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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딥 블리자드가 알려주는 캐릭터 일러스트 강좌 with 프로크리에이트 - 쉽고 빠르게 디지털 페인팅 입문하기
딥 블리자드 지음, 신상재 옮김 / ZZOM / 2024년 12월
평점 :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처음 그림을 독학하게 된 계기는, 옆 자리에 앉은 친구가 A. 루미스의 인체소묘 책을 모사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때는 2000년을 코 앞에 둔 1998년경이었고,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옆자리의 그 친구는 부모님이 화가이신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었고, 자연스럽게 작법서의 존재를 알았던거다.
나는 그냥 만화책 보고 따라그리는게 그림공부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 책 안에는 근육의 해부도와, 각 근육의 이름은 물론이고 움직이는 원리, 뼈에 붙어있는 모습들이 실려있었다.
그 친구 덕에 나는 이 세상에 "작법서" 라는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주말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의 미술 코너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당시에도 작법서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인체소묘부터 시작해서 형태, 도형에 대한 입문서, 손과 발, 얼굴과 표정에 대한 세밀한 작법서, 유화, 수채화, 목탄화, 파스텔화 등의 기법서 등이 있었고, 그 사이에 가끔씩 만화 작법서도 있었다. 미국 코믹스와 일본 망가 작법서도 있었고, 다양한 작가들의 화집도 있었다.
가격들이 워낙 비싸서 그야말로 눈팅만 하는 정도였지만, 당시엔 서점 안에서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있는 문화가 있었기에, 정말 주말마다 갔더랬다.
군대를 전역할 무렵부터 디지털 작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말년휴가를 나와보니 해외서적 코너에 디지털 일러스트 잡지가 생기기 시작했고, 포토샵과 일러스트로 만화를 그리고 스크린톤을 만드는 비법들이 실린 책들이 보였다.
나도 졸업작품 즈음에는 펜으로 밑선을 따고, 스캐너로 포토샵으로 가져와서, 비트맵 변형으로 잡티를 날리고, 회색톤을 먹여서 스크린톤 효과를 내어 출력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
20여년만에 디지털 드로잉은 새로운 장르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강력한 성능의 모바일기기가 등장하고, 터치 스크린의 혁신적인 압력감지 시스템이 융화되면서 디지털 캔버스는 완벽하게 자리매김했다.
그에 더해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페인터와 클립 스튜디오 같은 프로그램들은 그 기능만 소개하는 책도 두께가 어마어마할 정도로 발전했다.
수많은 그림도구를 완벽히 재현할 뿐 아니라, 작가의 독창성에 따라 천변만화한다.
오히려 '캔버스'와 '도구'라는 아날로그적 한계를 완벽하게 넘어설 수 있다.
유화 효과에 수채화 효과를 이질감 없이 섞을 수 있고, 파스텔과 목탄화 사이에 먹을 뿌리고, 수묵 담채화 풍의 터치를 얹어 손으로 뭉갠 효과를 낼 수도 있다.
한때는 이러한 효과들은 워크스테이션 급 고사양 pc에서만 가능했지만, 이제는 아이패드에서 할 수 있다.
예전엔 모니터를 보며 액정타블렛이나, 판 타블렛에서 조작해야 가능했지만, 이제는 패드 위에 진짜 손으로 문지를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모바일 기기들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아이패드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는 툴인 "프로 크리에이트" 라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작법서이다.
그래픽 툴은 결국 어도비가 내세운 포토샵의 UI가 표준화 되었다.
언젠가 우리가 모두 VR세계에서 입체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 이상, 평면을 벗어날 수 없는 이상, 포토샵UI에서 벗어날 수 없다.
흘깃 보면 너무나 복잡해보이지만, 메뉴 하나하나를 눌러서 그 뜻을 잘 생각해보면 아주 쉽고, 직관적이다.
의도대로 손을 움직이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프로 크리에이트 역시 그런 프로그램이다.
비록 나는 지면으로밖에 볼 수 없었지만, 어느 그래픽 툴에서나 볼 수 있는 UI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들을 손가락으로 직접 톡톡 건드려가며 쓸 수 있다는 점 정도가 다를 것.
책의 구성은 만화 일러스트 그리기에 최적화 되어있다.
아주 기본적인 화면열기, 레이어 올리기, 펜 선택하기 등만 소개하고, 바로 선 따기부터 시작된다.
일일히 메뉴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일단 따라와' 의 방식이다.
선따기를 통해 좀 더 세밀한 메뉴 설명과 다양한 사례를 일러주고, 컬러를 넣는 방식을 알려주며, 일단 러프-뎃셍-선따기-컬러 로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
컬러링 과정에는 음영 넣는 간단한 방법과 하이라이트 효과 등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는 팁 정도만 알려준다.
많은 그래픽 툴 책들이 툴 설명인지, 그림 작법서인지 애매해질 지점을 과감하게 배제한다.
이 점이 정말 좋았다.
작화는 작화에 관한 책을 찾아봐야 할 일이다. 아무렴.
여기까지가 이 두껍지 않은 작법서의 딱 반절이다.
남은 반절은 지금까지 그린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는 팁들에 대한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들을 툴을 이용해 풀어내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다.
즉, 다양한 응용법을 심플하게 소개한다.
먼저,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다양한 노하우들을 소개하고, 완성한 그림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툴들을 소개한다.
작가 개인적인 노하우들이 상당히 많이 소개되는데, 이는 프로 크리에이트라는 툴을 벗어나, 다른 소프트웨어를 쓰더라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팁 중의 팁들이었다.
이 책은 수많은 그래픽 툴 작법서들에 비해 상당히 얇지만, 내용들은 무척 알차다.
무엇보다, 설명하는 방식이 아주아주 친절하다. 정말 아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한데, 어려울 수 있는 메뉴 용어들을 단순히 단어의 뜻만 설명하기보다, 다양한 예를 들어서 설명해준다.
단점이 있다면, 그런 글씨들이 조금 작다는 정도. ㅋㅋㅋ
내가 노안이 올때가 되어가서 그런거지만, 이 책을 처음 접할 젊고 싱싱한 초심자들에겐 어떠한 단점도 되지 않을터다.
정말 작은 글씨 하나도 놓쳐선 안될 훌륭한 팁들을 담고 있다.
많은 작법서들을 만나봤지만, 이 책은 정말로 소중하게 만든 책이라는 점이 깊이 느껴진다.
들어있는 일러스트들도 무척 사랑스럽지만, 구성이나 연출, 번역도 나무랄데가 없다.
고백하자면, 서평을 부탁받고 받은 책이지만, 서평 기한을 넘겨버려서 그냥 덮어두려 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또 제공해준 역자와 출판사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단지 그런 미안한 마음에 이런 호평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겨우 책 한권 받은거다. 인연이 있는것도 아니고.
하지만, 책을 한장한장 넘기다보니, 정말 만듦새가 좋다는 것이 깊이 느껴졌다.
정말 많은 작법서들을 읽어왔다.
사실은 이제 작법서는 필요 없는 나이와 경력이 되었지만, 그래도 일년에 두세권씩은 꾸준히 보고 있다.
도서관 희망도서라도 넣어서 찾아보곤 하는데, 서평을 남기고 싶은 경우는 극히 일부분이다.
이제는 소설이나 인문교양서조차 그렇다. 손으로 글씨를 쓰지 않아도 되는데도,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오랜만에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책이다.
다만, 그 대상이 지나치게 한정적이라 문제이지.
만약 아예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초심자라면, 선긋는 방법부터 실려있는 작법서를 찾아보셔야 한다.
모바일 기기를 가지고 있고, 모바일 기기에서 취미삼아 낙서를 하고 싶으신 분들.
특히 프로 크리에이트를 쓰시는 분들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책이다.
요새는 취미가 자연스럽게 직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이 책의 저자인 딥 블리자드 역시 그런 케이스이고.
프로 크리에이트가 아닌 다른 툴을 쓰는 이들에게도 충분히 도움될만한 노하우들이 잔뜩 녹아있다.
다들 건필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