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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본전을 뽑다
어린 시절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코미디 프로가 우리들 사이 가장 유명한 예능이던 때가 있었다. 비록 흑백화면이었지만 비실이 배삼룡과 땅딸이 이기동은 지금의 유재석, 강호동의 인기를 능가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기 절정의 코미디언이었다. 이들 두 분의 고인이 주로 슬랩스틱 코미디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바로 직전 라디오 시대에 ‘몸’이 아닌 ‘말’로 재주를 펼치신 만담가 장소팔, 고춘자 콤비가 있었다. 이들은 아쉽게도 ‘웃으면 복이 와요’식의 콩트 코미디가 인기를 얻으면서 점점 TV 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팔도를 유람하며 세상을 숨가쁘게 풍자하던 국민 만담콤비 ‘장소팔, 고춘자’의 이름 여섯 자 만큼은 꾸준한 조기시청(?)의 효과덕분인지 내겐 그 어떤 개그맨의 이름보다 강하게 뇌리에 각인되었다. 내가 책을 덮고 제일 먼저 생각나던 이름은 바로 이들 추억의 만담가 두 분이었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연출된 리드미컬 텍스트 코미디, 이 책은 꽤 유익한 소설가의 일인 만담이었다. 농담도 그냥 우스갯 소리로 지나칠 수 없는 뼈있는 농담이라면 웃다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때론 자기 자신과 나누는 밀談으로, 때론 지인들과 나누는 잡談으로, 때론 독자에게 건네는 덕談으로 촘촘히 구성된 그의 농담은 분명 그저 웃고 말 담론은 아니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한담(閑談)이거나 본 서사와 관계없는 여담(餘談)인 것 같아도 그의 농담은 말 그대로 입심좋은 재담꾼의 능숙한 만담(滿談), 꽉 찬 이야기로 충분했다. 그의 만담(漫談)은 결국 만 가지의 농담(萬談)이 선사하는 만족할만한 이야기(滿談)였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자는 감히 없지 않을까.
책을 통해 무언가 본전을 제대로 뽑았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래서일까. 솔직히 이 책을 그의 소설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고 ‘농담 따먹기’ 까지는 아니더라도 ‘농담주고 받기’정도 쯤으로 기대를 한 터였다. 그런데 일찌감치 그것은 제목마저 농담이었다. 소설 밖에서의 이 ‘진담’을 알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상쇄시키는, 작가가 세상을 성찰하는 지적인 ‘관점’을 희석시키려는 치밀한 의도에 불과했다. 실은 ‘진담하는 마이크’의 영리한 반어법, ‘진실담은 타자기’의 성석제식 은유였던 것이다. “농담이라니, 이게 무슨 농담?, 그렇게 정의내려진 제목이야 말로 농담!”, 나는 다른 독자들과 이렇게 면談하고 싶었다. 그리곤 마음이 통한 그네들과 곧 “농담도 이정도면 학문” 이라며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후 최고의 문학적 사건이라며 화談을 나누고 싶었다. 이 책의 농담이 이끄는 사유와 카메라가 향한 세상은 그래서 튼실한 ‘뼈’가 되고 뜨거운 ‘피’와 단단한 ‘살’이 도는 어쩌면 세월의 질긴 ‘근육’마저 어우러진 성석제라는 ‘인간’된 작가의 총체였다. 인간과 세상을 말하는 방식이 결국 자신을 말하는 매력이 된 소설가가 참 멋스럽고 근사하다는 생각, 이런 작가라면 흠모해도 좋을 것 같다는 기분이다.(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이런 그의 ‘입심’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혹시 책에 자주 등장하는 음식을 통한 ‘밥심’이거나 그가 겪어온 세상 속 끈끈한 ‘인심’이 그를 말 잘하고 글 잘하는 만담가로 키운 것인지. 연배로 보면 딱 내 여고시절 갓 부임한 국어선생님이거나 직장시절 만년 부장님이시거나 아주 오래전 짝사랑하던 거래처 유부남(?) 정도의 그다지 거리감 느껴지는 인연은 아니지만 글로써는 아주 오래된 고향 스승의 느낌을 받았다. 세대차에서 오는 연륜,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경험들 때문이 아니라 너무 아는 것이 많다고 느껴지는 일상 속 ‘비범’, 속세를 살아가는 ‘비법’, 자신만이 간직한 ‘비경’까지 그는 어지간히 박학다식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꼭 대학생 때 어느 동아리나 한명씩 존재하는 전설의 인물-당구나 바둑, 운동과 근육, 음주와 가무, 전국의 맛집 및 숙박정보, 민원 및 법률지식, 하드와 소프트웨어, 자동차와 컴퓨터, 음악 및 악기연주까지 척척 해내던-모든 잡기에 능한 인기많던 선배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가정환경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끌어 모으는 친화력이 남달랐고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이 뛰어났으며 기본적으로 매사에 성실하고 누구에게나 열정적이었다. 자신도 어려우면서 곤란에 처한 친구를 그냥 넘기지 못하고 언제 책을 그리 읽었는지 아는 철학자와 사상가는 얼마나 많았던가. 돌이켜보면 그런 영화적 캐릭터의 선배들은 꼭 인생이 순탄치가 않아 결국 소설적 사연을 자기 生의 이력서로 작성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성석제라는 작가는 그 아까운 사연들을 이력서가 아닌 직접 소설로 쓰게 된 인물은 아니었을까.
나이가 들면서 그런 인생의 ‘사연’은 곧 ‘실패’나 ‘좌절’과 동의어라 믿어왔다. 그런데 이번 산문집에선 ‘사연’도 농담으로 건네면 ‘희망’이나 ‘활력’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대체로 사연이 많다는 걸 슬픔이나 한이 많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같은 사연이라도 전달하는 사람과 방식에 따라 반전이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는 세상과 인간이라는 피사체를 담아내는 자신을 ‘카메라’로 인식하고 ‘농담’이라는 셔터로 조작하는 직업을 가졌다며 그것은 ‘농담’을 좋아하는 자신의 인생관이라 주장한다. 그의 카메라는, 아니 카메라인 그는 정지한 정물은 물론이고 사계절의 풍경, 움직이는 사람들까지 포착하는 여느 사진사와 다르진 않았다. 사용하는 렌즈도 광각에서 망원까지 때에 따라 적절한 필터로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능숙했다. 구도는 안정적이었으며 초점은 정확했고 빛의 활용도 일정했다. 대체로 과장이나 무리수를 두지 않는 물 흐르듯 편안한 촬영기법은 고성능 카메라 자체의 품질(?)인 덕도 있었겠지만 결과물이 즉석사진이든 스냅이든 작품사진이든 변하지 않는 동일한 작동기법은 작가만이 개발한 어떤 조작의 비법으로 느껴졌다. 카메라인 그를 통해 인화된 텍스트라는 사진들은 분명 조작방법에 있어 하나의 패턴이 존재했으며 잔상을 기억하고 저장하는 그만의 법칙이 있었다. 그건 세상의 오류나 사람의 실수, 의심없이 이어져 온 관행을 관통하여 받아들이는 깊고도 넓은 ‘지혜’, 즉 자신이 고안한 유일무이한 독창적 ‘필터’에 있었다. 도저히 웃기지도 않은 세상을 그래, 참 웃기는 세상이니 다시 웃어야 할 색감으로 그래서 다 같이 웃고 싶은 인생으로 연출하는 카메라 구동의 차별화된 기능이었다.
과학자와 예술가처럼
총 3부로 구성된 이야기는 카메라가 향하는 피사체에 따라 구분된 듯 했다. 1부(나는 카메라다)는 주로 자신의 손을 탄 물건이나 어느 한 시기 눈과 귀를 스쳐간 사건과 인연을 줌인, 클로즈업으로 포착해 낸 정적인 사진들이었다. 2부(길 위의 문장)는 말 그대로 여행중에 길거리에서 발견한 활자에 대한 애증(?)과 애환을 담은 것이었다. 마지막 3부(마음의 비경)는 살아있음으로 모두 제각기 다른 모습을 취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투시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의 눈에 포착된 세상의 모든 상(像)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각(想)하는 사람이었다.
시계와 막국수, 과일과 생맥주, 바둑과 자전거에 대한 단상들은 하나의 물체를 통해 그 관찰에서 자신의 인생관을 찾아가는 끈질긴 논리의 주인공, 진리에의 발견의 기쁨과 탐구의 재미를 터득한 과학자를 연상시켰다. 특히 그의 관찰이 시계로부터 시작된 것은 자신을 카메라라는 도구로 동일시한 후 시도된 가장 잘 어울리는 피사체였다. 여자들이야 그날의 기분과 날씨, 유행에 따라 여러 가지의 악세사리를 다양한 스타일로 연출해도 별스럽지 않다지만 남자들은 몇 개의 허락된 악세사리들로만 자신을 연출할 수 있다. 그중 시계는 얼굴과 가장 가까우면서 자동차나 기타 디지털제품, 각종 AV 기기와는 달리 장소와 상황에 제약없이 자신과 함께 움직이는 일심동체의 물건이다. 즉, 말하지 않고 아무행동을 하지 않고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가장 잘 표출할 수 있는 효자상품이라 할 수 있다. 여성처럼 모델을 자주 바꾸거나 특별히 시계를 가리는 패션을 즐겨하지 않는 남성의 경우, 시계는 곧 지금까지 구축해온 거의 모든 자기 生의 압축적 장치와 동일시된다. 이러한 시계에(그것도 명품에) 집착했다는 작가의 고백은 어떤 면에서 속세의 물욕을 외면해왔을 것 같은 작가로서는 다소 의외로 느껴졌다. 그 중에서도 학창시절 어느 교수가 과시용으로 자랑했다는 그래서 그를 존경하지 않았다는 하지만 그 진가를 알고 나니 지금은 부럽다는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은 벤츠와 같은 가격대라 주워들었다. 비록 자신의 짝퉁모델 ‘파텍 필립’은 고장이나 멈추었지만 시계 속 욕망의 초침만은 멈추지 않은 자신을 속물적으로 비하하기 보다는 원래 ‘초침이 없었다’며 시계 탓을 하는 그의 첫 농담은 퍽이나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의 시계(時計)를 통해 세상의 시계(視界)를 바라볼 줄 알았던 작가는 그만한 시계를 소유할 자격이 되는 것으로 판단되었고 이후의 에피소드에서 자주 감지되던 매니아적 기질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그는 각종 지방의 천차만별 막국수와 비빔밥, 자장면, 막걸리를 먹으면서도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삶을 음미하고 느끼는 사람이었고 음식의 맛에서 고유의 미감, 원칙, 냄새를 발견하는 미식가였다.(잡학과 미식은 서로 통한다고 들었다) 그건 과학자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예술가의 능력이었다. 메뚜기날개와 함께 푸드덕 거리던 고향 생맥주의 추억은 지난 시절 거하게 ‘토(로)하고 싶었던 밤’도 오늘날 유창하게 ‘토(론)하고 싶은 밤’으로 회상하게 하였다. 학생기록부 취미란에 적기 시작한 특기 바둑을 향한 ‘관전문학’은 흡사 작고한 이규태 전 조선일보 논설고문의 <이규태 코너>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풍부한 지식과 다양한 경험, 촌철살인 식의 문체가 지혜로 똘똘 뭉쳐져 대중에게 짧은 혜안을 선사하는 일일칼럼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장가들어 첫 사위인증의 기념으로 불렀다는 <봄의 교향악>을 어머니 칠순잔치에 가족의 축가로 부르면서 떠올린 아버지의 얼굴은 그토록 목메이던 내 아버지의 얼굴과도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갓 서울로 전학 와 아버지 손을 잡고 어린이 대공원을 갔다가 인파에 치여 온종일 고생한 내 어린이날은 그래도 입장도 못해본 작가의 그날 보다는 나았다. 공원 안은 ‘천국’, 버스 안은 ‘지옥’으로 각인된 그 시절 어린이날, 얼추 셈을 해보니 작가가 중학생때 나는 코흘리개 유치원생이었을까. 그 몇 년 후 나 역시 꼭 같은 곳에서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풍선을 손에 쥔 채 사람구경만 실컷 하다 돌아갔다고 생각하니 왜 이리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까. 그 먹먹함은 작가가 사십년 전 어머니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들어간 시골 학교에 대한 그리움과도 같았을까. ‘합창단 노래에 이유를 알 길 없이 목이 메었’다는 그였지만 학교가 가르쳐준 그 은혜로 한번이라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음에 먹먹해지는 가슴과 비슷했을까. 어쩌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자신을 태우고 돌아다닌 ‘불개’와의 이별을 회상하는 마음과도 같았을까. 안방 두레상에 열 명 가까이 되는 대식구가 둘러앉아 모두 뜨거운 김을 호호 불며 숟가락을 들었다는, 기름이 잘잘 흐르는 햅쌀밥은 자꾸만 많지도 않은 세 식구가 밥상을 앞에 두고 식사를 하던 내 어린 시절과 겹쳐지며 새삼 부모님을 그리도록 만들었다.
그랬다. 그는 이렇듯 농촌이었던 시골 밥상에서의 뜨거운 입김과 기름진 밥심, 학교라는 유년기를 그리워하는 애심(哀心)으로 능청스런 입심을 키워온 듯 했다. 아버지가 선물한 강아지가 자꾸만 울고 있자 자신은 백설기를 선물했지만 정작 울음을 그친 것은 그저 쓰다듬어 주었을 때였다며 ‘숨 쉬고 생명있는’ 것들은 관심과 연민이 선물이었음을 깨닫기도 했다. 두렵기만 하던 자전거와 처음 한 몸이 된 날 비로소 세상을 내달리며 알게 된 비밀, ‘안장위에 올라선 이상 계속 나아가지 않으면 쓰러진다’는 이치는 시와 춤, 노래와 암벽타기, 사랑에서도 같은 원리였음을 알아간다. 그는 관심을 얻어 보려 책을 훔치기도 했으며 그 시절 책도둑이 공유한 지식을 향한 시대정신만은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로맨티스트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작가의 낭만적인 감수성을 가장 체감한 장면은 모차르트의 협주곡과 자신의 애상을 연결짓는 대목이었다. 그는 알파벳송의 모티브가 된 원곡이 모차르트의 음악이고 그 음악적 근원에 작곡가의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같은 슬픔이 베어있다고 언급하며 자연스레 자신이 꿈속에서 시몽처럼 조우한 꿈같은 멜로디도 바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유사했다고 증언했다. 그 음악을 듣고 끝내 흘려버린 몇 방울의 눈물이야말로 인간을 향한 연민과 예술을 향한 열정이 응축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작가하는 성석제의 보석같은 ‘진액’은 아니었을까. 그의 눈물 때문에 나는 천재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했던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0번 2악장(로망스)을 다시 듣게 되었고 그 음악은 중학생시절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그리고 여타 많은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들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막다른 아름다움이 왜 슬픔으로 느껴지는 지를 설명하는 말이 필요없는 훌륭한 사례였고 농담도 간절하다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진실이 된다는 걸 깨닫게 해준 작가만의 텍스트, 그 텍스트로 밀착된 한 장의 ‘진짜’ 사진이었다.
추적하고 기록하며
그에게선 길을 가다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간판과 표지판, 안내문에서도 오랜 세월 활자중독자로서 연마한 예리한 분석과 기지넘치는 해석을 엿볼 수 있었는데 만성병에 가까운 이 직업병도 실은 어린 시절부터 일상화된 삶의 방식에서 기인한 듯하다. 그는 이미 중학생이 되어서 ‘원주율 파이는 왜 끝이 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인지’ 너무나 당연해 질문이 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수학의 공식을 만나는 선생님마다 질문하였다. 만약 자신의 질문이 질문으로서 타당성을 가지지 못하다면 그 이유라도 알고 나서야 질문을 멈추는 꽤 집요한 학생이었던 것. 고교시절 고문시간에 배운 작자미상의 사설시조를 해석하며 단순히 외우고 이해하는데서 발전해 시작(詩作)을 한 시인의 천의무봉한 입심을 찬양하고 현실의 고통을 특유의 유희성으로 극복하며 삶의 재미를 찾아 나누던 선조의 지혜를 발견해내던 학생이었다. 그 작자미상의 시인은 후세에 이 작가에게 빙의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호기심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역사와 철학, 문학과 예술속에서 자신만의 답안을 창조해낸 삶의 패턴은 오늘날 작가로서의 독창적인 경쟁력을 길러낸 밑거름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총각이 운영하는 과일가게의 이름표에 붙여진 황제 '앨버트' 복숭아가 '장호원' 복숭아로 표기되기까지의 사연을 들려주며 이른바 명색이 '황제'라 불리는 최고 품질과 '장호원'이라는 지명이 적절하게 어울리는 것인지의 여부를 넌지시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는 대부분 문자의 오표기에 대한 정정의지를 피력하는데 그가 갈고 닦은 인문탐구 정신을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기업하다'란 말은 '사랑하다(사랑을 하다)'는 말이나 '개-하다(개를 먹다)'는 말처럼 관용되어서는 안되며 '기업을 하다'나 '기업을 잡아먹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 맞지 않으므로 '기업을 창업하고 경영하다'라는 말로 굳이 부연하는 것이 낫겠다는 작가의 일침은 단순한 국어사용의 정석을 제시하고자 지적한 말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속에 관용된 '기업하기 좋다'는 의미-정치적 의도(유권자 의식)와 가시적 상징(통계치, 순위등) 혹은 구체적 조건(환경, 자원, 인력등)-를 제시하지 않는데서 비롯된 불명확성이 언어로 먹고 사는 전문가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일종의 불량제품이라는 자격지심을 갖게 한 것은 아닐까. 버스 안에서도 문자로 제시되는 각종 안내문구(다리를 꼬는 건 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등)들은 이상한 유권해석을 유도한다며(법학 전공자답게) 정작 안전을 위해 안전벨트 착용을 권유하는 본질적 내용과 연결되지 않는 오류를 지적한다. 문자로 가장 기발했던 해석은 컵라면에 표시된 ‘희망소매가격’을 희망을 소매한다는 의미의 ‘희망+소매+가격’으로 분석하여 사소한 일상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도출해 내는 그의 재치에 있었다. 희망을 먹는다는 뜻으로 ‘타오르는 꿈을 안고 사는 젊은이’를 ‘꿈을 먹는 젊은이’로 노래한 가사는 내 학창시절 인기가수의 그것이기도 했다. 노랫말에서 사유의 시원을 찾는 그의 통찰은 우리의 동요 ‘비행기’와 ‘반달’로도 이어졌다. ‘비행기’와 미국민요, ‘반달’과 중국동요의 짝짓기는 노래를 들으면서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주인공을 자신이 구성한 또 다른 이야기로 직조하는 성석제식의 ‘만담歌’에 다름 아니었다.
문자에 예민하고 문장에 정직했던 그가 2005년 북한에서 개최된 남북작가대회에 다녀온 후 한 일은 먹어본 것과 먹어보지 못한 메뉴, 가본 곳과 가보지 못한 곳의 지명을 열거하며 기록하는 일이었다. 북한 작가들과 겉도는 대화를 하고 돌아온 그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외우던 북한의 지명, 현장에서 그 지명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목이 메이던 그는 북한에서 보았던 활자를 애써 기록하며 그쪽 세상에서 느낀 낯설음과 거리감을 메워보려 했던 건 아닐까. 어느 연구에 의하면 활자중독증은 거의 불치에 가까운 병이며 시간이 갈수록 증세는 심해진다고 한다. 작가는 이번 책에서 스스로 기록하는 저장매체로서 세상과 사람을 담았다 하였으므로 그는 늘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기록할 거리를 찾았다는 말과도 같다. 사건이나 현상을 기록하는 것은 ‘사실’에 대한 구체적 행위로서 ‘사고’를 추적하고 ‘사유’를 증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는 어린 시절 배달된 신문에 새겨진 대통령의 이름을 오랜 세월 추상적인 한자이미지로만 인식하다가 어느날 마을에 헬리콥터를 타고 온갖 뿌연 먼지 및 소음과 함께 등장한 대통령의 실체를 구체적 이미지로 대체하게 된다. 선생님의 지시로 유신헌법 찬반 투표 홍보용 포스터를 골목마다 붙이고 다녔다는 그에게 있어 대통령은 젖을 떼기 전에 등장해 대학에 입학하던 해까지 18년간 존재하던 유일한 거인(giant)이었다. 이처럼 실체적이지 않고 안개처럼 모호한 그림자, 그러나 그 영향력만은 막강했던 유소년기의 기억은 같은 시절 고향과 가족, 친구에 대한 향수와 겹쳐지면서 심리적 갈등의 접점지대를 형성하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질문이건 답이건 대부분 명확하고도 자유로운 결론이 동반되던 에피소드들에 반해 유독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기억만은 흐릿하고 두려운 그래서 불쾌하기 까지한 그의 심리를 엿보면서 어쩐지 활자와 기록에 강한 집착을 보이던 작가를 더 애틋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할까. 그는 혹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지배하던 안 보이던 마음속 거인을 극복하고 이기기 위해 보이는 활자라는 소인을 거인이 될 때까지 일일이 기록해 왔던 것은 아닐까.
다시 설레이다
활자를 거인삼은 작가의 시선은 그가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을 구분짓는 기준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였다. 창작은 컴퓨터를 이용해 원고를 작성하지만 교정은 종이형태로 주고받으며 이루어지는 자신의 작업을 예로 들며 인간이 존재하는 한 종이같이 인간적인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주장한다. 바로 자신은 세상의 모든 ‘비인간적인 것’들을 펜으로 교정하는 사람이며 그렇게 수정된 따스한 종이로 이루어진 자신의 문학은 누구보다 ‘인간적인’ 작품이길 원한다는 뜻으로 읽혀졌다. 그렇기에 그는 남들보다 특출난 능력(?)을 타고난 다양한 군상의 인간들을 끌어안는 비법으로 인간적인 ‘농담’을 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야산에서 나무를 헬스기구 삼아 운동을 일삼고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전화통화를 하고 아예 라디오 볼륨을 크게 한 채로 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외롭고 나약한 사람으로 여기며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그들을 위로한다. 대도시에 울려대는 경적소리와 위압적인 간판, 교통법규를 무시하는 얌체운전자, 사람을 대하는 업무보다 인터넷으로 해결하는 업무가 더 중요해진 세상에서 마음의 비경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비법은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사람에 대한 애정임을 평범하게 말한다. 카메라된 입장으로 연신 셔터를 조작하고 있었던 그가 보기엔 세상도 사람도 인간된 입장으로 바라보는 것만이 가장 최고 화질의 삶을 인화할 수 있다고. 그것은 카메라도 셔터도 대상물의 책임도 아닌 인간된 마음 그 뿐이라고.
‘인간적이다’란 말은 무슨 뜻일까. 이 책을 읽고 오래된 관용어, ‘인간적인 사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새삼 사람은 원래 인간인데 인간적이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그것은 내가 성석제식으로 질문하게 된 이 책의 가장 큰 질문이자 교훈이기도 했다. 인간적인 것은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상징하는 걸까. 때론 실수하고 때론 화내지만 그래도 울고 웃는 솔직함을 가리키는 걸까. 사람살이의 참맛을 알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서로 인간됨을 의미하는 걸까. 사소한 일상에서도 소중한 행복을 느끼는 보통사람의 심성을 말하는 걸까. 그는 주로 소설에서 해학과 풍자를 통해 세상을 말하고 과장과 익살로 인간을 그려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해서 나는 그동안 그의 소설을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가벼운 거짓말쯤으로 여겨왔다. 물론 의미심장한 소설의 주제는 기본이었지만 시종일관 가볍게 농담을 섞어 어깨를 툭치듯 말하였으므로 가볍다고 느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산문집은 정반대의 묵직한 이야기 보따리로 인식된다. 그가 건네준 농담으로 포장된 진담의 알맹이는 무거울 만큼 가득했다. 마치 그러한 가벼운 소설을 쓰기위한 지독히도 무거운 배경이라도 깊숙이 파헤친 것처럼 나는 어깨가 무거웠다. 그가 말하는 ‘인간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혹시 이 산문집의 문법대로라면 웃음으로 포장된 슬픔, 기쁨으로 표현된 울음, 농담으로 뱉어낸 상처는 아닐까. 그렇다면 그가 문학하는 방식은 이러한 인간적인 방식에 근거해 뚜렷하게 차별화된 그만의 양식은 아니었을까. 맛깔나게 입담좋은 한 소설가의 사유의 체계와 그로 엮어낸 빛깔좋은 결과물을 양껏 섭취한 심정으로 책을 덮는다. 나 그가 문학하는 방식이 어쩐지 마음에 든다. 농담과 진담사이에서 능청을 떨며 진실게임을 유도하는 이 방식을 내 삶의 방식으로 슬쩍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웃으며 세상을 비판하고 더 크게 웃으며 사람을 울리는 건 농담이 가진 최고의 미덕이자 미학일 것이다. 그건 무릇 무림고수의 오래된 내공이렸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농담’하는 존재이고 우리 삶은 ‘소풍’과 같은 것이며 사람사는 이야기는 다 ‘소설’이라고 한다면 사뭇 우리네 ‘인간적인 삶’이라 함은 성석제를 통해 조금은 더 설레어도 괜찮을 듯하다. 아홉 번 울고 단 한번 웃더라도 인생은 그 한 번의 농담으로 나머지 진담을 견딜 수 있는 것이기에. 비록 그 한 번의 웃음이 아홉 번의 눈물을 더 빛나게 하는 비극의 조건일지라도. 인간은 희극적이고 인생은 비극적일지라도.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적인 사람들. 그것은 봄처럼 설레이는 ‘농담. 농담’은 설레이는 ‘진담의 다른 말. 물론,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