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타기이즘
나이가 드니까 자꾸 어떤 사안에 협상을 하려드는 성향이 짙어진다.
좋게 말하면 양쪽 모두 이해하려는 심정이 많아지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 속내를 감추는 것이다. 속으로는 이미 내부 판단을 마쳤으면서 바깥으로는 남들이 원하는 말을 하거나 그들사이 중간 어딘가에 맞추어 적당히 넘어가려는 것이다. 상대가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므로 나를 틀렸다 지적하는 사람들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어떤 논란이 일게 되면 뒷짐지고 돌아가는 추이를 살펴보고 평화로운 결론을 내비친다든가 아니면 아예 침묵하는 것으로 외면한다.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솔직한 것이 자신의 경쟁력이 되지 않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감추고 돌리고 넘어가는 것이 가시적인 평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물론, 나라고 아니라 말 못할 것 같다. 그러다가 주기적으로 한번씩 옷을 벗을 때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벗은 나를 그다지 반기는 것 같지는 않다. 남들이 판단하는 내 가치는 남들의 것이라 늘 책에서 확인해왔으면서 나는 그렇다고 내가 말하는 내가 전부인 것은 아니라고 아무도 그렇게 믿지는 않을 거라고 우겨댄다. 어렸을때부터 나는 입바른 소리를 하는 쪽에 속했는데 이것도 마흔 넘으니 슬슬 물타기를 하고 싶다. 그런 팔자가 정말 삶의 행복에 도움을 주는 것인지 경험상 피곤하다 쪽에 무게를 두면서 생긴 현상이다.
#2. 공정하니즘
모 출판사는 최근 리뷰대회 공정성의 문제가 화두가 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해 수상을 많이 한 자는 리뷰대회에 수상토록 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들의 초안이다. 신규 참가자에 더욱 수상기회를 부여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서 리뷰대회의 본질은 리뷰쓰기 장려가 아니라 출판 장려라는 마케팅 행사임을 파악할 수 있다. 상타는 놈이 그놈이 그놈이니 출판사로서는 메리트가 없는 장사인 것이다. 리뷰대회가 소위 일부 글좀 쓴다하는 서평자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긴 하다. 그동안 주로 상타는 놈쪽에 속했던 나로선 썩 기분이 좋은 건 아니지만 불공정한 처사라 대놓고 말하긴 거시기한 사안이다. 아마 나처럼 그동안 리뷰대회를 습관적으로 혹은 목적적으로 참여해온 분들이라면(더군다나 수상도 여러번 한 경험이 있다하면) 마치 덜 익은 단감을 한입 베어문 기분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공정성의 문제가 제기 되었을 당시 이미 그 출판사의 리뷰대회는 참여하지 않기로 작정을 하긴 했었다. 가진 건 없어도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인생이므로, 그동안 많이 해먹었으므로, 또 하필 그때 (재수없게)수상까지 한 죄인인지라 더 이상 뭐라도 써내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앞으로 황석영, 김훈 작가같이 대회와 상관없어도 내가 읽고 싶고, 이미 읽었고 또 기록으로라도 리뷰를 남기고 싶은 작품이라면 리뷰대회 기간이 지나고 난후 아니면 대회규정과 다르게 올려놓자, 이런 생각까지 했었다. 물론 그렇게 까지 내 자신을 정당화하고 나서도 기분은 드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내 돈 내고 책 사서 내가 읽었다고 내 마음으로 남겨놓는 리뷰까지 리뷰대회 눈치를 보며 숨어서 글을 올려야 하나, 내가 죄인도 아닌데 이게 뭔 짓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까놓고 얘기해 대회와 상관없이도 진심으로 적어놓은 내 몇 줄의 글을 읽고 내 이웃님들이 그 책을 여러 권 샀다고 하면 그 출판사는 누구 덕을 본 것인가. 이런 치졸한 보상심리까지 생겼지만 나는 안그런 척 했다. 나는 마이너고 그쪽은 메이저 니까. 혹시 내가 같은 메이저가 되는 불상사가 일어났을때를 위해 아니 그냥 더 이상 마이너로서 자존심 세우는게 쪽팔려 왼쪽 가슴에 묻어버렸다.(우연의 일치인지 그동안 빈번한 수상자로서 활동해온 사람들은 (앞에선)모조리 침묵했다)
그런데 글 좀 쓰고 늘 책 좀 읽고 또 매번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공정성을 위해 수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면 그런게 공정성이라면 적어도 이곳 알라딘은 엄청나게 불공정한 방식이 된다. 알라딘이 선정하는 이달의 당선작, 내가 보기에 선정되는 사람들은 늘 되는 사람쪽에 속한다고 믿기에. 우선 나만해도 그러니까. 다시 말해 되는 사람은 누구의 범주인가. 인기서재라 검증된 자, 서재 메인에 자주 노출되는 자, 리뷰대회에 빈번하게 수상되는 자. 꼭 알라딘은 아니더라도 어느 한 곳의 파워블로거 혹은 파워북로거로 활동하는 자, 쌩쓰투를 많이 받는 자, 서재질을 꾸준히 성실하게(?) 하는 자. (물론 이들이 서재질을 대충하는 사람들보다 글을 잘쓰고 더 유익한 글을 쓸 확률은 높다) 즉 자주 보아온 사람들이 자주 타는 것 아닌가 말이다. 충성고객을 우대한다는 측면도 있고 지난 한달간의 활발한 활동을 위로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 적립금으로 뭘 하겠나. 다시 이곳에서 책을 사보지 않겠나) 또, 특별히 당선작의 리뷰가 안당선작의 리뷰보다 월등하게 잘썼다고 여기지 않는 바이다. 그렇다면 이 기준은 앞서 말한 출판사로 보면 불공정한 처사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나같이 (1년 이상 활동하고)이달의 당선작에 늘 선정되는 자에겐 공정하고 (초보 활동자로서)힘들여 썼지만 그냥 거시한 이유로 선정되지 않은 자에겐 불공정한 방식이다. 옆동네 서점은 알라딘과 달리 매주 신규 회원 위주로 당선작을 선정하고 심지어 기존에 한번 수상한 사람은 육개월내 같은 상을 주지 않는다는 규정도 있다고 들었다.(물론 충성회원들은 다른 자체 대회에서 골고루 상을 나눠주기는 한다만) 신규 회원확보 차원에서 미끼를 던지는 것이 사내 방향이니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런면에서 알라딘은 그나마 덜 상업적인 것인가)
#3. 알라디니즘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자는 건 아니다.
어떤 공정성이 적절한지 묻고 싶지 않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정성은 철저하게 공정을 운영하는 쪽의 몫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가 배워온 기회의 분배, 심사의 공정, 능력위주의 평가 이런 것들은 우선되는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회사의 운영방향 아래에 놓이는 부수적인 것들이라는 것.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불공정하다. 누구나 불공정하다는 것만이 유일한 공정함이다.
나이들면 이 만연한 불공정한 세상사와 매사 부딪혀가며 내가 맞네 우기고 싶지가 않다. (나만 해도 저기서의 공정성에 피해를 봤지만 여기서의 공정성에 혜택을 입지 않는가)
알라딘이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건 아직은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의도적이건 계략적이건 아니면 습관적이건 어떠한 문제를 자기 시각으로 통찰하여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제 트윗에서 어떤 모르는 분이 남들이 지지하는 사람과 그 지지자는 잘도 비난하면서 왜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은 숨기고 밝히지 않는지 그것이 비겁하다는 글을 보았다. 뜨끔했다. 내가 숨기고 말하지 않아 와서 잘 아는데 다 나이들고 솔직하기 싫어서 그런 것이다.
오늘은 내가 그동안 그렇게 줄기차게 부르짖어온 위선과 속물정신이 내 경쟁력이 된 것에 욕하지 않고 위로를 하고 싶다. 늘 착한척 위하는 척 좋은 척 하다보면 혹시 누가 아나. 정말 착해지고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될지.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게 아니고 웃으면 웃을 일이 생긴다고 하니 그냥 난 계속 위선하련다. 자기 학대나 파괴로 윤리성을 회복하려는 글 쓰는 자들을 종종 보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일단 내 위선을 인정해야 상대의 위선을 인정해줄 수 있다. 상대가 위선인지 알아볼 수 있는 건 자기 역시 위선적이기 때문임을 명심하자.
배명훈. 개인적으로 작년에 읽은 단편집 중에 기억나는 <안녕, 인공존재>의 작가. 문학적인 스킬 보다는 일단 이야기의 소재면에서 타의 추종 불허. 상상력이 우주적이라는 것에 절대공감하는 작가이다. 씹기에도 딱 좋은 소설을 쓴다. <육식이야기>의 베르나르 키리니라는 벨기에 작가와 견줄 수 있는 유일한 기대주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이 논란속에서도 어찌 됬건 7만부를 넘었다고 들었다. 엊그제 조선일보 명사 칼럼에서도 이 책을 휴가지에서 읽었다고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려면 이런 소설을 읽으라는 글을 보았다. 화제성과 파워면에선 김애란 보다 떨어지지만 출판사로선 선방할 수 있는 작품인 듯하다.
그리고 참고로, 이런게 위선이라는 말씀이다. 한번은 비판하고 또 한번은 띄워주고. 니고시에이터, 파워브로커로서 위의 글하고 이 책하고 끼워맞추듯 작위적으로 글을 편집하는 행위. 페이퍼의 제목을 보시라. (문장이라도 두어줄 옮겨다 놓고 싶었는데 아직 밑줄긋기 문장도 소개안된 어제부로 넘어온 소식이란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얼마나 출판사에 도움이 되는 위선자란 말인가 ㅠ)
첨부터 계획한건 아니었지만 쓰다보니 이리되었다. 하도 적립금 행사를 홍보하길래 어쩔 수 없었다.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예판 적립금은 알라딘이 제일 많다. 이유가 뭘까 ㅠ) 그리고 주말이 되면 신간에 괜히 기웃거리게 되는데 내 생각에... 이것도 영화처럼 개봉날짜를 조율하는 건가, 뭐 이런 앞서가는 생각도 든다. 암튼, 알라딘에서 먼저 홍보하길래 카페에 왜 소식이 늦는거냐 질타를 한 쪽이라 오후에 전 온라인이 <신의 궤도>인 것이 괜히 찔렸다. 말만해놓고 책은 안사보는 웃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정도?(당연히 이달의 당선작 알사탕으로 ㅋ) 그것이 내 위선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 되겠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