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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수의사, 희망을 처방합니다
린리신 지음, 차혜정 옮김, 홍성현 감수 / 모모 / 2024년 9월
평점 :
[My Review MDCCCXXXIV / 모모 1번째 리뷰] <낭만 닥터 김사부>, <슬기로운 의사 생활> 같은 '의학드라마'를 즐겨 봤다. 물론 그 이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들도 곧잘 보았지만 그다지 감흥이 없었는데 '김사부'와 '슬기로운' 시리즈는 판이하게 달라서 봤던 편이다. 이전의 의학드라마는 그저 '의술'을 펼치는, 어찌 보면 '잘난척하는 엘리트 집단의 광기(?)'라고도 할 수 있는 무거운 주제를 풀어냈다면, '김사부'와 '슬기로운' 의학드라마는 '인술'을 보여주는 의학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학이라는 '어려움'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보다는 의사도 결국 '사람'이라는 '따뜻함'이 전달되는 메시지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하얀거탑>류의 의학드라마보다는 <낭만 닥터>류의 김사부에게 반해버린 열렬한 팬이다. 그런 탓에 이 책의 제목이 <낭만 수의사>라는 것에 먼저 호감이 갔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대만 작가가 풀어내는 '의학드라마'는 꽤나 낯설게 다가왔다. 기대했던 '낭만 닥터 김사부' 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슬기로운 의사들'처럼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는 동기 의사들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보다는 '중국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믹 멜로'가 연상이 되어 내가 기대했던 낯익고 낭만적인 의학드라마는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구나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아닌 '수의사'라는 것에 좀 더 낯선 느낌만 들 뿐이었다. 딱히 동물을 싫어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아픈 환자'로 등장하면 가슴 한 켠부터 아파오는 탓에 책속에 등장하는 '환자의 케이스' 하나하나가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아픈 동물들의 '죽음'을 다루는 내용에선 읽기를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 책의 원제가 <獸醫五年生(수의5년생)>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말로 곧바로 뒤치면 '수의대 졸업생'쯤일 것이다. 한마디로 '의대 졸업생'의 고충과 애환이 담겨 있는 소설이란 생각에 책속의 줄거리가 머릿속에 딱 정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이나 '졸업생'은 힘들고 고달픈 일로 눈코 뜰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낼 것이다. 더구나 '의대 졸업생'이라면 졸업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졸업 후 '전공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로 정신이 없을 시기인 탓이다. 사람을 치료하는 '의대생'도 이럴진대,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대생'은 어떨까? 아픈 사람은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말이라도 하지, 동물은 '수의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도맡아야 한다. 그렇다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목숨이 둘이거나 덜 소중한 것도 아니기에 잘못된 진단(오진)이나 명백한 실수를 저지르면 사람보다 약하고 수명이 짧은 동물들은 바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죽음을 맞이하는 수의사들은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라더 충격이 덜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모든 생명이 똑같이 소중한 것처럼 '동물의 죽음'도 사람처럼 고귀하게 다루어야 마땅하다. 더구나 '반려동물의 죽음'인 경우엔 보호자(반려자)의 슬픔까지도 수의사가 감당해야 하며,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한 '의료사고 케이스'인 경우엔 법적 소송이나 고발까지 당할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수의사'도 의사 못지 않은 중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인 셈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아픈 동물'에 대해서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경우에는 '건강보험' 같은 치료비를 경감시킬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서 보호자들의 부담이 덜한데 반해서, 동물의 경우에는 단순한 치료나 검사를 했을 뿐인데도 '엄청난 액수의 의료비 청구'로 인해 진료는커녕 아픈 동물을 그대로 방치하고 죽게 만드는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수의대 졸업생'들이 겪는 실습과정에서 아픈 동물을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방치하거나 주인(보호자)에게조차 버림을 받고 병원에 눌러앉은 동물들이 많고, 심지어 치료중이던 동물이 죽음에 이르렀는데도 그저 수수방관만 하는 매정한 사람들을 보면서 겪게되는 '수의대생들의 심적 고충'이 아주 잘 드러나 있다.
그렇다고 그런 경우를 당한 동물들을 수의대생들이 '애정'으로 돌봐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의대 졸업생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학업과 실습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그렇게 버려지고 방치된 동물까지 떠맡아 돌봐줄 시간적, 체력적, 경제적 여력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동물을 유달리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한 '직업'이긴 하지만, 아픈 동물 뒤치닥거리하면서 학업을 등한시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버려지는 동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수의대생'이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학생이지 않은가. 현실이 비록 '이상'과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자신들이 꿈꾸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희망을 키워나가는 미래의 주역들 말이다. 이런 애환이 잘 갖춰있기에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이 <낭만 수의사, 희망을 처방합니다>인지도 모르겠다.
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그야말로 '애정'으로 키우고 평생을 함께하는 '반려자'가 되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삶의 기쁨과 행복까지 모두 함께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애정을 쏟던 동물이 아플 경우에는 어찌 하겠는가? 병원비는 말도 할 수 없이 비싸고, 아파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은 찢어지고, 그러다 죽음이라도 마주하게 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겪게 될 것이다. 여기엔 경제적인 문제, 윤리적인 문제, 그리고 도의적인 문제까지 여러 가지 문제가 총체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이 가운데 어느 한가지도 쉬운 문제는 없다. 길에서 '다친 동물'을 병원에 데려가도 마찬가지다. 주인도 아닌데, 그저 불쌍해서 병원에 데려줬을 뿐인데. 엄청난 치료비를 청구해서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럴 때에 '수의사'에게 덤터기를 씌우기도 한다. 나는 그저 불쌍해서 데려왔을 뿐이니 수의사인 당신이 생명을 살려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럴 땐 수의사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아픈 동물의 생명을 구하는 고귀한 행동을 하는데 있어 '치료비 청구' 등을 꺼내는 것이 매정해보일 수도 있지만, 수의사도 '공짜'로 수술해주는 비영리단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럴 경우에는 어찌해야 할까? 돈이 없으면 아픈 동물을 봐도 그저 외면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동물을 사랑해서 '동물들의 의사'가 되었으니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책임을 다해서 '공짜 진료'를 행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딴에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직업인 '의료진'들이 누구보다 더 많은 죽음을 마주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게 된다. 사람이나 동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그 어려운 공부를 마다하지 않는데도 막상 '죽어가는 생명' 앞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는 반면에,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도의적인 이유로, 때론 법적인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그저 죽는 것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일도 겪는 것이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이 겪는 고충이다. 그리고 사람들끼리 부대끼다보면 사소한 감정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도 직면하게 된다. 그럴 때에는 아무리 똑똑한 의사라도 결국 '평범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애환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의사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 때문에 겪는 고충과 애환도 많지만, 거기에 '동물'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1+1]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수의대'를 졸업하는 사람보다 '수의사'가 실제로 되는 사람의 수가 현저히 적다고 한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극복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인 까닭이다.
단지 수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만이 극복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사람 못지 않은 동물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뒤따라하며, 무엇보다 사람을 위한 '인권'과 동등한 수준으로 '동물권'까지 보장하는 사람들의 인식부터 개선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바로 '관심'이다.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동물들부터 유심히 관찰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가까운 동물병원을 견학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