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을 다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인선의 옆얼굴을 나는 보았다. 특별한 미인이 아니지만 이상하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녀가 그랬다. 총기 있는 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성격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어떤 말도 허투루 뱉지 않는, 잠시라도 무기력과 혼란에 빠져 삶을 낭비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 때문일 거라고. 인선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혼돈과 희미한 것, 불분명한 것들의 영역이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목적을 가진다고, 애써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낱낱이 실패한다 해도 의미만은 남을 거라고 믿게 하는 침착한 힘이 그녀의 말씨와 몸짓에 배어있었다. 피투성이 손에 헐렁한 환자복을 걸치고 팔뚝에 주렁주렁 주삿줄을 매달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약하거나 무너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 P44

문제가 있는 인터뷰이를 만나거나 섭외된 장소에 말썽이 생겨 내가 허둥거리면 동갑내기 인선은 그렇게 선선히 말하곤 했다. 일단 나는 계속하고 있을게. 내가 문제를 해결하든, 절반 정도만 해결하든, 마침내 실패하고 돌아오든 그녀는 장비들을 세팅하고, 현장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놓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 영상을 녹화해야 할 경우에는 캠코더를 고정시켜놓고, 스틸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서 웃으며 말했다.
시작하고 싶을 때 시작해.
그 웃음에 문득 전염되어 내 마음이 밝아지면, 내 밝아진 얼굴에 안심한 인선의 눈이 더 환해졌다.
뭐, 일단 나는 계속하고 있을 테니까.
그 말이 주문처럼 나를 안심시키곤 했다. 아무리 까다로운 인터뷰 상대를 만나도,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가 생겨도,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의 침착한 얼굴을 보면 더이상 당황할 필요도, 허둥거릴 이유도 없다고 느껴졌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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