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 화재경보 -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읽기
미카엘 뢰비 지음, 양창렬 옮김 / 난장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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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무엇보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의 악명 높은 기존 번역본들에 비해 가독성을 한껏 높여준 역자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미 어느 정도 연구가 축적된 현재, 뢰비의 해석 자체는 그리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간결하고 가독성 있게 주석을 다는 것 역시 상당한 고수가 아니면 어려운 작업이다..

 

일단 그의 두 테제를 적어둔다..

 

 

테제 6: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인식하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어떤 위험의 순간에 번득이는 어떤 기억을 제 것으로 삼는다는 것을 뜻한다. 위험의 순간에 역사적 주체에게 느닷없이 주어지는 과거의 이미지를 꼭 붙드는 것은 역사적 유물론의 과제이다. 그 위험은 전통의 존속만큼이나 그 전통의 수용자도 위협한다. 둘 모두에게 그 위험은 지배계급에게 도구로 넘어갈 위험이다. 어느 시대에나 전통을 제압하려는 타협주의로부터 그 전통을 다시 뽑아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메시아는 구원자로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메시아는 적그리스도를 극복하는 자로서도 오는 것이다. 과거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일으키는 재능은 적이 승리한다면 죽은 자들도 그 적 앞에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완벽히 확신하는 역사가에게만 주어진다. 그리고 이 적은 승리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테제 9: [파울] 클레가 그린 새로운 천사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의 천사는 자기가 꼼짝 않고 응시하던 어떤 것에서 멀어지는 듯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부릅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는 필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천사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우리에게 일련의 사건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바로 그 곳에서 천사는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쉼 없이 쌓아올리고 또 이 잔해를 자기 발 앞에 던지는 단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 천사는 머물고 싶어 하고 죽은 자들을 깨우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 다시 결합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낙원에서 폭풍이 자신의 날개를 꼼짝 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천사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해 저항할 수 없이 천사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천사의 앞에 쌓이는 잔해의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런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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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속패전론 - 전후 일본의 핵심
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옮김 / 이숲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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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사유를 담은 책은 아니다. 많은 논자들이 이미 제기한 논의들을 깔끔히 정리한 책. 아마 3.11이라는 파국 이후 자신들의 사회/국가는 무엇(이었)인가라는 간절한 물음이 이 책으로 사람들을 쏠리게 한 하나의 이유일 듯. 다만 이런 정치평론이라는 장르가 유행할 수 있는 풍토는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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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 스타시스, 정치의 패러다임
조르조 아감벤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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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대한 독해를 통해 아감벤이 던지는 물음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홉스의 국가이론, 즉 <리바이어던>을 제지하는 자, 즉 카테콘katechon적 전통에서 바라볼 것인가(슈미트), 아니면 "지상의 시간이 종말에 이르면 제거되어야 할 저 종말론적 짐승"으로 볼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아감벤은 하필이면 왜, 홉스가 자신의 책에 <리바이어던>이라는 제목을 선택했을까 라는 소소한, 하지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논의를 이어간다..다시 말하면 "커먼웰스의 이론을 제공하려고 한 홉스는 왜 적어도 기독교 전통 내에서는 악마적 함의를 지니고 있던 괴물의 이름으로 그러한 커먼웰스를 불렀을까" 하는 것이다..

 

 

아감벤의 논증 자체가 정확한 것인지 평가할 수 있는 지식이 내게는 없다.. 사실 내심 아감벤의 논증의 허황성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제시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다..

 

도상학적 전통에서 보았을 때, 리바이어던은 적그리스도는 종말론적 전통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종말의 잔혹한 괴물을 가리키는 악마의 뱀 리바이어던 위에 앉은 적그리스도"), <리바이어던>은 철저히 기독교적 종말론적 전통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아감벤의 주장은 어떤 함의를 지니는 것일까..

슈미트의 해석이 틀렸고, 내가 맞았다는 식의 해석학적 배틀을 하려는 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카테콘적 세계관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종말론에서 찾으려는 것 같긴 한데..

"리바이어던의 왕국과 하느님의 왕국은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두 개의 현실로, 결코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후자가 실현될 때 전자는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둘은 종말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자, 그렇다면 그 다음은?

 

역시 이 부분을 우리가 가진 언어로 명확히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어쩌면 하나의 태도, 혹은 방법과 같은 것일텐데..

벤야민을 읽을 때마다 어렴풋하게나마 떠오르는 그 무엇..

아감벤 역시 그 희미한 불빛에 의존하며 사색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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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 스타시스, 정치의 패러다임
조르조 아감벤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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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신학의 관점에서 홉스의 <리바이어던> 읽기. 아감벤 특유의 종말론적 메시아니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따라 찬반이 갈릴 듯. 역자도 강조한 것처럼 ˝(우리가 아는 한)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된 적은 없었다˝는 의미에서 그 독해를 평가해줄 수는 있겠지만. <왕국과 영광>의 예고편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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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분열증 현대사상의 모험 1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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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리 말로 안티오이디푸스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장 분열분석-입문을 읽으며, 왜 이 책이 68세대들에게 받아들여졌는지 알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마치 오늘날 팟캐스트를 듣는 것과 같은 즐거움도. 다만 볼륨을 조금 압축해도 좋지 않았을까. 이 역시 리토르넬로의 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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