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관리정치의 탄생 -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8~79년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난장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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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푸코는 애초의 기획에서 다소 벗어난 <신자유주의>로 연구를 옮겨갔을까. 근대의 비정상, 괴물에 천착했던 푸코가 보기에 신자유주의의 교부들이야말로 자유/자연이라는 감옥에 사람들을 가둬버린 이 시대를 예비했던 괴물들이었을까. 푸코의 매혹은 무자비할 정도로 섬뜩한 괴물을 만들어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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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 신드롬 - 1944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는 과거를 어떻게 다루어왔는가
앙리 루소 지음, 이학수 옮김 / 휴머니스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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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앙리 루소의 <비시 신드롬>은 프랑스 현대사의 가장 아픈 고리의 하나인 <비시 체제>의 기억이 전후 프랑스 사회에 끼친 영향을 <신드롬>이라는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통해 분석한 저작이다..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은 저자의 말로, 실제로 전후 프랑스의 정치사를 네 단계로 구분해 각각 미완의 애도(1944-54), <레지스탕스주의>라는 지배신화의 구축, 혹은 기억의 대상화 구축작업을 통한 억압의 시기(1954-62), 신화의 붕괴, 억압으로의 회괴, 소위 "깨어진 거울"(1971-1974), 강박의 시기(1974- 이후)로 이름붙여 기술하는 방식에서는 <정신분석학적>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억압>이나 <강박>과 같은 개념 자체가 이미 분과학문의 틀을 넘어 너무나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 되어버려서, '색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기념제나 영화, 역사서술 등 비시 신드롬의 벡터를 새롭게 다룬 2판은 사실 분석 수준에서는 1판에 비해 너무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다만 보수파 내부의 패탱파와 드골파 사이의 알력, 패탱의 유산과 레지스탕스의 유산을 교묘히 저울질 하면서, 레지스탕스의 유산을 독식하는 드골의 전략, 비시체제/과거에 대한 전쟁세대와 전후세대의 미묘한 입장 차이 등에 대한 기술은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워낙 프랑스 현대 사회사에 무지한 지라, 이런 앙리 루소의 작업이 프랑스 사회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지, 궁금하기도 했다.. 1차대전의 영웅이자 비시체제의 수반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던 '패탱 원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드골과 레지스탕스와의 복잡미묘한 관계, 반유대주의, (나치체제에 대한) 협력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의 문제 등등은 사실 전후 프랑스의 기억의 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루소의 작업은 <다소 정태적으로 보이는> 피에르 노라의 방대한 <기억의 장> 작업보다는(물론, 노라 역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들--앙리 루소와 더불어 도미니크 라카프라도 유사한 비판을 하고 있다--을 상당히 의식한 듯, 작업의 후반부로 갈수록 기억들의 갈등/경합이라는 측면을 더 부각시키는 듯 보인다.. 또 누구나 읽는 일반론적 성격의 글인 <기억과 역사 사이에서>가 아닌 구체적인 사례논문인, 예를 들어 <드골주의자와 공산주의자>에서 노라의 기술은 훨씬 다이나믹한 게 사실이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의 양상을 훨씬 잘 포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듯 기억을 둘러싼 경합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도, 여러 당파들 간의 적대감이 적어도 <공적 영역>을 중심으로 표출되고 또 논쟁되어온  프랑스 사회는, 그 적대가 상대 당파에 대한 <학살>로 귀결되었던 한국 사회와 비교한다면 묘한 여운을 주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도 냉전체제의 영향을 받았고, 그 결과 패탱파가 부활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국내 문제>였다.. <친일>과 <반일>의 대립구도에서 처음 주도권을 쥐었던 <반일>의 가장 핵심적인 당파가 냉전체제 아래 점차 <친공>으로 몰리면서 배제되고, 결국 내전을 거치면서 완전히 몰락해버리면서 <과거 청산>이라는 기획 자체가 날아가버린 남한 사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거기에는 남한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미군정>의 검은 안개도 드리워져 있을 터이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집단 기억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가능할까.. 과연 그 출발점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오히려 우리에게는 길었던 36년간의 식민지체제에 대한 기억보다, 해방 3년사(혹은 8년사)의 기억이 이후 한국사회에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식으로 물음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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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노트 오에 겐자부로의 평화 공감 르포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이애숙 옮김 / 삼천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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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노트>는 까다로운 텍스트이다. 무엇보다 1879년의 <류큐 처분>부터 아시아 태평양 전쟁 말기의 최고의 격전이었던 <오키나와 전투>,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2)과 1972년 <본토 복귀>에 이르는 오키나와의 현대사에 대한 이해 없이는, 아무리 지우려 해도 <본토> 출신이라는 숙명을 지울 수 없는 지식인 오에의 고뇌가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오키나와로 가는가"라는 내면의 목소리와, "무엇때문에 오키나와로 오는가"라는 현지의 거절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오에의 고뇌와 그 고뇌가 빚어내는 글의 <공백>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텍스트는 불완전한 넋두리처럼 들릴 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오에의 다른 소설 작품들에 비해, 그리고 잘 알려진 <히로시마노트>에 비해 이 책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내게 이 책은 전쟁과 전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억과 망각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가장 <성실한> 응답처럼 보인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메도르마 슌이 쓴 <오키나와>에 대한 작품들, 그리고 도미야마 이치로의 <전장의 기억>을 함께 읽는다면 더욱 좋겠지만, 아마 이런 식으로 나갔다가는 이 세상의 모든 텍스트들을 다 읽어내야 할 것이다..

<오키나와 노트>를 가장 잘 읽는 방식의 하나는 책을 읽고 난 후, 이 책에 실린 9개의 장의 제목 하나하나를 다시 반추해 보는 것이다..

1. 오키나와가 일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오키나와에 속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2. 씁쓸한 세상: 본토의 오키나와화 논리의 의미는 무엇일까

3. 오키나와인들의 이의신청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4. <본토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등등..

만약 포스를 마구 잡고 글을 쓴다면, 아마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이 책은 기억에 관한, 아니 망각에 관한 텍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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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망각은 가해자뿐만이 아니라, 피해자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1972년 미국과 일본의 밀약에 의한 오키나와 반환에 의해 오키나와가 일본 본토로 다시 귀속된 것은, 일본 본토의 일방향적인 의지(오키나와 반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아직 전후는 끝나지 않았다는, 당시 사토 수상의 연설이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의 결과만은 아니었음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본토 복귀를 열망하는 오키나와인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프리모 레비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들이 단순명쾌했을 것이라는 토도로프T. Todorov(그리고 徐京植)의 탄식처럼, 전후 오키나와가 본토 복귀를 강요하는 일본에 맞서 저항했다면, 모든 것들이 단순명쾌했을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오키나와는 1945철의 폭풍暴風이라는 악명에 걸맞게 태평양전쟁 최대의 격전지였고, 전 도민의 1/3이 전쟁에 連累되어 죽은(더구나 그 상당수가 아군인 일본군에 의해 강요된 집단자결에 의해 죽음을 당한) 비극적 역사를 가진 섬이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섬에서 미국에서 일본으로의 반환이 구체화되던 시점에 조국 복귀라는 슬로건 아래 본토로 편입되고자 하는 열망이 표출되었던 것이다. 본토의 방어를 위해 섬 전체를 무정하게 저버렸던 일본이라는 국가에 다시 귀속되고 싶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오키나와인들의 열망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 열망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아래와 같은 자신은 오키나와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는 식의,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본토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거리낌 없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cf. 류큐국 사람들이여! 제군들의 나라는 원래 독립국이네. 도쿠가와 시대나 그 이전 당나라 때 사쓰마 번이나 중국에 공물을 바치고 겨우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번듯한 독립국이 아니었던가? 그러다가 메이지유신이라는 북새통에 일본의 오키나와 현민으로 영유된 것이다. 그리하여 좌천된 본토의 관료가 통치하고 일본의 赤子 현이 되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제 2차 세계대전 덕분에 제군들은 일본에서 벗어나 미군 통치 아래 들어가서는, 그 때문에 제군들은 미처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제군들의 둘레나 길거리를 둘러봐라. 전부 자유다. 군사시설 말고는 본토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같은 영토이지만 조선은 독립했다. 타이완도 독립했다. 제군들의 류큐는 어째서 독립하지 않는가? (<류큐신보> 19694).

물론 전후 미군정에 의한 새로운 억압통치, 그리고 철수가 예정된 미군이 빠져나갔을 경우,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취약한 오키나와의 정치경제적 구조에서 오키나와인들이 어쩔 수 없이 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는 본토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는 엄연한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 인간들은 배알도 없는 것이냐~”라고 쏘아버리기 전에, 그러한 냉혹한 현실 앞에서 조국 복귀를 슬로건으로 내걸 수밖에 없었던 오키나와 주민들의 마음 한켠에 첩첩이 쌓인 분노와 슬픔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시대가 흘러,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가 잊혀진다고 해도, 그 망각은 또 다른 의미에서 억압된 것이고, 억압된 것은 언젠가 다시 현실의 세계로 귀환할 것이라는 믿음.

모호한 말로 막연한 표현으로 암시되고 있는 것의 실체가 분명해졌을 때, 경악과 분노가 있고 막다른 벽에 가로막혀 피를 흘리는 머리가 있을 뿐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만큼 인간을 광적인 절망의 늪으로 빠뜨리는 것이 있을까? 광기에 빠지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은 분노를 내면에 응축시킨다. 그 응축된 분노는 쉽게 말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머리가 세게 부딪친 그 벽에, 머리를 부딪칠 일이 없는 타인에게 그 축적된 분노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겠는가

조국으로 돌아가는 운동은 조국에 대한 반역 투쟁이어야 합니다. 구세대는 자신들을 일본인이라고 강조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가장 의심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본인이라고 강하게 느낀 적도 없지만 강하게 의심한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세대와 단절이 나타납니다. 나는 중학교 교사이지만, 내셔널리즘을 가지지 않는 것은 세상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하는 󰡔기대하는 인간상󰡕의 생각에 반대합니다. 오키나와에서는 천황을 경애하는 것이 나라를 … 라는 말이 결코 성립하지 않습니다. 나라의 실체는 국민이라고들 모두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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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
아카자와 시로 지음, 박화리 옮김 / 소명출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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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라면 망설일 수 있지만 반값이라면. 일본어판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번역판이 나오면 살 수밖에 없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야스쿠니의 전후사가 비교적 <중립적인> 시각에서 잘 정리되어 있으며 일본에서도 호평을 받은 책이다. 다카하시의 <야스쿠니문제>와 함께 읽으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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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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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때문에 검색해보니 개정판이 나왔구나. 진보와 사해동포주의라는 시대 분위기에 젖어있던 유럽 사회는 어떻게 전쟁을 맞이했을까. 또 대전쟁 이후 곧이어 찾아온 2차대전을 유럽의 지식인들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그 절망과 회한, 공포에 대한 가장 성실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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