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X로 배우는 배경 일러스트 쉽게 배우는 만화 시리즈 65
사케하라스 지음, 김재훈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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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클립 스튜디오 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책입니다.


바야흐로 대 스케치업의 시대다. 


지금까지 만화에서의 배경작업은 대부분 트레이스로 이뤄져왔다.

작품의 설정 구상이란 캐릭터와 스토리 뿐 아니라, 작품의 배경과 환경도 포함된다. 

많은 작가들이 작품 구상 기간에 영화의 로케 장소를 탐색하듯, 여러 동네를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아직 데뷔를 못한 지망생들은 필름 값도 부담이어서 원하는 각도대로 쉽게 찍을 수 있는 집이나 작업실 인근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면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배경자료집들을 외서 전문 서점에서 구입하곤 했는데, 필름 인화 가격을 생각해보면 경제적으로 그게 더 나은 선택이기도 했다.

작법서보다 더 필요한게 자료집이었고, 코믹월드 같은 만화 페스티벌에는 동인지 말고 그런 자료집을 웃돈을 받고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코미커즈" 같은 만화 지망생들을 위한 잡지 뒷부분엔 자료 사진들이 흑백으로나마 실려있기도 해서, 나도 열심히 스크랩해서 모아두곤 했다.

작가들의 작업실에 견학을 가보면 책장 가득 배경화집을 비롯한 각종 자료집과, 잡지 등에서 손수 모은 스크랩북, 직접 찍은 배경 사진들을 모아놓은 클리어 파일들이 꽂혀 있곤 했다.

그것이 모두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다.

지금은 인터넷만 두들겨보면 자료로 쓸만한 수많은 사진들이 넘쳐난다.

적당한 금액을 지불하면 트레이스를 할 수 있는 사진들을 구매할 수도 있다. 역시 과거의 필름값을 떠올리면 납득할 만 한 수준이다.

게다가 디지털 작업이 일반화 되면서, 이렇게 구매한 사진을 확대, 축소할 수 있고, 트레이스 대신, 포토배쉬 같은 방식으로 사진을 직접 가공할 수도 있다.


모바일 환경처럼 작은 화면으로 보는 웹툰의 특성상, 적당히 가공된 배경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작화의 퀄리티가 크게 높아 보일 수 있다.


그래선지, 이제는 사진을 가공하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대부분의 웹툰들이 3D소프트 웨어인 "스케치업" 으로 렌더링한 배경을 갖다 쓴다.

문제는 스케치업이 3D치고 가벼운 프로그램이라, 곡선렌더링에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고, 자신의 그림체와 어우러지지 않으면, 굉장히 튄다는 점이다.

특히 구도, 원근감의 기초가 부족한 지망생들이 어설프게 합성하면 오히려 퀄리티를 크게 낮춘다.


이 책은 이러한 오류를 최대한 잡아줄 수 있는 정보들이 가득하다.


내가 직접 찍을 수도 있지만, 종이 질이 좋아서, 넘나 반들거려서 인터넷 서점에서 홍보자료를 퍼왔다.



 이런식으로 배경을 적절히 활용하는 방법을 첨삭하듯 소개하고 있다.

주로 오른쪽 면에는 이론적 설명이, 왼쪽 면에는 실전활용법이 소개되고 있다.

사실,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내용들이라 지나치게 요약한 감이 없지 않지만, 사실 그런건 원근과 구도에 관한 이론서를 읽는게 낫고, 실전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방법으로서는 매우 영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넘어가기 쉬운 작은 글씨들로도 다양한 정보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꼼꼼히 읽으시길...


다만, 배경을 이제 막 입문한 초보자들이라면, 이해가 잘 안될 수도 있으니, 꼭 구도와 원근에 관한 다른 책들을 함께 읽어보길 추천한다.

한스미디어에서는 "배경작화" 라는 책이 있는데, 기본기가 잘 소개되어 있고, 영진닷컴에서는 "일러스트와 만화를 위한 구도 노하루" 라는 책이 있다.

두 책 모두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니, 한권 선택해서 함께 보시길.

(영진닷컴에서 나온 무로이 야스오의 "가장빠르게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작화기술" 이라는 책의 후반부에 실린 구도 잡는 법에 대한 노하우도 배워볼 만 하다.) 


일본의 만화 인프라는 엄청나게 깊고 넓다.

지금 국내에 출간되고 있는 책과 비슷한 작법서들이 이미 수십년 전부터 수백종씩 쏟아지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웹툰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인프라가 조금씩 넓어지는 느낌이다.

내가 어렸을때, 열심히 만화공부를 하던 그 시절에 지금의 반만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이 책 역시, 그정도로, 참 좋은 책이다.

다양한 정보들이 보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작법서를 눈으로 보는 것 만으로는 실력이 올라갈 리 만무하다.

꼼꼼하게 읽을 뿐 아니라, 반드시 한번쯤은 따라 그려보는 것이 좋다.

완벽하게 모작을 할 필요는 없지만, 트레이싱은 절대로 안된다. 

트레이싱은 결코 실력을 올려주는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러프하게 콘티 형식으로 모사를 하는 것이 백번 천번 낫다.

스케치업을 활용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원근과 구도를 손으로 그릴 줄 아는 사람의 합성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과 큰 차이가 난다.

작은 모바일 화면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술의 깊이는 결국은 드러나게 되어 있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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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화집 - 그림꾼의 마감병
석정현 지음 / 성안당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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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스튜디오 네이버 카페 "코믹스튜디오-디지털 만화제작을 배워보자!" 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입니다.




우선,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적기 전에, 내가 에세이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순전히, 작가의 "이야기" 보다 국내 최고의 디지털 드로잉 작가인 석정현씨의 "그림" 때문이다.

2000년대에 디지털 작화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석정현 작가의 필명인 "석가"의 작법서나 그림을 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디지털 작화계(그런게 있다면)의 지평을 넓히고 디지털 일러스트의 표준과도 같은 이정표를 세운 작가가 바로 석정현이라는 사람이다.

그가 디지털로 구축한 작품세계는 '코렐'의 "페인터" 라는 소프트웨어를 빼고는 말하기 힘들 정도다.

페인터는 이름처럼 오직 '그림그리기' 만을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무척 직관적이고, 디지털임에도 아날로그의 느낌을 물씬 풍기게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여러 면에서 '어도비'의 "포토샵" 과 비교된다.

포토샵도 여러가지 플러그인을 설치하면 페인팅 작업에 매우 훌륭한 툴이지만, 페인터가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수많은 장점들에 비하면 역부족이다.

포토샵이 진정 "레이어" 위에 픽셀로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이라면, 페인터는 정말로 종이 위에 수많은 진짜 미술도구로 그림을 그리는 느낌을 준다.

다만, 그만큼 호환성이 부족하고, 초보자들에게는 허들이 좀 높은 편인데, 석정현씨는 그런 단점을 자신의 작업과정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극복, 결국 "페인터" 라는 소프트웨어의 대중성을 한단계 높여준 이다. (코렐사가 정식으로 한국 홍보모델(?)로 위촉했다는 썰이 있을 정도.)


석정현 작가는 그림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만화적 연출력이나 표현력은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아, 만화쪽에서는 크게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이 없지만, 상업 일러스트쪽에서는 꾸준하게 작업하며 비정기적으로 자신의 작업물들을 책으로 엮어 내 왔다. 최근에는 "석가의 해부학노트" 라는 방대한 양의 미술용 해부학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런 책들을 본인은 "소품집" 이라고 하지만, 실려있는 일러스트의 퀄리티는 "소품" 이라 부르기엔 대단히 훌륭하다.


그런 와중에, 이 책 만큼은 정말로 "소품집" 에 가깝다. 작품에 가까운 그림과 함께한 소품집.


실제로, 작가가 활동중인 각종 SNS에 그린 그림이나, 저작권상 문제가 없는, 비상업적인 그림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그 그림에 담긴 작가의 소회나, 당시 SNS 에 함께 올렸던 글들이 실려있다.

일러스트의 퀄리티와는 달리, 글의 퀄리티는 제목처럼 "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과 제목, 표지와 작가까지 아주 잘 만들어진 책임은 틀림없다.


평소에 석정현 작가가 한명의 "예술가" 로서 갖고 있는 여러가지 심상들, 고민들, 그리고 사회에 갖고 있는 이념, 그리고 그 이념들을 표출하기 위한 고심이 충분히 드러난다.

글을 쓰는 작가라면, 그걸 유려한 문장으로 그려냈을테지만, 석정현 작가는 유려한 디지털 붓질로 적어냈다.

전작들과는 달리, 작법이나 기술보다는 보다 직업적, 개인적인 심상들이 적절하게 자리잡고 있다.


중간중간 맘에 담아둘 만한 이야기들도 있었고, 남편으로, 아버지로 변화해가는 "인간" 석정현씨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서 오랜 팬으로써 벅찬 내용들도 담겨있었다.

동시에, 재능 없는 나로서는, 운이 딱 맞는 때를 만난 재능 넘치는 자를 바라보는 부러움 역시, 한가득이었고.  

좋아하는 작가의 좋아하는 그림을 보며, 그 그림에 대한 도슨트를 작가 본인에게 듣는 느낌은, 역시 좋다.



※석정현작가의 인스타를 링크해둔다. 이 책에 실려있는 많은 일러스트들은 이 링크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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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bash 입문
조우노세.카도마루 츠부라 지음, 김재훈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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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스튜디오 네이버 카페 "코믹스튜디오-디지털 만화제작을 배워보자!" 카페의 이벤트를 통해 경품으로 받은 책입니다.




일러스트나 만화나 대부분의 배경작업은 사진을 레퍼런스로 해서 작업한다.

과거, 종이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던 시절엔, 라이트 박스 위에 사진과 종이를 겹쳐서 배경을 따는 작업을 했다.

해서,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전 시절엔 배경 사진만 전문으로 모아 파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고, 프로 만화가들은 작품 들어가기 전에 며칠씩 배경사진을 찍으러 다녀야 했다.  

코미카 같은 아마추어 만화동아리 행사를 가보면, 지금은 굿즈나 동인지를 주로 팔지만, 그 당시엔 자료로 쓸 수 있는 사진들을 모아 파는 친구들도 있을 정도였다. 

필름값도, 카메라도 고가이던 시기였다. 

라이트박스도, 카메라도 없던 나는 청계천 헌책방거리에서 구입한 잡지에 실린 흑백 사진들을 보고 배경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원하는 구도나 각도가 나오지 않을 경우엔 여러 사진을 부분부분, 참조해서 그리기도 했다.

실제로 많은 프로 작가들이 그런 방법을 활용하곤 했다.

자신이 예전에 그렸던 배경들을 다시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고, 복사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정말, 철저히 노동 집약적인 직업이 만화가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약 20년 사이에 빠르게 사라졌다.

지금은 잉크와 펜, 원고지 대신, 타블렛과 모니터, 키보드를 활용하는 작가들이 다수가 됐다.

배경 작업의 레퍼런스로 삼을 사진들은 인터넷에 가득하고, 화소가 높은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폰 덕분에, 트레이싱을 할 사진을 찍기도 쉬워졌다.

이 책에 실려있는 기술들은 생각보다, 이렇게 전통과 역사가 꽤 깊은 기술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산업 디자인 쪽에서는 매트 페인트, 만화 쪽에서는 배경 작업에서 말이다.


'포토배쉬' 란 사진으로 찍은 오브젝트들을 레퍼런스 삼아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내는 기술을 뜻한다.

그렇다고, 꼴라쥬처럼 사진을 그대로 잘라다 붙이는 건 아니고, 리터칭을 통해 상당히 크게 변화시킨다. 차용보다는 응용, 트레이싱보다는 레퍼런스에 가까운 방법이다. 

사실 이런 기법은 '코렐' 사에서 나온 '페인터' 라는 소프트웨어가 아주 특화되어 있었다.

수백개에 달하는 브러시와 함께 엄청나게 유명한 기능이었는데, 덕분에 프로 매트 페인트 작가들에게 사랑받으며 널리 퍼지기도 했다.

지금도 사진 편집 소프트웨어의 최강자는 '어도비' 사의 포토샵이지만, 일러스트쪽에서는 아직도 페인터가 최고다.


'클립 스튜디오' 는 "선" 을 중심으로 표현되는 만화쪽에서 단단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는 사진 가공 툴이 부족해서, 선은 클립에서, 마무리는 포토샵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최근 버전의 클립 스튜디오는 오히려 사진을 선화 느낌으로 가공하는 툴들을 발전시켜서 그럴 필요가 거의 없어졌다.

이 책은 이렇게 "사진을 가공하는 툴" 을 이용해 일러스트를 완성시키는 과정들을 꼼꼼히 소개해 주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웹툰 열풍이 불면서 작가 지망생들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기본기가 부족해도 사진을 가공한 배경을 여기저기 붙여 놓으면, 작품의 퀄리티가 훌쩍 높아지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액정에서 확인해보면 훨씬, 훨씬 더 훌륭해 보이기도 한다.

작화와 스토리, 퀄리티와 개성의 중요성에 대한 논쟁은 디지털화가 진행되기 전부터 일었던 논쟁이지만, 그건 온전히 만화가와 만화 독자라는 특정한 계층의 문제였다.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슬램덩크를 그리면서 NBA 잡지의 사진들을 트레이싱 한 사건이 일본 만화가들과 만화계에 한정된 문제였듯이 말이다.

하지만, 웹툰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그 대중 중 많은 수가 웹툰 지망생이 되면서 이러한 논쟁들은 보다 폭넓은 계층을 아우르게 되었다.

배경에 사진을 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교과서적인 작가들은 크게 셋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미생' 의 윤태호 작가님이다.

윤태호 작가님은 디지털을 아날로그처럼 활용하시는 분이다. 그 분은 직접 찍은 사진들을 밑에 깔고, 외곽선부터 보도블럭까지 꼼꼼하게 다시 자신의 선으로 덧입히는 방식을 사용한다. 마치, 라이트 박스 위에 사진을 올리고, 그 위에 종이를 올린 뒤 펜과 잉크로 따라가는 방식이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예전 "무한도전" 에 작업 과정이 직접 나온 적도 있다. 미생을 위해 직접 찍으신 사진들이 폴더에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뷰티풀 군바리' 도 이런 방식이다.)


다음은 '닥터 프로스트' 의 이종범 작가님이다.

이종범 작가님은 디지털의 최전선에 계신 분이다. 이 분은 사진 뿐 아니라, '스케치업' 이라는 3D 프로그램을 아주 잘 활용하신다. 만화진흥원의 스케치업 강좌에 출강하실 정도의 실력이신데, 3D프로그램 특유의 이질감을 죽이는 다양한 방법들을 활용하신다.

('테러맨' 의 고진호 작가님도 빼놓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프리드로우' 의 전선욱 작가님의 방식이 '포토배쉬' 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콘티에 맞춰 직접 찍은 사진들을 리터칭해서 활용하신다. 네이버 인터뷰였나...어디에서 작업과정이 공개된 적이 있었다. 고대비를 조정하고, 경계나 색감이 불명확한 부분들에 터치를 해서 활용한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진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리터칭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그림체와 이질감이 없는 배경을 그려낸다는 점이다.

사진을 사용하는 작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의 그림체, 혹은 캐릭터와의 이질감이다.

나는 사진을 아무리 잘 합성해도 이 이질감을 극복할 수 없어서, 리터칭 하는 방식을 택한다. 어지간하면 그냥 그린다. 

물론 스케치업과 사진의 도움을 받지만, 특정 부분에서만 활용하고, 대부분은 그냥 그리려고 한다. 

배경을 위한 만화가 아니라, 인물을 위한 배경인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예제들은 이렇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배경 만드는 기술에 대한 책이다.

다만, 내가 들었던 예시와 달리, 스토리나 캐릭터가 아니라 오로지 배경을 위한, 배경에 의한, 배경 그리는 예제들이 한가득 실려져 있고, 사진을 일러스트의 느낌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예제들이 아주 세분화되어 잘 설명되고 있다.

즉, 이 책은 초보자들보다는 고급자, 그것도 연재를 염두에 둔 프로 지망, 게다가 그림체가 실사와 잘 어울리는 층에게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아, 내가 너무 만화, 웹툰에 치우친 관점을 갖고 있는걸까.... 

여튼, 배경작업에 힘을 주실 분들 중 클립 스튜디오 유저라면, 처음에 집어들기 좋은 책이다.

당연히 주호민 작가님의 '신과 함께' 나 난다 작가님의 '어쿠스틱 라이프' 같은 그림체라면, 이런 사진을 활용한 배경이 전혀 필요 없을테니까. 아니, 이것도 고정관념인가.... 필요할 수도, 있으려나. ㅋㅋ 

사진을 활용해 소스를 만들고, 사진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는 방법, 사진의 고대비와 밝기를 조정해 일러스트의 느낌을 내는 방법 등 사진을 가공하는 방법들도 메뉴 하나, 툴 하나, 레이어 속성 하나까지 속속들이 예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실제 사진을 작품에 활용하는 노하우나 온라인 저작권에 따른 "웹에 게시된 사진의 사용범위" 에 대한 법적 설명도 들어있다.


자신의 그림체에 맞는, 그리고 매트 페인팅의 기초를 다지고 싶은 '배경'작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강추할 수 있는 책!! 





이렇게 기초적인 사진 합성부터 



배경을 흥미롭게 구성할 수 있는 팁은 물론,



클립 스튜디오의 주요한 툴들을 응용하는 방법은 물론


 

직접찍은 사진에서 텍스처를 추출해 활용하는 꽤 난이도 높은 응용방법까지 성실히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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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국의 연대기 - 전쟁, 전략, 은밀한 확장에 대하여 걸작 논픽션 19
대니얼 임머바르 지음, 김현정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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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19년에 미국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다는 카피와, 미국인들도 제대로 몰랐던 미국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라는 책 설명에,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더랬다. 다소 의심스러웠던 마음으로 책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서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럴 만 했겠다' 싶었다.


책의 서문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이미지. '로고 지도' 와 미국의 현재 실제 영토의 지도를 비교해준다.

 


(미리보기에서 가져온 바로 그 페이지)

이 페이지를 보는 순간, 나는 다소 충격을 받았더랬다. 

미국령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알래스카와 하와이도 잘 알고 있고, 괌, 푸에르토리코 같은 미국령, 그리고 필리핀처럼 한때 미국령이었던 지명들도 알고 있었지만, 미국이 의도적으로 미국 본토만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도 이 대목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이미지가 작아 아래 글씨들은 잘 안보일지 모르지만, 저자는 꽤 도발적으로 주장을 펼쳐내고 있다. 문장과 단어들은 매우 적확하고, 매우 깔끔하게 읽힌다. 어학 실력은 형편없어서 번역까지 지적할 깜냥은 안되므로 그 부분은 패스하고... 오역으로 느껴졌던 부분이 두어문장 있었던 것 같은데, 워낙 방대한 볼륨의 책이라 단순 실수로 보이는 지점들이었다. 주석과 감사의 말을 빼면 590페이지다. 


다양한 국가와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저자는 의도적으로 매우 유명한 사건과, 매우 유명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논지를 펼쳐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찾아들었던 이유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의 미국의 활약에 대한 의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록적으로 보자면, 미국은 1770년대 중 후반에 정부가 성립되었다.

하지만, 초기의 미국 정부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에 난리도 아니었다. 워낙 넓은 땅에 다양한 유럽 출신 유지들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긴 했지만, 많은 부분에 여전히 깊은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바로 1810년대엔 영국과 캐나다 연합 군대에게 워싱턴이 털린적도 있었고, 1860년대엔 남북전쟁도 있었다. 이 전쟁이 수습된지 50여년 후.

미국은 어떻게 유럽에 참전할 수 있을 정도로, 아니 참전할 정도가 아니라 전쟁을 끝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 지점이 꽤나 궁금했다.


 초반에는 바로 그 시점. 특히 루스벨트가 서부를 누비던 시기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백인우월주의를 바탕으로 금광이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땅을 흡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첫번째 위기는 산업화와 영토 확장으로 인한 폭발적인 인구증가에서 비롯됐다. 멜서스는 이런 속도로 인구가 증가한다면 식량 생산을 앞질러서 "인류는 때 이른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농업 방식이 오래 지속되려면 질소의 순환을 관리하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지혜를 바탕으로 순환 작물을 통해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쌓아야 충족되는 것인데, 산업화로 인한 도시화가 이러한 순환주기를 깨뜨렸던 것이다. 19세기 미국 동부의 농가들은 타격을 받았다. 에이커당 작물의 생산률이 반 이하로 급감한 것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연구 끝에 페루 연안의 친차 제도에서 서식하는 가마우지, 얼가니새 및 펠리컨에게서 나오는 질산이 풍부한 똥, 즉 해조분이었다. 

 당시 이러한 해조분은 다른 모든 것처럼 영국이 독점하고 있었고, 미국은 해조분이 쌓여있을 태평양의 무인도들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미국이 발견한 그런 무인도들은 점유권을 주장하고, 그 독한 해조분들을 채취하는 일은 대부분 흑인들이 투입됐다. 너무나 척박하고 괴로운 환경 속에서 일꾼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면서 미국은 비로소 해외 영토에 대한 법적, 전략적 개념을 획득하게 된다. "새똥이 널려 있는 바위와 섬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지간에 그곳은 결국 미국의 일부였다." 수십년 후, 이 곳들은 비행장 건설에도 적합한 곳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많은 미국의 해외 영토들이 어떻게든 연방으로 편입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얼핏, 로마 제국 말기, 시민권을 얻기 위한 시칠리아 동맹시들과의 갈등이 떠오르기도 했다. 새삼, 미국 사람들이 로마 역사에 열광하는 이유도 이해하게 됐다.

 

 사실 이 책이 더 강조하는 부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으로 재편된 세계에 관한 부분이다. 

미국이 푸에르토리코를 차지해야 했던 이유, 괌, 사모아 제도, 하와이, 미드웨이 환초 등 태평양의 섬들을 가져야 했던 이유. 

나아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동남아의 필리핀을 차지해야 했던 이유와, 일본에게 빼앗긴 이후, 다시 되찾는 과정. 그리고 이후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필리핀의 노력. 더글러스 맥아더가 필리핀에서 성장했고, 필리핀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터다. 독립을 추구하지만, 독립할 수 없었던 푸에르토리코의 경제적, 현실적인 고민,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필리핀을 독립시키고, 초토화시킨 일본을 점령하지 않았던 이유.  미국 상원의원에서 벌어진 제국주의와 반식민주의의 치열한 대립, 

그리고 전 세계에 산적해있는 약 800여개의 미군부대로 나아간다.

이란, 이라크 전쟁과 걸프전, 그리고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세인과 오사마 빈 라덴. 

그리고 세계에서 모국어로 쓰는 빈도는 두번째이지만, 제2외국어로는 가장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 언어, '영어'를 위한 치밀한 전략.

그 실패의 잔재들과, 전략 밖에서의 뜻밖의 승리. 


대충 생각나는 것만 짧게 담아내기엔 너무너무 많은 내용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얽히고 설키면서 정신없이 펼쳐진다.


올 한해, 아니 최근 몇년간 읽은 인문, 역사서중 가장 쉽고 재미있게, 술술 읽히면서도 익히 알려진 유명한 사건들 이면의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사산에서 시작된 '국제 표준'에 관한 치열한 외교전이라거나 고무를 개발하는 과정 등등은 결국 전쟁이 아니었으면 쟁취하지 못했을 편리함이라는 사실에서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기사, 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어야 잠재력을 발휘하는 법이기도 하니까...

미국은 일본의 침공이라는 역사적 위기 앞에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했고, 그 결과 영국, 독일보다도 빠르게 화공학, 원자물리학 분야에서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 


결국 식민지의 필요성은 전쟁 수행 능력과 결부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불법 침략하고, 타이완, 싱가포르, 필리핀 등을 침공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원자재를 조달하고, 병참선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미국도 태평양의 섬들이, 필리핀이 필요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항공모함과 비행기의 발달로 '영토' 의 필요성은 점차 약해져갔다. 미드웨이와 괌이 중요했던 이유,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아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항공기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영토를 점령하지 않는 대신, 곳곳에 미군 기지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제국주의가 변화하기에 좋은 구실이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세웠던 기지들을 철수하는 대신, 부지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지배 방식을 변환시켰다. 오키나와의 미군부대는 하나의 커다란 예시였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오키나와를 점령했었다. 1970년 일본의 시위대가 폭동을 일으켜 미군부대로 쳐들어간 2년 뒤, 오키나와를 반환했지만 그 후에도 미군부대는 여전히 상주해있다. 미군부대는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주민들이 미군부대의 철수를 요구하지만, 그들 중 태반은 미군부대를 통해 일상을 유지한다. 철수와 유지에 대한 찬반 비율은 미묘하다. 심지어, 초토화되었던 일본의 산업과 경제가 일어선 계기는 미국의 군수품 조달을 통해서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대규모 군수품 조달을 일본에 맡겼다. 도요타는 한국전 직전 회사 규모를 축소할 정도로 상태가 안좋았고, 일본중앙은행은 '신의 도움' 이라고 할 정도로 산업 전반이 일어서는데 도움을 줬다.

무엇보다, 일본이 미국이 세운 국제표준에 적응할 시간을 줬다. 


이러한 현상은 미군부대가 상주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동등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오사마 빈 라덴의 집안도 미군의 사업을 수주하는 업체였고, 오사마 빈 라덴 본인도 미군들의 휴양시설을 짓는 사업에 성공하기도 했다.

세계 각지에 퍼져가는 미군부대는 번영과 증오를 함께 퍼뜨리고 있다. 무려 800여 곳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점묘 제국주의" 라고 표현했다. 다소 도발적이고 신선한 내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적이지 않은 책은 아니다. 미국의 관점에서, 왜 세계는 미국을 증오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자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제국주의" 라는 개념 안에 여러가지 것들을 억지럽지 않게, 논리적으로 끼워 맞춰내는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무척 인상적인 마지막 한 페이지를 옮겨본다.


" 이상하게도 미국은 제국주의라는 비난에 자주 시달렸으나 영토 차원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미국을 로고 지도로 나타내기 위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나머지, 제국을 부르짖으며 열렬히 비판하는 전문가들조차 해외 영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확장된 미국 영토의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영토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식민지나 기지 근처에 사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 중요한 문제다. 미국 입장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영토에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은 군기지에서 시작됐다. 피임약, 화학요법, 플라스틱, 고질라, 비틀스, 초원의 집, 이란-콘트라, 트랜지스터라디오, 미국이라는 이름 자체에 이르기까지 영토 제국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들의 역사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영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식민주의는 정체적 배경에서 그 존재가 가장 두드러진다. 매케인, 페일런, 오바마 그리고 트럼프는 모두 식민주의의 영향을 받아왔다. 이는 이상하고도 놀라운 사실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놀라움을 뛰어넘어 미국의 역사는 제국의 역사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p.590


저자는 결국 제국주의 시대에 흩어진 미군부대가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문명에 영향을 줬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다. 현재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아이돌 음악도 결국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밴드, 그룹, 댄서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군 부대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이 머리맡에 있다는 점을 빼고라도, 미국이 결코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지 않으리라는 명백한 이유가 이 책에 잘 서술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북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방어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국으로서의 미국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최소한의 깃발.

그것이 미군 기지이다. 


이 리뷰를 정리하는 동안, 또 미군 기지로 인해 시끌시끌하다.

미군이 순환 배치와 전략적 유연성을 갖추려 한다는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미군이 한국에서 기지를 철수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미군 군인의 물리적인 숫자를 줄일 수는 있다. 이 책에도 언급되는데, 더이상 보병의 '쪽수' 는 그다지 중요한 전략적 개념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기지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상주인구가 있어야 하고, 기지가 설치되어 있는 국가, 지역, 주민들의 성격에 맞춰 재편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이라기보다, 미국의 지배 전략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또 크게 나뉜다.

미군들의 비행을 보도하며 반미감정을 증폭시키면서도, 미군이 쪽수를 감축할까봐 호들갑을 떤다. 

이 책이 예로 든 다른 나라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 안에 묶여있는 식민지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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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아스트로룸 - 인류가 여행한 1천억분의 8
오노 마사히로 지음, 이인호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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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억 광년.
빛의 속도로 200억년을 달려야 한다.
우주의 끝에 도달하려면 말이다. 우주는 아직도 팽창하고 있으므로, 빛의 속도로 200억년 달려가도, 200억년동안 팽창한 만큼 더 달려가야 할 것이다. 사실, '광년' 이라는 단위가 '천문단위(1.496*108km)' 가 쓰이고 있지만, 아무래도 내가 배우던 시절엔 '광년' 을 많이 써서, 아직 그게 익숙하다. (다행히 이 책에도 광년이 쓰인다.)
200억 광년이라니...
너무 까마득하다.


우리가 사는 태양계 안으로 좁혀보자.
태양으로부터 가장 먼 해왕성까지가 약 100광년이다. 물론, 우리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은 태양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고, 그 궤도는 매번 약간씩 변화하는 타원이기 때문에 거리를 아주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다.
다만, 공학적인 계산을 통해 어느정도 유추할 뿐이다. 빛의 속도도 사실 크게 와닿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태양계 안 행성들을 시속 300킬로미터의 고속열차로 소개하고 있다.
지구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달까지는 53일 걸린다. 금성까지는 16년, 화성까지는 28년, 수성까지는 35년, 태양까지는 57년, 목성까지는 240년, 토성까지는 480년, 천왕성까지는 1000년, 해왕성까지는 1700년....
태양과 가장 가까운 프록시마켄타우리까지는 1500만 년이 걸린다. " (p.093)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지구 밖 행성에 내딛은 인류의 첫발.

이제 막 인류의 유년기가 시작됐다.


'과학소설의 아버지' 쥘 베른으로 운을 띄운 이 책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로켓 개발을 주도했던 독일의 과학자 헤르만 오베르트를 시작으로 미국으로 넘어가 인공위성과 달 착륙선 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한 폰 브라운, 세계 최초로 지구 궤도에 인공위성을 안착시킨 소련의 코롤료프와 존 후볼트와 마거릿 해밀턴을 비롯한 수많은 나사 직원들을 거쳐 달에 첫 발을 내딛으며 도입부를 마무리한다.
달로 유인 로켓을 보내는 것은 1972년으로 끝나게 된 이유,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기 위해 시도되는 수많은 무인 탐사선들과 냉전기의 종막과 함께 사그라든 우주 개발 프로젝트, 그리고 지금까지 인류가 밝혀낸 태양계 행성들의 정체, 나아가 이제 막 눈뜬 우주의 신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주에 약 2천억개의 행성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이 광대한 우주에 비하면 우리는 미생물에 가까울 정도로 작고 미미하다.
하지만, 이 작고 미미한 존재가 우주의 크기를 알고있다. 우주에 행성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고있다. 
그게 뭐? 라고 되물을 수도 있을터다.
우주에 나간다고 우리에게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우주에 수천억달러짜리 인공물을 날려보내고,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 오직 한번의 삽질을 위한 수조달러짜리 자동 삽질 기계를 보낸다. 진짜 삽질이다. 오직 단 한번의 삽질.

얼마전, 일본은 혜성에 인공물을 안착시켰다.(https://blog.naver.com/hellodd11/221472586708) 이는 날아가는 탁구공 위에 파리를 앉히는 것만큼 정밀하고 어려운 기술이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일본은 엄청난 국가예산을 투입했다.
이는 생명의 기원을 찾기 위한 연구와 궤를 함께 한다.


'그래서 뭐? 그게 뭐? 알면 뭐???' 라고 되묻는 사람들도 많다.
한쪽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이게 무슨 개똥같은 짓일까?
냉전기,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은 사상대결을 위한 프로파간다로 쓰였으나, 이제 그마저도 끝났다.
우주개발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고, 국가 사업으로서 예산을 따내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최저임금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예산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는 정도니, 만약 혜성의 얼음조각을 채취하는 기술 개발을 위한 예산이 통과될 리 만무하다.
이건 일본도, 미국도,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화성에 끊임없이 탐사 로봇을 보냈다. 유인 실험은 지구 궤도에 떠있는 우주정거장에서만 하고 있지만, 지금 화성의 대지 위에는 총 네기의 로봇이 꿈틀꿈틀 돌아다니고 있다. 작은 구멍을 뚫고, 돌과 모래따위를 채취하고, 염소나 황산 따위를 뿌려보고 있다.


행성을 세어보기 위한 방법들도 고안중이다. 2017년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찾은 행성은 2526개라고 한다. 이것은 백조자리 일부만을 관측한 숫자고, 이를 바탕으로 계산해보면 은하에는 수천억개의 행성이 있다고 한다. 

근데, 이건 우리의 은하에 불과하고,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수천억개가 있다고 한다.
수천억개의 수천억배의 행성이 이 우주에 있는 것이다. 


역시, 또, 그래서? 근데? 그게 뭐??? 라고 되묻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을터다.

근데, 그래서 뭐? 


언젠가 우주에 나가서, 우주적 인간, 즉 '호모 아스트로룸' 으로 진화한다 해도 그건 수천년 후 미래의 일일 것이다.
지금 여기 사는 우리는 도무지 경험해볼 수 없는 미래다.
그 전에 지구가,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을터다. 

어쩌면 우리 인류는 영원히 유년기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와 또 '어디로 가는가?' 와 맥이 닿아있는 질문이다.
그게 밝혀진다고 우리의 삶이 변하지는 않는다.
이건 '알고보니 우리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야?'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기원과 종말과 맞닿아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수천억개의 행성, 수천억년을 가도 갈 수 없는 어딘가.
그리고 그 곳에 있을 지 모르는 생명들, 혹은 그 정도로 고독할 지 모르는 인류.


 인류가 기원전부터 만여년간 1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변한건 있다.
카이사르도, 아우구스투스도, 심지어 예수와 석가모니, 공자와 맹자, 아인슈타인도 페가수스자리 51b 행성이 항성을 4.2일 주기로 공전한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이 행성은 목성만큼 거대한데, 태양을 한바퀴 도는데 4.2일이 걸린다!! 1년이 4.2일인 것이다.
지구와 가장 비슷한 행성은 약 1400광년 떨어진 곳에 존재한다고 한다. 
지름은 지구의 1.6배, 1년은 385일이다. 태양과 아주 비슷한 항성 주위를 돌고 있다. 

목성의 위성 유로파는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이다. 이 단단한 얼음 아래 물이 있다. '갈릴레오 궤도선' 이 관측한 결과다.

지금은 이 수십킬로의 얼음을 뚫고 그 거대한 바다로 들어갈 방법을 고안하는 중이다.(위에 언급한 엄청나게 비싼 삽질이 그것이다.)


2012년 보이저 1호는 35년만에 태양계의 경계선을 넘어 성간 우주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별과 별 사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다.
보이저1호는 약 4만년 간 이 암흑공간을 지나야 다음 별 ; 'AC+79 3888' 이라는 이름이 붙은 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4만년... 

42012년에 보이저 1호는 그 별의 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할 터다.

그 전파가 도착하기까지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이런 상상을 하면 정말로 아득해진다.
왜 나는 이런걸 궁금해할까? 왜 우주로 나가보고 싶을까?
공기원근이 없는 세계. 영원히, 영원히 유영해도 닿을 수 없는 그 언저리를 왜 보고 싶을까?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거라고.
그게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아니,
내 삶이 뭐라고.
내 존재가 뭐라고.
'내' 가 뭐라고. 


우리 어머니는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이지만, 이 영혼이 우주를 유영할 수 있을거라고 믿으신다. 


기독교인도 아니고 영혼의 존재도 거의 믿지 않는 나도 , 그랬으면 좋겠다면서 조금 덧붙였다.

우주를 가득 메우고 있는 암흑물질들이 사실은 온갖 생명체들의 영혼들이었으면 좋겠다.

우주가 자꾸자꾸 팽창하는게, 영혼들이 자꾸자꾸 우주에 나가서였으면 좋겠다.

맨눈으로 보면 보이지 않지만, 죽은 것 같은 이천억개의 행성들에 다종다양한 생명의 영혼들이 바글바글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육신을 버리면 그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으면. 우주의 끝까지, 이백억년간 유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아득함을 털어내기 위해, 나는 헬스장으로 가련다.
하찮은 몸뚱이 안에, 티끌보다 작은 근세포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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