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3 - 완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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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사의 굴욕' 에서부터 시작된 유럽과 오리엔트의 '종교 분쟁' 은 약 250여년 동안 이어졌다. 

1권에서는 십자군 원정의 시작과 예루살렘을 탈환한 1차 원정대의 성과가 그려졌고, 2권에서는 1차 십자군 원정대가 이슬람 세력 안에 자리잡은 십자군 국가를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끈질기게 지켜 나가다가 살라딘의 등장으로 예루살렘을 다시 잃고 큰 위기에 처하는 내용이 그려졌다.   

 250여년간의 분쟁을 매조지하는 [십자군 이야기] 3권은 두권의 책을 합친 것 만큼 방대한 볼륨을 자랑한다. 일단, [십자군 이야기] 3권의 1권에 해당하는 전반부에서는 십자군 국가에게 전략적 요충지인 항구요새도시 '티루스' 까지 뺏길 심각한 위기 에서 구세주처럼 등장한 사자심왕 리처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전술, 전략은 물론 전투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리처드는 티루스 공방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순식간에 전황을 뒤엎는다. 리처드가 숫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여러 전투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린 결정적인 무기는 바로 '함대' 였다. 리처드가 이끈 십자군은 거대한 투석기를 실은 제노바와 피사의 함대를 이용해, 현대전에서의 '함포 사격'과 같은 방식으로 원호를 받으며 바닷가를 따라 이동하며 전략적 요충지들을 점거해 나갔다. 결국 리처드는 열세였던 전황을 우세로 뒤바꿔, 살라딘이 이끄는 이슬람 측과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평화 협정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십자군 이야기] 3권의 중~ 후반부에 걸쳐 중세 유럽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발전과 이슬람 왕국 내에 섬처럼 세워진 십자군 국가의 몰락, 교황 중심이었던 유럽사회의 변화, 그리고 불처럼 타올랐던 '성지 수복' 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드는 과정이 차분하게 그려진다. [십자군 이야기] 3권 중~후반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성당 기사단의 최후에 관한 내용이다. 현대의 많은 스토리 텔러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는 성당 기사단에 대한 전설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들이 프랑스와 유럽 정세와 얽혀 상당히 신빙성 있게 풀어진다. 

 [십자군 이야기] 1권에서는 탄크레디와 보두앵 1세가, 2권에서는 문둥왕 보두앵 4세와 살라딘이 인상적인 인물들이었다면, 3권에서는 단연 사자심왕 리처드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일 것이다. 탄크레디와 보두앵 1세, 보두앵 4세, 살라딘과 리처드가 모두 영웅적인 활약으로 인상에 남는다면, 프리드리히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인상에 남는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거침없는 '인물평' 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서들은 추측성 문장을 넣기를 꺼린다. 하물며, 인물평에 대한 부분은 거의 겁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굳이 사가가 인물에 대한 평을 넣을 때는, 다른 권위있는 역사가의 인평을 인용하던지, 참고한 사료와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다른 사료를 참조해 인용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인물에 관해서만은 거침없이 "~~ 이랬던 것 같다." 와 같은 추측성 문장을 과감하게 쓰곤 한다. 

 [로마인 이야기] 가 로마제국 전반에 걸친 방대한 역사서이지만, [로마 이야기] 가 아니라 [로마인人 이야기] 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역사서들이 각종 사료를 통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추론하여 서술하는데 그치는 반면, 시오노 나나미는 그 사건들 직면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추론한다. 당연히 그러려면 일반 역사가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료를 참조해야 할 것이고, 훨씬 더 많은 탐방을 해야 할 것이며, 훨씬 더 많은 비교를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수많은 사료들을 날카롭고 정확하게 정리해서 펼쳐낸 뒤 "이러므로 이랬던 것 같다." 라고 주장하는데, 그 누군들 설득되지 않을쏘냐!! 

 [로마인 이야기] 에서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인간 본연의 권력욕을 파고들었던 그녀의 뛰어난 통찰력은 '신앙' 에 기초했다는 '십자군 원정' 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결국 당시 유럽 사회에서 종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볼모로 한 강력한 권력이었다. 정말 불가사의 하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한 신을 믿고, 한 책을 믿는다. 완벽하게 점 하나까지 다 믿는다. 그 책에 '태양이 뜨는 쪽이 서쪽이다' 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면, 아마 전 세계는 태양이 뜨는 쪽이 동쪽이냐, 서쪽이냐를 갖고 수세기동안 전쟁을 치를 것이다. '신앙' 이란 그런 것이다. 신앙의 지도자는 신과 비슷하게 추앙받았을 터다. 하늘이 내려준 권력. 교황의 권위는 그런 것이었다.  [십자군 이야기] 에서도 인간의 근원적인 종교적인 본성보다는 권력에 대한 욕구가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역사란 대부분이 '추측', 가설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록이란 것은 언제나 100% 객관적일 수 없다. 특히 역사의 기록은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었고, 지배자는 피지배자의 기록을 날조하고 왜곡시킨다. 우리는 그런 일을 실제로 겪었던 민족이다. 중국에게. 일본에게. 중화 사상에 젖어있던 무렵의 기록,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에 의해 무수하게 왜곡 되었던 기록들, 그리고 그에 맞서기 위해 무수하게 각색된 기록들. 결국 후대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중국과 일본, 우리의 각각의 기록들을 비교해 보는 수밖에 없었을 터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역시 비교사학이 크게 우위를 점하고 있다. 

 어떤 기록이든 그것이 절대적인 진실이고, 완벽히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고 접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십자군 이야기] 안에서도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이 접한 기록의 허구성에 대해 명백히 밝히고,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고 있다. 우리가 [십자군 이야기] 안에서 읽어야 할 부분은 사건과 인물 뿐 아니라 시오노 나나미의 이런 부분들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유럽 사관들의 기록은 물론, 이슬람측의 기록들까지 꼼꼼히 살피고, 중첩된 부분들은 서로 비교하며, 때로는 다른 사학자의 역사서까지 비교해가며 자신이 기록을 접하는 방식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서들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평은 단어 선택 자체가 틀린 것이다. 역사서는 원래 모두가 주관적이다. 역사서는 결코 객관적이 될 수가 없다. 누가 얼마나 더 뚜렷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주장' 을 펼쳤느냐가 '역사' 이다. 얼마나 '덜 주관적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기록들을 모아서, 얼마나 '더 그럴듯한 인과관계' 를 그려서, 얼마나 더 '설득적으로' 풀어내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한 인간이 한 행동을 하는 데에도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다. 내가 이 리뷰를 쓰는 요인만 따져봐도, 족히 열가지는 될 터다. 나는 언제나 읽은 책은 리뷰를 쓰는 습관을 가지고 있고, 일이 다 끝나서 약간의 한가한 틈이 있기도 했고, 마침 컴퓨터가 켜져 있기도 했고, 인터넷도 서버 점검 없이 원활히 잘 돌아가고 있으며, 졸립거나 피곤하지도 않았고, 딱히 다른 할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마침 이 책의 리뷰대회가 있기도 했고, 무려 오늘이 그 대회 마감일이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것에 대해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적었다." 는 기록을 했다면, 후세의 역사가는 바로 그 한줄의 글을 가지고 가설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올린 다른 리뷰들도 찾아보고, 내가 끄적거린 다른 잡문들도 찾아보며,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글도 찾아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추측으로 가설을 만들어 '주장' 하는 것이 바로 역사이다. 하물며, 한 사람이 아닌, 한 집단이, 한 국가가, 아니, 유럽 전체가 움직인 것이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 이야기] 는 내가 [로마인 이야기]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이후 세번째 작품이다.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는 [십자군 이야기] 1권을 읽고 난 후 당시의 시대상을 면밀히 이해하기 위해 찾아 읽었다. 확실히 [십자군 이야기] 는 [로마인 이야기] 나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보다 주장을 보다 또렷하게 개진한다. "이 부분은 내 주장이야," 라는 부분이 보다 확실히 와닿는다. 그것은 역시 사료의 빈약함 때문일 터다. 위에도 언급했듯 십자군 이야기는 유럽 전체는 물론 중동지역 전체가 맞물린 거대한 '연합체' 의 충돌이었다. 정말 다양한 성격의 사료들이 정말 다양한 언어로 기록되었을 것이고, 정확성을 가늠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의 서문에 쓴 글귀가 생각난다.

 ""상상해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 자살 폭파범도 없고, 911도, 런던 폭탄테러도, 십자군도, 마녀 사냥도, 화약 음모 사건도, 인도 분할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도(...)없다고 상상해보라."

이런 문장을 서두에 적었지만, 리처드 도킨스도 종교가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나 또한 종교 자체가 이런 거대한 비극을 불러 일으킨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십자군 이야기]를 다 읽은 지금, 시오노 나나미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위에도 썼듯, 인간의 행동 요인은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가 결정적인 '구실' 로 작용했음은 확실하다. 십자군 전쟁의 후반부는 단순한 영토 분쟁이었다. 신앙의 힘은 초반에만 활활 타올랐고, 중반부터는 서서히 연료로써의 동력이 떨어져갔다. 

 인류가 '역사' 를 시작한 이래 종교가 함께하지 않은 적은 없다. 그것은 즉, 종교를 구실삼은 분쟁이 끊인 적도 없다는 의미이다. 종교란 지구 위에서 죽음을 자각하는 유일한 생명체가 인간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신과, 사후 세상에 대한 꿈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많은 죽음을 가져온다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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