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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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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안도 다다오. 건축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 쯤 들어봤을 법 한 이름이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건축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아본 적 없으며 전직 권투선수, 트럭 운전사라는 독특한 이력 때문에 더 주목을 받은 사람이다. 그의 건축물들은 언제나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다. 빛, 물, 바람과 어우러지는 건축물들을 설계하였으며, 그래서인지 언제나 단조롭고 절제되어있는 아름다움이 녹아있다.  

 이 책은 안도 다다오의 건축가로서의 여행이라기 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여행기이다. 물론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은 '건축을 좋아했던 한 사람의 여행기' 라면 당연할 것이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여행기라면 미술관과 박물관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 않겠는가? 좋아하는 화가의 고향, 생가, 공방, 작품 전시관등을 중점으로 여행을 다니지 않겠는가? 산을 좋아하거나 숲을 좋아하거나, 술을 좋아하거나, 여행이란, 게다가 혼자하는 여행이란 무릇 여행가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안도 다다오의 10대때 여행부터 차근차근 실려있다. 서문에서 저자가 밝히듯,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계를 완성하게 한 자신의 여행담이 꽉꽉 들어차있다. 안도 다다오 역시 다른 여행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관심사를 따라 많은 건축물들을 본다. 세상에 건축물이 없는 도시는 없다. 때로는 우연하게 특이한 건축물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그렇게 영향을 받기도 했다.  

 솔직히 나는 에세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에세이는 일종의 '일기' 같은 글이다. 하루 중, 혹은 인생에서 겪었던 일들 속에서 얻어낸 여러가지 생각들이나 감상들을 담백하게 적어 내려간 것들이다.  여행 에세이 또한 그렇다. 저자가 여행한 곳을 다녀와 본 독자가 아니면 저자의 여행담에 깊이 동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왠지 타인의 일기를 보는 느낌이랄까. 저자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경험을 완벽한 타인인 내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도 있고, 조금은 아니꼽고 고까운 마음이 들어서일 수도 있겠다. 저자의 삶과 마음속을 훔쳐보는 기분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에세이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강점과 재미를 거부하거나 부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에세이는 누구에게나 쉽게 넘어가기 마련이다. 공감하지 못할 경험과 감정, 깨달음을 적은 경우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 공감할만 경험을 통해 얻어낸 깨달음을 적어낸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손에 들면 술술 읽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도 다다오의 여행담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가 비록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여행을 했지만, 건축물은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있다. 뿐만 아니라, 원래 유명 관광지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 는 사실 대부분 건축물이다. 때문에 여행을 거의 하지 않는 나에게도 익숙한 건물들이 많이 나오고, 안도 다다오는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좀 더 깊이있는 '관광' 을 할 뿐이다. 외국이라는 낯설음, 긴장과 설레임 속에서 자신이 사진으로만 보았던 건축물들을 실제로 목도하고, 그것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공정을 상상해본다. 안도 다다오는 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기 때문에, 그 건물들이 지어지는데 얼마만큼의 수고로움이 들었는지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건물을 디자인한 건축가의 일생 또한 알고 있다. 저런 건물을 디자인해낸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저 건물에 과연 그 건축가의 어떤 삶이 녹아 들어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런 건축가의 삶과, 그 삶이 녹아있는 건축물들을 통해 안도 다다오의 삶의 축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일까? 그런 변화와 영향들이 담담하게, 하지만 때로는 격정적으로, 솔직한 필체로 그려지고 있다.  

 각 문단의 첫 행이 우리에게 익숙한 들여쓰기가 아니라 내어 쓰기로 되어있는 방식이 신선하고 독특하다. 책의 말미에는 책에서 언급된 건축물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챕터의 말미에 실려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저자가 이 책이 건축물에 대한 것이 아닌, 순수한 여행담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주장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류는 지역과 문화에 따라 완벽하게 다른 사고방식으로 삶을 산다. 때론 같은 인간이 아닌 외계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작가는 남자와 여자를 금성인과 화성인으로 비유하기도 했지만, '타인' 이란 완벽하게 새로운 또 하나의 '세계' 인 것이다. 안도 다다오는 이런 또다른 세계와의 끊임없는 부딪힘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완성시켜 갔다. 도시방황. 인생은 어차피, 끊임없는 방황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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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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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에일리언' 이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내가 초등학교 무렵이었을까? 늦은 밤,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아빠옆에 누워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휴일 밤에 방송되던 '에일리언' 을 보았더랬다. 거대한 외계 행성, 괴기한 배경 사이로 바닥에 가득한 투명한 젤리같던 에일리언의 알들. 그리고, 사람의 얼굴에 붙는 에일리언의 유충 '페이스 허거'. 그리고 사람의 배를 뚫고 나오는 새끼 에일리언과 번들거리는 긴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입 안에 또 입이 있는 괴기한 디자인의 어른 에일리언. 내가 '그로테스크' 라는 느낌을 받았던 건 바로 그 순간이 최초일 것이다.  

 79년에 처음 발표되, 4편까지 등장한 에일리언은 바로 이 책에서 나오는 '그로테스크' 의 정의에 가장 합당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연구 자료들과 개념과 용어에 대한 설명들을 통해 가장 많이 떠오른 작품이 바로 이 '에일리언'과 에일리언의 아버지이자 현대 미술가인 'H.R 기거' 였고, 일본 만화작가인 '이토 준지' 또한 자주 머릿속에 떠올랐다.  

 제목처럼 이 책은 우리가 막연히 알고 사용해 오고 있는 단어인 '그로테스크' 라는 단어를 미학적으로 접근해 풀어나간다. 단어나 용어는 세월에 따라 그 쓰임이 다르다. 특히 미술이나 문학에서는 더 그러한데, 우리가 잘 알고있는 '고딕''르네상스''로코코''로마네스크''아라베스크''낭만주의''인상주의''초현실주의''사실주의''극사실주의''아르누보''아방가르드''모더니즘''포스트 모더니즘'..등등 단어를 그대로 풀이해서는 대체 용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 일련의 용어들은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시대, 사회적 배경과 그 중심이 되었던 인물과 사건들, 작품들에 대한 지식이 충분해야만 똑바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다. 

 특히 '그로테스크' 라는 단어는 더욱 그렇다. 이 용어 또한 다른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후대에 만들어졌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그 의미와, 의미가 포괄하는 범위가 변해왔다. 특히 그로테스크는 위에 언급한 다른 용어들과 달리 뚜렷한 형식이나 틀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작품에 흐르는 이미지와 단어가 사용되었던 과거의 문헌들을 바탕으로 특징을 찾아내야 했다. 르네상스나 인상주의의 경우엔 그 시대와 환경이 요구하는 일련의 지향점이 있어왔고, 그 시대의 작품들엔 동일한 코드가 있다. 예를들어 르네상스는 '고전으로 돌아간다' 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고전주의와 그 맥을 함께 하며, 사상, 문학, 미술, 건축 등 모든 분야에서 다른 사조와 구분되어지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하지만, '그로테스크' 라는 단어는 그러한 특징을 지닌 미술적 사조나 화풍이라기보다, 이미지와 감정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로테스크는 모든 시대의 모든 작품들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고, 발견되기도 한다. 저자는 특히 16세기에 그 용어가 정의되고,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한 부분에서부터 접근을 시작한다. 과연 어떤 작품에서, 어떤 분위기와 느낌을 '그로테스크' 라고 정의했을까? 16세기 로부터의 수많은 문학 작품과 미술작품, 비평집들을 예로 들어가며 '그로테스크' 를 정의하기 위한 위대한 노력이 담겨있다. 

 그로테스크는 형식, 효과, 이미지, 상상 등 모든 것을 망라하는 거대한 '위화감' 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서양인들이 처음 중국문화를 접했을때, 중국풍의 작품을 그로테스크라고 받아들이기도 했고, 기독교 문화가 서양을 지배하고 있을땐 악마주의의 작품을 그로테스크라고 받아들이기도 했다. 인간과 기계의 조합 또한 그로테스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고, 인간과 동물의 결합 역시 그로테스크라고 할 수 있을터다. 뿐만 아니라 글의 형식과, 문장의 분위기를 통해서도 그로테스크를 느낄 수 있다. 위에 언급한 에일리언의 디자이너 'H.R 기거' 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을 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 카프나와 러브 크래프트 같은 소설가였다. '글' 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 책 역시 미술작품들 보다는 소설들을 예로 들며 그로테스크를 설명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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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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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 이 의견에 딱히 반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맞다. 그림은 시와 같다. 시 또한 아는만큼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들이라면, 학교다닐때 배웠던 시의 내용들을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화자가 처한 입장이라느니, 단어가 가지고 있는 함축적 의미라느니, 시 속에 들어있는 화자의 심정이라느니, 작품의 외적 상황과 내적 상황이 어떻다느니 등등은 기억할 것이다. 그런 작품에 관한 '지식' 들을 알고 시를 접하면, 새삼 그 시가 가지고 있는 깊은 내용들이 또렷하지는 않더라도, 비교적 쉽게 이해되곤 했다.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단어 하나가, 이중, 삼중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인이 처한 환경을 알아내고, 그런 상황속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문장들을 적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탄과 경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도 시와 같다.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된 재료와 기술까지 알 필요는 없다. 붓질을 어떻게 했고, 색을 어떻게 혼합했으며, 어떤 모질의 붓을 사용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이다. 광활한 네모난 백지를 채운 수많은 것들. 그것들이 모두 화가의 마음이고, 정신이고, 대화이다. 시인이 문장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했다면, 화가는 하얀 백지 안의 그림들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시의 단어 하나 하나가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듯 고르고 고른것들이듯, 그려진 사물 하나 하나가 혈관을 찢어 선혈을 붓에 찍어 그려내듯 고르고 고른 것들이다. 화가의 눈에 보여진 세상이 화폭 안에 그대로 담겨있다. 

 '눈' 은 '뇌' 와 같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가장 먼저 뇌가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눈이 만들어 지는데, 마치 뇌에서 더듬이처럼 두개의 눈이 비죽이 솟아나온다. 눈은 피부 밖으로 돌출되는 뇌인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보고싶은 것' 만 보고, 때로는 보이는 것을 자신의 머리속에서 재구성 하기도 한다. '생각하는 대로 보이는 것' 이다. 그렇기에, 화가가 보고, 화폭에 옮긴 그림들은 화가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세상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보는' 사람들 또한, 자기가 보고싶은 대로 그림을 보게 된다. 화가의 머릿속에서 재구성 된 세상이, 그림을 보는 관객들의 눈을 통해 머릿속에서 또다시 재구성 된다. 당연히 보는 사람들의 지식과 감정에 따라 그림의 인상은 변화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림과 글자를 동일시 했다. 선비들은 의관을 정갈히 하고, 정성스레 먹을 갈아 글을 쓰듯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썼다. 획 하나 하나에 넋을 담듯, 매화 가지와 대나무 줄기를 그려내고, 난을 쳤다. 화폭에 담긴 그림들은 화가의 넋이 담겨 살아있는 듯 했다. 우리 조상들의 그림은 비슷한 시기 서양의 그림들과는 완벽하게 그 궤를 달리한다. 서양의 그림은 기법 위주로 발달했다. 캔버스 전체를 꼼꼼하게 메꿔나갔고, 그 안에 그려질 사물들에 정신을 투영했다. 동양의 그림은 정서 위주로 발달했다. 시원하게 뻗어나간 매화는 하얀 여백 위에 둥실 떠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속에서 선비 정신의 웅혼함이 담겨져있다. 

  

 

 

 

이 책은 우리 조상들의 옛 그림들을, 그림의 화제에 따라 사계절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작품의 소개 방식은 위의 그림처럼, 먼저 한페이지에 도판이 실려있고, 뒤에 그 도판에 대한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는데, 간단히 작가에 대한 소개와 그림에 그려져 있는 화제들에 지면을 할애한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이 책의 저자이신 손철주 선생의 감상이 자리잡고 있다. 즉, 그림에 대한 강의나 상세한 설명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감상이 대부분인 것이다.  

 손철주 선생은 그야말로 미술에 대해 대단히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아는 사람' 이다. 그런 저자가 자신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림을 보며 받은 감상을 그대로 가감없이 적어 내려감으로써, 자연스럽게 '그림 보는 법' 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고수의 감상법' 을 어깨 넘어로 배워나가는 기분이다. 저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아쉬운 점, 벅차 오르는 점, 연상되는 것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저자의 풍성한 감성과 지식에 경도되어, 즐겁게 화랑을 함께 거니는 기분이었다.  

 예술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어떤 감성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동양과 서양의 문화는 그 뿌리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당연히, 서양화와 동양화를 감상하는 방식 또한 꽤나 다를터다. 이 책은 특히 우리 조상들의 그림이 실려있고, 그림 속에서 우리 문화가 가지고 있는 정신과 감정선을 좇는 감상법을 따뜻한 말투로 알려주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전에 보이는 만큼 보인다. 이 책 안에 실려있는 수많은 도판들은 우리에게 먼저 보는 눈을 길려줄 것이다. 그리고, 글들 또한 잘 읽어 나가다 보면, 그림을 '읽는 눈' 또한 충분히 길러주리라고 본다. 

 따뜻한 우리 조상들의 그림과, 세상을 보는 조상들의 따뜻한 시각. 그것들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책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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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
김도경 지음 / 현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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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을 가지고 어떤 사물을 그대로 종이에 옮기기 위해서는, 그 사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어느정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그림을 공부하는 친구들은 인체 해부학을 공부한다. 자동차나 기차, 로봇 등을 그릴때도 마찬가지 이다. 자동차의 전반적인 구조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 화가가 그리는 자동차 그림과, 그저 자동차를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 화가의 자동차 그림은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때문에, 나 역시 이런 류의 건축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보아 왔다. 특히 한창 만화가의 꿈을 키우던 무렵엔 '무협물' 과 '역사물' 에 대한 큰 관심이 있었고, 지금도 역시 그런 작품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한국 전통 건축물에 대한 책들은 차곡차곡 모아오고 있다.  그 중 현암사의 건축 서적들은 '전문지식' 의 범주 안에서는 최고라고 할 만 하다. 뭐 사실 '전문 서적' 의 카테고리 안에서 '현암사' 라는 브랜드 파워는 두 말 할 나위도 없으니, 불필요한 문장일수도 있을터다.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은 특별히 한국 건축들의 공학적인 기술에 많은 비중을 둔 책이라 할 수 있다. 인류가 가혹한 지구의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몇가지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단연 '집' 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비 바람을 막아주고, 각종 포식자들로부터 몸을 보호하며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휴식' 을 취할 수 있는 공간. 인류에게 있어 '건축물' 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인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건축에 대한 공학적 지식을 쌓아왔다. 수학 같은 학문도 건축을 위해 연구되었고 개발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유희의 동물이다. 태생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인류가 만들어내는 건축물들은 튼튼할 뿐 아니라 아름답기도 하다.  

 한국의 건축물 중 가장 신기한 부분은 어디에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거대한 지붕이다. 한국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지붕이 가장 아름답고 신비하다. 켜켜히 쌓인 기왓돌과 유려한 곡선. 그 무시무시한 무게를 수백년간 지탱할 수 있는 원리는 과연 어떤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이 책 또한 지붕에 대한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계가 뚜렷한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습한 편이었다. 추위와 더위는 물론 눈과 비, 바람, 게다가 습기까지 막아야 했다. 게다가 산도 많다. 수많은 동물들과 곤충들로부터도 몸을 피할 수 있어야 했다.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지붕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으며,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요소로 발달하기도 했다. 지붕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것을 지탱하는 기둥 또한 강해져야 했다.  

 이 책은 그렇게 조상들의 지혜가 녹아있는 책이다. 당시엔 지금처럼 공학 계산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건축공학에 수학이 체계적으로 들어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고대로부터 꾸준하게 축적된 지식들과 지혜들이 모여 그 토대를 어느정도는 구성하고 있었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고려시대 정칠각형을 그리는 방법이나 원형, 장방형 중심으로 그려진 평면도, 치수 재는 방법 등은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절묘하다. 작도기나 콤파스 같은 것들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각도를 재고 원을 그리는 방법들은 끊임없이 개발되어 온 셈이다.  아치가 가지고 있는 인장력이나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힘을 전달하는 각도 등을 인류는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축적해온 것이다. 너무도 신비한 인간의 지혜. 너무나 뛰어난 우리 조상들의 지혜. 인류의 지혜를 너무나 쉽고 편하게 접해볼 수 있는 책. 엄청나게 많은 사진들과 보기 쉬운 설명용 일러스트들이 가득해서 건축에 전혀 식견이 없더라도 충분히 즐길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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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의 영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유 속의 영화 - 영화 이론 선집 현대의 지성 136
이윤영 엮음.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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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신간 평가단이 아니었으면 절대 보지 않았을 책. 

 개인적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아주 좋아하지도, 아주 싫어하지도 않는 중간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주로 극장에 찾는 이유도 데이트 아니면, 상상력을 거대한 화면에 담아낸 SF나 판타지류를 보기 위해서이고, 연애를 등한시하는 최근 얼마간은 극장에서 본 영화는 손에 꼽는다. 난 영화를 접할땐 문학이나 만화등과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한다. 거기에 시각적인 효과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다. 눈으로 즐기는 영화인데 글과 같이 스토리 텔링만 놓고 즐긴다는 것은 뭔가 좀 아쉽고 아깝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는 이야기는 물론 화면, 음향, 배우의 연기까지 모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렇게 단편적인 조각들로만 접했던 [영화]. 이 책은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쉽게 접하기 힘든 이론서적일뿐더러 기존에 통용되던 영화에 대한 패러다임을 부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이 담겨있는 책이다.  

 '이론 선집' 이라는 카테고리 답게 이 책은 여러 영화 이론가들이 영화를 나름대로 정의한 것을 모은 책이다. 1929년에 발표된 이론부터 시작되어 챕터가 진행될수록 1992년에 덧붙여진 내용까지 아우른다. 책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 이론가들을 끊임없이 영화를 다른 무언가와 빗대며 영화에 대한 본질을 파헤쳐 간다. 일본의 하이쿠부터 시작해서 연극, 소설, 사진에 이르기까지. 예술로서 접근하기도 하고, 예술과는 별개로 접근하기도 하며, 촬영 기술을 다루기도 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다루기도 한다.  

 때문에 사실 영화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료한 대답을 얻기를 힘들다. 영화는 언어라고 하면서도, 예술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아니라고도 한다. 영화가 언어라면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장에서는 영화는 예술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지만, 예술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의 각 챕터들은 서로 다른 이론을 가진 완벽히 다른 각각의 영화에 대한 접근이라고 봐야 옳다. 때문에 초반에는 자꾸 앞  이론과의 연관을 찾으려고 애쓰는 바람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지만, 각 챕터를 별개의 책으로 보게 된 뒤로부터는 술술 잘 넘어갔다. 이런 이론 선집을 접해보지 못했던 개인적인 오류였던 셈이다. 

 이 책은 각 챕터별로 영화를 이론적으로 파고든 포인트 부터가 전혀 다르다. 물론 가장 초반에 등장하는 1929년에 씌여진 '영화의 원리와 표의문자' 챕터는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개념 전체를 아우르는 도입부와도 같은 챕터이지만, 뒤로 갈수록 영화의 한 부분에 집중하게 된다. 그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점점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아가게 되는 것이다. 가장 첫 챕터에 씌였던 칼럼은 영화를 일종의 함축적인 문자의 개념에서 접근했다면, 뒤로 가서는 영화 자체가 개념과 관념 전체를 표현해내는 일종의 행위로 본 것이다. 문자 - 언어 - 개념 그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해오고 본질 자체가 변화해가는 영화라는 매체를 보는 것은 상당한 재미였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단어들이 결코 어렵지 않게 쓰여졌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오히려 다른 영화 기법서들처럼 이런저런 전문용어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고 있는 수많은 영화 제목들이나 수많은 영화 관련 인물들의 이름이 가장 어렵게 느껴질 정도로 쉽게 잘 풀이되어 있다. 가끔 등장하는 전문용어들도 굉장히 쉽게 풀려 있으며, 탁월한 이론가들 답게 '남들에게 풀어서 설명하는 법' 을 아주 능숙하게 행하고 있다. 물론, 번역과 구성이 무척 쉽게 되어 있어서 책 자체에 상당히 공들였음을 알 수 있다.  

 알라딘 신간평가단이 아니었으면 결코 만나보지 못했을 책이지만, 영화 전문가나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접해볼 만한 책이다. 리뷰 마감을 늦춰가며 다 읽은 가치가 충분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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