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직설 - 한국 사회의 위선을 향해 씹고, 뱉고, 쏘다!
한홍구.서해성.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편'한 직설 '편'한 침묵


   나는 말로써 직설(直說)을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직설은 문자 그대로 바른대로 있는 그대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주체의 의도대로 바르게 전달되기가 힘든 것도 직설이다. 직설은 컨텐츠의 스탠스에 따라 양질의 충고 혹은 경고일 수도 유익한 비판이나 비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하는 입장에선 대개 모질고 상처를 주는 독설이 될 경우가 많다. 세간에 성행하는 오디션 프로의 심사위원을 보더라도 돌려서 말하지 않고 대놓고 단점을 지적하는 경우 그들을 독설의 대가라고 칭하기도 한다. 상대를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칼은 명중률이 높고 의도와는 별도로 상채기를 남기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입장에선 예고도 없이 공격에 노출된 상황에서 직설을 날린 주체에 동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한 화법이 단점을 고치고 더 발전해야 하는 경우라면 고맙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상처 자체는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직설은 사후관리가 더 큰 몫을 차지한다. 말 못지 않게 글도 뼈아픈 상처가 될 때가 있는데 차라리 말은 얼굴 보며 털어버릴 기회라도 있지만 글로 새긴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숙한 곳에 저장되기만 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말보다 글이 더 편해졌다. 누군가와 싸울 때도 나는 글 쓰듯이 똑같이 말을 하는 편이라고 하는데 이 습관이 언제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모르지만 여간해선 잘 고쳐지질 않는다. 같은 에너지라면 말보다 글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고 분명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문장 자체도 단문을 선호하지 않고 일관된 만연체 스타일에 되도록 종합적인 결론을 지향하는 성향이므로 이 또한 직설적인 과에 속하진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난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부터 시작하는 직설의 능력자들이 많이도 부러웠다. 길게 늘여서 말하라는 건 하겠는데 요약해서 핵심만 말하라 하면 멈칫거리게 된다. 그래서 난 언제나 소설쓰는 작가보다 시쓰는 시인이 부럽고 대단하다 여겨왔다.

   직설을 우리말로 바꾸면 아마도 바른 말을 하는데 거침이 없다는 뜻의 ‘입바르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나는 입바른 소리도 에둘러 말하는 편에 속하는데 경험상 입바른 소리야 말로 직설로 접근해야 효과적이었다고 본다. 콕 집어 예를 들지 않으면 입바른 소리의 대상이 광범위해지기 때문에 엉뚱한 오해를 살 확률이 발생한다. 여기서 일부러 특정 사건과 인물을 지칭하지 않으려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려는 건 전형적인 정치적 행보이다. 정치라는 것이 꼭 정치인이 행해야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같은 일반 대중도 얼마든지 이곳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기 이미지를 자기 뜻대로 다스려 운영하고들 있지 않은가. 언젠가부터 나는 입바른 소리에 해당하는 직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입바른 소리를 시도하는 귀찮음이 간혹 야기되는 오해를 설명하는 귀찮음과 동일시 되면서 자연 편하고 눈질끈 감는 쪽을 선호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나이 들어 깨닫게 되는 건 바로 입바른 소리는 그 의도만큼 썩 만족할만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식의 진부한 위선도 지향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위선과 직설 사이에서 방황하게 될 경우 대개 사람들은 그 사안에 대해 침묵을 택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고 무관심이듯 직설의 반대는 돌려막는 곡설이 아니라 침묵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책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침묵으로 자주 대항하는 나같은 대중들이 읽어야 할 책인 듯하다. 침묵을 미덕으로 활용하는 위선자들에게 훌륭한 자극제가 될 듯하다. 책의 부제도 ‘한국사회 위선을 향해 씹고, 뱉고, 쏘다’라 되어 있듯이 그동안 위선을 용인해오고 또 스스로 위선을 경쟁력으로 삼아온 사람들이 해가 넘어가기 전에 꼭 들쳐보아야 할 책이라 할 수도 있겠다. 최근에 이런 식의 직설화법은 ‘나꼼수’의 등장과 더불어 새로운 트렌드로까지 읽혀지고 있다. 이른바 개념구라, 구라작가, 구라MC의 테두리에 이 책의 문법도 어엿하게 한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인터뷰에서 서해성 작가는 ‘직설이 문자로 나눈 꼼수였다면, 꼼수는 말로 하는 직설’이라 한 바 있다. 방법이 틀릴 뿐 이들이 말하는 방향은 한 곳이다. 나꼼수가 가카 헌정방송이라면 직설은 MB시대 헌정문학. 다른 게 있다면 나꼼수는 팩트를 모아 추정소설을 말로 연재하는 것이고 직설은 사람을 만나 그 사람 전공 분야를 가지고 MB를 향해 눈치 안보고 떠들어보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멍석 깔아주면 발목이 오그라 들 것이므로 한홍구와 서해성이 적당한 추임새로 용기를 부추기는 형국인 것이다. 무려 이 책에서 만나본 사람은 故 리영희 선생을 비롯해 사십 여명이 되는데 실컷 떠들었던 말들을 글로는 다 옮겨 적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그들이 성토한 직설들은 대단한 논픽션 소재로 흠잡을 데가 없다고 본다. 어딜 봐도 도통 불편했던 건 아무래도 MB 정권이라는 지극히 우울한 소재를 미션으로 하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놈현’과 ‘노무현’의 차이


   이 책은 무엇보다 생각처럼 쉽지도 편하지도 않은 책이다. 혹자들은 직설(直說)이라 하니 속이 시원하거나 그런대로 할 말은 했겠지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 책에 호기심을 가지는 독자들은 김어준에 준하는 직설화법을 기대하며 정곡을 찌르는 정치비평을 기대했으리라 생각한다. 이른바 MB 시대의 직설이라 함은 다른 누가 아닌 MB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데 돌려서 말할 거면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실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목적만큼 고속도로의 직선도로를 달리진 않으며 결론만 강조하는 단순한 문법을 취하진 않았다. A를 말하는데 있어 B,C,D를 찬찬히 둘러보며 A이전과 A이후를 다각도로 살펴보는 쪽이므로 대화전개 방식 역시 직렬보단 병렬이 더 가깝다. 인터뷰가 오가는 방식에서도 얼굴보고 직접 만나서 서로 증상을 진단하며 환부를 확인하다보니 다른 설명없이도 이 통한스런 현실을 더 강렬하게 공감하는 결과를 야기하며 직설보다 직감(直感)적이라 할 수 있다. ‘직설’에선 어쩐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뉘앙스를 부인할 수 없는데 이 책은 문법적으로도 비교나 은유의 탁월한 수사가 매력적인 색다른 비평집이다. 그러니 직구보단 변화구, 직접보단 간접, 직선보단 곡선, 직행보단 완행으로 이루어진 느낌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직설>은 직설적이긴 하나 결코 직설만은 아니다. 직설을 표방한 곡진한 해설이라 해야 맞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이 책이 결국 누구를 향한 무엇을 향한 직설이었는지를 생각했다. 과연 삿대질하는 방향에 위치한 그들만을 향한 쓴소리인지 고민해 보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서해성 작가는 2010년 6월 11일 『한겨례』에 게재된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DJ 유훈정치와 ‘놈현’ 관 장사를 넘어라」기사에서 바로 ‘놈현’과 ‘관 장사’라는 표현의 강렬한 직설을 사용한 주인공이다. 노무현을 ‘놈현’이라 말하고 유산계승을 ‘관 장사’로 빗댄 그 기사 때문에 유시민은 23년간 구독해온 한겨례를 절독하겠다고 선언했고 한겨례는 며칠 뒤 신문 1면 아래 편집국장 명의로 절절한 사과문을 싣기도 했다. 당시 ‘관장사’ 직설은 시작한지 몇 회 되지 않는 초반 개념 정립단계였다. 시청률로선 대박을 쳤지만 솔직한 토론이라는 최초 신선한 목적은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국민적 비난을 넘지 못했다. 한겨례측은 신문에서 정리하고 편집할 때 노골적 표현을 거르지 못하고 독자들에게 불쾌감을 전달한 것을 자신들의 불찰로 인정했다.(하지만 서해성 작가도 그렇게 생각할까?) 유시민은 이 사과를 보고 트위터를 통해 절교선언을 취소하는 해프닝도 보여주었다. 확인해보니 이 책에선 당시 천정배 의원과의 인터뷰를 실으며 ‘놈현’이 표시된 문장을 ‘노무현’으로 정정해 옮겨 놓았다. 물론 나는 그 사실을 크게 인지하고 그 문장을 접한 것은 아니었지만 문맥상에서 ‘노무현’이 ‘놈현’으로 표시되어 있었어도 ‘놈현’을 ‘노무현’의 구어체식 단순 줄임말 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않았을 것이다.(물론 난 노빠가 아니기 때문에 ‘노무현’과 ‘놈현’의 차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구어체를 발음 그대로 실어야 직설이 된다는 원칙에 동감하는 수준이었을 터이다.


   
 
서해성 | 선거 기간 중 국참당 포함한 친노 인사들이 써 붙인 “노무현처럼 일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보면서 쓴웃음이 나왔어요. 이명박이 가진 폭압성을 폭로하는데 ‘노무현’(기사에선 ‘놈현’)이 유효하겠지만, 이제 관 장사는 그만둬야 해요. 참여당 실패는 관 장사밖에 안 했기 때문이에요. 그걸 뛰어넘는 비전과 힘을 보여주지 못한 거예요.
-396p
 
   


   앞뒤 문맥상 여기서 중요한건 ‘놈현’이 아니고 ‘관 장사’하지 말라는 메시지인데 유시민은 틀림없이 ‘놈현’ 부분에서 목에 걸려 울컥한 것이렸다. ‘관 장사’만으로도 썩 기분 좋을 단어 선택은 아니었겠지만 이때 ‘놈현’이라는 구어체는 ‘관 장사’라는 풍유법을 더 굴욕적으로 몰고 가는 폭풍의 혀로 작용했다. 이렇듯 구어체로 표현된 직설의 한계는 어쩔수 없이 ‘노무현’과 ‘놈현’의 차이에서 싹트는 불쾌감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자칫 애티튜드만으로 메시지를 넘어설 수 있다는 근본적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로는 맞지만 기분은 드럽다는 것이 직설의 핸디캡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애티튜드 또한 메시지의 일환이라 줄기차게 주장하는 김어준이 반사적으로 겹쳐질 수밖에 없었다. 김어준은 구걸하지도 않고 덕 볼 생각도 안 할 테니 변함없이 쫄지 말고 기죽지 말자는 충고를 한다. 무례함이나 상식, 보편적 정서 따위로 직설화법에 브레이크를 걸고 싶다면 내 이야길 듣지 말라고 일갈한다. 그리곤 말한다. 그쪽은 훨씬 가진 것도 많고 떠들 곳도 많으니 이 조그만 곳과 그곳에서 오가는 말장난을 막지만 말아달라고. 떠들고 킬킬거리는 그곳에선 사실 <직설>에서의 지적질의 몇 배에 해당하는 욕설이 오가지만 매체의 특성상 아무도(한사람만 제외하고 ㅋ) 방식을 문제 삼진 않는다. 그런데 김어준도 같은 내용을 책이라는 매체로 전환할 땐 확실히 문어체의 화법을 지향하며 꽤 지적인 수사를 연출했다. 이 책이 안타까웠던 건 바로 인터뷰로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 형식의 매력이 지면으로 똑같이 옮겨졌을 때 그 열의가 반감되는 듯한 차감효과였다. 다른 무엇의 점잖은 대담이 아니라 직설로 오가던 불꽃같은 애드리브와 통쾌한 구라문학의 포스가 종이로 박제되면서 직설의 본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 각계 분투의 직설을 모두 모아 놓았더니 그만 핵심역량(?)이 떨어져 보인다는 느낌. 그래서 직통으로 환부를 관통했다는 짜릿함은 느낄 수 없다는 아쉬움. ‘놈현’과 ‘노무현’이 글자로 등장한다면 말로 했을 땐 있지도 않거나 중요치 않았던 새로운 역학이 증거로 발생한다는 왜곡의 염려. 그것이었다.


'펜대' 꼬나 잡고 '주둥이' 제대로


   하지만 이 책이 가지는 본질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말이 아니기 때문에 MB 시대의 당당한 구라문학으로 흔치 않는 의미성을 획득하였다. 그 일등공신은 아이러니하게도 ‘놈현 관 장사 사태’를 ‘한겨례 사과사건’으로 몰고 간 서해성이었다. 이 책을 통해 가장 눈에 띄던 주연아닌 주연. 질문으로 답하는 의도적 인터뷰어. 서해성과 한홍구는 약 사십 여명의 게스트에게 민감한 질문을 던지며 게스트의 답과는 별도로 스스로도 해답을 찾아 현상과 사건을 정리하는 지적인 사회자들이었다. 이 책의 핵심은 바로 게스트의 답변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힌트와 참조할 자료들을 기자식으로 시시각각 제공해주던 그들의 해박한 지식과 놀라운 통찰력이었다.(이 책을 덮고 서해성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 보았지만 그 흔한 소설집 하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ㅠ)  한명의 인터뷰가 끝나면 ‘잔설’이라는 해설과 논평이 이어지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인데 나는 서해성의 ‘20년 만에 쓰는 부검입회보고서’를 읽고는 그만 다리가 풀려 버렸다. 서해성은 광주를 생각하면 아직도 ‘총을 든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라 말한다. 그렇다고 지금 총을 들 순 없으니 ‘펜대 꼬나 잡고 주둥이 제대로 놀리는 것으로’ 내 할 일을 시작하자 다짐한다. 적어도 그때 총든 분들의 마음은 간직하자 호소한다. 감히 비슷한 심정이라 입에 올리기 조차 미안하지만 같은 시절 데모하다 경찰의 방망이에 맞아 죽은 나와 꼭 같은 나이의 꽃다운 청춘을 떠올리는 기분이었다고 고백 할까. 기껏해야 시국을 비판하고 MB 정권에 삿대질 하는 책이나 읽어야 그들을 향한 부채감을 간신히 기억해내는 기성세대가 되어 버린 지금 서해성이 적나라하게 칼질하는 그들 죽음의 부검 현장은 우리가 이 시대에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쯤 자문하게 만들었다. 왜 그들은 죽었고 우리는 살았는지. 만약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그래서인지 전쟁 때 또래들 절반이 사라진 통에 ‘자신의 실재는 다른 사람들의 부재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고은 시인의 넋두리가 가장 울림이 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은 시인은 누적된 역사 속에서 시대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건 바로 요절한 시인들의 결핍을 메우라는 명령이라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의 고등학생은 입시 때문에 죽고 대학생은 등록금 때문에 죽고 노동자는 해고당했다며 죽어버리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쌍용자동차 파업 후 2년 동안 열 일곱 명이나 되는 사람이 자살을 하였다고 하는데 나는 이러한 사회적 비극을 기껏해야 ‘나꼼수’를 통해서야 뒤늦게 알게 된 무심한 사람이었다. 이 책에는 인터뷰를 통해 홍대 청소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직설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여름 강남 물난리때 침수된 대치동 은마아파트 지하실에서 감전사한 어느 아주머니가 떠올랐고 최근에 아주머니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할수 없다는 주민들의 기사도 겹쳐졌다. 우리는 과연 학원비 빠듯하다 앓는 소리 하는 같은 아파트 주민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럴 자격이 있을까.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은 ‘비장애인은 장애인과 살아보지 못한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 말한다. 장애인과 같이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다고 말한다. 뜨끔했다. 이명박을 분단 모순의 집적, 냉전의 찌꺼기로 규정한 백기완 선생은 죽어서도 억울하면 벌떡 일어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저항심을 ‘안간’이라 말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이 책에선 유난히도 어느 유명한 정치인이나 유명인보다 이렇게 그 질긴 세월을 모질게 겪고 나이 들어 이렇게 꾸지람 하는 것도 자신이 마지막이라는 분들의 말씀이 기억난다.

   정치인들은 의외로 돌려 말하거나 묻는 것만 말하거나 민감한 사안은 회피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성공한 대통령에 대한 집착을 버렸으면 좋겠다는 정두언 의원이나 역사는 회의론자가 아닌 확신범이 바꾸는 것이라는 정동영 의원, 아침마다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리며 그분이 남겨주신 ‘국민 생각이 뭔지 알아봐라. 원칙 버리지 마라.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해라’ 이 세 가지를 생각한다는 박지원 의원 정도가 인상깊었다. FTA를 통상의 문제뿐 아니라 외교 전략의 문제이자 민주주의문제, 공공성의 문제로 같이 인식해야 한다는 이해영 교수의 견해도 좋은 말씀이었다.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이 걸어온 세월을 평가하고 현재 고난의 시점에서 문제점을 직시하며 모두가 함께 잘되는 앞으로의 미래를 전망해보는 것은 저들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별 탈 없이 만인이 자연사하는 사회가 민주사회라는 서해성 작가의 자조적 독백은 다시금 우리가 같은 시대, 같은 나라를 살고 있는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도 인간인 이상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자각을 하게 한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생동안 다른 사람의 죽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채 삶을 이어나가서는 안될 것이라는 뒤늦은 깨달음도 얻게 된다.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어간 우리 시대 모든 죽어진 삶에 우리는 어떤 빚을 갚아야 할까. 그들의 결핍을 메우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할 일이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시골의사 박경철이나 안철수 원장, 박원순 후보, 오세훈 친족이라는 나경원 후보까지도 하나같이 주장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 그 소외된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생존권을 언급한다. 중국집 배달부 아저씨도 그 궁색한 살림에 죽는 날까지 기부를 하다가 가셨다. 나는 다시한번 이 책은 누구를 향한 무엇을 위한 직설이었는지 생각한다. 삿대질 하는 방향의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 그곳이 어디였는지 가만히 응시해 본다.

   새삼 한국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다 한 글자라는 서해성의 유머가 따스하다.


   밥, 몸, 일, 집,


   그리고 .


   무엇보다 .


   그러나 우리 사회 밑바닥에서 부터의 안간힘을 다해 다시 희망을 찾고 싶은 우리 모두의 .


   그  으로 빚어질 공동체의 .


   그 으로 탄생할 새로운 .


   <직설>은 아주 작은 단위의 빛으로 조각조각 쪼개어진 우리 모두의 간절한 '끈' 이라면 좋겠다. 무엇보다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이 중요한 시점에 그 끈 하나로 이어져 마음이 하나되는 기특한 '책' 이었음 좋겠다.

   부디 당신의 펜대와 주둥이를 믿는다. 당신도 나처럼 이면 정말 좋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거핀 2011-10-20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이 책을 붙잡고 있는데, 이상하게 진도가 잘 안나가요. 어쩌면 그런 것이 내용보다도, 이야기를 하는 방식에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이 리뷰를 읽으면서 해봅니다. '나꼼수'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나꼼수 방송을 사실 제가 잘 못듣겠더라구요..(사실 한 번 시도해보았는데, 방송을 30분 듣다가 왠지 더 듣기가 싫어져서 그만두었습니다..가카님의 멋진 재테크, 인테크 기술들을 좀 더 배워야 하는데..하하;)

보물선 2011-11-0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중요한 건 한글자라는. 콕 박힌다.

가연 2011-10-24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검입회보고서를 보고 참 마음이... 그나저나 서해성 작가가 소설가로서 별다른 책이 없다는 것을 보고 사실 좀 놀라고 말았지요ㅎ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누구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단 한 권의 책으로 여러 상들을 휩쓸고 난 후에 절필하고 사회운동에 뛰어든 소설가..같은 느낌을 주었달까ㅎㅎ 좀 과장된 점이 없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