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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철학의 풍경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진철학의 풍경들
진동선 글.사진 / 문예중앙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이번달 신간평가단이라는 이름으로 알라딘에서 날아온 두권의 책.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과 [사진철학의 풍경들] 이다. 알라딘 신간 평가단은 각 분야별 20여명의 회원들이 매 달 초 발간된지 2달 이내의  신간들을 2권 이상 추천하고, 담당자가 그것들을 모아 가장 많은 회원들이 선택한 두권의 책을 선정하여 회원들에게 보내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즉, 두권의 책은 랜덤으로 조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이번에 날아온 두 권의 책은 얄궂을 정도로 연관성이 있다. 미술의 역사가 크게 변화하던 시기. 그 변화의 시발점에 카메라라는 기계의 출현이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 미술사의 큰 변화가 시작되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미술가들은 '자연을 묘사하는 행위는 가장 커다란 실수였다' 라며 화가 내면의 세계를 캔버스에 옮겨내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카메라가 자연을 완벽하게 묘사하는 행위를 이미 충분히 해 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단순히 자연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행위가 영혼이 있는 인간적인 것이 아닌 기계적인 '기술' 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이다. 

 단순히 피사체를 '담는' 기기에 불과했던 [사진] 은 오래지 않아 예술로 발전하게 되는데, 거기엔 역시 미술의 영향이 컸다. 고전 미술이 가지고 있던 구도와 오브제의 배치 기법들이 사진속에 그대로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속에 녹아있는 미술적인 '맛' 들이 사진을 일찌감치 예술의 한 분야로서 받아들일 수 있게 했고, 탁월한 감각을 지닌 사진작가들의 출현으로 사진 예술은 점점 더 발전해 나아갔다. 
 

 '미술' 의 현대적인 발전은 형形과 색色을 버리고 한계를 깨는 것이었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 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 사진은 어떻게 발전해 나아갔을까? 태생적으로 형과 생을 버릴 수 없는 매체인 사진. 화가들이 자신의 내면을 캔버스 위에 녹여내고자 했을때, 사진가들은 자신의 내면을 어떻게 피사체에 투영시켰을까?  

 3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툼한 책은 사진의 예술성을 총 망라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는 지성적, 감성적 접근을 위해 책을 크게 다섯개의 단락으로 구분지었다. 

먼저, '인식의 풍경', 그리고 '사유의 풍경, '표현의 풍경' 과 '감상의 풍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의 풍경' 이다. 인식의 풍경에서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보는 것이 눈으로 보는 같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유의 풍경에서는 시간의식과 기호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표현의 풍경에서는 조형과 사진심리, 인상과 인식, 차이와 반복 등 사진이 담고 있는 '감각' 에 대해 다루고 있고, 감상의 풍경에서는 미와 진리를 지향함으로써 결국 사진 또한 미학을 넘어 예술의 근원과 맞닿아 있음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풍경에서는 사진이 왜 그토록 사회적인 실천인지, 왜 이미지 수사학인지, 어떻게 필수적인 유희와 욕망의 수단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책은 완전히 하나의 도첩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양의 사진이 실려있다. 작가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독자들에게 또렷히 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그 시도는 상당부분 통하고 있다. 이 책의 대상은 전문 사진작가부터 일반 독자들까지 아우르고 있는데, 수많은 이론서들과 철학서들을 인용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자신의 '기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까지 고민하고 있다. 

 예를들어 책에는 '스티븐 쇼' 라는 미국의 사진 작가이자 이론가의 말을 빌려 사진 감각을 후천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다. 거의 초반부에 실려있는데, 작가는 독자들에게 사진감각에 대한 열린 마음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 이라는 무거운 단어와 달리 책은 초반에는 아주 쉽게 읽힌다. 수많은 사진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기도 하지만, 설명에 따라 잘 배치되어 있다. 독자 친화적인 설명 방식도 맘에든다. 인용구를 인용구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다시 한 번 쉽게 풀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상당히 어려워진다. 사진의 기법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사진이라는 행위가 가지고 있는 철학적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관념' 을 '설명' 한다는 행위는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다. 책을 읽어 나가다 보니 저자 스스로도 아직 완벽히 정립시키지 못한, 즉 관념 자체는 명확하지만, 남에게 풀어서 설명하기에는 아직 완전하지 못한 관념론까지 등장하는 듯 하다.  

 책을 읽어가다 보니, 카메라가 살아있는 하나의 생물과도 같다. 때로 이 카메라라는 녀석은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주기도 한다. 바로 나 자신의 내면이다. 저자는 존 사코우스키라는 사진이론가의 말을 빌려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자아를 향한 내면의 응시 - 거울" 로서의 역할과 "타자를 행한 외면의 응시 - 창" 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한다. 
 

 눈은 얼굴 밖으로 돌출되어있는 뇌이다. 전에 다른 책의 리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모습을 갖춰가는 광경을 보면, 먼저 뇌가 생기고, 그 뇌에서 더듬이처럼 가느다른 두개의 돌기가 비죽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눈이 된다.  눈은 뇌의 두개골 외부 출장소와 같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뇌가 인식하는 장면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 꽤 어려운 개념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참 유익한 시간이었다. 적어도 나 역시 이제 사진을 보며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테니까. 

"당신의 사진은 거울의 시선입니까? 창의 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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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대학 1학년 1학기때 일러스트레이션 이론이 필수교양이었다. 서양미술사는 선택교양이었고. 워낙에 외우는 것을 싫어했던 난 서양미술사를 최대한 피했더랬다. 하지만, 관심은 많았던지라, 강의서적은 구입해서 열심히 읽었었다.

 일러스트레이션을 어떤 분야에 넣느냐에 따라 그 출발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당시 내가 들었던 강의의 교수님께서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산업디자인의 범주에서 다루셨다. 아, 그 교수님은 산업 디자인과 전임 교수님이시기도 했고(ㅋㅋ) 기본적으로 그 분께서 말씀하셨던 '일러스트레이션' 이란 결국 '상업' 일러스트레이션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은 그 태생 자체가 상업과 긴밀한 관계이다. 요즘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단어 자체에 '오브제를 대중에게 설명하기 위한 그림' 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바우하우스에서 산업 디자인과 함께 시작되어 결국엔 키치로 함께 들어갔던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는 꽤나 흥미로웠다.

 한 학기동안 거대한 미술사의 한 부분, 한 흐름을 공부했기때문에, 그 시간은 생각보다 깊이있었고 정말 재미있었다. 1학년짜리가 맨날 맨 앞에 앉아서 잔뜩 필기를 하며 수업을 따라가곤 했기에, 교수님도 날 꽤 예뻐해 주셨지만, 우리 과 전임 교수님은 아니셨던지라 인연이 길게 이어지진 않았더랬다.
  

한편, 그 한 학기동안 베개만한 '서양 미술사' 를 들고다니던 녀석들도 있었다. 녀석들은 쏟아지는 과제들 속에서, 그림과 화가이름을 정신없이 외우며 다녀야 했다. 물론 사조의 순서 또한 외워야 했고, 후기 인상주의를 지나 야수주의에 돌입하며 머리를 쥐어 뜯기 시작했다. 사실 인상주의부터 주요 화가의 그림들이 비슷비슷해진다. 특징을 찾아 외우기가 만만치 않다. 심지어 마네, 모네 등은 이름부터 헷갈리고, 르누아르와 마네의 화풍도 상당히 닮아있다. 반면, 고흐, 고갱, 세잔같은 후기 인상주의의 그림들 또한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후기 인상주의를 지나 야수주의에 들어가면 대부분 시험을 포기한다. ㅋㅋㅋ 

 난 수업을 듣지 않았기때문에 흥미롭게 서양 미술사에 관한 책을 탐독했었지만, 부족한 도판과 딱딱한 저술은 개인적인 흥미를 반감시킬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모든 시대적 흐름에는 흐름을 주도하는 큰 사건과 인물들, 그리고 그 인물들의 개인사까지 망라되어야 한다. "히스토리" 란 결국 사람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서들은 모두 그렇다. 왕 중심으로 기록이 전개된다.
 

 하지만, 미술사는 다르다. "미술사" 라는 단어처럼 '미술' 중심의 역사가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림이 주인공인 역사이다. 당연히 그림을 그린 화가 역시 서브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상에 얼마나 많은 그림과 화가와 기록들이 있는가.  

 결국 미술사는 시대별로 기록되야 했고, 그 시대에 가장 우세했던 '화풍' 을 묶어내기 시작했다. 일종의 유행인 것이다. 특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좋아했던 화풍, 중세 이전까지는 왕의 초상화나 왕실화가, 혹은 성당 미술등의 그림을 '주류 화풍' 으로 구분할 수 있었지만, 근대에 들어서면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흐름을 이해하기 조차 쉽지 않았다.  

 특히 시대별로 나누면 야수주의, 입체주의가 거의 동일한 시대에 꽃피웠고, 바로 뒤이어 등장하는 추상주의와 절대주의, 표현주의도 거의 동시대에 걸쳐있다. 그렇기에 한 작가가 여러 화풍의 그림을 내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피카소 역시 화풍의 변화에 따라 그 작가 개인의 화풍을 구분해야 할 정도이니, 흐름을 따라가기조차 버거운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많은 책들이 현대 미술부분을 '모더니즘' 으로 묶어서 간략하게 기술하는 경우가 많다.  

 진중권 교수가 풀어내는 모더니즘은 지금껏 내가 읽어온 어떤 미술사보다 쉽고 명쾌하게 풀려있다. 그냥 읽기만 하면 술술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논리적 인과관계가 완벽하고, 작가와 작풍, 작품의 분배가 쉽고 뚜렷하다.  진중권 교수는 모더니즘을 '아방가르드의 시대' 로 명명하고, 그 안에서 화풍 - 사조가 생성된 순서대로 기술하고 있다. 당시 잡지나 신문등에 기고됐던 기록들의 인용도 상당한 양이고, 도판도 정말 풍부하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모더니즘의 특성들 중 하나는 '자아성찰과 그 표현' 이다. 여기서 '작가주의' 가 도래한다. 아방가르드 시대 자체를 작가주의의 시대라고 생각하고 보면 더 쉽다. 화가들은 더이상 남을 위해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 것이다. 인상주의 시기부터 이러한 색깔은 조금씩 보여왔었다. '야수주의' 라는 이름 자체가 주류 미술계에서 조롱을 담아 내뱉은 표현이었듯, 미술세계는 점차 진보적인 비주류가 주류가 되어가는 과도기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등 거대한 비극을 겪으며 주류와 비주류의 교체는 더욱 빨라지고, 변화에 대한 욕구는 거세졌다.

 당시의 화가들이 자연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화폭에 담아야 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영혼이라고 외쳤다. 심지어 우연의 효과를 기대하는 다다이즘은 현대인인 나에게도 충격이었으니, 당시의 주류 미술인들에겐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아방가르드의 시대는 전통적 화풍의 파괴를 불러온 시기이자, 재료의 파괴를 불러오기도 했다.

지금까지 모더니즘 이후, 네오 아방가르드의 시기를 다룬 미술사 서적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국에 출간되어온 대부분의 서양 미술사에 관련된 책들은 수십년 전의 책들이 번역되고, 중쇄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서양미술사에 대한 서적이 잘 팔릴 리도 없을뿐더러. ㅎㅎ  

이 책을 읽으며 특히나 독설로 유명세를 떨치는 진중권 교수가 입만 발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다. 이런 쉽고 명쾌한 정리에 술술 빠져드는 문장력이라니. 용어의 사용과 풀이도 대단히 친절하다. 완벽하게 독자 친화적인 글들이라, 솔직히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니 진중권 교수가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었어??' 라는 느낌이었달까. ^^

새삼 언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얼마나 무서운지 느낄 수 있었다.

책 말미에 저자는 아방가르드의 다음 시기인 '네오 아방가르드' 에 대한 글을 쓸 것임을 예고해 준다. 서양 미술사 시리즈의 첫 권이 나온지 3년만에 두번째 권이 나왔으니, 다음 권 또한 만만치 않겠지. 하지만, 정말 너무 기대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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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잔혹사
이재갑 글.사진 / 살림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영국 BBC를 통해 나치 휘하에서 독일군 제복을 생산했던 독일 명품 의류기업인 '휴고 보스' 가 나치 시절,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이는 여러 사람들의 끊임없는 국제 법정 투쟁에 의한 결과물로서, 휴고 보스는 당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에게 법적인 보상을 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공을 쏟아야 하게 생겼다.

 이 기사를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 침략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전쟁에 동원한 물자의 대부분은 우리 민족에게서 강제로 침탈해간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성장한 군수업체가 바로 미쓰비시나 도요타 같은 자동차 회사들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일본의 기간산업들은 일본이 침략한 국가에서 강제로 끌고온 노역자들에 의해 성장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자기네 정부부터 제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임을 숨기기에 급급하고,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성스러운 전쟁이었고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선전하기 바쁘며, 일본 내의 여러 기업들 또한 정부의 비호 아래 강제 노역자들과 피해자들을 외면하기에 바쁘다.

 

 이 책은 그런 우리의 아픈 과거를 더욱 절절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340여 페이지에 달하는 페이지들에 꼼꼼하게 우리 조상들이 겪었던 슬픔과 고통, 절망들이 또렷한 사진으로 보여지고 있다.

후쿠오카를 시작으로 나가사키와 오사카, 히로시마, 오키나와까지 일본 열도의 대부분을 샅샅히 훑으며 우리 조상들을 침탈한 역사의 현장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피를 토하고 죽을때까지 석탄을 캐 날라야 했던 수많은 갱도들, 석탄을 고르고 골라 운반해야 했던 탄광들, 누군가를 쏘아 죽이고 파괴하는 무기를 만들어내는 지하 은밀한 곳의 터널과 군창들.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다. 인간 어뢰로, 가미가제 특공대로 끌려간 선조들의 이야기도 있다. 위에도 언급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쓰비시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등장하고, 우리의 기억속에서도 점차 잊혀져 가는 우토로도 등장한다.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당하면서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정말 너무나 아프고 쓰린 기록들에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울적해졌다. 그리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것은 단순히 탐욕스러운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분노였고, 무능한 우리 정부에 대한 분노였다. 오히려 당시 고통받았던 생존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있는 부근의 일본인들이 나서서 도와주고 있었다. 결국 나라와 이념을 떠나면 다 같은 사람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강제 노역을 한 것은 침략한 국가만이 아니다. 실제로 일본인들도 평범한 국민들 대부분은 피해자이다. 그들도 함께 노역을 했다. 물론, 그 대우는 완전히 달랐지만, 일본인들도 사람인지라 동물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일하는 조선인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도와주려 했던 이들도 있다.

 

 이 책은 정말 많은 사진들과, 철저하게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실려져 있다. 단순한 감상이나 에세이가 아니라 완벽한 한권의 논픽션 르포이다. 폰트도 큼직하고, 사진과의 배치도 상당히 잘 되있어서 굉장히 잘 읽힌다. 정말 힘든 내용이지만, 그것들을 쉽게 읽히게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정말 잘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이 갖고 있는 미덕은 단순히 독자들에게 일제 침탈기 겪었던 조상들의 고통을 느끼게 해 주는데 있지 않다. 이 책은 우리에게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민족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전쟁의 위협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중국과 일본은 끊임없이 우리를 도발하고, 북한과를 이빨을 맞대고 있는 사이이다. 누구라도 턱에 힘을 주고 물기 시작하면 서로가 살아남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될 터다.

 전쟁이란 그런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부모님, 형제, 친구들과 강제로 떨어지게 되고,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기도 할 것이며, 하루하루 차라리 죽음을 바랄 정도의 고난을 당하기도 할 것이다. 옆에서 함께 숨쉬고, 웃고, 울고, 서로 위로하던 존재가 순식간에 썩어가는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리는 것을 지켜볼 수도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언제나 그럴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폭탄 한방에 도시 전체가 쓸려버리고, 그 후유증이 나로 끝나지 않고, 자식의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전쟁의 공포인 것이다.

 그런 것들이 정말 너무나 잘 실려있는 책이다.

 

 분명, 과거는 잊어서는 안된다. 영원히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반추가 단순히 분노와 슬픔에서 멈춰서도 안될 것이다. 우리가 과거를 잊지않고, 끊임없이 반추해야 하는 이유는 언제나 현재와, 미래에 있다. 과거에 얽매여서는 현재를 살아갈 수 없고,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일본의 행위는 쉽사리 용서해서도 안된다. 일본이 아시아 전체에 정식으로 사과하고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할 때 까지 싸움을 멈춰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것에만 매몰되어 현실을 보지 못하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워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별개이다.

우리는 일본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용서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과거를 잘 알아야 한다.

이 책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는, 그를 위한 쉽고도 친절한 첫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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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안도 다다오. 건축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 쯤 들어봤을 법 한 이름이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건축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아본 적 없으며 전직 권투선수, 트럭 운전사라는 독특한 이력 때문에 더 주목을 받은 사람이다. 그의 건축물들은 언제나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다. 빛, 물, 바람과 어우러지는 건축물들을 설계하였으며, 그래서인지 언제나 단조롭고 절제되어있는 아름다움이 녹아있다.  

 이 책은 안도 다다오의 건축가로서의 여행이라기 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여행기이다. 물론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은 '건축을 좋아했던 한 사람의 여행기' 라면 당연할 것이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여행기라면 미술관과 박물관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 않겠는가? 좋아하는 화가의 고향, 생가, 공방, 작품 전시관등을 중점으로 여행을 다니지 않겠는가? 산을 좋아하거나 숲을 좋아하거나, 술을 좋아하거나, 여행이란, 게다가 혼자하는 여행이란 무릇 여행가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안도 다다오의 10대때 여행부터 차근차근 실려있다. 서문에서 저자가 밝히듯,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계를 완성하게 한 자신의 여행담이 꽉꽉 들어차있다. 안도 다다오 역시 다른 여행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관심사를 따라 많은 건축물들을 본다. 세상에 건축물이 없는 도시는 없다. 때로는 우연하게 특이한 건축물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그렇게 영향을 받기도 했다.  

 솔직히 나는 에세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에세이는 일종의 '일기' 같은 글이다. 하루 중, 혹은 인생에서 겪었던 일들 속에서 얻어낸 여러가지 생각들이나 감상들을 담백하게 적어 내려간 것들이다.  여행 에세이 또한 그렇다. 저자가 여행한 곳을 다녀와 본 독자가 아니면 저자의 여행담에 깊이 동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왠지 타인의 일기를 보는 느낌이랄까. 저자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경험을 완벽한 타인인 내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도 있고, 조금은 아니꼽고 고까운 마음이 들어서일 수도 있겠다. 저자의 삶과 마음속을 훔쳐보는 기분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에세이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강점과 재미를 거부하거나 부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에세이는 누구에게나 쉽게 넘어가기 마련이다. 공감하지 못할 경험과 감정, 깨달음을 적은 경우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 공감할만 경험을 통해 얻어낸 깨달음을 적어낸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손에 들면 술술 읽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도 다다오의 여행담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가 비록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여행을 했지만, 건축물은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있다. 뿐만 아니라, 원래 유명 관광지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 는 사실 대부분 건축물이다. 때문에 여행을 거의 하지 않는 나에게도 익숙한 건물들이 많이 나오고, 안도 다다오는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좀 더 깊이있는 '관광' 을 할 뿐이다. 외국이라는 낯설음, 긴장과 설레임 속에서 자신이 사진으로만 보았던 건축물들을 실제로 목도하고, 그것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공정을 상상해본다. 안도 다다오는 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기 때문에, 그 건물들이 지어지는데 얼마만큼의 수고로움이 들었는지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건물을 디자인한 건축가의 일생 또한 알고 있다. 저런 건물을 디자인해낸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저 건물에 과연 그 건축가의 어떤 삶이 녹아 들어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런 건축가의 삶과, 그 삶이 녹아있는 건축물들을 통해 안도 다다오의 삶의 축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일까? 그런 변화와 영향들이 담담하게, 하지만 때로는 격정적으로, 솔직한 필체로 그려지고 있다.  

 각 문단의 첫 행이 우리에게 익숙한 들여쓰기가 아니라 내어 쓰기로 되어있는 방식이 신선하고 독특하다. 책의 말미에는 책에서 언급된 건축물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챕터의 말미에 실려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저자가 이 책이 건축물에 대한 것이 아닌, 순수한 여행담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주장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류는 지역과 문화에 따라 완벽하게 다른 사고방식으로 삶을 산다. 때론 같은 인간이 아닌 외계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작가는 남자와 여자를 금성인과 화성인으로 비유하기도 했지만, '타인' 이란 완벽하게 새로운 또 하나의 '세계' 인 것이다. 안도 다다오는 이런 또다른 세계와의 끊임없는 부딪힘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완성시켜 갔다. 도시방황. 인생은 어차피, 끊임없는 방황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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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에일리언' 이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내가 초등학교 무렵이었을까? 늦은 밤,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아빠옆에 누워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휴일 밤에 방송되던 '에일리언' 을 보았더랬다. 거대한 외계 행성, 괴기한 배경 사이로 바닥에 가득한 투명한 젤리같던 에일리언의 알들. 그리고, 사람의 얼굴에 붙는 에일리언의 유충 '페이스 허거'. 그리고 사람의 배를 뚫고 나오는 새끼 에일리언과 번들거리는 긴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입 안에 또 입이 있는 괴기한 디자인의 어른 에일리언. 내가 '그로테스크' 라는 느낌을 받았던 건 바로 그 순간이 최초일 것이다.  

 79년에 처음 발표되, 4편까지 등장한 에일리언은 바로 이 책에서 나오는 '그로테스크' 의 정의에 가장 합당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연구 자료들과 개념과 용어에 대한 설명들을 통해 가장 많이 떠오른 작품이 바로 이 '에일리언'과 에일리언의 아버지이자 현대 미술가인 'H.R 기거' 였고, 일본 만화작가인 '이토 준지' 또한 자주 머릿속에 떠올랐다.  

 제목처럼 이 책은 우리가 막연히 알고 사용해 오고 있는 단어인 '그로테스크' 라는 단어를 미학적으로 접근해 풀어나간다. 단어나 용어는 세월에 따라 그 쓰임이 다르다. 특히 미술이나 문학에서는 더 그러한데, 우리가 잘 알고있는 '고딕''르네상스''로코코''로마네스크''아라베스크''낭만주의''인상주의''초현실주의''사실주의''극사실주의''아르누보''아방가르드''모더니즘''포스트 모더니즘'..등등 단어를 그대로 풀이해서는 대체 용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 일련의 용어들은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시대, 사회적 배경과 그 중심이 되었던 인물과 사건들, 작품들에 대한 지식이 충분해야만 똑바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다. 

 특히 '그로테스크' 라는 단어는 더욱 그렇다. 이 용어 또한 다른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후대에 만들어졌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그 의미와, 의미가 포괄하는 범위가 변해왔다. 특히 그로테스크는 위에 언급한 다른 용어들과 달리 뚜렷한 형식이나 틀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작품에 흐르는 이미지와 단어가 사용되었던 과거의 문헌들을 바탕으로 특징을 찾아내야 했다. 르네상스나 인상주의의 경우엔 그 시대와 환경이 요구하는 일련의 지향점이 있어왔고, 그 시대의 작품들엔 동일한 코드가 있다. 예를들어 르네상스는 '고전으로 돌아간다' 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고전주의와 그 맥을 함께 하며, 사상, 문학, 미술, 건축 등 모든 분야에서 다른 사조와 구분되어지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하지만, '그로테스크' 라는 단어는 그러한 특징을 지닌 미술적 사조나 화풍이라기보다, 이미지와 감정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로테스크는 모든 시대의 모든 작품들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고, 발견되기도 한다. 저자는 특히 16세기에 그 용어가 정의되고,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한 부분에서부터 접근을 시작한다. 과연 어떤 작품에서, 어떤 분위기와 느낌을 '그로테스크' 라고 정의했을까? 16세기 로부터의 수많은 문학 작품과 미술작품, 비평집들을 예로 들어가며 '그로테스크' 를 정의하기 위한 위대한 노력이 담겨있다. 

 그로테스크는 형식, 효과, 이미지, 상상 등 모든 것을 망라하는 거대한 '위화감' 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서양인들이 처음 중국문화를 접했을때, 중국풍의 작품을 그로테스크라고 받아들이기도 했고, 기독교 문화가 서양을 지배하고 있을땐 악마주의의 작품을 그로테스크라고 받아들이기도 했다. 인간과 기계의 조합 또한 그로테스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고, 인간과 동물의 결합 역시 그로테스크라고 할 수 있을터다. 뿐만 아니라 글의 형식과, 문장의 분위기를 통해서도 그로테스크를 느낄 수 있다. 위에 언급한 에일리언의 디자이너 'H.R 기거' 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을 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 카프나와 러브 크래프트 같은 소설가였다. '글' 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 책 역시 미술작품들 보다는 소설들을 예로 들며 그로테스크를 설명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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