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몰락 2 블랙펜 클럽 34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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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기둥]으로 이미 큰 감탄을 했던 켄 폴릿의 역사소설이다.

1914년을 시작으로 1920년까지 유럽 각지의 인물들을 다루는데, 시기상 가장 큰 이슈는 단연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방대한 인물 소개와 함께 역사적 실존인물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 부분은 책의 말미에 저자가 스스로 밝힌 '역사와 허구 사이에 줄을 긋는 법' 과 통해있기도 해서 상당히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은 역사소설을 가늠하는 기준이 있는데(이 기준은 판타지 등 장르물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데) 당시 사람들의 사상이나 습관을 얼마나 '그 시대적' 으로 풀어내면서,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주는가이다.

재미있게도, 이 기준은 켄 폴릿의 [대지의 기둥]을 읽으면서 정립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역사소설에 대한 의구심은 없었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국가의 많은 인물들을 다루기 때문에 그의 능력이 얼마나 발휘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1910년대 영국. 근대화의 문을 활짝 열고 민주주의의 불꽃을 당겼지만, 아직 신분제 사회였다. 에버로언의 피츠허버트 백작은 여전히 대지주였고, 광부들은 여전히 소작인이었다. 에버로언의 피츠허버트 백작의 저택에서 어린 나이에 하녀장을 맡게 된 에설은 에버로언 광부 노조의 지도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데에 탁월한 당찬 여성이었다. 

 작품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큰 지분은 바로 이 '에설 윌리엄스' 가 차지하고 있다. 광부의 딸에 하녀, 그리고 여성, 게다가 미혼모이기까지 한 그녀가 어떻게 한 사람의 뛰어난 운동가로 자라나는지를 보면 수많은 단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어째서 민주주의가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후퇴했는지 알 수 있다.

솔직히 [세계의 겨울]까지 읽다보니 당시의 영국,미국 의회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회가 더 허접스레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한 축은 에버로언 백작의 여동생인 모드 피츠허버트와 독일 외교관의 아들인 발터 울리히가 차지하고 있다. 에설 윌리엄스가 여성 운동가의 일면을 보여준다면, 모드와 발터는 전쟁 속에 피어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쟁의 위기 속에서 깊은 사랑을 나누고, 유럽을 휩쓴 대전쟁 치하에서 적국에 연인을 둔 두 남녀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참으로 애달프다. 

이 작품 안에는 유독 강인한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시기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하기도 한데,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정계나 언론계, 노동계에서 한 자리라도 차지하려면 보통 외모와 멘탈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드는 그에 걸맞는 신분과 외모, 멘탈을 가지고 있었고, 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여성으로서 쓸 수 있는 무기는 다 쓴다" 는 주의를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특히 여성 인권 신장에 있어 불같은 추진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는데, 결국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모드와 발터가 전쟁이 터지기 직전, 외교가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일희일비 하는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매우 희극적이었다. 본국에서 내려오는 쪽지 한장에 '전쟁이 나면 우린 어째~' 했다가, '전쟁 안 나려나 봐요. 행복해요~' 했다가, 또 , '전쟁 날 것 같아요, 우리 어떡해요.' 했다가, 또 '전쟁 난대요. 우리 어떡해요.' 를 몇차례나 반복하는데, 그 심정이 절절하게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면 의외로 희극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에설과 모드에 대한 이야기가 2/3 정도 차지한다면, 나머지 1/3은 거스 듀어를 통해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는 과정과 귀족 혈통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던 미국의 상류층 이야기, 그리고 그리고리와 레프 페시코프 형제를 통해 러시아의 붉은혁명과 미국 이민 1세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스 듀어의 이야기에서는 로사 헬먼이라는 여성 기자가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작품 전체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성으로 생각된다. 진보적인 사회주의자인 헬먼은 이미 화려한 경력을 쌓은 기자로 한쪽 눈에 장애가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거스 듀어와 로사 헬먼의 러브 스토리는 솔직히 남성 판타지적인 경향이 농후하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판타지스러운 장면이 바로 이 둘의 러브 스토리 중에 등장한다. 

그리고리와 레프는 남성들이 생각할 때 가장 멋있는 요소들을 나눠가진 인물들이다.

그리고리는 무척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목표를 설정하면, 그 목표를 향해 올곧게 걸어가는 인물이다.

반면 레프는 요령이 좋고, 바람둥이에 말솜씨가 좋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쥐락펴락 하는 인물이다. 그리고리는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이고, 레프는 매력 넘치는 나쁜남자랄까.

그리고리를 통해 당시 러시아 군대의 처참한 상황과, 러시아의 차르가 무너지고 레닌과 트로츠키가 혁명을 성공시키는 과정이 그려지고, 레프를 통해 당시 미국의 러시아 마피아의 생활을 보여준다. 


[거인들의 몰락]의 진짜 흥미로운 부분은 한 타임라인 위에 수많은 세계의 이야기를 동시에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 당했을때 러시아, 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의 반응과 얽히고 설킨 국가간의 약속들. 그리고 힘의 균형에 이리저리 휘청이는 중심축. 그 안에서 '위' 의 명령에 따라 역시, 이리저리 휘청이는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무능력한 위정자들, 지도자들, 장교들. 

비슷한 시기 세계 각지의 고위층들의 결정에 수천, 수만, 수백만의 목숨이 오락가락했다. 


실제 역사적인 사건들을 광범위하게 펼쳐놓고 인물과 이야기에 따라 화려하게 직조하는 솜씨가 놀라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정말정말 엄청엄청 재미있다.

1권도, 2권도 무심코 펴들었다가 밤을 홀딱 새버릴만큼 재미있다.

일단 인물들의 개성이 엄청나게 뚜렷해서, 등장인물 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무척 쉽게 기억된다. 로마시대에 비하면 이름들도 무척 짧고 간결하며, 참~~ 쉽다.(ㅋㅋㅋ) 게다가 인물 수가 많다지만, 한 국가에 서너명이기 때문에, 이 국가 이야기가 나오면 이 인물, 저 국가 이야기가 나오면 저 인물이 등장하기에 쉽게 각인된다. 

또 한가지, 간간히 등장하는 에로틱한 장면들이 감각을 톡톡 잡아 챈다. 

위에 언급했듯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한 역할의 여성들은 남성 중심 사회의 정점에서 남성들을 쥐락펴락 하는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을 다룸에 있어서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성향만큼 성적인 표현에서도 조금 남다른 적극성을 보여준다. 이런 부분들이 한 밤 중에도 잠을 확 깨게 만들어 결국은 밤새워 읽게 만들곤 했다.

참고로 에설이 남편과 크게 다툰 뒤, 화해의 방법으로 침대 위에서 남편에게 자신의 벗은 가슴을 보여주는데 얼마전 인터넷에서 떠돌았던 '남자친구 화 풀어주는 방법' 이 떠올라서 박장대소를 했더랬다. 이 작품이 '픽션' 임에도 정말 그 시대에도 그랬을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푹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주는 가장 큰 강렬함은 전쟁에 대한 공포이다.

위에는 희극적인 느낌까지 난다고 했으나, 모드와 발터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충분히 이해될 정도로 전쟁에 대한 참상이 잘 묘사되고 있다. 전쟁이 터지고 징집되어 끌려가는 젊은이들. 에버로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피츠허버트 백작은 신분에 걸맞게 장교로, 에설의 남동생 빌리는 사병으로 전쟁터로 끌려간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전쟁의 참화 속으로 이끌려간다. 전쟁터에서도 보수와 진보, 신분과 계급도 존재했다. 장교들은 보수주의자로 애국심이 넘쳤지만 무능했고, 사병들의 목숨을 파리보다 못하게 여겼다. 빌리는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사병도 인간이고,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 정도는 알아야 했으니까. 독일이나 영국에 비해 인격, 전력적으로 지나치게 낙후된 러시아의 사병인 그리고리는 더 끔찍한 꼴을 당한다. 바로 이 전쟁통에 그리고리는 혁명정신을 깨우치게 되고, 붉은 혁명에 앞장서게 된다.

끔찍한 참호전도 무척 잘 묘사하고 있다. 런던까지 들렸다던 프랑스 솜강 전투의 대포 소리, 매일매일 전사자 통보가 끊이지 않았던 에버로언의 광부촌, 빵 한덩이를 위해 매일매일 몸을 팔아야 했던 평범한 러시아의 아내들 역시. 전쟁터는 물론이고 전쟁을 치르는 국가들의 끔찍한 참상이 잘 담겨져 있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오직 위정자들 뿐이었다. '신분이 높으신' 분들. 이 점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작품의 엔딩 또한 무척이나 돋보였다.

결국 노동당 하원 의원으로 당선된 에설이 의사당 계단에서 피츠허버트 백작과 맞닥뜨리는 장면인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계급과 신분으로 상원의원을 '물려받은' 피츠허버트와, 그의 하녀장이었지만 지역민들의 선거로 하원의원에 당선된 에설.

그렇지.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였다. 백작과 하녀가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볼 수 있는 사회. 


훌륭한 역사소설은 그 시대의 생활상과 정신을 설득력 있게 묘사해내기도 하지만, 그에 비춰 현실을 되새기게 해준다.

[거인들의 몰락] 역시 그러한 훌륭한 역사소설의 미덕을 정확하게 갖추고 있다. 드라마의 요소도 무척 풍부해서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터, 특히 매력적이고 개성넘치는 인물들에 푹 빠져들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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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22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정월대보름 입니다!^^
주무시면 눈썹셉니다~하얗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