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의 티키타카 경제왕 3 : 우리의 첫 주식 투자 - 어린이 금융 습관 기르기 프로젝트 호야의 티키타카 경제왕 3
주언규 기획, 박종호 그림, 달콤팩토리 글 / 아울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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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LXXXIX / 아울북 22번째 리뷰] 헌옷을 새옷으로 '업사이클'하여 판매하기 시작한 호야와 친구들은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든다. 그런 과정에서 경쟁관계에 놓인 못된 라이벌에게 사기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호야와 친구들은 이를 계기로 더욱더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무겁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사업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여러 모로 '주식투자'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과연 호야와 친구들은 올바른 주식 투자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이 책 <호야의 티키타카 경제왕>은 어린이책치고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소개하자면 어른들의 전문적인 영역을 '어린이 주인공'을 앞세워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다시 말해, 주인공이 '어린이'인 것을 빼고는 그냥 어른들의 주식투자 이야기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고도 과연 어린이책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그 내용면에 있어서 상당히 '경제학의 기초'를 다루고 있기에 어린이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청소년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어린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조금 생각해볼 일이다.

다시 돌아와서, 헌옷을 모아다 새로운 옷으로 재디자인하여 상품으로 판매하는 '업사이클 사업'을 과연 초등학생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사업일지 고민해보잔 말이다. 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유튜브 채널'을 홍보수단으로 사용하고, 이를 전문 편집자가 여러 상품을 비평하는 영상을 찍어서 선보이고, 이를 '간접홍보(PPL)' 마켓팅 차원에서 의류브랜드에서 런칭하여 광고비를 지급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데, 그 수익자가 바로 초등학생이라는 사실이 그닥 실감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다. 못한다는 단정을 짓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를 따라해서 '성공스토리'를 이룰 수 있는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는 문제다. 어린이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문방구털이' 정도를 사업아이템으로 잡아 각종 학용품의 성능 비교를 하면서 문구제품 비교영상을 제작해서 수익을 창출했다는 이야기 정도였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말이다.

3권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업사이클 의류 사업'을 주식에 상장해서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하려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에 앞서 '주식투자의 기본'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어린이 주식투자'에 사업의 투명성을 눈여겨 보며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지, 낮은지 판단하는 수준을 넘어 투자하기 좋은 기업으로 'ESG 경영체제'를 갖춘 기업을 찾으라는 내용이나, '경제적 희소성'을 판단해서 기업의 미래성장 가능성을 예측하고, 투자하려는 기업의 '재무제표 분석'이 필수라는 등 어린이가 직접 실현하기 어려운 내용을 가르쳐주고 있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 물론 어린이책치고 살짝 난해한 책 정도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어른들이 주로 읽는 주식투자책'과 별반 차이가 없는 내용이라면 굳이 '어린이책'이라고 차별화를 둘 필요 없었을 것이다. 굳이 '학습만화'라는 형식을 띨 것도 없이 그냥 '교양웹툰'으로 제작해도 됐을 거라는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어색함은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학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을 '유익한 책'이라는 점에 공감할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경제학습만화가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감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학부모가 겨우 이해할 수준의 난해한 내용을 담아놓은 의도가 과연 훌륭한 전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좋은 어린이책을 선별하려는 점에서 이 책은 '난이도 조절의 실패'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 경제 심화 학습서'라는 타이틀을 달아주면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재미있다'는 수식어는 인정할 수 있겠지만, '쉽다'는 수식어는 곱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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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2022 18호 - Vol 18 : 진실이 사라진 시대의 진실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18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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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LXXXVIII / 바다출판사 11번째 리뷰] 이 잡지를 다시 명명해야겠다. '우주를 생각한다' 편을 읽고서 과학잡지로 단언했었는데, 논리적인 논거가 담긴 '인문학잡지'로 부르는 것이 적당할 것 같기 때문이다. 편집자가 기고의 내용을 정리하는 경향이 상당히 '논리적인 전개'여서 읽기에 편하고 익숙했던 것이 '과학적인 주제'의 경향에 휩쓸려 그런 판단을 했다. 이번 주제는 '진실'를 다루고 있으니 인문, 사회, 문학까지 다양한 인식적 접근을 보여주며 흥미를 돋우어 주었다.

우리는 진실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고 믿고 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별로 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이쯤되면 진실은 위협 받는 것이 아닌 '모욕'을 받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의 세상은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따위가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있을 정도다. 되려 진실보다 '상황', 상황보다 자신의 '믿음 또는 신념'에 따라 행동하길 주저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부끄러움까지 내던져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정리하면, 진실이 밝혀져도 자신의 믿음을 바꾸려하지 않고, 정황이 명백히 드러나도 한 번 머리속에 새긴 신념을 돌리려하지 않는다. 왜냐면 부끄럼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이 아닌 거짓을 일삼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도 모르니 반성 따위는 어따 갖다 버렸는지 찾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진실이 사라져 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어 보았는가? 소설에서 주인공은 '진실'을 조작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조작을 하더라도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것까지 조작할 수는 없다는 진실에 봉착하고서 자신이 하는 일에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런데 그게 가능했다. 남아 있는 기록을 '왜곡'을 통해서 엄연한 사실을 그럴 듯한 거짓으로 바꿔치지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진실조차 폭력과 협박을 통해서 그럴 듯한 '새진실'로 세뇌를하는데 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런데 문제가 남았다. 이 모든 '조작 사실'을 알고 있는 주인공 자신의 '진실'은 어떻게 조작할 것인가? 그런데 그것도 조작이 가능했다. 바로 '고문'을 통해서다. 한가닥 남은 진실까지 '스스로 부정'하도록 만드는 고문을 통해 주인공은 모든 것에 굴복하고 다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도 알고 있던 '진실'을 절대 발설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세상은 온통 '거짓'으로 가득한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과연 이런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일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진실마저 '통제'가 가능한 세상은 암울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함'이 선사한 행복을 누릴 수는 있어도, 알고 있는 진실을 부정하며 살아가는 삶은 양심이 짓누르는 엄청난 죄책감 때문에라도 하루도 편히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파렴치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믿기 힘들지만 양심도 팔아버린 냉혈한이 이 땅에 '같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바로 내란우두머리 '윤석열과 그 일당들'이다.

어제 12월 27일자 뉴스에서 검찰은 그동안의 수사를 바탕으로 '윤석열, 비상계엄선포의 진실'이 밝혀졌다. 야당의 폭정과 국회의 폭거에 행정마비를 우려한 '우발적'인 계엄령 선포가 아니라 지난 3월부터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우원식, 이재명, 한동훈을 비롯한 약 30여 명의 인사들을 일거에 수감시키고 사살, 또는 고문을 통해서 자신의 독재정권을 영구히 완성하겠다는 시나리오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지난 12월 3일 밤에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 과연 윤석열만 이런 시나리오를 알고 있었을까?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도 알았을 것이다. 아무리 늦게 알았어도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그 날 그 자리에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런데도 아무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위원들이 없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또한 국민의힘 추경호의원은 비상계엄이 있던 날, 국회의사당이 아닌 여당당사로 자신들의 소속의원들을 불러 모았다. 왜? 윤석열이 '비상계엄 무효'를 선언하지 못하게 국회의사당에 계엄군을 출동시켰고, '발포 명령'까지 내렸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그날 그 자리에 가면 '죽을 수'도 있으니 가지 말라고 하였다는 정황이 딱 들어맞는 셈이다. 국회로 가는 길이 막혔다는 둥, 당내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았다는 등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윤석열이 '지시한 사항'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던 일이라는 점은 그때 '한동훈과 친한파의원들'만이 아무 것도 모른채 국회의사당으로 가서 표결에 참여했다는 것이 이런 정황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또한 앞으로의 수사과정을 통해서 '진실'로 밝혀질 것이 뻔하다.

이렇게 '감출 수 없는 진실'이 드러나는데도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다시 대통령 자리로 복귀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자기들의 허물인 '내란죄'에는 눈을 감고, 야당 대표인 이재명의 '범죄사실'만 목소리를 높이며 대통령 탄핵이 불발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감출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민의힘'이 얼마나 윤석열과 합을 맞춰 왔는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의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윤석열의 실책'을 지적하고 개선할 수 있는 의지가 전혀 보이질 않았지 않은가 말이다. 오히려 그런 윤석열을 두둔하고 '자기 대통령'이라면서 감싸주기에 앞장 서왔다. 그런 행위들이 대다수의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졌는데도, 그짓을 멈출 줄 모른다. 지금 대한민국의 환율이 치솟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대외신인도'를 추락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으면서도 그짓이 잘못인줄 모르고 있는듯, 계속 패악질을 하고 있다. 그렇게 윤석열 독재권력을 되찾았다고 쳐도 윤석열 치하의 대한민국이 잘 살 것이라고 보는가? 망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저짓꺼리를 멈출 줄 모르는 '윤석열과 그 일당들'의 행태를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재명에게 죄가 있다면 엄벌에 처하면 그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윤석열도 엄벌에 처해야 할 것 아닌가.

이제 '진실의 시간'이 열렸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진실, 그자체'가 정의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 진실이 밝혀진 뒤에 따르는 우리의 행동들이 '합당'해야 비로소 정의로울 수 있는 것이다. 진실은 그저 거짓으로 인해 어두워졌던 것을 밝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백주대낮' 같은 밝은 곳으로 드러난 진실을 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정의로울 수 있게 우리 모두 '양심의 촛불'을 밝혀야 한다. 다시 어둠이 찾아오더라도 한 번 밝혀진 진실이 다시 어둠속으로 숨어들거나 감춰지지 않도록 촛불을 밝게 밝혀야 한다. 이번에는 촛불이 '응원봉'으로 바뀌었다. 10대, 20대 여성들을 주축으로 세상이 어두워지자 집에서 가장 밝은 빛을 들고 참여한다는 의의를 밝혔는데, 정말 시의적절했다고 본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탄핵정국을 슬기롭게 이겨낸다면 전세계는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열광적으로 응원하게 될 것이다. 결코 그 반대의 경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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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런 킹덤스쿨 6 - 바른 금융 vs 나쁜 금융 쿠키런 킹덤스쿨 6
김언정 지음, 이태영 그림, JA Korea(국제비영리청소년교육기관) 감수 / 서울문화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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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LXXXVII / 서울문화사 9번째 리뷰] 이번 이야기에는 '흥청망청맛 쿠키'가 등장한다. 젊은 시절에는 번듯한 직장에도 다녔고 갖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맘껏 살 수 있는 돈도 가지고 있던 쿠키였다. 그런데 '흥청망청맛 쿠키'는 그런 풍요로움을 '신용카드 할부'로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 신용카드는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먼저 '물품'을 갖고 '대금'은 나중에 치룰 수 있는 편리한 도구다. 더구나 '할부'는 총 대금을 '일시불'로 납부할 필요가 없이 '주어진 기간'동안 나눠서 낼 수 있으므로 구매 부담을 덜어주는 효율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이 '신용카드'의 장점과 '할부'의 장점이 만나면 실로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평소에 합리적인 소비습관을 갖고 있지 않다면 자신의 자산 보유능력 '그 이상의 소비'로 인해 엄청난 부채(빚)에 시달릴 수 있고, 자칫 '파산'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산을 하게 되면 '개인 신용'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아 일상적인 경제활동 자체를 할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에이, 신용카드 할부는 너무나도 흔한 일상인데, 그 정도로 '파산'을 당한다는게 말이 되요?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예시를 통해서도 그 위험성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으니 잘 보기 바란다. 요즘 가전제품은 200만 원을 훌쩍 넘어간다. 성능이 좋은 최신 상품의 경우에는 500만 원 이상인 경우가 태반이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용카드 할부금 납부'를 선택한다. 500만 원을 일시불로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12개월이나 36개월 할부로 나눠서 내게 되면 다달이 내야 하는 금액부담을 현저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12개월 할인납부라면 약 42만원씩, 36개월납이면 약 14만원씩 내면 된다. 그럼 월급이 300만 원인 경우라도 부담을 덜할 수 있기 때문에 자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편리한 수단이라도 너무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월급이 300만 원이면 42만원 짜리 상품을 몇 개까지 살 수 있을까? 많아야 7개 정도다. 그렇다면 최대 1년 동안 7개 이상의 제품을 '할부'로 구입하면 안 된다. 왜냐면 자신이 받는 월급의 한도가 그 이상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1년 동안 7개의 제품을 사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다. 월급을 받으면 각종 세금과 공과금, 관리비, 식비, 기타 잡비 등등 일정 금액은 이미 납부하고 있다. 그러고 남은 월급이 있다면 '저축'을 통해서 목돈으로 마련해야 할텐데, 그러고도 남은 돈이 있어 '할부'로 물품구매를 하게 된다면 1년에 1~2개의 제품을 사는 것이 최고치일 것이다. 그런데 더 사고 싶은 것이 있어서 3~4개, 그 이상을 할부로 구매하게 되면 먹는 것을 줄이고, 입는 것을 줄이고, 결국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까지 줄여야해서 금방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흥청망청맛 쿠키'가 바로 그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니 신용카드 할부는 절대로 1년에 1개 이상을 하면 안 된다. 왜냐면 그 이상으로 소비를 하게 되면 결국 '부채(빚)'를 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채는 절대로 지면 안 되는 걸까?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거나, 사업자금이 부족하거나 하면 제법 큰 돈이 필요한 법이다. 이럴 때에도 빚을 지지 않고 자기가 보유한 자산만으로 충당하려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대출을 받아서 큰돈을 융통한 다음에 계획적으로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방법으로 금융계획을 짠다면 개인적인 부담을 현저히 줄일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마치 '할부금'을 갚아나가듯 차근차근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리고 신용을 쌓기 위해선 '부채'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경우도 있다. 왜냐면 신용이란 것도 빌린 것을 제때에 갚았다는 '믿음'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히려 적은 금액이라도 빌렸다가 제 날짜에 이자까지 쳐서 갚아나가는 실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신용도'는 더 높게 책정될 수 있다. 그러니 부채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부채가 없는 것이 '신용도'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도 꼭 기억하길 바란다. 그렇다면 일부러라도 빚을 져야만 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굳이 대출이나 부채를 지지 않아도 저절로 신용을 쌓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게 바로 '신용카드 납부'다. 신용카드가 바로 '후불제'인 까닭에 일정 금액 빚을 졌다가 정해진 날짜에 쓴만큼 갚아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용카드 결제일에 '통장잔고'를 넉넉하게 채워넣는 습관이 바른 소비습관을 기르는 일이고, 신용도도 높일 수 있는 효율적인 금융습관인 셈이다.

그럼 좋은 금융습관을 위해서 가지고 있는 돈은 모두 '통장'에 보관하고 있으면 될까? 하나의 통장에 모두 보관하고 있으면 '통합관리'가 되기 때문에 별다른 신경을 쓸 일이 없어 편리하긴 하겠지만, 그다지 효율적인 금융습관은 아니다. 일단 '급여(용돈)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이를 다른 3개의 통장으로 나눠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는 '지출 통장'이다. 이 통장에서 급하게 필요한 돈이 있으면 빼서 바로 쓸 수 있게 관리하면 된다. 다른 하나는 '비상금 통장', 또는 '목돈마련 통장'이다. 이 통장은 나중에 목돈이 필요한 경우에 쓸 수 있도록 장기간 돈을 묶어두는 통장으로 관리하면 좋다. 나머지 하나는 '투자 통장'이다. 요즘엔 어린이들도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투자는 일찍 시작하면 더 유리하므로 10년, 20년 동안 장기투자 계획을 세우고 차곡차곡 투자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이렇게 금융습관을 들이면 올바른 금융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때그때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무조건 사서 모으는 습관은 나쁜 금융습관의 표본적인 것이니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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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런 킹덤스쿨 5 - 통장 군단 vs 카드 병사 쿠키런 킹덤스쿨 5
김언정 지음, 이태영 그림, JA Korea(국제비영리청소년교육기관) 감수 / 서울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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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LXXXVI / 서울문화사 8번째 리뷰] 블루반 쿠키들의 모험이 일단락이 되고 무사히 킹덤스쿨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학생 쿠키들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는데, 바로 '교환학생들'이다. 교환학생이란 친선과 문화의 교류를 위해서 다른 두 학교 사이에 학생들을 서로 보내서 유학생활을 하는 학생을 뜻하는데, '킹덤스쿨'에서는 다양한 쿠키 캐릭터를 늘려서 등장시키려는 목적으로 이용한 것 같다. 아무튼 기존의 학생들과 교환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킹덤스쿨 운동회'가 개최된다는데 1등 상금이 무려 100골드다. 과연 블루반 학생들이 1등 상금을 탈 수 있을까?

스토리와는 별개로 '<킹덤스쿨> 학습만화의 핵심'은 바로 알뜰살뜰한 금융정보를 캐내는 것이다. 이번에는 '통장예금'과 '신용카드'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요즘 어린이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비밀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경제지식인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비결' 말이다. 그 비결 가운데 가장 기초적인 것이 가지고 있는 돈을 '통장'에 저금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자(황금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금, 다시 말해, '저축'에는 크게 예금과 적금이 있는데, 예금은 다시 '보통예금'과 '정기예금'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적금은 일반적으로 '정기적금'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저축은 '보통예금'이다. 보통예금은 은행에 돈을 맡기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맡긴돈'을 언제든지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자(황금알)'은 가장 적게 준다. 요즘에는 은행이자율이 형편없이 낮아서 거의 이자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이자를 얻고 싶다면 '정기예금'이나 '정기적금'을 들어야만 한다. 두 가지 방식 모두 '일정기간' 동안을 돈을 찾지 못하고 은행에 묶어두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해약'을 해서 돈을 일시적으로 모두 찾을 수는 있지만, 정해진 기간을 다 채우지 않은 경우에는 '정해진 이율'만큼의 이자를 받지 못하고 아주 적은 금액만 받게 된다. 하지만 은행에 저축을 하면 '원금(원래 맡겨둔 돈)'만큼은 확실히 돌려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은행이 망했을 경우에는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자.

정기예금은 큰돈을 한꺼번에 맡겼다가 높은 이자를 원금과 함께 돌려받는 저축이고, 정기적금은 매달 일정한 금액씩 맡겨서 목표금액을 다 채우면 역시 높은 이자와 함께 원금을 돌려받는 저축 방식이다. 두 가지 모두 높은 이자(황금알)를 받을 수 있는 방식이지만, '일정기간' 동안은 돈이 묶여있기 때문에 여윳돈을 가지고 저축을 하는 것이 좋다. 만약 급한 돈이 필요할 경우에 해약을 하게 되면 애초에 약속했던 '높은 이자'를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소비습관도 계획적이어야만 황금알을 꾸준히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은행이자'가 너무 낮은 편이라서 아주 오랜 기간을 저축으로 묶어두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왜냐면 오랜 시간이 지나면 '화폐가치'가 저절로 떨어지는데, '은행이자'가 떨어지는 화폐가치보다 더 낮은 편이라서 은행에 큰돈을 묵혀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을 많이 한다. 그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하지 않을 목돈의 경우에는 '은행저축'보다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요즘 추세이기도 하다. 그러나 투자는 항상 '원금손실'이라는 부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어야 한다. 물론 10년 이상의 아주 오랜기간을 보면 확실히 '은해이자'보다 '주식투자'의 이익이 더 크고, '우상향'하는 주가의 특성상 더 많은 이익이 거의 확실하게 보장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꾸준하게 성장하는 탄탄한 기업의 주식일 때만 맞는 말이다. 모처럼 큰맘을 먹고 주식투자를 해서 '장기투자' 모드에 돌입했는데, 투자한 회사가 10년도 안 되서 파산이나 폐업을 해버린다면 이자는커녕 원금도 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식투자는 신중히, 또 신중하게 해야만 한다.

이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주식투자의 조언이 있는데, 바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말이다. 한 가지 종목에 몰빵을 하지 말고 다양한 종목에 골고루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투자를 하면 어느 한 쪽에서 손실을 보더라도 다른 종목에서 이득을 볼 수 있고, 최종적으로 이익과 손실의 비율이 '51 : 49'가 되면 아주 우수한 투자성공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비결을 바탕으로 '투자와 저축의 비율'도 균등하게 해놓으면 투자에서 실패를 했더라도 저축에서 '일정금액'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가장 안전한 자산운용 방법이 될 것이다. 이는 장기적 금융생활에 가장 기본이 되는 비결일 것이다. 초등학생이라면 반드시 익혀야 할 기초이고 말이다.

한편, 카드의 종류도 알아두면 좋겠다. 초등학생이 '신용카드'를 만들어 쓰기에는 부적합하다. 왜냐면 일정한 소득이 없기 때문에 '신용'을 쌓을 기회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용'을 믿고 일정금액을 사용한 뒤 나중에 한꺼번에 결제를 하는 방식의 '신용카드'는 초등학생에게 적합한 소비패턴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일정금액을 '충전'해서 사용하는 카드나 '통장'에 저축되어 있는 금액만큼 소비할 수 있는 '체크카드'를 사용하며 합리적인 소비생활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렇게 '카드'를 사용해서 소비하는 습관을 들이면 무엇이 좋을까? 바로 매번 소비할 때마다 자신이 쓴 소비패턴이 모두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일일이 '용돈기입장'을 써가면서 따로 기록을 하는 불편을 줄일 수 있고, 통장잔고를 정리해보면 자신의 소비패턴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자신의 소비생활 습관도 계획하기에 편리하다. 그러나 이렇게 '현금'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 개개인의 '정보'가 낱낱이 기록되기 때문에 정보관리를 철저히 해야하는 수고를 반드시 해야만 한다. 만약 국가가 이런 '개개인의 정보'를 훔쳐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최악의 경우 '감시사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웃나라인 '중국'의 경우가 그렇다. 요즘 중국에선 '현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두고 중국의 현대화가 되었고, 자동화가 되어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고 좋아라하는데, 그 편리함 이면에는 중국사회가 개개인의 정보를 함부로 들춰보는 '감시 사회'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중국인은 태어날 때부터 중앙정부가 이러한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로 인해서 중국정부에 불만을 품었을 때 엄청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감시사회에서 살다보면 그런 자유가 박탈되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현금'만 쓰고 있으면 일상생활의 불편을 감수하며 살 수밖에 없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이렇게 '개인의 자유'를 추구할지, '일상의 편리함'을 추구할지도 중요한 논제가 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개인정보'를 소중히 다루는 습관을 기르면 두 가지 방식의 '장점'만 챙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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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
이명찬 지음 / 서울셀렉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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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  이명찬 / 서울셀렉션 (2021)

[My Review MDCCCLXXXV / 서울셀렉션 1번째 리뷰]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침략전쟁을 일삼았으면서도 되려 '피해국 코스프레'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과거의 잘못이 명명백백 드러나는데도 사죄는커녕 이미 '다 지나간 일'을 들춰내 평화로운 양국(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훼손할 작정이냐면서 도리어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일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 '선진국의 너그러움'인냥 한일 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우호관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한국인들의 국민성이 너무나도 낮아서 선량한 일본 국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니, 앞으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하여 찬성을 하는 것만이 한국에도 유리한 결정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훈계하곤 한다.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일본이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앞선 나라일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가 말이다. 마치 일본의 말을 듣지 않는 한국은 큰코 다칠 것이 뻔하다는 듯이 으름장을 놓는 일본의 정치인과 경제인, 그리고 사회유명인사들의 발언을 듣고 있으면 화딱지가 날 지경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것은 '우리 언론'이다. 이른바 '보수 언론(조중동한문)'은 일제히 일본의 발언을 종합해서 한국 전반에 고~대로 퍼뜨리기에 바쁘다. 마치 '상전의 노여움'에 벌벌 떠는 몸종들마냥 말이다. 일본의 발언이 맞는지 틀리는지 '기본적인 팩트 체크'도 하지 않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내뱉는 말들에 관한 '유/불리'를 따지지도 않고 일본은 선진국이니, 그들이 하는 말은 틀림 없는 사실일거라 지레짐작하고서 그저 '낮은 자세'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기가 찰 노릇이다. 아니 왜들 이 모양이란 말이냔 말이다.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나 어릴 적이던 70년대, 80년대에는 분명 일본은 한국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잘 사는 '선진국'이자 '경제대국'이 틀림없었다. 그때는 나도 국산품보다 '일제'를 선호했고, 실제로도 조잡한 국산 학용품보다 일제의 샤프가 더 튼튼하고, 볼펜이 슬슬슬슬 더 잘 써진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워크맨'은 너무나도 갖고 싶은 1순위 전자제품이었다. 일본의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서 살았던 것이 90년대까지의 나의 철없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가 넘어서자 사정은 달라졌다. 일본 경제의 거품이 빠지자 더는 '일제'를 선호하거나 '일본의 문화'를 동경하는 일은 사그라들었다. 점점 한국의 전자제품을 쓰게 되었고, 한국의 영화, 드라마, 노래를 보고 들으며 지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게 되었다. 때마침 일본에서도 '한류열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한일간의 달라진 위상을 직접 피부로 와닿게 되었다. 그렇게 2000년 이후에 '일본의 것'을 거의 대부분을 손절한 나였다.

그런데도 일본은 여전히 잘난 척을 한다. 아니 그 정도만 한다면 그냥 애교로 봐서 넘어가줄 만도 한데, '혐한'을 외친단다. '재특회'를 조직해서 재일조선인들에게 해코지를 하고,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테러 수준의 범죄까지도 심심찮게 벌인다고 한다. 아니, 일본인은 다들 선량하다면서 왜들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의 인식속에는 한국(조선)을 '제2국민' 취급을 한다고 하는 믿을 수 없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도 아닌데, 웬 '제2국민' 소리냐고 의문을 가졌지만, 일본 아베 총리의 발언들이 나온 근본원인을 따지고보면 그러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아베 총리의 (한국을 향한) 조치들을 본 일본인들이 총리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일본 총리를 일본국민들은 지지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아베 총리측의 부정부패가 들통이 나서 자민당의 인기가 추락하자 이제는 아베 총리도 물갈이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베 총리에 대한 일본국민의 지지율은 여전히 높았고 견고했다. 일본인들은 모두 멍청이들인가 싶었는데,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자 불쌍해질 정도였다.

그 까닭은 역대 일본 정부가 '근현대사 역사공부'를 국민들에게 전혀 시키지 않은 결과이고, 그 결과, 일본 국민들도 특히 젊은 세대층에서 '정치적 무관심'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일본의 정치인들은 젊은 세대를 뺀 '장년층 이상'의 늙은 세대에게만 맞춘 정책을 내세운다고 한다. 그것도 '여성 비하'가 일상이 되어버린 일본에서는 '늙은 남성들'이 현재의 일본 정치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그 '늙은 남성'들이 누구냐면 과거 '잃어버린 30년 이전 세대'인 일본이 경제대국이던 시절에 2030대를 보낸 이들이란 얘기다. 현재의 일본 50~60대 이상의 남성이 일본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자민당 집권세력은 오직 이들의 입맛에만 맞는 정책을 내놓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10대, 20대, 30대 젊은이들이 '한류'에 빠져 살고, 40대, 50, 60대 늙은 여성들이 '욘사마'를 외치고 다니는 것이 못마땅한 것은 일본의 늙은 꼰대들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본은 왜 이렇게 '잃어버린 30년 체제'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 이 책 <한일역전>은 그에 대한 '증거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고 있다. 저자인 이명찬 교수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이 직접 증언한 자료를 토대로 이런 사실에 대한 명백함을 아주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확고하게 결론을 내렸다. 이제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을 단순히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역전'이 되었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일본이 정신을 못차리고 한국을 자신들의 발 밑에 존재하는 냥 치부하는 것은 정말이지 잘못된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런 잘못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일본의 행태를 지적하고 있는데도, 오직 일본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 일본은 불행하다고 말할 지경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아직도 한국에 뒤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일까? 이를 두고서 저자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말한다. 아직 한국과 일본의 격차가 크지 않아서 '일본의 추락'을 일본이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허나 이미 '갈라파고스화' 되어 버린 일본에 미래는 추락밖에 남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만 남은 셈이다. 분명 일본의 기술은 '세계 최고'였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르면 언젠간 뒤떨어진 기술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일본에는 '개선'만 있고, '혁신'은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소니의 '워크맨'은 최고의 기술이었다. 카세트테입만한 크기의 플레이어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일본만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세트테입을 넘어선 '혁신'을 찾아볼 순 없었다. 세상은 카세트테입을 버리고 'MP3'로 갈아탈 때도 일본은 여전히 '카세트테입'의 크기를 줄이는 개선책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술력이 낙후된 일본의 기업들은 하나둘 폐업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셈이다.

이밖에도 일본의 '도장문화'로 대표되는 아날로그화는 일본의 생산성을 현저히 떨어지게 만들었다. 기차역의 승차권을 인식시키는 '개찰구'를 아무리 개선시켜도, 승차권 예매시스템을 '온라인'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디지털화의 생산성을 절대로 앞설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전세계가 'AI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어서 활개를 치고 있는데도, 일본에서는 어처구니 없게도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니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 정도의 기술력을 갖추고서 왜 '전자결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냔 말이다. 언제까지 '종이서류'에 '도장'을 찍는 사내문화를 전통이랍시고 끌어안고 있을 거냔 말이다. 일례로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도 '밀집, 밀접, 밀폐'된 장소를 피해 '재택근무'를 하던 직원이 목숨(?)을 걸고 결재를 받기 위해서 사무실에 출근을 해야 하는 헤프닝이 벌어졌던 일본이다. 한국이라면 '이참에' 전자결재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고 사무실까지 팔아버리고 전직원이 '재택근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그게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40년, 5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향후 2045년이 되면 전세계는 '특이점'을 맞아 본격적인 4차 산업혁명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닐때 일본은 그때까지도 '도장'을 만들어서 결재하는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을 것이란 상상이 간다. 그러나 그런 상상은 현실보다 나은 것일테다. 이미 그런 도장을 찍을 일본회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거란 상상이 더 실현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우려가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이 21년에 나왔으니 한국의 문재인 정부와 일본의 아베 정권이 한창 첨예한 갈등을 보이던 시점이다. 그때 이미 일본은 나락에 떨어져 있었다. 현재 24년의 일본은 어떤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뭔가 달라지려고 애를 쓰는 것 같은데, 별로 된 것이 없다. 4차 산업분야에서 한국보다 한참 뒤쳐진 일본은 '라인'을 강탈하려다 실패했고, 반도체를 팔아보려 애쓰는데 실현가능성은 여전히 '제로'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에서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나락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급기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어처구니없는 헛발질을 보여 나락으로 떨어진 일본경제꼴이 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정말이지 분통이 터질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제는 일본의 경제보다 더 우위에 서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분명 비상계엄사태를 맞이한 한국은 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는 우리에게 더 나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왜냐면 멍청이 같은 '윤석열 정권'이 더 빠르게 붕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란죄를 저지른 마당에 내란수괴 윤석열을 지지한 제2당 국민의힘도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탄핵정국의 혼란을 틈타 혹시나 '탄핵'이 불발이 될지라도 대한민국의 국민은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위기를 극복해낼 것이라는 사실을 전세계가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 바로 진정한 대한민국의 저력이다. 그런데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 그동안 자민당의 장기집권으로 '개선'만으론 해결이 안 된다는 걸 일본국민이 깨달았다면 '혁신'이 아닌 '혁명'이라도 치뤄서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현재로서는 그럴 의지조차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습관처럼 말하는 것을 고대로 돌려줘야 할 때인 듯 싶다. "이런 이웃을 둔 우리가 불행해질까 두렵다"고 말이다. 그러니 제발 정신 좀 차려주길 바란다. 일본사람들~ 너희는 지금 이대로 가면 후진국이 될 뿐이니 말이다. 지금도 후진국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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