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 신화가 된 영웅들의 모험과 변신, 그리고 사랑
구본형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구문명의 상징인 기독교의 성경은 헬라어(그리스어)로 쓰여졌다. (신약은 라틴어)

성경이 처음 쓰여졌던 당시에 서구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였던 언어가 그리스어였기 때문이었다. 철학, 종교, 과학, 예술. 모든 서구문명은 모두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어떤 학자들은 인간의 지적인 능력은 이미 그 시대에 모두 개화되었고, 실제로 지적인 능력은 그 시대의 인간으로부터 단 1mm도 성장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단지 축적된 지식의 차이만 있을뿐, 기본적인 인지능력과 사고력, 창조력등은 그 시기의 인간들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에 찬성하든 반박하든 상관없다. 어쨌든, 서구문명의 근간은 그리스에 기인한다. 종교는 물론이고 크게는 유럽 대륙의 이름부터 작게는 원소의 명칭까지 그리스에 기인한다. 그 어떤 분야이건, 그리스에 대한 지식이 있는지와 없는지에 따라 그 깊이가 많이 달라진다. 그래서일까, 최근들어 부쩍 그리스에 관련된 서적들이 눈에 띄는 것 같다. 물론, 최근 몇년간 불고 있는 인문서적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일 터다. 결국 모든 인문서적의 근간도 그리스에서 찾을 수 있을테니까.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는 미케네 문명부터 차근차근 그리스의 역사를 풀어주고 있다. 

일단은 호메로스의 작품들과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을 기저에 깔고,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역사와 신화를 구분하여 신화에서 역사적 사실들을 유추해 내고, 인물의 성향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시기별로 크게 3개의 부로 나뉘어 있고, 각 부는 다시 크게 시기별 문명으로 목차가 나뉘어 있다. 각 목차 안에는 각 문명시기의 중요한 인물들이 소문단으로 나뉘어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문명은 물론 미케네.  인간에게 불을 전해줌으로써 문명시대의 문을 열어준 프로메테우스와 그리스 최초의 모험가였던 페르세우스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메두사와, 카시오페이아, 안드로메다가 핵심적인 인물로 등장하고, 미케네의 화려한 서막을 열어젖히는 페르세우스로 마무리된다. 뒤이어 크레타, 아테네, 테베 목차가 등장하고, 1부가 마무리되어, 2부에는 트로이 전쟁이 주로 다루어진다. 3부는 오디세우스의 지난한 여정이 그려지고, 로물루스가 로마시를 세우면서 마무리된다.   

 각 인물 목차는 작가의 비평으로 마무리되는데, 인물의 행동방식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유추하여 당시 그리스의 시대상이나 사회 구성 과정등을 풀어내고, 당시의 개념들이 현대까지 계승되어 발전하거나 변화된 방향등을 설명하기도 한다. 인물 목차를 담고 있는 큰 문명별 목차의 말미에는 따로 작은 목차를 준비해서 신화들을 풀어낸 부분도 좋았다. 신화와 역사를 확실히 구분하면서도, 주고받은 영향등을 풀어내기에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나 그리스 역사의 개괄 정도로 이해하고 보면 좋을 듯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깊이가 얕은 책은 절대 아니다. 인물의 성향을 유추하여 그리스 시대상을 그려내는 방식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득력도 충분하다. 문장력도 충분하고, 내용도 아주 풍성하며, 특히 많은 도판들이 적절하게 들어있어 이야기에 몰입되는 것을 충분히 도와준다. 두께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는데, 버릴부분은 충분히 버리고 폭넓게 흥미를 끌 수 있는 주제와 소재들을 매우 적절히 선택했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그리스 문명은 서구문명의 근원으로써, 이에 대해 아는것과 모르는 것은 문학이나 미술 등 여러 예술품들을 감상하는 데에도 큰 차이를 준다. 심지어 니체나 마르크스 같은 현대 철학의 선구자들 역시 그리스 문화를 충분히 깨우치고 있었다.  

그리스 문명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도, 어느정도 알고 본격적으로 들어가볼 사람에게도 추천할만한 질 좋은 입문서로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자군 이야기 3 - 완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노사의 굴욕' 에서부터 시작된 유럽과 오리엔트의 '종교 분쟁' 은 약 250여년 동안 이어졌다. 

1권에서는 십자군 원정의 시작과 예루살렘을 탈환한 1차 원정대의 성과가 그려졌고, 2권에서는 1차 십자군 원정대가 이슬람 세력 안에 자리잡은 십자군 국가를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끈질기게 지켜 나가다가 살라딘의 등장으로 예루살렘을 다시 잃고 큰 위기에 처하는 내용이 그려졌다.   

 250여년간의 분쟁을 매조지하는 [십자군 이야기] 3권은 두권의 책을 합친 것 만큼 방대한 볼륨을 자랑한다. 일단, [십자군 이야기] 3권의 1권에 해당하는 전반부에서는 십자군 국가에게 전략적 요충지인 항구요새도시 '티루스' 까지 뺏길 심각한 위기 에서 구세주처럼 등장한 사자심왕 리처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전술, 전략은 물론 전투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리처드는 티루스 공방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순식간에 전황을 뒤엎는다. 리처드가 숫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여러 전투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린 결정적인 무기는 바로 '함대' 였다. 리처드가 이끈 십자군은 거대한 투석기를 실은 제노바와 피사의 함대를 이용해, 현대전에서의 '함포 사격'과 같은 방식으로 원호를 받으며 바닷가를 따라 이동하며 전략적 요충지들을 점거해 나갔다. 결국 리처드는 열세였던 전황을 우세로 뒤바꿔, 살라딘이 이끄는 이슬람 측과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평화 협정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십자군 이야기] 3권의 중~ 후반부에 걸쳐 중세 유럽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발전과 이슬람 왕국 내에 섬처럼 세워진 십자군 국가의 몰락, 교황 중심이었던 유럽사회의 변화, 그리고 불처럼 타올랐던 '성지 수복' 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드는 과정이 차분하게 그려진다. [십자군 이야기] 3권 중~후반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성당 기사단의 최후에 관한 내용이다. 현대의 많은 스토리 텔러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는 성당 기사단에 대한 전설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들이 프랑스와 유럽 정세와 얽혀 상당히 신빙성 있게 풀어진다. 

 [십자군 이야기] 1권에서는 탄크레디와 보두앵 1세가, 2권에서는 문둥왕 보두앵 4세와 살라딘이 인상적인 인물들이었다면, 3권에서는 단연 사자심왕 리처드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일 것이다. 탄크레디와 보두앵 1세, 보두앵 4세, 살라딘과 리처드가 모두 영웅적인 활약으로 인상에 남는다면, 프리드리히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인상에 남는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거침없는 '인물평' 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서들은 추측성 문장을 넣기를 꺼린다. 하물며, 인물평에 대한 부분은 거의 겁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굳이 사가가 인물에 대한 평을 넣을 때는, 다른 권위있는 역사가의 인평을 인용하던지, 참고한 사료와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다른 사료를 참조해 인용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인물에 관해서만은 거침없이 "~~ 이랬던 것 같다." 와 같은 추측성 문장을 과감하게 쓰곤 한다. 

 [로마인 이야기] 가 로마제국 전반에 걸친 방대한 역사서이지만, [로마 이야기] 가 아니라 [로마인人 이야기] 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역사서들이 각종 사료를 통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추론하여 서술하는데 그치는 반면, 시오노 나나미는 그 사건들 직면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추론한다. 당연히 그러려면 일반 역사가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료를 참조해야 할 것이고, 훨씬 더 많은 탐방을 해야 할 것이며, 훨씬 더 많은 비교를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수많은 사료들을 날카롭고 정확하게 정리해서 펼쳐낸 뒤 "이러므로 이랬던 것 같다." 라고 주장하는데, 그 누군들 설득되지 않을쏘냐!! 

 [로마인 이야기] 에서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인간 본연의 권력욕을 파고들었던 그녀의 뛰어난 통찰력은 '신앙' 에 기초했다는 '십자군 원정' 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결국 당시 유럽 사회에서 종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볼모로 한 강력한 권력이었다. 정말 불가사의 하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한 신을 믿고, 한 책을 믿는다. 완벽하게 점 하나까지 다 믿는다. 그 책에 '태양이 뜨는 쪽이 서쪽이다' 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면, 아마 전 세계는 태양이 뜨는 쪽이 동쪽이냐, 서쪽이냐를 갖고 수세기동안 전쟁을 치를 것이다. '신앙' 이란 그런 것이다. 신앙의 지도자는 신과 비슷하게 추앙받았을 터다. 하늘이 내려준 권력. 교황의 권위는 그런 것이었다.  [십자군 이야기] 에서도 인간의 근원적인 종교적인 본성보다는 권력에 대한 욕구가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역사란 대부분이 '추측', 가설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록이란 것은 언제나 100% 객관적일 수 없다. 특히 역사의 기록은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었고, 지배자는 피지배자의 기록을 날조하고 왜곡시킨다. 우리는 그런 일을 실제로 겪었던 민족이다. 중국에게. 일본에게. 중화 사상에 젖어있던 무렵의 기록,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에 의해 무수하게 왜곡 되었던 기록들, 그리고 그에 맞서기 위해 무수하게 각색된 기록들. 결국 후대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중국과 일본, 우리의 각각의 기록들을 비교해 보는 수밖에 없었을 터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역시 비교사학이 크게 우위를 점하고 있다. 

 어떤 기록이든 그것이 절대적인 진실이고, 완벽히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고 접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십자군 이야기] 안에서도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이 접한 기록의 허구성에 대해 명백히 밝히고,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고 있다. 우리가 [십자군 이야기] 안에서 읽어야 할 부분은 사건과 인물 뿐 아니라 시오노 나나미의 이런 부분들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유럽 사관들의 기록은 물론, 이슬람측의 기록들까지 꼼꼼히 살피고, 중첩된 부분들은 서로 비교하며, 때로는 다른 사학자의 역사서까지 비교해가며 자신이 기록을 접하는 방식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서들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평은 단어 선택 자체가 틀린 것이다. 역사서는 원래 모두가 주관적이다. 역사서는 결코 객관적이 될 수가 없다. 누가 얼마나 더 뚜렷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주장' 을 펼쳤느냐가 '역사' 이다. 얼마나 '덜 주관적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기록들을 모아서, 얼마나 '더 그럴듯한 인과관계' 를 그려서, 얼마나 더 '설득적으로' 풀어내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한 인간이 한 행동을 하는 데에도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다. 내가 이 리뷰를 쓰는 요인만 따져봐도, 족히 열가지는 될 터다. 나는 언제나 읽은 책은 리뷰를 쓰는 습관을 가지고 있고, 일이 다 끝나서 약간의 한가한 틈이 있기도 했고, 마침 컴퓨터가 켜져 있기도 했고, 인터넷도 서버 점검 없이 원활히 잘 돌아가고 있으며, 졸립거나 피곤하지도 않았고, 딱히 다른 할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마침 이 책의 리뷰대회가 있기도 했고, 무려 오늘이 그 대회 마감일이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것에 대해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적었다." 는 기록을 했다면, 후세의 역사가는 바로 그 한줄의 글을 가지고 가설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올린 다른 리뷰들도 찾아보고, 내가 끄적거린 다른 잡문들도 찾아보며,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글도 찾아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추측으로 가설을 만들어 '주장' 하는 것이 바로 역사이다. 하물며, 한 사람이 아닌, 한 집단이, 한 국가가, 아니, 유럽 전체가 움직인 것이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 이야기] 는 내가 [로마인 이야기]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이후 세번째 작품이다.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는 [십자군 이야기] 1권을 읽고 난 후 당시의 시대상을 면밀히 이해하기 위해 찾아 읽었다. 확실히 [십자군 이야기] 는 [로마인 이야기] 나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보다 주장을 보다 또렷하게 개진한다. "이 부분은 내 주장이야," 라는 부분이 보다 확실히 와닿는다. 그것은 역시 사료의 빈약함 때문일 터다. 위에도 언급했듯 십자군 이야기는 유럽 전체는 물론 중동지역 전체가 맞물린 거대한 '연합체' 의 충돌이었다. 정말 다양한 성격의 사료들이 정말 다양한 언어로 기록되었을 것이고, 정확성을 가늠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의 서문에 쓴 글귀가 생각난다.

 ""상상해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 자살 폭파범도 없고, 911도, 런던 폭탄테러도, 십자군도, 마녀 사냥도, 화약 음모 사건도, 인도 분할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도(...)없다고 상상해보라."

이런 문장을 서두에 적었지만, 리처드 도킨스도 종교가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나 또한 종교 자체가 이런 거대한 비극을 불러 일으킨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십자군 이야기]를 다 읽은 지금, 시오노 나나미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위에도 썼듯, 인간의 행동 요인은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가 결정적인 '구실' 로 작용했음은 확실하다. 십자군 전쟁의 후반부는 단순한 영토 분쟁이었다. 신앙의 힘은 초반에만 활활 타올랐고, 중반부터는 서서히 연료로써의 동력이 떨어져갔다. 

 인류가 '역사' 를 시작한 이래 종교가 함께하지 않은 적은 없다. 그것은 즉, 종교를 구실삼은 분쟁이 끊인 적도 없다는 의미이다. 종교란 지구 위에서 죽음을 자각하는 유일한 생명체가 인간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신과, 사후 세상에 대한 꿈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많은 죽음을 가져온다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권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십자군 전쟁인 정말 순수한 신앙심때문에 벌어진 전쟁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사실, 그렇다. 국가간의 전쟁이라는 것도 엄청나게 복잡한 시대상이 맞물려 가능한데, 거대한 연합끼리의 충돌이 한두가지 요인으로 일어났을리는 만무하다. 제 1차 세계대전의 발생 원인이 단순히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왕위 계승자였던 프란츠 왕태자가 암살당한 것 때문만이 아니듯, 십자군 전쟁 또한 단순히 비잔틴 제국이 성지인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카노사의 굴욕' 에서 촉발된 황제와 교황간의 본격적인 권력투쟁, 그리고 로마 멸망 이후 분열된 유럽, 쇠락하는 국운을 일으키기 위한 비잔틴 제국 황제의 야욕, 아직 완벽히 자리잡지 못한 왕권체제, 지중해 연안 도시국가들의 상업주의가 뒤섞였고, 그 투쟁의 중요한 무기로 '신앙심' 이 활용된 것이다. 


★1권에서는...

 1권은 1차 십자군 원정의 배경과 활약상이 그려지고 있다. 

 유럽 각지에서 군대를 이끌고 참전한 보에몬드, 레몽, 보두앵과 탄크레디등 경험많은 노장들과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골고루 포진된 십자군 1차 원정대의 수뇌부는 연합체라면 필히 겪게되는 갈등을 지혜롭고 현명하게 봉합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십자군 병사들은 투철한 신앙심으로 똘똘 뭉쳐있었고, 성지 예루살렘을 해방시킨다는 목표의식에 활활 불타고 있었다.

 이러한 십자군 원정대를 맞이한 이슬람 국가들. 그들은 영토를 침범한 십자군 세력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갖고있지 못했다. 

자신들을 침략한 적들의 정체가 한 국가가 아닌 여러 국가의 연합체, 게다가 종교 연합체라는 사실을 침략 당한지 한참 뒤에야 알아챘을 정도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갑으로 둘러싼 십자군과 맞선 중근동의 병사들은 아마도 탱크앞에 선 보병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압도적인 무장의 차이로 십자군 철기병들은 사막의 이슬람 군대를 짓밟았고, 능숙하게 성채들을 공략해 나갔다.  

게다가 당시 이슬람 국가들은 첨예한 힘의 균형속에서 서로를 견제하기에 바빴다. 유럽 연합군인 십자군을 체계적으로 막아낼 일원화된 명령체계가 갖춰지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시아파, 수니파 등 교파갈등, 아랍과 투르크 및 여러 갈래의 민족갈등이 팽배했다.

  이러한 이점들을 바탕으로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지역들을 차근차근 공략해 나갔고, 불과 3년만에 십자군 원정의 기치로 내걸었던 '예루살렘 해방' 을 달성해낸다. 십자군은 해방시킨 예루살렘을 수호하기 위해 지금의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안정을 꾀하였다. 바야흐로 '십자군 국가' 가 성립된 것이다. 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 루트를 만들고 순례자들을 보호했으며, 지중해 연안의 도시국과들과 교역을 하며, 항만요새는 물론 거점마다 성채를 건설했다. 

 십자군의 역할이 '공세' 에서 '수세' 로 변화한 것이다.

 

★2권의 이야기!!

 2권은 십자군의 역할변화와 함께 1차 원정의 주역들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예루살렘과 그 일대를 정복하고 안정적인 방어라인을 구축한 십자군 국가는 사실 일종의 '식민지' 에 가깝다. 비록 점령은 했지만 그렇다고 도시와 지방에 사는 인구 전체를 물갈이 할 수는 없다. 지방의 영주와 종교가 바뀌었을 뿐,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평범한 시민들은 기독교를 믿는 중동지역 민족들이었던 것이다. 이슬람 국가들과의 국지전으로 인해 십자군들은 꾸준히 줄어들었지만, 자체적으로 그 빈 자리를 메꿀 수 없는 것이다. 십자군 국가에서 손실된 병력을 보충하려면 유럽에서 다시 원정대가 합류해야 했다. 

 십자군 국가 수뇌부의 세대교체는 자연스럽지 못했다. 

경험많은 노장들이 재능있는 젊은이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충분히 교육을 시킬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만들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자기 자식들에게 전수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고 유럽으로부터의 2차 원정대가 오기에는 너무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초대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고드프루아에 이어 친동생인 보두앵1세, 그리고 에데사 지방을 다스리다가  보두앵 1세에 이어 예루살렘왕이 된 보두앵 2세에 이르는 동안 1차 십자군 원정의 주역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절대적으로 인재가 부족한 상황. 인재는 물론 병력마저도 줄기만 하고 보충이 안되는 열악한 정세속에서도 십자군 국가는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위에도 언급했던 이슬람 국가들의 첨예한 힘의 균형 때문이었다. 특히 중근동의 바그다드와 이집트의 카이로 사이가 나빴던 것이 다행이었다. 이슬람 국가들은 십자군 국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바다에 인접한 도시들을 공략해 고립시켜야 했으나, 이집트로부터의 해상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그리고 템플 기사단과 성 요한 기사단과 같은 종교 기사단의 출현 역시 열악한 상황속에서도 십자군 국가가 존속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슬람 정세의 변화

 이러한 정세 속에서, 이슬람은 일대 변혁을 맞이하게 된다. 

분열된 이슬람 국가들을 통합하기 시작한 정복자의 출현이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광대한 영토를 통합한 누레딘은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로부터 술탄으로 임명받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까지 손에 넣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눈앞에 두게 된다. 누레딘이 이집트를 병합한다면,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인 교파갈등 - 지금까지도 첨예하게 대립하고있는 수니파와 시아파- 을 해소할 수 있을터였다. 이런 누레딘의 야망은 깜짝 등장한 한 젊은이가 가로채버리는데, 그가 바로 살라딘이다.

 누레딘의 충실한 부하 장수였던 시르쿠의 조카였던 살라딘은 카이로를 받아오라는 누레딘의 명령을 수행하고, 한발 더 나아가 이집트의 칼리프로부터 재상으로 임명 받기에 이른다. 이슬람 권력의 양대 산맥인 바그다드와 카이로 중 하나, 카이로의 권력을 손에 넣은 살라딘은 바그다드의 실세인 누레딘과 대치하게 된다.

 당시 유럽도 대단히 복잡했다. 2차 십자군 원정의 대실패 이후 왕권과 교권의 정면 충돌인 '토마스 베켓 사건' 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십자군 국가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지독한 인재난에 시달리던 십자군 국가의 수뇌부의 계속된 실정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지역의 지진과 관대한 권력자였던 누레딘, 그리고 1차 원정대가 구축해놓은 치밀한 방어진과 템플 기사단, 성 요한 기사단의 활약과 그들이 세운 견고한 성채 덕에 생명줄을 유지하게 된다.


★영웅들의 등장

 그리고, 드디어 난세의 영웅, 문둥이왕 보두앵 4세가 등장하게 된다. 

누레딘이 시리아 지방에 일어난 큰 지진을 수습하는 사이 살라딘은 십자군 국가들을 공격하게 되는데, 보두앵 4세는 치명적인 불치병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나섰다. 신체적인 약점은 물론, 지독한 병력부족에도 보두앵4세가 이끄는 십자군은 강대한 살라딘에 맞서 비교적 선방해낸다. 특히, 1만 3천명의 살라딘 군세에 자신의 휘하 기병 500명과 템플 기사단 기병 80명, 580명으로 격퇴한 '몽기사르 전투' 는 기념비적인 전투였다. 

 하지만, 2년 뒤 살라딘의 일격에 생포 위기까지 몰렸던 보두앵 4세. 그 전투에서 오른팔이었던 휘하 장수를 잃고, 템플 기사단의 단장까지 포로로 잡히는 등 큰 타격을 입게 되지만, 살라딘 측의 전략 변화로 양 측은 다행히 소강상태를 맞게 된다.


 2권은 1권에 비해 훨씬 더 재미있다.

우선, 1차 원정은 십자군 원정대 측에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고, 시기적으로도 유리한 점이 많았기에 예루살렘 탈환이라는 목표 자체가 큰 장애물 없이 이루어졌다. 중무장한 십자군 기병대는 연전연승했고, 이슬람 국가들은 우왕좌왕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1차 원정대의 유산 - 십자군 국가는 차지하는 것 보다 지키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다. 십자군 국가는 사실상 지중해와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끼어있는 작은 섬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재부족과 병력부족 속에서, 장기, 누레딘, 살라딘과 같은 뛰어난 적들을 상대해야 했다.

 계속된 십자군 국가의 실정속에서도 여러 주변 상황으로 인해 간신히 간신히 고비를 넘겨나가는 모습들이 정말 재미있다. 

보두앵 4세나 누레딘, 살라딘같은 뛰어난 영웅들의 이야기도 대단한 흥밋거리지만, 템플 기사단과 성 요한 기사단, 그리고 '크락 데 슈발리에' 같은 그들이 세운 난공불락의 성채들, 그리고, 2권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살라딘의 [지하드] 까지, 볼거리들로 넘쳐난다. 


 3권은 훨씬 더 재미있을 것이다.

살라딘의 대 반격과 더불어 유럽에서도 진짜 영웅들이 맞붙기  때문이다. 


언제나, 역사는 그 어떤 창작물보다 재미있다.

그 사실을 명확히, 느껴볼 수 있는 역사의 향연!!

자, 즐겨보시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의 미술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역사의 미술관 - 그림, 한눈에 역사를 통찰하다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플란다스의 개' 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거다. 충직한 개 파트라슈와 연로하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우유 수레를 끄는 소년 네로. 그리고  네로의 소꼽친구 아로아가 나오는 감동적인 동화. 전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았고,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방송되기도 했다. 동화속에서도,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네로는 성당에 걸려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며 파트라슈와 함께 행복하게 죽어간다. 나는 '죽음' 에 대한 자각을 상당히 일찍 한 편이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죽음을 자각했었고, 이 세상에서의 소멸이라는 것이 주는 공포를 경험했더랬다. (그 뒤엔 영원이라는 것의 공포도 경험했다.) 그래서, 그림을 보며 행복하게 죽어가는 네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음은 무서운거고, 슬픈거잖아. 고작, 그림 한 점 보면서, 죽는데 행복하다니, 그게 말이 되?? 이런 마음이었다.


 네로는 무척 가난한 집의 소년이었다. 남들은 학교 다니며 공부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꿀때, 엄마 아빠도 없이 연로하신 할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며 일을 해야했다. 그것도 우유 수레를 끌고 우유를 배달하는 고된 일 말이다. 옛날에는 우유를 보관하는 기술도 없었다. 소에게서 바로 짠 젖을 간단한 가공(한번 끓이는 정도?)을 거쳐 곧바로 배달을 해야 했을터다. 아다시피 우유는 잘 상한다. 그리고 암소들은 새벽녘에 젖이 찬다. 네로는 어른들이 들기도 힘든 우유통(철이나 사기, 나무따위로 만들었겠지) 을 채운 수레를 -파트라슈의 도움이 있었지만- 끌고 다니며 배달을 해야 했을터다. (아마도, 각 집으로 배달을 지역 총판 정도로) 그 때 무슨 아스팔트가 있었을까. 길은 죄다 울퉁불퉁. 수레도 나무로 이어짠 수레. 쇼바-완충장치- 같은게 있었을리도 없고. 게다가 배달부는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박봉에 고된 직종이다. 그런 고된 직업을 네로는 어린 나이에 소화해야 했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편찮으시다. 하룻동안 버는 푼돈은 그 날 하루 먹을 거 살 돈과, 할아버지의 약값으로 다 사라진다. 하루라도 우유가 안 나오는 날은 그냥 다 굶어야 되는 것이다.  

 그런 네로는 언제나 성당에 걸려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갈망했다. 돈을 내고 볼 수 있었던 거대한 성당화.   

애니메이션판에는 우연히 후원자를 만나 그림을 배우러 다니게 되는데,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안 후원자의 집 자제의 질투에 후원이 끊기데 되어버리고, 그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은 아쉬워하는 내용도 나오지만, 어쨌든 네로는 순수하게 '예술' 그 자체 을 갈망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얼마나 갈망했으면, 죽어가면서도 그 그림을 보러 오고, 결국 보는 순간 정말 행복하게 생을 놓을 수 있게 된다.


 아마,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루의 피로, 생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아름다운 그림들, 음악들, 무용들, 문학들, 영화들. 

예술의 힘 말이다.  


예술은 그렇게 한 사람의 생에 힘을 넣어준다.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도 큰 역할을 해준다.


이주헌 작가의 전작 [지식의 미술관] 이 미술 입문서였다면, [역사의 미술관] 은 인문적인 가치로서의 '미술' 을 엿볼 수 있다.

사실 [지식의 미술관] 에서도 인문적 지식이 풍부했지만, 이번 [역사의 미술관] 은 보다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해설이 곁들여 있다. 제목이 [역사의 미술관] 이잖은가?! [지식의 미술관] 에서 작품들이 담고있는 메타포(은유적인 상징물들)와 그림을 그린 작가들의 시대적 사상들을 위주로 풀어줬다고 한다면, [역사의 미술관] 은 피사체, 즉, 그림의 모델이 된 인물과 사건들의 역사적인 사실: 그리고 그것들을 '예술' 로 기록한 의미에 대해 풀어주고 있다. '기록화' 로서의 미술의 역할을 풀어준다고 하면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진과 인쇄기술이 발달하기 전엔 미술이 그 역할을 했다. 현실을 예술적으로 담아내려는 노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사진' 이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오며 최근에는 기록화가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카메라가 발달하기 전에는 그림이 유일했을터다. 심지어 대중들을 선동하는 역할도 했다. 그림은 사진보다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가 쉽다. 가까운 예로, 북한에는 지금도 여전히 주체미술이 존재하고, 또 계속 발전하고 있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도 대중들을 선동하거나 제어하는 기술은 필요했다! 포스터는 지금도 여전히 그려지고, 많은 광고용 - 즉,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야 하는 - 이미지들은 모두 '예술적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큰 감동을 받으면 이런 말을 하잖은가?

 "우와, 예술이다..."

 바로 이 책에 그런 내용들이 충분히 담겨있다. 나폴레옹, 클레오파트라, 루이 14세와 스탈린, 히틀러까지! 

 어떻게 이들은 자신의 업적들을 예술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을까?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기에? 무슨 일을 했기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주헌 작가도 거듭 강조하는 부분이 있는데, 예술은 공부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직관' 에 따라 '감상' 하는 것이 '좋다'.(옳다 가 아니다. 예술 감상은 옳고 그름을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 은 바로 그런 '직관력' 을 기르기 위함이다. 즉, '통찰력' 을 키우기 위함인 것이다. 플란다스 지방의 가난한 우유 배달 소년이었던 네로가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었을리는 만무하다. 그때만 해도 예술은 지배계급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감과 붓, 종이도 비쌌지만, 그것으로 그려진 그림을 보는 것에도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네로는 이삼일치 밥을 굶어야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누구나, 너무나 쉽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주헌 작가는 '그림을 보는 일이야말로 나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방법' 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잘 생각해 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그림은 감상자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는 거대한 파동. 우리는 삶 속에서 쉬이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무뎌지기 때문이다.

뇌는 지속적인 자극에 약하다. 일정한 강도의 자극은 쉬이 익숙해지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감동들에 무뎌지게 한다. 기껏, 우리가 느끼는 자극이란 성욕, 식욕, 물욕 정도일터. 순수한 아름다움에 감동하기란 쉽지 않을터다.

 결국 예술을 즐기는 삶이란, 우리의 뇌에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 생동감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줄터다.


 미술.

어렵지 않 아 요~

일단, [지식의 미술관] 과 [역사의 미술관].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참고로,

데이트 할때 진짜 좋다. -.-)b 


하아....

난 언제 써먹지?? @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기억속의 색]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 기억 속의 색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권장도서
미셸 파스투로 지음, 최정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색들을 보며 살아간다. 우리 주위에 색이 없는 물건은 없다. 이 세상은 온통 색색이다. 색이란 빛이다. 광원에서 나온 빛이 어떠한 물체에 맞아 반사되는데, 그 빛은 각각 고유의 색이 있다. 빛의 3원색인, 빨강, 파랑, 노랑. 어떠한 물체에 반사되는 빛은 이 3원색을 무수하게 많은 방법으로 섞으며 우리 눈앞에 휘황찬란한 색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색 = 빛' 이라는 것은, 즉 색은 파동이라는 것이다. 빛이란 광입자들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파동으로 인한다. 그리고, 이 파동은 사람의 눈 속으로 들어간다. 눈이란 무엇이냐? 바로 외부로 돌출된 뇌이다.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아기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뇌가 만들어지고, 무수한 신경다발들이 뻗어 나가게 되는데, 눈은 뇌의 일부분이 쭈욱 하고 튀어나오면서 만들어진다. 때문에, 인간은 눈으로 보는 것에 굉장히 빠르게, 그리고 때로는 무조건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세뇌를 시키거나 최면을 거는 등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려 할 때 우선적으로 시각적인 자극을 먼저 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수 있다.  

 결국 '색' 또한 인간의 정신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색깔들은 각각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특징이 있다. 노란색이나 빨간색을 보면 따뜻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파란색을 보면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갈색을 보면 흥분이 가라앉고 침착해지는 반응을 보이게 되는 등 말이다. 이러한 '색깔'의 특징은 때론 계급을 나누는 척도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렇게 '색' 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의문 제기에서부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책은 '색' color 에 관한 미셀 파스투로의 에세이 모음집으로서 때론 깊이있게, 때론 가볍에 수많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적어 내려간다. 감색 재킷에서부터 흰색 속옷. 그리고 파란 블루진. 그리고 스탕달의 [적과 흑] 그리고 노란색으로 도색된 자전거와 19세기에 선호하던 색들과 20세기에 선호하는 색들의 변화, 뿐만 아니라 색을 지칭하는 수많은 단어들은 물론 비트겐슈타인의 저서까지.  온세상에 펼쳐져있는 눈으로 보는 빛으로서의 색 뿐 아니라, 우리의 관념과 통념, 이미지를 아우르는 색깔들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
 

 문득, 나도 기억속에서 '색' 을 떠올려 봤다. 나는 색칠쟁이다. 내가 하는 일은 하얀 종이위에 검은 선으로 그려진 그림을 받아 그 하얀 공간들을 여러 색으로 채우는 일이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색들을 집어 넣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새빨간 레드. 붉은색 종류는 대부분 좋아하지만 특히 버밀리온에 가까운 붉은색을 좋아한다. 피색과 불색의 중간쯔음. 색의 이름인 '버밀리온' 이 상징하듯, 불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 나는 뜨거운 색이다. 사실 붉은색은 남자들에게는 금기시 되는 색이나 다름없었다. 최불암 시리즈에 등장했던 빨간내복은 조롱의 대상이었으니까. 하지만, 2002 월드컵, 대한민국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었고, 한국 대표팀 중의 대표인 박지성은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으로 이적하며 붉은 유니폼을 입었다. 팀의 애칭조차 '레즈' 였던 팀의 일원으로 많은 남자들의 우상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금기시 되었던 색인 붉은색. 오죽하면 우린 국민학교때 '빨간색으로 이름쓰면 죽는다' 라는 말을 미신처럼 믿어왔지 않은가. 하지만, 중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었던 붉은색. 우리에게 금기의 상징이었던 붉은색은 2002년, 그렇게 완벽히 깨지게 되었고,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여러 붉은색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색은 그렇게 사회의 통념 속에 숨쉬고, 우리의 일상속에서 숨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