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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미술관 - 그림, 한눈에 역사를 통찰하다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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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 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거다. 충직한 개 파트라슈와 연로하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우유 수레를 끄는 소년 네로. 그리고  네로의 소꼽친구 아로아가 나오는 감동적인 동화. 전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았고,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방송되기도 했다. 동화속에서도,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네로는 성당에 걸려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며 파트라슈와 함께 행복하게 죽어간다. 나는 '죽음' 에 대한 자각을 상당히 일찍 한 편이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죽음을 자각했었고, 이 세상에서의 소멸이라는 것이 주는 공포를 경험했더랬다. (그 뒤엔 영원이라는 것의 공포도 경험했다.) 그래서, 그림을 보며 행복하게 죽어가는 네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음은 무서운거고, 슬픈거잖아. 고작, 그림 한 점 보면서, 죽는데 행복하다니, 그게 말이 되?? 이런 마음이었다.


 네로는 무척 가난한 집의 소년이었다. 남들은 학교 다니며 공부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꿀때, 엄마 아빠도 없이 연로하신 할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며 일을 해야했다. 그것도 우유 수레를 끌고 우유를 배달하는 고된 일 말이다. 옛날에는 우유를 보관하는 기술도 없었다. 소에게서 바로 짠 젖을 간단한 가공(한번 끓이는 정도?)을 거쳐 곧바로 배달을 해야 했을터다. 아다시피 우유는 잘 상한다. 그리고 암소들은 새벽녘에 젖이 찬다. 네로는 어른들이 들기도 힘든 우유통(철이나 사기, 나무따위로 만들었겠지) 을 채운 수레를 -파트라슈의 도움이 있었지만- 끌고 다니며 배달을 해야 했을터다. (아마도, 각 집으로 배달을 지역 총판 정도로) 그 때 무슨 아스팔트가 있었을까. 길은 죄다 울퉁불퉁. 수레도 나무로 이어짠 수레. 쇼바-완충장치- 같은게 있었을리도 없고. 게다가 배달부는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박봉에 고된 직종이다. 그런 고된 직업을 네로는 어린 나이에 소화해야 했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편찮으시다. 하룻동안 버는 푼돈은 그 날 하루 먹을 거 살 돈과, 할아버지의 약값으로 다 사라진다. 하루라도 우유가 안 나오는 날은 그냥 다 굶어야 되는 것이다.  

 그런 네로는 언제나 성당에 걸려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갈망했다. 돈을 내고 볼 수 있었던 거대한 성당화.   

애니메이션판에는 우연히 후원자를 만나 그림을 배우러 다니게 되는데,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안 후원자의 집 자제의 질투에 후원이 끊기데 되어버리고, 그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은 아쉬워하는 내용도 나오지만, 어쨌든 네로는 순수하게 '예술' 그 자체 을 갈망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얼마나 갈망했으면, 죽어가면서도 그 그림을 보러 오고, 결국 보는 순간 정말 행복하게 생을 놓을 수 있게 된다.


 아마,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루의 피로, 생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아름다운 그림들, 음악들, 무용들, 문학들, 영화들. 

예술의 힘 말이다.  


예술은 그렇게 한 사람의 생에 힘을 넣어준다.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도 큰 역할을 해준다.


이주헌 작가의 전작 [지식의 미술관] 이 미술 입문서였다면, [역사의 미술관] 은 인문적인 가치로서의 '미술' 을 엿볼 수 있다.

사실 [지식의 미술관] 에서도 인문적 지식이 풍부했지만, 이번 [역사의 미술관] 은 보다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해설이 곁들여 있다. 제목이 [역사의 미술관] 이잖은가?! [지식의 미술관] 에서 작품들이 담고있는 메타포(은유적인 상징물들)와 그림을 그린 작가들의 시대적 사상들을 위주로 풀어줬다고 한다면, [역사의 미술관] 은 피사체, 즉, 그림의 모델이 된 인물과 사건들의 역사적인 사실: 그리고 그것들을 '예술' 로 기록한 의미에 대해 풀어주고 있다. '기록화' 로서의 미술의 역할을 풀어준다고 하면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진과 인쇄기술이 발달하기 전엔 미술이 그 역할을 했다. 현실을 예술적으로 담아내려는 노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사진' 이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오며 최근에는 기록화가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카메라가 발달하기 전에는 그림이 유일했을터다. 심지어 대중들을 선동하는 역할도 했다. 그림은 사진보다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가 쉽다. 가까운 예로, 북한에는 지금도 여전히 주체미술이 존재하고, 또 계속 발전하고 있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도 대중들을 선동하거나 제어하는 기술은 필요했다! 포스터는 지금도 여전히 그려지고, 많은 광고용 - 즉,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야 하는 - 이미지들은 모두 '예술적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큰 감동을 받으면 이런 말을 하잖은가?

 "우와, 예술이다..."

 바로 이 책에 그런 내용들이 충분히 담겨있다. 나폴레옹, 클레오파트라, 루이 14세와 스탈린, 히틀러까지! 

 어떻게 이들은 자신의 업적들을 예술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을까?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기에? 무슨 일을 했기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주헌 작가도 거듭 강조하는 부분이 있는데, 예술은 공부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직관' 에 따라 '감상' 하는 것이 '좋다'.(옳다 가 아니다. 예술 감상은 옳고 그름을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 은 바로 그런 '직관력' 을 기르기 위함이다. 즉, '통찰력' 을 키우기 위함인 것이다. 플란다스 지방의 가난한 우유 배달 소년이었던 네로가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었을리는 만무하다. 그때만 해도 예술은 지배계급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감과 붓, 종이도 비쌌지만, 그것으로 그려진 그림을 보는 것에도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네로는 이삼일치 밥을 굶어야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누구나, 너무나 쉽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주헌 작가는 '그림을 보는 일이야말로 나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방법' 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잘 생각해 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그림은 감상자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는 거대한 파동. 우리는 삶 속에서 쉬이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무뎌지기 때문이다.

뇌는 지속적인 자극에 약하다. 일정한 강도의 자극은 쉬이 익숙해지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감동들에 무뎌지게 한다. 기껏, 우리가 느끼는 자극이란 성욕, 식욕, 물욕 정도일터. 순수한 아름다움에 감동하기란 쉽지 않을터다.

 결국 예술을 즐기는 삶이란, 우리의 뇌에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 생동감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줄터다.


 미술.

어렵지 않 아 요~

일단, [지식의 미술관] 과 [역사의 미술관].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참고로,

데이트 할때 진짜 좋다. -.-)b 


하아....

난 언제 써먹지??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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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속의 색]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 기억 속의 색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권장도서
미셸 파스투로 지음, 최정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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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색들을 보며 살아간다. 우리 주위에 색이 없는 물건은 없다. 이 세상은 온통 색색이다. 색이란 빛이다. 광원에서 나온 빛이 어떠한 물체에 맞아 반사되는데, 그 빛은 각각 고유의 색이 있다. 빛의 3원색인, 빨강, 파랑, 노랑. 어떠한 물체에 반사되는 빛은 이 3원색을 무수하게 많은 방법으로 섞으며 우리 눈앞에 휘황찬란한 색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색 = 빛' 이라는 것은, 즉 색은 파동이라는 것이다. 빛이란 광입자들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파동으로 인한다. 그리고, 이 파동은 사람의 눈 속으로 들어간다. 눈이란 무엇이냐? 바로 외부로 돌출된 뇌이다.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아기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뇌가 만들어지고, 무수한 신경다발들이 뻗어 나가게 되는데, 눈은 뇌의 일부분이 쭈욱 하고 튀어나오면서 만들어진다. 때문에, 인간은 눈으로 보는 것에 굉장히 빠르게, 그리고 때로는 무조건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세뇌를 시키거나 최면을 거는 등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려 할 때 우선적으로 시각적인 자극을 먼저 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수 있다.  

 결국 '색' 또한 인간의 정신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색깔들은 각각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특징이 있다. 노란색이나 빨간색을 보면 따뜻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파란색을 보면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갈색을 보면 흥분이 가라앉고 침착해지는 반응을 보이게 되는 등 말이다. 이러한 '색깔'의 특징은 때론 계급을 나누는 척도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렇게 '색' 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의문 제기에서부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책은 '색' color 에 관한 미셀 파스투로의 에세이 모음집으로서 때론 깊이있게, 때론 가볍에 수많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적어 내려간다. 감색 재킷에서부터 흰색 속옷. 그리고 파란 블루진. 그리고 스탕달의 [적과 흑] 그리고 노란색으로 도색된 자전거와 19세기에 선호하던 색들과 20세기에 선호하는 색들의 변화, 뿐만 아니라 색을 지칭하는 수많은 단어들은 물론 비트겐슈타인의 저서까지.  온세상에 펼쳐져있는 눈으로 보는 빛으로서의 색 뿐 아니라, 우리의 관념과 통념, 이미지를 아우르는 색깔들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
 

 문득, 나도 기억속에서 '색' 을 떠올려 봤다. 나는 색칠쟁이다. 내가 하는 일은 하얀 종이위에 검은 선으로 그려진 그림을 받아 그 하얀 공간들을 여러 색으로 채우는 일이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색들을 집어 넣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새빨간 레드. 붉은색 종류는 대부분 좋아하지만 특히 버밀리온에 가까운 붉은색을 좋아한다. 피색과 불색의 중간쯔음. 색의 이름인 '버밀리온' 이 상징하듯, 불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 나는 뜨거운 색이다. 사실 붉은색은 남자들에게는 금기시 되는 색이나 다름없었다. 최불암 시리즈에 등장했던 빨간내복은 조롱의 대상이었으니까. 하지만, 2002 월드컵, 대한민국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었고, 한국 대표팀 중의 대표인 박지성은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으로 이적하며 붉은 유니폼을 입었다. 팀의 애칭조차 '레즈' 였던 팀의 일원으로 많은 남자들의 우상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금기시 되었던 색인 붉은색. 오죽하면 우린 국민학교때 '빨간색으로 이름쓰면 죽는다' 라는 말을 미신처럼 믿어왔지 않은가. 하지만, 중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었던 붉은색. 우리에게 금기의 상징이었던 붉은색은 2002년, 그렇게 완벽히 깨지게 되었고,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여러 붉은색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색은 그렇게 사회의 통념 속에 숨쉬고, 우리의 일상속에서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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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철학의 풍경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진철학의 풍경들
진동선 글.사진 / 문예중앙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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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신간평가단이라는 이름으로 알라딘에서 날아온 두권의 책.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과 [사진철학의 풍경들] 이다. 알라딘 신간 평가단은 각 분야별 20여명의 회원들이 매 달 초 발간된지 2달 이내의  신간들을 2권 이상 추천하고, 담당자가 그것들을 모아 가장 많은 회원들이 선택한 두권의 책을 선정하여 회원들에게 보내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즉, 두권의 책은 랜덤으로 조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이번에 날아온 두 권의 책은 얄궂을 정도로 연관성이 있다. 미술의 역사가 크게 변화하던 시기. 그 변화의 시발점에 카메라라는 기계의 출현이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 미술사의 큰 변화가 시작되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미술가들은 '자연을 묘사하는 행위는 가장 커다란 실수였다' 라며 화가 내면의 세계를 캔버스에 옮겨내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카메라가 자연을 완벽하게 묘사하는 행위를 이미 충분히 해 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단순히 자연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행위가 영혼이 있는 인간적인 것이 아닌 기계적인 '기술' 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이다. 

 단순히 피사체를 '담는' 기기에 불과했던 [사진] 은 오래지 않아 예술로 발전하게 되는데, 거기엔 역시 미술의 영향이 컸다. 고전 미술이 가지고 있던 구도와 오브제의 배치 기법들이 사진속에 그대로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속에 녹아있는 미술적인 '맛' 들이 사진을 일찌감치 예술의 한 분야로서 받아들일 수 있게 했고, 탁월한 감각을 지닌 사진작가들의 출현으로 사진 예술은 점점 더 발전해 나아갔다. 
 

 '미술' 의 현대적인 발전은 형形과 색色을 버리고 한계를 깨는 것이었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 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 사진은 어떻게 발전해 나아갔을까? 태생적으로 형과 생을 버릴 수 없는 매체인 사진. 화가들이 자신의 내면을 캔버스 위에 녹여내고자 했을때, 사진가들은 자신의 내면을 어떻게 피사체에 투영시켰을까?  

 3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툼한 책은 사진의 예술성을 총 망라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는 지성적, 감성적 접근을 위해 책을 크게 다섯개의 단락으로 구분지었다. 

먼저, '인식의 풍경', 그리고 '사유의 풍경, '표현의 풍경' 과 '감상의 풍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의 풍경' 이다. 인식의 풍경에서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보는 것이 눈으로 보는 같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유의 풍경에서는 시간의식과 기호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표현의 풍경에서는 조형과 사진심리, 인상과 인식, 차이와 반복 등 사진이 담고 있는 '감각' 에 대해 다루고 있고, 감상의 풍경에서는 미와 진리를 지향함으로써 결국 사진 또한 미학을 넘어 예술의 근원과 맞닿아 있음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풍경에서는 사진이 왜 그토록 사회적인 실천인지, 왜 이미지 수사학인지, 어떻게 필수적인 유희와 욕망의 수단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책은 완전히 하나의 도첩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양의 사진이 실려있다. 작가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독자들에게 또렷히 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그 시도는 상당부분 통하고 있다. 이 책의 대상은 전문 사진작가부터 일반 독자들까지 아우르고 있는데, 수많은 이론서들과 철학서들을 인용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자신의 '기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까지 고민하고 있다. 

 예를들어 책에는 '스티븐 쇼' 라는 미국의 사진 작가이자 이론가의 말을 빌려 사진 감각을 후천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다. 거의 초반부에 실려있는데, 작가는 독자들에게 사진감각에 대한 열린 마음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 이라는 무거운 단어와 달리 책은 초반에는 아주 쉽게 읽힌다. 수많은 사진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기도 하지만, 설명에 따라 잘 배치되어 있다. 독자 친화적인 설명 방식도 맘에든다. 인용구를 인용구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다시 한 번 쉽게 풀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상당히 어려워진다. 사진의 기법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사진이라는 행위가 가지고 있는 철학적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관념' 을 '설명' 한다는 행위는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다. 책을 읽어 나가다 보니 저자 스스로도 아직 완벽히 정립시키지 못한, 즉 관념 자체는 명확하지만, 남에게 풀어서 설명하기에는 아직 완전하지 못한 관념론까지 등장하는 듯 하다.  

 책을 읽어가다 보니, 카메라가 살아있는 하나의 생물과도 같다. 때로 이 카메라라는 녀석은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주기도 한다. 바로 나 자신의 내면이다. 저자는 존 사코우스키라는 사진이론가의 말을 빌려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자아를 향한 내면의 응시 - 거울" 로서의 역할과 "타자를 행한 외면의 응시 - 창" 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한다. 
 

 눈은 얼굴 밖으로 돌출되어있는 뇌이다. 전에 다른 책의 리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모습을 갖춰가는 광경을 보면, 먼저 뇌가 생기고, 그 뇌에서 더듬이처럼 가느다른 두개의 돌기가 비죽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눈이 된다.  눈은 뇌의 두개골 외부 출장소와 같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뇌가 인식하는 장면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 꽤 어려운 개념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참 유익한 시간이었다. 적어도 나 역시 이제 사진을 보며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테니까. 

"당신의 사진은 거울의 시선입니까? 창의 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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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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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1학년 1학기때 일러스트레이션 이론이 필수교양이었다. 서양미술사는 선택교양이었고. 워낙에 외우는 것을 싫어했던 난 서양미술사를 최대한 피했더랬다. 하지만, 관심은 많았던지라, 강의서적은 구입해서 열심히 읽었었다.

 일러스트레이션을 어떤 분야에 넣느냐에 따라 그 출발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당시 내가 들었던 강의의 교수님께서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산업디자인의 범주에서 다루셨다. 아, 그 교수님은 산업 디자인과 전임 교수님이시기도 했고(ㅋㅋ) 기본적으로 그 분께서 말씀하셨던 '일러스트레이션' 이란 결국 '상업' 일러스트레이션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은 그 태생 자체가 상업과 긴밀한 관계이다. 요즘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단어 자체에 '오브제를 대중에게 설명하기 위한 그림' 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바우하우스에서 산업 디자인과 함께 시작되어 결국엔 키치로 함께 들어갔던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는 꽤나 흥미로웠다.

 한 학기동안 거대한 미술사의 한 부분, 한 흐름을 공부했기때문에, 그 시간은 생각보다 깊이있었고 정말 재미있었다. 1학년짜리가 맨날 맨 앞에 앉아서 잔뜩 필기를 하며 수업을 따라가곤 했기에, 교수님도 날 꽤 예뻐해 주셨지만, 우리 과 전임 교수님은 아니셨던지라 인연이 길게 이어지진 않았더랬다.
  

한편, 그 한 학기동안 베개만한 '서양 미술사' 를 들고다니던 녀석들도 있었다. 녀석들은 쏟아지는 과제들 속에서, 그림과 화가이름을 정신없이 외우며 다녀야 했다. 물론 사조의 순서 또한 외워야 했고, 후기 인상주의를 지나 야수주의에 돌입하며 머리를 쥐어 뜯기 시작했다. 사실 인상주의부터 주요 화가의 그림들이 비슷비슷해진다. 특징을 찾아 외우기가 만만치 않다. 심지어 마네, 모네 등은 이름부터 헷갈리고, 르누아르와 마네의 화풍도 상당히 닮아있다. 반면, 고흐, 고갱, 세잔같은 후기 인상주의의 그림들 또한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후기 인상주의를 지나 야수주의에 들어가면 대부분 시험을 포기한다. ㅋㅋㅋ 

 난 수업을 듣지 않았기때문에 흥미롭게 서양 미술사에 관한 책을 탐독했었지만, 부족한 도판과 딱딱한 저술은 개인적인 흥미를 반감시킬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모든 시대적 흐름에는 흐름을 주도하는 큰 사건과 인물들, 그리고 그 인물들의 개인사까지 망라되어야 한다. "히스토리" 란 결국 사람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서들은 모두 그렇다. 왕 중심으로 기록이 전개된다.
 

 하지만, 미술사는 다르다. "미술사" 라는 단어처럼 '미술' 중심의 역사가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림이 주인공인 역사이다. 당연히 그림을 그린 화가 역시 서브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상에 얼마나 많은 그림과 화가와 기록들이 있는가.  

 결국 미술사는 시대별로 기록되야 했고, 그 시대에 가장 우세했던 '화풍' 을 묶어내기 시작했다. 일종의 유행인 것이다. 특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좋아했던 화풍, 중세 이전까지는 왕의 초상화나 왕실화가, 혹은 성당 미술등의 그림을 '주류 화풍' 으로 구분할 수 있었지만, 근대에 들어서면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흐름을 이해하기 조차 쉽지 않았다.  

 특히 시대별로 나누면 야수주의, 입체주의가 거의 동일한 시대에 꽃피웠고, 바로 뒤이어 등장하는 추상주의와 절대주의, 표현주의도 거의 동시대에 걸쳐있다. 그렇기에 한 작가가 여러 화풍의 그림을 내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피카소 역시 화풍의 변화에 따라 그 작가 개인의 화풍을 구분해야 할 정도이니, 흐름을 따라가기조차 버거운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많은 책들이 현대 미술부분을 '모더니즘' 으로 묶어서 간략하게 기술하는 경우가 많다.  

 진중권 교수가 풀어내는 모더니즘은 지금껏 내가 읽어온 어떤 미술사보다 쉽고 명쾌하게 풀려있다. 그냥 읽기만 하면 술술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논리적 인과관계가 완벽하고, 작가와 작풍, 작품의 분배가 쉽고 뚜렷하다.  진중권 교수는 모더니즘을 '아방가르드의 시대' 로 명명하고, 그 안에서 화풍 - 사조가 생성된 순서대로 기술하고 있다. 당시 잡지나 신문등에 기고됐던 기록들의 인용도 상당한 양이고, 도판도 정말 풍부하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모더니즘의 특성들 중 하나는 '자아성찰과 그 표현' 이다. 여기서 '작가주의' 가 도래한다. 아방가르드 시대 자체를 작가주의의 시대라고 생각하고 보면 더 쉽다. 화가들은 더이상 남을 위해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 것이다. 인상주의 시기부터 이러한 색깔은 조금씩 보여왔었다. '야수주의' 라는 이름 자체가 주류 미술계에서 조롱을 담아 내뱉은 표현이었듯, 미술세계는 점차 진보적인 비주류가 주류가 되어가는 과도기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등 거대한 비극을 겪으며 주류와 비주류의 교체는 더욱 빨라지고, 변화에 대한 욕구는 거세졌다.

 당시의 화가들이 자연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화폭에 담아야 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영혼이라고 외쳤다. 심지어 우연의 효과를 기대하는 다다이즘은 현대인인 나에게도 충격이었으니, 당시의 주류 미술인들에겐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아방가르드의 시대는 전통적 화풍의 파괴를 불러온 시기이자, 재료의 파괴를 불러오기도 했다.

지금까지 모더니즘 이후, 네오 아방가르드의 시기를 다룬 미술사 서적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국에 출간되어온 대부분의 서양 미술사에 관련된 책들은 수십년 전의 책들이 번역되고, 중쇄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서양미술사에 대한 서적이 잘 팔릴 리도 없을뿐더러. ㅎㅎ  

이 책을 읽으며 특히나 독설로 유명세를 떨치는 진중권 교수가 입만 발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다. 이런 쉽고 명쾌한 정리에 술술 빠져드는 문장력이라니. 용어의 사용과 풀이도 대단히 친절하다. 완벽하게 독자 친화적인 글들이라, 솔직히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니 진중권 교수가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었어??' 라는 느낌이었달까. ^^

새삼 언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얼마나 무서운지 느낄 수 있었다.

책 말미에 저자는 아방가르드의 다음 시기인 '네오 아방가르드' 에 대한 글을 쓸 것임을 예고해 준다. 서양 미술사 시리즈의 첫 권이 나온지 3년만에 두번째 권이 나왔으니, 다음 권 또한 만만치 않겠지. 하지만, 정말 너무 기대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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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잔혹사
이재갑 글.사진 / 살림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영국 BBC를 통해 나치 휘하에서 독일군 제복을 생산했던 독일 명품 의류기업인 '휴고 보스' 가 나치 시절,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이는 여러 사람들의 끊임없는 국제 법정 투쟁에 의한 결과물로서, 휴고 보스는 당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에게 법적인 보상을 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공을 쏟아야 하게 생겼다.

 이 기사를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 침략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전쟁에 동원한 물자의 대부분은 우리 민족에게서 강제로 침탈해간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성장한 군수업체가 바로 미쓰비시나 도요타 같은 자동차 회사들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일본의 기간산업들은 일본이 침략한 국가에서 강제로 끌고온 노역자들에 의해 성장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자기네 정부부터 제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임을 숨기기에 급급하고,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성스러운 전쟁이었고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선전하기 바쁘며, 일본 내의 여러 기업들 또한 정부의 비호 아래 강제 노역자들과 피해자들을 외면하기에 바쁘다.

 

 이 책은 그런 우리의 아픈 과거를 더욱 절절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340여 페이지에 달하는 페이지들에 꼼꼼하게 우리 조상들이 겪었던 슬픔과 고통, 절망들이 또렷한 사진으로 보여지고 있다.

후쿠오카를 시작으로 나가사키와 오사카, 히로시마, 오키나와까지 일본 열도의 대부분을 샅샅히 훑으며 우리 조상들을 침탈한 역사의 현장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피를 토하고 죽을때까지 석탄을 캐 날라야 했던 수많은 갱도들, 석탄을 고르고 골라 운반해야 했던 탄광들, 누군가를 쏘아 죽이고 파괴하는 무기를 만들어내는 지하 은밀한 곳의 터널과 군창들.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다. 인간 어뢰로, 가미가제 특공대로 끌려간 선조들의 이야기도 있다. 위에도 언급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쓰비시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등장하고, 우리의 기억속에서도 점차 잊혀져 가는 우토로도 등장한다.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당하면서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정말 너무나 아프고 쓰린 기록들에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울적해졌다. 그리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것은 단순히 탐욕스러운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분노였고, 무능한 우리 정부에 대한 분노였다. 오히려 당시 고통받았던 생존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있는 부근의 일본인들이 나서서 도와주고 있었다. 결국 나라와 이념을 떠나면 다 같은 사람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강제 노역을 한 것은 침략한 국가만이 아니다. 실제로 일본인들도 평범한 국민들 대부분은 피해자이다. 그들도 함께 노역을 했다. 물론, 그 대우는 완전히 달랐지만, 일본인들도 사람인지라 동물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일하는 조선인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도와주려 했던 이들도 있다.

 

 이 책은 정말 많은 사진들과, 철저하게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실려져 있다. 단순한 감상이나 에세이가 아니라 완벽한 한권의 논픽션 르포이다. 폰트도 큼직하고, 사진과의 배치도 상당히 잘 되있어서 굉장히 잘 읽힌다. 정말 힘든 내용이지만, 그것들을 쉽게 읽히게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정말 잘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이 갖고 있는 미덕은 단순히 독자들에게 일제 침탈기 겪었던 조상들의 고통을 느끼게 해 주는데 있지 않다. 이 책은 우리에게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민족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전쟁의 위협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중국과 일본은 끊임없이 우리를 도발하고, 북한과를 이빨을 맞대고 있는 사이이다. 누구라도 턱에 힘을 주고 물기 시작하면 서로가 살아남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될 터다.

 전쟁이란 그런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부모님, 형제, 친구들과 강제로 떨어지게 되고,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기도 할 것이며, 하루하루 차라리 죽음을 바랄 정도의 고난을 당하기도 할 것이다. 옆에서 함께 숨쉬고, 웃고, 울고, 서로 위로하던 존재가 순식간에 썩어가는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리는 것을 지켜볼 수도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언제나 그럴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폭탄 한방에 도시 전체가 쓸려버리고, 그 후유증이 나로 끝나지 않고, 자식의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전쟁의 공포인 것이다.

 그런 것들이 정말 너무나 잘 실려있는 책이다.

 

 분명, 과거는 잊어서는 안된다. 영원히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반추가 단순히 분노와 슬픔에서 멈춰서도 안될 것이다. 우리가 과거를 잊지않고, 끊임없이 반추해야 하는 이유는 언제나 현재와, 미래에 있다. 과거에 얽매여서는 현재를 살아갈 수 없고,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일본의 행위는 쉽사리 용서해서도 안된다. 일본이 아시아 전체에 정식으로 사과하고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할 때 까지 싸움을 멈춰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것에만 매몰되어 현실을 보지 못하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워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별개이다.

우리는 일본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용서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과거를 잘 알아야 한다.

이 책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는, 그를 위한 쉽고도 친절한 첫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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