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영한 대역본> 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영한대역 (영문판 + 한글판 + MP3 CD)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영혼의 마음을 울리다

책을 덮고 희미한 웃음처럼 시작된 눈물이 오랫동안 멈추지 않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 다고 지나오고 나니 흠뻑 젖어있는 옷자락을 이제서야 확인한 격이다. 나는 일단, 내 울음의 의미부터 찾아야 했고 시간이 좀 흐르곤 여운이 가시기전에 서둘러 꺼내고 싶은 것들을 잘 추슬러 다시모아 온전한 내 것으로 하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혔다. 분명 무엇이 빠져 나간 것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나를 채워주던 그 무엇. 그들이 말하는 영혼의 마음(spirit mind)이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남도 바닷가 마을이 고향인 古이청준 작가는 어린 시절 시골 삶에 대한 그리움은 곧 '자기 삶의 근원과 순정성에로의 회귀욕구, 혹은 자아회복의 정서적 감응태(感應態)'라 하였으며 그러한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은 훗날 실패나 영혼이 허물어졌을 때에도 그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자정의 심정적 귀향지가 될 수 있다 하였다. 심정적 자기정화와 고향시절을 지니지 못한 세대로서 나는 늘 고향이 있는 사람들이 부럽고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의 그리움이 그리웠다. 짧게나마 서울로 이사오기 전의 내 유년시절을 애써 떠올려보아도 흙냄새나 꽃향기는 나지 않아 이곳 도시의 아스팔트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바이다. 그런 고향이나 시골의 친구가 하나도 없는 내가 그 어떤 구슬픈 사연이 아니라 인디언 소년의 어린 시절과 그의 고향을 향해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은 이청준 작가가 언급한 순정성이나 자아회복의 근원적 이고도 보편적인 시원始原을 체로키족의 삶과 대지에서 찾은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랬다. 이미 한구석인가 비어있던 그곳에 마법처럼 채워진 그것은 그들이 '작은 나무'를 통해 전해주는 바람의 선물이자 영혼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원제인 'The Education of Little Three(작은 나무의 교육)'의 결과라 할 수 있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인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세상과 소통하는 '작은 나무'

이 작품은 주인공 '작은 나무'가 부모님이 모두 사망한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사랑스런 동식물들과 산에서 살면서 인디언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추억을 만들고 삶의 지혜를 배웠던 유년시절을 스무여 개의 챕터 속에서 회고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자서전 형식의 글이다. 각 장마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할아버지의 통찰력 넘치는 가치관과 할머니의 슬기로운 혜안을 엿볼 수 있고 살아 숨 쉬는 것들의 생명력과 그들과 소통, 교감하는 주인공의 감성을 싱싱하게 체험할 수 있다.

할아버지는 약간의 욱하는 성격을 가지셨지만 산과 동물, 사냥이나 날씨, 농작물 재배, 위스키 제조기술등에 대해서 소년에게 기술과 진리들을 전수하고, 할머니는 책과 음식, 예절, 바느질, 간호에 대해 해박하여 그런 할아버지를 감싸 안는 영혼의 버팀목이 되어 주신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 들이는 소년의 나이는 불과 여섯, 일곱 살에 불과하다니 물론, 이야기를 자서전 형식으로 엮어낸 당시 저자의 시점으로 작품을 써내려갔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도시에서 화초처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 비하면 너무나 성숙하고 대견한 성장과정이 아닐 수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말씀을 회고한 뒤 꼭 '그것은 옳았다', '나도 맞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이는 것으로 어른스럽게 당시의 기억을 더욱 분명하게 해주는 가하면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고 동심의 눈으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는 저자만의 방식은 직접적이면서도 유난히 순수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소년을 어린아이로만 취급하지 않고 어엿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그의 정체성을 늘 확인시켜 주고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잃지 않도록 격려를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소년이 추억하는 에피소드는 크게 산에서의 나무, 새, 동물과 같은 자연과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와 정치가나 주변 이웃들과 같은 사람과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로 나뉠 수 있다. 두가지 모두에서 소년은 체로키 족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법을 자신의 모든 감각을 통해 배우게 된다. 인디언이 선물을 주는 방법(의미를 달지 않고 선사하고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고맙다는 말이 필요 없는)이나 인디언이 처음 만나 인사하는 방법(악수를 하지 않고 손바닥을 펴서 흔드는)은 형식이 진실을 만들기도 하는 요즘 세상에 새삼 신선하게 다가왔다. 체로키 족이 걷는 법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카신(moccasins)이 등장 할 때엔 우리의 꼬까신과 어감이 비슷하기도 하고 어렸을 적 할머니가 시장에서 사주신 고무신이 생각나기도 했다. 목전에 혀를 날름 거리는 방울뱀과 소년의 얼굴 사이에 자신의 우직한 손바닥을 가로지르며 위험을 무릅쓰던 할아버지를 보고는 옛날 화장실에 빠진 손자를 구하려고 뛰어들어 희생된 우리네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정부군이 강제로 인디언을 이주시키면서 발생한 행렬인 '눈물의 여로(Trail of Tears)'를 서술할 땐 저자도 가슴깊이 울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만나던 제로니모 윌로 존씨와 소년이 선물로 준 황소 개구리 이야기는 고요를 깨던 개구리 울음소리만큼이나 그 울림이 심상치 않았다. 유대인 보따리상 와인씨의 소품인 시계와 안경, 양초, 노란코트들이 마치 산타클로스의 커다란 꾸러미에 들어있는 소중한 선물들로 느껴지기도 했다.

가장 주체 할 수 없었던 장면은 윌로 존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평온하게 숨을 거두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고아원에서 돌아온 소년과 할아버지, 할머니, 산동물 들과의 격정적인 재회장면이 기쁘면서도 벅차고 벅찬만큼 가슴이 터질듯해 마치 재회현장에 같이 있는 것 처럼 얼마나 생생했는지 모르겠다. 물보라를 휘날리며 서로 부둥켜 안고 넘어지고 웃으며 우는 그 순간이 아마도 저자가 그들을 가장 가슴깊이 회상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그들과의 시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왔는지 그래서 또 얼마나 기뻤을지 그들과 한번도 헤어본적이 없는 나 역시도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책에는 바로 옆에 원문이 수록되어 있어 우리말과 비교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도 제공한다. 유난히도 자주 등장하는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사전처럼 바로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할머니가 자장가로 불러 주시는 노래나 할아버지가 산길을 내려올 때 흥얼거리는 노래, 이웃을 만나고 돌아갈 때 허전함을 달래던 노래를 원작으로 읽어보면 색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들만의 은유적인 표현(여우의 침-hot trail / 고참 산사람-master woodsman/ 개코순사-low dogs)등을 직역,의역한 단어들도 가깝게 확인할 수 있다. 사용하는 단어들이 대부분 쉽고 친근한 단어들임에도 불구하고 매끄럽고 문학적인 번역으로 의역하여 표현을 더 풍성하게 하였다는 것도 독자입장에선 행운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을 딸아이에게 건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만 자란 아이가 누릴 수 있는 간접체험의 극대치를 얻을 것 같다는 엄마의 계산도 부인치 않겠지만 보다는 소년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들을 지금 소녀인 내 아이가 공감하고 가슴으로 느껴준다면 영혼이 몇배로 더 따스해질것만 같다. 잠시나마 촉촉한 마음을 대신해 선물해주고 싶다. 우린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Do you kin me?  I kin ye !.  

작은 나무 처럼 얼마나 사랑스러울지 벌써 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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