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 신드롬 - 1944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는 과거를 어떻게 다루어왔는가
앙리 루소 지음, 이학수 옮김 / 휴머니스트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앙리 루소의 <비시 신드롬>은 프랑스 현대사의 가장 아픈 고리의 하나인 <비시 체제>의 기억이 전후 프랑스 사회에 끼친 영향을 <신드롬>이라는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통해 분석한 저작이다..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은 저자의 말로, 실제로 전후 프랑스의 정치사를 네 단계로 구분해 각각 미완의 애도(1944-54), <레지스탕스주의>라는 지배신화의 구축, 혹은 기억의 대상화 구축작업을 통한 억압의 시기(1954-62), 신화의 붕괴, 억압으로의 회괴, 소위 "깨어진 거울"(1971-1974), 강박의 시기(1974- 이후)로 이름붙여 기술하는 방식에서는 <정신분석학적>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억압>이나 <강박>과 같은 개념 자체가 이미 분과학문의 틀을 넘어 너무나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 되어버려서, '색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기념제나 영화, 역사서술 등 비시 신드롬의 벡터를 새롭게 다룬 2판은 사실 분석 수준에서는 1판에 비해 너무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다만 보수파 내부의 패탱파와 드골파 사이의 알력, 패탱의 유산과 레지스탕스의 유산을 교묘히 저울질 하면서, 레지스탕스의 유산을 독식하는 드골의 전략, 비시체제/과거에 대한 전쟁세대와 전후세대의 미묘한 입장 차이 등에 대한 기술은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워낙 프랑스 현대 사회사에 무지한 지라, 이런 앙리 루소의 작업이 프랑스 사회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지, 궁금하기도 했다.. 1차대전의 영웅이자 비시체제의 수반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던 '패탱 원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드골과 레지스탕스와의 복잡미묘한 관계, 반유대주의, (나치체제에 대한) 협력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의 문제 등등은 사실 전후 프랑스의 기억의 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루소의 작업은 <다소 정태적으로 보이는> 피에르 노라의 방대한 <기억의 장> 작업보다는(물론, 노라 역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들--앙리 루소와 더불어 도미니크 라카프라도 유사한 비판을 하고 있다--을 상당히 의식한 듯, 작업의 후반부로 갈수록 기억들의 갈등/경합이라는 측면을 더 부각시키는 듯 보인다.. 또 누구나 읽는 일반론적 성격의 글인 <기억과 역사 사이에서>가 아닌 구체적인 사례논문인, 예를 들어 <드골주의자와 공산주의자>에서 노라의 기술은 훨씬 다이나믹한 게 사실이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의 양상을 훨씬 잘 포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듯 기억을 둘러싼 경합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도, 여러 당파들 간의 적대감이 적어도 <공적 영역>을 중심으로 표출되고 또 논쟁되어온  프랑스 사회는, 그 적대가 상대 당파에 대한 <학살>로 귀결되었던 한국 사회와 비교한다면 묘한 여운을 주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도 냉전체제의 영향을 받았고, 그 결과 패탱파가 부활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국내 문제>였다.. <친일>과 <반일>의 대립구도에서 처음 주도권을 쥐었던 <반일>의 가장 핵심적인 당파가 냉전체제 아래 점차 <친공>으로 몰리면서 배제되고, 결국 내전을 거치면서 완전히 몰락해버리면서 <과거 청산>이라는 기획 자체가 날아가버린 남한 사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거기에는 남한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미군정>의 검은 안개도 드리워져 있을 터이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집단 기억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가능할까.. 과연 그 출발점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오히려 우리에게는 길었던 36년간의 식민지체제에 대한 기억보다, 해방 3년사(혹은 8년사)의 기억이 이후 한국사회에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식으로 물음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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