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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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좆됐다."

는 문장으로 시작된 이 책은 내 기대보다 훨씬 훠~~~~얼씬 재밌어서 열대야도 잠 못 이루던 방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열대야도 열대야였지만, 내 컨디션도 정말 별로였다. 낮에 먹은 뭐가 얹혔는지, 계속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재미없으면 잠이라도 오겠지, 싶어 펴들은 이 책.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쭉쭉 읽어나가, 결국은 아침 동이 터올 무렵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첫 장을 편 자리에서 마지막 장을 덮었던 기억이 대체 언제더라? 

어쨌든, 훤하게 밝아오는 창문을 바라보며 책의 첫 문장을 똑같이 입 밖으로 되뇌었지만, 아무래도 내가 처한 상황은 책 속 주인공 마크 와트니보다는 덜 좆 된 상황이었음은 확실했다. 


식물학자 겸 기계공학자 마크 와트니는 제 3차 화성 탐사 계획인 '아레스3' 에 포함된 우주비행사이다. 

마크가 좆 된 이유는 간단하다. 척박한 화성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었으니까. 

화성의 대지와 대기에서 활동할 한 달 간의 식량이나 산소발생기, 물 생성기, 발전설비등이 갖춰진 막사 정도는 있었지만, 며칠분에 불과했고, 지구와 교신할 장비도 고철더미가 되어 있었다.

마크가 화성에 혼자 남게 된 것이 바로 그 교신할 안테나가 부서질 정도로 강력한 화성의 모래폭풍에 휘말렸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화성에 올 아레스4는 약 4년 뒤에 도착할 예정.

5명이 한 달간 써야할 식량과 물을 줄이고 줄여도 4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버티고 버티다가 죽어갈 것인가, 지금 당장 자살할 것인가? 


이 작품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꽤나 회자되었던 소설로 특히 SF매니아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았던 작품이다.

나는 잘 모르지만, 특히 공학도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으로 작가가 천재라고까지 불렸던 공학도인 만큼 작품 안에 등장하는 기술이나 주인공 마크의 사고방식이 전형적으로 공돌이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심각한 상황속에서도, 상상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실험해보고, 결과를 도출해내고, 응용을 해서 기술을 개발해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대단히 디테일 할 뿐 아니라, 등장하는 기술들도 현존하는 기술들이라거나, 개발 가능하고 특히 화성 탐사 프로젝트를 포함한 일련의 우주장비들이 완벽할 정도로 현실적이라는 점 등이 이공계열 매니아들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이공계열이 아니라 전혀 이해가 안되서, 어떤 부분들은 대충 읽고 넘기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분들이 얼마나 디테일하고 자세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부분들 뿐 아니라, 거의 미치광이 과학자(ㅋㅋㅋ) 수준으로 낙천적이고 얼핏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전형적인 천재계열 공학자인 마크의 캐릭터도 참 재미있었고, 죽은 줄 알았던 마크의 존재를 알아채고, 그를 다시 구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도 대단히 드라마틱하게 잘 그려냈다. 


특히 중후반부를 넘어가면 드라마의 흡입력이 더더욱 강해지는데, 솔직히 결말이 궁금했던 작품은 최근 몇년간은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책 표지의 반을 넘게 가리고 있는 맷 데이먼을 보고, 영화화 되나보다, 싶었는데, 어느새 예고편까지 나와있더라.

솔직히, 이 작품이 시각적으로 볼거리가 풍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품은 일지의 형식으로, 주인공이 매일매일 있었던 일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책의 흡입력에 이 서술 방식의 기여가 대단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영화화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크의 캐릭터도 재미있긴 하지만, 전형적이고 지나치게 낙천적이라 쉽게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그에 비해 마크를 구하고자 하는 나사쪽의 드라마가 훨씬 다이나믹하고 등장 인물들고 입체적이라 결국 화성과 지구, 헤르메스호의 비중 분배를 어찌 할 지에 따라 영화의 성패가 결정날 듯 하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보면, 마크의 '좆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에 관한 부분과, '마크 한명을 좆된 상황에서 구출해 오기 위해 더 좆같은 상황들을 감내하고 수십억의 돈을 쏟아붓기를 주저하지 않는 상황' 에 대한 부분에 특히 만감이 교차했다. 

마크는 공학도다운 냉정함으로 상황을 재빠르게 판단하고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해나간다.

반면 그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인간적인 충동으로 감정적인 계획을 세우고, 시도한다. 


궁극의 낙천적이란 어떤 것일까?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에이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놀고 보자.'


이런 마음이 과연 낙천적일 것일까?


마크는 이렇다.


'어떻게든 해봐야지. 일단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이 뭐지? 그래 이것부터 한 번 해보자.'


자신의 능력과 주변 환경, 실행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이성적으로 나누어서 차근차근 시도해본다.

안되면 안 된 이유와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차근차근 한가지씩, 할 수 있는 것 부터, 해본다.

최선을 다하고, 하늘이 도와주고, 그딴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을 그냥 해보는 것.

마크야말로 궁극의 낙천주의자,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궁극의 인간이다. 

역시, 소설을 읽으며 극중 인물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또 얼마만인가!!! 

초딩스러운 마무리로 리뷰를 마쳐야겠다. 

나도 마크 와트니 같은 사람이 되야겠다. 


-끗~-







아, 문득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 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문장을 인용하려 한다.

이 대사가 이렇게 공학도스러운 문장이었다니.




"일단 결정한다. 그리고, 해낸다.

이것이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유일한 방법이랍니다. "  


애니메이션 [건담S.E.E.D] 중, 히로인 라크스가 갈등하는 주인공 키라에게 건넸던 한마디. 

마크 와트니가 딱 이렇게 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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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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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미권 작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순문학에서는 주저 없이 필립 로스를 꼽을 것이다. 

국내에 출간된 책들 중에 두작품 정도 빼고는 거의 다 읽었을 정도로 좋아한다. 

글 전반에 흐르는 짙은 남성성과 깊이 천착한 인생의 불가해함이 때로는 읽어나가기를 주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필립 로스의 강력한 매력으로 지독한 중독성의 원천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의 작품 전반에서 주인공이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거나, 행복하기 짝이 없는 시간들을 보내면 미칠 듯한 조바심을 느끼게 된다.

읽기를 그만 두고 싶어지기도 하고(그러면 주인공이 평화롭거나 행복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반면, 빨리 스킵 버튼을 눌러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필립 로스의 작품에서 평화와 행복은 독자들의 뒤통수를 가격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주인공이 누린 평화와 행복은 그 배가 되어 분란과 악운으로 돌아온다. 

예상할 수 없는 시점에, 예상할 수 없는 인물로 인해, 예상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져, 예상할 수 있는 파국으로 치달아간다. 

왜, 항상, 삶은 이렇게 백태클을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전능하신 신이 있고, 그 신이 우리 하나하나를 돌보아 주신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매우 자주 일어난다. 

이렇듯, 필립 로스는 언제나 오롯하게 한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섬세하고 대담하게 그려내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고, 이제 그 위대한 발걸음을 멈출 것을 선언했다.

개인적으로는 올 초에 필립 로스의 첫 작품집인 [굿바이, 콜럼버스] 를 읽었는데, 반년 후에 마지막 작품을 접하니 기분이 묘하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다다랐던 1944년 7월, 뉴어크의 챈슬러 애비뉴 학교 부근의 놀이터 감독관은 버키 캔터라는 스물 세살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놀이터 감독관은 단어의 뜻 그대로 여름 방학 기간 동안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활발한 체육활동을 위해 매일 모여드는데, 그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관리하는 직업이었다. 신체 건강하고 혈기 왕성한 청년으로 1941년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했을 무렵에 군대에 지원했으나 지극히 나쁜 시력 탓에 입대에 실패했고, 그 해 말에 있었던 추가 징집때도 입대에 실패하자 체육교사의 꿈을 안고 챈슬러 애비뉴 학교 부근 위퀘이크 고교의 체육교사에 도전하기 전, 여름 한 철 동안 일종의 경험을 쌓기 위해 놀이터 감독관에 지원한터였다. 지극히 나쁜 시력만 아니었으면 어쩌면 전도유망한 선수로 성장했을지 모를 출중한 투창실력과 잘 발달한 근육답게 거의 모든 스포츠에 만능인 버키는 이미 훌륭한 체육 교사였고, 놀이터에 나오는 아이들 사이에서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 해에 뉴어크 지역에 '폴리오' 라는 병이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하고, 버키의 삶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폴리오는 우리말로 척수성 소아마비. 요새는 만나기 힘들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 동네에 한 두 분 쯤은 소아마비의 흔적 - 영구장애 - 를 갖고 있는 어른들이나 나보다 10살쯤 많은 형들이 있었다. 지금은 백신이 널리 퍼져, 갓난 아이에게 반드시 접종시키지만 내가 태어나기 10년 쯤 전까지도 소아마비는 부모님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병 중 하나였다. 뒤틀린 사지를 힘겹게 움직이는 소아마비 장애인들의 모습은 안쓰러웠고, 내가 이미 소아마비에서 안전하다는 지식을 얻기까지, 국민학교 고학년에 될 쯔음까지 두려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폴리오는 우리나라에서 제 2종 감염병인데, 감염자의 90% 이상이 무증상이라고 한다. 

감염자의 콧물이나 침, 대변을 통해 배출된 폴리오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의 코, 입 점막을 통해 감염된다. 오수나 하수를 통해서도 폴리오 전염균을 퍼져나가는 모양이다. 

경증의 경우엔 4~8%에서 증상이 나타나는데 발열,두통, 구토, 설사, 위염 등으로 2~4일 내에 치료되지만, 감염자의 1%에서 이완성 마비증상이 나타나고, 약 1%의 환자 중에서는 무균성 수막염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야말로 폭탄 돌리기인 셈인데, 무증상 감염자들과 경증 감염자들이 여기저기 무수한 감염균을 퍼뜨리면 100명 중 2명은 영구장애를 안게 되거나 죽는다는 것이니, 정보가 더 제한적이었을 당시의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공포의 병이었을 터다. 



필립 로스의 책은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꽤나 짧은 편이다. 

짧은 볼륨 안에 언제나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누군가의 삶이 담겨 있는데, [네메시스]의 버키 캔터의 삶 역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 책은 약간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버키 캔터와 비슷한 일을 겪었으나, 완벽하게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린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필립 로스는 화자가 제 3자의 입장에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기술하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을 택한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화자가 주인공의 삶에 주변 인물로 등장할 뿐, 주인공의 삶을 비교하거나 평가할 만 한 자격을 지닌 적이 없는 단순 화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네메시스] 에서의 화자는 주인공 버키 캔터와의 대화 중 툭툭 던지는 자신의 삶의 조각을 통해 작품의 결말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마지막 작품 답게 대단히 친절하달까, 옮긴이는 책 말미에 자리잡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작가는 이 내레이터의 시각을 지지하는 것일까? 독자도 지지해야 할까?' 라고 질문한다. 

나도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는데, 작중 화자는 분명 버키 캔터의 삶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을 택한 필립 로스의 작품들 중 이런 경우가 있었나, 싶었다. 

 


언제나 삶은 인간에게 시련을 준다. 어쩌면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련이 반드시 불행과 동의어는 아니다. 만약 시련이 불행과 동의어라면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불행일테니까. 

필립 로스는 많은 작품을 통해 삶의 시련과 불행에 관해 이야기해 왔다.

[에브리맨] 을 통해서는 '받아들이라. 버티고 서서 오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고 했다.

'미리부터 종말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고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버키 캔터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화자와 많이 달랐다.

버키의 선택 역시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어떤 측면에서는 숭고하기까지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했다.

문득, 나 역시 그렇게 매사에 내 스스로를 대입해 상황을 단정짓고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종교에 나름 깊이 빠져있을 때였는데, 나에게 일어나는 불행들이 오롯하게 나때문이고, 나의 죄가 크기 때문에 내 주변의 모든 일들이 어그러질 것이라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모든 인간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평가하고 삶을 관장한다면, 분명 내 삶에는 별반 칭찬할 만 한 것이 없다고, 굳이 나에게 남들보다 특별한 '선물' 을 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끊임없이 인간에게 견디기 힘들 정도의 시련을 내리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성서를 그렇게 읽었으면서, 왜 지금의 나 자신에게는 신이 좋게만 대해 줄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믿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종교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인간의 삶은 괴로움 그 자체였고, 신은 괴로움의 원천과도 같게 느껴졌다. 사후의 삶 같은건, 애초에 개념조차 잡히지 않았다. 사후의 삶. 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명백한 오류였으니까. 삶은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니까.

난 결코 종교적인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결론과 함께 교회를 멀리하자 차라리 삶은 좀 더 단순해졌다.

그 때 즈음, 필립 로스와 E.L닥터로, 폴 오스터, 팻 콘로이 등의 소설들을 접했고, 그 책의 메시지들이 빈 자리를 차고 들어와 앉아있다. 


사지 육신이 멀쩡하다는 건, 아플 구석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애정이 많다는 건, 슬플 일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고, 

가진 것이 많다는 건, 잃을 일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픔과 슬픔, 상실이 모두 괴로움이나 불행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통증 뒤에는 해소가 있고, 슬픔 뒤에는 평온이 있고, 상실 뒤에는 홀가분함이 있다. 

삶의 바탕은 상실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직후부터 서서히 삶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삶 자체가 커다란 상실의 과정이다. 

기쁨과, 즐거움, 행복감은 덤이다.   


삶 자체가 상실이고, 대부분이 슬픔인데 굳이 스스로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낼 이유는 없다.

덤을 하나라도 더 받는 삶이 낫지. 

그러기 위해서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모두 이해하려 들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고, 버티고 서서 받아들이면 된다. 스스로를 종말의 가장자리로 밀어낼 이유도 없다.

지나온 시간들은 이미 상실되어서,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 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것들에 애착을 가질 필요도 없다.

단순하게 앞만 바라보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삶은 잃어가는 과정이므로. 

결국엔 나 조차도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난 적 없었던 것 처럼 사라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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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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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을 통해 체험단에 선정되어 판매되기 전에 미리 가제본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역사 소설을 꽤나 좋아하는 30대 남자로써 '로마' 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스의 뒤를 이어 유럽 문화의 뿌리가 된 로마 문명.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도 집정관과 호민관, 원로원이 어우러진 초기 공화정과 제국으로의 변모, 그리고 거대한 대제국. 다신교 문화에서 피어난 유일신교의 씨앗. 그리고 극적인 역전 등, 수박 겉핥기만으로도 충분히 달달한 이야기들이 죽죽 흘러 내린다. 

나처럼 어설프게 아는 독자들도 '시저'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영어로는 줄리우스 시저, 원래 발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그리고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그리고 '부르투스 너도냐!' 까지. 실제로는 했네, 안 했네, 원래는 이런 말이었네, 저런 말이었네 말도 많지만 어쨌든 그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일 것이다. 키케르와 클레오파트라까지 덤으로. 


[로마의 일인자] 는 바로 그 '시저' 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같은 이름의 인물로부터 시작된다.

노회한 정치가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눈에 무관 출신의 노숙한 정치가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들어온다.

이 두 이름을 보는 순간 이미 가슴이 쿵쾅쿵쾅.

로마 공화정 말기의 이른바 '100년 내전 은 로마사에 아주 약간의 관심만 있는 사람이라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동맹시들의 이탈과 반란, 로마 내부의 정쟁, 평민들의 불만과 궐기, 그리고 가이우스 마리우스로 대표되는 평민파와 술라로 대표되는 귀족파의 본격적인 충돌. 그리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출현과 삼두정치, 그리고 루비콘강에서의 회군.

바로 그 시기의 이야기로구나!!!!   


1권 초반에서부터 이야기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작품 속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이미 40세를 훌쩍 넘은데다가 로마의 귀족 혈통도 아니라 집정관이 될 수 없는 처지로 등장한다.

'어라, 이럴리가? 아니, 이럴수가?'

게다가 작품의 1/3쯤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술라는 애인에게 얹혀사는 기둥서방과 다름없는 건달처럼 보인다. 게다가 양성애자!! 

로마 공화정 말기,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가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처지였다니!! 

멀리서 봤던 숲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겉핥기만 했던 수박을 쪼개보니, 진짜가 보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각 챕터가 당 해 연도로 되어 있다.

기원전 110년. 아...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가 본격적으로 붙기까지는 아직 수십년 더 지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바로 그 '시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태어나려면 아직 10년은 더 있어야 한다. 

서두를 장식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시저의 할아버지인 것이다.


1권의 전체 내용은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가 자신이 기반을 다져가는 과정이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상황 묘사로 정말 재미있게 펼쳐진다. 당시 로마의 정치상황에 대한 설명도 간결하기 이를 데 없고,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인물들의 선택에 대한 이해가 충분할 정도로 주어진다. 특히 돈으로 거의 모든 것이 해결되던 당시 로마정을 가감없이 묘사하고 있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혈통과 돈이 필요하고, 권력을 얻으면 혈통과 돈을 그러모아야 한다. 정치의 이유는 오롯하게 자신의 욕망이며 정치 활동 자체도 피호민을 모아 세를 넓히기 위해서일 뿐이다. 권력의 분립과 견제, 그리고 균형을 모토로 발전해온 공화정은 이미 시궁창 고인물이 되어 썩은내를 폴폴 풍기고 있었다. 


내가 역사소설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등장인물들이 정말 그 시대 사람처럼 생각하는가?' 이다. 물론 그건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다.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 다른 계급을 대하는 태도, 옷차림과 습관, 말투나 리액션 등 개별적인 것들이 묘사하고 있는 그 시대에 맞는 것들이냐는 것인데, 의아함을 찾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술라가 권력을 위해 자신과 살을 비비던 사람들을 거침없이 찍어내고, 완고하고 금욕적이던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율리아를 최고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과정도 처음엔 좀 의아했지만, 정치적 배경부터 따지고 들어가보니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작품을 읽는 내내 몇 년 전 재미있게 보았던 BBC의 드라마 'ROME' 이 떠올랐다.

드라마에서도 마침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기도 했고, 특히 시즌1의 피날레가 카이사르의 암살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연관이 깊다고 할 수 있겠다. 드라마 안에서도 로마인들의 자유로운 성관념과, 매수와 음모, 암살이 난무하는 정치 뒷세계의 이야기가 가감없이 드러났었는데, 소설 '로마의 1인자' 를 이해하는 데에 꽤나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총 7부라 하는데, 일단 1~3부까지 출간되는 모양이다.

사실 로마에 대한 정보는 너무 많아서, 딱히 스포일러다 뭐다 할 게 없다.

아니, 오히려 어느정도는 알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기도 하다. 

1권을 통해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는 정치적 동반자로써 서로 기반을 탄탄히 잡아낸다.

아마 2권부터는 둘의 본격적인 집정과 갈등의 싹이 다뤄질 모양새. 공개된 3권까지의 챕터들을 보니 그 유명한 '시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본격적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까지는 한참 멀었다. 앞으로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는 서로를 반드시 찍어내야 하는 존재로 끝없이 반목하게 되고, 젊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가족간에 벌어지는 피바다 속에서 죽을 고비를 몇번이고 넘겨가며 로마의 일인자가 되기 위한 고난을 감내할 것이다. 


리뷰어로 책을 제공받았기에 처음부터 호의적인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긴 했지만, 정말 솔직하게 손에서 놓기 힘들 정도의 재미를 준다. 

로마 정치와 공화정에 관한 궁금증을 촉발시키는 면도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구글링도 참 많이 했고, 관련된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기도 했다. 어쨌든 결론은, 재밌다. 앞으로 7부작 모두 순탄하게 읽어볼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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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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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평소에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인데, 서너시간만에 한 권을 독파하기는 정말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요사이 손은 바삐 놀리고, 머릿속도 복잡한 일이 많아 책을 펴기가 수월찮았는데,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만 있던 녀석을 무심코 집어들었다가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책 읽느라 헬스장 싸이클에서 40여분 가까이 발을 구른 것도 오랜만이었다.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읽기도 했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이야기의 잔상이 남아 있었고, 주인공에게 내 자신이 이입된 것도 오랜만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즐거움의 요소가 잔뜩이었다.


때는 송나라 인종. 조행덕이 진사시험을 보기 위해 수도 개봉으로 상경한다. 무인들의 발호를 막기 위해 무관의 요직까지 문인들로 채우던 시절, 진사시험에 합격만 한다면 빛나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조행덕이 상경한 해 진사시험을 보기 위해 개봉에 몰린 시험자의 수는 무려 3만 3800명. 그 중에 최종 통과자는 500명에 불과했다. 

 조행덕은 앞선 일종의 1차 시험들을 우수한 성적으로 가뿐히 통과하고 진사시험의 막바지에 도달해 있었다. 32세가 되는동안 그는 손에서 서책을 놓은 적이 없었다. 자신감에 차있었고, 지금까지 치른 시험들도 모두 쉽게 여길 정도였다. 

 하지만, 조행덕은 마지막 시험을 앞둔 그 전 시험을 치르지도 못하고 떨어지게 되는데, 시험장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던 도중 잠이들어 자신을 호명하는 시험관을 목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시험까지는 무려 3년. 허탈해진 조행덕은 거리를 헤매다가 서하족 여자와 위구르족 남자가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 소동이 조행덕의 인생을 바꾸고, 운명을 결정짓는다. 


실제 사료에 기반한 역사소설로 서두에 언급한대로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한다.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이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등장인물들에 대한 시선이 따뜻해서 절로 이입하게 된다. 


언제나 시간은 속절 없이 흘러간다.

흘러가는 속도 만큼 삶 또한 정신 없이 흘러간다.

정신차리고 보면, 어두운 사막 위에 홀로 버려진 조행덕처럼 여기저기서 터지는 불꽃을 피하며 그저 발 닿는대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도 없고,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그냥 간다. 

이 광활한 삶 속에서 정신 없이 걷다 보면, 다른 삶을 걷는 이와 부딪히곤 한다.

부딪힌 그와 이빨을 드러내고 싸워야 할 수도 있고, 좋은 동반자가 될 수도 있고, 무관심 하게 각자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잠깐 그렇게 스쳐 지나가고 마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만남을 통해 나의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어차피 정해진 목적지도,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도 없기에, 타인이란 사실 삶의 방향이 바뀌는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과의 만남에 '인연' 이란 이름을 붙여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로 인해 정립되는 삶의 방향에 '운명' 이라는 이름을 붙여 종교처럼 신봉한다.   


인연이든, 운명이든 인간은 스스로 살아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자신이 개척하는 것 같지만, 삶 위에 선 인간은 부평초처럼 떠돌 수 밖에 없다.

망망한 사막 위에 버려진 듯,  내가 걸어온 발자취는 바람에 쓸려 마치 처음부터 나는 걸었던 적이 없었던 것과 같아지고, 내가 목표했던 오아시스는 신기루처럼 금새 사라지고 만다. 

이 사막은 영원할 것이고, 내가 보는 모든 것은 신기루와 같을터다.

하지만, 또 그 신기루 하나를 목표로 삼아 걷기 시작한다.

문득 발에 밟히는 모래들이 나처럼 사막을 헤메이다 스러져간 이들임을 깨닫고, 나 역시 머잖아 흩날리고 마는 모래처럼 흘러내릴 것임을 알아챈다.

어차피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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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십이국기 2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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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 시리즈는 사실 대하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기본적으로 매 작품이 연속극처럼 맞아 떨어져 연결된다는 느낌보다 각 권 마다 독립적인 에피소드들이 펼쳐지기 때문인데, 초기의 세 편, [마성의 아이] ,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모두 주인공도 다르고 이야기가 펼쳐지는 국가도 다르며, 시점도 모두 제각각이다. 하지만, 분명히 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고, 시간의 흐름은 1권인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의 주인공인 요코와 게이키가 만나 경국의 새로운 왕이 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각 에피소드의 연관성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다. 때문에 대하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과한 감이 있어도, 연작 시리즈라고 부르기에 적당한 것으로 보인다. 


원 저작자인 강담사의 넘버링대로, [마성의 아이] 는 외전으로 두고, 1권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에 뒤에 위치한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의 에피소드는 시간대상 1권인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보다 약간 앞선 시점에 벌어진 일이다.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에서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요코가 자신이 살고 있던 현대의 일본에서 십이국기의 세계로 밀려들어 이질적적인 세계와 문화, 문명에 맨몸으로 부딪혀 고생고생 생고생을 해가며 적응해 가는 과정을 그려냈다면,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은 비범한 소년 다이키가 본래 자신의 세계에 돌아와 자신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특별한 재능을 깨우쳐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와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이 두권을 통해 비로소 십이국기의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왕' 과 '기린' 의 개념이 정립된다. 

작가는 서사를 통해 친절하고 상세하게 십이국기의 세계관에 흐르는 정서와 철학을 풀어내는데, 동양 문학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이기에 그다지 어렵거나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기린은 그야말로 완전무결하고 순수한 존재.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에서 등장했던 경국의 기린 게이키의 압도적이고 단호한 카리스마는 그야말로 눈부셨다. 반면,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은 어린시절을 봉래-일본 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소심하게 성장한 소년 다이키가 본래의 완전무결함과 강력한 능력을 되찾아가는 내용으로, 이 또한 대단히 흥미로웠다. 1권처럼 역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십이국기의 세계관에서 기린은 천의天意를 읽어내는 생명체이다. 한 국가에 단 한 마리가 태어나는 기린은 천의가 내리는 천계를 받아 왕기가 있는 사람을 택해 왕으로 삼는다. 왕과 기린은 불사의 존재로써 기린은 왕이 현명한 통치를 하게 돕는다. 만약 왕이 실정이나 폭정을 하면 기린은 왕을 잘못 택한 대가로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왕과 기린은 정치적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생명을 공유하고 있는 묘한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세계관에서 생명은 특별한 나무를 통해 잉태된다. 

부부나 성 역할구분은 지극히 사회적 선택의 결과물이고 기린은 무성의 존재로 읽히기도 한다. 때문에 세계관 전체를 관통하는 왕과 기린의 페어는 상당히 독특한 케미스트리를 이끌어낸다. 이 작품에서도 대국의 기린인 다이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당시 경국의 왕인 조 가쿠를 섬기던 게이키와 연국의 연왕과 기린 엔키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들이 왕과 맺고 있는 관계도 상당히 재미있다. 

 

십이국기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권은 사실상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선 세계관의 해설편이라 해도 무방할터, 아직 남아있는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잔뜩이다.

약간의 상상력만 준비하면 이 경이롭고도 특별한 세계를 탐험할 준비는 끝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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