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국의 연대기 - 전쟁, 전략, 은밀한 확장에 대하여 걸작 논픽션 19
대니얼 임머바르 지음, 김현정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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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19년에 미국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다는 카피와, 미국인들도 제대로 몰랐던 미국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라는 책 설명에,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더랬다. 다소 의심스러웠던 마음으로 책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서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럴 만 했겠다' 싶었다.


책의 서문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이미지. '로고 지도' 와 미국의 현재 실제 영토의 지도를 비교해준다.

 


(미리보기에서 가져온 바로 그 페이지)

이 페이지를 보는 순간, 나는 다소 충격을 받았더랬다. 

미국령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알래스카와 하와이도 잘 알고 있고, 괌, 푸에르토리코 같은 미국령, 그리고 필리핀처럼 한때 미국령이었던 지명들도 알고 있었지만, 미국이 의도적으로 미국 본토만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도 이 대목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이미지가 작아 아래 글씨들은 잘 안보일지 모르지만, 저자는 꽤 도발적으로 주장을 펼쳐내고 있다. 문장과 단어들은 매우 적확하고, 매우 깔끔하게 읽힌다. 어학 실력은 형편없어서 번역까지 지적할 깜냥은 안되므로 그 부분은 패스하고... 오역으로 느껴졌던 부분이 두어문장 있었던 것 같은데, 워낙 방대한 볼륨의 책이라 단순 실수로 보이는 지점들이었다. 주석과 감사의 말을 빼면 590페이지다. 


다양한 국가와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저자는 의도적으로 매우 유명한 사건과, 매우 유명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논지를 펼쳐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찾아들었던 이유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의 미국의 활약에 대한 의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록적으로 보자면, 미국은 1770년대 중 후반에 정부가 성립되었다.

하지만, 초기의 미국 정부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에 난리도 아니었다. 워낙 넓은 땅에 다양한 유럽 출신 유지들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긴 했지만, 많은 부분에 여전히 깊은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바로 1810년대엔 영국과 캐나다 연합 군대에게 워싱턴이 털린적도 있었고, 1860년대엔 남북전쟁도 있었다. 이 전쟁이 수습된지 50여년 후.

미국은 어떻게 유럽에 참전할 수 있을 정도로, 아니 참전할 정도가 아니라 전쟁을 끝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 지점이 꽤나 궁금했다.


 초반에는 바로 그 시점. 특히 루스벨트가 서부를 누비던 시기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백인우월주의를 바탕으로 금광이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땅을 흡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첫번째 위기는 산업화와 영토 확장으로 인한 폭발적인 인구증가에서 비롯됐다. 멜서스는 이런 속도로 인구가 증가한다면 식량 생산을 앞질러서 "인류는 때 이른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농업 방식이 오래 지속되려면 질소의 순환을 관리하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지혜를 바탕으로 순환 작물을 통해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쌓아야 충족되는 것인데, 산업화로 인한 도시화가 이러한 순환주기를 깨뜨렸던 것이다. 19세기 미국 동부의 농가들은 타격을 받았다. 에이커당 작물의 생산률이 반 이하로 급감한 것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연구 끝에 페루 연안의 친차 제도에서 서식하는 가마우지, 얼가니새 및 펠리컨에게서 나오는 질산이 풍부한 똥, 즉 해조분이었다. 

 당시 이러한 해조분은 다른 모든 것처럼 영국이 독점하고 있었고, 미국은 해조분이 쌓여있을 태평양의 무인도들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미국이 발견한 그런 무인도들은 점유권을 주장하고, 그 독한 해조분들을 채취하는 일은 대부분 흑인들이 투입됐다. 너무나 척박하고 괴로운 환경 속에서 일꾼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면서 미국은 비로소 해외 영토에 대한 법적, 전략적 개념을 획득하게 된다. "새똥이 널려 있는 바위와 섬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지간에 그곳은 결국 미국의 일부였다." 수십년 후, 이 곳들은 비행장 건설에도 적합한 곳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많은 미국의 해외 영토들이 어떻게든 연방으로 편입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얼핏, 로마 제국 말기, 시민권을 얻기 위한 시칠리아 동맹시들과의 갈등이 떠오르기도 했다. 새삼, 미국 사람들이 로마 역사에 열광하는 이유도 이해하게 됐다.

 

 사실 이 책이 더 강조하는 부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으로 재편된 세계에 관한 부분이다. 

미국이 푸에르토리코를 차지해야 했던 이유, 괌, 사모아 제도, 하와이, 미드웨이 환초 등 태평양의 섬들을 가져야 했던 이유. 

나아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동남아의 필리핀을 차지해야 했던 이유와, 일본에게 빼앗긴 이후, 다시 되찾는 과정. 그리고 이후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필리핀의 노력. 더글러스 맥아더가 필리핀에서 성장했고, 필리핀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터다. 독립을 추구하지만, 독립할 수 없었던 푸에르토리코의 경제적, 현실적인 고민,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필리핀을 독립시키고, 초토화시킨 일본을 점령하지 않았던 이유.  미국 상원의원에서 벌어진 제국주의와 반식민주의의 치열한 대립, 

그리고 전 세계에 산적해있는 약 800여개의 미군부대로 나아간다.

이란, 이라크 전쟁과 걸프전, 그리고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세인과 오사마 빈 라덴. 

그리고 세계에서 모국어로 쓰는 빈도는 두번째이지만, 제2외국어로는 가장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 언어, '영어'를 위한 치밀한 전략.

그 실패의 잔재들과, 전략 밖에서의 뜻밖의 승리. 


대충 생각나는 것만 짧게 담아내기엔 너무너무 많은 내용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얽히고 설키면서 정신없이 펼쳐진다.


올 한해, 아니 최근 몇년간 읽은 인문, 역사서중 가장 쉽고 재미있게, 술술 읽히면서도 익히 알려진 유명한 사건들 이면의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사산에서 시작된 '국제 표준'에 관한 치열한 외교전이라거나 고무를 개발하는 과정 등등은 결국 전쟁이 아니었으면 쟁취하지 못했을 편리함이라는 사실에서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기사, 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어야 잠재력을 발휘하는 법이기도 하니까...

미국은 일본의 침공이라는 역사적 위기 앞에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했고, 그 결과 영국, 독일보다도 빠르게 화공학, 원자물리학 분야에서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 


결국 식민지의 필요성은 전쟁 수행 능력과 결부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불법 침략하고, 타이완, 싱가포르, 필리핀 등을 침공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원자재를 조달하고, 병참선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미국도 태평양의 섬들이, 필리핀이 필요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항공모함과 비행기의 발달로 '영토' 의 필요성은 점차 약해져갔다. 미드웨이와 괌이 중요했던 이유,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아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항공기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영토를 점령하지 않는 대신, 곳곳에 미군 기지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제국주의가 변화하기에 좋은 구실이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세웠던 기지들을 철수하는 대신, 부지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지배 방식을 변환시켰다. 오키나와의 미군부대는 하나의 커다란 예시였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오키나와를 점령했었다. 1970년 일본의 시위대가 폭동을 일으켜 미군부대로 쳐들어간 2년 뒤, 오키나와를 반환했지만 그 후에도 미군부대는 여전히 상주해있다. 미군부대는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주민들이 미군부대의 철수를 요구하지만, 그들 중 태반은 미군부대를 통해 일상을 유지한다. 철수와 유지에 대한 찬반 비율은 미묘하다. 심지어, 초토화되었던 일본의 산업과 경제가 일어선 계기는 미국의 군수품 조달을 통해서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대규모 군수품 조달을 일본에 맡겼다. 도요타는 한국전 직전 회사 규모를 축소할 정도로 상태가 안좋았고, 일본중앙은행은 '신의 도움' 이라고 할 정도로 산업 전반이 일어서는데 도움을 줬다.

무엇보다, 일본이 미국이 세운 국제표준에 적응할 시간을 줬다. 


이러한 현상은 미군부대가 상주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동등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오사마 빈 라덴의 집안도 미군의 사업을 수주하는 업체였고, 오사마 빈 라덴 본인도 미군들의 휴양시설을 짓는 사업에 성공하기도 했다.

세계 각지에 퍼져가는 미군부대는 번영과 증오를 함께 퍼뜨리고 있다. 무려 800여 곳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점묘 제국주의" 라고 표현했다. 다소 도발적이고 신선한 내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적이지 않은 책은 아니다. 미국의 관점에서, 왜 세계는 미국을 증오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자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제국주의" 라는 개념 안에 여러가지 것들을 억지럽지 않게, 논리적으로 끼워 맞춰내는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무척 인상적인 마지막 한 페이지를 옮겨본다.


" 이상하게도 미국은 제국주의라는 비난에 자주 시달렸으나 영토 차원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미국을 로고 지도로 나타내기 위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나머지, 제국을 부르짖으며 열렬히 비판하는 전문가들조차 해외 영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확장된 미국 영토의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영토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식민지나 기지 근처에 사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 중요한 문제다. 미국 입장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영토에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은 군기지에서 시작됐다. 피임약, 화학요법, 플라스틱, 고질라, 비틀스, 초원의 집, 이란-콘트라, 트랜지스터라디오, 미국이라는 이름 자체에 이르기까지 영토 제국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들의 역사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영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식민주의는 정체적 배경에서 그 존재가 가장 두드러진다. 매케인, 페일런, 오바마 그리고 트럼프는 모두 식민주의의 영향을 받아왔다. 이는 이상하고도 놀라운 사실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놀라움을 뛰어넘어 미국의 역사는 제국의 역사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p.590


저자는 결국 제국주의 시대에 흩어진 미군부대가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문명에 영향을 줬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다. 현재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아이돌 음악도 결국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밴드, 그룹, 댄서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군 부대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이 머리맡에 있다는 점을 빼고라도, 미국이 결코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지 않으리라는 명백한 이유가 이 책에 잘 서술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북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방어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국으로서의 미국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최소한의 깃발.

그것이 미군 기지이다. 


이 리뷰를 정리하는 동안, 또 미군 기지로 인해 시끌시끌하다.

미군이 순환 배치와 전략적 유연성을 갖추려 한다는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미군이 한국에서 기지를 철수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미군 군인의 물리적인 숫자를 줄일 수는 있다. 이 책에도 언급되는데, 더이상 보병의 '쪽수' 는 그다지 중요한 전략적 개념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기지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상주인구가 있어야 하고, 기지가 설치되어 있는 국가, 지역, 주민들의 성격에 맞춰 재편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이라기보다, 미국의 지배 전략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또 크게 나뉜다.

미군들의 비행을 보도하며 반미감정을 증폭시키면서도, 미군이 쪽수를 감축할까봐 호들갑을 떤다. 

이 책이 예로 든 다른 나라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 안에 묶여있는 식민지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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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아스트로룸 - 인류가 여행한 1천억분의 8
오노 마사히로 지음, 이인호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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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억 광년.
빛의 속도로 200억년을 달려야 한다.
우주의 끝에 도달하려면 말이다. 우주는 아직도 팽창하고 있으므로, 빛의 속도로 200억년 달려가도, 200억년동안 팽창한 만큼 더 달려가야 할 것이다. 사실, '광년' 이라는 단위가 '천문단위(1.496*108km)' 가 쓰이고 있지만, 아무래도 내가 배우던 시절엔 '광년' 을 많이 써서, 아직 그게 익숙하다. (다행히 이 책에도 광년이 쓰인다.)
200억 광년이라니...
너무 까마득하다.


우리가 사는 태양계 안으로 좁혀보자.
태양으로부터 가장 먼 해왕성까지가 약 100광년이다. 물론, 우리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은 태양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고, 그 궤도는 매번 약간씩 변화하는 타원이기 때문에 거리를 아주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다.
다만, 공학적인 계산을 통해 어느정도 유추할 뿐이다. 빛의 속도도 사실 크게 와닿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태양계 안 행성들을 시속 300킬로미터의 고속열차로 소개하고 있다.
지구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달까지는 53일 걸린다. 금성까지는 16년, 화성까지는 28년, 수성까지는 35년, 태양까지는 57년, 목성까지는 240년, 토성까지는 480년, 천왕성까지는 1000년, 해왕성까지는 1700년....
태양과 가장 가까운 프록시마켄타우리까지는 1500만 년이 걸린다. " (p.093)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지구 밖 행성에 내딛은 인류의 첫발.

이제 막 인류의 유년기가 시작됐다.


'과학소설의 아버지' 쥘 베른으로 운을 띄운 이 책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로켓 개발을 주도했던 독일의 과학자 헤르만 오베르트를 시작으로 미국으로 넘어가 인공위성과 달 착륙선 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한 폰 브라운, 세계 최초로 지구 궤도에 인공위성을 안착시킨 소련의 코롤료프와 존 후볼트와 마거릿 해밀턴을 비롯한 수많은 나사 직원들을 거쳐 달에 첫 발을 내딛으며 도입부를 마무리한다.
달로 유인 로켓을 보내는 것은 1972년으로 끝나게 된 이유,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기 위해 시도되는 수많은 무인 탐사선들과 냉전기의 종막과 함께 사그라든 우주 개발 프로젝트, 그리고 지금까지 인류가 밝혀낸 태양계 행성들의 정체, 나아가 이제 막 눈뜬 우주의 신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주에 약 2천억개의 행성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이 광대한 우주에 비하면 우리는 미생물에 가까울 정도로 작고 미미하다.
하지만, 이 작고 미미한 존재가 우주의 크기를 알고있다. 우주에 행성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고있다. 
그게 뭐? 라고 되물을 수도 있을터다.
우주에 나간다고 우리에게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우주에 수천억달러짜리 인공물을 날려보내고,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 오직 한번의 삽질을 위한 수조달러짜리 자동 삽질 기계를 보낸다. 진짜 삽질이다. 오직 단 한번의 삽질.

얼마전, 일본은 혜성에 인공물을 안착시켰다.(https://blog.naver.com/hellodd11/221472586708) 이는 날아가는 탁구공 위에 파리를 앉히는 것만큼 정밀하고 어려운 기술이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일본은 엄청난 국가예산을 투입했다.
이는 생명의 기원을 찾기 위한 연구와 궤를 함께 한다.


'그래서 뭐? 그게 뭐? 알면 뭐???' 라고 되묻는 사람들도 많다.
한쪽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이게 무슨 개똥같은 짓일까?
냉전기,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은 사상대결을 위한 프로파간다로 쓰였으나, 이제 그마저도 끝났다.
우주개발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고, 국가 사업으로서 예산을 따내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최저임금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예산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는 정도니, 만약 혜성의 얼음조각을 채취하는 기술 개발을 위한 예산이 통과될 리 만무하다.
이건 일본도, 미국도,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화성에 끊임없이 탐사 로봇을 보냈다. 유인 실험은 지구 궤도에 떠있는 우주정거장에서만 하고 있지만, 지금 화성의 대지 위에는 총 네기의 로봇이 꿈틀꿈틀 돌아다니고 있다. 작은 구멍을 뚫고, 돌과 모래따위를 채취하고, 염소나 황산 따위를 뿌려보고 있다.


행성을 세어보기 위한 방법들도 고안중이다. 2017년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찾은 행성은 2526개라고 한다. 이것은 백조자리 일부만을 관측한 숫자고, 이를 바탕으로 계산해보면 은하에는 수천억개의 행성이 있다고 한다. 

근데, 이건 우리의 은하에 불과하고,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수천억개가 있다고 한다.
수천억개의 수천억배의 행성이 이 우주에 있는 것이다. 


역시, 또, 그래서? 근데? 그게 뭐??? 라고 되묻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을터다.

근데, 그래서 뭐? 


언젠가 우주에 나가서, 우주적 인간, 즉 '호모 아스트로룸' 으로 진화한다 해도 그건 수천년 후 미래의 일일 것이다.
지금 여기 사는 우리는 도무지 경험해볼 수 없는 미래다.
그 전에 지구가,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을터다. 

어쩌면 우리 인류는 영원히 유년기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와 또 '어디로 가는가?' 와 맥이 닿아있는 질문이다.
그게 밝혀진다고 우리의 삶이 변하지는 않는다.
이건 '알고보니 우리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야?'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기원과 종말과 맞닿아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수천억개의 행성, 수천억년을 가도 갈 수 없는 어딘가.
그리고 그 곳에 있을 지 모르는 생명들, 혹은 그 정도로 고독할 지 모르는 인류.


 인류가 기원전부터 만여년간 1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변한건 있다.
카이사르도, 아우구스투스도, 심지어 예수와 석가모니, 공자와 맹자, 아인슈타인도 페가수스자리 51b 행성이 항성을 4.2일 주기로 공전한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이 행성은 목성만큼 거대한데, 태양을 한바퀴 도는데 4.2일이 걸린다!! 1년이 4.2일인 것이다.
지구와 가장 비슷한 행성은 약 1400광년 떨어진 곳에 존재한다고 한다. 
지름은 지구의 1.6배, 1년은 385일이다. 태양과 아주 비슷한 항성 주위를 돌고 있다. 

목성의 위성 유로파는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이다. 이 단단한 얼음 아래 물이 있다. '갈릴레오 궤도선' 이 관측한 결과다.

지금은 이 수십킬로의 얼음을 뚫고 그 거대한 바다로 들어갈 방법을 고안하는 중이다.(위에 언급한 엄청나게 비싼 삽질이 그것이다.)


2012년 보이저 1호는 35년만에 태양계의 경계선을 넘어 성간 우주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별과 별 사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다.
보이저1호는 약 4만년 간 이 암흑공간을 지나야 다음 별 ; 'AC+79 3888' 이라는 이름이 붙은 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4만년... 

42012년에 보이저 1호는 그 별의 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할 터다.

그 전파가 도착하기까지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이런 상상을 하면 정말로 아득해진다.
왜 나는 이런걸 궁금해할까? 왜 우주로 나가보고 싶을까?
공기원근이 없는 세계. 영원히, 영원히 유영해도 닿을 수 없는 그 언저리를 왜 보고 싶을까?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거라고.
그게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아니,
내 삶이 뭐라고.
내 존재가 뭐라고.
'내' 가 뭐라고. 


우리 어머니는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이지만, 이 영혼이 우주를 유영할 수 있을거라고 믿으신다. 


기독교인도 아니고 영혼의 존재도 거의 믿지 않는 나도 , 그랬으면 좋겠다면서 조금 덧붙였다.

우주를 가득 메우고 있는 암흑물질들이 사실은 온갖 생명체들의 영혼들이었으면 좋겠다.

우주가 자꾸자꾸 팽창하는게, 영혼들이 자꾸자꾸 우주에 나가서였으면 좋겠다.

맨눈으로 보면 보이지 않지만, 죽은 것 같은 이천억개의 행성들에 다종다양한 생명의 영혼들이 바글바글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육신을 버리면 그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으면. 우주의 끝까지, 이백억년간 유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아득함을 털어내기 위해, 나는 헬스장으로 가련다.
하찮은 몸뚱이 안에, 티끌보다 작은 근세포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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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한국 건축 - 프랑스 건축가 25인의 한국 현대건축 여행
강민희 지음, 안청 그림 / 아트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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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파리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중인 저자가 '일드프랑스 건축협회' 라는 곳의 지원을 받아 한국으로 건축답사를 떠나는 내용의 책이다. 대상자가 현대의 건축가들이라 전통 양식의 건물들은 가급적 배제하고, 현대 건축가들의 건물들을 주요 답사지로 선정했다.


아무래도, 나 역시 만화를 하는 사람으로 무협,사극에 대한 꿈이 있는지라 한국의 전통 가옥이나 건물에 대한 책들은 화집으로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국내에 있는 현대 건축물만을 찾아다녔다는 점이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사실 건축이라는 장르에 문외한이라 안도 다다오나 DDP로 처음 알게 된 자하 하디드 정도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 그들의 작품을 눈으로 확인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의 건물이 꽤 있다는 사실조차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떤 작품들은 제주도의 모 리조트 한 면을 다 차지하고 있고, 서울 중심부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상상 초월의 공법을 사용해 만든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고, 가끔 파주 출판단지에 가면 신기하게 바라보는 미메시스 아트뮤지엄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사실도 다 처음 알았다. @.@ 

그리고, 국내에도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가들이 꽤 많다는 사실도.    


건물은 단지 우리가 몸을 누이고 잠자는 공간이 아니다.

도시에 살고 있는 나는 삶의 99.999999%를 건축물에 둘러쌓인 채 살다 죽을 것이다.

그 규모나 재료가 뭐든간에, 네모난 공간에서, 네모난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의 연속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이동하는 길이나 지하도도 모두 건축의 일부분이다. 

이런 생각은 비단 현대인들 만의 것은 아니다.

이미 수세기 전, 기원전 시대의 사람들조차 그 사실을 알고, 인지했다.

습기와 병충해, 맹수들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서 인간의 삶이 바뀌었다.

'생존하는 삶' 에서 안락함을 '누리는 삶' 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생존은 기본이고, 생존의 내용이 중요해진 것이다.

나아가, 건축물은 인간보다 오랜 시간을 이겨내는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도 획득한다.

게다가 2020년이 코앞인 현대에는 도시 '생태계' 를 이루는 나무나 산과 같다. 

우리 조상들은 풍수지리를 철칙처럼 믿으며 자연과 병존하는 건축을 추구했다. 외려 근현대에 접어들어 자연을 마구 훼손하는 건축을 추구했다가, 요즘은 다시 자연과 병존하는 방식을 고민중이다. 도시는 더이상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 책 안에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건물들을 답사한 건축가들의 감상이 적혀있다.

특히 DDP를 다룬 대목이 눈에 간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말들이 오갔는지 확실히 기억한다.

정쟁의 요소로 쓰이기도 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한국 건축가들에게 조언을 구할 때마다 답사 목록에 외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 왜 이렇게 많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MA(일드프랑스 건축협회)와 프로그램을 상의할 때는 그것이 전혀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는데, 한국 사람들은 열이면 열 고궁이나 절 등 좀더 한국적인 건축물을 답사 프로그램에 넣고 한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을 더 많이 소개하라는 얘기를 했다. 그 점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이 달랐을 뿐이다. "


 사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기껏 외국 건축가들을 한국에 초청해서, 왜 그 나라 건축가들의 작품을 보여줘?? 

외국인들이 한국의 절과 고궁을 보면서, '우와 조선 쩔어, 고려 쩔어' 하는거 보고싶어!!! 


"어떤 이가 설계를 했는지 상관없이 지금 서울을 구성하고 있는 현대 건축물 중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겼고 그것을 이 여행의 원칙으로 삼았다." 


그렇지, 어차피 이 사람들은 건축을 '업' 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지금도 활발히'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현대' 의 환경 안에서 현대의 건축물들이 어떠한 모양으로, 어떠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건축엔 국적도, 인종도, 성별도 없다.


"파리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루브르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는 중국계 미국인 L.M 페이가 설계했고, 퐁피두 센터는 영국과 이탈리아 건축가의 합작품이다. 라데팡스의 신개선문은 덴마크의 건축가 요한 오토 폰 스프레켈센이 디자인했다. 다른 나라 출신의 건축가들이 작업을 이끌었지만, 이것들은 엄연히 파리의 것이며 파리 시민의 자산이다."


"도시는 거대한 유기체다. 무엇이 어떻게 뒤섞일지 알 수 없는 용광로다. 

설계자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서울의 건축이 서울의 것이 아니라는 시선은 버려야 한다.

DDP도 마찬가지다. 이 낯선 공간도 결국 우리의 것이란 이야기다."

 p. 107  



문득, 어떤 건축가분이 조선총독부를 헐어버린 일을 아쉬워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민족의 자긍심에 상처를 낸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 도시의 중요한 역사 하나를 없애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나는 조선 총독부 건물이 국립 중앙 박물관이던 시절 정말 많이 갔었고, 아주 많이 봤더랬지만, 우리 이후의 세대들은 그런 건축물이 있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민족적 자긍심은 그런 것으로 쉽게 무너지지도, 세워지지도 않는 것인데.


이 책은 DDP가 완공되기 전, 천문학적 건설비용과 그 기묘한 외관에 비판적인 기사들이 매우 많은 시기에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그런 반발들을 이해하면서도 아쉬워했다. 그 와중에도, DDP안에 유적들을 보존하려는 모습들을 인상적으로 본 외국 동료들의 이야기를 싣기도 했다. 

이 뿐 아니라, 가깝게는 인사동 쌈지길과 복개된 청계천, 이화여대 서울캠퍼스부터 멀게는 한탄강 전곡선사박물관과 바다건너 제주도 돌 박물관까지 수많은 현대적인 건축들이 우리 땅 위에서 살아 움트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땅 위에서, 내 땅에서 나는 재료로 만들어진 건축물조차도 외국인이 설계한 건물, 한국인이 설계한 건물을 나누고 있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외국 설계사가 설계했다고, 그걸 그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뚝딱뚝딱 망치질 하는게 아니다.

외국 건축 사무소와 국내 건축 사무소가 긴밀한 파트너쉽 아래서 작업을 한다.

토질, 주변환경, 재료수급 등 실제로 '짓는' 일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인부 한명까지 다 우리나라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아니, 그리고 누가와서 누가 지었던들.

그 곳에 살고 있는 내가 주인이고, 내 삶의 공간인데.

이미 만들고 떠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알게 뭐람!!!

게다가 수년, 수십년 전 사람인데!!! 


다만, 이 집을 지은 사람의 마음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

어떤 마음으로 이 방향에 창을 냈고, 어떤 마음으로 이 기둥을 세웠고, 어떤 마음으로 이벽을 발랐을지.

그 어떤 창보다 많은 햇살이 들어오길, 그 어떤 기둥보다 튼튼하길, 그 어떤 벽보다 단단하게 버텨주길. 

건축들은 그래서, 우리 삶의 일부분일 수 밖에 없다.

그 어떤 생태계보다, 도시 생태계가 우리와 밀접한 이유다.


[휴먼 에이지] 에서 저자인 다이앤 애커먼은 '인류세'  인류sms '도시종' 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인류의 절반이 넘는 35억명이 도시에 몰려 있다. 2050년이면 도시가 세계 인구의 70퍼센트를 홀리리라고 내다본다. 이 추세는 밤하늘의 달처럼 엄연하고 산사태처럼 막기 힘들다. 2005년에서 2013년 사이에 중국의 도시 인구는 13퍼센트에서 40퍼센트로 치솟았다.(...) 이 추세라면 2030년에는 중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서 살 것이다. 

(...) 

영국은 1950년 무렵에는 바둑판처럼 배열된 도시들이 인구의 79퍼센트를 품게 되었다. 도시 거주자 비율이 92퍼센트에 달할 2030년이면 영국은 진정한 도시형 국가가 되어, 그보다 할 발 앞서 그렇게 변한 다른 나라들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이미 인구의 90퍼센트가 도시에서 살고, 독일은 88퍼센트가, 프랑스는 78퍼센트가,'


이 줄줄이 통계의 바로 다음에 한국이 나온다.


'한국은 80퍼센트가 그렇다.' 

([휴먼 에이지] p.105)


우리나라는 이미 80퍼센트가 도시에 산다!!

이제 지구는 오직 자연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자연 생태계 뿐 아니라, 자연을 인간의 생활권 안으로 끌어들인 도시와 병존하고있다. 바야흐로 도시 생태계의 정착이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건축이 있다. 건물이 있다.

이러한 고민은 문명을 선도하는 소위 '선진국' 에서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전용되고 있다.

지하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운동에너지)과 발산하는 열에너지로부터 전기를 생산하는 건물이 있고, 그 어떤 에어 컨디셔너 없이 오직 건물의 구조만으로 공기의 흐름을 조정해서 쾌적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건물들도 있다. 건물의 외장재 대신 거대한 수풀을 옷처럼 둘러입은 건물들은 도시 생태계의 중요한 테마다. 태양에너지와 바람에너지는 이미 정착되어 있는 발상이다! 

건축가들은 오직 예술적인, 또는 기능적인 면만 보지 않는다.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기능적인 효율성은 물론, 도시의 역사성과 도시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습관은 물론, 도시 생태계의 원활한 사이클을 살핀다. 

 

참 절묘한 타이밍에 두 책이 얽혔다.

거의 두달간 천천히 곱씹으며 읽고 있는 '휴먼 에이지' 에 끼어든 [봉주르 한국 건축].

[봉주르 한국 건축] 에서 소개하는 우리나라의 건축물 중 한국인이 설계한 건축물은 몇 안된다.

하지만, 모든 건축물은 한국에서 건설되었고, 거의 모든 재료들은 한국에서 나왔고, 거의 모든 건축자들은 한국인이었을 것이다. '거의'의 나머지는 외국인 노동자겠지. 그럼,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이 높으면, 그건 외국인이 지은 건물일까? 

'쌈지길' 을 품고 있는 인사동 거리 재정비 사업,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청계천 정비 공사, 동대문 운동장 터에 내려앉은 번득이는 곡선의 DDP. 우리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공 건축들은 과연 서울의 도시 생태계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는가? 


'건축물'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만 보아도, 이 거대한 예술품에 정신을 내려놓을 곳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자연을 이기고도 살아남을 우리의 흔적. 문명의 조각. 그 안에 녹여내는 작가의 메시지.


아, 그러고보니, '러브*데스*로봇' 이라는 넷플릭스의 단편 애니메이션 모둠에 비슷한 작품이 있었다.

지구를 넘어 대기권도 넘는 행성급 규모의 설치미술!! 지구만한 캔버스라면, 그것은 회화일까, 건축일까??  


단순히 상상만을 넘어 공학적 설계를 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반드시 협업을 할 수 밖에 없는 장르.

건축. 


새삼, 건축의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더불어, 여행이라곤 1도 관심없는 내가 이 책을 한 권 들고 우리나라 각지를 여행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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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5 : 춘추에서 전국까지 이중톈 중국사 5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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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춘추전국시대' 라고 뭉뚱그려 배웠던 기억이 있다. 

춘추와 전국은 우리도 열심히 외웠던 '하. 은. 주. 진. 한...' 중, '주' 에 속해있는 시기다.

진시황이 출현하기 전까지의 그 시간들은 '춘추전국시대' 라고 배웠다.

하지만, 춘추와 전국은 완전히 분리된 시대였다.

애초에 시대정신 자체가 달랐고, 국가의 개념 자체가 달랐다. 

주는 수도가 변한 시기에 따라 서주시대와 동주시대로 나뉘는데, 춘추와 전국은 동주에 속한다. 


우선, 춘추시대에는 한명의 왕과, 수많은 제후들이 있었다.

봉건사회였다. 이를 '방국邦國제도' 라 한다.

천자가 제후를 임명하고 영지를 하사한다. 제후는 대부를 임명해 영지를 다스렸다. 

즉, 천하를 여러개로 갈라 제후들에게 분봉했다. 그래서 세워진 것이 '국國'  방국이다. 제후들은 그 방국을 여러개로 갈라 대부들에게 분봉했다. 그래서 세워진 것이 '가家'. 채읍采邑 이다. 이것이 바로 봉건이었다.

봉건의 결과로 천하, 국, 가가 생겨났다.

가와 국이 합쳐진 것이 방국이며, 방국들이 합쳐진 것이 천하였다.

천자 자신도 하나의 방국을 갖고 있었는데, 가장 높은 등급의 방국, '왕국' 이었다.

나머지 방국들은 다스리는 제후의 작위에 따라 공公국, 후侯국, 백伯국, 자子국, 남男국 이었다. 

가신이 대부를 떠받들고, 대부가 제후를 떠받들며, 제후가 천자를 떠받든다.

춘추 시대엔 왕이 오직 한명이었다. 전국시대와 가장 큰 차이가 이것이다. 


봉건제는 모든 제후들이 힘이 대등해야하고 그 제후들을 다스리는 군주, 왕의 힘이 가장 강한 상태로 균형을 이루어야 유지되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 방국들의 세력 균형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바로 이 시기에 철기 농기구가 발명, 보급됐다. 농지의 계획적인 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농경정책에 따라 지역별 채산성이 크게 달라졌다.   
독립채산 시스템이었던 방국들은 제후와 대부의 역량에 따라 경제력이 크게 차이나기 시작했고, 군사력과 결부되었다. 

공자가 쓴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 의 원년은 기원전 770년.  노魯 은공隱公 원년이다.

이 책에서는 정鄭 장공莊 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생모와, 동생과 왕권 다툼을 했던 이야기다. 이를 통해 춘추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대표적으로 알 수 있다. 

정 장공은 어머니와 동생의 쿠데타를 진압해냈지만, 전국 각지에서 군주 시해사건이 일어난다. 
위, 노, 송에서 차례로 내란이 일어났고, 이 나라의 군주들은 정 장공과 달리 유명을 달리했다. 


진은 이미 여러 갈래로 쪼개져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었고, 위, 노, 송은 내란으로 인해 내정이 피폐해 있었다.

반면, 정 장공은 어머니와 동생을 제압하고 강력한 권위를 손에 넣었, 주나라의 왕. 천하의 유일한 왕인 천자, 주 환왕은 상황을 오판했다.

정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주나라였지만, 주 환왕은 계속해서 정나라를 자극했다. 


결국 정 장공도 참지 못하고 제후로서의 예의를 지키지 않자, 주 환왕은 춘추시대 최초이자 최후의 친정을 감행했다.

진, 채, 위와 연합군을 구성하여 기세좋게 정나라로 침공했지만, 오히려 정나라에게 대패하고 만다.   

그래도 이 시기엔 천자를 위하는 '척' 했다. '존왕양이' 의 기치를 내걸었고, 주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주 환왕에게 상처를 입혔던 정 장공은 그를 생포하기는 커녕,  후퇴하는 적을 쫓지 않고, 오히려 제신들을 보내 적군을 위문했다.

이것이 '화하', 즉, 문명국의 도리였다.

비록 전쟁을 치르긴 했으나 주나라와 정나라는 엄연한 군신관계. 군주에게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하게 해준 것이다. 

이 전쟁으로 시대가 크게 바뀌었다. 군주국가. 천자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

춘추시대의 핵심은 제후들이 천자를 끼고 방국들을 호령하고자 하는 '패업' 이었다.

패업으로 나가는 길은 '패도', 패업을 이뤄낸 제후는 '패주' 였다. 
춘추는 패도와 패업, 패주의 시대였다. 


춘추에 기록된 약 370여년간 패업을 이룬 패주들은 한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를 '춘추오패' 라고 한다.

제 환공과 진 문공, 초 장왕은 어느 설에서도 빠진 적 없는 패주였고, [순자],[왕패] 등에서는 오왕 합려, 월왕 구천을 을 더하고, [풍속통], [오백] 에서는 송 양공, 진 목공 을 더한다. 역대로 다양한 견해가 있어왔다고 한다.

이중톈은 이러한 경향을 '삼황, 오제, 삼왕, 오패, 이런식으로 3과 5의 짝을 맞추려는' 다소 억지스런 견해라고 주장한다. 

송 양공은 명예에 금이 가고, 결국 전쟁터에서 부상당해 죽은 인물이고, 오왕 합려와 월왕 구천은 춘추시대 말기에 활약한데다 지방에 치우쳐 있었기에 제 환공과 진 문공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엔 적잖은 간극이 있다. 
수십년에 달한다. 적은 간극이 아니다. 로마 공화정의 전환기랄 수 있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에서부터 카이사르의 죽음까지는 고작 70년에 불과했으니.  다만, 사료가 부족하여 그 사이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중톈은 춘추 시대를 "팔씨름으로 영역 다툼을 하고 동생이 많은 자가 큰형님이 되는 식" 이라고 표현했다.

패업과 패주에 대한 가장 재미있고도 간명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춘추 시대의 전쟁은 스포츠 경기와 흡사해서 외교적인 예의와 게임의 규칙을 중시했다." 
사신을 죽이지 않고, 부상자를 제외시키고, 상대가 진용을 갖추기 전에 공격하지 않고, 도망치는 상대를 쫓지 않고, 나이많은 병사는 포로로 붙잡지 않고 풀어줬다고 한다. 제후들의 전쟁은 힘을 과시하여 다른 방국들을 '동생으로' 삼는 것이었다. 많은 동생을 거느린 큰 형님이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당연히 대규모의 양민 학살은 커녕, 궤멸수준의 군인 학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전쟁의 목적이 부를 약탈하고 세력을 확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춘추 시대 초기엔 가장 비열한 짓으로 여겨지던 행위였다. 이런 식의 과시는 패업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패주로 인정받지 못했다. 비열한 군주는 비열한 부하에 의해 쫓겨나기도 했으나, 춘추 시대 말기에 이르러 100여개에 달하던 나라들이 20여개로 줄어들었다. 전국 시대로 가는 과정이었다. 대국들이 소국들에 독립권을 주고 단순히 '관리' 하던 시기는 지났다. 그야말로 약육강식. 약한 국가는 강한 국가에 먹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자는 국가의 형태는 오직 두가지라고 봤다. 

하나의 도시를 거점으로 삼은 '도시국가'와 여러개의 도시를 거느린 '영토국가'다.

이 관점에서 "춘추시대는 도시국가와 영토국가가 병존하던 시기였다."

패권국들은 영토국가였고, 나중에 그들에 병합된 소국들은 도시국가였다. 

하지만, 전국시대엔 그런 소국들이 없었다.

대국들이 작은 도시국가들 뿐 아니라 중간 크기의 영토국가를 합병하거나 위성국가로 거느렸다. 정나라는 한나라에게 멸망당하고, 위나라는 꼭두각시 국가가 되었다. 

화하에 속하지 않았던 '만이' 의 국가였던 초나라는 동주 시대에 이미 왕이라고 칭했지만, 전국 시대에 접어들자 북방의 나라들이 줄줄이 왕이라 칭했다. 결국 전국 시대가 3분의 1쯤 경과하자 공국 전체가 왕국이 되었다. 

  이제 천자의 제후국, 방국이 아니라 독립 왕국이 되었다. 

주나라는 쇠퇴를 거듭해 두개의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더이상 왕이라 칭하지도 못했다. 만이였던 초나라는 존왕양이조차 관심이 없었다.  

봉건제도 혹은 방국제도가 해체됐고, 천자가 제후를 봉하는일은 통용되지 않았다. 제후들이 스스로 정벌했고, 그 자체로 예악의 붕괴였다. 국제 질서는 무너졌고, 게임의 규칙 역시 무너졌다.  

주나라와 '왕실'이 무너졌고, 진나라의 '공실'(군주의 일가)이 와해되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존왕양이' 를 말했다. 

모두가 왕인 것은 왕이 없는 것과 같았다. 한 명의 왕. 천자가 남을 때까지 왕들은 전쟁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

'존왕' 을 위한 유일한 왕이 되어야만 했다.


진나라의 상앙은 평소 교분이 있었던 위나라군의 총사령관 공자 앙을 친구의 이름으로 연회에 초대하여 사로잡고, 위나라군을 기습해 크게 승리했다. 이 전쟁으로 위나라는 대부분의 영토를 잃고 도시국가 수준으로 작아졌다. 

이렇듯, 전국 시대는 음모와 배신, 하극상의 시대였다. 
예악은 물론, 도덕도 무너졌다.

'전쟁은 속임수' 라는 말이 당연하게 쓰였다. 

이웃나라보다 강해야 했다. 강해져서, 먹어 치워야 했다.
 오직 군사력만이 국력의 바로미터였다.

군사력- 즉, 군량미와 병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해낼 제도가 필요했다. 
이것은 춘추시대 초기부터 활발하게 논의되었는데, 우리도 너무나 잘 아는 '관중과 포숙아' 의 그 관중이 춘추시대의 초기에 '행정 관리' 의 개념을 정립했다면, 전국 시대에는 '상앙' 이 있었다.
 

저자는 상앙의 개혁에서부터 중앙집권체제와 군국주의의 뿌리를 읽어낸다. 

위나라 출신의 상앙이 진나라에서 행한 개혁은 경제와 군사를 포괄하는 전면적인 계획이었다.

진 효공은 상앙과 면담을 한 뒤, 그를 파격적으로 중용했다.

전국시대는 또한 말과 정치의 시대이기도 했다. 
맹상군 같은 이가 수많은 식객들을 거느렸고, 뜻 있는 식객들이 왕들을 찾아 떠돌았다.

이름난 천재들이 왕들로부터 구애를 받았다. 패도의 시대. 출신도, 신분도 상관없었다. 능력만 있으면 어디서든 중용될 수 있었다.


상앙은 엄격한 법치주의를 표방했다. 

"상앙이 재상이 되어 처음으로 반포한 법령은 '보갑제保甲制' 와 연좌법의 시행이었다.  

상앙은 가구를 기준으로 서민들을 편성하여 5가구를 보保로 삼고 10가구를 상호 연결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죄를 지어도 전체에게 연대 책임을 물었으므로 이웃들은 즉시 정부에 보고해야 했다.

고발하지 않은 자는 허리가 잘렸고 범죄자를 은닉해준 자는 적에게 투항한 자와 똑같이 취급했으며 고발자는 사형당한 자들의 수급 숫자에 따라 상을 받았다. 진나라에서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는 사람이 없고 산에서 도적이 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이웃이 이웃을 고발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 시기의 진나라를 나치 독일과 비교한다. 

진나라 전체를 병영으로 나아가 감옥으로 만들었다. 사회에 남아도는 무력을 집중시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상앙이 길러낸 자들은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살인기계였을 것이다. 

상앙 자신도 기록에 의하면 700여 명을 사형시킨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저자는 '위 기록이 신빙성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전혀 근거가 없거나 과장됐다고 증명해줄 이도 없다' 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앙이 철혈재상' 이었던 것만은 확실할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과거의 기록들을 접근한다. 


 이 책은 저자 후기에도 '정말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어디부터 어떻게, 무엇을 기준으로 덜어내야 하는가.

이중톈 중국사 시리즈의 강점은 철저한 사료 중심의 서술이다.

수많은 대중들에게 강연한 이력답게 그의 글은 담백하고 간결하다. 너무너무 쉽다.

대중들의 언어로, 대중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비유로 설명한다.

그리고, 언제나 기록을 설명할 땐 둘 이상의 사료를 비교하고, 그로 인해 도출해낸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구분한다. 


역사에 진실이 있는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있다' 또는 '없다' 고 명확히 말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명확히 존재한다.

예를들어, 어떠한 구체적 사건의 경우엔 여러 기록들을 교차 검증하여 '일어났다' 고 명확히 이야기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김지운 감독의 [밀정] 이라는 영화처럼 말이다. 

황옥이란 인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록' 에 비춰도 명확히 단정지을 수 없잖은가.

사람의 행동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록들을 통해 공백을 합리적으로 '추론'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은?  기록에 드러난 인물들의 행동을 바탕으로 '추론' 할 뿐이다. 추론을 바탕으로 기록을 검증하고, 기록을 바탕으로 추론을 검증한다. 역사 기록은 컨텍스트 없이 텍스트를 받아들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각 권의 후미에 실린 저자 후기와 역자 후기를 읽는 즐거움이 쏠쏠한 이유이다.

저자와 역자들의 고뇌가 짧지만 풍성하게 실려있다.

사실 저자가 속내를 드러내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 훌륭한 역사책은 역사관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영혼이다.

역사적 식견도 없어서는 안되며 그것은 뼈대다.

또한 사료와 역사적 감수성도 없어서는 안 되는데 그것들은 각기 피와 살, 그리고 분위기에 해당한다.

분위기가 없으면 매력이 없으므로 역사가 수술대 위의 미라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역사적 감수성은 당연히 공감을 통해 얻어지지만 한 가지 기법도 필요하다. 그것은 현장의 환원이다.

현장을 환원해야만 당시 상황을 추체험할 수 있고 당시 상황을 추체험해야만 공감이 강화된다. 

바로 이것이 본서를 무미건조한 줄거리 요약이 아닌, 생생하고 감동적인 텍스트로 만들어준다."

p. 252  저자후기 

 

 

그래, 사실 나는 상앙이 만든. 

결국 거열형에 쳐해지고 마는 상앙이 토대를 닦은 진나라의 통일 과정을 보고싶었다.

(7권 진시황의 천하)


다음 권은 6권. '백가쟁명' 이다.

나는 춘추, 전국 시대를 읽으면서 양차 대전을 겪은 유럽의 철학자들을 떠올렸다.

이성이 인류의 기본이자 본성이며, 끊임없이 인간의 삶을 진보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던 시대. 

하지만, 그 이성이 수만의 젊은이들을 떨어지는 폭탄 아래로 밀어넣는 것을 1도 막을 수 없음을 깨달은 시대. 

춘추시대는 그보다 훨씬 전에 인간의 기본 도리라 여겼던 예악과 도덕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도한 시대였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탄생했다. 

공자, 맹자, 순자, 묵자, 노자, 한비.


자, 이제 [춘추에서 전국까지]를 통해 예악과 도덕이 무너지고 천하가 무너지는 과정을 봤다.

다음은 그 안에서 예악과 도덕을 살리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학자들. 무너진 천하를 돌이키고자 하는 이들.
그리고 새로운 규칙을 창조해내는 천재들을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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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7년 - 문(問):지승호 답(答):김의성
김의성.지승호 지음 / 안나푸르나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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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었던 대담집은 '촘스키, 누가 세상을 무엇으로 지배하는가' 였다.

얇지만 더디 읽혔고, 분량도 적었지만 오래 읽었더랬다. 그래도 유익하긴 했다. 촘스키의 책은 너무나 어려웠는데, 적어도 대담집은 쉬운 편이었다.  눈 앞에 대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최대한 상대방에게 맞춰서 이야기를 한다는 뜻이다. 그 상대의 반응을 보며 단어를 고르고, 어려운 부분은 쉽게 풀며, 과거에 있었던 주요한 발언과 그 발언이 나오게 된 계기들을 주관적으로 상세히 풀어준다. 그리고 상대방은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역시 자신의 주관대로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나눈 이야기들이 차례차례 실린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주관이 실리고, 그걸 읽는 독자의 주관이 섞인다. 

소위 '객관적' 이라고 주장했던 그것들이 그 안에서 산산히 깨진다. 

수학 공식도 아니고.

철학과 사상에 객관성이 존재할 리 없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중성을 끼얹어볼까? 

대중성은 얼핏, 객관성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사람은, 객관적으로도 인기가 많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대중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객관적으로도 성공했다고 여겨진다.

자신이 그 인기를 실감하지 못해도, 자신이 스스로를 실패했다고 주장해도 말이다. 


김의성 배우는, 나에겐 어느날 갑자기 툭 떨어진 배우였다.

[관상] 에서 처음 봤지. 고개를 한쪽으로 꺾고, 얼굴은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지만, 아주 강렬했다.

그 다음은 [육룡이 나르샤]였다.

정몽주 역이었는데, 선하게도 보였다가, 비열하게도 보이는 마스크가 굉장히 신선했다. 마침 그 작품에서는 정도전 역을 김명민 배우가 했었는데, 사료에 따르면 정도전은 풍채가 당당하고 뚱뚱한 편이었다고 하니, 싱크로율롷는 조재현 배우의 정도전보다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김명민 배우와 김의성 배우의 조합은 고려 왕조의 온건개혁 세력이었던 정몽주와 급진개혁 세력이었던 정도전으로 무척 잘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나는 트위터를 거의 안하는 탓에 김의성 배우의 SNS 활약은 잘 몰랐다. 

하지만, 설리를 두둔하고, 굴뚝에서 농성하던 쌍차 노조원을 지원하는 1인 시위를 하고, 명치를 존나 쎄게 맞겠다는 공약 정도는 알았다.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책 소식이 조금 의아했지만, 쉽게 손이 갔다.


영화 감독이나 배우들은 인터뷰에 특화된 직업들이기도 하다.

이동진 평론가는 수많은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를 담은 무시무시하게 두꺼운 책을 펴내기도 했고, 한 때는 영화 잡지를 통해 매주 수많은 배우와 감독들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악당 7년] 은 그러한 숱한 인터뷰들 중 일부다. 단, 한 자리에 앉아 반나절, 한나절을 이야기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수개월에 걸쳐 꾸준히 만나면서 내용들을 쌓았다. 몇주만에 다시 만나 이어가기도 하고, 며칠만에 다시 만나 이어가기도 한 것 같다.

그 때문에, 전에 나왔던 내용이 되풀이되는 경우도 있고, 이야기의 화제가 촛불 집회에서 박근혜 탄핵으로, 대선으로, 문재인 당선과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연극은 우리 문화에서 가장 진보적인 예술장르였다.

많은 연극들이 노동집회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위해 상영되었고, 정치적, 이념적으로 민감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김의성 배우는 그런 우리나라의 연극판에서 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몸담은 연극판은 노동운동 현장으로 향했고, 그 와중에 두번의 결혼과 두번의 이혼을 했고, TV드라마와 연극배우로 데뷔하고, 영화판을 떠나기도 했다. 무일푼으로 떠난 베트남에서 드라마를 제작했고, 무일푼으로 돌아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로 자신을 영화계로 이끌었던 홍상수에게 다시 이끌려 [북촌 방향] 으로 컴백했다.

그 이후 몇편의 영화에 더 출연했고, [관상] 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각인을 새겼고, [부산행] 으로 지난 해 백상영화대상 조연상을 받으며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그래선지, 김의성 배우는 배우이지만, 배우답지 않은 발언이 많았고, 당시 정부에 대한 비판도 숨기지 않았다. 

비록 주연급은 아니라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반응은 아니지만, 그의 발언과 캐릭터는 호불호가 명확하다. 두번의 결혼과 이혼 경력부터 설리, 홍상수에 대한 의견, 주진우와 이승환등 '강동모임' 과의 관계, 쌍차 해고 노동운동가들과의 관계, 베트남 국민 드라마의 제작자, 여러 연극단과 얽힌 배우들과의 인연 등 상당히 광범위하게 까고 씹을 거리가 넘치기 때문이다. 

지승호 인터뷰어와의 대담을 통해 그런 이야기들이 보다 넓고 깊게 조망된다.

특히 '연기철학' 을 묻는 대화에선, '그런건 없다' 고 말하지만, 그가 살아온 삶 자체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과정 속에서 충분히 묻어난다. 


김의성 배우의 어린시절부터 50을 넘은 현재까지, SNS, 직접 겪은 노동운동과 메갈리안, 연극판, 영화판 스텝들과 함께 한 배우들의 이야기, 결혼관과 연애관, 연기와 철학, 나아가 예술관까지. 

차분히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고, 개인적으로 나와 생각이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 부분들을 논리적이면서도 명확하게,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부분들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통해 대담을 읽는 재미가 생겼다.

다른 책들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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