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서의 꿈 십이국기 7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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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후유미가 창조한 십이국기의 세계관은 지독할 정도로 불합리하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며, 불완전하다.

이른바, '살아있는 신' 들이 존재하는 세상임에도 지독하게 불합리하고, 때문에 지독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십이국기'의 세계관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

이것은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불합리성과는 개별적으로 작가가 확실하게 완성시킨 세계관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 

십이국기는 한 세계관 안에서 꾸준하게 장편과 단편 타이틀이 출간되는데, 서사적으로 연결되는 타이틀이 있고 그렇지 않은 타이틀도 있다. 장편을 통해 국가관이나 리더론의 철학적, 논리적 빈약함과 전투에 있어서의 전략, 전술적 개념의 부재가 드러나고, 단편을 통해 서서히 보충된다.


조금 더 비약하자면, 초기에 설정한 세계관의 빈약함 때문에 뒤로 갈수록 철학과 논리를 그 안에 맞추려고 아등바등하는 느낌도 든다. 물론, 오노 후유미라는 작가가 지적인 작가이기 때문에 작품이 거듭될수록 세계관은 완성되어 가지만, 필연적으로 작품 안의 세계는 더욱 불합리해지고, 등장인물들의 삶은 괴로워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연약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전쟁에 관한 설정이다.

십이국기 세계관 안에서 '국가간의 전쟁'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타국에 대한 내정간섭조차 하지 않고, 그 국가가 무너져도 소극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뿐이다!!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세계관 안에서 전쟁의 개념은 축소되고, 군인이라는 존재는 기껏해야 요수를 사냥하는 일이 주 업무인 '사냥꾼'에 불과하게 된다. 

무관의 역할이 극히 미미해지며 세계관 내에서 무관이 이름을 떨칠 계기가 없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요수를 사냥하는 것으로 이름을 떨친다는 설정은 있을 수 없다. 외려 요수만을 사냥하는 직종군이 모여사는 그룹이 있고, 이런 인물들은 보통 사람들에겐 혐오직군으로 기피대상이며 봉산 근처에 자신들만의 부락을 만들어 모여산다.(※도남의 날개) 뛰어난 장수는 요수를 '사냥' 하지 않고, '제압' 해서 길들인다.(※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등) 

 

결국 십이국기 세계관의 군인들은 왕이 정치를 그르치면 나타나는 요수들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위군이란 의미이다. 이러한 방위군들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세력은 금군일터. 경국의 이야기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편제가 공개된 적이 있었는데, 타국이 침략할 리가 만무한 궁전 수비병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오로지 내란에 대비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즉, 타국과의 전쟁이 아니라, 자국민을 죽임으로써 역할을 다하는 금군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지만, 십이국기 세계관 안에서는 세계가 뒤집히지 않는 이상 적국이 쳐들어 오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국가간의 전쟁이 없는 세계관이라면 상비군이 존재할 필요조차 없다.

실제로 상비군의 개념을 갖게 된 것도 로마 공화정 말기인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고안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대제국 로마도 상비군이 아니라 전쟁때마다 집정관의 명령에 의해 소집되는 비정규군으로 거대한 국가를 충분히 일으켰고, 저 강대한 게르만족의 위협이 이탈리아 전역을 침탈한 18세기 말엽이 되어서야 상비군의 개념이 자리잡혔다. 


국가간의 전쟁이 개념조차 없는 세계관 안에서, 게다가 '구름 위' 라는 천혜의 요새 안에 있는 궁전을 지키는 군사가 수천에 달한다는 설정은 솔직히 그 자체로 큰 오류이기도 하다.

심지어, 십이국기 세계관은 지독할 정도로 정체되어있기 때문에 시민의식이 발전할 계기가 없다. 지배층이 신에 의해 간택된 불멸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의 반란 따위는 꿈도 꾸기 어렵다. 설사 왕이 위왕이나 가왕이라 하더라도 아래로부터의 반란은 일어나지 않는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편은 가장 개연성이 떨어지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무관의 공적인 업무는 변방에서 요마, 요수들의 침입을 막는 역할일 것이고, 부수적으로 내란에 대비해 자국민들을 감시하는 것일 터다. 실제로 십이국기 세계관의 무관은 왕실 소속으로 지방 영주에게 파견되는 형태이다. 지방 영주는 사사로이 장수를 거느리거나 왕권 없이 군대를 소집할 수 없다.(※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하지만, 당연하게도 왕이 무너지면 장수는 어쩔 수 없이 그 지방 제후의 휘하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가장 강력한 내란의 불씨가 되는 것이다. 

그런 무관이 과연 왕과 함께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반 관료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비슷한 직급에 올라갈 수 있을까? 

또 하나, 타국과의 전쟁이 없는 세계관에서 대인對人용 전술이 개발될 리는 만무하다. 개발 되었다면, 이 또한 자국민들의 반란을 대비한 것일 터다.  


이번 작품집에서 이러한 세계관의 설정을 다소 보완할 수 있는 개념이 하나 등장한다.

십이국기 세계는 국가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평화의 시기가 그리 길지 않았다" 는 점이다.

기린에 간택된 완벽한 왕도 치세가 20~30년에 그치고 만다는 설정이 이번 단편을 통해 등장한다. 

아무리 왕기가 있고, 천기까지 받아 불멸의 삶을 누리는 왕이 된다지만, 그렇다고 그가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니다.

선적에 오르지 못한 가족과 친지, 지인들이 수명을 다하고 내정이 안정되고 반복적인 일상이 시작되면 인간은 권태감에 빠져들고, 의식있는 관료들은 왕이 천기를 잃을 것을 대비하기 시작한다.

왕이 천기를 잃으면 요수와 요마들이 출몰할 것이고, 관료들은 봉토를 가진 봉건제후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영지를 지켜야 한다. 성을 지키는 상비군도 있겠지만, 왕기를 잃는 난세가 되면 그만으로는 부족할 것이기에 군벌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왕이 천기를 잃고 기린이 병들면 난세가 시작된다.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요수와 요마들이 출몰한다. 봉건제후들은 더이상 내정을 신경쓸 필요가 없기에 영지로 돌아가 영민들을 보호하는데 힘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주들은 자기의 안위만을 챙길 것이다. 대부분의 관료들은 이미 왕보다 훨씬 오래 삶을 누린 존재들일 것이고. 

다음 왕이 왕위에 오르면 난세동안 백성들을 보살핀 제후들을 치하하고 일부는 고위 관료로 임명할 것이다.

그 제후와 함께 한 군벌들 중 일부는 공직을 받고, 선적에 들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배제된 관료들이 빈 자리를 메운다.

그 과정 중에 일어나는 혼란을 수습하는 것 역시, 왕의 책임. 

노회한 정치꾼들은 이 세계 안에도 분명 존재한다.

 

이번 작품집에서는 이렇게 십이국기 세계에서의 왕의 내정에 관한 단편들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신과 다름없는 왕. 하늘에 선택받은 왕.아무리 실정을 저지른다고 해도, 하늘이 선택했던 것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살아있는 신과 같은 왕. 이러한 왕에게 반기를 드는 과정과 그로 인한 파급효과,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들이 펼치는 정치와 내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슬몃슬몃 읽을 수 있어서 특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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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예 세계신화총서 9
예자오옌 지음, 김은신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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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들이 새로 쓰는 21세기를 위한 만신전萬神傳' 이라는 타이틀을 보았을 때, '세계신화총서' 라는 이 시리즈의 정체성이 좀 궁금했었다. 신화나 전설, 민담 등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좋아했기에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중국의 신화들 중 일부를 재해석해 일종의 각색을 한 작품인 듯 했다. 본래의 신화가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나 배경의 이미지, 의도 등을 그대로 가져오되 이야기의 흐름을 통일성 있고 세련되게 다듬고, 인물의 변화와 성장에 있어서도 인과관계를 명확히 해서 '신화' 가 가지고 있는 모호성을 최대한 줄이고 선명성을 높였다.


 이야기는 '유융국' 에 전리품으로 끌려가는 '항아' 와 '말희' 라는 여인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대륙을 엄청난 기세로 점령해 나가던 군사국가인 유융국은 남자들의 지위가 거느리고 있는 여성의 수에서 결정되는 국가로, 쇠락일로를 걷고 있던 항아와 말희의 여인족을 노련하게 공략했다. 용맹하게 맞서 싸우던 여인족의 전사들은 모두 죽이고 어린 여인들만 전리품으로 취해 포로로 끌고 갔는데, 갓 열두살이 된 항아와 말희 역시 그 안에 있었다. 말희는 유융국에서도 지위가 높은 '조부' 라는 장인의 눈에 들어 먼저 선택되어지고, 비쩍 말라 볼 품 없던 항아는 오래 전 전쟁에서 다리를 다친 절름발이 칼잡이 '오강' 에게 선택되어진다.

 항아는 오강의 일곱번째 부인이 되었다. 오강의 부인들과 자식들은 항아를 따뜻하게 맞아주진 않았지만 딱히 못되게 굴지도 않았다. 오강이 첫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인 오능과 오용, 둘째와 셋째 부인에게서 얻은 딸인 여축과 여인과는 나름대로 잘 지냈다. 여축, 여인과 돼지 치는 일을 맡게 된 항아는 어느날 엄청난 호우로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리게 된다. 돼지들과 함께 떠내려간 항아는 신기한 조롱박을 손에 넣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3일이나 거센 강물과 씨름하면서도 항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조롱박은 뜨거워졌다 식었다를 반복하며 항아의 체온을 유지시 주었을 뿐 아니라, 설명하기 힘든 초자연적인 기운을 불어주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오강의 두 딸인 여인과 여축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끔찍한 환란 속에서 임신한 암퇘지와 수퇘지를 데리고 3일만에 생환한 항아는 신의 보살핌을 받은 특벽한 여인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런 항아를 미워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항아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조롱박을 항상 품고 다녔고, 그러던 어느날 조롱박이 깨지며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상상히 큰 스케일의 이야기는 제법 익숙한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모습으로 흘러간다. 이야기의 전개는 대단히 빠르고 군더더기 없이 사건 중심으로 쭉쭉 진행된다. 등장인물의 감정선도 특별한 수사 없이 간략하고 적확한 단어들로 표현되는데, 대부분의 신화들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인 것을 떠올려 보면 충분히 납득된다.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중국 신화와 전설 속 이야기들이 세련되게 각색되어 요소요소에 자리잡아 고대 신화 시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겨준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드라마틱한 변화를 한두차례씩 겪게 된다.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입체적이고 다채로워서 정신없이 그들을 따라가게 되는데, 그리 두껍지 않은 볼륨 안에서 사랑, 권력, 탐욕, 정욕, 미움, 성장, 그리고 타락과 좌절 등 인간사의 모든 것들 뿐 아니라, 영웅의 탄생과 몰락, 또한 제국의 흥망성쇠도 유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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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겨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8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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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기둥' 으로 세계적인 역사소설작가가 된 켄 폴릿이 야심차게 뽑아든 칼은 '20세기 3부작' 이었다.
3부작 중 1부인 [거인들의 몰락] 은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각자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리고, 세상 그 어떤 부모가 자식을 전쟁에 보내고 싶을까?
그것도, 전쟁에 참전해 본 적 있는 부모들이라면. 적군의 총알에 뼈가 부서지고, 상대의 몸 안에 쇳덩어리를 박아넣고, 회오리쳐 도는 작은 쇳조각에 고향 친구의 두개골이 산산조각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몸으로 겪어본 부모라면 더더욱 자식들을 전쟁의 포성 밑으로 밀어넣고 싶지 않을 것이다.

 서방 승전국들은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전쟁' 이라며 자위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승전국을 주축으로 한 세계연합의 창설은 지지부진했고, 피해를 본 국가들은 독일에 무리한 전쟁보상금을 떠넘겼다. 소비에트 혁명 이후 러시아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 전후 복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를 틈타 일본은 과격한 팽창정책을 펼치며 동남아시아와 중국은 물론 러시아로까지 탐욕의 손길을 뻗쳐나갔다. 유럽 전체가 전후 혼란을 적절히 수습하지 못하는 사이 러시아의 볼셰비즘에 맞서 파시즘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과격한 방식으로 정부를 장악했다. 심지어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파시스트들이 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스페인에서는 파시스트와 볼셰비키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사이에 내전이 일어났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밀약을 맺은 히틀러의 독일은 기어코 폴란드를 침공하고, 프랑스까지 단숨에 진격한다.   


[세계의 겨울] 역시 [거인들의 몰락] 처럼 이야기의 중심을 크게 셋으로 나눠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을 겪는 영국과 미국의 상황, 독일 내부, 러시아의 상황을 각 국가에 살고 있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풀어내는데 시기적으로는 히틀러의 집권부터 미국의 원폭투하, 전후 처리와 독일의 분단까지 다루어진다. 전작의 주인공들도 모두 등장하며 상황에 따라 일부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자식들이 이번 작품의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겠다.  
분량의 압박에도 불과하고 굉장히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담아냈다. 스페인 내전도 어느정도 다루고 있고, 진주만 폭격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마른 강 전투, 맨해튼 프로젝트,루즈벨트 대통령의 재선과 사망, 독일 분단 등 잘 알려진 역사전 사건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인물들의 역할을 배정하고, 걸맞은 드라마들을 적절하게 그려냈다. 대단히 복잡한 작업이었을텐데 인과의 고리가 빠지는 부분 없으면서도 생략할 부분들은 과감히 생략하며 대단히 스피디한 전개를 보여준다. 단어 그대로 인물들이 '휩쓸려간다' 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신없이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감정과 정서의 전달도 명확하다. 

전작이라 부를 수 있는 '거인들의 몰락' 에서 에설과 모드라는 두 여인이 인상적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데이지와 카를라가 그녀들을 대신한다. (누구의 딸들인지는, '거인들의 몰락' 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생략...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전작 주인공들의 자식들이라 인물 소개는 한 명도 못하겠다. 전작은 누가 뭐래도 절절한 로맨스니까.)
미국 태생의 데이지는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인물로 거침없는 남성 편력을 지니고 있으며 화려한 이미지의 여성이고, 카를라는 독일 태생으로 남자들보다 영특해서 충분히 의대에 진학할 실력이었지만, 나치의 집권과 전 국가적인 전쟁준비로 인해 진학 자체에 실패하고 결국 간호사에 머무르게 된다. 이 두 여성을 통해 당시 영미와 독일의 극심한 차이를 보여줌과 동시에 모든 국가를 휘감은 전쟁의 참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 펼치기(접힌 부분 에는  전작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사실 큰 스포이기도 하지만, [거인들의 몰락] 에서는 주요한 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는다. 읽는 내내 자꾸 '왕좌의 게임' 이 떠올라서, 정말 조마조마 했었는데, 다행히 켄 폴릿은 조지RR마틴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의 겨울] 에서는 달랐다. 이번에는 착한 사람, 용감한 사람들이 먼저 죽어나간다. 마치 마틴옹이 빙의한 듯이...ㅠㅠ
진짜 깜짝깜짝 놀랐다. 1차 세계대전의 업화 속에서도 간신히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때론 자신이, 그리고 때론 자신보다 소중한 자식들이 전쟁의 참화 속에 스러져간다. 2권은 정말 내내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 앉았다. 죽지 않으면 죽을만큼 고통을 겪기도 하고. ㅠㅠ



 

펼친 부분 접기 ▲



 
두께는 상당하지만, 굉장히 잘 읽힌다. 술술 넘어간다.
실제 역사에 대한 고증도 대충 하지 않았다. 역사 학자와 수많은 에이전트들이 달라붙어 모니터를 했다. 당시 독일에 대한 고증은 당시를 겪은 독일인들이 감수를 했다. 허구와 실재의 완벽한 조화. [거인들의 몰락] 과 [세계의 겨울]을 통해 1,2차 세계대전에 얽힌 당시 열강들의 이익관계나 외교관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후 처리 과정을 통해 동구권의 소비에트 연합 가입 과정이나 독일의 분단 과정도 무척 상세히 그려 놓았는데, 더불이 우리 나라의 분단 과정도 함께 읽혀서 가슴 한쪽이 아릿했다.
소비에트 연합의 탄생 과정도 물론이지만, [거인들의 몰락] 에서도 줄기차게 시도해온 세계연맹의 창설 과정도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북한에 대한 유엔의 경제 제재 조치가 내려졌다.
단숨에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쥐를 자꾸 구석으로 몰아 넣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임은 역사가 알려주고 있다. 
독일도, 일본도 궁지를 벗어나 목숨을 부지할 방법은 가로막고 있는 적을 물어 뜯는 수 밖에 없었다. 나치에 환호한 독일 국민들도, 아시아 일대에 큰 고통을 안긴 일본도 가로막은 강대한 적을 물어 뜯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전쟁 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줄 수는 없지만, 수많은 피를 양분으로 만들어진 세계 연합은 전쟁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결과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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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4
윌리엄 포크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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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광야.

하늘의 독수리가 보기에 마치 신이 연필로 선을 그은 듯, 얇고 검은 선이 때론 직선으로 곧게, 때론 완만한 원을 그리며 벌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황야를 가로지르는 검은 선은 이윽고 드문드문 연둣빛이 보이는 초원지대에 접어들고, 곧이어 무성한 침엽수림을 만난다. 수백년, 어쩌면 수천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고고한 침엽수림. 

검은 선을 따라 시커먼 기운을 토해내며 느릿느릿하게 달려가던 쇳덩어리는 그 앞에서 멈춰서고 만다. 

이 숲은 통과할 수 없다.

아직은.

쇳덩어리는 잘 몰랐지만, 쇳덩어리의 창조주이자 검은 선을 그린 인간들은 알고 있었다. 이 숲은 누가 누구에게 팔았고, 또 그 누가 다른 누군가에게 팔았기에, 함부로 나무들을 베어 넘겨 계속 선을 그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들은 소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매매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매매권을 주장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소유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고, 매매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지만, 아무도 그만큼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했으나 생각하지 않은 척 했다.


 거대한 숲의 관점에서는 개미나 여우, 토끼등과 구별하기 힘든 크기였으나 개미나 여우, 토끼의 시점에서는 마치 태산처럼 거대한 곰 한마리가 있었다. 곰의 발 밑에 깔려 으스러진 잡목 부스러기와 각종 낙엽, 나무 그루터기와 드러난 뿌리의 일부, 흙 등은 곰의 한 쪽 발에 발가락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개의치 않았다. 곰도 그다지 개의치 않았는데, 곰을 뒤쫓는 인간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곰에게서 발가락을 앗아간 그 인간들이었다. 

 곰은 인간들이 두렵지도, 밉지도 않았다. 곰이 연어나 토끼, 여우, 나무 따위를 두려워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미워서 나무를 긁는게 아니었고, 두려워서 연어를 잡거나 토끼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곰의 뒤를 쫓는 것은 수 년 간 같은 인간들이었다. 

 1년 내내 뒤쫓는 것은 아니었고, 한차례. 긴 잠에 빠져들기 전에 찾아왔다. 그들은 해마다 몇 주간 숲에 머물며 사냥을 했다. 숲 한쪽에 지어놓은 튼튼한 오두막은 꽤나 아늑해 보였고, 곰은 몇 차례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인간들은 매번 적당한 수의 짐승을 사냥하고 오두막을 떠났다. 물론 인간들의 최종 목표는 곰임을, 그 곰은 잘 알고 있었지만, 아직 인간들은 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비록 그들에게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생명이 생명을 사냥하는 일은, 숲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웠기에 곰은 인간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약해지면 먹힌다. 곰은 인간들이 무기로 삼는 개들을 해치웠고, 인간들의 개는 곰을 두려워했기에, 곰은 인간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느날 곰은 지난 해 처음 온 새파랗게 어린 인간과 마주쳤다.

소년은 자기 몸 만큼이나 긴 쇠붙이를 쥐고 있었고, 눈동자는 두려움에 가득차 있었다.

그 쇠붙이는 제법 매서웠지만 애초에 인간은 곰에게 너무나 허약한 존재였다. 어디든 베어물면 두부처럼 으깨어졌고, 앞발로 후려치면 마른 덤불처럼 으스러졌다. 피로 가득찬, 움직이는 가죽부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지니고 다니는 쇠붙이들은 제법 매서웠지만, 애초에 인간은 곰에게 두려움이 대상이 아니었다. 곰은 적의를 보이지 못하는 소년이 하찮았다. 구태여 앞발을 휘둘러 경직된 가죽부대를 터뜨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곰은 소년의 눈빛에서 다른 느낌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두려움이나 미움, 증오 같은 감정이 아니라, 곰이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그런 것. 지금은 잃었지만, 언젠가 본 적 있던 갓 태어난 자신의 새끼를 보았을 때 느꼈을 지도 모르는 그런 것. 


소년은 언젠가 이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 자신의 몸뚱이 하나 말고는 다 무의미할 것이며, 인간이 인간을 사고 팔 수 없듯, 대지와 수목도 사고 팔 수 없으며, 종국에는 자신의 몸뚱이 하나조차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임을.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의 품 안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될 것임을. 사고 팔 수 없는 것을 사고 팔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누군가, 무언가가 생기게 되리라는 것을. 인간들이 기묘한 쇳덩어리를 이용해 어머니 대지 위에 흩뿌린 피와 살점들이 그 댓가가 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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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몰락 2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4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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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기둥]으로 이미 큰 감탄을 했던 켄 폴릿의 역사소설이다.

1914년을 시작으로 1920년까지 유럽 각지의 인물들을 다루는데, 시기상 가장 큰 이슈는 단연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방대한 인물 소개와 함께 역사적 실존인물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 부분은 책의 말미에 저자가 스스로 밝힌 '역사와 허구 사이에 줄을 긋는 법' 과 통해있기도 해서 상당히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은 역사소설을 가늠하는 기준이 있는데(이 기준은 판타지 등 장르물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데) 당시 사람들의 사상이나 습관을 얼마나 '그 시대적' 으로 풀어내면서,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주는가이다.

재미있게도, 이 기준은 켄 폴릿의 [대지의 기둥]을 읽으면서 정립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역사소설에 대한 의구심은 없었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국가의 많은 인물들을 다루기 때문에 그의 능력이 얼마나 발휘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1910년대 영국. 근대화의 문을 활짝 열고 민주주의의 불꽃을 당겼지만, 아직 신분제 사회였다. 에버로언의 피츠허버트 백작은 여전히 대지주였고, 광부들은 여전히 소작인이었다. 에버로언의 피츠허버트 백작의 저택에서 어린 나이에 하녀장을 맡게 된 에설은 에버로언 광부 노조의 지도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데에 탁월한 당찬 여성이었다. 

 작품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큰 지분은 바로 이 '에설 윌리엄스' 가 차지하고 있다. 광부의 딸에 하녀, 그리고 여성, 게다가 미혼모이기까지 한 그녀가 어떻게 한 사람의 뛰어난 운동가로 자라나는지를 보면 수많은 단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어째서 민주주의가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후퇴했는지 알 수 있다.

솔직히 [세계의 겨울]까지 읽다보니 당시의 영국,미국 의회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회가 더 허접스레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한 축은 에버로언 백작의 여동생인 모드 피츠허버트와 독일 외교관의 아들인 발터 울리히가 차지하고 있다. 에설 윌리엄스가 여성 운동가의 일면을 보여준다면, 모드와 발터는 전쟁 속에 피어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쟁의 위기 속에서 깊은 사랑을 나누고, 유럽을 휩쓴 대전쟁 치하에서 적국에 연인을 둔 두 남녀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참으로 애달프다. 

이 작품 안에는 유독 강인한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시기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하기도 한데,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정계나 언론계, 노동계에서 한 자리라도 차지하려면 보통 외모와 멘탈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드는 그에 걸맞는 신분과 외모, 멘탈을 가지고 있었고, 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여성으로서 쓸 수 있는 무기는 다 쓴다" 는 주의를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특히 여성 인권 신장에 있어 불같은 추진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는데, 결국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모드와 발터가 전쟁이 터지기 직전, 외교가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일희일비 하는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매우 희극적이었다. 본국에서 내려오는 쪽지 한장에 '전쟁이 나면 우린 어째~' 했다가, '전쟁 안 나려나 봐요. 행복해요~' 했다가, 또 , '전쟁 날 것 같아요, 우리 어떡해요.' 했다가, 또 '전쟁 난대요. 우리 어떡해요.' 를 몇차례나 반복하는데, 그 심정이 절절하게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면 의외로 희극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에설과 모드에 대한 이야기가 2/3 정도 차지한다면, 나머지 1/3은 거스 듀어를 통해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는 과정과 귀족 혈통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던 미국의 상류층 이야기, 그리고 그리고리와 레프 페시코프 형제를 통해 러시아의 붉은혁명과 미국 이민 1세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스 듀어의 이야기에서는 로사 헬먼이라는 여성 기자가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작품 전체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성으로 생각된다. 진보적인 사회주의자인 헬먼은 이미 화려한 경력을 쌓은 기자로 한쪽 눈에 장애가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거스 듀어와 로사 헬먼의 러브 스토리는 솔직히 남성 판타지적인 경향이 농후하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판타지스러운 장면이 바로 이 둘의 러브 스토리 중에 등장한다. 

그리고리와 레프는 남성들이 생각할 때 가장 멋있는 요소들을 나눠가진 인물들이다.

그리고리는 무척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목표를 설정하면, 그 목표를 향해 올곧게 걸어가는 인물이다.

반면 레프는 요령이 좋고, 바람둥이에 말솜씨가 좋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쥐락펴락 하는 인물이다. 그리고리는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이고, 레프는 매력 넘치는 나쁜남자랄까.

그리고리를 통해 당시 러시아 군대의 처참한 상황과, 러시아의 차르가 무너지고 레닌과 트로츠키가 혁명을 성공시키는 과정이 그려지고, 레프를 통해 당시 미국의 러시아 마피아의 생활을 보여준다. 


[거인들의 몰락]의 진짜 흥미로운 부분은 한 타임라인 위에 수많은 세계의 이야기를 동시에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 당했을때 러시아, 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의 반응과 얽히고 설킨 국가간의 약속들. 그리고 힘의 균형에 이리저리 휘청이는 중심축. 그 안에서 '위' 의 명령에 따라 역시, 이리저리 휘청이는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무능력한 위정자들, 지도자들, 장교들. 

비슷한 시기 세계 각지의 고위층들의 결정에 수천, 수만, 수백만의 목숨이 오락가락했다. 


실제 역사적인 사건들을 광범위하게 펼쳐놓고 인물과 이야기에 따라 화려하게 직조하는 솜씨가 놀라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정말정말 엄청엄청 재미있다.

1권도, 2권도 무심코 펴들었다가 밤을 홀딱 새버릴만큼 재미있다.

일단 인물들의 개성이 엄청나게 뚜렷해서, 등장인물 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무척 쉽게 기억된다. 로마시대에 비하면 이름들도 무척 짧고 간결하며, 참~~ 쉽다.(ㅋㅋㅋ) 게다가 인물 수가 많다지만, 한 국가에 서너명이기 때문에, 이 국가 이야기가 나오면 이 인물, 저 국가 이야기가 나오면 저 인물이 등장하기에 쉽게 각인된다. 

또 한가지, 간간히 등장하는 에로틱한 장면들이 감각을 톡톡 잡아 챈다. 

위에 언급했듯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한 역할의 여성들은 남성 중심 사회의 정점에서 남성들을 쥐락펴락 하는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을 다룸에 있어서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성향만큼 성적인 표현에서도 조금 남다른 적극성을 보여준다. 이런 부분들이 한 밤 중에도 잠을 확 깨게 만들어 결국은 밤새워 읽게 만들곤 했다.

참고로 에설이 남편과 크게 다툰 뒤, 화해의 방법으로 침대 위에서 남편에게 자신의 벗은 가슴을 보여주는데 얼마전 인터넷에서 떠돌았던 '남자친구 화 풀어주는 방법' 이 떠올라서 박장대소를 했더랬다. 이 작품이 '픽션' 임에도 정말 그 시대에도 그랬을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푹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주는 가장 큰 강렬함은 전쟁에 대한 공포이다.

위에는 희극적인 느낌까지 난다고 했으나, 모드와 발터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충분히 이해될 정도로 전쟁에 대한 참상이 잘 묘사되고 있다. 전쟁이 터지고 징집되어 끌려가는 젊은이들. 에버로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피츠허버트 백작은 신분에 걸맞게 장교로, 에설의 남동생 빌리는 사병으로 전쟁터로 끌려간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전쟁의 참화 속으로 이끌려간다. 전쟁터에서도 보수와 진보, 신분과 계급도 존재했다. 장교들은 보수주의자로 애국심이 넘쳤지만 무능했고, 사병들의 목숨을 파리보다 못하게 여겼다. 빌리는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사병도 인간이고,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 정도는 알아야 했으니까. 독일이나 영국에 비해 인격, 전력적으로 지나치게 낙후된 러시아의 사병인 그리고리는 더 끔찍한 꼴을 당한다. 바로 이 전쟁통에 그리고리는 혁명정신을 깨우치게 되고, 붉은 혁명에 앞장서게 된다.

끔찍한 참호전도 무척 잘 묘사하고 있다. 런던까지 들렸다던 프랑스 솜강 전투의 대포 소리, 매일매일 전사자 통보가 끊이지 않았던 에버로언의 광부촌, 빵 한덩이를 위해 매일매일 몸을 팔아야 했던 평범한 러시아의 아내들 역시. 전쟁터는 물론이고 전쟁을 치르는 국가들의 끔찍한 참상이 잘 담겨져 있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오직 위정자들 뿐이었다. '신분이 높으신' 분들. 이 점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작품의 엔딩 또한 무척이나 돋보였다.

결국 노동당 하원 의원으로 당선된 에설이 의사당 계단에서 피츠허버트 백작과 맞닥뜨리는 장면인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계급과 신분으로 상원의원을 '물려받은' 피츠허버트와, 그의 하녀장이었지만 지역민들의 선거로 하원의원에 당선된 에설.

그렇지.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였다. 백작과 하녀가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볼 수 있는 사회. 


훌륭한 역사소설은 그 시대의 생활상과 정신을 설득력 있게 묘사해내기도 하지만, 그에 비춰 현실을 되새기게 해준다.

[거인들의 몰락] 역시 그러한 훌륭한 역사소설의 미덕을 정확하게 갖추고 있다. 드라마의 요소도 무척 풍부해서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터, 특히 매력적이고 개성넘치는 인물들에 푹 빠져들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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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22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정월대보름 입니다!^^
주무시면 눈썹셉니다~하얗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