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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10 : 삼국시대 ㅣ 이중톈 중국사 10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5월
평점 :
"사실 모든 정치투쟁은 근본적으로는 다 이익을 둘러싼 투쟁이다. 이익을 다투면서 의를 얘기하는 것은 허풍과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위선' 이다. 이것이 바로 [삼국연의]의 병폐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씨본 [삼국연의]의 문제는 역사의 사실을 바꾼 데에 있지 않고 역사의 본성을 바꾼 데에 있다.
역사의 사실은 바꿔도 되지만 본성은 바꾸면 안된다."
"앞부분은 조조와 원소의 노선 투쟁이고 뒷부분은 조조, 촉한, 동오의 권력 투쟁이다. 나중에 삼국이 하나로 통일된 것은 역사의 원래 추세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그 추세를 가리키고 그 뒤편의 깊은 의미와 지배적인 힘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역사학의 임무다."
p. 263. 저자 후기 중.
중국 문화권에 걸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비, 조조, 손권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적어도,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나, 영화로도 수차례 만들어진 적벽대전, 제갈량이 등장하는 삼고초려 정도도.
우리가 자주 쓰는 고사성어의 대부분도 연의에서 빌려온 것들이 많다.
헌데, 중국 역사를 크게 나눌때 삼국시대는 없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때 비록 대충 배우는 것일지라도 중국 역사를 겉핥기로 싹 훑는데, 삼국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진시황이 처음으로 대륙을 통일하고, 항우와 유방이 패권을 놓고 싸우다가,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고, 한나라가 당분간 쭉~ 가다가 위진남북조시대가 도래한다. 삼국시대는 이 한나라와 위진남북조 시대 사이에 껴있다.
따지고 보면 진나라 말기, 항우와 유방이 초나라와 한나라로 패권을 다투던 시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장기놀이를 통해 각인된 것 처럼, 삼국시대도 나관중-모씨본의 [삼국연의]를 통해 각인된 것이다.
이 책은 면밀히 말해 삼국시대의 전반은 후한에, 후반은 위진남북조에 속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조조는 자신이 죽을때까지 황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한나라 황제를 '끼워' 제후들을 호령했다. 한 황조가 쭉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비가 제위에 오른 후, 뒤이어 촉의 유비가 제위에 올랐고, 오의 손권이 제위에 올랐다.
조비가 제위에 오른지 45년뒤인 265년에 위가 망했고, 유비가 제위에 오른지 42년 뒤인 263년에 촉이 망했다. 손권이 제위에 오른지 51년뒤인 280년에 오가 망했으니, 한 시대로 통칭하기엔 너무 짧았고, 무엇보다 시대정신의 전환이 나타나지 않았다.
조조와 제갈량은 법가를 통해 유교 중심의 한나라의 정치를 뒤엎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대다수의 사족들은 한나라의 초기 정치로 복귀하고자 했다.
저자는 천하가 세 나라로 변한 원인도, 조조와 제갈량, 원소가 실패한 원인도 그들이 추구했던 사상이 시대가 바라는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수당 이후의 정치 노선은 원소의 '유가적 사족' 도 조조의 '법가적 서족' 도 아니고 '유가적 서족' 이나 유, 불, 도를 아우리는 서족지주였다.
하지만 그것은 위진남북조시대에 369년간의 시행착오를 거듭한 뒤에야 실현되었다."
p.253
즉, 저자는 삼국시대가 흥미본위로 각인된 것에 대해 심심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이지, 시대가 대중들에게 크게 각인된 것을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대중들의 관심과 흥미를 위해 지나치게 윤색된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 책이 정말 재미있게 읽히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연의의 대표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 시대적으로 추론하는 방법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인물의 한 사건과 인평에 대해 최소한 두가지 이상의 판본을 비교, 대조하는 방법으로 전후를 추론하고, 결론을 도출해낸다.
연의 안에서 과장되고 윤색된 부분을 도려내고, 사실을 읽는 방법을 소개하지만, 책 말미 저자의 말을 통한다면, 저자는 결코 [삼국연의]를 다시 읽기를 권하지 않고 있다.(ㅋㅋ)
당연히 유비나 조조, 제갈량, 손권 등에 대한 지나친 비하는 전혀 없다.
그들이 했던 선택들이 충이나 의가 아닌,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흐름에 대해 설명하면서 일종의 '시대적 재평가' 를 권하는 정도다. 연의의 팬들이 열폭할 이유는 전혀 없는 정도.
서두에 언급했듯, 저자는 연의가 시대정신을 왜곡하고, 흥미본위의 역사 컨텐츠는 무의하다고 설파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저자가 역사와 전혀 무관하다고 언급한다면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작가가 없어서 문제인 것이지, 라며.)
[삼국연의]를 그 대표적인 사례로 도마위에 올린 것이다.
우리가 읽는 [삼국연의] 는 삼국시대에 쓰여진 책이 아니다.
나관중의 삼국연의는 약 1500년대인 명나라 시대. 무려 1200여년 뒤에 쓰여진 책이다. 그리고 그것이 널리 퍼진 것은 1600년대 후반인 청나라시대 모성산, 모종강 부자가 수많은 주석을 붙였을 대라고 한다.
저자는 삼국연의가 그 과정을 통해 역사의 본성이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불현듯, 우리 주변의 수많은 역사소설들이 떠올랐다.
가끔 지나친 국수주의와 배타주의에 젖은 소설들이 '역사' 라는 이름으로 출간되는 것을 본다.
심지어, 교과서까지.
대중들의 시각에 영합하는 짓은 작가라면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다. 심지어, '실제 역사와 무관할리 없다' 고 주장하는 역사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라면 더더욱. 독자를 특정하고, 그 독자들의 입맛에 따라간다면, 그 시대엔 인정받을지 몰라고, 다음 시대엔 반드시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심지어, 그 독자가 대중이 아닌, 권력자라면 더더욱 안될 것이고.
(반면, 이중톈이라는 학자가 중국 관영매체인 CCTV의 TV강연을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기에, 중국 당국에 의해 키워진 어용학자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는 건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 역시 후대에 평가받겠지.)
그런 의심과는 별개로, 그의 역사서는 너무너무 재미있다.
'이중톈 중국사' 는 총 16권에 달하는 출간 예정 목록 중, 이게 10권째의 책이다.
10권의 목록 중 가장 잘 아는 분야를 먼저 골랐다.
다음으로는 시황제의 진나라가 가장 흥미가 돋는다. 여불위와 영정의 이야기 역시 대중들에게는 아주 많이 알려진 인물들이니 이중톈 박사가 산산히 깨주겠지!!
하지만, 좀 더 내려가서 춘추 전국시대인 5권부터 다시 차근차근 읽어볼 셈이다.
이중톈이라는 사학자가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것이, 공자와 맹자를 한 테이블 위에 올린 '백가쟁명' 강좌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아마 제 5권인 '춘추에서 전국까지' 역시 그 기조가 유지되겠지.
역사서지만 정말정말 쉽고 재미있다.
대중 강좌에 익숙한 사람이어선지, 시간의 흐름에 구애없이 명확한 주제별로 짧게짧게 이어가는데, 굉장히 이해가 쉽다.
물론, 이 저자가 일부러 아주아주 잘 알려진 인물들을 도마위에 올리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5권부터 10권까지 올라오다 보면 11권.12권도 나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