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도시의 밤거리: 여자들, 성, 공공장소
그녀와 같이 걸었던 병사에게는 용의도, 체포도, 수사도 없었다. 그어떤 형법적 조치도 없었다. 남자들이 길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곤란에 빠지는 경우는 여자에 비하면 적었다. 여자들이 걸어 나갈 자유라는 너무도 단순한 자유를 넘보았다는 이유로 형벌에 처해지거나 위험에 처하는경우가 비일비재했던 배경에는 여자들의 성을 통제하는 것을 중시하는사회가 여자의 보행, 아니 여자 그 자체를 필연적으로 성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 성적이지 않을 때가 없는 존재로 해석해온 정황이 있다. 이 책에서 더듬어본 보행의 역사를 통틀어 주요 인물은 (소요철학자든 플라뇌르든 등산가든) 모두 남자들이었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볼 차례다.
실비아 플래스(Sylvia Plath)가 그 이유를 일기에 적은 것도 열아홉살 때였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건 내 끔찍한 비극이다. 길에서 일하는사람들, 선원들과 병사들, 술집 단골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은데, 익명의 존재가 되고 싶은데, 경청하고 싶은데, 기록하고 싶은데, 다 망했다. 내가 어린 여자라서. 수컷으로부터 습격당하거나 구타당할 가능성이 있는 암컷이라서. 남자들이 어떤 존재인지, 남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데, 그렇게 궁금해하면 유혹한다고 오해받는다. 모든 사람과 최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좋을까. 노천에서 자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서부로 여행을 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밤에 마음껏 걸어 다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플래스가 남자들을 궁금해한 이유는 남자들에 대해 알아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막 자기의 인생을 시작한 이 어린 여자는 자기보다 자유로운 남자들의 삶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 P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