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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우리 사람
그레이엄 그린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8시쯤 잠에서 깬 거 같다. 비슷한 시간에 아이폰의 알람도 같이 울린 듯하다. 어제는 수업이 있었으니 토요일이고 오늘은 일요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조금 더 이불 속에서 뒤척인다. 안방 베란다의 블라인드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고 - 느낌 탓이겠지만 -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며칠 전 우리 집 거실 베란다 근처에서 날갯짓을 하다가 떠난 새 한 마리의 잔상이 남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인공 눈물을 눈에 적시고, 캡슐 커피를 하나 꺼내 내려 마셨다. 빵과 함께 졸린 눈으로 TV를 보면서 말이다. 오늘은 미세먼지도 그렇게 심하지 않고 햇살도 좋은 것 같다. 드럼 세탁기를 돌리고 나서 방을 한번 청소했다. 이부자리도 정리하고 어제 서울에서 산 바지들도 정리해서 한쪽에 놓아두었다. 페브리즈도 한번 뿌려주고 나서는 커피를 한잔 더 마시기로 한다. 빨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건조기를 돌린 후 운동이나 하러 나가봐야겠다.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열린 책들 세계문학 시리즈 294번 '아바나의 우리 사람'이라는 책을 읽었다. 쿠바 혁명 직전의 아바나를 배경으로 영국의 비밀 정보원이 돼버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조금은 유쾌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문학적 진지함과 함께 유머러스함도 모두 갖춘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라틴 아메리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꽤나 흥미롭게 그리고 관심 있게 다가왔다.
주인공인 워몰드는 그냥 평범한 영국 출신의 진공청소기 판매상이다. 아내와는 이혼한 상태이며, 자기주장이 뚜렷한(?) 이쁜 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약간은 어수룩해 보이기까지 한 남자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영국의 비밀 정보원이 되라는 제안이 들어오고, 돈이 필요했던 그는 거짓말까지 보태면서 일을 크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벌어지는 주변 인물들과의 유쾌하기까지 한 에피소드들이 이 책을 이끌어가는 주요 포인트. 또 작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캡틴 세구라의 역할도 꽤나 흥미로운데 이 부분은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아껴두는 걸로 한다.
영국의 비밀 정보부가 이렇게 한심(?) 할 정도로 속아넘어간다는 사실과 함께 계속해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조금 두껍기는 하지만 부담 없이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면서 리뷰를 마칠까 한다.
"제정신인 사람들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어요. 가족의 오랜 친구들이죠. 그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고 하지요. 제 광기가 화를 내요. 그 사람들은 오렌지에 씨가 있다고, 사과에 두꺼운 껍질이 있다고 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