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두드림 콘서트
유재원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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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주하다

인문학. 내가 아는 인문학은 철저하게 인문계냐 이공계냐, 인문계 고등학교냐 예체능계고등학교냐의 입시를 전제로 한 '인문'의 개념에 이분법적 분류에 따른 인문학이었음을 부끄럽게 밝히고자 한다.

인문학 : 인문학(人文學)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인문학의 분야로는 철학과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등이 있다.(위키백과 출처)

그 중에서도 인문학에 예술과 음악의 분야까지 포함되는 것을 확인하고 새삼 짧았던 상식에 헛웃음을 지으며 이 책을 열었다. 이 책은 비교적 '인문학'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상위범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콘서트'라는 다분히 저자의 성향이 담겨진 결론과 '두드림(Do dream- 꿈을 이루다)'이라는 이 책이 지향하고자 하는 도달점을 잘 조화시켜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을 주지 않고도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경쾌하게 암시하는 직설적이고도 분명한 매력을 지녔다.

어렵고 근엄해 보이는 법률가의 길을 가면서도 음악과 미술 등 다양한 예술을 통해 감성을 유지해온 그가 놀라왔고, 그러했기에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그가 내린 결론은 더 뜻 깊게 다가왔다. 그가 제시하는 '박애'의 삶은 오랜 기간 자신이 읽고 떠올렸던 훌륭한 생각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그의 '꿈'이자 그러한 인문학적 소양으로 법과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궁극적인 '꿈'으로 느껴졌으며, 그는 자신이 제시한 삶대로 그것을 소신있게 실천하는 현재진행형의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이 책은 크게 사람(人)과 음악(樂), 미술(美), 문학(文), 그리고 마지막에 세상과 소통하는 마음과 저자가 지향하는 박애주의를 결론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두에 사전적 의미로 제시된 인문학의 분야인 철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등의 분야를 구체적으로 아우른다고 보기는 어렵고 또 그 선정된 기준 역시 개론적이지는 않지만 나같이 인문학의 범위에 예술분야가 포함되는 것도 간과한 독자들을 고려한다면 참 으로 친근한 카테고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구렁이 담넘어 가듯 술술 넘겨지는 책장들 사이로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연보라색의 '인문학 숲의 단상'이라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소개되는데 나는 이것이 마치 월드컵 뒷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흥미롭고 즐거웠다. 사람들은 거창한 앞 이야기 보다는 어쩌면 시시콜콜 뒷이야기에 더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도 인문학이란 죽은 고전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성현들의 이야기'를 머금고 오늘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는 우리 삶의 일부라는 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듯이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음악가가 되었건 화가가 되었건 누구나 치열한 삶을 살면서 우리에게 뜨거운 메시지를 남겨준 사람들이었다.

먼저 칼라스와 오나시스, 재클린의 세기의 로맨스는 여기저기 떠돌던 이야기를 한데 모아 듣는 것처럼 도입부부터 강렬한 인상을 제공했다. 재클린은 더구나 뒤에 이어지는 케네디家의 신화에서는 조연이지만 숙명적인 대결구도에서는 행운의 승리자 였고 흥미진진한 드라마의 여주인공이었다. 마리아 칼라스나 재클린 케네디나 마지막은 그녀들의 화려함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쓸쓸했기에 세상은 알 수 없도록 불공평하다가도 또 누구에게나 삶은 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일화가 아닐 수 없었다. 뒤이어 소개되는 케네디家의 신화 또한 여기저기서 한번 씩 지나쳤던 행운과 불운을 집대성하여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한 감동을 선사했다. 미국의 정치와 도전사를 상징한다는 케네디家의 끊임없는 열정과 집념들은 개천에서 용난다 격인 우리식 영웅 스토리를 생각케 하다가도 몇 대에 걸쳐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케네디家를 떠올리면 새삼 미국의 저력과 도전정신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아널드 파마와 잭니클라우스의 골프계의 위대한 라이벌 이야기도 너무나 교훈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라는 두 젊은 영웅의 라이벌 관계가 대비되며 아직 젊은 선수들에게 벌써 은퇴니 향후거처를 이야기 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했다. 종목이 다른 스포츠의 특성과 국적이 엄연히 다른 한일 간 대결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널드 파마와 잭니클라우스의 서로를 존중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열정, 은퇴후의 행보들은 어떤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훌륭한 교감이 될듯하다.

음악으로 넘어와서 저자는 고전음악으로 바하와 쇼팽을, 현대 대중음악에서는 아바를 이야기 하고 있다. 특히 고전음악에서는 오리지널 음악가와 그 음악을 가장 그 음악 답게 연주한 연주가의 생애를 중첩시키며 비슷한 성격, 환경을 가진 두 사람 간의 교감을 바라보고 느끼는 감회를 밀도있게 들려준다. 특히,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들으며 화려한 파리 음악계의 가식적인 분위기에 맞추어 주는 듯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조심스레 내보이려 애쓰는 이방인 청년으로서의 쇼팽을 느끼고 그 외로움에 공감하였다는 저자의 감성은 녹턴을 비롯한 쇼팽의 연주곡을 다시 들어보고 싶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또 그러한 쇼팽의 기질을 쏙 빼닮은 피아니스트 상송 프랑소와 역시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갑자기 운명을 달리 하였다는 것과 두 사람의 시공간을 초월한 조우를 우연으로 보지 않는 저자의 공감대는 인상적이었다. 한곡의 곡으로도 그 음악을 작곡한 음악가의 일생과 고독, 그리고 이어지는 후대의 연주자, 그 두 사람을 모두 알고 감상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미학적 감상의 최고치에 도달한 면모가 느껴졌다.

미술 분야에서는 <성모자화>를 그린 라파엘로와 모딜리아니의 삶과 예술을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저기 스치면서 접한 기억이 있는 그림들이었지만 라파엘로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비견되는 유일한 화가이며 37세에 요절한 화가인지는 처음 알았다. 성모와 그 품에 안기어 세상을 바라보는 아기예수의 그림이 언젠가 내게도 영혼의 휴식처가 될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모딜리아니는 워낙 유명한 화가인데다가 그의 여인이었던 잔느의 그림과 모딜리아니 사후 바로 연이어 자살한 잔느의 일화로 내게는 불행한 청춘이자 요절한 화가의 대명사쯤으로 인식되었던 화가이다. 하지만 그가 갈망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나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 자신의 삶에 늘 만족했다는 일화들은 눈여겨 기억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었다. 여인은 그를 따라 세상을 저버렸지만, 화가는 영원히 남을 그림으로 여인을 담아 내어 그림을 통해 여인을 느끼는 오늘, 그와 그녀는 아직까지도 혹은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에서는 공자의 <논어>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폰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이야기 한다. 고등학교 이후로 공자와 세익스피어를 잊었다. 그가 들려준 공자의 제자 안연과 자로의 죽음은 꽤나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양인으로서 공자의 사상을 자랑스럽게 기억해야 할 것이라는 그의 가르침이 어떤 교과서보다 진심으로 느껴졌다. 세익스피어의 비극을 이해하는 관점 역시 삶의 연극무대인 법정이라는 연극적 속성을 잘 파악한 연출가로서 평가하는 그의 시선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정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독일법학자라고는 하지만 법조계에는 문외한인 내가 처음 들어보는 폰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정의롭게 소개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지만 많은 한국의 작가들 중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소개하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질 즈음 마지막 인문학 숲의 단상에 제시된 소록도와 관련한 사회적 문제와 여러 법적 투쟁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하며 비로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평소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를 워낙 인상깊게 읽은 터라 반갑기도 했지만 <당신들의 천국>도 진지하게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에 제시하는 삶은 마더 데레사 수녀의 삶이다. 그녀는 세상을 떠난 지 십년도 더 지났지만 웬지 우리 곁에 늘 있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 같은 종교적 삶을 몸소 실천하고 큰 가르침을 남겨준 성인들을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존경심의 일환일 것이다. 나는 데레사 수녀의 일생과 '사랑의 선교회'를 전하려한 그녀의 끈질긴 시도들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했다. 겉으로 보여 지는 베풀고 미소 짓는 모습만 바라보고 노벨평화상을 떠올리며 세상 한편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사람도 살고 있구나 까지만 생각했다.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결국 박애주의라는 거창해 보이는 프랑스 혁명 당시의 3대개념 중 하나를 우리에게 끝내 제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결론을 마무리 짓는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언젠가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믿음과 그것을 실천하는 일의 하나로 보여 지는 이 책의 출간이 마지막엔 퍽이나 무겁게 다가왔다. 결국, 저자가 인문학을 통한 배움을 이렇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꿈을 실현해 나가는 현장에 마주한 것 같아 그 의지에 기꺼이 박수를 치면서 책을 덮어야 했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방법도 여러 가지 일 것이고, 꿈을 실천하는 방법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어쩌면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동시에 이룰 순 없어도 천천히 한걸음 다가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간들 이었다. 책을 많이 읽고 또 그만큼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 책의 저자처럼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이 다양한 인문분야의 책을 섭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얻은 것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즐겁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는 신선한 '박애주의'는 기꺼이 닮아가고 싶은 자화상이자 따라가고 싶은 행보였다.

생생하고 잔잔한 콘서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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