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의 그림은 현실이 드러내는 모습을 넘어서는 것으로, 어떤 ‘감각‘이 지배하는 가상공간에 관객을 위치시킨다. 이 책의 주제는 바로 그 공간을 읽어내는 것이다.

마크 스트랜드 - P14

이 책에서 나는 호퍼의 그림을 향수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대신, 호퍼에게 길이나 철도, 통로나 잠시 쉬어가는 장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는 여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볼 것이다. 호퍼가 반복해서 사용하는 기하학 형태가 관객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도 살펴볼 것이다. 호퍼의 그림을 볼 때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감상의 일부라는 사실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사실이 관객을 그림에 빠져들게 하지만,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호퍼의 작품에서는 이 두 개의 상반된 명령어-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동시에 머무르게 하는-가 긴장감을 자아내고, 이 긴장감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 P16

바로 이런 가차없는 거부의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철로 변 집>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어느 쪽으로 가든 그쪽으로 등을 돌리는 듯하다. 가장 단순하고도 콧대 높은 도도함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기품 있게 굴복하고 있는 것이다. - P38

화폭을 길게 늘여본다면 분명 지금 보이는 것들이 되풀이될 것이다. 닫히고 열린창,현관, 상점 입구 등 어디서도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는다. 호퍼의 다른 그림과 마찬가지로 도시는 여기서 다시 한번 이상화된다. 사람들은 잠들어 있다. 길거리에는 차도 다니지 않는다. 부동과 정적의 몽상적인 조화로 마술적인 순간은 길게 늘어나고, 그 앞에 선 우리는 특별히 허락된 목격자들이다.

<이른 일요일 아침> - P39

시간을 둘러싼 질문들

시간을 둘러싼 질문들-우리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가?-은 호퍼가 그의 그림에 어두움을 얼마나 가두어놓는지 또는 적어도 제한하고 있는지의 문제 안에 존재하는 것 같다. 호퍼의 그림에서는 기다림이 흔하고, 사람들은 아무런 할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배역을 상실한 등장인물처럼, 이제 기다림의 공간 속에 홀로 갇힌 존재들이다. 그들에겐 특별히 가야 할 곳도, 미래도 없다. - P51

호퍼의 그림 속 침묵

호퍼의 그림은 무척 낯익은 장면들이지만, 볼수록 낯설고 심지어는 완전히 생소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공간 속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데 그림이 말해주지 않는, 우리로서는 추측만이 가능한 어떤 비밀스러운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듯하다. 우리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이된 듯한 기분이 든다. 무언가 숨겨진 것의 존재감, 확실히 있긴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홀로 있음에 어떤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침범하지 않고 목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듦으로써 말이다.
호퍼의 방들은 욕망의 침울한 안식처다. 우리는 그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지만, 물론 알 수가 없다. 본다는 행위에 수반되는 침묵은 커져만 가고, 이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고독만큼의 무게로 우리를 짓누른다. - P105

스트랜드는 이 책에서 그러한 역설 중 하나인 ‘떠남과 머무름의 역설‘이라는 렌즈를 통해 호퍼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다. 호퍼의 그림에서는 여행 자체가 종 - P112

종 소재가 될 뿐 아니라, 관객을 그의 그림 속으로 끌어들였다가 더이상 가지 못하게 발목을 붙드는 역설이 호퍼의 기하학적 구성과서사적 장치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스트랜드는 시인이 말하는 화가Poets on Painters라는 책에 실린 에세이에서 호퍼의 그림에 대해 "심란할 정도로 조용하고, 방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끝내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다"라고 했는데, 이것도 이 역설의 다른 표현이다.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 나와 오롯이 만나는 시간
이경혜 지음 / 보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3살부터 시작하여 무려 50년간, 150권의 일기를 쓴 것도 대단하지만, 그 일기를 단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책 삼아 자주 읽는다는 게 더 대단하다. 일기 사랑꾼의 일기 예찬에 혹하게 되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h.13 The Old-Fashioned Emperor and the Red Sultan

Brazil’s Republic

- Brazil had been ruled by only two emperors in its short history. The first emperor of Brazil, Pedro I, was the son of the king of Portugal. When Pedro was a little boy, Brazil wasn’t even a country. It was a Portuguese colony.
- Pedro grew up in the colony of Brazil. When he was twenty-three, his father (the king of Portugal) gave him the job of governing Brazil. A year later, Pedro led Brazil in declaring independence from Portugal-and from his father. He became Pedro I, the first emperor of an independent Brazil.
- In 1889, the year after slavery was made illegal, Pedro II realized that he would not be able to keep his throne any longer. He was now sixty-three years old. He had spent his life working to make Brazil a rich, free, well-educated, modern country-a modern country that no longer wanted to be ruled by an old-fashioned emperor.


Abdulhamid the Red

- The Ottoman constitution lasted for exactly one year. Then Abdulhamid ordered it dissolved. Now he would rule like an old-fashioned sultan, with no constitution or parliament to limit his power.
- Many Armenians were killed by Abdulhamid‘s soldiers. Others were forced to march out of the Turkish territory, and died of starvation and weariness on the long walk. The killing went on for three years. No one knows exactly how many Armenians were killed, but at least a hundred thousand men, women, and children died.
- The people of Turkey called themselves the ˝Committee of Union and Progress.˝ But others called them the ˝Young Tur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년 5월 1주 책

이번주 구매한 책은,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 가부장제의 창조 먼저 읽고 읽을 계획.
<아주 위험한 과학책> 둘째가 좋아하는 랜들 먼로 신간. 위험한 ~, 더 위험한 ~ 에 이어 3번째. 책은 안궁금하고 다음 시리즈 제목만 궁금.

<파친코>는 조카한테 받은 책. 어제 비오는데 같이 산책했더니 조카 가방에 있던 책 중 2권이 비에 젖었다. 아까워라..

어제 비오는데 지하철 왕복 3시간 이동과 3시간 산책했더니 몸이 물에 젖은 마냥 피곤하여 책이 눈에 안들어오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3-05-07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파친코 따끈따끈 새책으로 햇살과함께님 서재에서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즐독하시기를!

햇살과함께 2023-05-07 19:57   좋아요 0 | URL
새 책 비 맞아 쭈글쭈글해져서 안타까워요.. 얄라알라님 영어로도 읽지 않으셨나요? 밀린 책들에 언제 읽을지.. ㅋㅋ 빨리 읽고 싶네요!

얄라알라 2023-05-07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친절하시고 섬세하셔라! 기억하시네요. 네네 그랬죠. 작년에 [파친코] 원서로 야금야금 읽고 반복해 다시 읽고 푹 빠졌더랬죠. 어쩌면 드라마 남주, 이민호의 비주얼을 겹쳐 상상하면서 더 신나게 읽었는지도 모르겠어요 ㅎ 책은 항상 밀리게 마련인 거 같아요 밀린 게 그리 많은데도 이렇게 친구분들 서재 들어오면 욕심 더 올라가고 ㅋㅋ좋은 일요일 밤 보내시어요 햇살과함께님^^

햇살과함께 2023-05-08 09:29   좋아요 0 | URL
ㅋㅋ 얄라알라님 푹 빠져 읽으신다는 글이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어요~!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내 일기만 읽는다면 오히려 나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가질 수 있겠다는 두려움. 앞에서 썼던 ‘부분의 진실은 오히려 거짓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과 통하는 얘기다. 그러니 왜곡의천재인 기억에 맞서서 일기를 쓰지만 일기야말로 실체를 왜곡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진실‘의 얼굴을 하고 있기에 그것은 더욱위험한 왜곡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쓰고, 기억을 못 믿어 일기를 쓴다. 일기로 인해 나의 본질이 더욱 왜곡될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게 나는 일기의 왜곡을 두려워하면서도 기억의 왜곡에 맞서 일기를 쓴다. - P127

11) 모닝 페이지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일기는 ‘모닝 페이지‘다. 이것은 《아티스트 웨이》란 책에 나오는 개념인데, 내 식으로 간단히 말하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비몽사몽한 상태 그대로 아무 말이나 자유롭게 쓰는 작업이다. 쓰는 동안 멈추거나 생각을 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마구 쏟아 놓는 게 핵심이다.
이것은 사실 일기라기보다는 일정 기간 동안 창조성을 개발하기 위한 방법으로 나온 것인데 나는 이것도 일기의 한 종류라고 본다. 내 경우, 창작을 할 때 이 작업을 함께하면 확실히 무의식이 활성화 되어 - P147

큰 도움을 받는다. 뭐랄까, 의식과 무의식을 잇는 복도에 쌓인 쓰레기를 치워 버리는 작업 같다고나 할까? 깨끗해진 복도로 무의식이 더 쉽게 의식으로 흘러들어오는 느낌이 들고, 글을 쓰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아이디어‘가 많이 솟는 기쁨을 맛본다.
그러나 창작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모닝 페이지는 상당히 괜찮은 작업으로 여겨진다. 일상생활에서도 모닝 페이지를 써 보면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잡생각을 글로 쏟아 내서 머릿속이 정돈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 P148

물론 흔적 남기는 것을 질색하는 깔끔한 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나는 흔적을 질질 남기며 살아왔고, 그 흔적을 다시 더듬으며 복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의 인류라 이런 글을 적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날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일은, 그 일기를 오래오래 써 온 일은 태어나서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일기 쓰는 인류로 태어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어느 날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인류가 늘어나기를 바라며 일기에 대한 길고 긴 ‘자랑‘을 마친다. - P149

겁내지 말고 이 길을 가야 하는 걸까. 행복하다면 기쁨을 얻을 거고, 고통을 얻는다면 성장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나쁜 쪽은 없다.
2007. 9. 13. 목 - P1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