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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야상곡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인도에 도착한 주인공은 일부러 허름한 모텔에 투숙한다.
좋은 호텔로 안내하겠다는 택시에서 문을 박차고 내려, 가난하고 더러운 골목으로 찾아든다.
허름한 벽에는 눌러죽인 벌레의 흔적들이 가득한, 좁고 더러운 방 안에서 매춘부를 부르는데, 특정한 이름을 언급한다. 주인이 다른 여자를 권하지만, 몇시간이고 기다리겠다며 그 여자만을 원한다.
여자가 도착하자, 당연한 행위는 등장하지 않고, 주인공은 그녀에게 어떤 남자의 이름을 말한다.
그 매춘부도 알고, 주인공도 아는 바로 그 남자.
주인공은 연락이 끊긴 친구를 찾아 인도에 왔다.
결코 찾을 수 없는 남자를.
참 묘한 작품이었다.
두께는 굉장히 얇지만, 내러티브가 엄청나게 쌓여있는 느낌이다.
챕터는 12개로 나뉘어 있는데, 한 챕터 한 챕터가 엽편에 가까울 정도로 적은 분량이다.
시간의 흐름, 서사가 명확하지 않아서 챕터의 순서가 의미가 없다. 1챕터가 12챕터보다 뒤인 것 같기도 하고, 2챕터가 맨 앞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어떤 챕터를 다른 챕터의 앞이나 뒤에 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모든 챕터에 등장하는 화자가 모두 동일인이라는 보장도 없고, 같은 인물을 찾아다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결정적으로, 이 남자는 주인공의 친구라지만, 그 어떠한 일화도 들려주지 않는다. 친구인지도 확실치 않다.
일전에 읽었던 다자와 요코의 [용의자의 야간열차]가 살짝 떠올랐다.
하지만, 이 작품은 좀 더 혼란스럽다.
문장은 간결하고, 묘사는 명징하다.
단어 사용도 적확해서, 묘사되는 모든 것들이 또렷한데, 주인공이 흐릿하다. 목표가 흐릿하다. 목적지도 흐릿하다.
주인공이 찾아다니는 남자가 흐릿하다.
무엇을 찾아다니고 있는가?
매 챕터마다 수수깨끼 같은 사람이 등장해, 수수깨끼 같은 말을 던진다.
친구를 찾아다니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마지막 챕터에 엄청난 반전을 던진다.
어쩌면, 1챕터부터 11챕터까지의 이야기가 현실이 아닐 수도 있고, 주인공이 찾아다니는 그 인물이 실존 인물이 아닐 수도 있으리란 여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과연 이 주인공은 누굴 찾아다니는거지?"
그리고,
"과연 주인공이 찾고자 하는 이 사람은 주인공과 어떤 관계인거지?"
라는 생각을 하며 서사를 쫓아가던 나에게 엄청난 혼란을 안겨주었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찾기 위한 여정을 그린 작품인 동시에,
'내' 가 누구인지, 내가 찾는 '누군가' 는 또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얇디얇은 이 책의 말미에 자리잡고 있는 12챕터는 독자들에게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1부터 10 이라는 챕터의 어느 자리에 넣어도 새로운 서사를 펼쳐낼 수 있을 정도다.
사실은 처음엔 좀 화도 났다.
"아니, 이 사람이 장난하나!!!! 내가 이렇게 열심히 당신의 페이지들을 쫓아다니고 있었는데, 이게 말이요 당나귀요!!"
마지막 챕터에는 픽션을 일종의 메타픽션으로 바꿀 수 있는 신박한 키워드를 지니고 있다.
나도 언젠가 어디선가 써먹어보고 싶은,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아닌 반전이다.
'선생님,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한 제자가 부처에게 물었다.
부처는 제자의 질문에 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이 많은 시장에서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날아온 독화살이 그 남자의 허벅지를 뚫었다.
시장에 있던 주변 사람들이 화살에 맞아 쓰러진 남자에게 달려가 안위를 살피며 의원에게 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화살에 맞은 남자는 치명적인 독이 퍼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날 쏜 놈 누구야!! 그 놈 보기 전엔 난 이 곳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을거요!!
날 부축하지 말고, 어서 그 놈이나 찾아봐요!! 도망가기 전에!!!"
라며 바락바락 성질을 부렸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네가 그 남자와 같다.'
이 이야기뿐 아니다.
파랑새를 쫓는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이야기도 있고, 무지개를 쫓는 나막신장수의 이야기도 있다.
조금 더 신경써서 찾으면, 찾을 수 없는 것들을 찾아 짧디 짧은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멀리서 엄한 것 찾다가 평생 다 보내지 말고,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라는 교훈으로 귀결된다.
윗 단락에 인용한 부처의 이야기도 그렇다.
이 세상에서 평범한 삶으로는 찾을 수 없는 대답이다. 시장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답이다.
형이하의 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답이다. 형이상의 세계에 투신한다 해도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답이다.
설사 찾아낸다 해도 그 어떤 보상도 없는 문제다.
전세계 어디에서건 이런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모든 시대에, 모든 문명에 얼마든지 널려있다.
전설이나 신화 뿐 아니라, 이렇게 근현대에도.
심지어, 이제는 다른 해석도 종종 엿볼 수 있다.
무지개를 찾아다니는 나막신장수는 조롱의 대상이었지만, 종종 끝없이 도전하는 인간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산과 싸우던 남자는 비록 수명에 패했지만, 그 자손이 대를 이어 도전한 끝에 결국은 승리해 평지로 만들고 만다.
그렇다. 이런 류의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그런 인간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지만, 사고思考는 글을 통해 무한히 전래되지 않던가.
의문을 갖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그야말로 생뚱맞은 것에 의문을 가진 몇몇 인간들 덕분에 우리의 사고력을 그만큼 넓어졌다.
불에 손을 대보고, 번개를 맞아보고, 바닷속에 들어가고, 풀과 과일들을 맛보고, 동물을 해부하고, 사람을 해부하고.
이 책의 각 챕터들은 각각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의문과 그 답을 찾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마치 헤라의 시험을 통과하는 허큘리스처럼.
그리고 그 모든 시험과정이 담겼던 이야기들처럼.
인도는 신의 나라이다. 그래서, 더더욱, 신들과 만나는 이야기들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처음 만난 택시 운전수와 모텔 직원부터 기차 안에서 만난 이상한 형제와 식당에서 대화한 여인까지.
인류의 문명은 오롯하게 정답이 없는(것 같이 느껴지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발전했다.
그 질문이 엉뚱하고 어리석을수록 정답의 가치는 높아진다.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사람은 왜 죽는가?'
와 같은 질문은, 사실, 지금도 여전히 거대한 화두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 쉽게 대답한다면, 당신은 신이거나, 아직, 좆도 모르는 그냥 인간이다.
어떻게 살것인가?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그렇게 묻고 있다.
너무나 얇고, 가벼웠지만, 도저히 쉽게, 가벼이 넘길 수 없었다.
나의 모든 생은 누군가에겐 단 한 문장일 수도 있다.
"모년 모월 모일 사망"
그래.
그것이 인생이다.
중하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다른 누구에게도 무겁지 않다.
오직 '나'에게만 무거운 법이다.
이 책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