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다가, 뭉클 - 매일이 특별해지는 순간의 기록
이기주 지음 / 터닝페이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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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XXV / 터닝페이지 1번째 리뷰] 시, 에세이를 그리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그보다는 긴 '산문'을 즐겨 읽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소설도 단편보다는 긴 호흡이 필요한 '장편소설'을 즐긴다. 특별한 까닭은 없다. 그저 '한 번 꽂히면, 쭉 가는 길'을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일 따름이다. 그래서 '에세이'도 오랫만에 읽는다. 그렇지만 이 책도 '그림'이 첨가되지 않았다면 진득하니 읽지 못했을 거다. 수많은 에세이 모음집이 그렇듯이 대개 '비슷비슷한 감상이 나열되는 공식(?)'이 반복되는 일종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공식(!)'이 발견되는 순간 에세이 책을 덮어버리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한 폭의 '그림엽서'가 연상되는 거리의 풍경이 담긴 수채화가 내 시선을 사로 잡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림 한장 한장에 대한 '감상'을 수필로 남겨 놓은 이 책에 그만..흠뻑 젖어들고 말았다. 어느덧 계절은 '가을'이 되었으니 말이다.

작가 이기주는 '그림 그리는 너튜버'로도 활동을 하는 모양이다. 이 책 <그리다가, 뭉클>에도 그림 그리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조목조목 나열되어 있고, 작가도 은근슬쩍 자신의 너튜브 활동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비아냥거리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난, '그림, 잘 그리는 재주'를 아주 존경하기 때문이다. 나도 글을 쓰다보면 간혹 '이건,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 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백에다가 깨적깨적 서툰 솜씨로 그림을 그려넣어본 적도 있지만, 언제나 '실패'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발꼬락'으로 그려도 이보다는 잘 그리겠다는 수준보다 한참 떨어지리는지라 두 번 다시 그런 '무모한 시도'는 하질 않았다. 그래도 여러 번 시도를 하면 잘 할 수도 있다는 조언을 십분 받아들여 노력도 해보려 했으나, 번번이 발꼬락보다 못생긴 그림을 그려놓고 후회하길 반복하니 더는 그릴 용기조차 생기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글보다 그림에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듬뿍 담아서 말이다.

그림 실력이 신통치 못하니, 한때는 '사진'을 찍는 연습을 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엔 너무 '솔직하게' 찍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맘에 쏙 드는 '피사체'를 매번 찾아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때와 장소에 따라서 '노출'이나 '각도와 구도'를 일일이 사진기에 '입력'해야만 좋은 사진이 찍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슬슬 귀차니즘이 발동하더니 결국 '자동카메라'에 의지하게 되었고,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또다시 분류하고 거르는 작업도 해야 해서, 결국엔 그마저도 때려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사진'에는 '상상'을 담을 수 있는 여지가 남겨져 있지 않아 매번 불편을 겪다보니 멀리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글'에 몰두하고 있다. 결국에는 '읽고, 쓰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었던 셈이다. 그런 까닭에 머릿속에 떠오른 영감을 붓이나 펜으로 쓱쓱 그려내는 실력을 갖춘 사람을 정말 부러워하게 되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던 모양이다. 책을 접하자마자 곧바로 끝까지 읽어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작가의 연배가 '나'와 비슷하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림감상에 해당하는 글의 내용이 하나같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고 읽은 적이 있는듯한 낯익음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는 재주'를 바탕으로 인생을 철학적으로 논하는 담론들이 그 옛날 TV프로그램 중에 하나였던 <사랑방중계>를 연상시켜서 참 좋았다. 당시의 난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밤11시쯤에 시작하던 그 프로그램을 매번 시청할 수는 없었지만, 어린 나의 눈에는 어른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꽤나 철학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작 철학이 뭔지도 모르던 나이에 말이다.

이 책에서 그런 느낌이 나는 대목은 '외워 그리는 그림'과 '빛은 어둠으로 그린다'였다. 인생을 살다보니 '대충' 살아지기도 했고, 터무니 없는 실수를 해서 '망신살'이 뻗치던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채찍질하며 열심히 살아야지, 물러터진 정신력으로 어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고 다그치는 자신을 발견한 적이 많았다. 나이가 어릴 적에는 더욱더 많이 그랬고 말이다. 물론 자발적인 다그침보다는 주위의 책망 때문에 그랬던 적이 많았다. 참으로 쪽팔렸다. 그런데 마흔살이 넘으니 그럴 필요가 있겠느냔 생각이 부쩍 들었다. 앞으로 '살 날'보다 이제까지 '살아온 나날들'이 더 많아지는 나이가 되니, 사알짝 '내려놓기'를 해도 괜찮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인생 뭐 있어?'라는 철학적 질문에 나름의 답이라고나 할까. 살다보면 '대충' 살아도 괜찮을 때가 더 많고, 실수를 해야 '인간미'가 넘치는 것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번 성공하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삶인지 느낄 때쯤에야 겨우 깨우친 '나만의 철학'이었던 것이다.

이런 철학적 깨달음과 비슷한 것이 바로 '외워 그리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일수록 '순간포착'을 잘 해서 '찰나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천재적인 재주를 지닌 것이 아니라 늘상 그리던 것을 외워서 이 화폭, 저 화폭에 '대충' 찌끄려놓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만들면 훌륭한 작품이 완성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또한, '빛은 어둠으로 그린다'는 것도 하얀 도화지에 새하얀 빛을 그릴 때는 엉뚱하게도 '그림자'나 '음영'을 그려넣는 것으로 빛을 표현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인생을 살면서 '화려한 성공'을 실현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평범한 실수'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림 뿐만 아니라 '위인전'에서도 자주 나오는 단골 수법 아닌가 말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 항생제'가 사실은 실수로 '푸른곰팡이'를 배양했기 때문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인생을 살다보면 '어둠'만 가득한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그 우울함을 '음영'으로 삼아 주위를 더 밝게 표현할 수만 있다면 쥐구멍에 볕들듯이 희망찬 '밝음'을 그려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살면서 나름의 철학을 신념으로 삼는다. 하지만 대개는 금방 잊고 다시 원상복구되는 일상을 반복하며 산다. 누구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듯이 '화려한 성공'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어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한몸에 받겠지만, 그로 인해서 내가 슬퍼할 까닭은 절대 없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부러운 건, 그냥 '부러울 뿐'이다. 딴에는 조금쯤 '부러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내가 부족한 '욕심'을 심어주고, 그 욕심이 '내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니 마다할 까닭도 없다. 다만 '시샘'할 필요는 없다. 남이 가진 걸 못 가졌다고 배 아파하면, 결국 '내 배'만 아플 뿐이다. 그러니 결국은 '자기만족'을 하며 살아가면 그게 최고의 행복인 셈이다. 살짝 부족한 듯 살아야 행복하다고 믿는다. 그게 내 정신건강에도 좋으니까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살짝 아니라 많이 부족한 '내 그림실력' 때문에 이기주 작가가 부러운 것은 '인정'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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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수의사, 희망을 처방합니다
린리신 지음, 차혜정 옮김, 홍성현 감수 / 모모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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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XXIV / 모모 1번째 리뷰] <낭만 닥터 김사부>, <슬기로운 의사 생활> 같은 '의학드라마'를 즐겨 봤다. 물론 그 이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들도 곧잘 보았지만 그다지 감흥이 없었는데 '김사부'와 '슬기로운' 시리즈는 판이하게 달라서 봤던 편이다. 이전의 의학드라마는 그저 '의술'을 펼치는, 어찌 보면 '잘난척하는 엘리트 집단의 광기(?)'라고도 할 수 있는 무거운 주제를 풀어냈다면, '김사부'와 '슬기로운' 의학드라마는 '인술'을 보여주는 의학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학이라는 '어려움'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보다는 의사도 결국 '사람'이라는 '따뜻함'이 전달되는 메시지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하얀거탑>류의 의학드라마보다는 <낭만 닥터>류의 김사부에게 반해버린 열렬한 팬이다. 그런 탓에 이 책의 제목이 <낭만 수의사>라는 것에 먼저 호감이 갔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대만 작가가 풀어내는 '의학드라마'는 꽤나 낯설게 다가왔다. 기대했던 '낭만 닥터 김사부' 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슬기로운 의사들'처럼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는 동기 의사들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보다는 '중국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믹 멜로'가 연상이 되어 내가 기대했던 낯익고 낭만적인 의학드라마는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구나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아닌 '수의사'라는 것에 좀 더 낯선 느낌만 들 뿐이었다. 딱히 동물을 싫어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아픈 환자'로 등장하면 가슴 한 켠부터 아파오는 탓에 책속에 등장하는 '환자의 케이스' 하나하나가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아픈 동물들의 '죽음'을 다루는 내용에선 읽기를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 책의 원제가 <獸醫五年生(수의5년생)>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말로 곧바로 뒤치면 '수의대 졸업생'쯤일 것이다. 한마디로 '의대 졸업생'의 고충과 애환이 담겨 있는 소설이란 생각에 책속의 줄거리가 머릿속에 딱 정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이나 '졸업생'은 힘들고 고달픈 일로 눈코 뜰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낼 것이다. 더구나 '의대 졸업생'이라면 졸업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졸업 후 '전공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로 정신이 없을 시기인 탓이다. 사람을 치료하는 '의대생'도 이럴진대,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대생'은 어떨까? 아픈 사람은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말이라도 하지, 동물은 '수의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도맡아야 한다. 그렇다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목숨이 둘이거나 덜 소중한 것도 아니기에 잘못된 진단(오진)이나 명백한 실수를 저지르면 사람보다 약하고 수명이 짧은 동물들은 바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죽음을 맞이하는 수의사들은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라더 충격이 덜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모든 생명이 똑같이 소중한 것처럼 '동물의 죽음'도 사람처럼 고귀하게 다루어야 마땅하다. 더구나 '반려동물의 죽음'인 경우엔 보호자(반려자)의 슬픔까지도 수의사가 감당해야 하며,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한 '의료사고 케이스'인 경우엔 법적 소송이나 고발까지 당할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수의사'도 의사 못지 않은 중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인 셈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아픈 동물'에 대해서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경우에는 '건강보험' 같은 치료비를 경감시킬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서 보호자들의 부담이 덜한데 반해서, 동물의 경우에는 단순한 치료나 검사를 했을 뿐인데도 '엄청난 액수의 의료비 청구'로 인해 진료는커녕 아픈 동물을 그대로 방치하고 죽게 만드는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수의대 졸업생'들이 겪는 실습과정에서 아픈 동물을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방치하거나 주인(보호자)에게조차 버림을 받고 병원에 눌러앉은 동물들이 많고, 심지어 치료중이던 동물이 죽음에 이르렀는데도 그저 수수방관만 하는 매정한 사람들을 보면서 겪게되는 '수의대생들의 심적 고충'이 아주 잘 드러나 있다.

그렇다고 그런 경우를 당한 동물들을 수의대생들이 '애정'으로 돌봐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의대 졸업생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학업과 실습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그렇게 버려지고 방치된 동물까지 떠맡아 돌봐줄 시간적, 체력적, 경제적 여력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동물을 유달리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한 '직업'이긴 하지만, 아픈 동물 뒤치닥거리하면서 학업을 등한시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버려지는 동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수의대생'이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학생이지 않은가. 현실이 비록 '이상'과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자신들이 꿈꾸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희망을 키워나가는 미래의 주역들 말이다. 이런 애환이 잘 갖춰있기에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이 <낭만 수의사, 희망을 처방합니다>인지도 모르겠다.

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그야말로 '애정'으로 키우고 평생을 함께하는 '반려자'가 되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삶의 기쁨과 행복까지 모두 함께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애정을 쏟던 동물이 아플 경우에는 어찌 하겠는가? 병원비는 말도 할 수 없이 비싸고, 아파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은 찢어지고, 그러다 죽음이라도 마주하게 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겪게 될 것이다. 여기엔 경제적인 문제, 윤리적인 문제, 그리고 도의적인 문제까지 여러 가지 문제가 총체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이 가운데 어느 한가지도 쉬운 문제는 없다. 길에서 '다친 동물'을 병원에 데려가도 마찬가지다. 주인도 아닌데, 그저 불쌍해서 병원에 데려줬을 뿐인데. 엄청난 치료비를 청구해서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럴 때에 '수의사'에게 덤터기를 씌우기도 한다. 나는 그저 불쌍해서 데려왔을 뿐이니 수의사인 당신이 생명을 살려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럴 땐 수의사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아픈 동물의 생명을 구하는 고귀한 행동을 하는데 있어 '치료비 청구' 등을 꺼내는 것이 매정해보일 수도 있지만, 수의사도 '공짜'로 수술해주는 비영리단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럴 경우에는 어찌해야 할까? 돈이 없으면 아픈 동물을 봐도 그저 외면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동물을 사랑해서 '동물들의 의사'가 되었으니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책임을 다해서 '공짜 진료'를 행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딴에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직업인 '의료진'들이 누구보다 더 많은 죽음을 마주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게 된다. 사람이나 동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그 어려운 공부를 마다하지 않는데도 막상 '죽어가는 생명' 앞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는 반면에,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도의적인 이유로, 때론 법적인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그저 죽는 것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일도 겪는 것이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이 겪는 고충이다. 그리고 사람들끼리 부대끼다보면 사소한 감정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도 직면하게 된다. 그럴 때에는 아무리 똑똑한 의사라도 결국 '평범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애환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의사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 때문에 겪는 고충과 애환도 많지만, 거기에 '동물'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1+1]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수의대'를 졸업하는 사람보다 '수의사'가 실제로 되는 사람의 수가 현저히 적다고 한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극복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인 까닭이다.

단지 수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만이 극복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사람 못지 않은 동물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뒤따라하며, 무엇보다 사람을 위한 '인권'과 동등한 수준으로 '동물권'까지 보장하는 사람들의 인식부터 개선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바로 '관심'이다.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동물들부터 유심히 관찰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가까운 동물병원을 견학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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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런 킹덤스쿨 1 - 부자 쿠키 vs 거지 쿠키 쿠키런 킹덤스쿨 1
김언정 지음, 이태영 그림, JA Korea(국제비영리청소년교육기관) 감수 / 서울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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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XXIII / 서울문화사 4번째 리뷰] '주제별 독서'를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좋은 책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책인데도 말이다. '경제관련 어린이책'을 찾다가 찾던 책 근처에서 새로 발견한 책이 있는데, 바로 이 책이다. 제목은 <쿠키런 킹덤스쿨>이다. '쿠키런'..그렇다. 마녀의 오븐에서 탈출하는 쿠키들의 모험담을 게임으로 담아낸 바로 그거다. 그 '쿠키런'이 다양한 버전의 게임으로 발전하더니, 어느새 '학습만화시장'으로까지 확장팩을 내놓게 된 것이다. 더구나 '경제교육'으로 널리 알려진 Junior Achievement(JA)가 직접 참여해서 야심차게 내놓은 '초등 경제학습만화'란 말이다. 단순히 경제개념을 일러주는 것뿐만이 아닌 '기업가 정신'까지 깊이 있게 경제교육을 시켜주는 국제단체라고 하니 '경제커리큘럼'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책의 내용도 꽤나 '실전용'이라고 느껴질 만큼 내용이 '직설적'이다. 으레 '교육용'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것들은 꽤나 진부한 스토리로 전개되기 마련인데, <킹덤스쿨>에서는 시작부터 주인공이 '거지꼴'이 되어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로 인한 '교훈'마저 처절할 정도다. 그렇다고해서 과격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초등 경제교육'을 모토로 삼고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이 읽어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직설적으로 순화시켰'기 때문에 책 내용을 문제 삼을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너무 실감나는 이야기 전개로 '학부모'와 함께 읽어도 절대 진부하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면 '경제 조기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나는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어린 시절부터 '돈씀씀이'를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면 어른이 되어서 개고생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초등학생에게 적절한 '적절한 규모의 경제'로 올바른 경제개념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테면, 용돈은 너무 많지 않게, 정기적으로 지급해주고, 용돈으로 '합리적인 소비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것은 매우 필수적이라고 본다. 이때 주의할 사항은 지급하는 용돈의 액수가 너무 적어서도 안 되고, 너무 많아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각 가정마다 '경제적인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적당한 용돈의 액수'는 가정마다 다르겠지만, 용돈이 부족해서 아이가 망신을 당하거나 물건을 훔치는 습관이 생기면 곤란할 것이고, 정반대로 용돈이 너무 많아서 '돈씀씀이'가 해퍼지거나 충동구매하는 습관이 생긴다면, 애초에 주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늠하기 힘들다면, 용돈으로 '쓸만큼 소비하고, 절반 정도는 저축도 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귀띔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은행에 '저축'을 하면 '이자'도 생긴다는 것을 꼭 알려주길 바란다. 비록 적은 액수일지라도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의 핵심'을 깨달아야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유능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노동'만으로 '부자'가 되는 기적을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은행이나 주식, 부동산 같은 것들이 '알아서 점점 불어나는 재산'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린이들은 '10년 이상의 기간'동안 자산을 묻어둘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부모님이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는 천금 같은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자산을 활용하여 '몫돈'을 만드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천금 같은 경험을 어린이 스스로 '자산'을 불려나가게 된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그 돈을 절대로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불려놓은 소중한 자산인데 함부로 홀랑 써버리고 만다면 '경제관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 분명할 것이다. 허나 1년이 지날 때마다 점점 불어나는 자신의 재산을 직접 관리까지 하면서 불려나간다면 틀림없이 훌륭한 '경제관념'을 갖출 것이다.

암튼, 이 책 <쿠키런 킹덤스쿨 1>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주인공인 '용감한 쿠키'가 부자 삼촌 덕분에 호화로운 삶을 살지만 정작 '돈에 대한 소중함'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안 부자 삼촌은 용감한 쿠키에게 '경제교육'을 시키기 위해 모든 재산을 감춰버리고 사라져버리고 마는데, 용감한 쿠키는 이러한 현실을 맞이하고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왜냐면 단 한 번도 '돈이 없는 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 아침에 '거지 쿠키'가 되어 버린 용감한 쿠키는 '돈이 없는 설움'을 제대로 겪게 된다. 그리고 삼촌이 남긴 편지속에서 '킹덤스쿨에 입학해 경제교육을 제대로 받으라'는 메시지를 확인하지만, 정작 용감한 쿠키는 '킹덤스쿨'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킹덤스쿨'은 킹덤빌리지라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곳으로 가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과 지금 자신의 수중에 한 푼의 돈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직업'을 구하게 된다. 왜냐면 돈을 벌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이번에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생 처음 직업을 구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용감한 쿠키는 과연 '킹덤빌리지'까지 갈 수 있는 차비를 마련할 수 있을까? 무사히 '킹덤스쿨'에 입학을 한 뒤에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받고 다시 부자 쿠키로 거듭나게 될 것인가? 궁금한 이야기들은 다음 편에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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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무인 편의점 이상한 무인 가게 시리즈 3
서아람 지음, 안병현 그림 / 라곰스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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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XXII / 라곰스쿨 3번째 리뷰] 이번엔 '무인 편의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말 많고 이상한 아저씨가 운영하던 편의점을 성실한 젊은이에게 물려주면서 이야기가 끝났다. 아이스크림 가게와 문구점에서는 없었던 에피소드다. 그리고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누구'라는 물음이 더 적당할테지만 그보다는 '무엇' 때문에 이런 이상한 일을 벌이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말이다. 다음 가게는 '무인 사진관'이라는 사실만 확인한 채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련다.

'무인 편의점'에서는 [당신에게 딱 필요한 물건을 팝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놓았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와 '무인 문구점'에서는 [웃는 얼굴을 보여 주면 문이 열려요!]라고 적혀 있었는데 말이다. 이런 변화는 '이상한 가게 시리즈'가 장편으로 이어질 것을 예고(?)하는 변화일까? 아니면, '편의점'이라는 성격상 '꼭 필요한 물건을 판매한다'는 컨셉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일 뿐일까? 하지만 애초에 '이상한 가게들'에선 아이들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보다 더 소중한 '웃는 얼굴', '자기만 간직한 비밀', 그리고 '즐거운 놀이 한 판'을 하면 아이들은 갖고 싶어하는 물건을 가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자 원하는 소원을 이루게 된다. 물론 그 소원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말이다. 오히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가 더 소중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줄 뿐이다. 그래서 '이상한 가게'는 그저 아이들이 '웃는 얼굴'만 보여주면 들어올 수 있게 했더랬다. 그랬는데 '편의점 편'에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전달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컨셉으로 갈 것인지, 아님 '편의점 편'에서만 그럴 것인지 관심이 기울어진다. 하지만 '무인 사진관'에서는 다시 '웃는 얼굴'을 요구할 것으로 짐작된다. 사진이란 것은 늘 '소중한 추억'을 담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한편, 편의점은 우리의 일상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단지 허름한 '구멍가게'가 최신식의 '편의점'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소규모 영세상인의 몫이었던 자리를 대기업의 체인점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의점'이라는 말처럼 단지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가 아닌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곳으로 활용도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큰 변화를 맞이한 곳이다. 더구나 영업시간이 '24시간', '연중무휴'이기 때문에 한밤중에도 정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간단한 먹거리부터 응급처지를 할 수 있는 의약품, 그리고 택배를 보내고 맡을 수 있는 장소제공까지 우리 일상에서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을 '편의점'에 설치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바꿀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런데다가 최근에는 실제로 운영되는 '무인 편의점'이 생겼다고 한다. 뭐, 아직은 '무인 판매'가 용이한 '자판기'를 주로 도입한 수준이지만, 건물에 입주할 필요도 없이 '컨테이너 박스'에다가 편의점을 꾸미고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설치할 수도 있다는 장점까지 도입했다고 한다.

물론, '편의점'이 마냥 편리한 곳만은 아니다. 밤새 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아르바이트 일꾼들에겐 정말 고된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한밤중에 편의점을 이용하는 불량한(?) 손님들이라도 찾아온다면 참으로 곤란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강도짓을 일삼기라도 하면 크나큰 낭패를 보기도 한다. 무인 편의점이라고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CCTV가 있다고해도 '관리자'가 없다는 틈을 타서 마구잡이로 음식을 먹고 도망가거나 '물건'이나 '현금'을 훔쳐 달아나는 강도짓을 일삼는 무리도 심심찮게 나타난다는 뉴스가 방송에 나오기 때문이다. 대개는 경찰에 덜미가 잡혀 혼쭐이 나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이런 '무인 편의점'에서 아이들은 '이상한 잡화'를 통해서 자신이 갖고 있는 '나쁜 습관들'을 하나하나 고쳐 나갔다. 자신감이 없어 엄마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소심함부터 충치로 인해 이가 뽑혀져 나가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치과에서 사용하는 기계들이 무서워서 충치치료를 거부하고 도망가는 일까지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의 그런 '나쁜 습관들'이 있다는 부끄럼 때문에 볼이 빨개질테지만, 다 읽고 나면 그런 '나쁜 습관들'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그런 확신을 하냐면, '나'도 어릴 적에는 그런 나쁜 습관을 갖고 있던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나쁜 습관들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계기를 통해서 하나씩 고쳐나갈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스컹크 뿡뿡 너로구나 군고구마' 이야기에선 물건값도 치르지 않고 제것인냥 마음대로 슬쩍하는 나쁜 습관을 가진 학생이 등장한다. 이 학생이 '훔치는' 물건은 편의점 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소중한 물건도 아무렇지 않게 슬쩍 가져가버리곤 한다. 먼 옛날 배고프던 시절에는 아이들의 '서리'를 어른들이 눈감아주기도 했다. 쪼그만 녀석들이 얼마나 배가 고프면 그랬을까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농작물 손실'이 엄청나거나 '논밭'을 망치기라도 하면 어른들이 노발대발해서 혼쭐이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눈감아주는 분위기였다. 그런 시절에서 조금 지나 '도시의 어린이들'은 문방구나 구멍가게에서 슬쩍하는 일이 빈번했다. 워낙 다양한 물건을 진열해놓기도 했고, 주인어른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물건을 슬쩍하는..그 시절에는 '뽀리'라고 불렀다. 물론 그때에도 주인어른이 눈감아주었다가 '물건값'이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이거나 여러 차례 그런 일이 반복될 경우에는 학생들의 부모님에게 '따로' 연락을 취해서 주의를 주는 일도 있었다. 왜냐면 그 시절에는 '한 동네에서 벌어진 헤프닝'인 경우가 많아서 다 알고 지내던...그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엔 다르다. 모두가 배고프던 시절도 아니고, 한 동네에서 서로 다 알고 지내던 시절도 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린 시절에는 그런 '나쁜 습관들'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아직 '도덕적 관념'이 제대로 심어지기 전이기 때문에 '부끄러운 행동'을 일삼으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학생의 나쁜 습관을 바로 잡겠다고 '도둑놈 취급'을 해버리면 크나큰 충격을 받고 도리어 삐뚫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어른들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린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부끄러운 행동을 뉘우치고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어야만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칠 수 있고,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도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도둑놈이란 낙인'을 함부로 찍어버리면, 그 아이는 평생토록 '죄인'으로 살게 될 수도 있고, 잘못을 뉘우칠 방법도 찾지 못하고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어 평생을 '사회부적응자'로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물건을 훔치고도 거짓말을 늘어놓는 아이에게 '고약한 방귀'를 뀌게 하는 방법을 통해서 스스로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방귀를 뀌는 이유가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가 아니라 '양심'이 썩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여주니 스스로 한 짓들이 정말로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치유방법'도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쳐서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되면 저절로 낫게 된다고 했으니 얼마나 멋진 방법이냔 말이다. 현실에서는 그런 '양심 군고구마'가 있지는 않겠지만, 양심에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깨닫게 된다면, 그런 고구마가 없더라도 올바른 윤리의식을 깨닫게 될 것이 틀림없다.

우리에게 '딱 필요한 물건'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자기존중'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모든 것일테다. 우리는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할 줄 아는 멋진 사회구성원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남'을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무리해서 자기를 꾸밀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하면 그뿐이다. 자기 양심에 부끄럽지도 않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멋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상한 무인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딱 필요한 물건들'이 대개 그런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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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논쟁 역지사지 생생 토론 대회 8
전지은 글, 박종호 그림 / 풀빛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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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XXI / 풀빛 14번째 리뷰]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경쟁하며, 노력만 하면 원하는 만큼 벌 수 있고, 그 이상을 벌어도 모두 '제것'으로 챙길 수도 있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다. 누군가 이익을 낸다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자본'은 한정되어 있고, 누군가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누군가는 적은 돈을 갖게 되거나 아예 갖지 못하는 일도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이라고 한다. 이를 보안하기 위해 다양한 경제체제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대표적인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물론 자본주의 스스로도 위기를 맞았다. 대표적으로 '경제대공황'이 그랬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본주의는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최종 승자일까? 그건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신음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협동조합', '공정무역', '공유경제' 등 새로운 경제체제를 내놓기도 했지만, 어느 것 하나 신통한 것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영원할 것인가?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를 대신할 무엇이 반드시 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하듯 말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다.

이 책 <자본주의 논쟁>은 '역지사지 생생토론'이라는 어린이를 위한 토론이야기로 꾸며진 책이다. 2015년에 첫 선을 보였다가 6년만(2021)에 다시 '개정판'을 내놓을 정도로 인기를 끈 책이기도 하다. 수많은 선생님과 아이들의 '독서토론의 교과서' 노릇을 톡톡히 해낸 책이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수준급 필독서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토론수업의 장점'이 아주 잘 녹아있어서, 책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서 수업하기만 해도 아주 훌륭한 수업을 할 정도로 탄탄한 '참고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토론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경지식'과 '자료수집'이다. 그리고 토론수업이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모은 지식과 자료가 '주제에 적절하고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어야만 하는데, 이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른들조차 토론을 준비하기 위해서 여간 애를 먹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것이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정리되어 있다. 그렇기에 토론수업을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어린 학생이 이 책을 읽으면 꽤나 도움을 받게 된다. 아직 '토론수업'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찬반으로 나누어서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해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수업이 될 정도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 멈춰버리면 너무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이다. 꼭 알아두어야 할 '주제'로 토론수업도 따라하고, 주제독서도 했는데, 그저 '따라하고', '내용정리'만으로 수업을 끝낸다면 말이다. 이럴 땐 '주제토의'로 한 번 더 주제에 대해서 심오하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리고 '자기만의 주제의식'을 끌어내서 평생 잊지 못할 감동과 함께 '생각의 경계'를 허물고 더 큰 생각을 갖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이 책을 읽는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주제로 되돌아와서,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현재까지 전세계의 석학들조차 '자본주의'를 대체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렇기에 자본주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만 한다. 어린이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더해서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새로운 자본주의'를 말이다. 흔히 말하듯 '내돈으로 내맘대로 살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라는 강력한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을 번만큼 쓰겠다'는 것에 딴죽을 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라는 우회적인 답변이 가장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런 대답도 요즘 들어서는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좌절감에 빠진 이들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니 '탕진잼(가진 것은 적지만 그마저도 다 써버리는 재미)'으로 위로를 삼기도 하지만, 씁쓸한 뒷맛만 남길 뿐, 적절한 한 방이 없다시피 한다.

그럼 이대로 '부자들의 천국'을 부러워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은 정녕 없단 말인가? 아니, 부자들이 세금을 내는 것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면 어떨까? 세금을 1억이라도 더 내고 싶어 안달이 나게 만들 방법 말이다. 이를 테면 '세금 올림픽'이라도 열어서 누가누가 더 많은 세금을 내는지 경쟁을 시키고 '각각의 세금 금메달'을 쟁취한 부자들에게 영애를 안겨주는 방법은 어떨까? 제1회 세금올림픽 개최지는 대한민국 서울 강남, 서초, 송파로 정하고 전세계 갑부들을 초청해서 부자들끼리 '세금게임'을 벌이고, 토너먼트를 치뤄서 최종 우승지에게 가장 영애로운 명예와 함께 순도 99.99%의 초대형 트로피를 줘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부자들이 내는 세금은 모두 합법적이어야 하고, 공명정대하게 게임을 치뤄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걷어들이 세금은 상위 1%를 제외한 나머지 99%에게 골고루 나눠줘도 좋고, '차등지급'을 선호하는 국민들에게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우선적으로 '세금혜택'을 누리게 해주고, 차상위계층부터 차례대로 혜택을 줄여가는 방식을 써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상상력을 발휘해본 것 뿐이다.

실제로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정책은 '무거운 세금'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스웨덴에서는 온 국민들이 복지혜택을 누리며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다수가 행복한 방법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라면 '부자'가 되어 살아갈 수 있는 몇몇 소수들은 엄청난 '세금 폭탄'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런 스웨덴 같은 나라들이 '국가별 행복만족도'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다른 부자나라에서는 '부익부 빈익빈'과 같은 현상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빈자들이 속출하며 사회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현실속에서 '세금폭탄'으로 인해서 충분한 '복지헤택'을 누리고 살아가는 사회복지국가들에서는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의 행복'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복지국가들도 '지속적인 수익'이 보장되어야만 가능한 정책들이다. 갑작스런 경제위기나 세계적 대공황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휘청거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전세계는 경제안정을 위해서 무진 애를 써야만 한다. 갑작스런 재난이나 재해, 전쟁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냅둬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다. 늘 전쟁의 위협을 안고 살아가는 마당에 심각한 '사회갈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드러내는 경제위기는 우리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거기다 주변정세도 심각하다. 미중갈등은 날로 심각해져 가고, 러시아와 중국은 전쟁을 벌여서라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챙길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경제대국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엔저효과'로 인한 내수불안까지 이어져 심각한 경제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위협의 고조'로 인해 남북갈등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니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더구나 러시아-우크라 전쟁은 끝나지도 않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레바논 헤즈볼라를 넘어 이란까지 '중동전쟁'으로까지 확전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본주의'는 제대로 작동하며 세계적 경제 안정을 지속시킬 수 있을지 의심까지 드는 판국이다.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가 계속 건재할 수 있으려면 '경제가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는 대전제가 필요하다. 그럴려면 '가진자(자본가)'가 더 많은 배려를 베풀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부익부 빈익빈'이 계속 지속되면 '극빈자(노동자)' 계층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다. 그럼 부자들도 더는 부를 누리지 못하는 사태가 초래되고 말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부자들이 자신들에게 '부자세'를 매겨서 더 많은 세금을 내려고 하는 까닭도 '미국의 경제위기'감이 짙게 깔려 있는 탓이다. 결국은 자본주의도 '사람'이 살아남아야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면,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최우선적으로 도입해야 자본주의가 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도덕적'이어야 한다. 혁명적인 방법에 다다르게 된다면 엄청난 피를 부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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