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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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힐베르크-아렌트-레비-아메리-아감벤으로 이어지는 사유의 궤적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한다..

 

우선 레비에 대한 책들을 계속 번역 출판하고 있는 <돌베개>에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비의 사색의 여정을 가장 충실하게 보여주는 이 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가 가뜩이나 불황인 한국 출판시장에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현실은 현재 우리네 삶의 각박함을 반영하는 것 같아 그닥 마음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왜 인간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가..

왜 아우슈비츠와 같은 악-오류는 계속 되풀이되는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다..

그건 아마 너무나 절실하게 번역되어 나온 이 책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번역으로도 레비의 고뇌가 충분히 전달될 만큼 매끄럽게 번역해준 역자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책에도 나오듯이 레비에게 자신의 언어를 번역하는 것은 몹시도 중요한 것이었다..

 

문제는 한자어이다..

아주 사소한 한자 병음의 오류가 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려서는 안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106페이지의 이식은 아무리 봐도 利殖이 아니라 移殖, 혹은 이주(移住)이고..

183페이지의 역은 易이 아니라 逆인 것 같다..

 

이런 것들은 혹 번역과정에서 오타에 의해 발생하더라도, 편집부가 충분히 잡아줄 수 있는 오류이다..

그나마 몇 안 되는 한자어 병기에서 생기는 이러한 오류들이 이 책을 훼손시키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2쇄에서는 꼭 반영이 되길 바란다..

 

 

 

 

공포, 이데올로기적 유혹, 승자를 곧이곧대로 모방하는 것, 어떤 권력이건 간에-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시간과 장소에 제한된 권력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향한 근시안적 욕망, 비겁, 명령이나 규율 자체를 교묘하게 피하려는 철저한 계산에 이르기까지 그 동기는 다양하다. 이 모든 동기들은 각개로든 서로 결합되어서든 이러한 회색지대를 만들어내는 데 작용했고, 이 회색지대의 구성원들은 특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고 강화하려는 의지로 서로 결합했다.

반복하지만 진짜 증인들은 우리 생존자가 아니다. 이것은 불편한 개념인데, 다른 사람들의 회고록을 읽고 여러 해가 지난 뒤 내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차츰차츰 인식하게 된 것이다. 우리 생존자들은 근소함을 넘어서 이례적인 소수이고, 권력 남용이나 수완이나 행운 덕분에 바닥을 치지 않은 사람들이다. 바닥을 친 사람들, 고르곤을 본 사람들은 증언하러 돌아오지 못했고, 아니면 벙어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 "무슬림들", 가라앉은 자들, 완전한 증인들이고, 자신들의 증언이 일반적인 의미를 지녔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칙이고 우리는 예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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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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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의 사상으로 들어서기 위해 가장 중요한 책. 예전 이 책에 실린 <회색지대>와 <부끄러움>을 외국어로 읽으면서도 탄복했던 적이 있다. 정말 레비가 자살하지 않았으면 모든 것이 단순명쾌했을까. 하지만 역시 증언은 남는다. 그리고 그 증언은 잔여(remnants)임을, 아감벤에게 계시한 이도 바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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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잔 - 그 존재와 의미, 문지스펙트럼 우리시대의 지성 5-009 (구) 문지 스펙트럼 9
칼 슈미트 지음, 김효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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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매혹을 주는 책. 나치 이력만 없었다면 정말 언젠가는 칼 슈미트의 세기가 되었을텐데. 요즘 좌파사상가들이 왜 그의 텍스트에 의존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그들은 대결하고 싶었지만, 그의 논리에 매혹되고 말았던 것. 현대 정치사상의 <절대반지>와 같은 그의 존재감을 느끼기 위한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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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잇키 - 천황과 대결한 카리스마 문제적 인간 6
마쓰모토 겐이치 지음, 정선태.오석철 옮김 / 교양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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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이라는 출판사의 <문제적 인간> 시리즈는 꽤 흥미로운 기획이다.. 로베스피에르를 시작으로, 괴벨스, 히틀러 등등 나름 근현대사의 문제적 인간들의 삶을 재발굴한다는 것이 기획취지인 듯 싶은데, 한권 한권의 볼륨(책값)이 만만치 않아 , 읽기(구입하기)가 심히 망설여지는 책들이기도 하다.. 이번에 번역된 <기타 잇키 평전>은 저자(마츠모토 겐이치, 松本健一)가 40여년에 걸쳐 씨름해온 기타 잇키라는, 근대 일본의 가장 독특한 사상가의 일대기를 거의 완벽하게 재구성해낸, 무려 1200페이지에 달하는 거작이다.. 이 정도면 거의 <오마쥬> 수준이다..

40여년에 걸친 조사답게, 저자는 방대한 자료들을 동원해서 소년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50여년의 세월을 꼼꼼히 그려낸다.. 물론 그런 성실함이 <평전> 장르의 한 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연애, 그리고 교우관계까지를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그 사람의 면모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직결된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마왕이라 불리면서, 1930년대 제 2의 유신을 꿈꾸는 일본의 젊은 청년장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기타의 일대기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그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왜 30년대 일본 사회에서 그토록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산했는지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그 점에서 본다면 1200페이지라는 엄청난 볼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마왕으로서의 기타의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사실상 실패하고 있다.. 저자는 끊임없이 카리스마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카리스마는 설명이 필요한 개념이다.. 그의 사상이 30년대 일본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그의 카리스마때문이었다는 식의 논리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지금 보기엔 구태의연하고 낡아보이는 기타의 개조사상에 당대의 젊은이들이 빠져들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총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소위 메이지국가의 완성과 더불어 찾아온 '시대폐색' 이후의 사상적 공백지대에 내리친 '섬광'이라거나, 혹은 (저자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처럼) 기타 자신이 뿜어내는 기묘한 마왕적 카리스마라고 정리해버린다면, 1920-30년대 일본의 정치사/사상사적 토대가 너무 빈곤해져버린다. 물론 이를 사상사적 저술이 아닌 <평전>이 갖는 한계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치부해버리기에 기타의 <사상계의 마왕>으로서의 지위는 너무나 절대적이고 신화적인 것이다.. 기타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그 신화와 전설들을 사상사적 토대에서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하는 작업일 것이다.. 그 점에서 이 평전은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기타에 대한 회고주의적 관점이다.. 전전의 모든 것을 부정하며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던 전후 민주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60년대부터 전전의 아시아주의, 혹은 기타 잇키의 <순정사회주의>에 대한 재이해의 필요성이 일각에서 조금씩 제기되었고, 이는 당시의 상황에서 너무나 당연한 요청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을 제기하는 이들은 전후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일본의 사상계(그 대표적인 논자로서 마루야마 마사오)에서 이단시되었다.. 어찌됐건 패전과 더불어 전전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자리에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밖에 없었던 전후의 사상계에서 아시아주의나 기타 잇키는 너무나 위험한, 금단의 성역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 논의들은 지금의 맥락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모순적'이고 '복합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순적이기때문에 그만큼 가능성의 영역이라는 '위험한', 그리고 그 때문에 '매혹적인' 논의로 전화될 수 있다.. 전후 다케우치 요시미의 문제제기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진정한 전후 민주주의가 일본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전전의 '위험한' 사상들을 터부시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들 '위험한' 사상들과의 정면대결을 통해 이들을 전후 민주주의의 토양 속에 이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들을 금기시한다는 것은 전전 일본이 가졌던 문제의식들을 전부 포기하고 망각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케우치로서는 "뜨거운 불 위에 놓인 밤을 줍는" 심정으로 이들 전전의 사상들을 전후로 끌어오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전후 일본 사상사(혹은 사회사)에서 다케우치 식의 이러한 문제제기가 갖는 의의는 결코 부정할 수 없지만, 이 물음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그 사상들이 당대의 현실에서 묻고자 한 것과 그 한계, 좌절과 전향, 그리고 체제이데올로기에 흡수되지 않은 그 여백을 총체적으로 파악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거의 거국일치의 형태로 ‘자진해서’와 ‘어쩔 수 없이’라는 심경 사이에서 러일전쟁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자진해서’ 거의 무뇌아처럼 전쟁으로 돌진하는 국체론자들과, 반전론을 부르짖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전쟁이라는 실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당대의 사회주의자들(고토쿠 슈스이, 혹은 우치무라 간조까지)을 동시에 비판하면서(당대의 ‘강단 사회주의’(자본가 사회주의)나 아이잔 식의 ‘국가사회주의’(복고적 혁명주의)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기타가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를 되묻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현실 사회에서 기타의 논리의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자는 것은 아니며, 그보다는 당대 사회에서 기타의 논리가 발산해낼 수 있었던 파장을 명확히 그려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시대에 기타를, 혹은 아시아주의를 소환해내는 이러한 작업들은 과거의 망령에 대한 또 하나의 노스탤지어, 즉 회고주의에 빠져버릴 위험성이 있다.. 이 평전이 갖는 또 하나의 아쉬움 역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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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 - '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 What's Up 1
알랭 바디우 지음, 현성환 옮김 / 새물결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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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현대성을 읽어내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으나, 그의 책을 칼 바르트나 야콥 타우베스 옆에 놓으면 너무 초라해보일 것 같다. 바울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독해하다보니, 그의 사상이 갖는 <메시아적인 것>의 의미가 너무 축소되어버려 아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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