한 집도 멋져 보였다. 반면에 좁은 집들은 겉에서 봤을 때와는 달리 안에 있을때 쾌적함을 느낄수 있도록 잘 설계되어 있었다. 복도와 계단의 폭이나 배치를 다르게 하여, 탁 트인 느낌을 주게 했고, 보이드를 설치하여 좁은 평수라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설계되 집들이 많았다. 특히, 부지값이 비싼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효율적인 공간 활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작업실과 서재였다. 직업적 특징을 떠올려 본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집이라는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느껴지게 도와주고 있었다. 매일 회사에 갔다와서 잠만 자고 다시 출근하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노동과 여유, 휴식과 가족이 함께 공존하는 그런 공간 말이다. 작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그 외에도 손님을 위한 공간과 가족과 나를 위한 공간의 분리. 작은 공간들을 수납공간화하여 불필요한 낭비를 최소화한 인테리어, 그리고 건축주 특유의 유머(?)까지. 가정 방문이나 견학이 아닌, <순례>라는 표현이 정말 어울리는 책이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책의 재질이 참 좋다. 만약,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일단 사고 싶어진다는 점에서(물론 난 선물로 받은 것이지만...) 합격점을 주고 싶다. 그리고, 친절한 도면들도 참 좋았다. 나중에 집을 지을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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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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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난 친구들에게 <응답하라 1994>는 전혀 낯설지 않다. 농구대잔치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와 룰라. 중간중간에 흘러나오는 익숙한 OST와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당시의 광고들과 드라마들까지. 청남방과 현진영의 티셔츠도 익숙하고, 누르스름한 사진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어렸을 적 추억들이 그렇다. 무엇보다도 50~60년대의 경제성장기와 70~80년대의 정치적 성장기를 거치면서 어느정도 안정된 90년대에 들어와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행복한(?) 세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어디 그뿐인가?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변화했던 시대였고, 대중적인 컴퓨터의 보급이 이루어진 때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기억에 남을 만큼 좋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큰 변화라는 의미이다.) 것은,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재개발, 신도시 건설과 같은 <도시의 변화>이다.

 

학년이 지나고 한해가 바뀌면, 항상 근처의 옛날 집들이 부서지고 새로운 주택이 들어서곤 했다. 유채꽃이 피어있거나, 작은 논과 텃밭이 있던 곳은 순식간에 메워지고 또다른 상가가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뒤엔 15층 짜리 아파트가, 그리고 몇년 뒤에는 20층대의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상 주차장밖에 없었던 아파트 단지 옆에는 지하 주차장을 갖춘 또다른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고, 신도시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세워지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제대로된 도로를 본 기억이 없다. 항상 지하철 공사중이었기 때문이다. 도로 바닥은 항상 철판으로 뒤덮여 있었고, 자동차와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이리저리 피해다니는 형국이었다. M마트가 생겼다고 해서 동네 사람들과 같이 장을 보러 간게 엊그제 같은데, 몇년뒤에는 부도심마다 대형 마트와 큰 규모의 쇼핑몰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남포동과 서면에 있는 영화관들이 하나씩 문을 닫더니, 이름도 괴팍한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30대가 된 요즘에는 초고층 빌딩과 화려한 오피스텔, 그리고 온갖 종류의 프랜차이즈 가게들로 거리가 뒤덮여 있다. 80년대 생들에게는 부동산의 변화는 시각적으로도,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계속해서 변화의 압박을 주고 있는 셈이다.

 

*

 

정세랑 씨가 지은 <이만큼 가까이>라는 소설은 파주라는 도시의 변화와 함께 그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여러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저자의 어릴적 경험들을 모티브로 해서 지었다고 하는데,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요즘의 감각적인 느낌만을 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과거의 향수에만 사로잡힌 누르스름한 빛깔만을 담은 것도 아니다. 군부대와 서울 근교 외곽 마을에서부터, 출판문화단지와 신도시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변화를 중심에 두고 서술하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현재의 감각과 과거의 향수가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는 점. 재미있다라는 단조로운 표현이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이러니 하지만.

 

주인공의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어렸을 적부터 조숙했던 민웅이. 통통하고 공부만 잘했지만, 커가면서 스키니해지고 멋져지면서 어느새 훈남이 된 찬겸이. 남자아이들 중에서 조숙한 친구가 민웅이라면, 여자 아이들 중에서 조숙한 편이었던 송이와 해외에서 살다온 주완과 주연. 그리고 수미와 동네 사람들. 서로 성격도 다르고, 집안의 분위기와 자라왔던 환경도 달랐고, 서로 다투었다가 다시 화해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반복되었지만, 파주라는 공간에서 지내온 공통의 시간들이 그들을 서로 묶고, 연결시켜 주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함께 시간을 지낸다는 것. 평범한 단어이지만, 그 속에는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일들을 감추고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다.

 

시끌벅적함속에서 느껴지는 생기발랄함과 종종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서, 최근에 읽었던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이 떠올랐다. <이만큼 가까이>에서는 고독감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만큼의 사건들로 넘쳐난다. 계속해서 영상을 찍어야만 한다. 반면, 후자는 몇 안되는 등장인물과 특별한 사건마저도 없다. 같은 모습의 사진만이 찍힐 뿐이다. 자세히 쳐다보지 않으면 뭐가 바뀌었는지 모를 정도로.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상실감과 세상에 관한 부조리를 느끼는 주인공과 송이, 주연의 모습에서는 내적인 고독감과 외로움이 늘씬 풍긴다. 제주로 떠나는 발걸음에는 아픈 기억을 잊으려는 도피의 마음이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그들에게는 아키코가 가진 내적의 편안함에 대해 한번 정도는 이야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또 그런데 말이다. 이런 복잡함들이, 그리고 이런 신경쓰임이 지금 우리가 너희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하나의 증명이, 표식이 되지 않을까? 심사평에서는 이 소설을 두고 지난 시절에 대한 애도의 서사라고 말하고 있다. 부끄러운 기억들도 잊어버릴 추억도 아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더없이 고마운 선물이자,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성찰의 시간이 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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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무레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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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 Step ~ Step

 

2월 1일부로 업무 분장이 바뀌었다. 물론 - 외국계 기업이 아닌 이상 - 니일 내일을 구분하는게 큰 의미가 없는 한국 기업들의 정서로 봤을 때 큰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해오지 않았던 업무를 맞게 되었고 또 새로오신 차장님과 함께 업무를 해나가야 하기에 나에게는 새로운 변화임에는 분명하다. 다행인건 새로오신 분과는 대화 코드가 잘 맞아 일이 잘 풀린다는 점. 쉽게 가도 되는 일을 억지로 돌아가게 하고 또 웃으면서 해도 될 일인데 짜증내면서 가는 분들도 종종 봐왔기에, 올 한해는 왠지 기분 좋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있다. 좋은 관계와 안정적인 업무 수행, 그리고 개선을 해나가는 건 결국 나의 몫이기에 올 한해도 회사, 사회, 가족,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더 충실히 하나 하나 걸어가야겠다.

 

공시, 감사, 결산, 회계마감 준비, 대내외 요청 자료 작성 등으로 바쁜 한주를 보내고 맞이하는 토요일의 아침은 행복하다. 조금 더 자도 되고, 하루 정도는 여유롭게 보내도 된다는 나만의 룰에도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빵과 커피와 함께, 그리고 좀 더 여유가 된다면 공연을 보고 전시를 관람하고, 교외로 나들이를 떠나는 것이 어울린다. 시간이 맞는 사람들과 만나 시원하게 맥주 한잔 하는 것도 너무 좋고. 가끔씩 하는 생각이지만 기업의 생산성이 보장되기 위해서라도 주말은 보장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곤 한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주말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곧 다가올 기사 실기 시험이 있기 때문. 전공자가 아니라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공부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주말을 이용해서 그동안 못들었던 동영상 강의를 들어야 하고. 샤워를 하고 간단히 빨래를 한후(세탁기가 해주고 나는 건조대에 올리기만 하면 되지만..), 근처의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리고 알고리즘 파트 복습 시작. 3월달에 강의는 다 들어두었고, 또 필기도 다 해두어서인지 진도가 빠르다. 애매한 부분은 이따가 저녁에 다시 보기로 하고, 계속해서 진도를 나간다. 11시반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많아진다.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더이상의 집중은 어려운 듯 해서 조용히 프린트 물을 가방에 넣고, 읽으려고 가져온 책을 꺼낸다.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지은 <건축가가 사는 집>. 책을 펴낸 곳이 잡지 회사라서 그런지 책의 디자인도 훌륭하다. 이 책을 구매한 몇몇은 아마도 책의 촉감과 심플하면서도 따스해 보이는 디자인 때문에 골랐으리라. 책속의 글이 읽히고, 대중들과 교감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팔려야 하므로 일단은 성공한 셈이다.

 

Run ~ Run ~ Run

 

동적인 모습에 비해 정적인 모습은 차분하기만 하다. 외로워보이다가도 어느 때는 쓸쓸해 보인다. 때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하고 궁금해지기도 하고. 속좁은 사람에게는 의구심을, 독선과 아집으로만 가득찬 사람에게는 답답함을, 자기만의 룰이 아니라 마이웨이만을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끌어당김을 일으키게 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린 알아야 한다. 정적인 사람 덕분에 동적인 나의 모습이 보일 수도 있고, 정적인 시간 속에서 얻는 삶의 깊이와 사색, 그리고 반성 덕분에 동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이 둘이 잘 어우러진 사람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안정감을 얻는다는 사실도 말이다.

 

소설속의 아키코는 정적인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가게를 가지고 자신만의 식당을 운영하는 그녀의 모습은 차분하면서도 감각적이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마치 정지된 영상을 보는 것만 같다. 같이 일하는 시마씨 역시 그다지 세상과 어울리려 하진 않는다. 그녀들은 지금 일하는 이 식당에 너무 마음에 들고 또 편안하다. 도피처라기보다는 편안한 거실과 같은 느낌을 준다. 메뉴 역시 심플하다. 간단해서 쿨한게 아니라, 단순해서 사람들이 다가가기 편하게 한다. 이런 점들 때문에 아키코의 식당은 잡지와 파워블로그에 소개되는 맛집으로 부상한다.

 

그러나 이런 편안함을 깨는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가 가게를 운영하던 시절에 단골 손님이었던 아저씨들과 식당과 코드가 맞지 않는 까다로운 손님들, 그리고 무례한 사람들. 조금 멀리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아키코의 식당이라는 공간으로 한정짓는다면 이들은 유쾌한 방문객들은 아니다. 이들에게 불쾌함을 표시하는 시마씨와는 달리 아키코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인내심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냥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런 아키코에게도 변화의 시간은 다가온다. 동반자인 고양이의 죽음과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고, 그들을 만나면서부터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고양이를 만나러 가고. 잊혀진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책을 덮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상상을 품게 한다. 그녀는 이제 달려가겠지. 그녀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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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같은 선물이야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 48
황선미 지음, 이고은 그림 / 시공주니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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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책은 황선미 작가의 <마법 같은 선물이야>라는 책이다. 처음에 이 책을 받았을 때는 그냥 어린이용 동화책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이신 황선미 교수님이 11년도말에 개봉한 <마당을 나온 암탉>의 원작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왠지 모르게 더 기대가 되었다. 급 관심도 생겼고 ^^ 특히 <마당을 나온 암탉>은 국산 애니메이션으로는 많은 인기를 얻었고, 이 작품을 바탕으로 12년도에는 국제 안데르센 상 후보에, 그리고 14년도에는 런던 도서전의 <오늘의 작가>로도 선정되었다고 하니,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은 같이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캐나다에 살고 있는 고모와 사촌들을 만나러 가는 재하와 할머니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첫 여행, 그리고 낯선 곳에서의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은 아직 어린 재하에겐 쉽진 않은 일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처음보는 사촌들을 만났을 때의 어색함을 떠올리면 될 듯 한데, 재하에겐 말도 통하지 않은 외국에서 엄마 없이 할머니와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감당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을 듯 했다. 이렇 듯, 캐나다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오로라를 보고, 또 처음 만나는 사촌인 에디의 크리스마스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한 여행이었지만 첫 만남은 썩 좋진 않았다. 또래보다 키가 큰 에디에게 주눅이 든 재하는 괜히 에디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고, 계속해서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 하게 된다. 결국 재하는 에디에게 줄 선물 상자를 뜯어버리고, 꺼낸 오르골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한다.

 

이누이트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도 에디와 재하의 갈등은 계속된다. "은여우를 왜 너만 본거니?" ,  "내가 썰매 가장 앞쪽에 탈거야!" 와 같은 말들을 하면서 말이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습기도 하고 또 귀엽기도 했다. 또 나의 어릴적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왜 내 개구리가 작은 거지." , "난 왜 빵이 하나야." 따위와 같은 말들처럼. 가족들은 캐나다의 안쪽에 위치한 누나부트 준주 지역까지 들어갔지만, 결국 오로라를 보지 못한다. 하지만 재하와 에디는 <오르골>을 통해 서로 화해하고 그들만의 <오로라>를 구경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저자의 마지막 말을 보면 이누이트 사람들은 오로라를 조상님들이 하늘에서 보내는 빛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어렸을 적에 평생 잊혀지지 않는 특별한 경험의 순간은 신의 선물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터. 이들에게 <오로라>는 쉽게 보기 힘든 성스러운 기억임에 분명할 것 같았다. 처음 방문한 캐나다. 그리고 처음 만나본 고모와 사촌들. 마지막으로 생애에 다시는 보지 못할 <오로라>까지. 아마도 재하는 커서, 어렸을 적의 기억을 평생 간직하게 되겠지... 정말 훈훈하고도 가슴 따뜻해지는 동화책다웠다.

 

끝으로 재하와 에디가 티격태격하다가도 서로 화해하는 장면을 보면서, 아이만도 못한 - 일부 - 어른들의 모습들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속좁고 사소한 것에 토라지는 사람들. 화해의 손짓을 내밀고 맞춰주려는 행동을 보여줘도, 끝까지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들. 사람들과의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건, 가족들과 행복한 관계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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