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붐이 붐을 일으키다
지난 추석 연휴의 TV 예능에서 자주 눈에 띄던 인물은 단연 붐이었다. 본방, 재방, MC, 게스트 할 것 없이 붐은 안나오는 데가 없어 보였다. 많은 예능인들이 제대를 하고 늘 그렇듯 컴백을 하였지만 붐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방송 3사를 통틀어 열렬히 환영받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김종민과 하하는 자신의 고정프로로 복귀했지만 초반엔 잃어버린 감을 찾는데 힘겨운 시간을 보내었고 노유민, 천명훈은 존재감이 없어진지 오래이다. 김종민과 하하도 강호동과 유재석이라는 메인 MC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자체 독립적으로 다시 감을 잡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그런데 붐은 마치 어제까지 그대로 방송을 이어온 사람처럼 강호동, 이경규, 이휘재, 김제동등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입담으로 추석 예능 MC계를 올킬했다.
붐이 입대하기 직전에 가장 인기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붐이 이렇게 환대(?)받을 만큼이었나 싶을 정도로 갸우뚱해질 정도였달까.(솔직히 톱스타 MC는 아니었잖나)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아 붐은 오랜 유-강체제가 허물어질 조짐을 보이는 이 시기에 절묘하게 등장해 당분간 메인 혹은 보조 MC의 자리를 독차지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것이 단순한 운발 만은 아닌 것 같고 순발력과 능숙도, 타이밍등을 보았을 때 본인 자신이 군대행사 4백 여회를 통해 더욱 내공을 쌓는 기회를 갈고 닦아 왔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강호동이나 유재석의 도움없이 오로지 혼자서 혼자 몸과 입으로 2년 반을 버틴 자생(?)의 시간이 그를 키운 건 아닐까 싶다. 기본이 가수출신에 댄스가 능하고 오랜 리포터 활동을 통한 인터뷰 및 대응능력, 각종 행사진행에서 비롯된 현장 순발력, 그리고 군대생활로 다져진 체력, 인내력까지 합쳐져 예능의 블루칩으로 떠오를 확률이 많아졌다.
붐을 보면서 사실상 ‘스타킹’과 ‘강심장’에서 (강호동 보조 진행으로서)인기절정(?)일 때 군대 입대한 그의 경력이 기억났었고 자연스레 추석 전 전격 은퇴선언을 한 강호동이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이었다. 붐 아카데미 출신인 이특도 이제는 어엿한 진행자로서 한층 성숙해진 느낌이고 1박 2일의 이수근도 명절특집, 신규 프로에 단골 MC로 등장하는 것은 익숙한 광경이 되었다. 강호동과 함께 두 프로를 해온 이승기 역시 일,이년 전과 비교하면 그 입답과 진행실력은 일취월장 했다고 볼 수 있다. 무릎팍에서의 유세윤 정도가 공중파에서 독립적인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는데 내 생각엔 캐릭터가 강하지 않으면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약점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튼 나는 붐을 보면서 새삼 강호동과 함께한 보조 MC들의 경쟁력을 떠올려 보았는데 경쟁자인 유재석과 함께하는 MC들과 비교해 보았을때 확실히 (MC로서)발전도가 더 높아보였다. 나는 이 결과가 강호동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강호동이라는 1인자가 지향하는 방송정체성과 개인 야망도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다. 강호동과 오래 같이 하고 그에게 방송을 배웠다면 결국 강호동 같은 진행자가 될 확률이 많지 않을까. 강호동은 이경규를 넘었듯이 결국 그들중 누구는 강호동을 넘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는 유재석과 함께 하면 유재석의 방송정체성과 개인 야망도에 따라 마찬가지로 (유재석을 넘기보다는)유재석과 영원히 함께하는 방송인이 될 확률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그들 자신도 대부분 유재석을 넘을 생각을 하지 않고 유재석 손을 잡거나 그의 품안에 있고 싶어 할 듯하다)
다시 말해 강호동은 본인의 정체성과 시청자가 바라는 캐릭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 2, 제 3의 강호동에 의해 왕좌를 내어주게 되고 필연적으로 이경규와 같은 1인자도 2인자도 아닌 그저 특등자로 남게 될 인물이라는 것. 그렇기에 유재석에 비해 좀 더 마초적이고 형님적인 강호동은 어쩌면 유재석보다 더 외로울 수 있는 성향은 아닐까. 승부에서 진다는 것을 곧 자신과의 싸움에 진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그가 이번 한 번의 실수로 은퇴를 선언한 것을 보고 그답다고 하는 말들은 어쩐지 그가 그동안 얼마나 실수나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고 철저했을까를 역으로 상기하게 된다. 좀 안타까운 것은 기질적인 이유로 강호동은 승부를 걸어 승패가 결정나는 일이 아닌 것에는 좀처럼 도전의식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강호동이 반드시 새로운 것에의 도전을 위해 방송에 복귀하리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2. 일인자는 은퇴를 한다
강호동을 보면서 나는 일인자의 은퇴를 생각했다. 그가 일등이 아니었다면 은퇴를 선언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조용히 국세청의 조사를 받아들이고 성실히 금액대로 세금을 납부하면 그만이고 사람들은 한 연예인이 덜 낼 뻔했던 세금을 가지고 바빠죽겠는데 소송을 걸 리가 만무하다. 나도 조그만 개인회사를 운영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세무사와 미팅을 할 때 애매한 경비정산은 무조건 회사경비로 처리하도록 부탁했지만(예를들어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산 것도 능력자 세무사는 추석용 접대선물로 분류한다) 세무사의 능력은 곧 기업의 대표가 세금을 덜 내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 쯤은 세금내는 대표에겐 일반상식에 불과하다. 나는 강호동이라고 무슨 성자처럼 될 수 있으면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내도록 정산을 분류해주시오, 했으리라고 보지 않는다. 더군다나 백 만원에 십 만원하고 백억에 이십억은 (아까운 정도가 ㅋ)차원이 다르다. (전문가들의 절세수단은 간이영수증의 그것과 다르다고 믿고 싶지만) 그리고 강호동의 세무사가 특별히 도덕적이지 않아서 내도 될 것을 굳이 어떻게든 안내려고 머리 굴려 서류처리했다고 보지도 않는다. 세무사들은 보통 애매모호한 상황일때 관례에 따라 처리하고 자기 월급주는 사람의 편에 서게 되있다. 세무사 월급이 아깝지 않은 이유는 바로 절세 때문인데 까놓고 말해 이 나라에 내가 번 돈에서 얼마라도 세금내고 싶은 납세자가 몇이나 될까. 내가 강호동이라도 세무사가 될 수 있으면 적게 내는 쪽으로 (머리좋게)정산해온 서류를 보고 나는 공인이니 나라를 위해 모범을 보이기 위해 우리 한 푼이라도 더 냅시다, 이렇게 안한다. 나보다 똑똑하신 세무사님께서 알아서 해주셨겠죠. 믿겠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정서 아닌가. 무식한 강호동이는 틀림없이 유식한 세무사에 기댈 수 밖에 없었을 터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세금에 관해선 세무사보다 무식하다. 혹시 약간의 서로 간에 양심이 찔리거나 애매모호한 사항들은 어련히 알아서들 잘난 국세청쪽에서 잘 지적해 주신 후 그때 내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 않는가. (물론, 안걸리면 다행이고 ㅋ) 나는 누구도 강호동이 더욱 엄격하게 경비처리를 하지 못한 것에 혹시라도 알고서 슬그머니 넘어가려 했다 할지라도 돌을 던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가 경비고 어디서부터 개인지출인지 이거야 말로 '애정남'에게 묻고 싶다. 애초부터 대기업 빠져나가기 좋으라고 가이드라인 흐리멍텅하게 짜놓은 국세청이 그런 일도 안할 것이면 그냥 은행에 전기료 고지서 내듯 내버리면 될 것이지 뭐하러 서류는 내고 복잡하게 확인을 할 것인가.
이쯤에서 현장 PD나 연예인 측근 스탭, 코디와 매니저등의 증언이 올라오기 마련인데(예를들어 강호동은 늘 제 택시비를 내주었어요, 제 학원비도 대주셨죠, 전세금을 꿔줬어요 앗 그런데 영수증을 못드렸어요 뭐 이런 ㅋ) 내 생각엔 강호동처럼 경비정산한 연예인들이 많기 때문에 그냥 불똥이 자신에게 튈지 몰라 몸을 사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MC계 일인자의 세금처리 방식은 곧 예능계의 세금처리 방식이 아닐까. 한번의 실수로 은퇴를 선언한 강호동도 있는데 자칫 세금문제로 일이 터졌다간 밥줄 끊어지게 생겼으니 말이다. 강호동은 어쩌면 여러 사람 밥줄, 명예줄, 인기줄때문에 혼자 짊어지겠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강호동이 억울하다는 건 연예계에서 더 잘 알고 있을 것. 잠시, 글이 옆으로 새었는데,
다시, 그렇다면 일등은 왜 은퇴를 선언하는가.
사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본 것은 어느 분야나 자타공인 일인자로 회자되는 인물의 은퇴, 그리고 은퇴방법이었다.
연휴에 ‘카페 정윤희’라는 다큐를 보았다. 그녀가 브라운관에서 사라진 건 대략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였는데 소위말해 전성기 때 쿨하게 연예계를 떠나 지금까지 그 어떤 토크쇼나 예능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전설의 탤런트였다. 물론 쓸데없이 어린 시절의 기억력이 좋은 내 기억속의 그녀의 마지막은 ‘간통사건’이긴 했다. 어느 중소기업 사장과 간통으로 고소되어 어쩔수 없이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기사였고 그땐 간통이 큰 범죄였기 때문에 그녀가 원한다 해도 계속하여 배우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관능적인 외모에 비해 솔직히 연기력이 대단한 배우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발음이 부정확하고 시선처리가 불안했고 디테일이 많이 떨어지는 배우에 속했다. 내 기억으로 그녀는 드라마왕국 MBC에 출연한 드라마는 없었다. 당시 연기 좀 한다하는 정애리, 차화연, 이경진에 비하면 그녀는 정말 미모와 분위기 하나로 히로인이 된 경우였달까. 하지만 누가 뭐래도 톱탤런트로서 그녀는 일인자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때 선데이서울에 1면 기사로 등장한 ‘정윤희 간통’ 기사가 간접적이고도 타의적인 은퇴기사라고 여긴다. 아직까지도. 이건 순전 또 내 추측인데 그녀가 절대로 대중앞에서 복귀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아마도 간통에의 기억을 다시 불러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간통으로부터 호출되어야 하는 자신보다는 간통과 동시에 잊혀지는 걸 선택한 것은 아닐까.
가요계 은퇴는 아니지만 자발적인 선언에 의해 가요대상 및 각종 예능프로의 방송 은퇴를 선언한 사람은 조용필이다. 그는 더 이상 가요대상을 수상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나서 90년대 이후 방송계를 떠났다. 그리고 콘서트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대중과 소통하는 진정한 음악인의 행보를 보여주었다. 서태지의 경우도 비슷했는데 창작의 고통을 앞세워 그는 무늬만 은퇴를 선언 했고 (방송이 아니어서 그렇지)잘은 모르지만 계속해서 음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밖에 영화계, 문화계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아본 일인자는 이렇듯 자주 은퇴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간혹 천재적인 일인자는 세상과 그에 적응하는 혹은 못하는 자신을 견디지 못해 죽음으로 은퇴를 선언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3. 자신을 이기지 말자
일인자는 어느 순간 일인자인 자신과 외다리에서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이기는 것만이 일등인 순간이 왔음을 알게 되었을 때 일인자는 그다지 행복할 것 같지 않다. 대중들도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일인자에겐 필연적으로 실망을 하게 되어 있다. 지금 일인자보다는 못하였지만 기존의 자신을 넘으려 최선을 다한 이인자, 삼인자에게 더 박수를 보내주는 것도 잔인하지만 일인자가 감당해야 할 몫인 것이다. (인순이를 보라. 누가 보아도 그녀는 그중에서 가장 멋지고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했지만 그건 원래 일등인 인순이의 모습이었고 그전 일등의 무대보다 특별히 나은 것은 아니었기에 또 언제나 일등을 할 수 있기에 쉽게 일등이 되지는 못한다) 그런 면에서 자신 스스로 일인자라 여기는 사람들은 어쩌면 반드시 자발적 은퇴를 하게 되어 있지 않을까. 물론 그 부담마저 매번 극복하고 또 매번 일등을 하는 박정현 같은 예외의 전교 일등 부류도 있긴 하다만. 일등중에서도 모두 전교일등, 전국수석이 되지 못하듯 평범한 고통으로 번민하는 일등이 다수일 듯하다. 오랜 세월, 여러 번 일등을 해온 사람은 일등이었다는 자의식, 앞으로 그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부담감, 일등이 아닌자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리는 음해와 시기, 혹시나 실패나 실수로 추락할까 두려운 불안등을 모두 같이 짊어지고 가는 고독한 러너인 것이다.(강호동이 그랬지. 스타와 슈퍼스타는 그 부담감을 이기느냐 못이기느냐의 차이라고)
연휴에 사르트르와 까뮈를 읽으면서 그들 일인자들은 무엇보다 세상과 사람들이 아닌 자기자신을 극복하려 했던 점이 참 인상깊었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자신이 못가진 재능을 알아보고 친구로 지내지 않았다면, 그래서 라이벌이 되지 않았다면 그토록 자신을 극복하려 모든걸 걸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여지껏 강호동에 필적하는 라이벌은 본인 자신도 말했듯이(이건 유재석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유재석뿐이었다. 예전에 이휘재와 남희석이 양강체제를 이루어 갈 때, 김용만과 김국진이 커플이면서 라이벌이었을 때 한명씩 살아남으면서 양강체제는 변화를 반복하며 유재석-강호동의 체제까지 이어져왔다. 그리고 한명이 이탈하는 것이 남은 한명에게 결코 득이 되지 않는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일인자에겐 자신의 추락이 자신의 추락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고 어쩌면 자신만이 추락할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은 무언의 책임감으로 슬픈 존재인 것이다. 나는 솔직히 같은 사태가 유재석에게 일어났다면 유재석은 잠정은퇴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모든건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일인자의 성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이다.
그래서일까...나는 요즘 내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스스로가 너무 힘들다.(힘들다기 보다 지겹다)
오늘 아침 전설의 투수 최동원 감독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보면서 일인자가 남긴 한마디, 괜찮다는 말씀을 떠올린다. 유독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운동선수, 여배우들의 자존심을 생각하며 일인자가 되고자 소망하던 내 자신을 처절하게 들여다 보게 된다. 가을이 시작되어 그런걸까. 조금은, 조금만 덜 진지해졌으면. 덜 엄격해졌으면. 못난 자신에 못견뎌 하지 말았으면 ...
덧붙임) 갑자기 생각났어요. 80년 그러니까 제가 4학년 때인가, 드라마 <축복>
이라고 주인공이 골수암에 걸린 정윤희였는데 드라마 주제곡이 조용필의 '촛불'이었어요.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그때 돌쟁이 조카중에 한 녀석에게 제가 누가~ 하고 부르면
지키랴~ 하고 대답했었죠. 그 자식이 벌써 결혼을 했다네요. 세월이 일등을 추억하게 하네요
은퇴도 그리움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