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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
이명찬 지음 / 서울셀렉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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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 이명찬 / 서울셀렉션 (2021)
[My Review MDCCCLXXXV / 서울셀렉션 1번째 리뷰]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침략전쟁을 일삼았으면서도 되려 '피해국 코스프레'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과거의 잘못이 명명백백 드러나는데도 사죄는커녕 이미 '다 지나간 일'을 들춰내 평화로운 양국(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훼손할 작정이냐면서 도리어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일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 '선진국의 너그러움'인냥 한일 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우호관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한국인들의 국민성이 너무나도 낮아서 선량한 일본 국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니, 앞으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하여 찬성을 하는 것만이 한국에도 유리한 결정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훈계하곤 한다.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일본이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앞선 나라일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가 말이다. 마치 일본의 말을 듣지 않는 한국은 큰코 다칠 것이 뻔하다는 듯이 으름장을 놓는 일본의 정치인과 경제인, 그리고 사회유명인사들의 발언을 듣고 있으면 화딱지가 날 지경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것은 '우리 언론'이다. 이른바 '보수 언론(조중동한문)'은 일제히 일본의 발언을 종합해서 한국 전반에 고~대로 퍼뜨리기에 바쁘다. 마치 '상전의 노여움'에 벌벌 떠는 몸종들마냥 말이다. 일본의 발언이 맞는지 틀리는지 '기본적인 팩트 체크'도 하지 않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내뱉는 말들에 관한 '유/불리'를 따지지도 않고 일본은 선진국이니, 그들이 하는 말은 틀림 없는 사실일거라 지레짐작하고서 그저 '낮은 자세'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기가 찰 노릇이다. 아니 왜들 이 모양이란 말이냔 말이다.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나 어릴 적이던 70년대, 80년대에는 분명 일본은 한국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잘 사는 '선진국'이자 '경제대국'이 틀림없었다. 그때는 나도 국산품보다 '일제'를 선호했고, 실제로도 조잡한 국산 학용품보다 일제의 샤프가 더 튼튼하고, 볼펜이 슬슬슬슬 더 잘 써진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워크맨'은 너무나도 갖고 싶은 1순위 전자제품이었다. 일본의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서 살았던 것이 90년대까지의 나의 철없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가 넘어서자 사정은 달라졌다. 일본 경제의 거품이 빠지자 더는 '일제'를 선호하거나 '일본의 문화'를 동경하는 일은 사그라들었다. 점점 한국의 전자제품을 쓰게 되었고, 한국의 영화, 드라마, 노래를 보고 들으며 지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게 되었다. 때마침 일본에서도 '한류열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한일간의 달라진 위상을 직접 피부로 와닿게 되었다. 그렇게 2000년 이후에 '일본의 것'을 거의 대부분을 손절한 나였다.
그런데도 일본은 여전히 잘난 척을 한다. 아니 그 정도만 한다면 그냥 애교로 봐서 넘어가줄 만도 한데, '혐한'을 외친단다. '재특회'를 조직해서 재일조선인들에게 해코지를 하고,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테러 수준의 범죄까지도 심심찮게 벌인다고 한다. 아니, 일본인은 다들 선량하다면서 왜들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의 인식속에는 한국(조선)을 '제2국민' 취급을 한다고 하는 믿을 수 없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도 아닌데, 웬 '제2국민' 소리냐고 의문을 가졌지만, 일본 아베 총리의 발언들이 나온 근본원인을 따지고보면 그러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아베 총리의 (한국을 향한) 조치들을 본 일본인들이 총리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일본 총리를 일본국민들은 지지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아베 총리측의 부정부패가 들통이 나서 자민당의 인기가 추락하자 이제는 아베 총리도 물갈이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베 총리에 대한 일본국민의 지지율은 여전히 높았고 견고했다. 일본인들은 모두 멍청이들인가 싶었는데,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자 불쌍해질 정도였다.
그 까닭은 역대 일본 정부가 '근현대사 역사공부'를 국민들에게 전혀 시키지 않은 결과이고, 그 결과, 일본 국민들도 특히 젊은 세대층에서 '정치적 무관심'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일본의 정치인들은 젊은 세대를 뺀 '장년층 이상'의 늙은 세대에게만 맞춘 정책을 내세운다고 한다. 그것도 '여성 비하'가 일상이 되어버린 일본에서는 '늙은 남성들'이 현재의 일본 정치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그 '늙은 남성'들이 누구냐면 과거 '잃어버린 30년 이전 세대'인 일본이 경제대국이던 시절에 2030대를 보낸 이들이란 얘기다. 현재의 일본 50~60대 이상의 남성이 일본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자민당 집권세력은 오직 이들의 입맛에만 맞는 정책을 내놓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10대, 20대, 30대 젊은이들이 '한류'에 빠져 살고, 40대, 50, 60대 늙은 여성들이 '욘사마'를 외치고 다니는 것이 못마땅한 것은 일본의 늙은 꼰대들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본은 왜 이렇게 '잃어버린 30년 체제'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 이 책 <한일역전>은 그에 대한 '증거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고 있다. 저자인 이명찬 교수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이 직접 증언한 자료를 토대로 이런 사실에 대한 명백함을 아주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확고하게 결론을 내렸다. 이제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을 단순히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역전'이 되었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일본이 정신을 못차리고 한국을 자신들의 발 밑에 존재하는 냥 치부하는 것은 정말이지 잘못된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런 잘못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일본의 행태를 지적하고 있는데도, 오직 일본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 일본은 불행하다고 말할 지경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아직도 한국에 뒤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일까? 이를 두고서 저자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말한다. 아직 한국과 일본의 격차가 크지 않아서 '일본의 추락'을 일본이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허나 이미 '갈라파고스화' 되어 버린 일본에 미래는 추락밖에 남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만 남은 셈이다. 분명 일본의 기술은 '세계 최고'였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르면 언젠간 뒤떨어진 기술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일본에는 '개선'만 있고, '혁신'은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소니의 '워크맨'은 최고의 기술이었다. 카세트테입만한 크기의 플레이어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일본만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세트테입을 넘어선 '혁신'을 찾아볼 순 없었다. 세상은 카세트테입을 버리고 'MP3'로 갈아탈 때도 일본은 여전히 '카세트테입'의 크기를 줄이는 개선책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술력이 낙후된 일본의 기업들은 하나둘 폐업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셈이다.
이밖에도 일본의 '도장문화'로 대표되는 아날로그화는 일본의 생산성을 현저히 떨어지게 만들었다. 기차역의 승차권을 인식시키는 '개찰구'를 아무리 개선시켜도, 승차권 예매시스템을 '온라인'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디지털화의 생산성을 절대로 앞설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전세계가 'AI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어서 활개를 치고 있는데도, 일본에서는 어처구니 없게도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니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 정도의 기술력을 갖추고서 왜 '전자결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냔 말이다. 언제까지 '종이서류'에 '도장'을 찍는 사내문화를 전통이랍시고 끌어안고 있을 거냔 말이다. 일례로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도 '밀집, 밀접, 밀폐'된 장소를 피해 '재택근무'를 하던 직원이 목숨(?)을 걸고 결재를 받기 위해서 사무실에 출근을 해야 하는 헤프닝이 벌어졌던 일본이다. 한국이라면 '이참에' 전자결재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고 사무실까지 팔아버리고 전직원이 '재택근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그게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40년, 5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향후 2045년이 되면 전세계는 '특이점'을 맞아 본격적인 4차 산업혁명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닐때 일본은 그때까지도 '도장'을 만들어서 결재하는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을 것이란 상상이 간다. 그러나 그런 상상은 현실보다 나은 것일테다. 이미 그런 도장을 찍을 일본회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거란 상상이 더 실현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우려가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이 21년에 나왔으니 한국의 문재인 정부와 일본의 아베 정권이 한창 첨예한 갈등을 보이던 시점이다. 그때 이미 일본은 나락에 떨어져 있었다. 현재 24년의 일본은 어떤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뭔가 달라지려고 애를 쓰는 것 같은데, 별로 된 것이 없다. 4차 산업분야에서 한국보다 한참 뒤쳐진 일본은 '라인'을 강탈하려다 실패했고, 반도체를 팔아보려 애쓰는데 실현가능성은 여전히 '제로'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에서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나락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급기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어처구니없는 헛발질을 보여 나락으로 떨어진 일본경제꼴이 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정말이지 분통이 터질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제는 일본의 경제보다 더 우위에 서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분명 비상계엄사태를 맞이한 한국은 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는 우리에게 더 나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왜냐면 멍청이 같은 '윤석열 정권'이 더 빠르게 붕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란죄를 저지른 마당에 내란수괴 윤석열을 지지한 제2당 국민의힘도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탄핵정국의 혼란을 틈타 혹시나 '탄핵'이 불발이 될지라도 대한민국의 국민은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위기를 극복해낼 것이라는 사실을 전세계가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 바로 진정한 대한민국의 저력이다. 그런데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 그동안 자민당의 장기집권으로 '개선'만으론 해결이 안 된다는 걸 일본국민이 깨달았다면 '혁신'이 아닌 '혁명'이라도 치뤄서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현재로서는 그럴 의지조차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습관처럼 말하는 것을 고대로 돌려줘야 할 때인 듯 싶다. "이런 이웃을 둔 우리가 불행해질까 두렵다"고 말이다. 그러니 제발 정신 좀 차려주길 바란다. 일본사람들~ 너희는 지금 이대로 가면 후진국이 될 뿐이니 말이다. 지금도 후진국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