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예 세계신화총서 9
예자오옌 지음, 김은신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거장들이 새로 쓰는 21세기를 위한 만신전萬神傳' 이라는 타이틀을 보았을 때, '세계신화총서' 라는 이 시리즈의 정체성이 좀 궁금했었다. 신화나 전설, 민담 등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좋아했기에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중국의 신화들 중 일부를 재해석해 일종의 각색을 한 작품인 듯 했다. 본래의 신화가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나 배경의 이미지, 의도 등을 그대로 가져오되 이야기의 흐름을 통일성 있고 세련되게 다듬고, 인물의 변화와 성장에 있어서도 인과관계를 명확히 해서 '신화' 가 가지고 있는 모호성을 최대한 줄이고 선명성을 높였다.


 이야기는 '유융국' 에 전리품으로 끌려가는 '항아' 와 '말희' 라는 여인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대륙을 엄청난 기세로 점령해 나가던 군사국가인 유융국은 남자들의 지위가 거느리고 있는 여성의 수에서 결정되는 국가로, 쇠락일로를 걷고 있던 항아와 말희의 여인족을 노련하게 공략했다. 용맹하게 맞서 싸우던 여인족의 전사들은 모두 죽이고 어린 여인들만 전리품으로 취해 포로로 끌고 갔는데, 갓 열두살이 된 항아와 말희 역시 그 안에 있었다. 말희는 유융국에서도 지위가 높은 '조부' 라는 장인의 눈에 들어 먼저 선택되어지고, 비쩍 말라 볼 품 없던 항아는 오래 전 전쟁에서 다리를 다친 절름발이 칼잡이 '오강' 에게 선택되어진다.

 항아는 오강의 일곱번째 부인이 되었다. 오강의 부인들과 자식들은 항아를 따뜻하게 맞아주진 않았지만 딱히 못되게 굴지도 않았다. 오강이 첫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인 오능과 오용, 둘째와 셋째 부인에게서 얻은 딸인 여축과 여인과는 나름대로 잘 지냈다. 여축, 여인과 돼지 치는 일을 맡게 된 항아는 어느날 엄청난 호우로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리게 된다. 돼지들과 함께 떠내려간 항아는 신기한 조롱박을 손에 넣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3일이나 거센 강물과 씨름하면서도 항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조롱박은 뜨거워졌다 식었다를 반복하며 항아의 체온을 유지시 주었을 뿐 아니라, 설명하기 힘든 초자연적인 기운을 불어주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오강의 두 딸인 여인과 여축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끔찍한 환란 속에서 임신한 암퇘지와 수퇘지를 데리고 3일만에 생환한 항아는 신의 보살핌을 받은 특벽한 여인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런 항아를 미워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항아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조롱박을 항상 품고 다녔고, 그러던 어느날 조롱박이 깨지며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상상히 큰 스케일의 이야기는 제법 익숙한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모습으로 흘러간다. 이야기의 전개는 대단히 빠르고 군더더기 없이 사건 중심으로 쭉쭉 진행된다. 등장인물의 감정선도 특별한 수사 없이 간략하고 적확한 단어들로 표현되는데, 대부분의 신화들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인 것을 떠올려 보면 충분히 납득된다.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중국 신화와 전설 속 이야기들이 세련되게 각색되어 요소요소에 자리잡아 고대 신화 시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겨준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드라마틱한 변화를 한두차례씩 겪게 된다.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입체적이고 다채로워서 정신없이 그들을 따라가게 되는데, 그리 두껍지 않은 볼륨 안에서 사랑, 권력, 탐욕, 정욕, 미움, 성장, 그리고 타락과 좌절 등 인간사의 모든 것들 뿐 아니라, 영웅의 탄생과 몰락, 또한 제국의 흥망성쇠도 유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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