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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온 철학씨 - 문득 되돌아보고픈 인생
마리에타 맥카티 지음, 한상석 옮김 / 타임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먼저 이 책을 처음 받아보고 예상대로 묵직한 종이감에 전공 이론서적의 개론서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언급되는 철학자들도 절반정도만 들어보았을 뿐 일상에서 철학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은 막연하고도 멀어보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저자도 권유했듯이 소개된 10개의 챕터에 제시된 이론과 방법만으로도 매 시간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방법의 토론을 전개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고 유용했다. 각 주제들마다 철학자들의 배경과 이론을 소개한 후 정답없는 질문들을 답 없이 쏟아 내고 마지막 철학도구들(듣고 흥얼거리기, 낭독하고 쓰기, 읽고 말하기, 보고 생각하기, 몸으로 철학하기)을 통해 생활 속에서 행복해 질수 있는 방안들을 정리해준다. 특히, '창밖을 내다보라', '손에 흙을 묻혀보라'와 같은 실천지침을 머리로 생각하는 철학에서 발전해 몸으로 옮기는 철학으로 하나의 체크리스트처럼 친절하게 권유하는 디테일은 이 책을 선택한 독자들의 수확이자 즐거움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1. 단순함 SIMPLICITY - 에피쿠로스와 샬럿 조코 백
쾌락주의로 잘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나 몇 천년이 지난 후 불교의 가르침을 전달하려는 학자나 변하지 않도록 주장하는 것은 급하게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었다. '단순함'의 반대개념은 복잡한 것도 포함하지만 무엇보다 속도의 수위조절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빨리빨리 증후군에 시달리는 우리들이 가장 우선순위로 새겨야 할 명제였다. 단순함은 '우리의 정신을 닦아주는 걸레'라는 정의 또한 정신이 깨끗해야 생활이 단순하다는 진리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단순함은 '깨끗함'을 상징하며 이는 곧 '더러움'과도 반대되는 개념이라는 걸 새삼 알 수 있었다.
나는 지난 일 년 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은 과감하게 버리라는 어느 교수님의 조언이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古박경리 작가의 유고시집을 떠올렸다. 만약, '단순함'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면 나는 단연 무엇이든 자주 버리는 내 습관을 예로 들며 몸으로 철학하기를 주장 할 것이다. '한가함'을 참을 수 있는가에 대한 니체의 질문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지침으로 답하고자 한다.
2. 의사소통 COMMUNICATION - 칼 야스퍼스와 글로리아 안잘두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자하는 독일 학자 칼 야스퍼스의 의사소통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으로서의 언어와 그를 통한 세상과의 소통에 중점을 둔 멕시코계 미국인 안잘두아 모두 궁극에는 '나'자신의 탄생과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화가 통한다는 기쁨은 아무리 최첨단 의사소통의 매체가 넘쳐나도 언제나 신제품의 탄생보다 설레인다. 그렇기에 소통이 단절되었을 경우 그 좌절감도 정비례할 것이며 그것은 결국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말이나 글 또는 침묵까지 그것을 소통시켜야 할 상대를 전제로 하는 것에 비해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결과들은 일방적일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듣고 베토벤에 맞추어 시를 한편 쓰라는 지침이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음식을 가져와 음악을 들으면서 시파티를 열어보라는 실천적 도구들이 더없이 반가웠다. 그전에 소통의 노력으로 인한 상처들까지 치유해주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3. 시각 PERSECTIVE- 버트런드 러셀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세상을 보는 관점을 시각이라 한다면 나는 어쩐지 망원경과 색안경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더불어 나이가 들면 다양하게 쌓여진 경험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치가 높아지고 더 깊이있는 시각을 형성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보지만 실제 나이를 먹으면서 실감 하는 것은 오히려 한번 굳어진 시각을 좀처럼 바꾸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여기 소개된 한명의 철학자는 '현실적인 인간'에서 벗어나 망원경을 꺼내어 시야를 확보하고 우주적 동반자가 되어 작은 자아를 벗어나라는 이상적인 주장을 펼쳐 보이고, 한명의 여성학자는 여성의 독립적인 삶을 위한 창의적 가치관을 주장하고 있다.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은 익숙하지 않은 장르와 예술가를 통해 고정된 시각을 좌우로 움직여 보라는 메시지였다. 지구의를 돌리고, 망원경을 이용해 하늘을 보고, 세계지도를 거꾸로 보고, 다른 나라의 뉴스를 들어보고, 악보를 음으로 느껴보라는 철학도구들은 입체적인 해결방안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우주적인 관점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새삼 들었던 항목이다.
4. 유연함 FLEXIBILITY-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앨런 와츠
바로 앞장에서 언급한 시각과 연관성이 깊은 항목으로 철학자들 모두 '변화'를 제시하고 있다. 사고를 자유롭게 하는 유연성을 이야기 할 때 소크라테스의 '질문'과 플라톤의 '동굴'을 상징적으로 강조하고 어두운 정신에 갇혀있지 않기 위해 와츠가 제시하는 삶은 한마디로 힘빼기로 요약할 수 있겠다. 파도가 오면 올라타서 자연스럽게 파도를 타는 것처럼 피하려는 고집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은 흡사 강한 정신력으로 경기에 나선 운동선수를 연상케 했다.
철학적 도구들은 어느 장보다도 더 구체적이었고 그리스 전통에 따라 디저트 시간과 그 후에 한 가지 철학적 주제를 논하는 방법과 여백의 미를 느껴보기 위해 중국과 일본의 풍경화를 감상하라는 팁은 놀랍고 인상적이었다. 이미 정신과 감정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는 입장인 우리로선 고맙고 뿌듯한 일일 것이다.
5. 공감 EMPATHY - 달라이 라마와 마턴 루터 킹 2세
타인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는 공감은 '겸손'이나 '배려', '위로'와 같은 말로 해석되었다. 세계평화를 위한 딜라이 라마가 표적으로 삼은 인간의 무기는 이기심, 분노, 적개심이었고 킹 박사는 증오와 분노를 없애기 위해 배양해야 할 것이 공감과 사랑이라 하였다. 즉 배려가 전제된다면 공감이 형성되고 용서를 할 수 있다는 논리는 다분히 종교적으로도 보였으나 공감을 가장 범세계적으로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분들이 종교인이라 볼 수 있으니 이 장에서의 공감은 개인적인 감정수용의 단계에서 보다 발전된 타자나 세계로 확장되는 개념의 공감의 효과까지를 그 범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철학적 도구에서는 공감의 출발이 될 수 있는 예술가들의 배경과 경력을 강조한다. 하나의 예술작품을 창작할 당시의 예술가의 처한 상황과 심경을 알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논리일 것이다. 가장 공감했던 항목은 어느 조용한 하루, 당신 자신을 용서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골라 실제로 용서를 하라는 지침이었다. 다른 사람을 공감하기 위해 먼저 나를 용서 해보는 것, 공감의 출발 역시 '나'에 대한 이해로 받아들여졌다.
6. 개성 INDIVIDUALITY - 장 폴 사르트르와 엘리자베스 스펠먼
나를 상징하는 어떤 독특한 성격이라기 보다 나 자신을 이루고 나의 인격을 만드는 모든 것에 더 가까운 '정체성'의 다른 말로 이해되었다. 사르트르는 반대개념으로 자기를 부정하는 자기기만과 편견을 개성의 도피처라 규정지었고, 스펠먼은 성이나 직업을 체크하는 네모상자와 권력을 상징하는 문의 열리고 닫히는 순서를 비유로 개인의 고유성에 따른 분류와 그로인해 굳어지는 편견은 경계와 관용으로 치유해야 한다 주장한다. 가장 놀라왔던 것은 편견이나 자기기만의 사례를 초등학교 3학년부터 토론하고 대화하는 모습들이었고 인종, 출생지, 성, 직업, 결혼유무 등 수많은 개성만큼의 같은 비율의 편견을 해결하려는 노력들이었다.
모든 예술매체를 통해 자신을 충실히 묘사하라는 항목이 가장 현실적으로 와 닿았고 그렇게 표현된 자신과 실제 자신 사이의 괴리를 통해 어느 정도 내가 알고 있는 '나'를 만들어 객관적으로 '나'의 개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7. 소속 BELONGING - 알베르 카뮈와 리타 메닝
소속이라하면 역할이나 책임 같은 집단적 부채감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 장에서는 소속감을 높이기 위한 '공동체 의식'의 함양을 결론으로 전해준다. 카뮈의 문학작품을 통한 사회정의와 공동체, 형제애와 리타 매닝의 지구공동체 세계관은 익숙한 주장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오히려 공동체를 이루는 소속에서 인간이 엮어내는 관계들로부터 기인하는 어려움에 대한 논의가 아쉬웠다. 도입부에서의 내가 누구인지 내가 맺고 있는 관계나 연결이 나를 정의한다는 주장이 결론부에 이르면 공동체 정신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 이 장에서의 철학도구들이 조금은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워 보였다. 아무래도 앞장들에서 이미 '나'에 관한 성찰들이 이루어졌다고 판단, 사회적 유대나 시민적 참여를 강조했다고 여겨진다.
아는 사람 중 외부인(outsider)으로서 고통받는 사람을 생각해내고 그 사람에게 조용하게 소속감을 느끼게 하라는 지침 정도가 '나'와 소속을 이룬 상대를 연결하는 상호보완적인 지침이 아니었을까 싶다.
8. 평온함 SERENITY - 에픽테토스와 노자
저자는 앞서 언급한 주제들인 단순함, 의사소통, 시각, 유연함, 공감, 개성, 소속감, 이 모든 것이 평온함의 무대를 마련해준다고 한다. 이성이 지배하는 우주를 강조한 고대철학자나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살아가라는 노자의 <도덕경> 모두 통제된 감정조절과 생활양식, 그로얻은 여유를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로 말한다면 아마도 복잡한 세상에서 스트레스 없이 마음의 평정을 얻어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일관된 삶의 태도라 할 수 있겠다.
물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가져보고 손에 흙을 묻혀보라는, 무엇이든 움켜진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손의 힘을 천천히 풀어보라는 충고들이 피부에 먼저 와 닿았다.
9. 가능성 POSSIBILITY - 존 스튜어트밀과 시몬 드 보부와르
무엇을 시도 하기 전의 잠재적인 가능성 보다는 오히려 무언가를 실패 한 후에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나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이야기 한다. 그런 면에서 밀의 교육적인 주장들보다는 여성성의 자유를 상징하는 보부와르의 '현실 뛰어넘기' 개념이 더 매력적이었다. 그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들과 미래를 향한 열정들은 철학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능동적이고 육체적인 행위요소로 느껴지기도 했다.
내 경우엔 가능성을 논의할 때, 흔히 등장하는 오른팔 피아니스트 폴 비트겐슈타인이나 두 다리 없는 운동선수의 경험담과 그 업적 보다는 언제나 가깝게 존재하는 사람들의 성공이나 재능에 더 관심이 간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에 위치한 듯 보이는 사람들 보다는 조금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현실감이 아쉬웠다.
10 기쁨 JOY- 스즈키 순류와 제인 애담스
저자도 밝혔듯이 기쁨이란 앞장의 주제들과 달리 정의면에서 그 경계와 모호성이 두드러지는 항목이다. 행복이나 쾌락과도 비슷한 기쁨을 감사로 인해 충만해진 순수한 마음이라 말하며 철학의 실천적 방법의 하나로 기쁨을 제시하고 있다. 제시된 스즈키의 심호흡은 종교적으로 보이지 않고 신선했으며, 제인 애담스의 생각을 실천에 옮긴 사회사업과 봉사활동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제시된 방대한 주제의 결론과도 같이 느껴졌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감사의 생활은 결국 기쁨이 충만한 상태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귀결되고 그러한 행복한 삶이야말로 철학을 배우고 그것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일이라는 깨달음이 마치 천천히 걷고 나니 주변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좋다!, 한번 더 살아보자!, 당신도 당신의 삶을 다시 살아 보고 싶은가?
니체의 기쁨의 찬가 <취해서 부르는 노래>의 한 구절이 아직은 제정신인 우리들을 기쁘게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찾아가 살폈다기 보다는 우연히 나를 찾아 온 것은 맞았다.
'나를 찾아온 철학氏'는 어색한 손님이었지만 반가운 친구로 남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