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조의 드로잉 튜토리얼 Vol.2 로렌조의 드로잉 튜토리얼 2
로렌조 에더링턴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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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부터 미국만화를 좋아했다.

청계천에 헌책방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옛날 미국 코믹북들이 놓여있곤 했다.

정보가 워낙 적어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처럼 유명한 마블 코믹북이나 알았던 나에겐 전혀 알 수 없었던 헤비메탈이나 헬보이, 스폰 같은 책들이었다.

수집용인듯 워낙 고가라 비닐 포장지에 담겨 주인들이 나같은 꼬맹이에겐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았었는데, 헌책방 거리를 주욱 지나 황학동 부근에 이르면 길가에 아무렇게 부러놓고 누구든 한번 훑어볼 수 있게 쌓아둔 책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도 있었다.

당시 한국 출판만화의 90% 정도는 일본만화였기에 미국의 코믹스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극대화된 인물뎃셍과 굵은 펜선, 4도~8도의 컬러 안에서도 과감한 먹칠로 명확한 대비를 주는 그림체는 일본만화와는 크게 다른 느낌이었다.


로렌조의 드로잉 튜터리얼은 그런 나의 개인적 취향에도 무척 맞아떨어지는 책이었다.

이 책 속엔 내가 좋아하는 그런 스타일의 그림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색인 형태의 책들은 기본적으로 초심자를 위한 책은 아니다. 차근차근 앞에부터 따라 그리는 용도의 책이라기보다, 백과사전처럼 오브젝트들을 일정한 테마별로 정렬해 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따라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 따라그리기도 애매하고, 어떤 부분을 취해서 연습해보아야 할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알 정도는 되어야 큰 쓸모가 있을 것이란 의미다.


책은 크게 일곱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는데, 이 섬세한 배치만 봐도 책을 만드는데 기획과 편집팀이 얼마나 큰 고심을 했을지가 눈에 훤했다.

먼저 1번 챕터는. 캐릭터 디자인이다.

사람의 얼굴, 이목구비의 자연스러운 배치부터 망토, 갑옷과 동작의 팁들이 소개된다.

2번 챕터는 동물과 몬스터.

크리쳐의 이빨부터 드래곤과 털가죽, 토끼와 공룡, 유령까지 등장한다.

3번 챕터는 탈것과 기계.

탈것들을 쉽게 디자인할 수 있는 작가의 노하우와 표피의 손상 표현, 해적선과 로켓 구름의 물리적 표현 팁까지 소개된다.

4번 챕터는 작은 불, 모래, 깃발 등등의 물리적 요소들을 표현하는 팁들이 소개되고

5번 챕터는 오브젝트들의 배치를 비롯한 레이아웃과 구도 전반에 대한 팁들이 소개된다.

6번 챕터는 자연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거미집과 조약돌을 비롯해 산과 덩굴식물, 무성하게 자란 식물들과 숲을 깊이있게 표현하기 위한 팁들이 소개되고, 7번 챕터는 초콜릿이나 병, 바구니, 사슬과 계단, 동기둥과 같은 인공물들을 그리는 팁들을 소개한다.

정말 많은 내용들을 일목요연한 듯 일목요연하지 않게 잘 배치했다.


책의 구성은 넓게 펼친 두 면에 한 테마를 할애한다. 예를들어 "토끼" 라고 한다면 왼쪽엔 토끼를 그리기 위한 해부학적 요소를 간단히 소개하고, 오른쪽엔 토끼를 더 토끼답게 그릴 수 있는 작가의 팁이 소개된다.

특히 이 작가만의 노하우는 토끼를 비롯한 비슷한 형태의 어떤 동물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만큼 훌륭하고 깊이있는 아이디어들이라서 정말 감탄했다.

사실, 모든 페이지가 감탄의 연속이었다.

이정도면 거의 세상 모든것들을 자기 스타일로 표현해내고, 그것들을 조합하고 이어붙여서 새로운 것들을 얼마든지 창조해 낼 수 있는 수준이다.

정말 얼마나 생각하고, 관찰하고, 그렸을지 감이 안잡힐 정도로 방대한 양들이 이 책 속에 녹아있었다.


비록 이 책은 출판사를 통해 제공받았지만, 앞에 1권과 마지막 3권은 내 돈으로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러다가 가격에 섬짓 하긴 했지만...요새 책이 워낙 비싸니... 그만큼 책 질은 너무나 좋다. 이북으로 안내주시나)

여러번 언급했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면 전체 다 떼기를 해도 될 정도로 훌륭한 작법서다.

나도 내년 첫 목표로 이 책 떼기로 정했다.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하기보다, 반대로 나에게 이 책을 리뷰하게 해준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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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초고속 성장법 - 사이토 나오키 3개월 연습법
사이토 나오키 지음, 김재훈 옮김 / 잉크잼(잼스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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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림은 기술이라서 딱히 대단한 훈련법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근육과 정신, 신경에 그 행동을 반복 숙달시키는 훈련이 유일하고, 결과물은 대부분 훈련양에 비례한다. 물론 재능의 차이는 있지만, 기술적인 면에서의 재능은 거의 훈련양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프로 그림쟁이가 되기 위해서는 사실, 자신의 니즈와 대중의 니즈가 일치한다는, 타이밍적인 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흔히 "트렌드" 라고 부르는 이 부분은 진득하게 한 우물만 파다보면 일생에 한번쯤은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걸 남들도 좋아한다' 는 포인트. 이 부분이야말로 창작자가 타고날 수 있는 최고의 운인데, 일단 그 지점에 닿기 전에 "기술적 완성도" 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기술적 완성도를 다룬 책으로, 작법서처럼 꾸며져 있지만, 사실 창작노트; 에세이에 가깝다.


기술적인 면은 결국 "많이 그리세요" 를 여러 버전으로 틀어서 소개할 뿐이고, 그보다는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에서 저자가 멘탈을 관리한 노하우를 엿볼 수 있다.

예를들면, SNS에 올리는 걸 주 목표로 삼고, 그 전에 자신을 칭찬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공개하고, SNS에 반응이 오지 않으면 당분간 끊는다는등, 저자 본인이 SNS 중심으로 활동하는 분이라서 그림 실력에 대한 부분보다 멘탈관리에 대한 부분이 유익한 점들이 많았다.

일단, 목차를 살펴보자.


크게 여섯개의 주제별 단락으로 나뉘어 있고, 각 단락 안에 3~5개의 소주제가 나뉘어 담겨있다.


1.따라 그리고 싶은 그림을 찾자

ㄱ. 따라 그릴 그림 찾는 법

ㄴ. 심화1. 좋은 그림의 공통점

ㄷ. 경험자와의 인터뷰 1


2. 찾은 그림과 똑같이 그려보자

ㄱ. 그림을 바로 따라 그려야 하는 이유

ㄴ. 심화2. 캐릭터를 잘 그리는 법

ㄷ. 시청자의 질문1

ㄹ. 경험자와의 인터뷰 2


3. 내 그림과 참고한 그림을 비교하자

ㄱ. 비교하는 과정에 앞서 필요한 것

ㄴ. 심화3. 나쁜 그림의 공통점

ㄷ. 경험자와의 인터뷰3


4. 한 포인트에 집중해서 연습해 보자

ㄱ. 문제를 찾고 하나씩 해결하자

ㄴ. 심화 4. 그림이 좋아지는 습관

ㄷ. 경험자와의 인터뷰4

ㄹ. 시청자의 질문 2

ㅁ. 경험자와의 인터뷰5


5. 연습을 바탕으로 다시 그려 보자

ㄱ. 연습한 내용으로 2회차에 돌입하자

ㄴ. 시청자의 질문 3

ㄷ. 3개월 실력 성장법의 주의법

ㄹ. 경험자와의 인터뷰 6


6. 추가 학습

ㄱ. 3개월 실력 성장법 뒤에 기다리는 것

ㄴ. 3일 만에 실력 키우는 법

ㄷ. 하루 만에 실력 키우는 법

ㄹ. 1시간 만에 실력 키우는 법

ㅁ. 그리지 않고도 실력을 키운다?

-마치며

-연습노트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많이 그리고, 확인해보고, 또 그리고.

역시 출판 대국답게 기획도 잘하고, 구성도 훌륭하다는 감상이 안 나올 수 없다.

구도나 연출에 대한 기술적 노하우도 충분하게 녹아있다고 평하긴 어렵지만, 적은 양이지만 핵심적인 요소를 잘 담았고, 연습법들도 움직임을 애니메이션처럼 연결해서 그리기나, 14시간 연속 그리기, 썸네일로 그리기 등 해외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잠깐씩 언급했던 연습법들을 자신만의 연습법과 연계해서 잘 정리해놨다.

여기에, 국내에선 그림그리는 유튜버로 잘 알려진 김락희 작가님이나 청자들의 웹툰을 피드백 해주는 영상이 있었던 송재형 작가님의 유튜브를 곁들이면 제법 괜찮은 연습 노하우들을 습득할 수 있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 재밌어한 부분은, 전신 일러스트를 연습하라거나, 볼펜으로 연습하라는 부분들이었다.

나는 처음 그림을 그릴때부터 전신이 나온 그림을 따라그렸던 기억이 난다. 주로 일러스트가 전사된 컬러 책받침들을 보고 그렸었다.

처음 그렸던게, 현대였나 기아의 자동차 홍보용 일러스트에 그려져 있던 배트맨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국민학생때였는데, 그 일러스트는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아무리 비슷하게 따라하려고 해도 안됐던....

그 다음이 드래곤볼 책받침에 초사이어인 손오공이 서있는 그림이었고, 처음 펜촉에 잉크를 찍어서 모사했던 그림은 일본판 뉴타입에 실려져 있던 FSS 설정집의 미라쥬였다.

왜 이런 조언이 필요했을까 했더니, 요즘 친구들은 작은 화면에 길들여져있고, 디지털 기기로 그림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는 점에 다달았다.

확실히, 필요하겠구나. Un Do 와 Re Do 가 없는 하얀 종이에 볼펜. 요즘 친구들은 그게 더 어색할거다.

수정할 수 없는 선으로 연습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관찰력과 형태력이 눈에 띄게 달라질 것.


여튼, 이 책은 완전한 초심자용이다. 연습법도 거의 '가나다' 부터 알려주는 정도이고, 전반적으로 친절하다.

개인적으로 꽤나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져있는데, 그런 나에게도 잔잔하게나마 자극을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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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hk 2023-12-25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님 이책 좋음. 님이 보이는게 그범위일뿐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도널드 리치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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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예민한 사람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음. 이견은 당신말이 다 맞음.


※서평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에게 제공받았습니다.

만... 정말 이 책을 읽은 기록을 남길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다른 분들이 올린 서평들을 보니, 아주아주 우호적인 평들이 많아 마음 편히 이런 뉘앙스의 독서감상을 올려도 좋겠다, 싶었다.)


그 탓에 제공받은 지 2주만에 올려야 하는 이 글을 약속 기한보다 한참 늦게야 올리게 됐다.

본격적으로 이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전에 내가 너무너무 감명깊게 읽었던 동 출판사의 [일본의 굴레] 이야기를 잠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이다.

아주 일찍부터 일본 만화를 접해왔고, 일본 게임을 즐겨왔다. 내가 생업을 위해 살짝 발을 담그고 있는 이 바닥도 결국엔 일본 만화의 영향을 엄청나게 많이 받기도 했다. 나의 먹고사니즘은 결국, 재패니즘에서 태동했달까.


다른 쪽으로는, 개인적으로 대하 소설을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역사물에 심취했다가, 중국 역사물 맛을 살짝 봤다가, 서양 역사물에도 빠지고, 일본 역사물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 다음 수순은 당연히 세계대전사였고, 러일전쟁부터 시작되는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가 중일전쟁을 넘어 조선을 식민지화 하고, 나아가 아시아를 집어삼키는 장면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아니, 이런 만화를 만들어내는 나라에서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던걸까??

더 많은 책을 읽으며 일본이 제국주의의 광기에 빠져드는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영국이 되고 싶었던 프로이센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이었다.

전범국으로 각각 아시아와 유럽에서 대 학살을 저질렀던 일본과 독일은 같은 전철을 밟았다.

아니, 전후 재건의 상황에 관해서는 일본이 독일보다 나았다고 볼 수도 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독일은 동서로 나뉘어 미국과 소련의 지휘를 받으면서 이념갈등의 소용돌이 그 중앙에 있었던 반면, 일본은 맥아더의 지휘 아래 발빠르게 민주국가로 변화해 나갔다. 이후 미국의 우호적인 손길 아래 서독과 일본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주아주 간략하게 압축하자면, 독일은 오일쇼크와 함께 휘청이기 시작한 소련 덕에, 일본은 베트남 전쟁과 한국 전쟁 덕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이 지나온 전쟁을 바라보고, 피해국가에 대해 배상하는 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독일은 직시했고, 일본은 회피했다. 어떻게, 왜 그리 되었을까??


[일본의 굴레] 는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그들의 정치, 이념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인문학적으로 고찰해 나가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나니, 일본이 왜 그토록 전쟁 배상에 소극적이었는지, 아직까지도 어떻게 해서든 그 과거를 지우기 위해 애쓰는지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나 나름대로의 독서 흐름에 비춰본다면,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이하 일본 미학) 은 정확히 그 대척점에 있는 책이다.

[일본의 굴레] 가 현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상처를 들쑤셔가며 진단하는 책이라면, [일본 미학]은 일본 문화의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잘 포장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도널드 리치'라는 외국인-이지만 사실상 일본인인-의 입을 빌려 일본의 문화를 개인적인 경험에 녹여내고 있다. 외국인이 다른 국가에서 반평생을 살아간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나라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쉽지 않을 터이고, 도널드 리치는 일본 문화(영화) 평론가였다. 게다가 이 책은 그의 본업인 평론도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에세이 모음'이다. 일본에 대해 우호적일 글일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유튜브나 TV프로그램 나오는 외국인들을 떠올리면 쉽다.

이탈리아인 알베르토 몬디가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방송용이다 아니다를 떠나,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것 처럼. 일본이나 우리나 외국인-특히 우리보다 더 선진국- 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건 매한가지다.

오히려 그건 일본이 원조다.

오죽하면, 걔네는 인정받으려고 러시아에 전쟁걸고, 중국에 전쟁 걸었던 글로벌 관종이었다.

후발주자들은 언제나 선발주자를 따라잡기를 갈구하고, 결국 그들이 돌아보며 인정해주기를 갈구하기 마련이다.

TV 패널로 일본말 잘하는 외국인들을 앉혀 자기네 영화나 노래에 대해 구구절절 떠들게 하는 포맷의 원조가 그들이다.

'국뽕 마케팅' 이 돈이 된다는 것 역시 그들이 먼저 알았던 것이다. 그건 외국인이 해줄때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이 책을 이렇게 평가한다면 다소 박할 수도 있겠으나, 결국 그러한 마케팅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영화 평론가 외국인 아무개씨가 반평생 살며 느껴온 OO의 미학."

목적어가 "일본" 이 아니라 "한국" 이었다고 가정한다면 나의 평가를 무조건 반대할 순 없을 것이다.

예를들어, [기생충] 을 번역한 달시 파켓이 30년동안 한국에 살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에세이를 펴낸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이 과거에 우리나라에 저지른 역사에 대해 따져묻는 일은 일본이란 국가가 멸망할 때 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엔화의 강력한 힘으로 세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펼치고 있는 전범 이미지 세탁에 대해서도 치가 떨리도록 분노하지만, 일본의 문화 자체에는 호의적이다.

문화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끊임없이 교류해왔다. 떼려야 뗄 수 없고, 아니라고 무시하려야 할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호의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중국대륙 어디에선가 발원한 한자문화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면서 바뀌었고, 한강을 건너면서 또 바뀌었으며, 영산강과 낙동강을 건너면서 또 바뀌었다. 그리고 그게 다시 거슬러 올라가고, 인천을 통해, 부산항을 통해 오가는 "변형된 한자문화" 들과 얽히고 설켰다. 그 중엔 심지어 라틴어 문화도 있었고, 인더스 문명의 그것도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시간동안, 변하고, 변하고, 바뀌고, 또 바뀌고, 주고, 또 받고.

그리고 가장 가까운 일본과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하게 됐을 것이다.

엄청나게 비슷하면서, 엄청나게 다르다.

이 어찌 재밌지 않을 수 있겠나. 이 어찌 무조건 미워할 수밖에 없을까.

역사를 꾹 눌러 압축한다면,아시아의 한자문화권 나라들은 중국이라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들일 수 밖에 없잖은가.

이 어찌 무조건 배척하고, 미워할 수 있겠냐고.

어딘가에는 동질감, 유대감에서 발현되는 호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가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는 반일감정은 오로지 2차대전 이후 세대를 통해 유전자에 각인된 것일 터다.

돌아가신 우리 친할아버지만 해도 창씨개명 시대 분이신데.

나는 한번도 뵙지 못했던 친할아버지의 형님은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까지 되셨던 분이었다.

어쩌면, 일본이 딱 두번의 왜란 정도에서 멈췄다면, 나의 어딘가에 있는 대 일본 스위치가 "항일" 이 디폴트 값으로 설정되지는 않았을텐데.

그리고, 최근 10년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 결국 아베의 우리나라를 향한 무역전쟁으로 비화되는 그 사건이 아니었으면 이 책을 좀 더 기분좋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라면, 지금도 추천할 수는 있다.

글은 담백하고, 평론가답게 나름대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도 보인다.

일본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 저자가 느끼는 것들에 대한 소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트 넘치는 수기와는 다르지만, 그 나름의 맛이 있다.

다만, 노란머리 일본인(검은머리 외국인의 반대??)으로서 일본 문화에 가지고 있는 애정이 바탕에 깔려있고, 그게 내 유전자 중에서도 거의 1,2세대 사이에 각인되었을 어떤 억하심정을 건드린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워 하면서도, 그걸 흥미로워하는 내 자신을 타박하는 누군가가 발끈발끈 튀어 올라온다고나 할까.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적을지 말지 고민했던 이유다.

과연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 수 있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잘 떠오르지가 않더라.


어쩌면, 2000년생... 아니 1990년생들만 해도 이런 일본에 대한 발끈함이 없을지도 모르겠으니,

그런 친구들에겐 충분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

좋은 책이지만, 기획의도와 내용, 시기가 모두 안맞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일과 친일, 쟈포니즘과 일뽕 그 어딘가를 해매이다가 결국은 내 마음 속 어딘가 감춰있던 항일을 찾아낼 수 있었던 책.

아, 진짜 지금이 무슨 항일 독립 투쟁하던 시기도 아닌데... 왜 이래야 되냐고.


충분히 좋은 책이고, 개인적인 흥미도 있는데....


새삼스레, 죽었지만, 짜증난다. 아베시키.

그 전에 최순실박근혜도.

그 더 전에 역시 죽었지만, 개 짜증난다. 도조 히데시키. 토요토미 히데요시키.

순수하게 역사적 사건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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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일러스트 무기 아이디어 사전 쉽게 배우는 만화 시리즈 71
사이도 런치 지음, 김재훈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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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클립 스튜디오 카페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제공받았음.

내가 만화를 처음 공부하던 무렵엔 정보들이 참 부족했다.

인터넷도 없었고, 외국 서적을 찾기도 어려웠다. 일본 만화는 이제야 막 정식 라이센스를 맺어 한국 이름으로 개명을 한 강백호와 서태웅이 해적판들을 몰아내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지망생들은 일본 동인처럼 소규모 그룹을 지어 정보를 공유했고, 그런 그룹에 참여하지 못하는 독학생들의 희망은 "코믹테크" 라는 잡지였고, 청계천 헌책방이나 고속버스터미널에 있는 수입서적 판매상들 뿐이었다.

확대복사된 아키라의 열화판과, 베르세르크의 해적판인 "불멸의 용병" 같은 만화들이 교과서 역할을 했다.

(핀터레스트와 구글 이미지, 아트스테이션,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어마어마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너무너무 환경이 좋아졌는데, 나는 왜 오히려 그림을 덜, 못 그리게 되었을까... ㅋㅋㅋ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당시에 가장 목말랐던 정보들은 당연히 "자료" 였다.

당대의 지망생, 만화가들은 카메라가 필수였다. 닥치는대로 사진을 찍어 배경자료들을 쌓았고, 코믹테크 잡지의 말미에는 언제나 편집부에서 직접 찍은 배경 자료 사진들을 실어주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명승지나 고적, 무기 같은 자료들은 언제나 부족했다.


오죽하면 나는 여행책자를 사기도 했다. (독학 지망생의 슬픔이었다. )

이 책을 보면서 그 시절이 많이 생각났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본격적인 무기 도감은 아니고, 간략화되어 이미지화 된 무기 일러스트들이 실려있는 책이다.

물론, 꽤 상세한 설명들이 곁들여 있다.

본격적인 무기 도감이 아니지만, 각 무기의 특징과 설명들이 허술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전설 속 무기들도 제법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무기의 동작 매커니즘과 제작원리, 방식도 간단하지만 언급하고 있다.


물론 무기를 그리는 스킬도 적당히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디자인, 그림은 피상적인 외관만 안다고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이디어" 를 추출해 내기 위해서는 겉핥기로라도 구조를 알아야 가능하다.

이 책은 기획의도인 "아이디어" 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 엿보인다.

웹툰의 열풍과 함께 지망생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한 시대가 됐다.

일본에 존재하는 엄청난 규모의 만화가용 서적 시장에 비할바는 아니겠으나, 오히려 후발주자인 덕에 검증된 좋은 서적들로 우리 시장을 채울 수 있다는 점이 참 감개무량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출간된 만화가를 위한 서적들은 대체적으로 퀄리티가 뛰어나고, 이 책 역시 그러하다.

다만, 모두 초보자용에 가깝다.

물론,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무기를 한 권에 담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다 정밀한 무기 고찰은 밀덕들을 위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겠지...


마지막으로, 이 책이 제공하고 있는 클립 스튜디오용 에셋이 존재한다.

용량이 꽤 되서, 책 뒤편에 적혀있는 링크와 패스워드를 이용하면 3D 모델 포즈와 고퀄리티 무기 일러스트 몇점을 제공받을 수 있다.


이렇게 변형이 가능한 3D 모델 포즈는 여러모로 쓸만하지만,

정작

무기일러스트는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게다가 고작 8점....

개인적으로는 책 내용보다 이 에셋을 더 기대했는데...

8점이라도 3D모델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다 평면적인 일러스트들이라 활용도도 낮고.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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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1
우오토 지음, 하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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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2020~21년 사이에 많이 들어봤다.

"진격의 거인" 의 뒷자리를 바로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

이사야마 하지메 이후 비슷한 뉘앙스의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천재나 귀재라는 표현을 우리보다 흔하게 쓰곤 한다.

마케팅의 일종이겠지만, 솔직히 이 작가들이 토리야마 아키라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들에 비한다면 천재나 귀재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작가들을 폄하하려는게 아니라, '천재'나 '귀재'가 갖춰야할 재능의 허들이 꽤 낮아보인다는 말이다.

이 작품 역시 일본에서 연재 당시에 천재적인 작가의 작품이라고 호들갑을 꽤나 떨었던지라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첫 장을 펼쳤다.


일단, 작화 수준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만화에는 다양한 기술과 재능이 필요하다. 작화, 연출, 서사, 인물 등.

그 중 한가지가 매우 특출나면, 다른 부분들이 다소 떨어져도 독자들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다만, 작화의 경우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다른 무엇보다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만화에서는 첫 페이지가, 그리고 첫 화가 가장 중요하다. 누구나 쉽게 꺼내서, 쉽게 열고, 쉽게 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만화를 "완독" 하겠다는 목표 따위를 갖지 않는다. 잡지에는 여러편의 작품들이 실려있고, 그 중 한두 작품 쯤은 읽지 않아도 상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격도 싸다. 그렇기에, 만화책 한권 쯤이야. 첫 에피소드만 읽고, 맘에 안 들면 쉽게 내던진다.


독자를 유혹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면서 기본적인 무기는 작화이고, 그를 보완하는 것이 연출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잡지 주간 연재만화는 2~4페이지 안에 독자를 빨아들이지 못하면 주목받지 못하고, 작가로서 데뷔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일본 만화는 그렇게 오랫동안 주간 연재 만화 시스템이 고이고 고여, 첫 페이지와 첫 화에 대한 다양한 연출기법들이 교과서처럼 정립되어 있는데, "지: 지구의 운동에 관하여" 라는 작품의 첫 페이지 역시 그런 주간 연재 만화의 공식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작화의 부족함이라는 단점을 완벽하게 숨기고, 전형적이지만 효과적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무엇을 바쳐야 이 세상의 전부를 알 수 있냐?" 는 도발적인 도입 씬 만으로 나는 충분히 빠져들어, 2권까지 정신없이 읽어나갔다.


이야기는 15세기 초반, 프랑스의 어느 한 도시에서 시작된다.

작품이 꽤나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국가 이름이나 종교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누가봐도 중세 유럽을 지배했던 가톨릭 국가들을 지칭함을 알 수 있다. 얄팍하게 감추지만, 이 작품이 주제를 진지하게 다룰 것이라는 선전포고처럼 느껴졌다.


"지地 -지구의 운동에 관하여-" 라는 제목답게 이 작품은 지동설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이단 심문관 "노바크"의 잔인 무도한 고문장면과 장래가 촉망되는 영재 소년 "라파우"로부터 이 진중한 주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이야기 전체의 도입부인 1권만으로도 구성이 매우 뚜렷하고, 사건의 개연성은 물론 캐릭터들이 획득하고 있는 핍진성도 매우 훌륭하다.

특히, 라파우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가는 모습이 상당히 진지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그 쯤 되면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인 불안정한 작화는 다소 뒤켠으로 밀려나게 된다.

만화에서 "작화" 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가독성" 때문이다.

텍스트로 이뤄진 문학작품의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첫번째 덕목은 "얼마나 잘 읽히는가" 이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해도 읽는순간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가치가 떨어지게 될 것이다. 한 문장 안에 수많은 내러티브와 함의를 담는다 해도 독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오독하게 한다면 어떠한 아름다움과 가치가 있겠는가.

만화에서 "그림" 이란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제 아무리 유려한 화력을 뽐내더라도, 독자들이 그 페이지를 통해 어떤 인물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적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좋은 "만화"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작품의 작화수준은 그림체가 안정적이지도 않고, 데셍이 정확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가독성을 망가뜨릴 정도는 아니다.

특히, 비교되는 이사야마 하지메의 "진격의 거인" 1권과 비교해본다면 더더욱.

적어도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은 공중을 붕붕 날아다니며 칼을 휘두르지도 않고, 십여명에 달하는 동료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기에 "가독성" 면에 있어서는 작화력의 우선순위가 뒤쪽으로 밀려도 크게 문제될 부분이 적다.

(오히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엽기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덜 끔찍해 보이는 장점으로 발휘되기도 한다.)



나도 가끔 생각해본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오로지 종족 번식을 위해서라면... 그래서 결혼과 출산, 양육이 유일한 이유이자 목표라면.

자식을 위해 삶을 쏟는것만이 우선순위고, 정답이라면,

지구가 돌건, 하늘이 돌건.

무슨 상관일까?


그게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기 시작한다.

성장이란, 다른말로 "살아있음" 을 소모하기 시작한다는 의미, 죽어간다는 의미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보람찼건, 허무했건, 그냥 죽음에 하루 더 가까워질 따름이다.

달리 말하면, 모든 인간은 죽기위해 살아간다.

오직 죽음을 위해 달음치는 것이 삶.

나는, 넉넉잡아 100년 뒤면,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난 적 없었던 것 처럼 완벽히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왜 살고 있지?

다른 어떤 사람들의 정답처럼 종족 번식을 위해 자식을 양육하는 것도 아닌 삶을, 왜, 영위하고 있지?

나의 선택은, 나의 삶은 "틀린" 것인가?


아마 이러한 질문은 인류가 "문명" 이라는 것을 시작한 순간부터, 언젠가 멸종할 그 날까지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한다. 혹은 부여받았다고 주장한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이번 생을 "태어나지 않은" 걸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 생을 온전히 타인을 위해 살기로 했다.

오롯하게 봉사단체만을 좇아다니며 희생적인 삶을 살고 있다.

어떤 이는 국가를 위해, 어떤 이는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이는 욕망을 위해, 어떤 이는 종교를 위해....

어떤 이는, 그냥, 태어났으니까.

그 무언가를 위해, 하루를 죽어간다.


문제는, 어떤 누군가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에, 자신의 가치를 강요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진리이고, 진실이라며.

그것은 단순히 결혼과 양육일 수 있고, 삶의 태도와 죽음 후의 세계일 수도 있다.

"불신" 은 "지옥" 이라거나 "낳지" 않으면 "멸종" 이라는 협박이 들어가기도 하고, "진리" 가 아니면 "칼" 이라는 폭력이 수반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할까??

나의 삶은, 타인의 삶보다 가치있는가? 의미있는가? 숭고한가?

그런 "가치" 를 부여할 만 한 것인가?

그런 판단을 할 자격이 있는가?

그것이, 나의 신은 너의 신보다 강하다고 주장하던 그 시절의 그들보다 진리에 가깝다고 평가하는가?

지구가 돈다는 단순한 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리보다 더 진실한가?


이 작품은 한 이데올로기가 세계관 전체를 꼬챙이에 꿰어 놓았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이로 인해 진리와 진실이 왜곡되고, 새로운 시각이 세계관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실제로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이 진리였던 시대가 있었다.

아프리카인들이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는, 여성이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어린아이는 동물과 같아서 훈육에 폭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종교가 다른 인간은 마음대로 죽여도 된다는, 동물은 고통과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인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고 왕과 귀족은 하늘이 선택했다는, 대기 중에는 에테르라는 물질로 가득 차있다는, 지구는 평평해서 계속 나아가면 절벽에서 떨어진다는, 태양과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진리" 인 시기가 있었다.

불과 5~600년 전까지도 그랬고, 개중 많은 것들은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천동설들이 코페르니쿠스적 변화 뒤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인간에게 500, 600년은 너무 짧은 시간일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한걸지도.


코페르니쿠스가 발표하고, 케플러가 검증했던 지동설은 갈릴레이로 이어졌다.

1권 라파우의 에피소드는 명백히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모티프로 보인다. 마치, 갈릴레이의 선택을 변호하는 듯한 1권의 에피소드는 기대를 벗어나는 과감한 엔딩으로 나를 깜짝 놀래켰다.

2권에서 작가는 10년을 훌쩍 뛰어넘어, 역시, 대단히 흥미로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지동설이 당대의 "평범한 소시민들" 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탐구한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는 진리를 좇는, 지구는, 인간은 신이 창조한 우주의 중심이라는 세계관 속에서, 귀족도, 학자도 아닌 쓰레기 취급을 받던 절대 다수의 하층민들은, 과연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까?



기대만큼, 그리고 화제만큼 훌륭한 작품이었다.(여전히 천재나 귀재같은 표현해는 동의하지 못하겠으나.)

앞으로의 전개도 엄청나게 기대되고, 일본에서 성황리에 완결을 지었다는 사실도 반가웠다.

적어도 수년동안 애타게 기다릴 일은 없겠구나, 싶어서... 다행이었다.



마지막 사족으로, 작품을 읽는 내내 사카모토 신이치의 "이노센트" 라는 작품이 계속 떠올랐다.

역시 중세 유럽을 다루고 있고, 굉장히 하드코어한 고어씬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과 달리 어마어마한 작화력이 장점인 작품이다.

만약 이 작품을 사카모토 신이치가 작화를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더불어, 제발 이 작품을 일본에서 어쭙잖은 실사화를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차라리 판권을 해외에서 사갔으면....BBC나 HBO같은데서 만들어줘....HISTORY채널도 좋아.

제발 일본에서만 만들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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