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런 파더스데이 - 상
김성민 글 그림 / 길찾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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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만화 시장이 무너지면서, 웹툰 시장이 도래했다.

웹툰은 장르의 특성상 장단점이 공존할 수 밖에 없다.

 

우선 작가와 독자간의 즉각적인 리액션을 예로 들 수 있다.

작가는 독자들의 반응을 바로바로 볼 수 있고, 그것은 작품에 있어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베르세르크나 무한의 주인처럼 긴 호흡의 서사물이 웹툰으로 연재된다고 생각해 보자. 베르세르는 일본에서 격주간지에 월간, 혹은 격월간으로 연재되는 연재물이다.(일본에는 그런 경우가 꽤 있다. 즉, 격주간지가 총 4권 나오는 동안 한회 연재되거나, 5권 나오는 동안 한회 연재되는 경우이다. 또는 월간지에 격월로 연재하는 작품들도 꽤 된다.)

아마 네티즌들은 작품 진행에 대한 어마어마한 욕을 쏟아낼 것이고, 많은 독자들은 작품을 외면할 것이다.

게다가 그런 작품들은 호흡까지도 느리다. 즉, 한 회에 진행되는 사건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만화를 기다리는 독자들은 두달을 기다려 불과 한 회, 24페이지 정도를 감상하며 그 내용 또한 전체 이야기를 놓고 봐서는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작품은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와 넓고 깊은 설정들로 인해 생명력을 아주 서서히 얻어나간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사건, 사소해 보일 정도의 갈등들 불필요할 것 같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쌓여가는 것이다. 물론 위에 언급한 두 작품 모두 초반부터 높은 흡인력을 자랑하지만 만약 그런 작품들이 현재 한국에서 웹툰으로 연재된다면, 1년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만화. 특히, 웹툰을 즐기는 한국의 현재 독자들은 참을성이 그다지 많지 않다. 네이버에서 가장 긴 호흡을 가지고 있는 작품은 현재 양영순 작가의 '덴마' 와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나이트 런의 본편은 얼마전 막을 내렸으니까.) 그 작품들의 댓글들 중 태반은 '양이 적어요. 이야기가 느려요' 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 모두 1회부터 지금까지 쌓인 분량들을 천천히 감상해본다면 위에 언급했던 차곡차곡 쌓인 작은 것들이 모여 얼마나 훌륭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는 확인할 수 있을것이다.

 

이 독자들의 즉각적인 리액션이 웹툰 만화의 성격을 규정한다.

독자들의 리액션을 무시하고 본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느냐. 즉, 한 회 한 회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작품군과 오히려 독자들의 리액션을 추구하는 작품군.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나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의 작품군이다.

 

한국의 웹툰을 양분하는 두 포털 사이트는 다음과 네이버에서 이 두 작품군을 발견해 볼 수 있다.

이 두 대형 포털은 일찌감치 만화 컨텐츠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서로 완벽하게 다른 작품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두 사이트는 한때 한국 만화의 두 축이었던 '아이큐 점프' 의 서울 문화사와 '소년 챔프' 의 대원 문화사의 역할을 대신 떠맡았지만, 작품과 작가 발굴.관리 시스템은 판이하게 다르다.

나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아서 크게 알지 못하지만, 다음의 경우는 기획력을 갖고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따져서 진입 장벽을 꽤 높게 형성한 반면, 네이버는 일단 문턱을 낮추고 활짝 열어놓은 상태에서 진입한 작가와 작품들끼리 무한 경쟁을 요구하는 체제라고 볼 수 있다.

 

다음 웹툰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은 강도하 작가의 '위대한 캣츠비' 나 강풀작가의 작품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꽉 짜여진 이야기로서의 완성도가 높고 제작 초기 단계부터 작가와 담당자들의 기획을 거친 작품들이다. 그렇다면, 네이버에서는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 나 서나래 작가의 '낢이 사는 이야기', 김규삼 작가의 '정글고'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작품군의 비교만으로도 두 포털의 웹툰이 추구하는 방식과 시스템이 대충 감이 잡힐것이다. 다음 웹툰은 철저한 기획력과 작가와의 사전 미팅을 통해 밀도있고 완성도 있는 웹툰이 많다면, 네이버의 경우에는 작가들이 경쟁을 해야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반응에 민감한 작품들이 많다.

두 방식 모두 장단점이 있다. 연재되는 작품들 또한 장단점이 있을 뿐 아니라, 각 방식 속에서 살아남는 작품들 또한 명작과 범작들이 골고루 섞이게 된다.

철저한 기획을 통과했다고 해서 항상 밀도 높고 완성도가 높은 재미있는 작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작가가 독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조율하며 풀어낸다고 이야기 구조와 구성이 듬성듬성하고 허술한 작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트 런" 은 한국 블로그 1세대에 가까운 작품으로서, 애초에 포털들이 만화를 제공하기도 전, 이글루스라는 블로그 전용 사이트에서 개인 블로그를 통해 연재되던 작품이다. 사실 그 등장시기만 놓고 본다면 웹툰 1세대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당시 블로그에서 크게 인기를 얻던 또다른 작품인 '다세포 소녀' 가 개인 블로그의 특성을 이용한 포르노에 가까운 B급 정서로 인기몰이를 했다면, '나이트 런' 은 스타워즈와 일본식 액션을 마구 뒤섞은듯한 익숙함과 작가가 구상한 세계관에 대한 긴 호흡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동안 많은 팬들을 잡아 끌었다. 특히 스타워즈나 스타트랙을 좋아하던 매니아들, 그리고 한국만화에서도 베르세르크나 배가본드 같은 긴 호흡의 장편 서사시를 갈구하던 팬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퍼지면서 대형 포털이 아닌 블로그 전문 사이트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고정 팬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나이트 런이 네이버 웹툰에서 자리잡은것은 작품이 개인 블로그에서 이미 50회를 훌쩍 뛰어넘은 뒤의 일이었다. 바로 이런 '나이트 런' 의 성장기가 네이버 웹툰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식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나이트 런은 기본적으로 SF. 특히 '스페이스 오페라' 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틀을 명확히 가지고 있다.

행성과 행성간의 이권 다툼, 각 행성의 명확한 특징들,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전투함들, 그리고 성장과 모험.

특히, 정체를 알수없는 압도적인 외계의 적. 그로 인한 처절한 공포와 절망. 그 틈을 파고드는 '기사' 라는 작은 한줄기의 희망. 그 희망을 붙들고 늘어지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장황하게 설정들을 설명하기보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 설명하기 힘든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해 버리고 등장인물간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이야기의 흐름에 경쾌한 템포를 부여한다. 그리고 바로 그 '불친절함' 을 오히려 매니아들은 열광한다. 작가가 애초에 탄탄한 설정을 가지고 작품을 구상했고, 작품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현상들의 인과관계가 또렷하기 때문에 팬들은 작품을 파고들면서 불친절하게 설명되지 않은 요소들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얻어가는 것이다. 일본의 만화 문화 근간을 지탱하고 있는 오타쿠 문화도 바로 이러한 스페이스 오페라 "우주전함 야마토" 에서부터 파생된 것이다.

"나이트 런" 은 한국에도 '오덕질' 을 할 만한 작품이 등장했음에 환호한 것이다.

 

나이트 런이 아주 새롭거나 독창적임은 절대로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스페이스 오페라 풍은 물론, 판타지 요소가 잔뜩 가미된 우주모험물이 엄청나게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조차 영향을 받은 스페이스 오페라의 효시인 스타트랙이나 스타워즈 시리즈 또한 그 영향력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나이트' 의 역할은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의 '로봇' 들의 역할을 닮아있다. 쉬운 예로 '기동전사 건담' 이 인간 사이즈로 변해서 인류를 위협하는 우주 괴수들을 쳐부순다고 봐도 될 것이다. 아니면, 그 명칭조차 비슷한 스타워즈의 '제다이 나이트' 를 떠올려도 된다. 등장하는 전투함이나 간간히 보이는 행성들간의 알력다툼, 갈등관계 등은 스타트랙이나, 역시 건담시리즈가 오버랩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참치 한 마리로 수많은 요리를 할 수 있고, 요리마다 맛이 완전하게 다르듯, 나이트 런 또한 그런 작품들의 영향권 안에 있지만 전혀 다른 맛을 낸다. 심지어 부위마다도 맛이 다를터. 비슷한 소재를 사용했다고 이야기가 주는 느낌이나 감동까지 비슷하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나이트 런' 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강점은 그런 소재가 아니라, 탄탄한 설정과, 그 위에 살아있는 캐릭터들의 생생함이다.

로봇보다 강하지만,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들이 서로 어우러져 얽히고 설키면서 성장해가는 과정들이 때론 감동적으로, 때론 즐겁고 유쾌하게 이어져 나간다.

 

이 작품 "나이트 런 - 파더스 데이" 는 '나이트 런' 이라는 이야기가 얼마나 탄탄한 설정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본편의 외전격인 이 작품은 작가가 "나이트 런" 을 통해 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고,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과 앞으로의 기대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처절한 절망과 고난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빛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광활한 우주와 번득이는 빔들이 향연을 펼치는 "나이트 런" .

그 세계에 입문하기 위한 첫 작품으로는 최고의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네이버에 연재되는 본편과는 다른 깔끔하고 높은 퀄리티의 그림.

철저한 기획속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느낌이 딱 오는 수작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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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밝은별 2011-12-1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봤던 나이트런 평가 글 중에 최고로 느낌 와닸는 글이에요~

열혈명호 2011-12-23 00:58   좋아요 0 | URL
오와@.@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