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영웅전 4 - 구음진경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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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IV / 김영사 26번째 리뷰] <사조영웅전>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이 등장한다. 바로 '곽정과 황용의 약혼'이다. 이야기 초반에는 '완안강과 목염자의 비무초친(무예로 베필을 구한다)'가 나왔다면, <사조영웅전>의 진정한 주인공인 곽정과 황용이 '운명적인 만남'에 이어 장인어른(동사 황약사)께 두 사람의 혼례를 약조 받게 되는 극적인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그것도 [구음진경]이란 절세무공비급이 동시에 등장하며 이야기를 한층 더 고조시켰다. [구음진경]은 곽정이 여섯 살 무렵에 이미 등장했었다. 진현풍과 매초풍이 '구음백골조'와 '최심장'이라는 악랄한 무공을 선보이며 이미 한 차례 등장했었는데, 이번에 그 [구음진경]의 전체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무공을 '곽정'이 완벽하게 익히게 된다. 이로써 곽정은 '동사서독 북개남제 중신통'이라는 무림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무공실력이 크게 증진되었다. 그리하여 '또 하나의 영웅 후보'가 성립된 셈이다.

  이제 본격적인 '무림고수'가 등장한다. 바로 '동사서독 북개남제 중신통'이라 불리는 다섯 명이다. '천하오절'이라고도 불린다. 각각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의 '방위'에 다섯 명의 무림고수를 나열한 이름인데, 그 이름에서 그 인물의 성격까지 알 수 있다. 먼저 '동사 황약사'는 도화도의 주인으로 성격이 괴팍하고 종잡을 수 없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가 창안한 탄지신통, 낙영신검장, 난화불혈수, 옥소검법 등의 무공은 변화무쌍함과 동시에 초식 하나하나가 절정에 다달았다. 이런 절정의 무공뿐 아니라 머리도 똑똑하여 다양한 학문의 조예가 깊다. '서독 구양봉'은 서역 백타산의 주인이다. 이름 그대로 '독'을 다루는 능력이 타고나서 엄청난 수의 뱀을 다루며 음험한 기운을 내뿜어 <사조영웅전>의 '악역'을 자처한다. 그의 무공 중에 '합마공'은 몸을 움추렸다 한 방향으로 일격을 내뿜는 단순한 무공이지만, 그 내공의 응집력은 어마무시한 까닭에 '절대무림고수'조차 합마공을 정면에서 마주하며 이겨내지 못할 정도다. 다음으로 '북개 홍칠공'은 이미 등장해서 곽정과 황용의 사부가 되었지만, 다시 소개하자면, 거지들의 우두머리로 '개방의 18대 방주'를 맡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무공은 '힘' 위주의 외가무공인 '항룡십팔장'이고 '곽정'이 물려받았으며, '대나무 막대기'를 무기로 삼은 '타구봉법'은 신묘한 기술로 개를 때려잡는 무공인데, 훗날 황용이 개방 방주를 맡게 되면서 홍칠공에게 전수를 받는다. 아직 '남제'는 등장하지 않았으나 '대리국의 황제'이며, '일양지'라고 하는 절세무공으로 천하를 들었다놨다하는 불세출의 무림고수이다. 마지막으로 '중신통 왕중양'은 전진교의 창시자다. 그에 대해선 잠시 소개를 미루고, '천하오절'에 대해 마무리하련다.

  '천하오절'은 앞서 말한 다섯 명의 무림고수를 일컫는 말인데, '화산논검대회'에서 무공의 우열을 가린 뒤에 불린 이름이다. 명색이 '대회'란 이름이 붙었는데, 마땅히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목적은 다름 아닌, [구음진경]의 소유를 정하려 했던 것이다. 대회는 7일 낮밤 동안 쭉 이어졌고, 다섯 명 가운데 '왕중양'이 가장 강했고, 나머지 네 사람은 서로 '무승부'로 끝맺었다. 그래서 [구음진경]은 왕중양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해적판'에서는 [구음진경]의 유래에 대해서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었는데,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이 책에서는 그 유래를 밝혔다. 바로 '황상'이라는 도사가 5000권이 넘는 '도교'에서 유래한 경전을 집대성한 뒤에 저절로 엄청난 무공을 쌓게 되었는데, 그 무공과 맞대응할 수 있는 무림고수는 '명교(나중에 <의천도룡기>에 등장하는 서역의 종파)의 사대천왕' 뿐이었는데, 황상은 혼자의 몸으로 중과부적이었으나 용케 살아남았고, 복수를 하기 위해 다시금 경전속의 무공들을 하나하나 되새겼는데, 그 수련기간이 무려 40년이 흘러버린 것이다. 그런데 정통한 '내공수련'을 겸한 탓에 황상은 오히려 늙지 않고 건강해진 반면에 황상보다 무공이 높았던 적수들은 이미 늙어 죽은 지 오래 되었던 터라 복수는커녕 허탈감만 느끼게 되었단다. 그렇게 '인생무상'을 느끼고 나서 자신이 쌓은 절세무공을 한 권의 책으로 써놓았으니, 그것이 바로 [구음진경]이었단다. 천하오절은 바로 그 무공비급이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자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화산논검대회'를 열었던 것이다.

  왕중양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자면, 그는 천하오절 가운데 유일한 '실존인물'이다. 그는 '전진교'를 창시하였는데, '전진교'는 12세기 중국 도교 종파의 하나로, '금련정종'이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왕중양의 제자에 해당하는 '전진칠자'도 모두 실존인물이다. 순서대로 '단양자 마옥', '장진자 담처단', '장생자 유처현', '장춘자 구처기', '옥양자 왕처일', '광녕자 학대통', '청정산인 손불이'다. 전진파의 도사들은 도교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교, 불교, 도교'의 일치를 주장하며 교세를 확장했더랬다. 그중 옥양자 왕처일은 금나라 세종에게, 장춘자 구처기는 몽골 칭기즈 칸에게 초빙을 받아 '불로장생의 비법'을 강의하는 등 '남송시대'에 대대적인 유명세를 이끈 교파였다. 이후 윤지평, 이지상이 물려받은 교단은 원나라 헌종 때까지 흥하다가 '몽골제국'이 확장하면서 불교가 크게 흥했고, 불교의 위세에 위축되며 명맥이 끊기게 되었다. 저자 김용은 이들 실존인물을 소설속 '정중앙'에 배치시켜 놓고 '구음진경'이라는 무공비급을 곁들여서 실제 역사와도 같은 '흐름'을 전개시키며 독자들에게 유쾌한 몰입감을 선사하였다. 이렇게 '실제 역사'와 '허구 소설'을 이어주는 역할을 '가상 인물'들로 연결시킨 것이다. 바로 왕중양에게 의형제 '노완동 주백통'이 있었다는 설정이다. 비록 왕중양은 오래 살지 못했지만, [구음진경]을 차지한 뒤에 그 무공을 취하지 않았다. 그가 [구음진경]을 차지한 까닭은 너무 강력한 무공이 세상에 퍼졌을 때, 부도덕한 인물들이 힘만 믿고 악행을 저지를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중양은 자신은 물론, 자신들의 제자에게도 '그 무공'을 배우고 익히지 못하게 유언을 남겼다. 그런데 왕중양의 유지를 받아 [구음진경]을 갖게 된 주백통의 실수로 세상에 유포되었고, 그 무공이 세상을 할딱 뒤집어 놓게 되었다는 스토리를 전개시킨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구음진경]의 무공을 최초로 전수받게 된 인물이 너무 착해서 탈인 '곽정'이라는 점이다. 물론 곽정에게 '구음진경의 무공'을 가르치다 본의 아니게(?) 무공을 익혀버리고 만 '주백통'도 엄청난 무공실력을 갖게 되어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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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 3 - 항룡십팔장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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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II / 김영사 25번째 리뷰] 2권에 이어지는 줄거리는, 금나라 여섯번째 황자 완안홍렬의 궁궐에 초빙된 무림고수들과 곽정, 황용 사이의 대결이 펼쳐진다. 완안홍렬은 남송을 일거에 물리칠 수 있기를 바라며 여러 무림고수들을 섭외한 뒤에 악비가 숨겨둔 '무목유서'라는 비급을 찾아달라고 요청을 한다. 이를 우연히 들은 곽정과 황용은 금나라의 음모를 저지하려 들지만 중과부적으로 인해 여러 고수들에게 도리어 포위되고 만다. 이렇게 곽정과 황용의 탈출기가 그려지면서 완안강(훗날 양강)의 스승인 매초풍이 등장하고, 장춘자 구처기, 그리고 곽정의 사부들인 강남육괴까지 마침맞게 등장해서 곽정과 황용이 무사히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사이 양철심과 포석약도 궁궐에서 도망을 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잡히게 되고, 자신들 때문에 곽정과 황용을 비롯한 구처기와 왕처일, 그리고 강남육괴까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맞이하자 스스로 자결을 하여 위기를 일단락 시킨다. 그렇게 두 부부의 사후에 곽정과 양강은 의형제로 맺어지게 되고 자신들의 부모를 죽인 원수 완안홍렬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을 하며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그뒤에 곽정과 황용은 홍칠공이란 거지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데, 그가 바로 화산논검대결에서 '다섯 명의 무림고수' 가운데 한 명인 '북개'다. 그는 거지들의 모임인 '개방'의 방주이고, '항룡십팔장'과 '타구봉법' 등 외가무공의 달인이다. 이 만남을 통해 곽정은 홍칠공에게서 '항룡십팔장'을 전수받게 된다. 항룡이란 이름에 걸맞게 '용이 내린듯'한 강력한 외공을 다루며 주로 손바닥으로 치고 때리고 막는 '공격 겸 방어술'의 최고 무술이다. 십팔장이란 동서남북을 쪼개 주위 십육방위와 함께 머리 위와 다리 아래까지 모두 '십팔방위'를 철통같이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무공의 기초가 탄탄한 곽정이 홍칠공의 '항룡십팔장'까지 더하게 되니 곽정의 무술실력은 한층 업그레이드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홍칠공은 아직까지 정식으로 '제자'를 받아들인 적이 없기 때문에 곽정과 황용에게 무술(황용에겐 '소요유' 등)을 전수했지만 '사제지간의 예'를 올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곽정에게도 '항룡십오장'만을 전수하며 진짜 제자가 되지는 못했다.

  한편, 홍칠공과 헤어진 곽정과 황용은 태호의 주인인 '육승풍'과 만나 기이한 인연을 맺는다. 육승풍은 동사 황약사의 제자로 진현풍, 매초풍이 사부님을 배반하고 '구음진경'을 훔쳐 도화도에서 달아나자 분노한 황약사에 의해 다리가 절단나서 무공을 모르는 '앉은뱅이' 선비로 신분을 감추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집에 황약사의 딸인 황용이 찾아들었으니 묘한 인연이 시작된 셈이다. 황용은 그녀 나름대로 도화도의 '기문둔갑술'과 흡사한 풍경에 놀라움을 감추고 육승풍을 몰래 관찰한다. 그러는 사이에 매초풍이 완안강을 구하기 위해 육승풍의 집으로 들이닥친다.

  완안강이 육승풍의 집에 잡혀오게 된 까닭은 친부친모의 죽음에도 '부유한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완안홍렬의 아들로 남았고, 이번 남송정벌을 위해서 '남송과 몽골'이 서로 연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 출병을 했던 것이다. 이를 육승풍의 아들이 강남 태호 근방의 영웅들을 모아서 '금군의 야욕'을 기습했고, 그 결과 완안강이 사로잡혀 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완안강이 잡혀오자 그를 사랑하는 목염자가 몰래 찾아와 완안강을 구해주겠다고 약조를 했고, 그 약조로 완안간의 사부인 '매초풍'에게도 연락이 닿아 육승풍의 집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그런데 매초풍은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눈먼 매초풍의 뒤를 따라 '청의서생'이 함께 따라왔는데, 그가 바로 '동사 황약사'였던 것이다.

  황약사의 이야기를 먼저 하기에 앞서 '철장수상표 구천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화산논검' 당시에 초청을 받았을 정도로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였고, 호남의 '철장방' 방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송나라 사람이면서도 '금나라'에 포섭되어 한족을 배신하게 된다. 그래서 육승풍의 집에 귀한 손님으로 모셔져서 대접을 받으면서 육승풍과 곽정, 황용, 그리고 강남육괴까지 모두 '곧 멸망한 송을 배신하고 금을 받들 것'을 요구한다. 이에 엄청난 무공의 소유자인 구천인과 목숨을 건 대결을 펼쳐지게 되는데, 웬걸! 구천인의 무공이 곽정 한 사람만 못할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더니, 엄청난 내공을 지닌 것처럼 보여주었던 것이 사실은 모두 '눈속임'에 불과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게 된다. 그가 정말 '철장수상표 구천인'이 맞는 걸까?

  한편, 황약사의 등장으로 황용은 도화도로 되돌아가게 되고 곽정을 비롯해서 여러 고수들이 도화도로 가게 된다. 그 뒤의 이야기는 4권에 이어진다. 드디어 '절대무림고수'들이 등장했다. 바로 '동사서독 북개남제 중신통'이라는 다섯 명과 함께, 이들과 대결을 할 뻔했던 '철장수상표 구천인'까지 등장했다. 아직 '서독'과 '남제', 그리고 명운을 다한 '중신통'은 이야기에 본격 등장하진 않았지만, 곧이어 등장할 것이 분명하고, 이미 죽은 '중신통'을 대신해서 그의 의동생으로 등장하는 '노완동 주백통'이 곽정과 의형제를 맺으며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질 터이니 기대하셔도 좋다.

  <사조영웅전>은 총 8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3권까지는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본격적인 '무협지'의 성격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스토리가 전개되어 장황한 느낌이 들어 살짝 지루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간중간이나마 '곽정과 황용의 만남'을 다루면서 기대를 불어넣어두고 있기에 그닥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참에 '중국사'에 대해 잠깐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남송시대'다. 여진족이 발흥하여 송나라를 괴롭한 결과 '북송'에 해당하는 강남 이북 지역(장강 이북)은 모두 '금나라의 영역'이 되었다. 이렇게 금나라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남송'을 압박하고, 몽골을 비롯해서 주변 국가들과 대치된 상황이 전개된다. 하지만 현대의 중국사의 관점은 이들 모두를 '중국사'로 끌어안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소수민족'에게까지 '한족정통론'에 입각한 중국사를 강요하며, 거대한 용광로처럼 모두를 한데 뭉뚱그리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민족차별'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어찌보면 '소수민족 차별'을 하면서 '한족 우대'를 강화하고 있으니, 그들이 말하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갈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보여지는 '한족, 여진족, 몽골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그들의 후손에 해당하는 '현대의 중국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자못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조영웅전>의 주제는 '영웅이란 무엇인가?'다. 그러면서 '영웅의 조건'으로 애국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애국의 주체'는 한족이다. 아무리 '여진족'과 '몽골족' 가운데서 영웅적 위상을 타고난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들을 '영웅'이라 단정짓기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다는 말이다. 왜냐면 여진과 몽골의 영웅이 '애국'을 위하면 자연스레 '송나라'에 위해를 가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한족'을 괴롭히는 영웅은 영웅이라 칭할 수 없다는 기조를 바탕으로 깔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곽정이 칭기즈칸의 부마이고, 곽정이 칭기즈칸 덕분에 '살길'이 열렸던 은덕이 있더라도, 곽정은 '한족'이 까닭에 민족을 배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몽골이 송나라를 도와(?) 금나라와 함께 싸울 때에는 '우방'이었기에 문제가 없었던 일도, 금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배은망덕하게 남송을 공격한 몽골이 '적대국'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해버린다. 이런 이야기를 읽은 현대 중국의 '내몽골족'과 '만주족'은 어떤 기분이 들겠느냔 말이다. 그들도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며 통크고 대범하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다르다'라고 '하나의 중국'에 동조할 수 있을까?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인들은 대국(大國)적인 관용정신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하나의 중국'을 내세울 것 같으면, '소수민족차별'과 같은 억압적인 정책을 버리고 '소수민족과 한족'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각각의 고유문화를 포용하는 정책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 중국의 정책은 '공정(工程, 역사왜곡)'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역사왜곡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하나의 중국'으로 아우르는 역사연구프로젝트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며 온갖 폐해를 일삼고 있는 점이다. 이로 인해 티베트인, 신장 위그루인, 내몽골인, 그리고 연변조선인 들의 '고유한 문화'를 말살하고, 중국의 문화(한족중심)와 사상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끝내는 '소수민족'을 한족으로 동화시킨 뒤에 오직 '한족만을 위한 애국정신'을 강조할 속셈이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일까? 한족도 '청나라'때 변발을 강요 당하면서도 스스로 '한족'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으면서 말이다.

  이렇듯 '소수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현대 중국의 '하나의 중국' 프로젝트는 이웃나라를 넘어 전세계를 '중국'의 발 아래 놓겠다는 야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종이의 원조가 한나라 때 '채륜'이 만든 것이 최초라면서 '페이퍼'의 어원으로 불리는 '파피루스'조차 부정하기에 이르렀고, 전세계 무술은 모두 '중국무술의 아류'라고 폄훼할 뿐만 아니라, 한류열풍을 틈타 '한국 고유의 문화'까지 모조리 '중국의 것을 베낀 수준'이라고 폄훼하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면, 얼탱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 까닭에 나는 '중국'을 '中國'라고 불리는 까닭을 大國이라고 불리기엔 속갈딱지가 벤댕이보다 작고, 小國이라고 불리기엔 땅덩어리가 너무 크니 그 '중간격'인 중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딱 적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국은 대국다워야 대국인 것이다. 이 책이 쓰인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중국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2차 국공내전' 이후 모택동은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으로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후 등소평이 '일국양제'의 지혜로 홍콩문제를 돌파해 우리에게 익숙한 '홍콩의 부흥'을 이끌기도 했다. 이 소설도 그 부흥의 흐름에서 탄생한 소설이고 말이다. 그래서 <사조영웅전> 속의 내용이 현대 중국의 기조와 잘 들어맞지 않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중국이 '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도 이 책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보다 더 큰 포용정신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할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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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외전 : 그들이 살아가는 법 퇴마록 외전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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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 / 엘릭시르 6번째 리뷰] <외전>은 '디테일'이 중요하다. '국내편'과 '세계편'으로 숨가쁘게 이어지는 퇴마사들의 활동 사이사이를 꼼꼼하게 메꾸어줄 '또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마사들이 악령을 물리치고 원혼을 달래주는 활동 이외에 '어디에 모여 사는지' 궁금했고,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닐 나이 어린 준후는 '학교'에 왜 안 다니는지, 비교적 젊은 두 남녀인 현암과 승희는 '연인 사이'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인지, 그리고 박신부와 장준후, 이현암, 현승희, 네 명의 퇴마사 이외에 다른 등장인물은 '무얼'하며 지내는지 등등 말이다.

  이 책 <퇴마록 외전 : 그들이 살아가는 법>에선 그러한 궁금증들을 모두 풀 수 있다. 첫 화인 <그들이 살아가는 법>에서는 '해동밀교 본산'이 송두리채 날아가버리고 박신부와 이현암, 그리고 장준후가 '퇴마사'로 합류하면서 박신부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담담, 그 자체'로 보여준다. 서로 '다른 길'을 걷던 세 명이 함께 한 집에서 잘 어울어져 살았을 것 같았지만,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달라서 한 자리에 함께 식사를 하는 것조차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가톨릭의 신부는 교리상 '속세'에서 벗어난 삶을 살지만 가려야 할 음식이 그닥 없는 편이다. 그래서 힘겨운 퇴마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싱싱한 회'를 곁들여 푸짐한 몸매에 맞게 푸짐한 상을 차려 먹곤 했는데, 현암과 준후는 각각 '도가 계열'과 '밀교(불교와 무속) 계열'인지라 '육식'을 비롯한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있었기에 '밥과 채소 위주의 식단'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처음 함께 모인 자리인지라 그것조차 준비가 미흡해서 '라면'으로 떼우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것조차 '스프'를 거의 넣지 않은 심심한 라면을 말이다.

  두 번째 편인 <보이지 않는 적>에서는 '증오'라는 악령과 한바탕 싸움을 펼친다. '미워하는 마음'인 증오는 아무런 이유도 까닭도 없이 '미워하는 마음'만으로도 나타나기에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진 퇴마사라고 하더라도 쉽사리 '제압'할 수 없는 악령이었다. 거대한 악과 싸울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사악한 무리와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사소한 악과 싸울 때는 그럴 수 없어 더욱 힘들기만 했다. 물론 '증오심'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을 때엔 그리 큰 위협을 주지도 않지만 잡기는 더욱더 힘들어지고, 증오하는 마음이 '집단화'가 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에 퇴마사들의 능력으로도 제압할 수 없는 큰 일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런 증오심이란 '평범한 사람'에게서도 나타나고, 금새 또 자취를 감춰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갈 수도 있는 탓에 애꿎은 희생자를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 '퇴마사 일행'들은 사소하디 사소한 증오라는 악령 때문에 곤혹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퇴마사들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악의 무리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맞서 싸우지만 '죄 없는 사람'에게는 결코 주술을 쓰거나 공력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사악한 영'에 빙의가 된 사람을 퇴마사들을 죽이려고 달려들지만, 퇴마사들은 결코 '인간'에게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오직 '사악한 영'에게만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퇴마행을 할 뿐이다. 그로 인해 퇴마사들은 '죽을 고비'를 숱하게 겪게 된다.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일까? 범죄자들 중에도 '주범'이 있는 반면에 그를 돕는 '공범'도 있어서 공권력을 행사하는 공무원들이 '주범'을 잡는데 방해를 하는 '공범'에게는 '공무집행방해'를 죄목으로 삼아 체포하고 벌을 내리곤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사악한 영혼에 홀딱 넘어가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도 혼내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저 사악한 영에 의해 '의식'과 '의지'를 잃고서 악행을 저지를 뿐이라면서 저들의 목숨조차 돌보지 않고 '뜻하지 않은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한다. 그냥 단박에 일을 해결하고 '더 큰 희생을 치룰 수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에는 '희생을 감수하고' 퇴마행을 하면 좋으련만 결코 그러지를 않는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 까닭을 세 번째 이야기인 <준후의 학교 기행>에서 찾아보자. 대한민국 초등3학년 나이인 '장준후'는 매우 영특한 아이다. 그 어려운 주술을 손쉽게 시연해낼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자기 또래와 함께 학교에 다니면 준후도 '평범한 일상'도 겪으며 더 넓은 세상을 알아갈 수 있겠다는 마음에 학교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부모님이 없는 관계로 누군가가 '부모역할'을 해야 했는데, 박신부는 '종교에 귀의한 몸'이었고, 이현암은 '초등3학년 아이'의 아빠라기엔 너무 젊었다. 그리고 영특한 아이라고는 하지만 유치원을 다닌 적도 없고 학교도 처음 가는 것이니 '학교수업내용'을 알 턱이 없다. 근데 더 큰 문제는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다'는 점이 준후가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거기다 '한복'을 즐겨(?) 입는 준후에게 반팔과 반바지처럼 노출(?)이 심한 옷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다 밀교 본산에서 사부님들에게 혹독한 수련을 받아낸 준후에게 '현대식 교육스타일'이 낯설기 그지 없을 수밖에...더구나 여선생님에게는 준후의 몸에 배어 있는 '하늘 같은 사부님의 가르침'을 받듯 깎듯한 예법이 도리어 '반항심'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또래 친구들도 아무리 똑똑하다한들 준후의 '낯선 행동'을 이해해줄 방법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주술력을 가지고 있으니 소위 껄렁거리는 친구들의 협박(?)이 우습기도 하고, 어린 아이들의 욕설조차 준후는 '처음 듣는 말'이라서 뜻을 짐작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준후의 등교 첫날은 '반나절의 헤프닝'으로 마무리 짓고 말았다. 등굣날이 자툇날이 되었으니 말이다.

  네 번째 이야기인 <짐 들어 주는 일>은 젊은 청춘 남녀인 현암과 승희가 '썸(?)'을 타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무술을 수련하는 도사님(?)과 다를 바가 없는 현암에게 '젊은 여자의 대쉬(?)'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퇴마행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한 사이가 되어 버린 승희는 현암에게 한없이 끌리기만 했다. 더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투시력'을 갖고 있는 승희의 처지에 '다른 남자'와 평범한 연애를 꿈꿀 수 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런 특별한 승희를 '있는 그대로' 아끼고 사랑해줄 남자는 '현암'밖에 없는 셈인데, 문제는 이 유일한(?) 남자가 무뚝뚝해도 너무 무뚝뚝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연인사이가 될 수는 없어도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낼 수만 있어도 원이 없겠구만, 이 남자 '철벽'도 이런 철벽이 없다. 더구나 현암의 왼팔에는 언제나 '월향'이라는 여자(?)가 찰싹 붙어 있다. 그리고 틈만 나면 꺼내 들고 정성들이고 소중히 여기는 품을 볼 때마다 웬지 모를 '질투심'마저 샘솟고 만다. 그래서 승희는 아주 작정을 하고서 '현암과 데이트'를 성사시키려 갖은 애를 쓰게 된다. 그렇게 둘은 '억지 춘향격'으로 백화점 쇼핑을 나서게 되는데...

  이번 외전의 마지막 이야기는 '주기선생 박상준'의 활약이다. 퇴마사들이 블랙서클을 쫓아 영국으로 떠나자 국내에서는 백호를 도와 '골치아픈 일(?)'을 해결해줄 능력자가 마땅히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분신술'처럼 서로 다른 두 곳의 장소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생령술'을 쓰는 최교주라는 살인자를 기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려 '주기선생'의 힘을 빌리려 한 것이다. 이는 백호에게 '어벤져스' 같은 특수요원들을 모으는 계기로 될 수도 있는 일이라 최대한 '주기선생'을 정중하게 모셔온 셈이다. 그런데 박상준은 능력에 비해 퇴마사들처럼 '헌신'하려는 마음이 태부족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돈'부터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5천만 원을 말이다. 그래도 퇴마사들이 자리를 비운 시점에 딱히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는 백호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약조하고서 '최교주의 범행'을 밝혀내고, '최교주 생포'까지 부탁을 했더랬다. 그런데 주기선생은 단순히 돈만 밝히는 도사는 아니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번 돈으로 나름 '선행'을 하였기 때문이다. 도가 계열의 도사 체면에 자신의 능력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천박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퇴마사들과는 사뭇 다른 '퇴마행'을 보여 주었다. 자신의 능력을 뽐내길 좋아하고, 그렇게 뽐낼 바에야 좀 대단한 실력이면 좋으련만, 상대를 압도할 정도로 대단함도 보여주질 못하고, '일처리' 또한 철두철미하지 못해 좀 과격하고 매우 엉뚱한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며 '뒷수습'을 하는 백호에게 '또 다른 골칫거리'를 안겨줄 뿐이었다. 결국 '최교주 사건'을 해결하긴 하는데, 더 많은 퇴마사들을 모으려는 백호의 꿈은 지울 수밖에 없게 되고 만다.

  <퇴마록>은 십수 번 읽고 또 읽었지만, <외전>은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다. 그동안 벼르고 별렀지만 '본편'에 비해 너무나도 늦게 출간(?)했기에 진즉에 구매를 하고서도 선뜻 읽기를 망설여지다가 겨우 읽게 되었다. 그래서 그리 큰 감흥이 오르지는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그런데 과거에도 '외전'이 출간되었었다고 일찌감치 이야기를 들었는데, 왜 '외전'을 구하기 힘들었던 것일까? 그 시절에 읽었더라면 이 책도 '추억'의 일부로 남았을텐데, 지금도 내 추억속에서 멋진 활약을 펼치는 '본편'과는 달리 이번 '외전'은 살짝 외따로 겉도는 느낌을 받았다. 어서 '외전'도 내 추억속에 젖어들게 만들어야겠다. 그래야 퇴마사들의 '디테일'이 함께 어울어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다음엔 '또 하나의 외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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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2 : 세계편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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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XLIX / 엘릭시르 5번째 리뷰] 이제 퇴마사들이 활동무대를 '국내'를 넘어 '세계'로 옮기게 된다. 그 처음은 영국이다. 세계편 1권에서 좀비를 다루던 호웅간과 유체와 염체를 자유자제로 다루던 이름을 알 수 없는 닳아빠진 구리 십자가의 주인과 케인, 세크메트의 분노를 대한민국에 '대신' 뿌리려던 가짜 커크 교수 등이 '블랙서클'이라는 복수의 단체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마사 일행은 블랙서클의 '마스터'라는 사람을 찾기 위해 세계를 누빌 계획이었다. 세계편 2권에서는 영국부터 시작해서 독일과 프랑스까지 스토리가 이어진다.

  퇴마사들의 역할은 '악령퇴치(엑소시즘)'가 아니다. 제때 풀지 못한 원한을 품은채 구천을 떠도는 불쌍한 영혼들을 구하고, 그로 인해 애꿎게 희생당하는 인간들을 돕기 위해 자신들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나 훌륭하고 위대한 일을 하면서도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싸우고 있는 이들 퇴마사의 모습이 쌩뚱맞기 그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권 속 <아라크노이드>에서 퇴마사들의 활약을 간단히 요약하면, 컴퓨터 바이러스에 '원혼'이 깃들어 암병동센터의 메인컴퓨터를 망가뜨려서 '원한을 품은 환자'를 살해하려는 '거미 바이러스 악령'을 찾아나섰더랬다. 그런데 컴퓨터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선 '백신 프로그램'을 플로피디스켓에 담아 컴퓨터디스크에 꽂고 '실행'시켜야 한다. 그런데 원한령이 깃들어 있는 바이러스인 까닭에 암병원내 '메인 서버'에 침투해서 환자의 정보를 싸그리 지워서 의료진이 환자의 데이터를 몰라서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게 만들려는 절체절명의 순간인데, 그 메인서버실로 들이닥친 퇴마사들이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주저 앉아 눈을 감지를 않나, 십자가를 들고 오라를 펼치질 않나, 성수를 컴퓨터에 뿌리며, 불이 붙은 부적을 허공에 날리고, 월향검에 검기를 담아 서버 메인전력선을 잘라내고, 그마저도 급박한 나머지 오른주먹에 공력을 잔뜩 집어 넣어 커다란 메인컴퓨터를 한 방에 작살을 내는 아수라장을 만들고서야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겠느냔 말이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야 이번에도 퇴마사들이 멋지게 한 건 해결했다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겠지만, 이를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CG' 없이 그대로 연출한다면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사람이 서버실에 난입해서 물장난, 불장난, 번개 지지직에, 귀곡성이 울려퍼지는 난리 부르스를 연출하고서 마지막에는 한 주먹으로 컴퓨터를 때려부수는 장면만을 보여줄 뿐일 것이다. 그야말로 '쌩쇼'였을 것이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세계'와 싸우는 일이 생각보다 거룩하거나 위대해 보일 턱이 없다는 얘기다. '보이는 세상'에서만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말이다. 그래서 <퇴마록>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는 그리 큰 이슈를 끌지 못한 듯 싶다. 더 큰 문제는 '등장인물'을 독자들의 상상에 미치지 못하는 허섭한 쓰레기로 등장시킬 공산이 크다. 그러니 <퇴마록>은 책으로 즐기시길 바란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오컬트 무비'밖에 되지 못할 끔찍한 영상속에서 착하디 착한 퇴마사들이 악전고투를 하는 모습이 '영상미'를 연출하지 못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착한 마음'을 연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말이다.

  암튼, 영국에 도착한 퇴마사 일행은 '아더왕'을 만났고, '고려청자'에 푸른 하늘을 되찾아주었으며, 독일로 가서 '늑대인간'들의 공격을 막아냈고, 프랑스를 경유해 '거미 바이러스'에 맺힌 복수의 일념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하였다. 이제 3권에서는 '뱀파이어의 고향'인 왈라키아(루마니아)로 가서 '블랙서클 일당들'과 대결을 펼칠 것이다. 그리고 최종 보스에 해당하는 '마스터'를 만날 것인데, '개정판'을 내면서 이 3권에 해당하는 스토리를 다시 쓰겠다고 했으니 기대가 크다. 세계편 1, 2권까지는 큰 변화는 없었기에 더욱 그렇다.

  의아스러운 것은 '블랙서클'에 속한 악당들이 하나같이 뼛속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의 속셈이 전세계를 파괴하고도 남을 '악 중의 최악'이지만, 애초의 동기는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했다는 나름의 핑곗거리가 있더라는 말이다. 물론 그 내용은 3권에서 최종적으로 밝혀지겠지만, 경악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짓을 저지른 악당들마저 '속여버린' 최고의 악마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세상에 어찌 이런 끔찍한 '악'이 나타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엄연히 이쪽과 저쪽에 '구분'이 있고, 서로 간섭할 수 없는 '불문율'이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짐작컨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악으로 가득하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올 수 없는' 불문율이 깨지지 않았다면, 이쪽에서 그쪽을 '불러들인' 악마가 있다는 얘기다.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에 머물고 있는 '악마'가 말이다. 그리고 그 '악마'가 한을 품고 억울한 영혼들을 부추겨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온통 악으로 물들게 만들어 버린다는 시나리오가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악마는 과연 누구인가? 평화를 깨뜨리고 공포에 떨고 불안을 부추기는 '악의 세력'이 과연 무엇이란 말이냐? 그것의 존재를 밝혀내는 것이 '세계편'을 비롯해서 이어지는 '혼세편'과 '말세편'에서 계속 물음을 던지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악의 세력'이 무엇인지 밝혀지면서, 세상을 어둠에서 밝음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함께 찾아내게 될 것이다. 그 방법 가운데 일부를 '퇴마사들의 선한 의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선한 의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도 내밀으라'는 결코 실행으로 옮기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이런 문구로 어떤 해비메탈 그룹은 예수를 '마조키스트(매 맞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의 원조라고 노래로 읊기도 했는데, 이를 '선한 목적'으로 풀이를 하자면, 상대의 왼쪽 뺨을 때리기 위해선 자신의 '오른손'을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때려야 한다. 그런데 오른쪽 뺨을 내밀라는 예수의 말에서 '큰뜻'을 이해하려면, 상대의 왼쪽 뺨을 때린 오른손으로 '상대의 오른쪽 뺨'을 때리기 위해선 '오른손'을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때려야만 한다. 이렇게 '오른손으로 때리는 뱡향'이 달라짐을 주목하면. 자신의 오른손으로 '오왼 방향'으로 때리는 것은 '올바른 일을 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이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게 되면 '옳지 못한 일을 했다'는 뜻이란 말이다. 즉, 자신의 오른손으로 '왼오 방향'으로 때렸으니, 자신이 방금 한 일을 '부정'하며 스스로 '잘못한 짓'임을 인정하게 된다는 뜻이란다. 감히 '예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뜻깊은(?) 일일 것이다.

  이토록 뜻깊고 성스러운 일을 퇴마사들은 '선한 의지'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악령'과 맞서 싸우면서도 오직 사악한 악령에게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뿐, 그 악령에 깃들여져서 '꼭두각시'에 불과한 인간들을 향해선 결코 '능력'을 퍼지 않는단 말이다. 설령 퇴마사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결단코 쓰지 않는다. 여타의 '오컬트 장르'에선 볼 수 없는 성스러움이다. 악과 싸우다보면 '최소한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데도, 퇴마사들은 그것조차 용납치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단지 자신들의 능력이 모자라 애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만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그래서 더욱더 부지런히 '퇴마의 길'을 걷고자 할 뿐이다. 그로 인해 얻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어떠한 '대가'도 받으려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끔찍하고 참혹한 전쟁에서도 이러한 '선한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쟁으로 해결될 일이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부터 '선한 의지'로 맞서 싸워야 할 것이다. 그들의 논리로는 오직 '파괴'만 남을 뿐이니, '평화'와 '공존'의 아름다움으로 설득할 때까지 '선한 의지'를 꺽지 않는 것이다. 또한 상대의 무차별 공격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비폭력저항'으로 맞이한다면 '한쪽의 일방적인 학살'일 뿐일 것이다. 이런 학살이 자행되는 것을 보고도 '국제사회'가 선한 쪽으로 움직이길 포기한다면 그런 국제사회가 바로 '악의 근원'인 셈이다. 강대국은 약소국을 공격해도 '정의'롭고, 약소국은 강대국에 저항을 하면 '불의'에 대한 정의의 심판을 가해도 된다는 논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그런 논리가 '악마의 심보'인 셈이다. 저쪽에서 건너온 악마가 아니라 이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악마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런 악마와 당당히 맞설 '선한 의지'를 가진 현실판 퇴마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선한 의지를 믿어 의심치 않는 여러분들이 바로 '퇴마사'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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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 2 - 비무초친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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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XLVIII / 김영사 24번째 리뷰] 사조영웅전 2권의 키포인트는 '곽정과 황용의 만남'이다. 1권의 장황한 서론은 바로 두 소년소녀가 운명적으로 만나기 위해서 짜여진 '포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사조영웅전>의 주제인 '영웅이란 누구인가?'에 걸맞은 주인공으로 '곽정'이란 인물을 등장시켰다. 1권에서는 전쟁영웅으로서 '칭기즈 칸(테무친)'을 부각시켰고, 의협영웅으로는 곽소천과 양철심, 전진칠자, 강남칠협 등을 내세웠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협'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소년 곽정'을 등장시키기 위한 배경역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비록 어린 나이이지만 '영웅의 품격'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천재소녀 황용'을 등장시켜서 곽정의 유일한 히로인으로 짝을 맺어주는 스토리가 시작되므로 진정한 영웅으로 '선택'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몽골의 테무친, 한족의 곽정이 '영웅 후보'로 등장한데 반해,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너무나도 장황스럽기 그지없다. 이제 곧 등장할 '동사서독 남제북개 왕중양'이라는 다섯 명의 절세고수가 등장하는데, 이들 또한 '영웅의 풍모'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연 '무공고수'는 영웅의 반열에 오를 만한 자질에 속할 수 있을까? 도덕성이 결여 된 '살육자'로 등장하는 무공고수를 과연 영웅이라 칭해도 되겠냐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수많은 무술고수들이 <구음진경>이라는 무공비급를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시작은 황약사의 제자인 동시 진현풍과 철시 매초풍이 보여주는 '최심장'과 '구음백골조'라는 악랄한 무공이다. 아무리 초절정의 무공을 연마하기 위함이라도 해도 무고한 사람들을 무술수련의 소모품으로 삼아 생명을 앗아가고 있으니, 결코 '영웅'이라는 칭호를 언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구음진경>을 '정상'적으로 수련한 결과가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수련한 결과다. 훗날 곽정과 황용도 <구음진경>의 무공을 습득하지만 결코 이런 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는 '무협인'들도 바른 길을 걷고자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른 길을 걷고자 노력하는 무협인들만이 '영웅'을 논할 자격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

  하지만 아직 줄거리는 '소년 곽정'이 이런 비정상적인 무협인들의 틈바구니에서 '무공'을 착실히 쌓아가는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더딤'은 '천재소녀 황용'을 등장시켜 정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어쩌면 작가는 영웅은 '속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성, 즉 서서히'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대기만성'처럼 큰 그릇을 완성시키기 위해선 빠른 시간 안에 완성코자 높은 열을 한꺼번에 가하게 되면 완성은커녕 금이 가고 깨지기 마련이라는 당연한 이치를 보여주는 듯 싶다. 이런 '영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강남칠괴와 구처기 간의 내기로 성사된 '두 소년의 취선루 대결'에서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2권에서는 그 '전초전의 성격'을 띠고 두 소년의 '성품'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곽정은 몽골 초원에서 뛰어놀며 '정직과 의협심'을 배웠고, 무엇보다도 '거짓'을 싫어하는 순박한 성격을 지녔다. 반면에 양강은 화려한 금국 왕실에서 자라며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하게 자라 '귀족적인 품성'을 갖췄다. 거기다 천부적으로 영특하여 '배움'이 빠르다보니 성품이 올곧기보다는 '부귀와 권위의 맛'에 길들여져 경박스럽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탓에 힘들고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들의 곤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철부지 같은 모습마저 보인다. 이런 둘이 '비무초친'이라는 무공대결로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어린 소녀와의 무공대결로 혼인할 남자를 구한다는 '대의명분' 앞에서 곽정은 단순한 무공실력을 뽐내기보다 '한 소녀의 장래'를 걱정하는 의로운 모습을 보여준데 반해, 완안강(훗날 양강)은 예쁘장한 소녀를 희롱할 목적으로 뛰어난 무공실력을 뽐낼 뿐이었다. 이로 인해 혼인당사자인 '목염자'라는 소녀는 양강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이것이 그녀의 운명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라는 짐작도 못한채 말이다.

  한편, 금국의 여섯번째 황자 완안홍열은 무공고수를 섭외하여 '악비의 <무목유서>'를 차지해 천하를 여진족의 발아래 두려는 야심을 떨쳤다. 그렇게 등장한 사통천, 후통해, 양자옹, 팽련호, 영지상인, 그리고 구양극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들은 끝내 '곽정의 무공향상'을 위한 들러리 역할에 그칠 뿐, 영웅의 품격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만다. 오히려 곽정과 황용 두 소년소녀에 의해 온갖 창피를 당하는 역할로 전락하고 마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무공고수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면서 진정한 '무협소설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는 궁극적인 주제와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무협소설'에 딱맞는 소재를 보여줌으로써 '현란한 무공'을 펼쳐낸다. 허나 '무협소설'에서는 언제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절세무공을 선보여준다 하더라도 그를 뛰어넘는 '또 다른 인물'내지 '또 다른 무공'이 등장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위기감'을 고조시켜 가슴을 두근두근거리게 만든다. 이런 '무협지의 맛'은 앞으로 더욱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끝으로 <사조영웅전>에서 나타난 '잘못된 표현'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 책이 '중국소설'이고 1970년대 출간된 '텍스트'를 원본으로 삼았다고 하더라도 중국인들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몽고'와 '장백산'이란 표현은 좀 고쳐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민족의 근원지로 삼고 있는 '백두산'을 중국인들은 '장백산'이라 부르고 있다.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의 발흥지로 여기고 있어서 오래도록 '접근'조차 허락치 않은 '영험한 장소'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족의 관점에서 보면 '오랑캐의 땅'일 뿐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여진족의 영지를 한족 정통의 '중국 자존심'으로 삼고 '장백산'이라는 명칭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렇게 '장백산 vs 백두산'이라는 명칭이 대결 양상(?)으로 불붙고 만 셈이다. 마치 '동해 vs 일본해', '독도 vs 다케시마'와 비슷한 양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선노괴 양자옹을 '장백산'에서 온 영웅으로 소개하는 것을 수정해주었으면 싶다.

  또 하나, 몽고(蒙古)라는 표현은 중국인들이 몽골인들은 낮잡아 부를 목적으로 고집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풀이 하면 '어리석을 몽'에 '옛 고'로 낡고 고루하며 어리석다는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몽골정부'는 우리 나라에 '몽골'이라고 바로 잡아주길 요청했고 우리도 이를 받아들여, 현재는 '몽골'이라는 표현을 바르게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아직까지도 수정없이 그대로 쓰이고 있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원문'이 그러해서 잘못을 바로 잡기 힘들다면 독자분들께서라도 '백두산', '몽골'이라고 바로 고쳐 읽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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