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일러스트 무기 아이디어 사전 쉽게 배우는 만화 시리즈 71
사이도 런치 지음, 김재훈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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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클립 스튜디오 카페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제공받았음.

내가 만화를 처음 공부하던 무렵엔 정보들이 참 부족했다.

인터넷도 없었고, 외국 서적을 찾기도 어려웠다. 일본 만화는 이제야 막 정식 라이센스를 맺어 한국 이름으로 개명을 한 강백호와 서태웅이 해적판들을 몰아내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지망생들은 일본 동인처럼 소규모 그룹을 지어 정보를 공유했고, 그런 그룹에 참여하지 못하는 독학생들의 희망은 "코믹테크" 라는 잡지였고, 청계천 헌책방이나 고속버스터미널에 있는 수입서적 판매상들 뿐이었다.

확대복사된 아키라의 열화판과, 베르세르크의 해적판인 "불멸의 용병" 같은 만화들이 교과서 역할을 했다.

(핀터레스트와 구글 이미지, 아트스테이션,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어마어마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너무너무 환경이 좋아졌는데, 나는 왜 오히려 그림을 덜, 못 그리게 되었을까... ㅋㅋㅋ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당시에 가장 목말랐던 정보들은 당연히 "자료" 였다.

당대의 지망생, 만화가들은 카메라가 필수였다. 닥치는대로 사진을 찍어 배경자료들을 쌓았고, 코믹테크 잡지의 말미에는 언제나 편집부에서 직접 찍은 배경 자료 사진들을 실어주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명승지나 고적, 무기 같은 자료들은 언제나 부족했다.


오죽하면 나는 여행책자를 사기도 했다. (독학 지망생의 슬픔이었다. )

이 책을 보면서 그 시절이 많이 생각났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본격적인 무기 도감은 아니고, 간략화되어 이미지화 된 무기 일러스트들이 실려있는 책이다.

물론, 꽤 상세한 설명들이 곁들여 있다.

본격적인 무기 도감이 아니지만, 각 무기의 특징과 설명들이 허술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전설 속 무기들도 제법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무기의 동작 매커니즘과 제작원리, 방식도 간단하지만 언급하고 있다.


물론 무기를 그리는 스킬도 적당히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디자인, 그림은 피상적인 외관만 안다고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이디어" 를 추출해 내기 위해서는 겉핥기로라도 구조를 알아야 가능하다.

이 책은 기획의도인 "아이디어" 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 엿보인다.

웹툰의 열풍과 함께 지망생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한 시대가 됐다.

일본에 존재하는 엄청난 규모의 만화가용 서적 시장에 비할바는 아니겠으나, 오히려 후발주자인 덕에 검증된 좋은 서적들로 우리 시장을 채울 수 있다는 점이 참 감개무량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출간된 만화가를 위한 서적들은 대체적으로 퀄리티가 뛰어나고, 이 책 역시 그러하다.

다만, 모두 초보자용에 가깝다.

물론,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무기를 한 권에 담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다 정밀한 무기 고찰은 밀덕들을 위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겠지...


마지막으로, 이 책이 제공하고 있는 클립 스튜디오용 에셋이 존재한다.

용량이 꽤 되서, 책 뒤편에 적혀있는 링크와 패스워드를 이용하면 3D 모델 포즈와 고퀄리티 무기 일러스트 몇점을 제공받을 수 있다.


이렇게 변형이 가능한 3D 모델 포즈는 여러모로 쓸만하지만,

정작

무기일러스트는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게다가 고작 8점....

개인적으로는 책 내용보다 이 에셋을 더 기대했는데...

8점이라도 3D모델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다 평면적인 일러스트들이라 활용도도 낮고.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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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1
우오토 지음, 하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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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2020~21년 사이에 많이 들어봤다.

"진격의 거인" 의 뒷자리를 바로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

이사야마 하지메 이후 비슷한 뉘앙스의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천재나 귀재라는 표현을 우리보다 흔하게 쓰곤 한다.

마케팅의 일종이겠지만, 솔직히 이 작가들이 토리야마 아키라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들에 비한다면 천재나 귀재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작가들을 폄하하려는게 아니라, '천재'나 '귀재'가 갖춰야할 재능의 허들이 꽤 낮아보인다는 말이다.

이 작품 역시 일본에서 연재 당시에 천재적인 작가의 작품이라고 호들갑을 꽤나 떨었던지라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첫 장을 펼쳤다.


일단, 작화 수준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만화에는 다양한 기술과 재능이 필요하다. 작화, 연출, 서사, 인물 등.

그 중 한가지가 매우 특출나면, 다른 부분들이 다소 떨어져도 독자들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다만, 작화의 경우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다른 무엇보다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만화에서는 첫 페이지가, 그리고 첫 화가 가장 중요하다. 누구나 쉽게 꺼내서, 쉽게 열고, 쉽게 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만화를 "완독" 하겠다는 목표 따위를 갖지 않는다. 잡지에는 여러편의 작품들이 실려있고, 그 중 한두 작품 쯤은 읽지 않아도 상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격도 싸다. 그렇기에, 만화책 한권 쯤이야. 첫 에피소드만 읽고, 맘에 안 들면 쉽게 내던진다.


독자를 유혹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면서 기본적인 무기는 작화이고, 그를 보완하는 것이 연출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잡지 주간 연재만화는 2~4페이지 안에 독자를 빨아들이지 못하면 주목받지 못하고, 작가로서 데뷔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일본 만화는 그렇게 오랫동안 주간 연재 만화 시스템이 고이고 고여, 첫 페이지와 첫 화에 대한 다양한 연출기법들이 교과서처럼 정립되어 있는데, "지: 지구의 운동에 관하여" 라는 작품의 첫 페이지 역시 그런 주간 연재 만화의 공식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작화의 부족함이라는 단점을 완벽하게 숨기고, 전형적이지만 효과적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무엇을 바쳐야 이 세상의 전부를 알 수 있냐?" 는 도발적인 도입 씬 만으로 나는 충분히 빠져들어, 2권까지 정신없이 읽어나갔다.


이야기는 15세기 초반, 프랑스의 어느 한 도시에서 시작된다.

작품이 꽤나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국가 이름이나 종교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누가봐도 중세 유럽을 지배했던 가톨릭 국가들을 지칭함을 알 수 있다. 얄팍하게 감추지만, 이 작품이 주제를 진지하게 다룰 것이라는 선전포고처럼 느껴졌다.


"지地 -지구의 운동에 관하여-" 라는 제목답게 이 작품은 지동설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이단 심문관 "노바크"의 잔인 무도한 고문장면과 장래가 촉망되는 영재 소년 "라파우"로부터 이 진중한 주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이야기 전체의 도입부인 1권만으로도 구성이 매우 뚜렷하고, 사건의 개연성은 물론 캐릭터들이 획득하고 있는 핍진성도 매우 훌륭하다.

특히, 라파우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가는 모습이 상당히 진지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그 쯤 되면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인 불안정한 작화는 다소 뒤켠으로 밀려나게 된다.

만화에서 "작화" 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가독성" 때문이다.

텍스트로 이뤄진 문학작품의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첫번째 덕목은 "얼마나 잘 읽히는가" 이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해도 읽는순간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가치가 떨어지게 될 것이다. 한 문장 안에 수많은 내러티브와 함의를 담는다 해도 독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오독하게 한다면 어떠한 아름다움과 가치가 있겠는가.

만화에서 "그림" 이란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제 아무리 유려한 화력을 뽐내더라도, 독자들이 그 페이지를 통해 어떤 인물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적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좋은 "만화"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작품의 작화수준은 그림체가 안정적이지도 않고, 데셍이 정확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가독성을 망가뜨릴 정도는 아니다.

특히, 비교되는 이사야마 하지메의 "진격의 거인" 1권과 비교해본다면 더더욱.

적어도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은 공중을 붕붕 날아다니며 칼을 휘두르지도 않고, 십여명에 달하는 동료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기에 "가독성" 면에 있어서는 작화력의 우선순위가 뒤쪽으로 밀려도 크게 문제될 부분이 적다.

(오히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엽기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덜 끔찍해 보이는 장점으로 발휘되기도 한다.)



나도 가끔 생각해본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오로지 종족 번식을 위해서라면... 그래서 결혼과 출산, 양육이 유일한 이유이자 목표라면.

자식을 위해 삶을 쏟는것만이 우선순위고, 정답이라면,

지구가 돌건, 하늘이 돌건.

무슨 상관일까?


그게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기 시작한다.

성장이란, 다른말로 "살아있음" 을 소모하기 시작한다는 의미, 죽어간다는 의미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보람찼건, 허무했건, 그냥 죽음에 하루 더 가까워질 따름이다.

달리 말하면, 모든 인간은 죽기위해 살아간다.

오직 죽음을 위해 달음치는 것이 삶.

나는, 넉넉잡아 100년 뒤면,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난 적 없었던 것 처럼 완벽히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왜 살고 있지?

다른 어떤 사람들의 정답처럼 종족 번식을 위해 자식을 양육하는 것도 아닌 삶을, 왜, 영위하고 있지?

나의 선택은, 나의 삶은 "틀린" 것인가?


아마 이러한 질문은 인류가 "문명" 이라는 것을 시작한 순간부터, 언젠가 멸종할 그 날까지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한다. 혹은 부여받았다고 주장한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이번 생을 "태어나지 않은" 걸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 생을 온전히 타인을 위해 살기로 했다.

오롯하게 봉사단체만을 좇아다니며 희생적인 삶을 살고 있다.

어떤 이는 국가를 위해, 어떤 이는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이는 욕망을 위해, 어떤 이는 종교를 위해....

어떤 이는, 그냥, 태어났으니까.

그 무언가를 위해, 하루를 죽어간다.


문제는, 어떤 누군가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에, 자신의 가치를 강요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진리이고, 진실이라며.

그것은 단순히 결혼과 양육일 수 있고, 삶의 태도와 죽음 후의 세계일 수도 있다.

"불신" 은 "지옥" 이라거나 "낳지" 않으면 "멸종" 이라는 협박이 들어가기도 하고, "진리" 가 아니면 "칼" 이라는 폭력이 수반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할까??

나의 삶은, 타인의 삶보다 가치있는가? 의미있는가? 숭고한가?

그런 "가치" 를 부여할 만 한 것인가?

그런 판단을 할 자격이 있는가?

그것이, 나의 신은 너의 신보다 강하다고 주장하던 그 시절의 그들보다 진리에 가깝다고 평가하는가?

지구가 돈다는 단순한 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리보다 더 진실한가?


이 작품은 한 이데올로기가 세계관 전체를 꼬챙이에 꿰어 놓았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이로 인해 진리와 진실이 왜곡되고, 새로운 시각이 세계관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실제로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이 진리였던 시대가 있었다.

아프리카인들이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는, 여성이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어린아이는 동물과 같아서 훈육에 폭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종교가 다른 인간은 마음대로 죽여도 된다는, 동물은 고통과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인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고 왕과 귀족은 하늘이 선택했다는, 대기 중에는 에테르라는 물질로 가득 차있다는, 지구는 평평해서 계속 나아가면 절벽에서 떨어진다는, 태양과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진리" 인 시기가 있었다.

불과 5~600년 전까지도 그랬고, 개중 많은 것들은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천동설들이 코페르니쿠스적 변화 뒤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인간에게 500, 600년은 너무 짧은 시간일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한걸지도.


코페르니쿠스가 발표하고, 케플러가 검증했던 지동설은 갈릴레이로 이어졌다.

1권 라파우의 에피소드는 명백히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모티프로 보인다. 마치, 갈릴레이의 선택을 변호하는 듯한 1권의 에피소드는 기대를 벗어나는 과감한 엔딩으로 나를 깜짝 놀래켰다.

2권에서 작가는 10년을 훌쩍 뛰어넘어, 역시, 대단히 흥미로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지동설이 당대의 "평범한 소시민들" 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탐구한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는 진리를 좇는, 지구는, 인간은 신이 창조한 우주의 중심이라는 세계관 속에서, 귀족도, 학자도 아닌 쓰레기 취급을 받던 절대 다수의 하층민들은, 과연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까?



기대만큼, 그리고 화제만큼 훌륭한 작품이었다.(여전히 천재나 귀재같은 표현해는 동의하지 못하겠으나.)

앞으로의 전개도 엄청나게 기대되고, 일본에서 성황리에 완결을 지었다는 사실도 반가웠다.

적어도 수년동안 애타게 기다릴 일은 없겠구나, 싶어서... 다행이었다.



마지막 사족으로, 작품을 읽는 내내 사카모토 신이치의 "이노센트" 라는 작품이 계속 떠올랐다.

역시 중세 유럽을 다루고 있고, 굉장히 하드코어한 고어씬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과 달리 어마어마한 작화력이 장점인 작품이다.

만약 이 작품을 사카모토 신이치가 작화를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더불어, 제발 이 작품을 일본에서 어쭙잖은 실사화를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차라리 판권을 해외에서 사갔으면....BBC나 HBO같은데서 만들어줘....HISTORY채널도 좋아.

제발 일본에서만 만들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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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크러시 1 - 삶을 개척해나간 여자들 걸크러시 1
페넬로프 바지외 지음, 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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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당첨된 리뷰도서. 

솔직히 처음 제목만 봤을땐 큰 흥미를 갖진 못했다. 

'걸크러시' 라는 조어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남성중심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아온 내가 '여성의 삶' 을 다룬 책을 읽고 어떤 감상을 적을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여전히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문장과 단어를 고르고 있다.

다시 돌아가서, 이 책의 리뷰어를 모집한다는 포스팅을 처음 보았을 땐, 그닥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소개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니 조금씩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먼저 블로그에 연재 형식으로 그려진 만화 - 웹툰의 형태라는 것이 좋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흥미로웠다. 

기원전 4세기의 산부인과 의사부터 미국 원주민인 아파치 부족의 전사, 최초의 수영복을 고안한 수영선수와  2차 세계대전때 스파이로 활약했던  프랑스의 무용수, 뜬금없는 등대지기는 물론 트랜스젠더와 측천무후까지. 

어느정도 이름을 들어본 이들도 있었고, 생소한 인물도 있었다.

리뷰어에 선정되지 않아도 보려고,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도 담고, 도서관에 신청도서로 넣기도 했는데,



난 그다지 관심없는(^^;;), 색색의 굿즈들과 함께 포르르 날아와 주셨다.


총 열 다섯가지 이야기. 

그 중 마리포사는 세 명의 자매니까, 열 일곱명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목차는 아래와 같다.


클레망틴 들레_수염 난 여자
은징가_은동고와 마탐바 왕국의 왕
마거릿 해밀턴_무서운 배우
마리포사 자매_독재 정권에 맞선 자매들
요세피나 판호르큄_사랑 앞에 완고했던 여인
로젠_아파치 전사이자 주술가
애넷 켈러먼_인어가 된 소녀
딜리아 에이클리_탐험가
조세핀 베이커_무용가, 레지스탕스 활동가, 한 가정의 엄마
토베 얀손_화가, 무민 시리즈 창조자
아그노디스_부인과 의사
리마 보위_사회운동가
조르지나 리드_등대지기
크리스틴 조겐슨_셀러브리티
무측천_황제 

 

만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통적인 유럽식 그래픽 노블로, 그림만큼 글씨도 많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주 간략화된 인물 평전이랄 수 있는데, 업적을 중심으로 발랄하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그 시대를 살아간 주인공들이 결코 녹록한 삶을 살지 않았을텐데, 가벼운 필치로 경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지나친 미화나 엄숙주의는 결코 찾아볼 수 없고, 곳곳에서 깨알같은 유머들이 툭툭 터진다.  

그림체는 장 자끄 쌍뻬를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유럽식 신문 카툰인데, 선이 무척 매력적이고, 인물들의 개성도 아주 잘 담아내고 있다.

한 인물의 이야기가 끝나면, 두 페이지 전체를 튼 일러스트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인물의 아이덴티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아주 좋은 일러스트레이션들이다. 나에게 날아온 굿즈들 중에 하나로 B3 정도 크기의 포스터가 그런 일러스트 중 하나로 구성되어 있었다.

   

목차를 보면, '애넷 캘러먼' 의 일러스트레이션임을 한눈에 알 수 있을터다.



 역시나 여전히 조심스럽게 감상을 적어보련다.

나는 우리 사회가 가부장적인 권위주의 사회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교육을 받아왔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여권 신장이 우리 사회 전체의 숙제 중 하나라는 점 역시 인식하고 있다.

다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사회적 공감대와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을 끌어 내리는 방법이 아닌, 여성들이 끌어 올려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남녀가 함께, 우리 공동체 전체가 함께 연구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은 초기라 다소 첨예한 갈등국면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조금 누그러지리라 본다. 

여성불평등은 인류 역사와 함께 태동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고, 인권에 대한 인식, 평등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은지는 고작 몇백년이다.계급, 인종, 성별 그 모든 것에 대한 평등 운동은 인류 역사에 비추면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아주 좋은 여성주의 입문서로 기능할 것이다.

지금보다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더 열악했던 과거, 시대의 편견을 직시하고 정면으로 받아낸 여성들의 이야기. 

모든 인물들의 삶이 인상적이었지만, 여성이고 동시에 아프리칸이었던 조세핀 베이커와 리마 보위가 가장 오래 남았다.

1906년생인 조세핀 베이커는 여성이면서 흑인이었고, 댄서였다.  

그는 자신의 여성성을 십분 발휘하여 과감한 공연을 펼쳤고, 그 덕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에서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모국인 미국에서는 여성이고 흑인이라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 
결국, 자신에게 큰 사랑을 보내줬던 프랑스를 사랑했고, 결국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으나, 기다렸다는 듯이 나치 침공 ㄷㄷ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표현했지만, 얼마나 상심이 컸을까??

진정한 의미의 멘탈붕괴였을텐데, 조세핀 베이커는 사교계 인맥을 이용해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비밀 요원으로 활약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삶이 드라마틱하지만, 조세핀 베이커는 그야말로 켄 폴릿 작품 급으로 드라마틱하다. 


리마 보위는 상대적으로 가장 최근 인물이다. 1972년생으로 2011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분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우리 사회는 수많은 차별의 연합체이다.

인간은 너무나 어리석어서 아주 작은 차이를 구실로 차별한다. 

리마 보위가 태어나고 자란 라이베리아 역시 그랬다.

아프리카는 서구 열강들의 무분별한 식민통치의 산물로 적대하는 여러 종족들이 한 국가, 한 도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이슬람교와 기독교 갈등까지 있다. 부족갈등과 종교갈등으로 내전이 끊이지 않았고,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은 노인과 아이보다도 여성이다.   

폭력, 학대, 내전, 임신, 

                                

리마 보위는 한국 일일 드라마급 파란만장이다.

더 다행인것은 노벨평화상으로 보상받고, 앞으로도 쭉 활약할 사람이라는 것.                            

이 책 덕에 알게되어 구글링을 통해 많은 정보들을 접했는데, 정말 엄청난 사람이다. 

모든 평등 운동은 하나로 통한다는 것.

벨 훅스의 페미니즘 모토인  "모든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 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다.


일련의 사회적 운동이 갈등을 야기할 수는 있다.

아니,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정한 권리는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비로소 자기것이 되는 것처럼, 갈등 자체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이 또다른 차별로 점철되어서는 안된다. 남성을 차별하는 것으로 남녀 평등을 이뤄낼 수는 없다는 의미다.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부분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한다.

최근들어 나 역시 동참하고 있는, '그녀' 라는 대명사에 대한 문제의식 같은 부분.

이 책에는 '그녀' 라는 인칭대명사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3인칭 대명사는 모두 '그' 로 통칭되어 있다.

이는 최근에 제기된 우리 언어의 성 차별 문제와 맥을 함께한다.

우리 언어는 외국에 비해 남녀 구별이 뚜렷하지 않다. 때문에, 남녀를 구별하는 단어에서 성차별적 요소가 더욱 도드라진다.

'그' 와 '그녀' 가 대표적이다.

'그' 는 3인칭 대명사로 기본형인데, 유독 여성만 접두어가 붙어 '그녀' 로 변형된다.

'그남' 은 없다. 처음부터 없었다. 

남성이 '기본형'이고, 여성은 '파생형'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명백히 차별적이다.

그러면 해결법은?

간단하다.

'그녀' 를 안쓰면 된다. 

기본형인 '그' 만 쓰면 된다. 굳이 남녀를 나눌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특히나 '그녀' 는 문어체이기 때문에, 굳이 안써도 된다. 세상의 모든 '그녀'를 '그' 로 바꿔도 문법이나 맥락면에서 전혀 껄끄러움이 안느껴진다.  그러면 외국어 Her 는 무엇으로 대체하나?? '그' 라고 하면 된다. him 도 '그'  라고 하면 되고.

우리 말의 인칭대명사는 원래 남녀구별이 없다. 외려 3인칭에만 있는게 이상한거였다.

다행히 이런 문제제기는 폭넓게 호응을 얻어 많은 텍스트들에서 '그녀' 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공감대를 구할 수 있는 부분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면 된다.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은 이제 막 두 다리에 힘을 느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조금 어려운 단어를 익혀 세상 모든걸 물어보는 세살 아이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엔 리마 보위가, 조세핀 베이커가 없었을까??

아니다. 우리에게도 신사임당, 논개, 유관순, 남자현 열사 같은 분들이 계셨다. 다만, 이렇게 발굴할 생각조차 '덜' 했을 뿐.  

김영하 작가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 했고, 우리(남성)들은 가만히 '들어야 할 때' 라고 했다.

비록 듣자마자 바로 완벽히 동의할 수는 없더라도, 우리 사회의 남성으로서 충분히 곱씹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볼 만한 문장이다.

그리고, 이 책이 그 이유가 조금은 될 수 있을터다. 

단순한 걸크러시가 아니다.

은연중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차별을, 그것을 품고 있는 사회를, 모두 CRASH 하기 위한 CRUSH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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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타카코 씨 2
신큐 치에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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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코믹스 측에서 책을 보내주셨다! @.@ 

AK출판사(AK커뮤니케이션즈)는 코믹스 보다는 작법서로 잘 알고 있었다.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만화 작법서와 창작 활동에 큰 도움을 주는 자료서들을 뚝심있게 펴내는 출판사.

'들녘 출판사'의 '판타지 라이브러리' 시리즈의 출간이 멈추면서, AK 커뮤니케이션의 '트라비아북' 시리즈가 서브컬쳐장르의 아카이브 역할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작법서와 트라비아북 모두 소재가 다채로운데, 메이드, 슈퍼히어로부터 전차, 크툴투까지 괴랄하고 아스트랄한 경지까지 뻗어있다.

그야말로 오타쿠들을 위한, 오타쿠의 자료들인데, 코믹스쪽에서 출간해내는 책들도 덕스럽긴 마찬가지다.

나는 요코야마 미츠데루의 일본 역사 만화들을 통해 AK의 만화들을 접했다.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장편 일본 역사물은 물론, 데츠카 오사무의 걸작집도 읽어봤지만, 이런 평범한 코믹스도 출간하는줄은 전혀 몰랐다. ㅋㅋㅋㅋ


이 작품은 정말 너무 소소한 일상물이다. 작품이라고 하기보다 소품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꽤 잘되는 레스토랑의 직원인 타카코가 출근해서 일을하고, 동료 직원이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등 평범한 일상속의 소소함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이야기이다.

1권을 읽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짧은 에피소들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최근들어 우리나라에 '소확행' 이라는 단어가 유행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90년대에 썼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라는 에세이에서 파생된 이 단어가 수십년이 지난 한국에서 세삼스레 유행한다는게 좀 의아하지만, 우리 사회가 일본 사회를 10여년 차이로 뒤따르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어느정도 수긍이 가기도 한다.

이제 우리 사회도 뜬구름 잡는 듯한 큰 희망이나 바램보다 일상에서 손에 꼭 쥘 수 있는 작은 것들을 통해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쪽으로 변화했다는 뜻이리라. 

이 책은 그러한 '최근' 의 '우리' 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책이다.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들.


사람의 삶에 뭔가 의미가 있을까?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장소에 가서,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오직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던질 수 있는 질문이며, 오직 살아있으므로 생각해볼 수 있는 의문이다.


또 다른 우문을 던져보자면, 

굳이 삶에 의미가 있어야 하나?? 

단지, 살아있음. 그 자체가 의미가 될 수는 없을까?


우리가 삶 속에서 반드시 뭔가를 이뤄야 할까?

하루하루를 챗바퀴처럼 돌면서,무엇을 위해 괴로움과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지워내야하나??


왜 우리에겐 살아가는 이유가 필요할까?
사실은, 이유따위 없어도, 이렇게 잘 살아갈 수 있는데.

살아있기에 이유를 찾고, 이유를 찾기위해 살아간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자연의 거대한 섭리의 하나로서, 치열하게 의미를 찾고, 이유를 탐구하며 살아간다.
오직 인간만이 궁금해하는 그것.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결코 필요하지 않은 그것.
오직 나에게만 궁금하고, 오직 나만이 찾으며, 내가 숨쉬는 데에 결코 필요하지 않고, 내가 밥먹는 데에 결코 필요하지 않은,
내 삶의 의미와 이유.
타카코씨의 삶은 어쩌면 그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서든, 하루하루를 만끽하는 삶.
그래,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엔 운도 좋게 속 편한 가정에서 태어난, 배부른 돼지만이 느낄 수 있는 게으른 만족감을 한껏 즐겨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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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서유요원전 서역편 4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김동욱 옮김 / 애니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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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는 자와 탐하는자, 뺏기려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 오고가는 은원. 정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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