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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미술관 - 그림, 한눈에 역사를 통찰하다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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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 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거다. 충직한 개 파트라슈와 연로하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우유 수레를 끄는 소년 네로. 그리고  네로의 소꼽친구 아로아가 나오는 감동적인 동화. 전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았고,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방송되기도 했다. 동화속에서도,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네로는 성당에 걸려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며 파트라슈와 함께 행복하게 죽어간다. 나는 '죽음' 에 대한 자각을 상당히 일찍 한 편이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죽음을 자각했었고, 이 세상에서의 소멸이라는 것이 주는 공포를 경험했더랬다. (그 뒤엔 영원이라는 것의 공포도 경험했다.) 그래서, 그림을 보며 행복하게 죽어가는 네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음은 무서운거고, 슬픈거잖아. 고작, 그림 한 점 보면서, 죽는데 행복하다니, 그게 말이 되?? 이런 마음이었다.


 네로는 무척 가난한 집의 소년이었다. 남들은 학교 다니며 공부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꿀때, 엄마 아빠도 없이 연로하신 할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며 일을 해야했다. 그것도 우유 수레를 끌고 우유를 배달하는 고된 일 말이다. 옛날에는 우유를 보관하는 기술도 없었다. 소에게서 바로 짠 젖을 간단한 가공(한번 끓이는 정도?)을 거쳐 곧바로 배달을 해야 했을터다. 아다시피 우유는 잘 상한다. 그리고 암소들은 새벽녘에 젖이 찬다. 네로는 어른들이 들기도 힘든 우유통(철이나 사기, 나무따위로 만들었겠지) 을 채운 수레를 -파트라슈의 도움이 있었지만- 끌고 다니며 배달을 해야 했을터다. (아마도, 각 집으로 배달을 지역 총판 정도로) 그 때 무슨 아스팔트가 있었을까. 길은 죄다 울퉁불퉁. 수레도 나무로 이어짠 수레. 쇼바-완충장치- 같은게 있었을리도 없고. 게다가 배달부는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박봉에 고된 직종이다. 그런 고된 직업을 네로는 어린 나이에 소화해야 했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편찮으시다. 하룻동안 버는 푼돈은 그 날 하루 먹을 거 살 돈과, 할아버지의 약값으로 다 사라진다. 하루라도 우유가 안 나오는 날은 그냥 다 굶어야 되는 것이다.  

 그런 네로는 언제나 성당에 걸려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갈망했다. 돈을 내고 볼 수 있었던 거대한 성당화.   

애니메이션판에는 우연히 후원자를 만나 그림을 배우러 다니게 되는데,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안 후원자의 집 자제의 질투에 후원이 끊기데 되어버리고, 그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은 아쉬워하는 내용도 나오지만, 어쨌든 네로는 순수하게 '예술' 그 자체 을 갈망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얼마나 갈망했으면, 죽어가면서도 그 그림을 보러 오고, 결국 보는 순간 정말 행복하게 생을 놓을 수 있게 된다.


 아마,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루의 피로, 생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아름다운 그림들, 음악들, 무용들, 문학들, 영화들. 

예술의 힘 말이다.  


예술은 그렇게 한 사람의 생에 힘을 넣어준다.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도 큰 역할을 해준다.


이주헌 작가의 전작 [지식의 미술관] 이 미술 입문서였다면, [역사의 미술관] 은 인문적인 가치로서의 '미술' 을 엿볼 수 있다.

사실 [지식의 미술관] 에서도 인문적 지식이 풍부했지만, 이번 [역사의 미술관] 은 보다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해설이 곁들여 있다. 제목이 [역사의 미술관] 이잖은가?! [지식의 미술관] 에서 작품들이 담고있는 메타포(은유적인 상징물들)와 그림을 그린 작가들의 시대적 사상들을 위주로 풀어줬다고 한다면, [역사의 미술관] 은 피사체, 즉, 그림의 모델이 된 인물과 사건들의 역사적인 사실: 그리고 그것들을 '예술' 로 기록한 의미에 대해 풀어주고 있다. '기록화' 로서의 미술의 역할을 풀어준다고 하면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진과 인쇄기술이 발달하기 전엔 미술이 그 역할을 했다. 현실을 예술적으로 담아내려는 노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사진' 이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오며 최근에는 기록화가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카메라가 발달하기 전에는 그림이 유일했을터다. 심지어 대중들을 선동하는 역할도 했다. 그림은 사진보다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가 쉽다. 가까운 예로, 북한에는 지금도 여전히 주체미술이 존재하고, 또 계속 발전하고 있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도 대중들을 선동하거나 제어하는 기술은 필요했다! 포스터는 지금도 여전히 그려지고, 많은 광고용 - 즉,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야 하는 - 이미지들은 모두 '예술적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큰 감동을 받으면 이런 말을 하잖은가?

 "우와, 예술이다..."

 바로 이 책에 그런 내용들이 충분히 담겨있다. 나폴레옹, 클레오파트라, 루이 14세와 스탈린, 히틀러까지! 

 어떻게 이들은 자신의 업적들을 예술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을까?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기에? 무슨 일을 했기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주헌 작가도 거듭 강조하는 부분이 있는데, 예술은 공부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직관' 에 따라 '감상' 하는 것이 '좋다'.(옳다 가 아니다. 예술 감상은 옳고 그름을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 은 바로 그런 '직관력' 을 기르기 위함이다. 즉, '통찰력' 을 키우기 위함인 것이다. 플란다스 지방의 가난한 우유 배달 소년이었던 네로가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었을리는 만무하다. 그때만 해도 예술은 지배계급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감과 붓, 종이도 비쌌지만, 그것으로 그려진 그림을 보는 것에도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네로는 이삼일치 밥을 굶어야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누구나, 너무나 쉽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주헌 작가는 '그림을 보는 일이야말로 나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방법' 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잘 생각해 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그림은 감상자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는 거대한 파동. 우리는 삶 속에서 쉬이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무뎌지기 때문이다.

뇌는 지속적인 자극에 약하다. 일정한 강도의 자극은 쉬이 익숙해지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감동들에 무뎌지게 한다. 기껏, 우리가 느끼는 자극이란 성욕, 식욕, 물욕 정도일터. 순수한 아름다움에 감동하기란 쉽지 않을터다.

 결국 예술을 즐기는 삶이란, 우리의 뇌에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 생동감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줄터다.


 미술.

어렵지 않 아 요~

일단, [지식의 미술관] 과 [역사의 미술관].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참고로,

데이트 할때 진짜 좋다. -.-)b 


하아....

난 언제 써먹지??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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