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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책이야! - 2024 개정 초등 1-2 국어 국정교과서 수록 도서
레인 스미스 글.그림, 김경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90년도에 나는 우리 집 재산 목록 1호인 니콘 카메라로 사진학 수업을 들었다. 91년도엔 슬라이드 교재로 발표를 했고 92년도에 8m 비디오 카메라로 교육영상물을 제작했다. 93년도에 하이퍼텍스트 기반의 CD-ROM 교재를 만들었다. 95년도에 회사에서 인터넷교육을 받았다. 97년도 포털 싸이트에 처음 홈페이지라는 것을 개설했다. 같은 해 휴대폰을 개통했다. 98년도에 생애 최초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했다. 2002년도에 사람찾기 사이트에서 동창생을 만났다. 2004년도에 개인 블로그라는 걸 시작했다. 2006년도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을 장착했다. 2008년도에 아이팟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2009년도에 태블릿 PC를 구경했다. 2010년 전자책 단말기를 경품으로 받을 뻔 했지만 거절했다. 2011년, 나는 아직 트위터에 계정이 없다. 이것이 '스티븐 잡스' 식으로 대충 기억해본 스무 살 이후 내 인생의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역사이다.
적어놓고 보니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했고 그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도 달라졌다는 걸 실감한다. 누가 얼마나 먼저 시작했고 얼마나 더 오래 지속했느냐의 차이일 뿐 우리는 결국 모두가 휴대폰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 그걸 가지고 얼마나 더 스마트한 생활을 할 수 있는가가 어느덧 소셜 네트워크 시대를 살아가는 경쟁력이 되고 말았다. 아마도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당신도 나와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사는게 거기서 거기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지난 이십년 동안 변하지 않은 내 일상이 있다면 아직 매일 아침 미련하게 종이신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책을 손때 묻혀가며 때론 접어가며 넘기고 있다는 것 정도이다. 특히, 활자는 종이라는 매개체에 디스플레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쪽에 가깝다. 어찌보면 아날로그 세대의 전형적인 편견이랄 수 있겠다. 엊그제 전자책 시대를 맞이해 작년 한 해 오히려 도서 컨텐츠의 구매가 증가했다는 통계를 보았다. 어찌되었건 전체 독서인구가 늘어났으니 매체의 발달이 절대 컨텐츠의 질적 양적 저하를 가져온다고는 볼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문지의 질감과 종이책의 두께감을 여전히 사랑한다. 클릭하는 터치감보다 넘겨보는 손동작이 더 그립다. 그리고 그것이 창피하다거나 고집스럽다고 생각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당당하게 느껴야 한다고 스스로 고집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반갑게도 이런 내 (어른된)고집을 (아이처럼)귀엽게도 찬성하는 책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이 책은 그림책이었다. 내가 아직 그림책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한 책이었다. 그래, (다른 게 아닌)책이었다. 열네 번 페이지를 넘겨가며 한 자 한 자 글자와 그림을 눈으로 만져보는 책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아이는 자기가 마음에 드는 책만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읽어 달라 고집을 부렸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잠들기 전에도 그 책만 껴안고 닳고 닳아 책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한권의 책만 보았다. 아이는 그렇게 특별히 애정을 쏟은 그림책이 약 열권이 있는데(한권의 수명이 약 일년?) 올해 오학년이 된 아이는 아직도 그 열 권의 그림책을 따로 책꽂이 한 칸에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다. 이 책은 아마 십년 전 쯤이라면 그렇게 넘기고 넘기고 또 넘겼을 그 한권의 책이었달까. 아이의 어린시절이, 더불어 혹시 내가 그림책을 보았을지 모를 까마득한 아기눈의 세월이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 노트북의 동키, 그냥북의 몽키, 그리고 마우스>
이 책의 등장인물은 마우스와 동키, 그리고 몽키이다. 동키는 노트북을 몽키는 그냥북을 가지고 마주앉아 대화를 하는 것이 이 책의 전부이다. 노트북의 동키는 자그맣고 세련되 보이고 그냥북의 몽키는 덩치가 동키의 세 네 배이다.(잡스식으로 보자면 이들의 덩치는 정보용량의 차이랄까?) 동키는 묻는다. 그건 뭐냐고. 몽키는 대답한다. 이건 책이라고. 많은 질문 중 '그걸로 무얼 할 수 있느냐'는 동키의 질문에 '이건 그냥 책'이라고 답하는 몽키가 가장 신나도록 고마웠다. 스크롤도 안되고 메일도 보내지 못하고 트위터, 와이파이, 배경음도 안 나오지만 비밀번호나 별명이 필요없고 결정적으로 충전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책. 책은 그냥 손가락과 눈만 있으면 되는 별스럽지 않은 매체였다. 심지어는 책을 펼쳐놓고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은 무용지물이 아닌 꽤 기특한 친구였다. 하지만 몽키의 대답은 동키의 직접적인 질문에 어떤 변명이나 해명이 필요없는 완전한 답이었기로 덮고나니 그만 영혼을 울리는 종소리가 된다. 흠칫하는 마음이 곧 훗하는 미소로 바뀌게 된다. 책을 가지고 뭘 하겠다는 것이 책으로 꼭 뭘 얻겠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디 웃긴 다짐이었을까 싶은 요봐라 하는, 귀여운 한방. 그것은 이 그림책이 선사하는 예쁘고도 소중한 반전이었다.
이 따스한 그림책을 덮고 나니 나는 책을 읽는 다는 것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짐을, 책을 대하는데 조금은 부담이 덜해지는 신기한 변화를 다 느낀다. 혹시 우리 아이들도 내 마음을 어루만져준 것 같은 이런 기분 때문에 그 한 가지 책을 보고 또 보는 것일까. 혹시 나도 옛날 옛적에 지금처럼 넘겨본 그림책이 있을까. 책이라고 맨 처음 마주한 내 어린이를 기억하자니 그만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건 왜 일까.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은 마음인 것일까. 그림책은 어린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구나 싶어 당황이라도 한 것일까.
언제부턴가 우린 전원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이곳 온라인 세상에 도착할 수 조차 없다. 언젠가 회사에 정전이 되어 하루 종일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자 모두다 일을 접고 조퇴를 한 그날의 어이없고도 막막함이 떠오른다.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우린 이 세상에 접속할 수도 없고 만나서 이야길 나눌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도 은행결제도 쇼핑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이제 우린 만들어진 ‘전기’가 통해야만 우리 마음의 ‘전기’도 통하는 정말로 미디어의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이런 세상에 유일하게 파워를 올리지 않아도 그냥 책인 채로 내 마음의 '전기'를 발전시키는 아날로그 매체가 책이라는 사실, 이 책을 덮으며 조용히 깨닫게 된다. 책은 스위치가 필요없는 '전기'에너지 였음을.
어떤 젊은 엄마 한 명과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아기 한 명이 이 책을 도란도란 넘기고 있을 장면이 자꾸만 그려진다. 등장하는 캐릭터도 표현하는 방식도 그때와 같은 그림책이지만 그 내용은 딱 지금의 내용인 것이 새삼 신기하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이 책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라는 평을 덧붙여 주었다. 무엇보다 그래, 이건 책이니까.(아이는 책을 좋아한다) 우린 가끔 새롭게 등장한 매체는 바로 그 전에 사용되던 매체보다 효과나 필요성이 덜 할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예를 들어 슬라이드 이후 비디오가 등장하였다고 슬라이드의 교육용 효과가 비디오보다 못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오늘 뉴스에도 '아이패드 2'를 공개한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는 정치소식 다음으로 메인 뉴스거리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첨단 후속모델이 정보처리의 속도와 대용량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내가 90년대에 과제로 작성하던 가상교육의 시나리오는 사실상 거진 실현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이런 정보와 매체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면서 점점 더 나만의 정보, 내 것의 매체는 상실되어 간다고 느낀다. 접속하여 연결하고 공유하고 전송하는 것이 정보생활의 주를 차지하다 보니 내 머릿속에 든 지식, 내 손 안에 든 자료, 나아가 내 가슴에 남겨진 메시지들 마저 여기 일상이 아닌 저기 매체와 온라인 세상에 남겨두고 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전기는 흐르지 않는 것이기에 에너지는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전기'가 흐르지 않으면 정말 '전기'는 통하지 않는 것일까.
책은, 다행히도 '전기'없이 '전기'를 통하게 할 줄 알았다. 책은 완전한 내 것이고 내가 가진 확실한 매체라는 생각. 그런 고마운 생각을 오늘 처음 해본다. 책이 제공하는 소유의 매스감과 그것이 꽂혀지는 지적 만족감, 그리고 책을 읽어냈다는 쾌감의 자신감, 이런 무형의 것들은 분명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책이어야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 그림책은 이러한 책의 본질과 전통적인 기능및 의미, 역할들을 무엇보다 어려운 논리와 설득을 통해서가 아닌 너무나 쉽고도 정겨운 어린이 그림책으로 표현해 내었다는 것이 가장 큰 미덕으로 여겨질 듯하다. 그림책을 다시보았다. 거의 사십년 만일 수도 있는 내 인생의 역사적 순간이다. 다시 전 생애를 되돌아가 내 가슴에 흘렀을지 모를 '전기'를 느껴본 추억의 책장. 그곳에도 분명, 책이 있었고 그림이 있었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우리 사는 동안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그리움, 책이라는 '전기'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