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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조의 드로잉 튜토리얼 Vol.2 로렌조의 드로잉 튜토리얼 2
로렌조 에더링턴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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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부터 미국만화를 좋아했다.

청계천에 헌책방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옛날 미국 코믹북들이 놓여있곤 했다.

정보가 워낙 적어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처럼 유명한 마블 코믹북이나 알았던 나에겐 전혀 알 수 없었던 헤비메탈이나 헬보이, 스폰 같은 책들이었다.

수집용인듯 워낙 고가라 비닐 포장지에 담겨 주인들이 나같은 꼬맹이에겐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았었는데, 헌책방 거리를 주욱 지나 황학동 부근에 이르면 길가에 아무렇게 부러놓고 누구든 한번 훑어볼 수 있게 쌓아둔 책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도 있었다.

당시 한국 출판만화의 90% 정도는 일본만화였기에 미국의 코믹스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극대화된 인물뎃셍과 굵은 펜선, 4도~8도의 컬러 안에서도 과감한 먹칠로 명확한 대비를 주는 그림체는 일본만화와는 크게 다른 느낌이었다.


로렌조의 드로잉 튜터리얼은 그런 나의 개인적 취향에도 무척 맞아떨어지는 책이었다.

이 책 속엔 내가 좋아하는 그런 스타일의 그림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색인 형태의 책들은 기본적으로 초심자를 위한 책은 아니다. 차근차근 앞에부터 따라 그리는 용도의 책이라기보다, 백과사전처럼 오브젝트들을 일정한 테마별로 정렬해 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따라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 따라그리기도 애매하고, 어떤 부분을 취해서 연습해보아야 할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알 정도는 되어야 큰 쓸모가 있을 것이란 의미다.


책은 크게 일곱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는데, 이 섬세한 배치만 봐도 책을 만드는데 기획과 편집팀이 얼마나 큰 고심을 했을지가 눈에 훤했다.

먼저 1번 챕터는. 캐릭터 디자인이다.

사람의 얼굴, 이목구비의 자연스러운 배치부터 망토, 갑옷과 동작의 팁들이 소개된다.

2번 챕터는 동물과 몬스터.

크리쳐의 이빨부터 드래곤과 털가죽, 토끼와 공룡, 유령까지 등장한다.

3번 챕터는 탈것과 기계.

탈것들을 쉽게 디자인할 수 있는 작가의 노하우와 표피의 손상 표현, 해적선과 로켓 구름의 물리적 표현 팁까지 소개된다.

4번 챕터는 작은 불, 모래, 깃발 등등의 물리적 요소들을 표현하는 팁들이 소개되고

5번 챕터는 오브젝트들의 배치를 비롯한 레이아웃과 구도 전반에 대한 팁들이 소개된다.

6번 챕터는 자연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거미집과 조약돌을 비롯해 산과 덩굴식물, 무성하게 자란 식물들과 숲을 깊이있게 표현하기 위한 팁들이 소개되고, 7번 챕터는 초콜릿이나 병, 바구니, 사슬과 계단, 동기둥과 같은 인공물들을 그리는 팁들을 소개한다.

정말 많은 내용들을 일목요연한 듯 일목요연하지 않게 잘 배치했다.


책의 구성은 넓게 펼친 두 면에 한 테마를 할애한다. 예를들어 "토끼" 라고 한다면 왼쪽엔 토끼를 그리기 위한 해부학적 요소를 간단히 소개하고, 오른쪽엔 토끼를 더 토끼답게 그릴 수 있는 작가의 팁이 소개된다.

특히 이 작가만의 노하우는 토끼를 비롯한 비슷한 형태의 어떤 동물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만큼 훌륭하고 깊이있는 아이디어들이라서 정말 감탄했다.

사실, 모든 페이지가 감탄의 연속이었다.

이정도면 거의 세상 모든것들을 자기 스타일로 표현해내고, 그것들을 조합하고 이어붙여서 새로운 것들을 얼마든지 창조해 낼 수 있는 수준이다.

정말 얼마나 생각하고, 관찰하고, 그렸을지 감이 안잡힐 정도로 방대한 양들이 이 책 속에 녹아있었다.


비록 이 책은 출판사를 통해 제공받았지만, 앞에 1권과 마지막 3권은 내 돈으로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러다가 가격에 섬짓 하긴 했지만...요새 책이 워낙 비싸니... 그만큼 책 질은 너무나 좋다. 이북으로 안내주시나)

여러번 언급했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면 전체 다 떼기를 해도 될 정도로 훌륭한 작법서다.

나도 내년 첫 목표로 이 책 떼기로 정했다.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하기보다, 반대로 나에게 이 책을 리뷰하게 해준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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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초고속 성장법 - 사이토 나오키 3개월 연습법
사이토 나오키 지음, 김재훈 옮김 / 잉크잼(잼스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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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림은 기술이라서 딱히 대단한 훈련법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근육과 정신, 신경에 그 행동을 반복 숙달시키는 훈련이 유일하고, 결과물은 대부분 훈련양에 비례한다. 물론 재능의 차이는 있지만, 기술적인 면에서의 재능은 거의 훈련양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프로 그림쟁이가 되기 위해서는 사실, 자신의 니즈와 대중의 니즈가 일치한다는, 타이밍적인 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흔히 "트렌드" 라고 부르는 이 부분은 진득하게 한 우물만 파다보면 일생에 한번쯤은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걸 남들도 좋아한다' 는 포인트. 이 부분이야말로 창작자가 타고날 수 있는 최고의 운인데, 일단 그 지점에 닿기 전에 "기술적 완성도" 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기술적 완성도를 다룬 책으로, 작법서처럼 꾸며져 있지만, 사실 창작노트; 에세이에 가깝다.


기술적인 면은 결국 "많이 그리세요" 를 여러 버전으로 틀어서 소개할 뿐이고, 그보다는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에서 저자가 멘탈을 관리한 노하우를 엿볼 수 있다.

예를들면, SNS에 올리는 걸 주 목표로 삼고, 그 전에 자신을 칭찬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공개하고, SNS에 반응이 오지 않으면 당분간 끊는다는등, 저자 본인이 SNS 중심으로 활동하는 분이라서 그림 실력에 대한 부분보다 멘탈관리에 대한 부분이 유익한 점들이 많았다.

일단, 목차를 살펴보자.


크게 여섯개의 주제별 단락으로 나뉘어 있고, 각 단락 안에 3~5개의 소주제가 나뉘어 담겨있다.


1.따라 그리고 싶은 그림을 찾자

ㄱ. 따라 그릴 그림 찾는 법

ㄴ. 심화1. 좋은 그림의 공통점

ㄷ. 경험자와의 인터뷰 1


2. 찾은 그림과 똑같이 그려보자

ㄱ. 그림을 바로 따라 그려야 하는 이유

ㄴ. 심화2. 캐릭터를 잘 그리는 법

ㄷ. 시청자의 질문1

ㄹ. 경험자와의 인터뷰 2


3. 내 그림과 참고한 그림을 비교하자

ㄱ. 비교하는 과정에 앞서 필요한 것

ㄴ. 심화3. 나쁜 그림의 공통점

ㄷ. 경험자와의 인터뷰3


4. 한 포인트에 집중해서 연습해 보자

ㄱ. 문제를 찾고 하나씩 해결하자

ㄴ. 심화 4. 그림이 좋아지는 습관

ㄷ. 경험자와의 인터뷰4

ㄹ. 시청자의 질문 2

ㅁ. 경험자와의 인터뷰5


5. 연습을 바탕으로 다시 그려 보자

ㄱ. 연습한 내용으로 2회차에 돌입하자

ㄴ. 시청자의 질문 3

ㄷ. 3개월 실력 성장법의 주의법

ㄹ. 경험자와의 인터뷰 6


6. 추가 학습

ㄱ. 3개월 실력 성장법 뒤에 기다리는 것

ㄴ. 3일 만에 실력 키우는 법

ㄷ. 하루 만에 실력 키우는 법

ㄹ. 1시간 만에 실력 키우는 법

ㅁ. 그리지 않고도 실력을 키운다?

-마치며

-연습노트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많이 그리고, 확인해보고, 또 그리고.

역시 출판 대국답게 기획도 잘하고, 구성도 훌륭하다는 감상이 안 나올 수 없다.

구도나 연출에 대한 기술적 노하우도 충분하게 녹아있다고 평하긴 어렵지만, 적은 양이지만 핵심적인 요소를 잘 담았고, 연습법들도 움직임을 애니메이션처럼 연결해서 그리기나, 14시간 연속 그리기, 썸네일로 그리기 등 해외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잠깐씩 언급했던 연습법들을 자신만의 연습법과 연계해서 잘 정리해놨다.

여기에, 국내에선 그림그리는 유튜버로 잘 알려진 김락희 작가님이나 청자들의 웹툰을 피드백 해주는 영상이 있었던 송재형 작가님의 유튜브를 곁들이면 제법 괜찮은 연습 노하우들을 습득할 수 있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 재밌어한 부분은, 전신 일러스트를 연습하라거나, 볼펜으로 연습하라는 부분들이었다.

나는 처음 그림을 그릴때부터 전신이 나온 그림을 따라그렸던 기억이 난다. 주로 일러스트가 전사된 컬러 책받침들을 보고 그렸었다.

처음 그렸던게, 현대였나 기아의 자동차 홍보용 일러스트에 그려져 있던 배트맨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국민학생때였는데, 그 일러스트는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아무리 비슷하게 따라하려고 해도 안됐던....

그 다음이 드래곤볼 책받침에 초사이어인 손오공이 서있는 그림이었고, 처음 펜촉에 잉크를 찍어서 모사했던 그림은 일본판 뉴타입에 실려져 있던 FSS 설정집의 미라쥬였다.

왜 이런 조언이 필요했을까 했더니, 요즘 친구들은 작은 화면에 길들여져있고, 디지털 기기로 그림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는 점에 다달았다.

확실히, 필요하겠구나. Un Do 와 Re Do 가 없는 하얀 종이에 볼펜. 요즘 친구들은 그게 더 어색할거다.

수정할 수 없는 선으로 연습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관찰력과 형태력이 눈에 띄게 달라질 것.


여튼, 이 책은 완전한 초심자용이다. 연습법도 거의 '가나다' 부터 알려주는 정도이고, 전반적으로 친절하다.

개인적으로 꽤나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져있는데, 그런 나에게도 잔잔하게나마 자극을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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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hk 2023-12-25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님 이책 좋음. 님이 보이는게 그범위일뿐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도널드 리치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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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예민한 사람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음. 이견은 당신말이 다 맞음.


※서평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에게 제공받았습니다.

만... 정말 이 책을 읽은 기록을 남길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다른 분들이 올린 서평들을 보니, 아주아주 우호적인 평들이 많아 마음 편히 이런 뉘앙스의 독서감상을 올려도 좋겠다, 싶었다.)


그 탓에 제공받은 지 2주만에 올려야 하는 이 글을 약속 기한보다 한참 늦게야 올리게 됐다.

본격적으로 이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전에 내가 너무너무 감명깊게 읽었던 동 출판사의 [일본의 굴레] 이야기를 잠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이다.

아주 일찍부터 일본 만화를 접해왔고, 일본 게임을 즐겨왔다. 내가 생업을 위해 살짝 발을 담그고 있는 이 바닥도 결국엔 일본 만화의 영향을 엄청나게 많이 받기도 했다. 나의 먹고사니즘은 결국, 재패니즘에서 태동했달까.


다른 쪽으로는, 개인적으로 대하 소설을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역사물에 심취했다가, 중국 역사물 맛을 살짝 봤다가, 서양 역사물에도 빠지고, 일본 역사물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 다음 수순은 당연히 세계대전사였고, 러일전쟁부터 시작되는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가 중일전쟁을 넘어 조선을 식민지화 하고, 나아가 아시아를 집어삼키는 장면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아니, 이런 만화를 만들어내는 나라에서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던걸까??

더 많은 책을 읽으며 일본이 제국주의의 광기에 빠져드는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영국이 되고 싶었던 프로이센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이었다.

전범국으로 각각 아시아와 유럽에서 대 학살을 저질렀던 일본과 독일은 같은 전철을 밟았다.

아니, 전후 재건의 상황에 관해서는 일본이 독일보다 나았다고 볼 수도 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독일은 동서로 나뉘어 미국과 소련의 지휘를 받으면서 이념갈등의 소용돌이 그 중앙에 있었던 반면, 일본은 맥아더의 지휘 아래 발빠르게 민주국가로 변화해 나갔다. 이후 미국의 우호적인 손길 아래 서독과 일본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주아주 간략하게 압축하자면, 독일은 오일쇼크와 함께 휘청이기 시작한 소련 덕에, 일본은 베트남 전쟁과 한국 전쟁 덕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이 지나온 전쟁을 바라보고, 피해국가에 대해 배상하는 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독일은 직시했고, 일본은 회피했다. 어떻게, 왜 그리 되었을까??


[일본의 굴레] 는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그들의 정치, 이념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인문학적으로 고찰해 나가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나니, 일본이 왜 그토록 전쟁 배상에 소극적이었는지, 아직까지도 어떻게 해서든 그 과거를 지우기 위해 애쓰는지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나 나름대로의 독서 흐름에 비춰본다면,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이하 일본 미학) 은 정확히 그 대척점에 있는 책이다.

[일본의 굴레] 가 현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상처를 들쑤셔가며 진단하는 책이라면, [일본 미학]은 일본 문화의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잘 포장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도널드 리치'라는 외국인-이지만 사실상 일본인인-의 입을 빌려 일본의 문화를 개인적인 경험에 녹여내고 있다. 외국인이 다른 국가에서 반평생을 살아간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나라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쉽지 않을 터이고, 도널드 리치는 일본 문화(영화) 평론가였다. 게다가 이 책은 그의 본업인 평론도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에세이 모음'이다. 일본에 대해 우호적일 글일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유튜브나 TV프로그램 나오는 외국인들을 떠올리면 쉽다.

이탈리아인 알베르토 몬디가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방송용이다 아니다를 떠나,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것 처럼. 일본이나 우리나 외국인-특히 우리보다 더 선진국- 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건 매한가지다.

오히려 그건 일본이 원조다.

오죽하면, 걔네는 인정받으려고 러시아에 전쟁걸고, 중국에 전쟁 걸었던 글로벌 관종이었다.

후발주자들은 언제나 선발주자를 따라잡기를 갈구하고, 결국 그들이 돌아보며 인정해주기를 갈구하기 마련이다.

TV 패널로 일본말 잘하는 외국인들을 앉혀 자기네 영화나 노래에 대해 구구절절 떠들게 하는 포맷의 원조가 그들이다.

'국뽕 마케팅' 이 돈이 된다는 것 역시 그들이 먼저 알았던 것이다. 그건 외국인이 해줄때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이 책을 이렇게 평가한다면 다소 박할 수도 있겠으나, 결국 그러한 마케팅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영화 평론가 외국인 아무개씨가 반평생 살며 느껴온 OO의 미학."

목적어가 "일본" 이 아니라 "한국" 이었다고 가정한다면 나의 평가를 무조건 반대할 순 없을 것이다.

예를들어, [기생충] 을 번역한 달시 파켓이 30년동안 한국에 살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에세이를 펴낸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이 과거에 우리나라에 저지른 역사에 대해 따져묻는 일은 일본이란 국가가 멸망할 때 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엔화의 강력한 힘으로 세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펼치고 있는 전범 이미지 세탁에 대해서도 치가 떨리도록 분노하지만, 일본의 문화 자체에는 호의적이다.

문화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끊임없이 교류해왔다. 떼려야 뗄 수 없고, 아니라고 무시하려야 할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호의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중국대륙 어디에선가 발원한 한자문화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면서 바뀌었고, 한강을 건너면서 또 바뀌었으며, 영산강과 낙동강을 건너면서 또 바뀌었다. 그리고 그게 다시 거슬러 올라가고, 인천을 통해, 부산항을 통해 오가는 "변형된 한자문화" 들과 얽히고 설켰다. 그 중엔 심지어 라틴어 문화도 있었고, 인더스 문명의 그것도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시간동안, 변하고, 변하고, 바뀌고, 또 바뀌고, 주고, 또 받고.

그리고 가장 가까운 일본과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하게 됐을 것이다.

엄청나게 비슷하면서, 엄청나게 다르다.

이 어찌 재밌지 않을 수 있겠나. 이 어찌 무조건 미워할 수밖에 없을까.

역사를 꾹 눌러 압축한다면,아시아의 한자문화권 나라들은 중국이라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들일 수 밖에 없잖은가.

이 어찌 무조건 배척하고, 미워할 수 있겠냐고.

어딘가에는 동질감, 유대감에서 발현되는 호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가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는 반일감정은 오로지 2차대전 이후 세대를 통해 유전자에 각인된 것일 터다.

돌아가신 우리 친할아버지만 해도 창씨개명 시대 분이신데.

나는 한번도 뵙지 못했던 친할아버지의 형님은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까지 되셨던 분이었다.

어쩌면, 일본이 딱 두번의 왜란 정도에서 멈췄다면, 나의 어딘가에 있는 대 일본 스위치가 "항일" 이 디폴트 값으로 설정되지는 않았을텐데.

그리고, 최근 10년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 결국 아베의 우리나라를 향한 무역전쟁으로 비화되는 그 사건이 아니었으면 이 책을 좀 더 기분좋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라면, 지금도 추천할 수는 있다.

글은 담백하고, 평론가답게 나름대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도 보인다.

일본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 저자가 느끼는 것들에 대한 소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트 넘치는 수기와는 다르지만, 그 나름의 맛이 있다.

다만, 노란머리 일본인(검은머리 외국인의 반대??)으로서 일본 문화에 가지고 있는 애정이 바탕에 깔려있고, 그게 내 유전자 중에서도 거의 1,2세대 사이에 각인되었을 어떤 억하심정을 건드린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워 하면서도, 그걸 흥미로워하는 내 자신을 타박하는 누군가가 발끈발끈 튀어 올라온다고나 할까.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적을지 말지 고민했던 이유다.

과연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 수 있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잘 떠오르지가 않더라.


어쩌면, 2000년생... 아니 1990년생들만 해도 이런 일본에 대한 발끈함이 없을지도 모르겠으니,

그런 친구들에겐 충분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

좋은 책이지만, 기획의도와 내용, 시기가 모두 안맞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일과 친일, 쟈포니즘과 일뽕 그 어딘가를 해매이다가 결국은 내 마음 속 어딘가 감춰있던 항일을 찾아낼 수 있었던 책.

아, 진짜 지금이 무슨 항일 독립 투쟁하던 시기도 아닌데... 왜 이래야 되냐고.


충분히 좋은 책이고, 개인적인 흥미도 있는데....


새삼스레, 죽었지만, 짜증난다. 아베시키.

그 전에 최순실박근혜도.

그 더 전에 역시 죽었지만, 개 짜증난다. 도조 히데시키. 토요토미 히데요시키.

순수하게 역사적 사건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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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그라운드 - 끝나지 않는 전쟁, 자유세계를 위한 싸움
H. R. 맥매스터 지음, 우진하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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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戰史에 해박하신 블로그 이웃 한분이 있다. 한창 제2차 세계대전사에 관심이 있던 무렵, 많은 글들을 찾아 다니다가 태평양 전쟁에 대한 글들을 읽게 됐고, 블로그를 타고 타고 들어가다가 태평양 전쟁은 물론, 중일 전쟁 등 아시아 근대 전사를 중점적으로 포스팅을 하시는 분의 블로그를 발견하게 됐다. 

바로 욱이님의 '팬더아빠의 전쟁사 이야기(https://blog.naver.com/atena02 )라는 블로그다. 한국전쟁에 대한 최근 공개된 자료와 관련된 글들도 많다. 직접 저술하신 책도 있고, 감수하신 저서들도 많은 분인데, 이 책은 마침 이 블로그를 통한 서평 이벤트로 출판사에서 받은 책이다. 

문학동네 그룹의 인문서적 임프린트인 교유서가와는 개인적인 인연도 있는 편이라, 이렇게 한다리 건너 받게 되니 참 재미있는 일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맥 매스터는 외교안보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다.

물론, 트럼프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하다가 1년만에 당한 "트위터 해고" 로 더욱 알려지긴 했지만, 대북정책에 대한 대표적인 강경파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볓정책을 비판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유화책을 비난했던 일화도 있고, 중국, 러시아, 중동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주문했던 인물이다. 이런 그의 성향은 이 책의 서문에서부터 드러난다. 

  

이 책은 챕터별로 러시아, 중국, 남아시아, 중동, 이란, 북한 을 거쳐 최종 결론으로 향한다.

리뷰 기한인 "한달" 안에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두꺼운 첫인상이지만, 우려만큼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훠얼씬 쉽게, 정말 잘 읽힌다.

이 책은 700페이지짜리 국제 보고서가 아니라, 에세이에 가깝기 때문이다. 

평생 전쟁터를 찾아다녔던 군인의 경험이 정부의 국제외교관계 요직으로 근무하며 접한 정보들이 적절하게 조합된 훌륭한 요리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전장들이 우리나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국가들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깊은 역사를 함께 하며 수많은 질곡을 선사했던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탈출작전으로 국제무대에 우리 실무진들의 우수함을 선보였던 남아시아, 석유값과 함께 휘청이는 우리 경제의 바로미터인 중동과 이란, 그리고 가장 아픈 손가락인 북한. 어느 한 챕터도 대충 읽을 수 없었다. 

심지어 저자가 이 책의 도입에서부터 강한 우려를 보냈던 푸틴의 러시아가 실제로 얼마전,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이 책에 대한 신뢰도가 더더욱 높아졌다. 

게다가, 팩트에 기반한 수치나 전문용어들이 아닌, 저자가 직접 나눈 대화들, 경험들 위주로 서술된 그의 글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이 리뷰에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전반적인 내용들을 모두 다룰 수는 없고, 한참 뒤로 훌쩍 뛰어넘어 "북한" 챕터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챕터의 시작은 맥 매스터와 정의용 대사의 만남부터 시작된다. (박근혜의 탄핵과 함께 19대 대통령으로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면서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된 정의용 실장은 정부 출범 초기부터 미국과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양국에 우호적인 기류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당시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짤막한 소개부터, 한국전쟁 이후 현대사에 대해 간략하게 풀어내고 있는데, 한국전쟁 파병용사의 아들인 맥 매스터의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은 깜짝 놀랄 수준이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와 인권유린을 명확히 기술하고 있고,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해서도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 직전 미국의 상황에 대한 내용도 무척 짧게 등장하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다. (나중에 관련된 서적을 찾아보고 싶을 정도였다.) 이 책이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을 위해 쓰여진 책임을 상기해보면 우리 근대사를 짧아도 정확하게 소개해준다는 사실은 고마울 따름이다.  
이어, 주한미군 철수에 관한 논쟁, THADD배치, 김정남의 사망과 남북평화공동선언, 핵미사일 개발, 핵개발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 일본과의 무역분쟁 등 우리에겐 마치 어제처럼 또렷히 기억나는 사례들이 맥 매스터의 관점에서 소개되고 있다. 읽다보면, 그가 대북 강경책을 주문한 이유가 납득이 된다. 
하지만, 북한 챕터는 김정은에게 '핵을 포기해도 내외부의 도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는 사실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내용으로 매조지 된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그의 주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설득력이 높아졌다. 
'러시아' 챕터에서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었던 푸틴의 야욕과 전쟁 가능성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을 몇번 더 펴게 되는 날이 많을 것 같다. 좋은 의미로든, 안좋은 의미로든...
책을 읽어가며 느끼는 건, 비록 강경한 대응을 주장하지만, 그 역시 결코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왔기에,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평화의 시기라고는 하지만, 그건 아주 극히 일부 지역에서나 그렇다. 이 책이 "배틀 그라운드" 로 꼽는 지역들은 지구의 2/3 정도 된다.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는 완전 배제되어 있으니, 그 부분까지 다 포함하면 열손가락 정도 빼고 다 일 것이다.
그도 우리만큼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전략적으로 전쟁을 아예 배제하지 않는, 대담함과 계획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할 뿐이다.
자유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다른 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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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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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군 2022년 초입에 이 책을 잡게 된 건, 의도와 우연이 적당히 겹친 결과일터다.

이 책에 의하면 손석희 앵커가 뉴스룸을 마지막으로 진행한게 2020년 5월이었고 이 책의 초판 인쇄가 2021년 11월이니, 저자도, 출판사도 엄청나게 열심히 제책작업에 매달렸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은 "뉴스" 를 다루고 있으니, 무엇보다 팩트 체크에 심혈을 기울였을터이니, 쓰는것도 쓰는거지만, 검열, 교열 등 후반부 작업에 훨씬 더 많은 품을 들였을터다.

요즘 젊은, 아니, 나도 아직 젊으니, 어린 친구들은 손석희 '앵커' 보다 손석희 '사장' 이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나같은 80년대 초반생이나 70년대 형님 누님들에게 손석희란 이름은 'MBC' 와 '뉴스' 그 자체일 것이다.

매끈한 외모에 적확한 발음, 그리고 매력적인 음색과 발성을 자랑하는 손석희는 백지연 앵커와 함께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방송언론인이다.

이 책은 방송언론인 손석희로서 그가 MBC를 떠나는 순간부터 JTBC 사장이 되어, 뉴스룸을 런칭하여 앵커석에 앉았다가 내려오기까지 겪은 일들에 대한 '가벼운' 기록과 그 시간 전체를 지배했던 묵직한 상념들을 적어낸 책이다.

대선 시즌을 맞아, 음악 선곡 하나때문에 여당의 압박에 하루아침에 라디오 DJ에서 하차한 이재익CP와 기자협회가 좌편향 되었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던 모 후보, 발언 하나를 꼬투리잡아 프로그램 하차 요구를 받는 YTN 변상욱 앵커끼지, 방송언론인의 수난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여러가지 생각할만한 내용이 많은 책이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어젠다 키핑" 이다.

조금 거칠게 말해, 이 책 전체가 방송언론인 손석희의 머릿속에 '어젠다 키핑' 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구체화 되는 과정을 다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소 생소했던 이 개념은 첫 챕터의 제목부터 등장하여, 손석희 사장이 JTBC에서 처음으로 다뤘던 삼성 관련 사안이었던 "노조 무력화 관련 문건" 과 함께 본격적으로 소개된다. 

이후 어젠다 키핑은 세월호 사건을 통해 구현되고, 최순실 타블렛 사건을 통해 다듬어진다.

이어지는 촛불 시위와 박근혜의 탄핵은 더 이전, 손석희가 MBC를 떠나게 만든 단초였던 이명박 시절 MBC에 가해진 압력 속에서 공고해지고, 이후 치뤄진 대선을 통해 자리잡게 된다. 서지현 검사로 시작해 김지은씨로 폭발된 미투 현상과 북한과의 화해무드부터 경색국면까지 더듬어가며 어젠다 키핑의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가 닿는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는 다시 JTBC로 출근하게 된 계기를 찬찬히 되짚으며 '저널리즘' 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으로 회귀한다.


이 책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굵직한 사건을, 어쩌면 '촉발' 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닌 당사자의 책이기도 하다.

누가 뭐래도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사건은 JTBC가 보도했던 최순실 타블렛부터였고, '젠더 감수성' 의 근원인 미투의 시작도 서지현 검사가 JTBC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테니까.

 

언론이란 무엇인가? 언론인이란 어떤 직업 윤리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어젠다 키핑' 은 결국 이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과정 중 하나에 불과하다.

책의 초입에 언급된 필립 티치너의 '언론의 경비견(Guard dog) 모델 가설' 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미디어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언론은 '감시견' 과 '애완견' 으로 비유되어 왔다고 한다.

감시견으로서의 언론은 사법, 입법, 행정의 3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며 제4의 부 역할을 맡아 시민사회에 복무하는 것이고, 애완견 언론은 주인 무릎에 앉아 애교를 떨듯 정치, 경제 권력 등 엘리트 계급에 충성하여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경비견 언론은 전체 사회가 아니라 기득권 집단을 위한 경비견으로 기존의 사회 시스템을 지키는 도구가 된다.

애완견 언론과 비슷해 보이지만, 경비견 언론은 기득권을 의존하지만, 복종하지는 않으며 지배세력이 미처 알지 못하는 침입자에 대한 경고를 미리 울리기도 하고, 지배그룹 내에 불화가 생기면 그 갈등을 정치화 하고,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경비경 언론은 특정한 지배집단을 위해 경비를 서는 것이 아니라, 지배 시스템을 지켜낸다는 것이다.
책에는 이 가설을 증명하는 좋은 예시가 실려있기도 한데, 나는 영화 "내부자들" 이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 안에서 백윤식 배우가 연기했던 언론사 논설주간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 책은 저자 손석희가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개념 안에 어젠다 키핑이라는 또다른 개념을 녹여내고 구체화 시키는 지난한 과정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진정한 의미의 자기개발이랄까.     


이 책은 에세이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아무래도 "뉴스" 에 관한 소재이니만큼 팩트를 정확히 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워낙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터뷰이로서 자신의 스타일을 분석한 서적을 통해 자신의 발언에 담긴 함의를 간접적으로 풀어내는 점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스스로가 "손석희" 라는 이름이 가진 힘을 잘 알고, 대선을 앞둔 마당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루려는 의지가 보였다.

이 책에서만큼은 '운동가' 가 아닌, '저널리스트' 로서의 "손석희" 로 읽히기를 원했던 것 같다. 때문에, 진보쪽 인사들이 손석희에 가했던 비난, 그리고 비난을 마주한 손석희 자신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는 대목에서는 복합적인 마음이 들기도 했다.

뉴스룸의 상징이었던 앵커브리핑에 대한 대목도 빼놓을 수 없다. 


중간에 작은 부분을 할애해서 MBC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일련의 사정들과 JTBC로 취임하는 과정은 이 책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이라면, 부분일 수 있겠다.

그러고보니, MBC시절의 손석희는 MB시절이었지.    




-.

JTBC의 뉴스룸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당연히 나는 아론 소킨 각본의 드라마 "뉴스룸" 이 먼저 떠올랐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 윌은 메인 앵커이지만 공화당 지지자라는 사실이 명확히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대선 후보 토론에서 양쪽에 동일하게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지고 기계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애쓰며, 사적으로는 진보주의자들을 싫어하지만, 공적으로는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흥미로웠다.

정치적 이념이 완전히 다른 국가를 머리위에 얹고 사는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진보주의자는 곧 사회주의,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북한과 결부시키는 사회니까.

이 드라마 속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처럼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발전적인 타협이 가능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깊게 들어가보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지향점은 같다. 

같을 수 밖에 없다.

결국 모두가 잘먹고 잘사는게 정치이념의 지상목표니까.

민주주의의 최종 진화단계로 여겨지는 기본소득 개념이 결국은 지극히 사회주의적이라는 사실을 굳이 되살릴 필요도 없고, 유럽의 많은 국가들의 토지제도가 굳건한 사적소지제 안에서도 다양한 공유개념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역시 들먹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이겐 아직 너무나 먼 일이지만.  



-.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쓸 즈음은 대선 전이었는데, 마무리할 즈음에는 이미 대선이 끝난 후다.

앞으로 시작될 5년. 윤석열 정부의 대한민국은 과연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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