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의 정치
위치성 인식

머리말

페미니즘이 네 주장의 설득력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지식이 너의 페미니즘에 설득력을 가져다주어야 해.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지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네 페미니즘도 신뢰한단다. - 장춘익 - P9

새로운 지식, ‘나‘와 지구를 살리는 지식을 생산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부가 필요하다. 융합 글쓰기는 그중 하나다. 융합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가치관, 연결 능력이다. - P11

언어와 물질은 대립하지 않는다. 물질은 언어에 의해서(만) 물질, 곧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인식 행위가 존재를 가능케 한다. 탈식민주의나 여성주의 ‘비가시화된 약자‘의 현실을 그토록 문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이미 배제된(foreclosure)‘ 영역이 있다. 해방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질문하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한계가 아니라 축복이다. - P12

만일 내가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읽기나 생각하기라기보다는 ‘쓰기‘라고 답할 것이다. 공부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인데,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은 쓰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왕도가 있다면, 역시 요령이나 기술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결국 가치관의 문제다. - P14

글쓰기는 내가 내 몸을 타고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그런 글쓰기의 핵심적인 방법이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융합‘이다. 나는 이제까지 나름대로는 융합 글쓰기를 지향했지만, 이 책에서 그 의미를 분명히 하고 싶다. - P15

이미 우리는 융합의 세계에 살고 있다.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융합이라는 단어가 주는 ‘더하기‘의 이미지를 버리자. 대신에 다른 세계로의 여행, 즉 전환(trans~) 혹은 의미의 도약(jumping together)을 추구하는 마음가짐을 가져보자. 해석은 언제나 현실보다 늦다. 그러므로 새롭지 않은 언어는 언어로서 임무를 다한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약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더 많은 자본, 더 많은 자원과 기술을 추구하는 집단에도 똑같이 해당한다.
융합은 우리가 아는 지식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공부의 즐거움과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실천(practice)이자 내 생각을 분명히 알고 더 필요한 앎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경계 넘기(rooting and shifting)다. - P16

흔히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도그마와다양성을 대립하는 사고방식으로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다양성을 옹호하지만, 각각의 다양성이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틀린 생각을 다양성이나 취향으로 옹호한다는 점에서 다양성처럼 탈정치적이고 무의미한 말도 없다. - P20

융합은 객관성을 새롭게 구성하기 위한 사유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기존의 인식을 넘어서는 것을 ‘트랜스버설(trans/versal)‘이라고 하며, 횡단(橫斷)으로 번역한다. 단어 그대로 가로지르는 것이다. 가로지름(crossing)은 수직적인 수용이 아니라 기존의 법칙을 파괴하고 재생산하고 다른 의미의 생명체를 만드는 일이다. 호프스터의 표현인 ‘뒤엉킨 위계질서(tangled hierarchy)‘나 ‘소용돌이(vortex)‘는 융합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유용하다. - P21

1장

자유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모두 투쟁으로 쟁취해야 한다. 대개는 투쟁이 힘들어서 그냥 부자유 상태로 산다. - P28

니체, 데리다, 버틀러를 ‘잇는‘ 현대 철학의 가장 큰 성과는 인간의 본질이란 것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인간은 단지 자기행위로서 구성 중(in process)인 존재다. 사는 대로 생각하자. 그것이 나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 - P33

저절로 생긴 말은 없다. 말은 권력관계의 산물이다. 사회적 - P39

약자는 언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다. 애초부터 백인 남성 외의 이들은 선제(先, foreclosure)되었다. 지동설부터 여성주의까지 새로운 사유는 어느 시대나 파문과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나를 억압하려고 만든 말에 답하려 하면 백전백패다. 융합적 사고는 언어의 전제를 알고 자기 관점에서 기존지식에 대응하는 사고방식이다. ‘답정너‘는 폭력이다. 질문을 되돌려주거나 말을 궤도 밖으로 끌어내 ‘그들을 낙후시키자. - P70

또한 본디 모든 지식은 통섭 과정 없이 설명할 수 없다. 즉통섭은 지향이라기보다 사유의 방법이다. 인간은 자기가 사는 사회의 언어로 사고하기 때문에 언어의 그물망(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시 말해 통섭은 지식 생산의 전제다. 우리가 해야할 작업은 통섭을 지향하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통섭의 경로를추적하는 일이다. - P44

여전히 윌슨의 <통섭>에는 명문이 즐비하다. 융합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다음이 아닐까. "과학 이론은 반례들에 직면하면 폐기되도록 특별히 설계되어 있다. 그것이 이왕 틀린 것이라면, 빨리 폐기되면 될수록 좋다. ‘실수는 빨리 할수록 좋다‘라는 격언은 과학적 실천에서도 하나의 규칙이다. 과학자들도 자신이 만든 구조물과 사랑에 빠지고는 한다. 물론 나도 예외는아니었다. 불행히도,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보이기 위해평생을 헛수고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 이론은 거듭되는 장례식을 통해 진보한다." - P47

대화할 때는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도의 자세가 최선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도 쉽지 않다. ‘머리‘가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는 열린 마음, 지적 호기심, 인격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 P51

플라톤과 공자부터 공부할 필요가 없다. ‘지금 여기‘에서 내게 필요한 공부를 하다 보면 ‘고전‘과 만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그러려면 우선 현재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알고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내게 필요한 공부를 하다 보면 다음에는 어떤 공부가 필요할지깨닫게 된다. - P53

지식은 인식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이것이 이른바 ‘모순‘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지식은 없다. 융합은 우리가 그때그때 ‘선택한 위치에서 기존의 지식을 재조직화하는 공부법이다.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 - P57

지독한 위치성을 인식하는 일, 이것이 앎의 본질이다. - P61

상담심리학 개론서에 따르면 상담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인생에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능력(capacity)이다. 이는 상담자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 이야기를 판단 없이 들어주는 사람, 말이 통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 P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