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제도가 생성된 순간의 현장, 즉 역사적인 가치판단이 개입해서 그것을 더럽히기 전의 ‘가공 전 상태‘를 훗날 롤랑 바르트는 ‘영도(degré zéro)‘라는 학술 용어로 부르게 됩니다. 구조주의란 한마디로 다양한 인간적 여러 제도(언어, 문학, 신화, 친족, 무의식 등에서의 ‘영도의 탐구‘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지금. 여기 ·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진화해온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로부터 ‘지금‘을 향해 곧바로 흘러왔고, 세계의 중심은 ‘여기‘ 이며, 세계를 살고 경험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결정하는 최종적인 재판부는다름 아닌 ‘나‘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 여기 • 나’를 역사의 진화에서 최고 도달점, 필연적인귀착점으로 간주하는 생각을 푸코는 ‘인간의humanisme‘ 라고부릅니다(자이중심주의의 일종입니다). 인간주의란 다른 말로 바꾸면 ‘지금여기. 나 주의가 됩니다. 푸코는 ‘지금, 여기 • 나’를 근원적인 사고의 원점으로 간주하고 거기에 편안하게 앉아서 그 시각으로 삼라만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판단하는 지의 자세를 ‘인간주의‘라고 부른 것입니다. - P87
푸코의 기본적인 생각은 지와 권력이근대사회에서 인간의 ‘표준화‘라는 방향을 목표로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표준화는 다양한 차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현저하게 드러난 것이 ‘신체‘ 에 대한 표준화의 압력입니다. 우리는 신체라는 것을 생리적·물리적인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동서고금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기능을 하고 고대인이든 현대인이든 지각이나 신체 조직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생각합니다. 그러나 푸코에 따르면 신체 또한 ‘의미에 의해 엮여있다는 점에서 일개 사회제도에 불과합니다. - P100
신체를 표적으로 하는 정치기술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단지 신체의 지배만은 아닙니다. 신체의 지배를 통해서 정신을 지배하는것이 이 정치기술의 최종 목적입니다. 이 기술의 요체는 강제 지배가 아닙니다. 통제되고 있는 사람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 의지를 토대로, 자기의 내발적인 욕망에의해 순종적인 ‘신민‘이 되어 권력의 그물코 속에 자기를 등록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정치권력이 신민을 조종하려고 할 때 권력은 반드시 ‘신체‘를표적으로 합니다. 모든 정치권력은 갑자기 인간의 ‘정신‘과 마주하고 의식 과정을 주무를 수가 없습니다. ‘장수를 쓰지 말고 말을쏘라‘ 또는 ‘정신을 통제하지 말고 먼저 신체를 통제하라‘ 와 같은것들이 바로 그러한 이야기입니다.
신체는 권력의 대상 및 표적으로서 발견되었다. 신체에 대한 조작되고, 형성되고, 훈련되고, 복종되고, 호응되고, 능력이 부여되든가 또는 힘이 다양하게 되는 그러한 대규모의 관심이 주어진 여러 특징이쉽게 발견되었다.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에서 - P113
푸코가 ‘권력 비판‘의 이론을 세웠다는 식으로 결론을 짓는 것역시 그가 진정으로 원한 일이 아닙니다. 푸코가 지적한 것은 모든지의 영위가 그것이 세계의 성립이나 인간의 모습에 대한 정보를정리해서 ‘축적‘ 하려고 하는 욕망에 의해 구동되는 한 반드시 ‘권력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적혀 있는 푸코의학술적 이론도, 그리고 이 책을 포함해서) 푸코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기술되거나 소개되는 모든 저술 또한 숙명적으로 ‘권력‘ 적으로기능하게 됩니다. 현재 푸코의 저작은 전 세계의 사회과학 · 인문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이며 이를 ‘공부하는 것은 제도권 내에서 거의의무처럼 되어 있습니다. 대학원생들은 푸코의 용어를 구사하고푸코의 도식에 의거해 생각하며 추론하는 것을 거의 강제적으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권력=지‘를 낳는 ‘표준화의 압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스스로 이 역설을 예지하고 푸코는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제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우리의 ‘의심‘ 까지도, 제도적인지‘로 의심받는 그 제도에 속한다는 불쾌함. 이런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권력에 대한 반역‘을 활기차게 노래하고 있는 우둔한 학자나 지식인에 대한 모멸감. 이러한 불쾌한 일들에 조종당하 - P121
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자기언급이 푸코가 보여준 비평의핵심입니다(‘대중을 증오하는‘ 것도 니체로부터 푸코가 계승한 지적 자질의 하나입니다). 여기에 있는 이 ‘나‘는 도대체 어떤 역사를 경유하여 형성된것일까? 그것을 묻는 것이 푸코가 주장한 비판의 구조이지만, 사실그것은 자기의 눈으로 자기의 뒤통수를 보고 싶다‘ 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희망입니다. 그러나 이 불가능한 희망에 가진 재산을 모두 건 미셸 푸코의 작업은 그 무모함 때문에라도 앞으로 오랫동안 칭송받을 것입니다. - P122
이상에서 본 것처럼 기호라는 것은 어느 사회집단이 인위적으로 약속한 ‘표시와 의미의 결합‘ 입니다. 기호는 ‘표시‘와 ‘의미‘가 ‘하나‘가 되어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생깁니다. 또한 ‘표시‘와 ‘의미‘ 사이에는 어떠한 자연적. 내재적 관계도 없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순전히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의 기능적 관계뿐입니다. 일례로 장기를 두려고 하는데 졸이 하나 없는 경우, 자, 이걸로 졸을 대신하지 뭐‘ 라고 말하고 귤껍질을 잘라서 장기판에 놓는다고 했을 때 장기를 두는 사람이 그 ‘약속‘에 합의를 하면 장기는계속 진행됩니다. 그러나 ‘귤껍질‘과 ‘졸‘ 사이에는 그 어떠한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결합이 없습니다. 이런 엉터리가 ‘기호‘의 본질입니다. 소쉬르는 ‘귤껍질‘과 같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표시‘를 ‘의미하는 것signifiant(시니피앙)‘으로, ‘장기의 졸의 작용‘을 ‘의미되는 것signifié(시니피에)‘ 이라고 불렀습니다. - P127
여기서 바르트가 경고하고 있는 것은 특히 ‘어떤 집단 고유의에크리튀르‘라고 특정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넓은 범위를 지닌 어법이 지닌 위험성입니다. ‘징후가 없는 언어 사용‘이 바로 ‘패권을 쥔 어법 입니다. 그어법은 그 사회의 ‘객관적인 언어 사용‘ 입니다. 즉 어떤 주관적인의견이나 개인적인 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개인의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가치중립적인 의미에서 사용하는 언어 사용을 말합니다. 바르트는 이처럼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어법이 포함한 ‘예단‘과 ‘편견‘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가치중립적인 어법 속에 그 사회집단 전원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깃들어 있다는 바르트의 생각을 보다교묘하게 활용한 것이 페미니즘 비평의 언어론입니다. 페미니즘 비평 이론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자연적인어법‘이란 ‘남성중심주의‘ 적인 어법입니다. 그것은 온갖 기호 조 - P134
작을 통해서 끊임없이 남성의 우월성과 위신을 말하고, 정치권력•과 사회적·문화적 자원을 오직 남성에게 귀속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언어 사용‘ 입니다. 따라서 남자든 여자든 ‘자연적인 어법‘으로말할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 ‘패권을 쥔 성 이데올로기‘를 되풀이해서 승인하고 찬미하게 됩니다. - P135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이처럼 ‘얽힌‘ 구조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비평의 기본원리로 제시한 것이 바르트가 텍스트 이론가로서 남긴 가장 큰 업적입니다. 텍스트와 독자는 사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매우 충격이 강한 책의 경우 마지막까지 읽은 다음 성이 - P136
차지 않아 다시 읽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읽으면서 첫번째 읽을 때 알아채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읽을 때 놓친 의미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 책을한번 끝까지 읽은 덕분에 우리의 견해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즉 그 책으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읽어내는 ‘읽을 수 있는 주체‘로 우리를 형성한 것은 텍스트를 읽는 경험 그 자체였던것입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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