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나치게 슬프지 않으면서도 더 할 수 없이 쓸쓸하다.
혼자남아 못 견디게 외롭다기 보다 견딜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삼켜내는 주인공의 마지막 독백은 오래 기억될 만한 장면이었다. 

5년 전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아오모리현을 어렵게 방문한 적이 있다. 도쿄나 오사카위주의 출장에 비하면 교통이나 숙박, 기후 모든 면에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늦가을이었는데도 오후 네 시면 해가 지는 아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마을은 온통 해같은 노을로 불타올라 잊을 수 없는 풍광을 선사하곤 했다. 흡사 우리나라 남도의 농촌을 방문한 느낌도 들었고 버스를 타고 들어선 마을의 풍경은 그야말로 평화로와 보였으며 가끔씩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낮고 아담한 가옥, 잔잔한 나무들은 한없이 여유롭고 따스해보였지만 어딘지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두달 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가한 일본감독의 <아제미치 댄스>라는 영화에서도 일본의 농촌풍광을 배경으로 논두렁(아제미치)을 점프하던 소녀들의 순수어린 모습을 기억한다. 바로 <환상의 빛>의 배경이 된 해안마을은 기존에 내가 그리고 있던 일본 시골마을의 모습과 일치했다. 

<환상의 빛>
<환상의 빛>은 유미코라는 서른 두 살 여인의 남편이 철로 위 전차에 치이는 방법으로 자살을 한 후 소소기라는 해변마을로 시집와 재혼한 남편과 전처의 자식, 그리고 사별한 남편과 사이에서 얻은 아들과 함께 살면서 늘 가까운 사람에게 일상을 건네듯 조근조근 자신의 심경을 편지글로 써내려간 작품이다. 배경이 어쩐지 낯설진 않았고 더구나 미야모토 테루라는 작가의 편지형식의 독백에 가까운 문체는 흡사 우리문단의 여성작가들을 연상케 할만큼 친숙하고 서정적이었다. 해안마을에 등장하는 풍어(豊漁), 해명(海鳴), 어항(漁港), 돌풍 등의 단어들은 지붕에 쌓인 눈이나 파도의 물보라와 잘 어울려지며 잔잔한 문체 속에서도 환상적인 시각성을 부여하였고 편지를 쓰고 있는 주인공의 심경변화를 훌륭하게 전달해주었다.

소설적 서사에 중요한 암시를 주는 할머니의 멀어져 가는 마지막 뒷모습이나 유미코의 초경, 강인한 모습의 재일한국인 아주머니, 같은 버스에서 내려 뒤쫓아간 남자의 아무리 손짓을 해도 절대 돌아보지 않을 것 같던 뒷모습, 풍랑에도 불사신처럼 다시 돌아온 도메노댁의 이야기들은 가끔씩 그녀의 편지를 잊게도 하였지만 결국 왜 아무말도 없이 내 곁을 떠났느냐는 간절한 질문들로 되돌아 오기 위한 장치였음을 알게 해주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아무런 준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남편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와 그러한 선택을 하기까지의 심경들을 오랜 세월 좇아가며 이해하기 위한 유미코의 눈처럼 부신 여정이 결국엔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그녀의 슬픔을 전해주는 것 같아 읽는 내내 마음이 일렁거리었다.

소설 도입부에 '좀처럼 보기 드문 초록색으로 널찍하게 펼쳐진 바다에 한 덩어리가 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은 마지막에 다시 '봄도 한창이어서 짙은 초록으로 변한, 거칠어지기도 하고 잔잔해 지기도 하는 소소기 바다의 모습'으로 재생된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갑자기 저렇게 빛나는 바다 한쪽'으로 어쩌면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그가 보았을지 모를 빛으로, 바다가 아닌 세상의 것이 아닌 부드럽고 평온한 일각처럼 흔들흔들 다가가고 싶은 잔물결의 빛으로 환생한다. <환상의 빛>은 그녀에게 '죽음의 빛'이 아닌 다시 학교에서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는 '生의 빛'이 되었고 우리에겐 기분이 좋아졌지만 뜨겁고도 아픈 빛이 되어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다.

<밤벚꽃>
남편과 헤어진 지 이십년이 되었고, 외아들을 잃은 지 일 년이 되가는 쉰을 바라보는 아야코라는 중년여성이 바라본 벚꽃이 지는 순간의 삶의 아쉬움과 연민을 애절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바다와 벚꽃이 함께 보이는 낭만적인 자신의 집에 묵게 된 가난한 신혼부부의 첫날밤을 곁에서 같이 지새게 되면서 바로 그 순간 지금이라면 어떤 여자로도 될 수 있을 것 같은, 그러나 눈을 떼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아련한 느낌에 너무나 공감한다.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눈꽃처럼 사라지던 벚꽃의 아스라함과 꽃이 지면 마치 봄날마저 사라질것 같던 그 봄밤의 향기를 누군들 잊을 수 있을까.
평범한 마을의 풍경과 늘 마주하던 계절이 그리는 그림으로 마음의 상태를 이야기 하는데공감을 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쥐>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청소년시절, 문제학생이었던 친구의 비행 장소에서 그 친구를 기다리며 어쩌면 친구의 비행을 방관하던 죄책감과 비겁한 동경등의 복잡한 심경을 암시하는 '박쥐'에 대한 소름끼침은 훗날 유부남이면서 미혼의 여성과 불륜을 지속하던 어느 가을날 검게 뒤섞이는 낙엽을 통해 비로소 비쳐지는 자신의 부도덕으로 부활하며 어쩔 수 없는 '박쥐'와 중첩된다.

-그것은 둔하고 까만 눈을 가진, 새라고도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생물의 추악한 춤이며, 땀과 허무로 처발라진 관능의 무수한 비말飛沫이며, 기괴한 표정에 조종되는 그 영혼들의 어쩔 수 없는 술렁거림이었다. 134p

문제학생이었던 란도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고, 우연히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으로 더 심화될 수 있었던 자책감이 마지막 장면에서 떠올리는 박쥐로 어느 정도 해소되며 일말의 빚을 거두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술렁거림은 독자로 전해져 주인공이 갚아놓은 빚에 그다지 시원하지 못한 의문이나 약간의 배반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결국 누구나 자신의 이중적인 위선을 들키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남은 작품이었다.

<침대차>
이 작품은 주인공이 샐러리맨이고 출장으로 이동하는 침대차에서의 회상이 서사를 이루고 있어 소개된 네 편 중 가장 현실적으로 읽혀진 작품이었다. 우연히 맞은 편 좌석에 탑승한 말쑥한 노인의 상념에 빠진 듯한 시선과 밤새 들려오던 울음소리는 어린 시절 집에서 놀다가 익사할 뻔한 친구의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고 결국 대학생이 되어서도 기차에서 떨어져 죽은 일이 생각나 비로소 장례식에서 뵌 친구 할아버지의 슬픔을 헤아리게 된다. 주인공은 고타니라는 껄끄러운 직속상사와 오랜 세월에 걸쳐 공을 들인 프로젝트의 계약을 목전에 앞두고 지나간 시간을 견딘 것에 대한 보람이나 스스로의 성취감에 젖어 있을 즈음이었다.

사람이 앞만 보고 달려갈 때는 보지 못하지만 막상 커다란 성취 후에는 보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일까. 살면서 내 머릿 속에 가슴 속에 피부 깊숙이 박혀왔던 삶의 파편들이 또다시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에 문득문득 튀어 오를 때가 있어 당황하다가도 이내 상처에 대한 익숙함으로 현재의 고통을 잊게 될 때가 있다. 사람은 어쩌면 현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보다 익숙한 상처를 습관적으로 불러와 자신과 마주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분명 이 작품을 접하고는 개개인의 비슷한 유형의 상처를 다시 상기하게 되는 낯설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막연한 회상에의 부질없음이 아닌 분명 지근 존재하는 외상에 쏟아 붓는 쓰라린 알코올과도 같을 것이다.

<환상의 빛>, <밤벚꽃>, <박쥐>, <침대차>이 네 편에서는 모두 인생에서 맺은 관계속의 사람들을 상실한 주인공들이 초록의 바다에 찬란한 빛이 떨어지거나, 화려했던 밤벚꽃이 지는 순간이거나, 가을에 어지러운 낙엽들이 뒹구는 순간 혹은 자신처럼 무언가를 잃은 듯한 타자의 스쳐지나가던 표정과 같은 찰나의 순간에 느껴지는 잡을 수 없지만 그래서 더 아련하고 절실한 것들을 깊고도 아름답게 그려낸다.

우리는 분명 이 아름다움으로 혹시나 아름답지 않았을지 모를 인생의 어느 순간들을 아무도 몰래 덮어주고 싶을 것이다. 어느새 상처에 새살이 돋듯 그렇게 시나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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