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남의 날개 ㅣ 십이국기 6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1월
평점 :
공왕 슈쇼는 십이국기 세계관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린 왕이다.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에서 잠깐 등장하길래 '다음편은 공왕이나 공국 기린 이야기가 나오겠군' 했더니 역시나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십이국기 시리즈는 요코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이 다음 연작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경국의 요코가 왕이 되는 이야기(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는 모험 활극에 가깝고, 태국의 기린 다이키를 통해 전해지는 태왕 교소의 이야기(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는 신화나 전설, 안국의 연왕의 이야기(동의 해신 서의 창해)는 대하 역사물 느낌이라면, 공왕 슈쇼의 이야기는 버디 무비풍의 이야기이다.
왕이 없어져버린 공국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었지만, 슈쇼는 워낙 부잣집에서 자라 여전히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 슈쇼는 그 안에서 상당한 부조리를 느끼게 된다. 주위의 이웃들은 날이 다르게 수척해져가고, 요마의 습격에 빈번하게 죽어나가지만 자신과 가족들은 부유하고 안전하다. 이 세계는 아이들의 세계가 아닌 어른들의 세계. 부조리함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어른들은 무책임하다. 자기 자신의 몸 하나만, 가족들만, 울타리 안에서만 안전하고 부유하면 만족하는 부모님을, 어른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슈쇼는 스스로 온실을 박차고 나와 대체 어른들은 이런 세상에서 뭣하고 자빠졌는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왕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봉산에 도착해 간큐와 함께 산행을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슈쇼는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도남의 날개' 또한 십이국기 시리즈 중 '히쇼의 새' 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게 된 작품인데, 재독 삼독을 해도 재미있었다.
경왕 요코가 엉겁결에 왕으로 선택받고, 수동적인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왕도王道를 따라 걷는다면, 슈쇼는 스스로 왕이 되기를 결정하고 적극적으로, 그야말로 패기 넘치게 왕좌로 향한다.
왕이 되는 길. 기린에게 선택받기 위한 지원자들이 스스로의 능력과 운을 시험받기 위한 봉산행은 그 시작부터 녹록치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인간들의 인육과 피를 잔뜩 먹을 수 있는 봉산의 요마들에게는 성찬의 날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피비린내 나는 산행에서 오만에 가까운 자기애로 무장하고, 어린아이 다운 천진함으로 생각하는 바를 서슴치 않고 내지르던 슈쇼는 간큐와의 산행을 통해 진정한 리더쉽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하게 된다.
요코 이야기는 아예 왕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소녀가 왕으로 성장하는 내용이라면, 슈쇼 이야기는 이론과 사상으로 무장된 소녀가 경험을 통해 성숙되는 내용이었다. 요코 이야기가 전형적인 성장의 플롯이라면 슈쇼 이야기는 역시 전형적인 성숙의 플롯을 가지고 있다.
슈쇼는 스스로 택한 고난과 고통스러운 경험들 속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고, 의지를 다듬고, 심지를 굳건히 한다.
경청을 배우고, 사과를 배우며, 포용을 배운다.
제아무리 훌륭한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다 한들, 현실과는 다르다.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삶은 텍스트가 아니다. 슈쇼는 올곧은 생각을 가지고 당당하게 걸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지만, 현실에서는 수많은 벽을 맞닥뜨릴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마지막 대사 한방으로 슈쇼와 공국에 대한 걱정을 상당히 덜어낼 수 있었다.
"그러면 어째서 내가 태어났을 때 오지 않았어, 이 멍청아!"
+덧: 조금 거슬렸던 부분은, 슈쇼는 전형적인 금수저라는 점이었다.
금수저로 태어나긴 했으나, 누리기 전에 다 빼앗기고 맨몸으로 흙바닥에서 굴러 왕이 되는 이야기가 요코 스토리였다면, 금수저로 태어나 그 모든 것들을 풍족하게 다 누리며 최고의 길잡이들까지 얻어 왕이 되는 이야기.... 이긴 한데, 그냥 이 책을 읽던 시기에 내 심사가 좀 뒤틀려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아하는 타이틀이라니까.ㅎㅎ
전형적인 금수저 마인드가 얄밉기도 했지만, 어른들 틈에서 무시당하는 모습은 안쓰럽기도 했고, 말수가 적은 간큐가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 것도 얄미웠으니, 밉상 둘이 어우러져 한 편의 재미난 버디무비를 이끌어 냈으니, 좋은 점수를 줄 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