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흠모하기




이 책의 페이지를 앉은 자리에서 한 장씩 넘기는 데만 두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멈칫거리며 읽어보기론 고종석, 서경식, 알랭 드 보통, 데리다, 벤야민, 러셀, 아렌트...그야말로 그냥 내가 좀 아는 네이밍에 불과했다. 12년 5개월 29일... 218명이라... 이분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해 이분이 고인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집어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늘 스쳐가는 서평가중 한사람에 지나지 않았을 듯하다. 죽어야 겨우 전달되는 진심이라니. 나도 참 무심한 독자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대신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숙연한 마음으로 이 분의 노고와 열정에 고개를 숙이기로 했다. 그것이 뒤늦게나마 내가 할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했다. 
 



 

요네하라 마리 여사는 이십년 동안 하루에 일곱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마리여사가 15분에 읽은 책을 저자는 2시간 넘게 잡고 있었다고 한다. (<분노하라> 정도는 가능하겠다) 나는 속독하는 편도 아니고 책에 따라 문장에 따라 책 읽는 시간이 틀린 경우다. 얼추 에세이를 제일 빨리 읽고 장편, 단편, 인문 순으로 속도가 느려터지는 것 같다. 책이 어렵다고 꼭 늦게 읽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문장의 배열이 내 머릿속 사고의 체계와 코드가 맞으면 아무래도 익숙하니까 빠른 걸까. 쉬워도 안 넘어가는 책은 있다. 예를 들면 번역한 유명인사의 에세이 같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풍경을 주로 담는 여행 에세이도 잘 안 넘어간다. 문제는 잡념인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예전보다 책 읽는 속도는 느려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꼭 속독하는 것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요즘 들어선 책 한권 덮는데 오만가지 잡생각이 다 든다. 책을 읽는 건지 인생을 고민하는 건지 생각의 확장을 막을 길이 없다. 이 책은 전화부 두께를 자랑하는 일종의 사전이라 할 수 있는데 사전을 며칠 만에 다 읽을 순 없지 않은가. 마음의 여유를 머금고 잠시 소장의 기쁨을 만끽하며 읽는다는 즐거움보다는 가졌다는 소유감을 확실히 느껴보고 싶었다. 이 책이 이번 달 평가단 미션이었다면 어땠을까.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심정을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너무 기쁜데 뭐라고 말할 수는 없는. 어쩌면 이 책은 서평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대신 사는 동안 곁에서 오래오래 아껴두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이 책을 펴내면서 소감을 밝히는 머리말이 에필로그처럼 수록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교수가 아니어도 독자들이 흠모하고 찬양할 만한 인물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길라잡이 구실을 하는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사상가를 가이드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경지일까. 여행을 다 다녀보고 그곳을 정리하여 소개하는 가이드를 떠올려본다. 살아 생전에 임한 그의 여정이 참 아름다웠다는 생각을 한다.

 

 

#2. 따라하기




무엇보다, 몸이 잘 안 깨어나는 날은, 이런 모습으로 원하는 곳을 향해 발짝 다가간다는 게 자신 없어져 그냥 집에 틀어박힌다.                                                                                             -81p


어쩜, 지금의 딱 내 심경이다.


 

 

 

우리집은 경기도 어느 멀쩡한 산자락을 깎아 만든 아파트인데 가끔 폭우가 쏟아지거나 천둥 번개가 심하게 몰아치는 날이면 인터넷도 불안하고 핸드폰 연결도 희미하다. DMB도 잘 안터지고 물론 와이파이는 안 잡힌다. 심지어는 케이블 TV도 지직거린다. 몇 번 통신사에 전화하여 단말기같은 걸 에어컨 상단에 부착하여 보았지만 이런 식으로 비오는 날은 소용이 없다. 이런 날은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다들 집에 있는 건지 거리엔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집에서 피리를 부는지 빗소리에 실려 동요 몇 자락이 들려온다. 도시에서의 고립감은 무엇으로 오는걸까. 고독하다고 고립되는 건 아니지만 고립되면 고독하다. 맥락없는 커피 한잔에 이 책은 잘 곁들여진다. 사실 지난 일요일 다 덮으려 했는데 개인적으로 온라인 테러를 겪은지라 오늘에서야 신문 삼일치를 읽으며 기운을 차렸다. 뭐랄까. 집중하기 힘들때, 그러나 그냥 있기는 한심할 때, 그렇다고 에너지를 뺏기고 싶지는 않을 때, 이 책은 무의식의 동무가 되어준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이 ‘생각하는 일요일’이 아니고 ‘생각의 일요일’도 아니고 <생각의 일요일들>인데 일요일에 생각하는 것의 부담감을 많이 줄여준다. 일요일까지 생각해야 하는 힘겨움을 상쇄한다. 그 남은 하루라는 일요일의 절박함을 줄여준다.

소설가는 잡념도 푸념도 이런 식의 멜랑꼴리를 가지는구나, 싶은.

<소년을 위로해줘>를 연재때 읽지 않고 출간후에 읽었다. 그런데 작가가 연재를 할때 후기처럼 남겨놓는 글은 가끔 읽었었다. 정제되지 않은 듯해 보이려는 솔직한 고민 같은 것을 엿본 느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것도 가공적이라는 생각은 들었다는 것인데, 이렇게 책으로 모아놓고 보니 작품이 되는 것이었다. 여백을 메우기 위해 배치된 사진이나 진짜 여백은 휴가지와도 참 잘 어울리는 전략이다. 만약 이 책이 잘되면 그건 기획과 마케팅의 승리가 아닐까. 물론 은희경의 기본 네임 밸류는 당연한 전제이겠지만.

은희경의 문장들은 잘 정제된 보석같은 느낌이 들곤하는데 이 단정감, 단아함이 꼭 모범생 작가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작가는 트위터라는 공간이 예전에도 있었다면 고독을 견뎌내고 그랬기 때문에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 자문한다.

   
 
아닐지도 모른다. 이곳에서의 고독은 해소되는 게 아니다. 서로의 고독끼리 다정해져 고독한 채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해준다. 너도 나처럼 고독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 것이 고독의 본질이고, 나는 그것을 소설로 써보고 싶어했을 것 같다. 지금처럼.    -75p
 
   


트위터의 시공간이 고독을 해소해주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고독끼리 다정해져 고독한 자신을 받아들이게 해준다는 말씀이 참 과학적으로 들려왔다. 트위터가 참 묘하게도 세상에 떠드는 그들과 고독을 나누진 못하지만 그냥 나란히 배열된 고독을 구경할 수는 있다는 것. 예를 들어 내 위에 이외수 작가가 떠드시고 내 아래 박범신 작가가 읊조리시는게 무릇 일개 독자인 나의 잡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지만 시간순으로 배열된 타임라인은 동일한 고독체의 전시장같다는 말씀이다. 내가 아무리 고독해도 이외수 작가, 박범신 작가와 다정할 순 없지만 우리가 각각 위치시킨 고독들끼린 다정해질 수 있다니. 그럼으로써 그들 작가들도 고독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니. 심지어는 그 고독의 본질을 소설로 써보고 싶었을 거라니. 미치겠다. 가끔 은희경 작가는 이런 철학적인 성찰의 지존을 보여주시는데 이번 산문들의 선물은 무겁지 않은 척하는 가벼움으로 위장된 꽤 튼실한 사념의 조직체들이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이 아까운 시간이지, 아무리 고독하다 울고 있지만.

지난 주말부터 어제까지 여지껏 서평쓰면서 생긴 일 중에 가장 폭풍같은 사건들이 나를 통과해 지나갔다. 과거의 많은 생각을 했다기 보다는 앞으로의 다짐들을 조직하는 계기가 된 듯하다. 뭔가 옷 잘 안 벗는 여배우가 화끈하게 대역없이 베드씬이라도 찍고 온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지금 벗은 내 몸뚱아리가 아니고 앞으로 어떤 작품에 출연할 지가 걱정 아니겠나. 글이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내가 쓰는 이 글들이 나의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일까. 나의 글이 곧 나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 나로부터 발생한 나의 것임은 틀림없다. 나의 글이 나의 모두는 아니지만 나의 모두는 나의 글인 날을 기다린다.

모든 것은 지나가지만 모든 것이 지나갈 때 우린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나를 이해해주지도 않는다. 슬픈건 나자신조차도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기란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말했다.

‘소설가가 그 근처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소설가가 여전히 지식인이나 스승이어야 한다면 나는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사상가를 흠모할래. 철학자를 찬양할래. 평론가를 존경할래.

그리고


소설가를 따라할래. 
이렇게 비가 끝도없이 퍼붓는 날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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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7-28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이 평가단 선정도서였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도 다 리뷰들을 썼던 모양인데, 저도 그냥 소장의 기쁨을 맛보고 있는 중입니다.ㅠ

근데 저는 은희경씨를 아직까지는 탑에 놓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내보이기에 좋은 작가? 그 정도인듯 싶어요.
오히려 한사람님의 오늘 글이 더 좋다고 말하고 싶어요.ㅋㅋ

한사람 2011-07-28 22:09   좋아요 0 | URL

상상력 사전 같은 책은 리뷰쓰기 남감하죠 ㅋ
하루 이틀에 읽을 책도 아니고
이 책은 일단 두께가 백과사전이고 정말로 사전식으로 편집을 하셨네요
서평쓰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필독서라는 생각도 들구요

은희경 작가는 뭐랄까..
문장속에서 쉬크한 고민이 다시 문장으로 피어난 것이 좋아요

제 글이 좋아요??? ㅋㅋ

cyrus 2011-07-27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간 나면 <책만사> 읽고 있어요. 구입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특정 학자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이 쓴 책들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직접 그 목록에
나열된 책들을 읽어보려고 해요. 사상가들이 워낙 많아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요,, ^^:;

윗쪽 지역은 물난리 때문에 정말 난리던데 침수 피해 없으시길 바라요.

한사람 2011-07-28 22: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
목록... 저자와 그의 작품을 한눈에 정리, 확인할수 있다. 그것도 일인데 잘 모아주셨죠

제가 사는 쪽은 이번에 큰 타격은 안입었네요
늘 경기북부 지역이 피해를 입잖아요
이번에 강남이 참 예외지만요..
덕분에 이쪽에서 강남으로 출근하시는 분들 완전 생고생이었어요 ~

마녀고양이 2011-07-2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온라인 테러라니.. 무슨 일 있으셨나요?
가끔 페이퍼에서 그런 글귀들이 보이던데. 온라인 세상도 오프라인 세상과 많이 흡사해요, 그죠?

인간은 모두 혼자이고 소외된 존재라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고
그것이 사실이기에 우리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고립되었기에 함께할 수 있는 묘한 역설... 저는 그게 즐겁답니다, 물론 이렇게 비가 와서야 진정 즐겁기는 어렵지만요.

한사람 2011-07-28 22:14   좋아요 0 | URL

좀 연루된 일이 있었어요 ㅠ.ㅠ
직접적인 가해자, 피해자 그런성질이 아니라 그냥 단순언급되는 건데도
저는 몹시 견디기 힘들더라구요..

고립되었기에 함께 할수 있는 역설, 이 말 참 멋지네요
그렇담 같이 있는다고 같이 함께 하는게 아니라는 뜻과도 상통할까요..
물리적인 형태의 동행이 꼭 동반자의 조건은 아닐지도 모르죠..

여긴 좀 비가 덜한데..그쪽은 어떤까요?

가연 2011-08-02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이 진짜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안고는 있지만.. 한사람님 말씀도 일리가 있지요. 리뷰쓰기가 참..ㅎㅎ 개인적으로는 신간평가단에 선정되어서 노출이 많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만ㅠㅠ 저도 구입하고는 찬찬히 읽고 있어요ㅎ

한사람 2011-08-02 18:11   좋아요 0 | URL

얼마나 좋았을까요?
리뷰쓰기 전까진요 ㅋㅋ

선물하기도 좋고 그냥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책이던데...

안타깝네요..