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됭의 마귀들림 - 근대 초 악마 사건과 타자의 형상들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6
미셸 드 세르토 지음, 이충민 옮김, 이성재 감수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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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읽어야 할 책은 카를로 긴즈부르크의 <치즈와 구더기>이다..

이 책이 처음 번역되던 시절만 해도 아직은 미시사에 대한 소개글 정도만 나왔을 정도라 국내의 참고문헌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근 10여년이 지나니 이제는 만만치 않게 축적되었다..

긴즈부르크의 책만 해도, <마녀 베난단티와 밤의 전투>(아쉽게도 절판된 상태다)와 <실과 흔적>이 번역 출간되었다.. 

여기에 뤼시앙 페브르의 <16세기의 무신앙문제>(이 책 역시 절판이구나)나 미하일 바흐찐의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이 책도..), 그리고 그 원저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리엘>을 함께 읽어둘 필요가 있다.. 그리도 종교적이던 중세 사회가 왜 100년도 채 안 되어 <무신앙>이 일반적인 사회가 되어버렸을까.. <루됭의 마귀들림> 사건은 이 무신앙 문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결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이런 책들을 한권씩 한권씩 꺼내읽는다면 6월 한 달을 녹녹히 보낼 수 있을텐데..

아쉽게도 전공자가 아닌 나로서 이런 책들은 양로원에서나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본격적으로 긴즈부르크에 들어가기 전에, 뭔가 다른 책을 읽어두고 싶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서가에 꽂혀 있던 미셀 드 세르토의 <루됭의 마귀들림>을 꺼내든다..

 

세르토는 푸코와 부르디외를 열심히 읽었던 이라면 낯설지 않은 저자이다.. 부르디외의 주저인 outline of theory of practice가 아직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그 무수한 부르디외 번역본 중 이 책이 목록에 없다는 점도 참 기괴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왠지 메타포로 사용되는 듯한 감이 있는 practice에 대한 또 다른 깊은 사유와 천착을 보여준 이가 바로 세르토이다.. 그의 주저는 이 출판사의 인문 라이브러리 기획으로 번역된다 하니 그 때를 기다리기로 하고..(물론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찌됐건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

<루됭의 마귀들림>이라는, 우리에게는 친숙치 않은,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것처럼 보이는) 한 사건에 대한 다성적(multi-vocal) 목소리들을 너무나 매혹적으로 복원해 놓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원 작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이 사건에 대해 켜켜이 쌓인 <문서고>(archive)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료만 있다고 복원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그 자료들을 꼼꼼이 읽어내고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복원해낼 수 있는 프랑스 역사학계의 두터운 내공이 깔려 있다..

사실 이 책들을 읽어야 하는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밤의 전투(2)를 쓸 때 밝히기로 한다..

 

일단, 이 책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정은 삽화와 해설로 이루어진 짧은 프로이트적 서론을 보고나서 판단하면 된다..

거짓말과 진실 사이의 전투, '이다'와 '아니다' 사이의 전투는 강박적이 되고 바로크적이 된다. 열린 무덤이나 파괴된 제국을 중심으로 끝없는 싸움이 벌어진다. 속담이 말하기를, '다들 틀렸으면서 다들 자기가 옳다고 여긴다.'

가히 이 책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문장이다..

 

이 책에서 한 수 배운 점이 있다면..

1. 마귀가 들러붙는 것obsession과 마귀에 들리는possession 것은 다르다는 것.. 17세기(1643년)의 문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들러붙음obsession과 마귀들림possession의 기본적 차이는 다음과 같다. 들러붙음에서 악마는 들러붙은 사람에게 외적으로만 작용한다. 즉 그 사람이 좋든 싫든 그 사람의 눈 앞에 빈번히 나타나고 그 사람을 때리고, 그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며, 본래 성격, 기질, 능력의 폭을 현저히 넘어서는 기이한 감정과 동작을 자극한다. 반면 마귀들림에서 악마는 마귀들린 사람의 정신능력과 신체기관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그래서 악마는 그 사람이 적어도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스스로 할 수 없는 행동을 그 사람 내부에 일으킬 뿐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다.

왜 이 시기 들러붙음이 아니라 <마귀들림>이 중요한 현상이 되었는가를 생각할 때 그 차이는 중요해진다.. 이제 현장에서 발견된 모든 재료가 형태를 얻어 하나의 담론이 되는 것이다.. 푸코에게 경의를 표하며 세르토는 이 절에 <말과 사물>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

 

2. 또 하나는 공간이 사람들의 정신을 진정으로 '홀리는'posession 것은 오직 냄새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 냄새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2차원의 물체들을 우리가 들어가 있는 3차원의 공간으로 바꿔놓는다.. 이러한 냄새의 마법은 17세기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후각은 시각에 그 우위를 내주게 되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여기서 할 수는 없지만, 푸코의 <광기의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 <향수>의 그르누이가 그렇게 냄새에 집착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이에 대해서는 쥐스킨트의 <향수>에 간략한 리뷰를 단 적이 있다..)

냄새는 어떤 탈시간적 시간, 후각, 상상력, 즉각성이라는 준엄하고 억눌린 법칙을 따르는 시간을 위한 영토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점유possession하며, 배석자들과 배우들을 ‘점령’occupation한다. 냄새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2차원의 물체들을 우리가 들어가 있는 3차원의 공간으로 바꿔놓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공간이 언어나 몸짓으로 묘사되기 이전에, 일련의 스펙터클이 최초의 ‘마법’을 보여주거나 확장시키기 이전에 후각적 인상들이 그 공간을 공간으로 인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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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Ⅰ - 정신의 지도를 그리다 1856~1915 문제적 인간 8
피터 게이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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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하 1400페이지가 넘는 피터 게이P. Gay의 <프로이트>는 분량만이 아니라 그 구성으로 보더라도 실로 대작이다.. 원작자뿐만 아니라, 번역자, 그리고 <문제적 인간> 시리즈를 계속해서 내고 있는 문제적 출판사 <교양인>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평전>이라는 장르를 그다지 즐겨 보지는 않지만,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프로이트라는 한 개인의 전기적 측면과, 평생에 걸친 그의 정신분석작업의 개요가 균형을 이루어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히스테리 연구>에서 <꿈의 해석>, 그리고 마지막 저작인 <정신분석 개요>에 이르는 그의 전 저작이 실로 <정신분석 정치>로 점철된 그의 삶에 대한 기술과 맞물려 매우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무리>이다 못해 <무의미한> 짓일테고.. 다만, 한 가지, 논문 최종수정 과정에서 여러 심사위원들의 심사평들을 다시 환기하면서 느꼈던 여러 감정들을 되새김질하는데 프로이트의 삶이 꽤 위안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정력적이면서 야심에 가득찬 젊은 탐험가로서의 젊은 프로이트의 삶이.. 기존의 세계관, 혹은 상식으로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이유로, <교수임용 심사>에서 혹은 새 책을 낼 때마다--심지어 <꿈의 해석>마저도-- <부정적>인 대답을 들어야 했던 프로이트의 <절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는 <오만함>은 꽤 인상적인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끔찍할 정도로 멀리 앞서 가고 있네.. 이제는 이론 작업을 할 힘이 전혀  남지 않았네. 그래서 저녁이면 몹시 따분해. .. 학문이 점점 어려워지네. 저녁이면 기분을 좀 밝게 해주고, 상쾌하게 해주고, 깨끗하게 해줄 만한 것을 원하지만, 늘 혼자야..

물론, 이런 세기의 천재와, 자신이 만들어놓은 구멍에서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나를 동일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가끔씩 그런 착각이라도 하면서 살지 않으면, 내가, 그리고 우리가 처한 이 현실이 얼마나 비참하게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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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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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진가를 알아주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 식민주의, 파시즘, 전체주의, 냉전, 이 모든 부의 유산에 날카로운 비판의 메스를 들이대면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 필력에 찬사를 금할 수 없다. 그가 예언한 디스토피아의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노라니 그가 더욱 절실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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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관리정치의 탄생 -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8~79년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난장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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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푸코는 애초의 기획에서 다소 벗어난 <신자유주의>로 연구를 옮겨갔을까. 근대의 비정상, 괴물에 천착했던 푸코가 보기에 신자유주의의 교부들이야말로 자유/자연이라는 감옥에 사람들을 가둬버린 이 시대를 예비했던 괴물들이었을까. 푸코의 매혹은 무자비할 정도로 섬뜩한 괴물을 만들어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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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 신드롬 - 1944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는 과거를 어떻게 다루어왔는가
앙리 루소 지음, 이학수 옮김 / 휴머니스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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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의 <비시 신드롬>은 프랑스 현대사의 가장 아픈 고리의 하나인 <비시 체제>의 기억이 전후 프랑스 사회에 끼친 영향을 <신드롬>이라는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통해 분석한 저작이다..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은 저자의 말로, 실제로 전후 프랑스의 정치사를 네 단계로 구분해 각각 미완의 애도(1944-54), <레지스탕스주의>라는 지배신화의 구축, 혹은 기억의 대상화 구축작업을 통한 억압의 시기(1954-62), 신화의 붕괴, 억압으로의 회괴, 소위 "깨어진 거울"(1971-1974), 강박의 시기(1974- 이후)로 이름붙여 기술하는 방식에서는 <정신분석학적>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억압>이나 <강박>과 같은 개념 자체가 이미 분과학문의 틀을 넘어 너무나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 되어버려서, '색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기념제나 영화, 역사서술 등 비시 신드롬의 벡터를 새롭게 다룬 2판은 사실 분석 수준에서는 1판에 비해 너무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다만 보수파 내부의 패탱파와 드골파 사이의 알력, 패탱의 유산과 레지스탕스의 유산을 교묘히 저울질 하면서, 레지스탕스의 유산을 독식하는 드골의 전략, 비시체제/과거에 대한 전쟁세대와 전후세대의 미묘한 입장 차이 등에 대한 기술은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워낙 프랑스 현대 사회사에 무지한 지라, 이런 앙리 루소의 작업이 프랑스 사회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지, 궁금하기도 했다.. 1차대전의 영웅이자 비시체제의 수반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던 '패탱 원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드골과 레지스탕스와의 복잡미묘한 관계, 반유대주의, (나치체제에 대한) 협력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의 문제 등등은 사실 전후 프랑스의 기억의 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루소의 작업은 <다소 정태적으로 보이는> 피에르 노라의 방대한 <기억의 장> 작업보다는(물론, 노라 역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들--앙리 루소와 더불어 도미니크 라카프라도 유사한 비판을 하고 있다--을 상당히 의식한 듯, 작업의 후반부로 갈수록 기억들의 갈등/경합이라는 측면을 더 부각시키는 듯 보인다.. 또 누구나 읽는 일반론적 성격의 글인 <기억과 역사 사이에서>가 아닌 구체적인 사례논문인, 예를 들어 <드골주의자와 공산주의자>에서 노라의 기술은 훨씬 다이나믹한 게 사실이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의 양상을 훨씬 잘 포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듯 기억을 둘러싼 경합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도, 여러 당파들 간의 적대감이 적어도 <공적 영역>을 중심으로 표출되고 또 논쟁되어온  프랑스 사회는, 그 적대가 상대 당파에 대한 <학살>로 귀결되었던 한국 사회와 비교한다면 묘한 여운을 주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도 냉전체제의 영향을 받았고, 그 결과 패탱파가 부활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국내 문제>였다.. <친일>과 <반일>의 대립구도에서 처음 주도권을 쥐었던 <반일>의 가장 핵심적인 당파가 냉전체제 아래 점차 <친공>으로 몰리면서 배제되고, 결국 내전을 거치면서 완전히 몰락해버리면서 <과거 청산>이라는 기획 자체가 날아가버린 남한 사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거기에는 남한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미군정>의 검은 안개도 드리워져 있을 터이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집단 기억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가능할까.. 과연 그 출발점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오히려 우리에게는 길었던 36년간의 식민지체제에 대한 기억보다, 해방 3년사(혹은 8년사)의 기억이 이후 한국사회에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식으로 물음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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